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일을 유달리 싫어한다.

나만을 위한 날이 부담스러워 어릴 적부터 생일은 어머니를 위한 날이라 우겼다.

정영신씨를 만나면서 피곤할 정도로 생일을 챙겨주기 시작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음력생일이 양력생일로 바뀌었고

미역국 먹는 일이 유일한 생일치레가 되어버렸다.

 

모르고 지나치기를 원하나, 페이스 북을 시작하며 더 큰 곤욕을 치룬다.

생일만 되면 페북에서 나팔을 불어대니, 잊어버리기는커녕

잘 모르는 페친까지 생일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날려댄다.

사실, 나이가 들수록 생일을 맞는 것이 부담스럽다.

 

지난 생일은 수해 때문에 정선 만지산에 갇혀있었는데, 늦은 오후에야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조찬 약속이 저녁으로 바뀌기는 했으나

아들 내외와 손녀 하랑이까지 합세하여 조촐한 생일파티를 열어주었다.

 

그런데, 생일 지난 지가 일주일도 더 되었는데,.

지난 13일 정오 쯤 인사동 유목민에서 생일잔치를 갖는다는 기별을 보내왔다.

생일 핑계로 술 한 잔 하자는 전활철씨의 제안이라 안 갈 수도 없었다.

 

그 날은 전활철씨를 비롯하여 김상현, 김수길, 유진오, 안원규, 정영신씨 등

여러 명이 모였는데, 백숙에다 장어까지 구워 음식이 푸짐했다.

김수길씨는 생일케익을 사왔고, 유진오씨는 초가을에 입을 티스쳐를 사왔다,

마침 날씨까지 쌀쌀해 선물을 그 자리에서 입을 수 있어 더 고마웠다.

모처럼 유목민에 모인 자리에서 엊그제 있었던 기가 막힌 뉴스를 풀어놓았다.

 

정영신씨의 전언에 의하면 지난 금요일 마약수사대에서 전화가 왔더라는 것이다.

인사동 사람들블로그에 대마에 대한 글과 사진이 있다며 신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짐작이 가는 누군가가 자기 요구에 씨알이 먹히지 않으니, 경찰서에 신고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양아치보다 못한 인간과 긴 세월을 함께 한 것이 너무 분했다.

,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아, 정영신씨 전화 번호를 알으켜 준것도 그의 제보였다.

 

나야 대마합법화를 위해 발벗고 나선 입장이라 두려울 게 없으나

전화를 받은 정영신씨는 많이 놀란 것 같았다.

 

경찰에서도 블로그를 꼼꼼히 살펴보아 나를 훤히 알더라고 한다.

동자동 쪽방에도 찾아왔다지만, 길이 엇갈려 만나지 못한 것이다.

 

직접 대면했더라면 교도소에 갈 지언 정, 개인 일기를 내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겁 먹은 정영신씨가 그들이 지적한 사진과 글을 모두 지워버렸다.

그런데, 정영신씨가 블로그 비밀번호는 어떻게 알았을까?

바로 비밀번호를 바꾸어 버렸다.

 

법이 잘 못 되었지, 올린 내용이 틀린 말은 아니잖은가?

애지중지 농사지은 걸 흔적도 없이 도둑질해 가는 놈이 없나,

자기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고 경찰서에 신고하는 비정한 세상을 만드는

 모든 것들이 대마를 합법화하지 않아 생긴 일이다.

약초가 마약으로 둔갑되는 잘못된 법은 하루속히 고쳐져야 한다.

 

몇년 전에는 환경을 훼손한 엉터리 사진가를 탓했다가

명예훼손으로 고소 당해 감방에서 벌금 대신 지낸 적도 있었다.

교도소 생활을 해보니, 쪽방에서 사는 것 보다는 훨씬 편하더라.

끼니 거정할 것도 없는데다 술과 담배를 할 수 없으니, 건강도 좋아졌다.

더구나 코로나 때문에 독방에 넣어주어 성찰하는 시간이었다.

 

주변에 있는 지인들은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을 것이다.

블로그에 올리는 직설적인 문제점 지적들은 친분관계를 따지지 않으니,

또 무슨 일이 터질까 항상 마음 조아리며 지낸단다.

 

그래서 생일 축하하는 건배사를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 이제 사고 그만 쳐요.”라고 외친 것이다.

 

"그래! 미안하다.

나이가 일흔이 넘도록 철이 안 들어 몸이 너무 가벼운 걸 어쩌랴!"

 

유진오씨는 생일 축하곡을 봄날은 간다로 도전장을 냈다.

내 십팔번이지만, 유진오씨의 새로운 버전에 손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김상현씨까지 그 노래를 불러 분위기가 착 가라앉아 버렸다.

 

, 봄바람이란 노랫말만 들어도 왜 이리 슬퍼질까?.

노래가 슬픈 것인지, 사는 게 슬픈지 모르겠다.

 

술이 취해 일어났더니, 곰장어 덕인지 거시기가 구물구물 한다.

약발 하나는 정말 죽인다.

그렇지만, 더 이상의 생일은 맞고 싶지 않다.

 

사진 :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큰 일 났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인사동으로 나오라는데, 부르는 사람이 거절 못할 사람이다.

낯에는 송추에서 밤에는 응암동에서 퍼 마신 터라 힘들었고, 술 취해 자다 받은 전화라 더 황당했다.

 





죽기보다 일어나기 싫었으나, 술 취해 혼자 갈 수 없다는 어명을 어찌 거역할 수 있겠는가?

부랴부랴 인사동으로 나갔으나, ‘유목민에는 없었다.

전활철, 박혜영, 장경호, 안원규씨가 있었으나, 다들 취해 있었다.





박혜영씨는 사진 찍어 달라하고, 장경호씨는 욕지껄이로 시비부터 걸었다.

전활철씨가 "형!"하며 반기니까, “어떤 놈은 좋아하고 어떤 놈은 싫어하냐?”

전활철씨 더러 씹할 놈이라는 등 쌍욕을 해댔다.

너 그렇게 싸가지 없이 지껄이고 살아남은 게 용하다 말을 남기고, 정영신씨 찾으러 큰 길로 나갔다.






전화를 걸었으나, 불통이라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인사동 거리엔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는데, 공휴일의 인사동이라 그런지,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이토록 인적 없는 인사동은 그리 흔치 않다. 가보지도 못한 북한의 밤이나, 아니면 난리 난 것 같았다.






다시 벽치기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니, 좀 전에 없었던 낮 익은 사람이 보였다.

화가 한상진씨와 미술평론가 황정수씨가 와 있어, 반갑게 인사 나누었다.

유목민에 들어가보니, 그 때야 정영신씨가 와 있었다.





저런 인간하고 왜 살아? 버리고 나랑 연애나 하자는 말을 장경호가 정영신씨께 지껄였다.

남의 말이나 엿듣는 것 같아 못들은 척 참았으나, 들어 가 밟아 죽여 버리고 싶었다.

말이면 다 말이냐? 선배가 아니라 친구라도 그렇게 말하지는 못한다.





그런데 황정수씨 더러 한 번도 본 적 없는 부산의 이광수교수 욕은 왜 해댈까?

나와 가깝다는 이유일까? 아니면 이런 사람도 안다는 가오 세우려 그럴까?

여지 것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고 피하는 게 불쌍해 아껴주었는데,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이 어디 있냐?






앞으로 그 인간이 다니는 술집은 절대 가지 않을 것이며,

그를 부추기거나, 술 권하는 사람까지 안 보기로 작정했다.



    


정영신씨를 데리고 나왔는데, 마치 지옥을 벗어난 것 같았다.

이제 인사동마저 징그러워진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11일, 인사동에서 술 한잔하자는 조준영시인의 전화를 받았다.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인사동이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하나의 의식 같은 모임이다.






모이기로 한 ‘유목민’으로 가다 ‘갤러리 이즈’ 앞에서 아르바이트하는 Lucy양을 만났다.
언제나 쉴 틈 없이 초상화를 그리는 그녀지만, 마침 혼자 있었다.
모처럼 이런 저런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았다.






홍익대 3학년인데, 학비 마련하러 인사동에서 일 한다는 것이다.
한 장 그리는데 팔천 원씩 받지만, 그리는 량이 많아 수입은 짭짤하단다.
돌콩 같은 조그만 녀석이 참 기특했다.






그래서 나를 그려보라며 Lucy양의 모델이 되어 주었고,
Lucy양은 나의 사진모델이 되었다.
얼굴 특징을 잡아내기 위해 연신 나를 올려다보는 그녀의 눈이 참 예뻤다.
낯선 소녀를 이토록 가까이에서 쳐다볼 기회가 어디 있겠는가?
잠시 소녀의 미모에 넋을 놓고 있는데,
‘유목민’으로 가던 장경호씨와 안원규씨에게 덜미 잡힌 것이다.






초상화를 그리는 시간은 십분도 채 걸리지 않았지만,
내 꼬라지가 하도 지랄같이 생겨서인지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완성된 초상화를 받아보니 너무 미화시켜 놓았더라.
대개 예쁘거나 근사한 자신의 모습을 원하겠지만, 대 실망이었다.




 


이가 빠지면 빠진 데로 주름살이 있으면 있는 데로 리얼하게 그려야 하는데,
닮은 것이라고는 안경테와 콧수염뿐이었다.
주변에 그려 넣은 색이나 카메라도 산만하게 느껴졌다.
거리에서 돈은 벌지 모르겠으나, 본인 작업에는 도움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목민’으로 자리를 옮겼더니, 여러 사람이 모여 있었다.
조준영씨를 비롯하여 김상현, 이한성, 전강호, 장경호, 안원규씨가 먼저 와 있었고,
뒤늦게는 공윤희씨가 나타났다. 번개 팅도 아닌데 참석률이 저조했다.






더욱 김빠지게 하는 것은 분위기를 정화시키는 여인이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자래야 기껏 연극하는 이명희씨와 사진하는 정영신씨 정도겠지만,
그래도 구색은 맞추어야 하지 않겠는가?






마침 구석자리에 사진하는 분들이 여럿 와 있었다.
한기현씨가 두 차례나 인사하며 언질 주었건만, 이야기하느라 가보지 못했다.
아마 그날 희수갤러리에서 열린 박경태씨의 ‘마주한 기억’ 전시를 본 후
‘유목민’에서 한 잔 하는 것 같았다.






담배 피우러 나갔다 들어오니, 다들 나가려고 술값을 계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행 중 한 분이 한옥란교수를 닮아 깜짝 놀랐다.
자세히 보니 한참 젊은 미녀였는데,

뒤늦게 페친 신청한 이름을 보니 노미경씨였고, 안명현씨도 있었다.
다들 헤어지기 아쉬워 부랴부랴 기념사진을 찍었지만, 송구스러웠다.
다음 만날 기회 있으면 꼭 술 한 잔 올리리다.






술이 얼큰해지니 갑자기 졸리기 시작했다. 나만 조는 것이 아니라 장경호씨도 졸았다.
지난 밤 너무 더워 잠을 못이루어, 둘 다 졸음이 몰려 온 것이다.
먼저 가 쉬라는 조준영씨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줄행랑쳤다.
같은 버스를 탄 장경호씨와 번갈아 졸기 시작했으나, 다행히 내릴 곳을 놓치지는 않았다.






구월 모임에는 많이 불러 모아 좀 재미있게 놀아 봅시다.

그리고 모임의 이름이나 인사동에서 해야 할 일을 의논하는 등 모임의 틀도 짭시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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