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봉현의 느낌이 있는 ‘新 풍물기행’

 

 

그래픽=송재우 기자

                                   ▲ 서울 종로구 삼청동 길은 예스러움을 간직한 한옥과 현대적인 분위기의 건물들이 어우러져 독특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어떤 이는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했다. 외국의, 특히 유럽 쪽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며 들었던 생각이 세상은 넓고 볼거리는 참 많다는 것이었다. 정말 아름답고 멋진 거리들이 많았다. 나는 파리나 런던, 뉴욕 같은 너무도 크고 유명한 도시들에는 그리 큰 매력을 못 느끼는 것 같다. 그보다는 약간 작지만 옛것들이 더 많이 살아 숨쉬는 그런 곳들이 더 좋았다. 그래서 큰 도시보다 조금은 작은, 그리고 개발이 좀 느리게 진행된 유럽의 중소도시나 시골 풍경들이 나에게는 훨씬 더 매력적이었다.

체코의 프라하 카를교 부근의 카페골목, 그리스 미코노 섬의 미로 같은 뒷골목들, 독일의 브레멘이나 로덴버그의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골목 풍경, 리투아니아 카우나스의 옛 거리, 루마니아의 히기소하라나 브라쇼프 같은 지방도시의 골목들…. 하나씩 꼽기 힘들 만큼 많은 곳들의 아름답고 낭만적인 풍경들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벅찼다. 그런 곳들은 뭔가 자기들만의 독특한 것들을 품고 있어서 뭐라고 말로 설명하기 힘든 색다른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 아름다운 거리를 걸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왜 그런 멋진 곳들을 찾기 힘들까 하는 생각들을 막연히 해보곤 했었다. 서울 대학가와 강남 등의 유명 거리를 가 보면 너무나 소란스럽고 북적거려 은근히 마음을 들뜨게 하는 낭만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뭔가 가슴에 스미는 그런 아련한 느낌 같은 건 없었다.

그러다 오랜만에 가보게 된 삼청동 길.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펼쳐지는 독특한 거리 풍경에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예스러움을 간직한 한옥 건물과 예쁘고 현대적인 분위기의 건물들이 어우러져 멋진 장면과 색다른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골목 안팎과 언덕배기에 질서가 있는 듯 없는 듯 섞인 다양한 분위기의 가게와 카페, 음식점들, 그리고 그 길을 걷고 있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독특한 매력을 풍긴다. 아무데나 카메라를 들이대도 멋진 작품사진이 될 것 같은 분위기에 취해, 이 골목 저 골목 거닐다보면 언제부터 이런 보물 같은 거리가 생겨났는지 신기한 생각이 든다.

가게 안의 물건 하나하나, 음식점의 메뉴 하나하나가 깔끔하고 정갈해 보여 주인의 세심한 손길과 정성이 느껴진다. 아, 우리에게는 없는 듯해 늘 아쉬웠던 그런 거리가 이미 여기 있었구나!

한동안 못 와본 사이에,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이곳은 벌써 아주 멋진 거리가 되어 있었고 계속 더 아름답게 진화 중인 것을 여기저기서 감지할 수 있다. 최첨단 디지털이 관통하는 서울 안에 이런 아날로그적 감성이 살아 숨쉬는 곳. 도심 한가운데서도 청량한 기운을 간직하고 있는 이곳이 바로 삼청동 길인 것이다.

먼 옛날 나의 대학시절, 삼청동은 그쪽 버스 종점 오지로, 여름방학 때 친구들과 큰 맘 먹고 가서 계곡에 들어가 발 담그고 놀다 왔던 기억이 있는 정도의 곳이었다. 언젠가부터 북촌 한옥마을이 매스컴에 오르내리기 시작했고 점점 더 관심을 끌고 있지만 삼청동과 직접 연결시켜 생각하진 않았었는데 삼청동이 이 북촌에 속하고 그 끝자락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행정동으로서 삼청동은 삼청동, 팔판동, 안국동, 소격동, 화동, 사간동, 송현동 등 여러 동을 아우르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언급하는 삼청동 길은 작은 의미의 삼청동을 말한다. 삼청동의 지명이 도교의 삼청전이 이곳에 소재한 데 유래하지만 산이 맑고 물이 맑아서 사람들의 인심 또한 맑고 좋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고 보니 하늘도 맑고 길 너머로 보이는 북악산 숲도 맑고 코끝을 스치는 바람마저 상쾌하다. 길가에 들어선 건물들, 골목길을 걷는 사람들도 모두 맑아 보이고, 그 속에 함께 섞여 걷고 있는 나 또한 맑아지는 느낌이다.

이곳 삼청동 길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쑥 지나가면 한 시간 정도면 걸어 지나갈 거리지만 구석구석 보물처럼 감춰진 가게에서 쇼핑도 하고, 차나 커피 맛도 보고, 배고프면 양식이건 한식이건 입맛에 맞는 맛집을 찾아 들어가 즐기다 보면 한나절이 훌쩍 지나가고 만다. 또 도시생활에 지친 머리를 식히기에 딱 좋은 삼청공원의 맑은 숲이 여기에 있다. 북악산에 이어진 산 속의 공원인 이곳은 수백년 된 소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이곳 솔향이 지친 영혼에 좋은 휴식을 줄 듯 싶다.

이 길은 주변으로 인사동 쪽에서 정독도서관 쪽, 사간동·소격동 쪽 인근에 갤러리가 밀집돼 있어 예술작품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광화문, 경복궁이 바로 인근이니 친구들 또는 연인들이 한가한 시간에 고궁 산책이나 예술품 감상을 하고 이곳을 찾아들어 맛있는 것도 먹고 구경도 한다. 쇼핑, 외식, 레저를 함께 즐기며 추억거리를 만들어줄 수 있는 도시 안 복합 문화공간, 휴식공간으로 일품이다. 삼청동 길의 메인 도로변은 말할 것도 없고 뒷골목 여기저기 숨어있는 옷가게, 카페, 식당들이 저마다의 독특한 외모와 개성 있는 상품, 메뉴로 손님을 맞고 있어 어느 몇 군데를 가보고 삼청동을 다 보고 온 것처럼 말하는 건 무리일 것이다. 그래서 삼청동은 어느 한 곳을 정하고 가보는 것보다는 삼청동, 삼청동 길 자체를 느끼며 여기저기 숨겨진, 마음에 드는 곳들을 천천히 꼼꼼하게 살펴보는 게 더 즐거울 듯싶다.

삼청동 길은 처음에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작품 활동을 하면서 생성됐다. 하지만 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북적대면서 비즈니스화 되기 시작했다. 고도의 상업자본이 이곳을 잠식해 들어오면서 원래 추억이 깃들었던 이곳만의 독특한 모습들이 처음과 달리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들도 나온다.


커다란 규모와 화려한 외형만을 자랑하는 건물들이 거리를 점령해 버리면 이곳도 도심의 다른 삭막한 공간과 크게 다를 게 없어져 이곳만이 갖는 매력이 급격히 떨어지게 될 것이고, 결국에는 찾는 사람들도 점점 줄어들게 될 것이다. 삼청동 길이 멋진 추억과 낭만의 거리로 오래도록 보존되게 하려면 이곳을 지키는 문화, 예술가들이 어떤 이유로든 여길 뜨고 싶어하지 않게 배려하는 방안이 지속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젠 이런 멋진 거리가 있어, 문득 생각나면 이곳을 찾아 거닐고 한가로이 거리 풍경을 감상하며 머리를 식힐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이제 나는 외국인 친구들이 방문하면 맨 처음 데려가 보여주는 곳이 이곳이 되었다. 옛것과 초현대식이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절묘하게 조화된 아름다운 이 거리가 오래 간직되기를 기원해본다.

[스크랩/ 문화일보] 박봉현 : 소설 ‘카투사’ 저자

십 년 만에 다시 삼청동에 이르니
푸르른 숲 사이 한 줄기 물소리
산천은 옛모습 그대로지만
풍류는 지난 날 그 정 그대로 아닌 것을


十年今復到三淸
萬綠林間一水聲
可奈山川依舊觀
風流非復昔時情

-장지연(張志淵),「삼청동(三淸洞)」,『장지연전집』

 

 

미상, 옥호정도, 19세기, 크기 미상, 개인 소장


황산(黃山) 김유근(金逌根, 1785-1840)은 삼청동 133-1번지 일대에 널따란 집터를 마련하고 집을 지었다. 이곳은 종로구 삼청동 백련봉(白蓮峯)아래 삼청공원 길 건너편 백악산 동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누가 그렸는지 모르지만 <옥호정도(玉壺亭圖)>를 보면 상단에 백련암이 있고 하단 오른쪽에 냇물이 흐르는데 그 지형으로 미루어 삼청동천(三淸洞川)이다. 삼청동천은 백악산 동쪽 기슭에서 시작해 금융연수원 앞으로 해서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동십자각을 지나 미국대사관과 종로구청 사이를 지나 교보문고 뒷길을 빠져 청계천으로 흘러드는 기나긴 하천이다. 지금 삼청동천은 시멘트로 뒤덮인 채 길 아래 굴이 되어버린 복개천이어서 겉으론 흔적조차 없다.

삼청동 일대는 워낙 바위가 많아 계곡이 발달했고 우물도 많다. 칠성당에 제사를 올릴 때 퍼올리던 성제(星祭)바위 아래 성제우물, 병풍바위 밑 양푼처럼 파인 양푼우물과 칠성에 제사 지내던 백련암, 영월암(影月岩), 기천석(祈天石), 말바위, 민바위, 부엉바위 그리고 바위와 물길이 어울리는 동간(東磵)과 서간(西磵), 영수곡(靈水谷), 운장곡(雲藏谷)이 즐비한 곳이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한양 도성의 명승 가운데 제일경으로 손꼽았던 게다.

김유근은 이곳 옥호정에서 김좌근(金左根, 1797-1869)과 더불어 사족 예원집단 백련사(白蓮社)를 경영했다. 백련사는 아버지 김조순(金祖淳, 1765-1831)의 벗들인 김이양(金履陽, 1755-1845), 이명오(李明五, 1750-1836), 김이교(金履喬, 1764-1832), 이복현(李復鉉, 1767-1853), 김려(金鑢, 1766-1821)와 같은 당대 사족 문인집단으로 이들은 대체로 당대 예원맹주 신위(申緯, 1769-1847)와 동료들이다. 이 백련사는 문예집단의 활력이 중인예원으로 옮겨가던 시절, 사족예원 최후의 집단이었으며 바로 저 <옥호정도>는 백련사의 보금자리가 어떠했는지를 알려주는 풍경화다.

<옥호정도>는 하나의 정자인 옥호정만 그린 게 아니다. 옥호정이 포함된 집터 전체와 북쪽으로는 백련봉, 동쪽으로는 삼청동천을 그린 지도인 셈이다. 김유근이 별세한 뒤 그 집이 황량해짐에 따라 이 땅은 1960년대까지 아주 오랫동안 ‘황산(黃山)터’라 불렸다. 그래서 이 터가 김유근의 집터로 알려졌지만 사실 첫 주인은 김유근의 아버지이자 세도정권의 집정자 김조순이다. 그가 김유근에게 물려준 땅인 것이다.

그보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 땅의 주인은 다른 이였던 것 같다. 이 땅의 진산인 백련봉은 그 모양이 흰[白] 연꽃[蓮] 같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는 데 백련봉 아래 쪽에 바위벽이 있고 그곳엔‘영월암(影月岩)’이란 커다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달빛 그림자 비치는 바위란 뜻인데 이 글씨는 청백리(淸白吏)로 만년에 벼슬을 마다하고 학문에 탐닉하며 살아간 은자 연봉(蓮峯) 이기설(李基卨, 1558-1622)이 새겼다고 한다. 이기설의 아호인 연봉도 바로 저 백련봉에서 따 온 것으로 그는 도시에서 사는 은일지사였다. 그러니까 이 땅의 주인은 아무래도 이기설이 아닌가 한다. 

장지연(張志淵, 1864-1921)은「유삼청동기(遊三淸洞記)」란 글에서 “삼청동 골짜기는 바위와 비탈이 깎아지른 듯 나무도 그윽이 우거진 속으로 높은 데서 흐르는 물이 깊은 연못을 짓고 다시 물은 돌바닥 위로 졸졸 흘러 이곳저곳에서 가느다란 폭포를 이루며 물구슬마저 튀기곤 하여 여름철에도 서늘한 기운이 감돌아서 해마다 한여름이면 장안의 놀이꾼 선비는 말할 것도 없고 아낙네들까지도 꾸역꾸역 모여들어 서로 어깨를 비빌 만큼 발자국 소리도 요란하였다.”고 했다. 그러니까 장지연이 살던 1921년 이전까지 삼청동은 도시의 계곡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제가 조선을 강점하고 사회가 해체되는 가운데 삼청동에 살림집이 들어앉기 시작했고 이제는 그 풍경까지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 삼청동은 음식점과 옷가게 천지라 문예와 풍류는 커녕 잡동사니 시장터다.





 

작가 박봉현의 삼청동

 

[스크랩] 문화일보

 

 

 그래픽=송재우 기자 jaewoo@munhwa.com

 


▲  서울 종로구 삼청동 길은 예스러움을 간직한 한옥과 현대적인 분위기의 건물들이 어우러져 독특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어떤 이는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했다. 외국의, 특히 유럽 쪽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며 들었던 생각이 세상은 넓고 볼거리는 참 많다는 것이었다. 정말 아름답고 멋진 거리들이 많았다. 나는 파리나 런던, 뉴욕 같은 너무도 크고 유명한 도시들에는 그리 큰 매력을 못 느끼는 것 같다. 그보다는 약간 작지만 옛것들이 더 많이 살아 숨쉬는 그런 곳들이 더 좋았다. 그래서 큰 도시보다 조금은 작은, 그리고 개발이 좀 느리게 진행된 유럽의 중소도시나 시골 풍경들이 나에게는 훨씬 더 매력적이었다.

체코의 프라하 카를교 부근의 카페골목, 그리스 미코노 섬의 미로 같은 뒷골목들, 독일의 브레멘이나 로덴버그의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골목 풍경, 리투아니아 카우나스의 옛 거리, 루마니아의 히기소하라나 브라쇼프 같은 지방도시의 골목들…. 하나씩 꼽기 힘들 만큼 많은 곳들의 아름답고 낭만적인 풍경들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벅찼다. 그런 곳들은 뭔가 자기들만의 독특한 것들을 품고 있어서 뭐라고 말로 설명하기 힘든 색다른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 아름다운 거리를 걸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왜 그런 멋진 곳들을 찾기 힘들까 하는 생각들을 막연히 해보곤 했었다. 서울 대학가와 강남 등의 유명 거리를 가 보면 너무나 소란스럽고 북적거려 은근히 마음을 들뜨게 하는 낭만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뭔가 가슴에 스미는 그런 아련한 느낌 같은 건 없었다.

그러다 오랜만에 가보게 된 삼청동 길.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펼쳐지는 독특한 거리 풍경에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예스러움을 간직한 한옥 건물과 예쁘고 현대적인 분위기의 건물들이 어우러져 멋진 장면과 색다른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골목 안팎과 언덕배기에 질서가 있는 듯 없는 듯 섞인 다양한 분위기의 가게와 카페, 음식점들, 그리고 그 길을 걷고 있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독특한 매력을 풍긴다. 아무데나 카메라를 들이대도 멋진 작품사진이 될 것 같은 분위기에 취해, 이 골목 저 골목 거닐다보면 언제부터 이런 보물 같은 거리가 생겨났는지 신기한 생각이 든다.

가게 안의 물건 하나하나, 음식점의 메뉴 하나하나가 깔끔하고 정갈해 보여 주인의 세심한 손길과 정성이 느껴진다. 아, 우리에게는 없는 듯해 늘 아쉬웠던 그런 거리가 이미 여기 있었구나!

한동안 못 와본 사이에,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이곳은 벌써 아주 멋진 거리가 되어 있었고 계속 더 아름답게 진화 중인 것을 여기저기서 감지할 수 있다. 최첨단 디지털이 관통하는 서울 안에 이런 아날로그적 감성이 살아 숨쉬는 곳. 도심 한가운데서도 청량한 기운을 간직하고 있는 이곳이 바로 삼청동 길인 것이다.

먼 옛날 나의 대학시절, 삼청동은 그쪽 버스 종점 오지로, 여름방학 때 친구들과 큰 맘 먹고 가서 계곡에 들어가 발 담그고 놀다 왔던 기억이 있는 정도의 곳이었다. 언젠가부터 북촌 한옥마을이 매스컴에 오르내리기 시작했고 점점 더 관심을 끌고 있지만 삼청동과 직접 연결시켜 생각하진 않았었는데 삼청동이 이 북촌에 속하고 그 끝자락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행정동으로서 삼청동은 삼청동, 팔판동, 안국동, 소격동, 화동, 사간동, 송현동 등 여러 동을 아우르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언급하는 삼청동 길은 작은 의미의 삼청동을 말한다. 삼청동의 지명이 도교의 삼청전이 이곳에 소재한 데 유래하지만 산이 맑고 물이 맑아서 사람들의 인심 또한 맑고 좋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고 보니 하늘도 맑고 길 너머로 보이는 북악산 숲도 맑고 코끝을 스치는 바람마저 상쾌하다. 길가에 들어선 건물들, 골목길을 걷는 사람들도 모두 맑아 보이고, 그 속에 함께 섞여 걷고 있는 나 또한 맑아지는 느낌이다.

이곳 삼청동 길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쑥 지나가면 한 시간 정도면 걸어 지나갈 거리지만 구석구석 보물처럼 감춰진 가게에서 쇼핑도 하고, 차나 커피 맛도 보고, 배고프면 양식이건 한식이건 입맛에 맞는 맛집을 찾아 들어가 즐기다 보면 한나절이 훌쩍 지나가고 만다. 또 도시생활에 지친 머리를 식히기에 딱 좋은 삼청공원의 맑은 숲이 여기에 있다. 북악산에 이어진 산 속의 공원인 이곳은 수백년 된 소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이곳 솔향이 지친 영혼에 좋은 휴식을 줄 듯 싶다.

이 길은 주변으로 인사동 쪽에서 정독도서관 쪽, 사간동·소격동 쪽 인근에 갤러리가 밀집돼 있어 예술작품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광화문, 경복궁이 바로 인근이니 친구들 또는 연인들이 한가한 시간에 고궁 산책이나 예술품 감상을 하고 이곳을 찾아들어 맛있는 것도 먹고 구경도 한다. 쇼핑, 외식, 레저를 함께 즐기며 추억거리를 만들어줄 수 있는 도시 안 복합 문화공간, 휴식공간으로 일품이다. 삼청동 길의 메인 도로변은 말할 것도 없고 뒷골목 여기저기 숨어있는 옷가게, 카페, 식당들이 저마다의 독특한 외모와 개성 있는 상품, 메뉴로 손님을 맞고 있어 어느 몇 군데를 가보고 삼청동을 다 보고 온 것처럼 말하는 건 무리일 것이다. 그래서 삼청동은 어느 한 곳을 정하고 가보는 것보다는 삼청동, 삼청동 길 자체를 느끼며 여기저기 숨겨진, 마음에 드는 곳들을 천천히 꼼꼼하게 살펴보는 게 더 즐거울 듯싶다.

삼청동 길은 처음에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작품 활동을 하면서 생성됐다. 하지만 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북적대면서 비즈니스화 되기 시작했다. 고도의 상업자본이 이곳을 잠식해 들어오면서 원래 추억이 깃들었던 이곳만의 독특한 모습들이 처음과 달리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들도 나온다.
커다란 규모와 화려한 외형만을 자랑하는 건물들이 거리를 점령해 버리면 이곳도 도심의 다른 삭막한 공간과 크게 다를 게 없어져 이곳만이 갖는 매력이 급격히 떨어지게 될 것이고, 결국에는 찾는 사람들도 점점 줄어들게 될 것이다. 삼청동 길이 멋진 추억과 낭만의 거리로 오래도록 보존되게 하려면 이곳을 지키는 문화, 예술가들이 어떤 이유로든 여길 뜨고 싶어하지 않게 배려하는 방안이 지속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젠 이런 멋진 거리가 있어, 문득 생각나면 이곳을 찾아 거닐고 한가로이 거리 풍경을 감상하며 머리를 식힐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이제 나는 외국인 친구들이 방문하면 맨 처음 데려가 보여주는 곳이 이곳이 되었다. 옛것과 초현대식이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절묘하게 조화된 아름다운 이 거리가 오래 간직되기를 기원해본다.

소설 ‘카투사’ 저자

북촌한옥마을

 

 

서울에서 유일하게 전통한옥이 밀집되어 있는 북촌마을. 굽이굽이 미로 같은 골목길 사이로 한국 고유의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요소가 많다. 한옥과 역사문화자원, 박물관, 공방들이 발길 닿는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북촌은 조선시대 조성된 상류층 주거지다.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는 뜻으로 ‘북촌’이라 불리게 되었다. 가회동과 송현동, 안국동 그리고 삼청동이 이곳에 있다.

1920년대까지 그다지 큰 변화가 없었던 북촌은 조선 말기에 이르러 사회, 경제상의 이유로 대규모의 토지에서 소규모의 택지로 분할되기 시작했다. 지금 찾아볼 수 있는 어깨를 맞댄 한옥들은 1930년도를 전후하여 변형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한옥형식의 변화는 도심으로 밀려드는 인구들로 인해 고밀도화 되어가는 사회상을 반영한 것이었다. 조선시대로부터 근대까지 이어지는 유적과 문화재들은 이 지역을 찾는 이들에게 그 역사를 짐작케 한다.

북촌의 한옥은 독특한 양식을 띤다. 기존 한옥에서 한 단계 진화된 구법과 장식화된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낮은 지붕물매, 굴도리, 겹처마, 좁은 주간에 많은 칸수 등 전통 한옥과 비교할 때 비록 온전히 품격을 갖추지 못했더라도 한옥 본연의 구성과 아름다움이 오롯이 응축되어 있다. 또한 대청에 유리문을 달고, 처마에 잇대어 함석 챙을 다는 등 새로운 재료를 사용해 멋을 냈다.

 

 

 

한옥을 대량으로 건설해야 하기 때문에 목재소에서 공급되는 표준화된 목재를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했던 것도 특징이다. 전체적으로 전통 한옥의 특성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조건에 적응하며 도시주택유형으로 정착된 것이다. 서울시는 이 지역의 비경을 가장 잘 감상할 수 잇는 8곳을 뽑아 ‘북촌8경’으로 지정했다.

 

 

북촌1경은 담 너머 보이는 창덕궁 전경, 북촌2경은 원서동 공방길, 북촌3경은 가회동 11번지 박물관 골목이다. 북촌4경은 기와지붕 넘실대는 가회동31번지 풍경, 북촌5경은 아래에서 올려다 본 가회동 31번지 골목, 북촌6경은 가회동31번지 골목에서 내려다본 서울이다. 마지막으로 북촌7경은 가회동 31번지 옆 골목 풍경, 북촌8경은 삼청동 돌층계길이다.
찾아가는 길 : 서울시 종로구 원서동 일대 가회동 11번지, 가회동 3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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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인사동은 서울을 대표하는 문화의 거리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거리 곳곳에 한국의 역사가 깃든 유적지가 많이 남아있고, 또 한편으로는 골목마다 예술이 피어난다. 전통찻집과 음식점, 묵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필방, 고미술과 화랑 그리고 생활속의 예술을 구현하는 공예업소 등이 자리한다.

토요일 오후 및 일요일에는 뒷골목 일정 구간이 ‘차 없는 거리’로 지정된다. 그 때마다 사물놀이와 사당패 공연 등 다양한 전통문화 행사가 벌어져 여행객들의 발길을 잡아끈다. 지금의 인사동 거리는 종로 2가에서 인사동을 지나 관훈동 북쪽의 안국동 사거리까지를 말한다. 그러나 예전에는 종로에서 인사동 네거리 즉 태화관길과 만나는 곳까지였다. 인사동의 명칭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조선시대 한성부의 관인방(寬仁坊)과 대사동(大寺洞)에서 가운데 글자인(仁)과 사(寺)를 따서 부른 것이라고 전한다.

이곳은 조선초기 이래로 조선 미술활동의 중심지로 형성되었다가 1930년대에 이르러 주변에 서적과 고미술 관련 상가가 들어서기 시작하면서부터 골동품 거리로 자리 잡았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낙원 시장이 형성되었고, 평양떡집이 들어선 이후 현재와 같은 떡집 골목이 형성되었다.

1970년대에는 최초의 근대적 상업 화랑인 현대 화랑이 들어서면서 상설 전시판매장 형식의 화랑들이 모여들어 미술문화의 거리로서의 성격이 강화 되었다. 1980년대에는 골동품, 화랑, 고가구점, 화방, 민속공예품 판매 점포들이 속속 들어서 서울의 명실상부한 전통문화 예술 활동의 중심지로 우뚝 서게 되었다.
찾아가는 길 : 지하철 1호선 종각역 3번 출구 도보로 3분, 지하철 3호선 안국역 6번 출구 도보로 1분, 지하철 5호선 종로3가역 5번 출구 도보로 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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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

 

생생 출사 코스 이미지 5

 

청와대와 경복궁, 북촌한옥마을, 창덕궁 등 주요 관광지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삼청동. 역사 유적지를 비롯해 다양한 주제의 박물관과 감각적인 갤러리, 개성 넘치는 카페, 맛집, 패션숍이 즐비하다.시간 여행을 하듯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느낌마저 드는 이색적인 동네다.

특히 경복궁에서 삼청공원을 잇는 삼청동길이 유명하다. 길 위로 전통 한옥의 빛깔과 이국적인 현대 미술의 강렬한 색감이 공존한다. 도심의 분주함을 피해 한옥들 사이로 난 폭이 좁은 인도를 따라 걸을 수 있노라면 옛 정취가 물씬 느껴진다. 또한 역사의 흔적과 함께 자연까지 만나볼 수 있는 명소다.

이 길의 끝에는 삼청공원이 있다. 북악산과 이어지는 공원이다. 조선 초기의 학자 성현(成俔, 1439~1504)이 일찍이 이곳을 도성 안에서 가장 경치 좋은 곳으로 꼽았을 정도로 예부터 그 경관이 수려했다. 삼청동의 이 골짜기가 삼림공원으로 관리되기 시작한 것은 1934년부터다. 수백년 된 소나무의 울창한 숲과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약수터가 잘 보존되어 있다.

공원 안에는 서울의 옛 성곽과 북문이었던 숙청문, 고려의 충신 정몽주와 그 어머니의 시조비 등이 남아 있다. 신록 및 녹음이 우거졌을 때와 가을철 단풍, 겨울의 설경이 무척 아름답다.
찾아가는 길 : 3호선 안국역 1번, 2번출구로 나와 걸어서 10분~15분

 

 

DCM

글 / 김민경기자, 사진 / 이두용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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