그림의 떡 Rice cake of painting

김형민/ KIMHYUNGMIN / 金炯旻 / painting

2023_0906 2023_0919

김형민_그림의 떡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0×110cm_2023

김형민 인스타그램_@gom.artstudio

 

초대일시 / 2023_0906_수요일_04: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지아트 갤러리

G-ART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34

Tel. +82.(0)2.722.7955

cafe.naver.com/gartgroup

 

''은 음식의 한 종류를 지칭하는 단어이지만 본래의 의미와 다르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떡값', '떡고물'과 같이 서로 떡을 나누어 먹던 사회적 맥락에서의 특징을 표현하기도 하고 '떡 치다'와 같이 묘한 어감과 통속적인 이야기를 담은 속된 표현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번 개인전의 제목 그림의 떡은 혼밥의 시대가 된 오늘 다시 한번 떡이 지닌 의미들을 상기하고자 한다. 이사나 신장개업 또는 결혼이나 돌잔치 등 이웃과 손님에게 돌렸던 떡. 하지만 이러한 나눔의 문화를 상징했던 떡은 '떡판' '떡대' 등 최근 사람을 놀리는 용도와 부정적인 의미 또한 포함하게 되었다.

 

김형민_그림의 떡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61cm_2023

김형민_그림의 떡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0×60.5cm_2023
김형민_그림의 떡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7×91cm_2023
김형민_그림의 떡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3×91cm_2023
김형민_그림의 떡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3×91cm_2023
김형민_그림의 떡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30.5cm_2023

김형민_그림의 떡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3.7×130.2cm_2023

혼밥족과 1인 가족이 늘어나면서 직접 떡을 지어 먹는 가정은 극히 일부분이고 적은 양의 떡을 전문점에서 구입해서 먹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의 개인주의 확장과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이웃과는 말도 섞지 않으려는 모습 그리고 팽배해진 공허함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전시 그림의 떡은 떡은 있되 나눔이 없는 현대사회의 아쉬움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작가노트 중에서) 김형민

 

 

-이달에 볼만한 전시-

영원한 여정: 상형토기와 토우장식토기/ 2022.5.26.-2023.10.9 /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관

김구림전 / 2023.8.25.-2024.2,12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정연두전 / 2023.9.6.-2024.2,25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장욱진회고전 '가장 진지한 고백' / 2023.9.14.-2024.2,12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한양 여성, 문밖을 나서다-일하는 여성들전 / 2023.5.5.-2023.10.3 / 서울역사박물관

80 도시현실전/ 2023.5.25-2025.5.26 /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강서경전 / 2023.9.7-2023.12.31 / 리움미술관

William Klein 사진전 / 2023.5.24.-2023.9.17 / 뮤지엄 한미삼청

노원희 '거기 계셨군요'전 / 2023,8,11-11.19 / 아르코미술관

이진영조각전 / 2023,9,15-10.15 / 성곡미술관

최남진조각전 / 2023,8,29-9.16 / 김세중미술관

2023 대한민국 우표전시회 / 2023,9,21-9.28 /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성능경전 / 2023,8,23-10.8./ 갤러리현대

서용선 회화조각전 / 2023,7,15-10.22 / 아트선재센터

지근욱전 / 2023.8.9-2023.9.13 / 학고재

김환기 점점화70-74전 / 2023,9,1-12.3 / 환기미술관

최수인전 / 2023,9,1-10.7 / 아트사이드갤러리

박기진‘A FIELD’설치전/ 2023,8,18-9.15 / The SoSo

이중근사진전 / 2023,8,30-9.27 / 아트파크

박준형전 / 2023,9,1-9.24 / 갤러리도올

요시다 유니 사진.영상전 / 2023,5,24-9.24 / 서울미술관

정정주전 / 2023,8,24-9.21 / 갤러리조선

오세열전 / 2023,8,30-9.26 / 나마갤러리

정보원전 / 2023,9.4-10.7 / 표갤러리

구정아전 / 2023,9,6-10.14 / PKM갤러리

박종호전 '나목' / 2023,9.6-9.23 / 아주특별한사진교실

양승우전 B side / 2023,9.1-9.14 / 갤러리브레송

박종호전 '나목' / 2023,9.6-9.23 / 아주특별한사진교실

이수현전 A Sound of Hammer / 2023. 9. 14- 9. 27 / KP 갤러리

 

​-인사동-

정영신 '장항선 타고 가는 장터 여행'사진전 / 2023.8.23.-9.4 / 갤러리인덱스

배기주 '건축물로 보는 추상' / 2023.9.6.-9.11 / 갤러리인덱스

김혜원, 문슬 2인 사진 통섭전 / 2023.9.20.-10.2 / 갤러리인덱스

김용민, 류경희 얼꼴전 '사람을 꼭 닮았다' / 2023.9.13.-9.20 / 아르떼 숲

후쿠시마 조삼모사전/ 2023.9.23.-10.5 / 아르떼 숲

최병진전 / 2023,9.1-9.21 / 이화익갤러리

강석영전 / 2023,8.30-10.20 / 갤러리밈

정산 김연식전 / 2023,9.28-10.17 / 갤러리 모나리자 산촌

정세학전'/ 2023,9,6-9.12 / 나무화랑

여성채색화가들‘현실과 환타지를 소요하다’전 / 2023,8.30-10.14 / 선화랑

나광호‘강원도감’전 / 2023,8.10-9.9 / OCI갤러리

이향곤 옻칠회화전 / 2023,9,6-9.22 / 장은선갤러리

노춘석전 ‘Perfect Love2’/ 2023,8,30-9.11 / 구구갤러리

송광익전 / 2023,9.5-9.26 / 통인화랑3층

신창용전 / 2023,9.6-10.8 / 통인화랑5층

 

[스크랩 : 서울아트가이드 2023년 9월호]

 

Personal Jar

박소영/ PARKSOYOUNG / 朴昭映 / painting

2023_0728 2023_0806

박소영 _Forest_ 캔버스에 유채 _16×12cm_2023

 

초대일시 / 2023_0728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2:00pm~05:00pm

 

디아트플랜트 요 갤러리

THE ART PLANT Jo Gallery

서울 중구 을지로92 3301

Tel. +82.(0)2.318.0131

 

사적인 공간 Personal Jar 언제나 그랬다. 다가가면 멀어지고, 가까이 갈 수록 부딪히고, 그러다가 부서지고. 누군가에게 겁없이 다가서고 나서는 상처로 돌아서는 모습을 보며, 보이지는 않지만 관계 속에서 사적인 공간의 중요성을 느낀 적이 있었다. 그렇게 관계에 천착하는 나는, 관계 속에서의 사적인 공간의 존재와 부재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그것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공간의 형태를 만들고, 그것을 인간 관계의 다양성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우선 사적인 공간을 만들려면 두 팔을 벌려 동그랗게 자기 구역을 정해 놓고, 그리고 보호막을 친다. 그러면 누구도 침범하지 말아야할 공간이 만들어진다. 공간이라는 것이 생기면 인간은 그것을 자기만의 성향과 취향이 드러나게 만들곤 한다. 그리하여 누구는 쿠션으로, 누구는 뾰족한 가시나무로 또 누구는 깨질 듯 한 크리스탈로 그렇게 각자는 그들이 선택한 창과 방패로 자신이 이미지와 스스로의 공간, 그리고 그곳에 담아놓은, 침범 당하고 싶지않은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공간으로 채워 놓는다. 이미지의 선택은 사물에서부터 시작했다. 각자의 모습에서 보여지는 성향과 사적 이야기는 사소하지만 사물로 이미지를 대변하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단순히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 속 이야기로도, 상대의 이야기를 듣거나 말할 때 떠오르는 사물로도, 산책을 하며 보았던 풍경과 같이, 이미지들은 세상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고, 상상 속에서 그들의 세상을 꺼내 보이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하찮다 여겨진 사물의 존재감은 인간의 이미지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생명을 가진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인간은 관계 안에서 서로를 알기 위해, 알리기 위해, 혹은 반대로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는 맘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드러내기도, 감추기도 한다. 그것은 강인함을 드러내기도, 나약함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근사하기도 하고, 시시하기도 하며, 어떤 때는 아예 관심이 가지 않기도 하지만 오히려 지나친 관심에 노출되기도 한다. 그렇게 천차만별의 사적인 공간은 형성된다. 자신만의 정체성과 존재감은 성격과 환경, 그리고 기호와 취향들로 사물을 통해 드러나며, 작고 사소한 듯 하지만 우리에게는 꼭 필요한, 언제나 찾을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 다양한 이미지들은 세상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든 살아가고 있는,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습이며, 내가 바라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이다. - 깨달음이 늦었던 2023년 칠월에 박소영

박소영 _Emerged_ 캔버스에 유채 _16×12cm_2023
박소영_Butterflies_캔버스에 유채_16×12cm_2023
박소영_Cloud_캔버스에 유채_16×12cm_2023
박소영_Crystal_캔버스에 유채_16×12cm_2023
박소영_Blue_캔버스에 유채_16×12cm_2023
박소영 _Allergy-Nevertheless_ 캔버스에 유채 _28×22cm_2022

Personal Jar Like Personal Space It has always been like that. As you approach, you move away, as you get closer, you collide, and then it breaks. Seeing someone approaching without fear, getting hurt, and turning back, I could not see but felt the importance of personal space amidst relationships. Being obsessed over such relationships, I became interested in the existence and absence of personal space in relationships and desired to express this visually. To do so, I tried to create form of space and, using this form, to express diversity of human relationships. To create personal space, you mark your personal zone by spreading your arms and making a circle and, then, create protective shield. This creates space that should not be invaded. Once space is created, people tend to mold space to exhibit their own tendencies and tastes. Thus, some create cushions, some create sharp thorn trees, and some create brittle crystals. So, individuals choose their shields and swords and fill their personal spaces with their personal images, own spaces, and things to be protected and not wanting to be invaded. Selection of images started with objects. Tendencies shown at each one's appearance and personal stories may be trivial, yet they were enough to represent images from objects. Just like fairytales we know, objects created in our mind as we talk and listen to others, and landscapes we see while taking a walk, images could easily be found in life, and it was enough to draw their world out of imagination. Presence of objects, seemed to be belittled at times, attempts to form relationships with human images and starts to be revealed in the living life. People at times reveal or hide their own spaces in hope of knowing and informing each other within their relationships or perhaps hoping not to be known. This may reveal strengths or weaknesses; however, it could, at times, be cool, insignificant, and overly exposed to interests even when not interested. Just like that, many thousands of personal spaces are formed. One's own identity and presence emerge from personality, environment, and tastes and preferences through objects and appear, although small and trivial, in the form that are necessary and could be found always. These various images are images of how we live our lives, of our true selves, and of our world. - Late but Realized on July, 2023 Soyoung Park

 

메아리치는 녹색 The Echoing Green

김성남_지용현_파랑 

2023_0712 2023_0725 / 일요일 휴관

김성남_there 0501_캔버스에 유채_72×45cm_2005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기획 / 오별아트 @oh_byul_arts

 

나인원 갤러리

NiNE ONE

서울 종로구 인사동49 2

www.goodgallery.co.kr @nineonegallery

 

당신이 서 있는 그곳은 아마도 예전에 숲이었을 것이다. 그 숲이 도로가 되고 아파트가 되고 호텔이 되고 카페가 되고 도시가 됐다. 그러는 사이 인간이 숲의 일부로 존재하던 시절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리고 숲과 계곡이, 산과 강이, 자연이 부동산에 부속된 프리미엄급 풍경이라는 잉여 가치가 되어 더 비싸게 사적으로 소유되고, 소비되는 것으로 자연이 축소됐다. 그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뿌리와도 같은 근원으로서의 자연을 잃어버렸는데, 사람들은 그걸 잃어버렸다는 것조차 모른 채 여름 휴가철이 되면 어떻게 해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과 결핍감을 채우고자 거의 강박적으로 산으로 강으로 몰려 간다. 그것이 짧고 덧없는 디지털 접속의 연속과도 같은, 뿌리 뽑힌 현재에 대한 보상이라도 되는 양 말이다. 오별 아트가 처음으로 기획한 메아리치는 녹색전에 참여하는 세 작가는 공통적으로 어린 시절을 시골이나 산, 숲에 있던 원형적 자연 한 복판에서 보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훗날 도시의 대학에 가서 회화를 전공한 이들에게 그것은 엄청난 축복이고 행운이었을 것이다한 알의 모래에서 우주를 보고, 들꽃에서 천국을 보려면, 손 안에 무한을 쥐고, 찰나 속에서 영원을 보라 - 월리엄 블레이크, 순수의 전조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크고 작은 동식물들이 제 각각 제 방식대로 살아 숨쉬며 하나의 숲을 이루는 자연은 그만큼 원대하고 또 순환적이다. 그 안에는 정말 없는 게 없고 그 모든 게 다 연결된 채 살아 움직이고 있다. '손 안에 무한을 쥐고 찰나에서 영원'을 볼 수도 있을 만큼 말이다. 그렇다면 혹시 그런 곳에서 자연의 일부로서 살았던 화가들의 그림은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 그 결핍감으로 자연을 그리게 된 화가의 그림과 다를까? 다르다. 확실히 다르다. 도시인이 가장 사랑하는 컬러인 녹색 자연을 그리는 화가는 세상에 많고 많다. 하지만 어린 시절 자연의 일부로 살았던 이들 세 작가의 그림 같지는 않다.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해도 좋을 만한 것이 있다. 무엇보다 다른 점은 자연과의 일체감이다. 19세기 증기기관차가 생겨 난 이후 풍경은 도시 방문자가 눈으로 즐기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풍경화가 되었고 그것들은 기필코 도시인 눈에 장엄하거나 아름다운 것이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팔렸다. 그 때문에 존 버거는 다른 방식으로 보기에서 미술관 그림들이 진부한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기도 했다. "화가가 서툴러서가 아니다. 화가에겐 팔리는 그림을 그리는 일이 중요했고, 그런 그림 위주로 그리니 진부해진 것이다. 시장의 요구가 예술 자체의 요구보다 더 강해서 생긴 결과였다." - 존 버거 김성남, 지용현, 파랑의 녹색 그림은 일반적인 기준에서 아름답지 않다. 어떤 그림은 무섭다. 하지만 결코 진부하지 않고 식상하지 않다. 자연 속에 깃든 만물의 신성을 드러내는 그림으로서 가치가 있다. 눈으로 즐기는 자연이 아니라, 온 몸으로 체험하는 자연으로 우리의 감각을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과거로 돌려 놓는가 하면 미래나 시점을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도 데려간다. 예전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는 것, 겉으로 보기엔 없지만 더 오래 보면 있을 수 있는 것, 누군가는 볼 수 있지만 결코 말해질 수 없는 것. 그러니까 한 마디로 "보이지 않는 것들의 복원" 으로서의 녹색 그림, 그게 바로 김성남의, 지용현의, 파랑의 그림이다.

 

김성남_there1803_캔버스에 유채_105×73cm_2018
김성남_Wild landscape2103_캔버스에 유채_117×80cm_2021

1. 파주 시골에서 태어나 자라며 혼자 숲에 가는 일이 많았다는 김성남의 그림은 "자연 현상을 포함한 이 세상 모든 것이 이음새 없이 전체, 하나의 전체이기 때문에 부분들간의 경계는 중요하지 않다" 했던 괴테의 자연관과 정확히 일치한다. 숲 속으로, 숲의 웅덩이로, 빠져 드는 게 아니라 녹아든다. 깊이 용해되어 사라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특히 숲의 물 웅덩이에 사람이 누워 있는 듯한 불분명한 형태의 그림은 왠지 으스스한 분위기마저 드는데 그건 일종의 물을 통한 '치유와 정화의 시간'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아무래도 작가는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유년의 숲, 태고의 자연을 되살리는 '불가능한 임무'를 수행하며 그 안에 생존과 귀환을 위한 자기 삶의 험란한 경험들을 투영시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jiyonghyun_pink woods 210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73cm_2021
jiyonghyun_woods 220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6×53cm_2022
jiyonghyun_woods 230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73cm_2023

2. 서울 출생이지만 어린 시절 관악산 산 속에서 살았고 더 깊은 산골이 좋아 경기도 안성에서 강원도 평창으로 이주한 지용현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속한 거대한 세계를 보여주려는 것이 예술이고, 그림은 이 수수께끼 같은 세계를 전해 주는 전령들"이라고 했던 존 버거의 말을 다시 한 번 소환하게 된다. 일견 평범해 보이는 그의 녹색 자연 속에는 눈으로 잘 보이지 않거나 보여도 보잘 것 없거나, 원자 단위의 존재감밖에 없어서 실은 아무도 기록하지 않았을 것 같은, 빛의 파동 같기도 하고 외계 생명체의 불꽃 모양 에너지 같기도 한 뭐라고 이름 붙일 수 없는 우주의 먼지처럼 신비롭게 하찮은 무엇인가가 있는데 그게 뭔지 작가는 아마도 함구할 것이기에 묻지 않는다. 제법 오랜 기간의 재탐색 끝에 모래 한 알 같은 티클에서 무한에 이르는 '우주적 춤'을 추고자 했던 지용현만의 독자적 상상력이 강원도 산골 마을을 배경으로 다시금 실험되고 교신되고 파동하고 있다는 소식은 우리 모두에게 좋은 뉴스다.

 

파랑_5월의 어느날(뉴질랜드)_캔버스에 유채_91×117cm_2017
파랑_Wolf boy and black wolf(꽃밭에서)_캔버스에 유채_91×73cm_2022

3. "사람의 유년시절의 추억은 그 사람의 근원이자 뿌리이다. 인간의 삶이란 자신에게 부여된 공간에 시간과 이야기를 채우는 과정이다." - parang 문경 세제에서 6살까지 살다가 강원도 태백으로 이주하여 10살까지 살았다는 파랑은 주로 늑대를 그린다. 늑대를 그리지 않을 때조차 늑대가 느껴질 정도로 늑대에게 동화된 삶을 제법 오래 살았다. 무언가를 그린다는 것은 형상과 이미지의 힘으로 시공을 넘어 그 대상과 소통하는 신성하고 초월적인 경험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인간에 대한 증오심이 커질 때는 인간이 사라지고 오직 동식물들만 평화롭게 공존하는 종말 이후 미래의 낙원을 그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딱 자연과의 교감 속에서 낙천적으로 순수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월리엄 블레이크의 시집 순수의 노래에 수록된 '메아리치는 녹색(The Echoing Green)' 이라는 시가 떠오르는 그런 그림들이다. "저렇게들, 저렇게들 즐거웠지. 우리 모두, 소녀와 소년이었던 어린 시절에는 우리도 메아리치는 녹색 풀밭에서 놀았지." - 윌리엄 블레이크, 순수의 노래중에서

 

파랑_가을 속의 날개_종이에 오일 파스텔_60×89cm_2022
파랑_늑대개_캔버스에 유채_73×61cm_2023

보통은 어른이 되면 녹색 풀밭에서 놀던 어린 날의 순수를 잃게 된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어로 쓰면, '이윽고 어린 아이들은 지쳐, 더 이상 즐겁게 놀 수 없고, 해는 저물어, 우리는 놀이는 끝났다'로 귀결되고 만다. 그런데 이 세 작가에게 '녹색 순수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은 메아리 같다. 해는 저물어 이미 어두워졌는데, 그들은 집에 돌아가지 않고 어둠 속에서 계속 혼자 놀고 있는 아이 같다. 여전히 그런 마음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 생계를 위한 그림이 아니라, '인생을 건 놀이'로 계속 그림을 그린다는 것! 해는 저물어 어두워지는데"인간은 충분히 어두워져야 별을 볼 수 있다." 고 했던 괴테의 말로 응원한다!  김경

matters

김소정展 / KIMSOJEONG / 金昭廷 / painting

2023_0615 2023_0715 / ,,공휴일 휴관

김소정_IYKYK_한지에 먹, 3단화_75×146.5cm_2023

                                                           

                                                                                                                                       2023 OCI YOUNG CREATIVES展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월,공휴일 휴관

OCI 미술관

OCI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45-14(수송동 46-15번지)

Tel. +82.(0)2.734.0440

www.ocimuseum.org

김소정은 사물의 온전한 형태만을 그릴 뿐, 그것의 본질은 설명하지 않는다. 집결한 군중을 그리지만 표정은 그리지 않고, 그들이 쥐고 있는 깃발과 현수막은 그리되 외침과 주장은 비운다. 그의 헌신적인 먹 선은 구체적인 현실로 향하지 않는다. ● 아무도 기억에 남기지 않을 것들, 없었던 것처럼 사라질 일들을 이러한 방법으로 되짚어보는 이유는 내가 목도한 것들이 어딘가 어긋나 보이고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바로잡는 것은 작가의 몫이 아니기에 그저 형태를 분해하고 다시 배치하고 가려보며 이 흥미로운 불편함을 작품이라는 창을 통해 내보일 뿐이다. ● 강한 전달은 이해와 해석의 범위를 좁힐 수 있다. 때로는 은유적인 것이 더 예리하게 새겨지고 오래 기억되곤 한다. 없어도 그만인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무엇'이라 기록하는 행위는 이 시대에 대한 김소정의 나지막한 발언이다. ■ 이영지

 

김소정_Cien Asuntos_한지에 먹, 채색_100×410cm_2023_부분

김소정의 군상 ● 참사와 재난, 전쟁과 분쟁, 긴장과 무장, 범죄와 비리, 차별과 착취, 고독과 중독, 빈곤과 격차. 우리 삶의 망가진 곳은 늘어만 가는데, 고치는 사람보다 망가뜨리는 사람이 많다. 내버려 두면 영영 망가지기에 고치는 사람들은 거리로 나서 군중을 이룬다. 마음속에 의지를 품고, 머릿속에 문제를 채우며, 귓속에 목소리를 담고, 손안에 해법을 쥔 채, 입으로 해결을 말하며, 몸으로 실천을 행한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말과 우리 사회는 몸과 마음이 무너진 사람들이 발전시킨다는 말에 어울리는 사람들이다. 군중은 곧 우리 조국과 사회를 사랑하여 발전시키는 사람들인 것이다. 1894년 동학 농민과 1919년 조선 민족 그리고 1948년 제주 도민과 1980년 광주 시민은 모두 그런 군중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반란이나 소요를 일으키는 세력으로 몰려 죽임을 당했다. 서로 다른 때와 다른 곳에 살았지만,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시선은 한결같았다. 이 한결같은 시선은 지금도 여전하다. 여전하며 강력하다. 강력하게 외면하고 왜곡한다. 법률로 죄를 씌우고 벌금으로 짐을 지운다. 배척하고 고립시킨다. 그래서 김소정의 군상 속 인물은 얼굴을 가렸다. 자칫하면 고치기는커녕 죄와 짐만 얻은 채, 배척과 고립 속에 쉬이 놓이고 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군중은 계속 거리로 나선다. 그리고 김소정은 그런 군중을 바라본다. 바라보는 일은 슬픔과 노여움을 가진 이유를 살피는 일이자, 몸과 마음이 무너진 이유를 살피는 일이며, 망가진 곳을 고치기 위해 내딛는 첫걸음이다. 김소정은 바라보았기에 첫걸음을 내디뎠고, 그림으로 옮겼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계속 나아간다면 틀어진 시선을 바로 잡을 것이고,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상과 경청해야 할 소리를 짚어줄 것이다.

 

김소정_Cien Asuntos_한지에 먹, 채색_100×410cm_2023_부분

이러한 태도는 정조와 닮았다. 정조는 어릴 때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떨어져 지냈다. 어른일 때는 아이를 잃고 연인도 잃었다. 자신의 즉위를 반대하거나 변화를 반대하는 세력. 심지어 자신을 죽이려는 세력 한 가운데서 오랜 시간 살아남았다. 배척과 고립 속에 살았을 것이다. 슬픔도 알고 분노도 알았을 것이며, 몸도 마음도 무너진 적 있을 것이다. 그에게 세상은 망가진 세상이었을 것이다. 나라의 주인인 양 행세하지만, 제 도리는 못하는 수많은 관료를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정조는 나의 나라를 뜻하는 아국이 아닌 백성의 나라를 뜻하는 민국이란 말을 썼다. 나라의 주인을 고쳐 잡는 말이었다. 재위 기간 대비 가장 많은 능행을 하며 어떤 임금보다 백성을 자주 만났다. 과거와 달리 행차를 모두가 볼 수 있게 했고, 억울한 일이 있다면 길을 막고 호소할 수 있게 했다. 군주로서 정조는 자신과 같은 군중을 보았다. 그렇기에 망가진 곳을 발견할 수 있었고 또 고칠 수 있었다. 국가가 아이를 돌보게 했고 노비와 차별을 없앴다. 상권을 독점하지 못하게 했고 누구나 장사를 할 수 있게 했다. 학문만큼 무예를 중시하여 방어에 능한 성을 짓고 전투에 능한 군을 키웠다. 그리고 어느 때보다 많고 다양한 백성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다.

 

김소정_Korean Church Christmas_한지에 먹_75.5×60.6cm_2023

과거의 전승과 시대의 변주 ● 김소정은 정조 때 그림을 참고한다. 바라보는 대상이 같기 때문이다. 이때 묘사나 장황 방법은 참고하기 쉽다. 바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족자, 책자, 병풍'으로 나누어 장황한 '초상, 도상, 군상'이 가지는 구성의 이점은 집중하지 않으면 참고하기 어렵다. 이 점에 집중해 보자. 정조 때 그림은 화성 능행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어진, 의궤, 계병'이라는 세 가지 방식으로 나누어 그렸다. 어진으로 군주의 의지를 나타내고, 의궤로 행차의 방식을 전달하며, 계병으로 행사를 기념한다. 목적이 다르기에 방식도 달랐다. 덕분에 우리는 화성 능행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여러 관점으로 살필 수 있다. 어진으로 중심 인물을 깊고 섬세하게 살필 수 있고, 의궤로 주변 인물과 여러 사물을 분명하고 정확하게 살필 수 있으며, 계병으로 모든 '인물, 동물, 사물, 건물, 지형, 산세'를 다양하고 실감 나게 살필 수 있다. 하나의 주제와 그림 간 수직적 연결이 긴밀하고, 세 가지 다른 방식 간 수평적 연결도 긴밀하다. 김소정은 현재 대주제가 넓고 소주제가 약하다. 그래서 낱장과 병풍으로 나눈 그림 간 연결이 비교적 긴밀하지 않다. 어진 속 임금은 의궤와 계병에 나타나고, 의궤 속 행렬은 계병에 나타난다. 세 가지 그림은 공통으로 등장하는 인물 덕에 서로 연결된다. 이 점을 참고한다면 구성이 조화로운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며, 양식의 전승뿐 아니라 구성의 이점까지 취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김소정_똑바로만 앉으세요 Sit Straight Only_한지에 먹_76×60cm_2023

이어 다른 선례와 비교해 보자. 조선시대 채색 안료의 수는 26색이다. 정조 때 〈화성능행도〉는 이 중 12색을 썼다. 인물의 형태는 80종류다. 당대 최고의 화원이 7명 이상 붙어 1년 넘게 그렸기에 다채롭고 다양하다. 하지만 관료만 그렇다. 백성은 겨우 넷으로 추릴 만큼 단일하다. 이응노의 군상 〈3·1 만세운동〉은 1945년의 그림인데, 150년이 지나도 백성의 모습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들에게 다채로움과 다양함을 안긴 화가는 서세옥이다. 1986년에 그린 〈3·1 만세운동〉으로 14가지 색채와 57종류의 형태를 주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군상은 점차 하나의 색채로 동종의 형태를 반복해 그리는 방식으로 변한다. 일본의 침략과 미소의 냉전이 민족을 말살하고 분열시킨 때를 겪었기 때문이다. 하얀 바탕에 검은 묵색으로 엮은 수많은 인물. 이는 사라지고 갈라진 민족을 되살리고 엮어내는 표현이었다. 이러한 단일성은 정권을 찬탈한 군인에 의해 획일성으로 바뀌었다. 이에 하성흡은 〈화성능행도〉를 참고하여 박승희 열사의 장례 행렬을 그렸다. 이는 단색으로 그린 수묵화가 아닌 여러 형태와 다색으로 그린 채색화였고, 획일화에 시달리는 군중에게 다채로움과 다양함을 주는 회화적 시도였다. 이러한 선례는 후대에 좋은 참고이자 기준이다. 하지만 이르지 못하면 그에 준하는 평이 뒤따른다. 김소정은 서세옥이나 하성흡과 달리 군중에게 색을 입히지 않았다. 군상 속 인물이 얼굴을 가린 이유와 같을 것이다. 그러나 칠해야 한다. 단일성을 강조할 시대가 아니며, 선례에 비해 묘사 수준이 낮아 보이기 때문이다. 과거와 달리 현재 안료의 수는 최소 60종이다. 이러한 이점을 살려 색채를 늘려야 한다. 그러면 두 가지 변별력을 얻을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속한 사회 구성원은 저마다 각양각색의 지향을 가졌다.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래서 군중으로 뭉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결국 뭉친다. 뭉쳐야만 풀 수 있는 중대하고 시급한 문제 때문이다. 형태의 다양함에 색채의 다채로움을 얹힌다면 선례에 준하는 표현력을 지닐 것이고, 나아가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하나로 뭉칠 만큼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전달력을 지닐 것이다. 추가로 보존력이 필요하다. 어렵게 얻은 표현력과 전달력을 지키는 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낱장은 책이나 첩으로 장황해야 하고 병풍은 더욱 튼튼해야 한다.

 

김소정_환영한다니까요 Guys, I Do Welcome You fr_한지에 먹_75.5×60.6cm_2023

탕탕평평 평평탕탕 ● 이쪽 아니면 저쪽, 민생이 아닌 정권, 승자 독식과 패자 절멸. 우리는 탕평을 잃은 조선시대 붕당 정치가 세도 정치로 변하여 백성의 삶을 영영 망가뜨렸음을 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정당은 거대 양당으로 나뉘고 정책은 사람보다 자리를 우선하며 정권은 승자의 목에 화환을 걸고 패자의 손에 수갑을 채운다. 김소정의 눈은 어느 한쪽 군중만 바라보지 않는다. 둘이면 둘을 보고 셋이면 셋을 바라본다. 지금 우리나라는 김소정처럼 눈이 귀한 사람과 균형 잡힌 발언이 필요하다. 작가의 발언은 작품이다. 작품의 표현력과 전달력은 곧 발언의 힘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선례의 온전한 전승과 이점을 취한 시대적 변주를 바랐다. 두 가지 색채와 형태만 남은 우리에게 작가의 작품이 다시금 다채로움과 다양함을 안겨주길 기대하며. 이상으로 김소정의 군상 비평을 마친다. ■ 김준혁

-이달에 볼만한 전시-

 

영원한 여정: 상형토기와 토우장식토기/ 2022.5.26.-2023.10.9 /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관

한국실험미술 1960-1970/ 2022.5.26.-2023.7,16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한양 여성, 문밖을 나서다-일하는 여성들전 / 2023.5.5.-2023.10.3 / 서울역사박물관

에드워드 호퍼전/ 2023.4.20-2023.8.20 /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권하윤전 / 2023.5.16-2023.9.10 / 리움미술관

William Klein 사진전 / 2023.5.24.-2023.9.17 / 뮤지엄 한미삼청

조선백자 다기의 미와 현대미술의 만남 / 2023,6,7-7.16 / 현대화랑

김옥선 사진전 / 2023,6,9-8.13 / 성곡미술관

김주환 설치전 / 2023,7,4-7.23 / 김세중미술관

이상욱전 / 2023.6.28-2023.7.29 / 학고재

이민선전 / 2023,6,22-7.29 / 씨알콜렉티브

정해광전 / 2023,7,7-7.19 / 혜화아트센터

최인호전 / 2023,6,16-7.15 / 스페이스 사직

김병주 조각전 / 2023,6,23-7.23 / 아트스페이스 호화

최소리전 / 2023.7,1-2023.7.30 / 아트인동산 은하갤러리

김주희 판화전 / 2023,7,5-7.20 / 충무로갤러리

장은우 페인팅전 / 2023,6,17-7.15 / 오재미동갤러리

남여주전 / 2023,6.28-7.17 / 돈화문갤러리

차영규 한지 아트전 / 2023,7,11-7.24 / 한벽원미술관

이서윤전 / 2023,7.5-8.3 / 갤러리조선

정상화전 / 2023,6.1-7.16 / 갤러리현대

전광수 ‘자연이 품은 마음을 찾아주는’전 / 2023,6.28-7.11 / 가온갤러리

표영실전 / 2023,6.29-7.15 / 갤러리담

최상룡사진전 ‘일상을 꿈꾸며’/ 2023,7.1-7.10 / 갤러리브레송

오독 '뮤지엄'전 / 2023, 7, 6- 7, 19 / KP Gallery

 

​-인사동-

리정 전 / 2023,7.19-7.24 / 인사아트프라자1층

김영미 '동물농장'전 / 2023.6.28.-7.10 / 갤러리인덱스

김철우 ‘길 위에서 그리다’전 / 2023,7.12-7.18 / 인사동 갤러리H

이재권 ‘여우섬, 그 섬에 가고 싶다’전 / 2023,7.5-7.18 / 갤러리쌈지안

김용문도자전 / 2023,7.19-7,25 / 경인미술관 아틀리에

이진이전 / 2023,7.19-8.8 / 갤러리인사1010

백두대간전 ‘다시 길을 가다’ / 2023,7,5-7,11 / 나무화랑

전병삼 설치-회화전 / 2023,6.28-7.17 / 갤러리그림손

김소정전 / 2023,6.15-7.15 / OCI갤러리

복진오 조각전 / 2023,6.28-7.15 / 장은선갤러리

이계원전 / 2023,7.12-8.6 / 통인화랑5층

김재학전 / 2023,6.21-7.22 / 선화랑

정정엽전 ’모욕을 당한 자이며 위대한‘ / 2023,6.21-8.18 / 갤러리밈

 

[스크랩 : 서울아트가이드 20237월호]

독백

표영실/ PYOYOUNGSIL / 表榮實 / painting

2023_0629 2023_0715

 

표영실_걷기_캔버스에 유채_33×24cm_2023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일요일,715_12:00pm~05:00pm

 

갤러리 담

GALLERY DAM

서울 종로구 윤보선길 72(안국동 7-1번지)

Tel. +82.(0)2.738.2745

www.gallerydam.com

@gallerydam_seoul

 

갤러리 담에서는 섬세한 필치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표영실 작가의 전시를 기획하였다. 작가의 작업실 책상의 메모를 보면 작가의 현재의 감정과 이로 인한 일련의 연관성이 유추된다. 망각, 구멍, 불연속, 뒷면, 편린(조각 파편), 그림자, 창백, 진공, 파멸, 불구, 유령의 시간, 껍질 / 부재 애도와 멜랑꼬리 / 고통스러운 마음의 대기상태 / 예술은 감각의 구현을 통해 인간의 정서를 표현하는 것. 내재성의 자유 / 경계를 넘는 사람 / 그물/ 전광판/ 깨진 가로등/ 새벽의 하늘색 / 흔들리고 움직이는 / 불면, 자리, 겨울밤, 밤길, 길을 잃다 이처럼 작가는 순간순간 누구나가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을 하나하나씩 기록하고 그 감정들을 소중하게 이미지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표영실_나의얼굴너의얼굴_종이에 연필, 수채_28×25.5cm_2023

표영실_땅위의 별_캔버스에 유채_38×45.5cm_2023
표영실_먼지와 안개_캔버스에 유채_24×33cm_2023

작가의 글에서도 나타난 바와 같이 뽀족한 노랑은 걱정스런 생각들의 표현으로, 회색은 막막함을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분홍빛이 가는 선으로 표현되어 있다. 덕성여자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졸업한 후 활발한 작업을 해 오고 있는 표영실 작가의 열 일곱 번째 개인전이다. 갤러리 담

 

표영실_뭉게뭉게_종이에 연필, 수채_28×25.5cm_2023
표영실_얼룩_캔버스에 수채_22×27.3cm_2023
표영실_작은방_캔버스에 유채_24×33cm_2023

늦은 밤 새벽녘까지 깨어있는 일상을 반복한다. 유령처럼 희미하게. 어둠을 밝히는 불빛들과 바람의 온도, 작은 소리들과 미세한 떨림. 고요한 시간에만 비로소 존재를 드러내는 모양들. 살갗에 닿은 감각들은 마음 속 깊숙하게 가라앉은 정서들을 들추어내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불안감과 무겁고 어두운 밤의 질감 사이를 오가는 시선은 늘 비슷한 자리에서 위태롭게 서성인다. 그 시선의 끝에서 간신히 만난 뾰족한 노랑. 막막한 회색들. 곧 울것 같은 분홍의 색들은 겹겹의 얼룩이 되어 다시 나에게 말을 건넨다. 표영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