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블럼&포 갤러리에서 한국 단색화전이 열리고 있다. 고(故) 윤형근의 작품이 전시된 방에 화가들이 모였다.

왼쪽부터 박서보·정상화·하종현. [LA=권근영 기자]

 

 

“오래 살아서 다행이다 싶어요. 40여 년만에 다시 보는 그림도 있는데, 그림도 나와 함께 늙었네요. 나 역시 새로워지고, 마음이 세탁되는 기분입니다.”

 정상화(82)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다방면에서:추상에서의 단색화(From all sides: Tansaekhwa on abstraction)’전에서 1970년대 일본 도쿄화랑 전시 때 내놓았던 그림과 마주했다.

 

조앤 기 큐레이터


 로스앤젤레스 컬버 시티 아트 디스트릭트, 비벌리 힐즈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이곳엔 40여 개 갤러리가 모여 있다. 13일 오후(현지시간) 이곳 블럼&포 갤러리에는 북미 첫 단색화전을 보기 위해 100명 가까운 전세계 컬렉터들이 모였다. 권영우(1926∼2013)·박서보(83)·윤형근(1928∼2007)·이우환(78)·정상화·하종현(79) 등 단색화 대표 작가 6인의 40여 점이 걸렸다. 단색화의 전성기였던 1970년대 작품 위주로 엄선했다. 일본 가마쿠라 미술관에서 온 이우환의 흰색 점 시리즈, 작고한 윤형근의 유족이 내놓은 초기 암갈색 회화 시리즈 등 작가별 작품이 2층 건물의 크고 작은 전시장에 배치됐다.


 

권영우의 ‘S 77-23’ [LA=권근영 기자]

 


 전시는 조앤 기(기정현·39) 미시건대 미술사학과 교수가 기획했다. 마이애미 소재 루벨가 재단의 돈 루벨은 “한국의 단색화전은 처음 본다. 근대 이후 회화의 해법을 모색해온 저들의 묵묵한 성취에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올해 20주년을 맞는 블럼&포 갤러리는 일본 현대미술의 대표 주자 무라카미 다카시를 북미에 처음 소개한 화랑이다. 전시를 보기 위해 런던에서 왔다는 비키 휴즈 테이트 미술관 국제교류회 이사는 “이 화랑에서 연 이우환 개인전(2010)과 70년대 일본의 미술운동인 모노하전(2012)은 유수의 미술관 전시로 이어지며 새로운 창을 열었다. 이번 전시 또한 그러할 것이다”고 말했다.

 ◆단색화의 귀환=단색화 작가들은 안료를 밀어내거나 캔버스를 적시고, 연필을 잡아 끌고, 종이를 찢는 등 재료에 다양한 변형을 가하며 수묵화와 유화, 회화와 조각, 작품과 관객 간의 구분에 의문을 제기해 왔다. 기 교수는 “1980년대 초 단색화는 최초로 해외에 널리 알려진 한국 미술운동이 된다. 서울·도쿄·타이페이·파리의 관객들은 단색화의 대표작 속에서 아시아 현대미술의 가능성을 보았다”고 설명했다. 70년대 서구 사조의 이름을 따서 ‘한국적 미니멀리즘’‘모노크롬 페인팅’으로 불리던 것이 단색화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윤진섭 호남대 교수의 2000년 광주 비엔날레 특별전 ‘한·일 현대미술의 단면’전에서부터다.

 

이우환의 ‘점으로부터’ [LA=권근영 기자]


 단색화가 최근 국내외 미술계의 화제로 재부상했다. 광주 비엔날레, 미디어 시티 서울, 리움-광주 비엔날레 포럼 등을 계기로 세계 미술계 인사가 내한한 이달, 서울 삼청로 국제갤러리는 3개 건물 전관 전시로 ‘단색화의 예술’을 열었다. 알렉산드라 먼로 구겐하임 미술관 큐레이터, 정도련 홍콩 M+ 수석 큐레이터 등이 참여하는 포럼도 진행했다.


 정부 차원의 단색화 소개도 시작됐다. 문화부 산하 예술경영지원센터는 지난 6월 상하이 SPSI(조소유화원) 미술관에서 ‘텅빈 충만: 한국 현대미술의 물성과 정신성’(기획 정준모)을 열었다. 전시는 독일·헝가리·폴란드·인도네시아 등지를 순회할 예정이다. 조앤기 교수는 “단색화는 회화의 종말 이후 회화가 갖는 가능성을 풍부히 보여주고 있다. 작품 자체에 대한 연구가 더욱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 LA=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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