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 올라가다 길에서 송범섭씨를 만났다.




송씨는 만나기만 하면 찍은 사진들 언제 주냐며 독촉이 빗발 같다.
빚쟁이 된 것처럼 만날까 피해 다닐 정도다.




예전에는 어버이날과 추석에 했던 빨래줄 전시로 사진을 주었으나,
그 일을 방해하는 사람으로 접고부터는 사진이 잘 만들어지지 않았다.
빨래줄 전시는 협찬 받아서라도 꼭 해야 할 일이었지만,
이젠 정해진 날자가 없으니, 차일피일 미룰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몇 일전, 재난지원금 받은 게 남아, 사진을 만들어 두었기에 전해줄 수 있었다.




생각난 김에 다른 분도 주어야 할 것 같아, 사진을 챙겨 동네 한 바퀴 돈 것이다.
먼저 노숙자 아지트로 찾아가 유정희씨와 병학이 사진을 전해주었다.
병학이는 사진 둘 때가 없어 유씨가 챙겨두겠단다.




노숙하는 이의 설움이다.
몸 하나 거둘 곳 없는 사람에게 사진이 무슨 소용이랴!




공원에서 만난 이남기씨에게 사진을 주었더니,
고맙다며 음료수 한 잔 마시라고, 천 원짜리 한 장을 준다.
한 푼이라도 남에게 신세지는 걸 싫어하는 성미다,




박성일씨와 박소영씨도 만났는데, 소영씨는 식혜를 주었다. 
다른 사람 주지 말고, 보는 앞에서 마시라며 채근했다.



자기 핸드폰을 열어 이런 저런 사진을 보여주며 속삭였다.
별 일도 아닌 사소한 일을 열심히 설명해가며 수긍해 주길 바랬다.
그 만큼 외롭다는 이야기다.




요즘 공원에서 술 마시는 사람도 많이 줄어 들었다.
무료급식도, 줄 세워 배급 주는 일도 다 끊겼다.
코로나가 빈민들의 생활 환경까지 서서히 바꾸고 있다.



그들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세상 외로움은 깊어만 간다.

사진, 글 / 조문호







 





이남기씨는 올해로 예순 아홉인데, 나보다 네 살 적다.
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술을 좋아해도 점잖게 마신다는 것과 동자동에 들어온지가 20년이 넘은 고참 이란 것 정도다.




지난 2일 ‘새꿈어린이공원’에 나가보니, 공원은 한적했다. 날씨가 추워 다들 방콕하는 것 같았다.

잘 안 가는 다방에 들어갔는데, 그 곳은  ‘동자희망나눔센터’에 있는 찻집이다.

본래 목욕탕 자리를 서울시에서 매입해 쪽방주민 편의시실로 사용한다. 
'서울역쪽방상담소' 사무실과 회의실, 샤워시설을 비롯해 차도 파는데, 쪽방 주민이면 천원에 마실 수 있다.

주민들이 커피 뽑는 다방 마담 역활을 하지만, 싱겁 떨다간 바로 미투다.
난, 자판기 스타일이지만, 여기서도 옛날 다방커피 맛은 볼 수 없다.

괜히 신년이라 천원짜리 폼 한 번 잡아본 것이다.




“아지매~ 달달한 다방 커피 한 잔 말아주이소” 했더니, 대뜸 ‘라떼’면 되겠어요?라고 물어왔다.

라뗀지 로똔지도 모르면서 그냥 달라 했다.

커피 한잔 시켜놓고 그대 오기만 기다리니, 마침 이남기씨가 들어왔다.
이 친구는 커피 마시러 온 게 아니라 화장실 사용하러 왔는데, 차 한 잔 하라며 불러 앉힌 것이다.




콧물이 대롱대롱 매달려, 감기에 좋은 따뜻한 레몬차나 마셨으면 좋으련만, 좋아하지도 않는 커피를 시켰다.
기자근성이 슬슬 발동해, 이남기씨의 살아 온 인생사를 캐묻기 시작했다.



이남기씨는 전라도 나주에서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양친 밑에 태어나,
어렵사리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 때부터 인생의 쓴 맛을 보기 시작했는데, 84년도에 무작정 상경했단다.




이발소에 들어가 머리나 감겨주다, 어쩌다 이발 기술을 배워 밥이나 얻어먹고 살았는데, 
그 곳에서 나와 공사판 노가다로 전전하다 목수 일을 배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상살이는 만만치 않았다. 하루 일당으로 간신히 살아가는 그에게 갑자기 불운이 닥친 것이다.
어느 날 공사판에서 일하다 떨어져 팔목이 부러졌다고 한다.

더 억울한 것은 사고로 보상받은 돈이 고작140만원이란다.
더 이상 일할 처지가 못되어, ‘희망여인숙’에 거주하다 동자동에 들어 와 살게 되었다고 한다.




일찍부터 수급자로 간신히 입에 풀칠하고 살았는데, 초창기의 수급비란 쥐꼬리만 했다.

힘들게 사는 쪽방 살이의 유일한 낙은 술 뿐이었는데, 쪽방살이에 길들고, 술에 길들어 산지가 어언 20여년이 넘어버렸다.
빈민들 사는 게 다 비슷비슷하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아직 총각딱지를 못 떼었다는 것이다.
사내로 태어나 여인네 품속을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불행하냐? 아니, 그건 인간으로 태어나 죄악에 가깝다.




조용조용 신세타령하던 이씨가 갑자기 정치이야기에서 돌변하기 시작했다.
고함을 지르며 얼마나 욕을 해대는지, 찻집에서 쫓겨 나와야했다.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하늘을 찔렀는데, 테러도 마다할 듯 분노했다.
인간적인 노무현 대통령까지 욕하는 걸 보니, 일종의 배신감 같은 것이 작용한 듯 싶었다.
보수정권에서야 기대하지도 않았겠지만, 진보정권이 들어서면 나아질까 나름으로 혼신을 다한 것 같았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을 거쳐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까지 맞았으나, 빈민들 삶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정치하는 놈들은 다 똑같은 인간”이라며 정치에 대한 불신이 증오에 가깝도록 깊어진 것 같다.




쫓겨나와 공원으로 가니, 원종훈씨가 술판을 벌여놓았더라. 막걸리 한 잔에 분노를 다독이는 이남기씨가 안쓰러웠다.
분통 터트리게 된 구체적인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으나, 다시 노발대발 할 것 같아 그만 두었다.



하기야! 이남기씨 삶에 비하면, 나는 잘 살았던 것이다.
좋은 부모 밑에 태어나 남부럽지 않게 공부도 했고, 하고 싶은 것 하며 꼴리는 대로 살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정치나 세상에 대한 불만이 많아 씨팔 조팔하는데, 그야 오죽하겠나?




문재인 대통령과 국회의원들께 간곡하게 부탁드린다.
정부 예산에서 눈곱만큼만 떼어내도 어렵게 사는 사람들 다 보살필 수 있다.
정치도 돈도 모두 사람 생존에 우선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새해부터 바람막이조차 없어 비닐 덮어쓰고 벌벌 떠는 홈리스가 거리에 늘렸다.
제발, 서민들 민생에 신경 좀 써주었으면 고맙겠다.

사진, 글 / 조문호
















사람이 참 간사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덥다고 난리치더니, 하루아침에 춥다며 웃옷을 찾는다.


사실, 쌀쌀해지면, 술 맛 나는 계절 아니던가?
술 생각에 새꿈 공원으로 나갔더니, 여기 저기 술을 마시고 있었다.






구멍가게 강재원씨는 이미 맛이 가버렸더라.
어머니 몰래 소주 몇 병을 빼돌려 놓고 허풍을 떨어댔다.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자락에 강아지도 꼬리를 흔들었다.
이남기씨의 빠진 이빨 사이로 즐거움이 넘쳐 흘렀다.






이홍렬씨는 소주파가 아니라, 주위만 맴돌았다.
내가 막걸리 한 병을 사서 자리를 만드니,
그 때야 한 잔 하시며, 옛이야기를 꺼냈다.
아마 추석명절의 쓸쓸함이 유난히 길어, 그 때가 그리운 것 같았다.






20여 년이 지난 추석 전 날, 공중화장실 청소를 하다 돈뭉치를 주웠다는 것이다.
거금 백만원이나 들어있는 쇼핑빽에 눈이 번쩍 뜨인 것이다.
그 날 청소하는 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아 코가 비틀어지게 마시고,
남은 돈은 명절 보너스 로 나누어 가졌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사람의 심정이야 오죽하겠냐마는, 없는 사람들 적선했으니, 아마 복 받았을 거다.
그래도 혼자 챙기지 않고, 함께 나누었으니 인간적이지 않은가?
신고해 주인을 찾아주는 것이 도리지만, 어찌 혼자 독식하는 야박함에 비할소냐.





지난 해 동자동에서 합동결혼식을 올린 다섯 쌍 중의 두 내외도 나와 있었다.
이기영, 홍홍임씨 내외와 김만귀, 이경희씨 내외는 찰떡궁합이다.
그 날도 두 내외가 짜장면으로 정분을 나누었는데,
김만귀씨 아들 정훈이가 동내재롱 다 부린다. 동자동의 유일한 기쁨조다.






이 날은 ‘구글 보지’로 통하는 유씨도 등장했다.
사실은, 이름보다 별명이 더 잘 기억된다. 옆에서 나누는 이야기도 그랬다.
“꼭다리 옆방이 짹짹이 방이잖아” 이름은 얼른 기억나지 않지만, 별명은 바로 나온다.
날 어떻게 부르는지는 모르지만, 그냥 찍새로 불러다오.






그날의 화제는 어딜 가나 지갑 분실사고 였다.
지난 추석 전 날, 이모씨가 지갑을 분실한 모양인데, 그 일로 뒷말이 많았다.
CCTV에 줏는 사람 모습이 찍혔다며 경찰까지 개입했으나,
아무도 이씨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만큼 동내에서 인심을 잃은 것이다.






이미 술이 취해 있었는데, 인사동에서 술친구들이 날 불러 재꼈다.
인사동‘툇마루’로 자리옮겨 마시느라, 지갑에 만원짜리 한 장 달랑 남겼는데,
그마저 임자가 따로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서울역에서 지하계단을 올라가다 옆방에 사는 최완석씨를 만났는데,
구석에서 노숙자 한 사람이 손을 흔들어댔다.
자세히 보니 “소주 한 병과 김밥 한 줄이 소원”이라던 이상구씨였다.






몇 달 만에 만났는데, 얼굴도 많이 상했지만, 다리를 다쳐 목발을 옆에 두고 있었다.
배가 고프다며 먹을 것을 찾길래, 한 장밖에 남지 않은 지갑을 마저 털어야 했다.
누구에게 구제 금융을 요청하던, 그건 내일 일이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 든 이상구씨의 고마워하는 표정에 내일 걱정까지 사라지더라.






“돈은 돌고 도는 것이 아니던가”


사진,글 / 조문호




페이스북 친구가 된 김길석씨와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내 손이 잛아 나는 반토막만 나왔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