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날만 기다리는 사람들, 한 잔 술로 시름 달랜다.



저승사자처럼 달려오는 구급차에 긴 한숨 쓸어내린다.




그들은 꿈도 희망도 버린지 오래다.
희망이란 한낱 말 장난으로 여긴다.



저주받은 삶은 죽음이 축복일 뿐이다.




죽는 것이 편하지만, 그처럼 어려운 것도 없다.



죽지 못해 사는 것과 살기 위해 죽지 못하는 것은 뭐가 다른가?




틈틈이 ‘용산소방서’에서 나와 보살펴준다.
죽는 사람 데려가는 일만 아니라 뜨거운 공원을 시원하게 적셔 준다.
맥 놓은 빈민들 혈압도 재 준다.




그러나 찜통 같은 쪽방은 방치한다.
움직이면 살고 움직이지 않으면 죽는다.




죽으면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더러운 꼴도 안 보겠지만,
이를 부득부득 갈며 살아야 한다.




나쁜 놈들이 잘사는 빈부의 악순환은 끝내야하기 때문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다.
또 누군가 북망산천 가는구나 싶었다.
구급차가 ‘해 뜨는 집’ 앞에 세워, 누군지 걱정되었다.
그 집은 잘 아는 사람이 여럿 살기 때문이다.




쪽방촌에 사람 죽는 것이 다반사기는 하지만,
좋은 친구들이 가면 살아 남은 사람이 외롭다.
똑 같은 동네사람이라도 잘 아느냐 덜 아느냐에 따라 다르니,
인간이란 게 참 몰인정하고 간사하기 그지없다.




물어보니, 이제 막 팔순에 접어든 김씨 노인이란다.
이 분은 이웃과 소통 없이 혼 술을 즐기는 분이라 다들 잘 모른다.
옆 방의 김병택씨 이야기 들어보니, 고개부터 절래절래 흔들었다.
술 취해 넘어지는 “쿵”하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는 것이다.




이 날도 "쿵" 소리가 나서 문을 열어보니, 의식이 없더라는 것이다.
소방서원들이 심페소생술 한다고 난리쳤으나, 힘들 것 같았다.
환자가 실려 간 후 방문을 열어보니, 기가 막혔다.
아마 사는 것을 포기한 것 같은데, 자살이나 마찬가지였다.



방에 음식이라고는 한 톨 없고, 빈 막걸리 병뿐이었다.
선풍기도 없는 방에서 술만 마셨으니 천하장사인들 견딜 수 있겠나?
빈 속에 술만 마신 걸 보니, 수면제 대신 술을 택한 것 같았다.
다들 목숨을 중히 여기지 않는다고 나무라겠으나, 죽는 것이 편한지도 모른다.




팔십이면 살만큼 살았지만, 더 이상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나?
떠나고 나니 배웅 나온 이웃들도 아무 일 없다는 듯 하나둘 사라졌다.
애달피 울어주는 사람 하나 없는 가운데, 쓸쓸하게 막내린 것이다.
부디 저 세상에서라도 귀신답게 사시기 바랍니다.

사진, 글 / 조문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