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熱飯)은 더운밥이다. 여기에 잔치 연(宴)자를 덧붙였으니 뜨거운 밥 한 그릇 차려놓고 벌이는 잔치라는 뜻이다. 얼핏 초라한 잔칫상을 비웃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고려 때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면 불시에 집으로 축하객들이 들이닥쳤다. 이들에게 갓 지은 따뜻한 하얀 쌀밥을 대접하는 것이 열반연(熱飯宴)이다. 고려 말 충선왕 때의 학자 이제현이 일찍이 부모를 여읜 조카가 과거에 장원급제했다며 찾아와 절을 올리자 감격해 눈물을 흘리며 열반연 차려줄 부모가 없음을 안타까워했다는 기록도 있다.

장원급제를 축하하러 온 손님에게 야박하게 왜 고작 하얀 쌀밥 한 그릇을 차려냈을까 싶지만 고려 때 쌀밥은 지금처럼 아무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상류층 귀족 내지는 부자들이나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이었다.

게다가 지금도 수석 합격자 집에 일시에 축하 전화가 몰리는 것처럼 예전에도 장원급제 사실이 알려지면 미처 잔치 음식을 준비할 틈도 없이 축하 손님들이 들이닥치기 마련이다. 그러니 이들을 졸지에 대접하기 어려워 그나마 귀하디 귀한 하얀 쌀밥을 지어 대접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축하 손님들이 맨밥을 먹었던 것은 아니다. 실상은 손님이 축하하러 올 때는 빈손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술이나 과일, 아니면 음식을 장만해 왔기 때문에 사실 더운밥 한 그릇만 있으면 충분히 축하잔치가 가능했다.

오늘은 대입 수능일이다. 짧게 보면 1년, 길게는 고등학교 3년 동안 밤잠 제대로 못 자며 갈고닦았던 실력을 발휘하는 날이다. 수험생 모두 원하는 만큼의 좋은 점수를 얻어 열반연을 차릴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한다.

 

윤덕노 / 음식문화평론가

 


가을을 대표하는 우리 음식이 무엇일까? 속담으로 보면 '집 나간 며느리 돌아온다'는 전어가 으뜸일 것 같지만 가을 아욱비교하면 속된 말로 아무 것도 아니다.

'가을 아욱국은 문 닫아 걸어 놓고 먹는다'고 했는데 맛이 좋아 이웃과도 나누어 먹지 않는다는 뜻이지만 이 정도면 전어보다 나을 것도 없다. 하지만 진짜 속내는 '가을 아욱국은 조강지처도 내쫓고 먹는다'는 말에 있다.

조강지처는 양식이 떨어져 술 찌꺼기를 함께 먹으며 가난한 살림을 꾸린 아내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려 오지만 아욱국 앞에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소심하게 며느리 친정 간 사이에 눈치 보며 몰래 먹는 전어와 조강지처마저 내치고 혼자서 먹겠다는 아욱국은 처음부터 비교 대상이 아니다. 그러니 아욱국을 아무한테나 줄 수 없다.

'가을 아욱국은 막내 사위에게만 준다'고 했다. 씨암탉은 사위 모두에게 먹이지만 아욱국은 다르다.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이 바로 막내딸이다. 조강지처마저도 쫓아내고 몰래 먹는 아욱국이지만 '쥐면 꺼질 새라 불면 날아갈 새라' 애지중지 키운 막내딸을 데려 간 막내사위만큼은 예외다. 특별히 아욱국을 나누어 먹을 수 있다.

가을 아욱이 얼마나 좋은지 우리의 속담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가을 아욱으로 국 끓여 삼년을 먹으면 외짝 문으로는 들어가지를 못한다'.

지금은 찾아보기도 힘든 시골 초가집의 한 쪽 자리 문이 외짝 문이다. 얼마나 좋은지 삼년을 먹으면 좁은 문으로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살이 찐다는 말이니 요즘 세상에서야 기겁을 할 일이지만, 어쨌든 가을 아욱에 그만큼 영양이 풍부하다는 사실을 강조한 말이다.

 

윤덕노/음식문화평론가

화전민이 먹던 구황음식서 참살이식품으로


 


사람 팔자 모르는 것처럼 음식 팔자도 알 수 없다. 요즘 거리음식의 대부분은 옛날 지배층이 먹던 고급음식이었다. 반면 예전에는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할 수 없이 먹던 음식들이 지금은 참살이식품이라는 이름으로 각광을 받기도 한다. 대표적인 음식 중 하나가 곤드레밥이다.

곤드레밥은 강원도 산골 오지마을에서 곡식이 떨어진 화전민들이 굶주림을 면하려고 먹던 음식이다. 쌀은 진작 떨어진 데다 감자 옥수수마저 바닥나면 산나물인 곤드레를 따다 밥에 넣어 양을 부풀려 먹었다. 민요인 정선아리랑에 당시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한치 뒷산의 곤드레 딱죽이 임의 맛만 같다면/올 같은 흉년에도 봄 살아나지/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게.’

한치 뒷산은 강원 정선군 동면에 있는 산 이름이고 곤드레, 딱죽이는 산나물 이름이다. 거친 산나물이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과 같아서 맛있게만 먹는다면 흉년에도 굶어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지금은 곤드레밥이 별미고 참살이식품으로 인기가 높지만 예전 산골사람들에게는 춘궁기를 굶지 않고 살아 넘길 수 있을지를 좌우하는 생명줄이었던 것이다.

지금의 곤드레밥은 쌀밥에다 곤드레나물을 넣은 후 양념장 등에 비벼 먹는다. 하지만 옛날 산골짜기 사람들이 춘궁기에 먹었던 진짜 곤드레밥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고 한다.

밥이 아니라 주로 곤드레나물에 콩나물을 잘게 잘라 섞어서 죽을 쑤어 먹었다. 그나마 곤드레나물마저 캐지 못하면 굶거나 다른 풀을 뜯어다 먹었는데 풀죽만 먹다 보니 부황이 들어 얼굴이 퉁퉁 붓는 등 고생을 했다. 상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힘든 삶을 살아야 했던 화전민들이 먹었던 처절한 음식이 바로 곤드레밥이다.

곤드레밥 못지않은 음식이 또 있으니 도토리밥이다. 옛날 산간마을에 살던 사람들은 가을이면 도토리를 따서 저장해 두었다가 겨울에 말린 도토리를 꺼내어 가루로 빻아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요즘 시각으로는 도토리로 묵을 만들면 맛도 좋고 허기도 메울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할 수 있겠지만 배고픈 사람이 들으면 빵이 없으니 과자를 먹으라는 것과 비슷한 흰소리가 된다. 도토리를 빻아 묵을 만들면 양이 늘지 않고 오히려 줄어든다. 그러니 긴긴 겨울과 춘궁기 배고픔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면 도토리를 방아에 찧어 가루로 만든 후 콩이나 옥수수 등과 섞어서 도토리밥을 지으면 양도 푸짐한 것이 먹으면 든든해서 충분히 한 끼 식사를 대신할 수 있었다.

없이 살던 시절에는 이렇게 밥에다 다양한 나물이나 채소를 섞은 나물밥을 먹었다. 실제 조선시대 문헌을 보면 나물을 넣어 짓는 밥의 종류가 적지 않다. 지금은 잘 알려진 곤드레밥을 비롯해 콩나물밥 시래기밥 김치밥이 있고 무밥에 쑥밥도 있다. 영역을 넓혀 보면 채소나 나물뿐만 아니라 감자밥 고구마밥과 도토리밥에 칡밥도 있다. 절에서는 감밥과 감잎밥도 지어 먹었다.

각종 나물이나 채소, 열매를 넣고 짓는 이런 밥은 원래는 모자란 곡식을 대신해 양을 불리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영양이 넘쳐 다이어트를 고민해야 하는 현대에는 대부분 별미가 됐으니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윤덕노<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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