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헌씨가 위령무를 추고 있다.


연고 없이 세상 떠난 이를 추모하는 ‘홈리스 추모제’가 지난 동짓 날, 서울역광장에서 열렸다.


동자동 조인형씨가 추모제단에 국화를 헌화하고 있다.

정부에서 사망자 전수조사에 손을 놓고 있어, 빈곤 활동가들이 집계한 올 해 사망자만 166명이란다.
실제론 서울에서만 300명 이상이 죽어가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추모제단


동자동 쪽방에 거주한 열여덟 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영정사진도 남기지 못한 채, 이름만 남겼다.


추모객들

거리에서 죽은 노숙자는 시신이라도 제 때 수습되었지만,
방안에서 외롭게 죽어 간 사람은 시신 섞는 악취로 알게 되었다.


동자동 송병섭씨가 연영철씨에 대한 추모글을 읽고 있다.

동자동에선 가파른 계단에 굴러 떨어져 죽은 두 사람 외에는 대부분 술 때문에 죽었다.

독약인줄 알지만 이승에 무슨 미련이 있겠는가?


동자동 조인형씨가 잘가라고 손을 흔들고 있다.

서둘러 떠난 그들을 기억하러 서울역광장에서 열리는 추모제에 갔다.
무대 앞 현수막엔 올해 죽은 홈리스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꼼꼼이 살펴보니, 아는 분도 여럿 있었다.
더구나 연영철씨는 옆방에 살던 후배가 아닌가.
4층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떨어져 척추를 다쳐 전신이 마비되었는데,
돈이 없어 수술시기를 놓쳐 병원에서 고생만하다 올 여름 세상을 떠났다.


연영철씨가 입원한 중앙병원에 병문안 간 정선덕씨 2018. 4

병문안은 여러차례 갔지만, 서둘러 화장해 장례를 지켜보지 못했다.
살아 생전 더 따뜻하게 손잡아 주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방문 앞에 앉은 연영철씨. 2017. 9

요리사 출신이라며, 언제가 맛있는 음식 한 번 만들어 대접하겠다는 말을 여려차례 했지만,

재료도 주방도 없는 쪽방에서 뭘 한단 말인가?


방에서 식사하는 연영철씨. 2018, 7

유달리 연예인들과 미녀들을 좋아해, 비좁은 방안에는 캘린더의 미녀사진을 덕지덕지 붙여 놓았다.
이제 부질없는 미련일랑 다 버리고 홀연히 먼길 떠나셨네요.


사진가 노은향씨가 보낸 내의를 전달받는 연영철씨. 2017.12


당신이 좋아하는 가수 정태춘씨가 불러 준 ‘서울역 이씨’는 잘 들었는가요?
부디 모든 것 잊고 편히 잠드소서!


가수 정태춘씨가 홈리스추모제에서 '서울역 이씨'를 부르고 있다.


그 옆에는 지난 달 심장마비로 죽은 정용성씨의 영정사진도 있었다.
착하기 그지없는 녀석인데,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다.
어미는 어쩌라고 혼자 가버렸는가?



처음 만났을 땐, 사진만 찍으면 돈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몇 번은 주었으나, 사진인들이 길들인 버릇 같았다.
그 이후부터 있어도 못 준다고 했더니, 더 이상 손 내밀지 않았다.


방안에 앉은 정용성씨. 2018, 9

항상 말은 없지만 잔정이 많아 만나기만 하면 배시시 웃었다.
술자리를 같이 하면 안주도 먹으라며 사과조각을 쥐어주기도 했다.
어머니와 술친구가 되어 어지간히 술에 쩔어 살았는데,
옥탑방으로 오르다 수 없이 넘어져 상처 아물 날이 없었다.


아래 층에 사는 정재헌씨가 살아 온 이야기를 나누다 설움에 북받쳐 울고 있다.

좌로부터 황춘화. 정용성, 정재헌씨 2018, 10


그런데 이 녀석은 나이가 아들 햇님이 또래인데, 날더러 늘상 행님이라 부른다.
하기야! 어미를 옆에 두고, 아버지라 부를 순 없지 않은가?


정용성씨 어머니 황춘화씨, 2019, 5


젊은 나이에 장가는 커녕 세상 맛도 모르고 갔으니, 더 슬픈 것이다.
갑작스럽게 죽어 장례를 치루고서야 알게 되었다.
빈소에서 아들 죽음이 실감나지 않았는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뒤늦게 만나서는 아들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을 바가지로 쏟아냈다.


2017년 11월 동자동 추석잔치에서,,,

운다고 떠난 자식이 돌아 올 수 있겠냐마는 얼마나 가슴이 미어터지겠는가?
죽은 자식보다 황춘화씨가 더 걱정이었다.
이제 옥탑방에서 살지 말고 낮은 층의 작은 방으로 옮기라고 부탁도 했다.




그런데, 죽은지도 몰랐던 전경희씨의 영정사진도 있었다.
한 동안 보이지 않아 잊었는데, 올 2월 심장마비로 죽었단다.
2년 전 대부도의 ‘아름다운 동행“에 함께 한 적도 있었다.
식당 벽에 붙어 있는 술 광고 속의 미녀를 보며 “이쁜 여자 보니 춘정이 동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더니,
”젊을 때 바람께나 피웠겠다“며 꼬리웃음 치던 모습이 눈에 선한다.


대부도 기념관에서 김정심씨와 기념사진 찍는 전경희씨, 2017.11

그 외 신기식, 이삼석, 최상섭씨를 제외하고는 동자동 살았지만, 모두 낯설더라.
평소 바깥 출입은 않고 방안에서만 살았다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좌우지간, 모르는 분을 포함하여 비명에 간 166분의 이름 앞에 고개 숙였다.


홈리스 야학 합창단이 '떠나가는 배'를 부르고 있다.


부디 아무런 원망말고, 그냥 팔자가 사나워 먼저 떠난다고 여기세요.

이 더러운 세상, 더 살아 무슨 영광을 보겠습니까?

고생스런 이승을 마무리하였으니, 저승에선 잘 산다는 믿음 하나로 위안 삼으시길...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조문호합장



추모객들이 서울역 주변을 행진하고 있다.













































지난 번 정선에서 돌아와 동자동에 갔으나
옆방에 사는 연영철씨가 보이지 않았다.
물어보니, 계단에서 넘어져 입원한지 보름 쯤 되었단다.
목뼈가 부러지는 등 다친 곳이 많아 중태라고 했다.




건물 계단이 가파른데다 잡을 곳이 없어 늘 조심스런 곳인데,
결국 사고를 내고 말았다.

다들 비슷 비슷한 쪽방촌의 계단에 손 잡는 줄이라도 달아주면 좋을텐데,

'서울역 쪽방상담소'도 '동자동 사랑방조합'도 아무도 관심두지 않는다.




걱정되어 병문안 간다는 게 일주일이 지나버렸다.
지난3일에야 정선덕씨와 함께 입원한 ‘보라메’병원을 찾아 갔다.




정해진 병실에 들렸더니, 중환자실로 옮겼다는 것이다.
갑자기 혈압이 내려가,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꼼짝 못하고 눈만 말뚱거렸으나, 날 보더니 빙그레 웃었다.
삶에 애착이 없으니, 죽음도 두렵지 않은 듯 했다.




그는 환갑이 넘도록 장가도 못간 홀 애비다.
사람이 그리운지, 그의 방은 유달리 야한 사진이 많이 붙어있다.
혈육이라고는 누님 한분 계시지만, 소식 끊긴지가 오래란다.




쪽방 사람들은 입원하면 뒷바라지 해줄 사람이 가장 큰 문제다.
간병인이란 엄두도 못 내지만, 가끔은 심부름 할 사람이 필요하다.
혈육도 돈도 지식도,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무소유의 자부심도
이지경 되면 죽는 것이 상책이다.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할 셋방의 달세라도 아끼려 모든 짐을 포기했다.
기초생활 수급 통장을 아래층의 송범섭씨에게 맡기며,
방에 있는 짐은 모두 버려달라고 부탁했단다.




냉장고와 티브이만 고물상에 넘겨주고, 모든 짐은 쓰레기가 되었다.
사람이 죽었을 때나 볼 수 있는 방 정리가 토요일에 이루어졌는데,
그 작은 방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나오는지 귀가 막혔다.




과연 이 세상에 신이란 게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넘어졌을 때, 그냥 편안하게 눈감게 해주지, 왜 끝까지 고통을 주나?
평생을 사람답게 한 번 살아보지도 못했는데...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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