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만사형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매년 명절이 다가오면 정영신씨 따라 시골 대목장 찍으러 다니는 게 연례행사처럼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강원도 봉평장에서 시작하여 충청도 서산장, 경상도 문경장을 두루 다녔습니다.



지난 23일은 경상도로 가기 위해 새벽길을 나섰는데, 문경새재가 가까워오니 운해가 몰려 다녔습니다.

차마 그냥 지나치지 못해 소백산맥인 조령산길로 차를 돌렸더니, 올라 갈 수록 점입가경이더군요.



마치 산위에 솜을 깔아 놓은 것 같았는데, 한참동안 아름다운 선경에 빠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옆에 있던 정영신씨가 감탄하며 “아! 장승업이 가마 불길 속으로 들어간 것이 이해가 된다”고 하더군요.



그 신령스러운 이화령 정기를 카메라에 담아 보내드리오니,

건강한 한 해 보내시며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사진, 글 / 조문호





























 


백두대간 白頭大幹: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우리나라 땅의 근골을 이루는 거대한 산줄기

백범영展 / BAEKBEOMYOUNG / 白凡瑛 / painting 

2019_0116 ▶︎ 2019_0128

백범영_속리산 능선_한지에 수묵담채_73×142cm_2018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71105g | 백범영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9_0116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입장마감_05:30pm



동덕아트갤러리

DONGDUK ART GALLERY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68 B1

Tel. +82.(0)2.732.6458

www.gallerydongduk.com



산에는 사람 없으나 물 흐르고 꽃 피네1.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세한도(歲寒圖)」에 얽힌 이야기는 늘 읽는 이에게 많은 감동을 준다. 스산한 풍경에서 느끼는 회화적인 감동도 있지만, 그보다는 김정희와 이상적의 사제 간 인연에서 전해지는 인정이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특히 "날이 추워진 뒤에야 송백(松柏)의 푸르름을 안다"는 발문의 한 구절은 세파에 휘둘리는 인간세상을 되돌아보게 하며, '오랫동안 잊지 않겠다(長毋相忘)'는 두 사람의 언약은 쉽게 잊고 잊히는 세상풍습에 경종을 울리기도 한다. ● 필자는 오랫동안 화가 백범영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어느 산중에 늘 서있는 듬직한 소나무 같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는 성격이 진득하고 학문적 연구에도 열심인 학구적인 화가이다. 그래서 때론 그의 진지함이 감성적인 미술작업에는 독이 될 수 있다는 걱정을 하기도 하였다. 그는 오래 전부터 주로 산수화를 그렸는데 언젠가부터 소나무에 애정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그리기 시작하였다. 마치 자신의 전생 모습을 찾듯 전국의 소나무를 찾아 그렸다. 시간만 나면 좋은 소나무가 있는 전국의 산을 찾아 다녔다. 점차 백범영은 '소나무의 화가'라 불리며 작가로서 자리매김하는 듯 보였다. ● 그의 소나무 그림은 자신의 페르소나(persona)처럼 각인될 정도로 애호가들의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예로부터 이인상이나 이인문 등 많은 화가들이 여러가지 소나무를 그렸다. 백범영의 소나무 그림은 이들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자신만의 개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며 필자는 그가 찾는 소나무가 예전에 「세한도」에 대해 함께 나누던 이야기 속의 송백과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의 소나무 그림이 특별히 「세한도」의 송백과 닮은 것도 아닌데 그의 겨울 눈 맞은 소나무는 '추워진 뒤에 더욱 푸르른 송백'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범영_삼도봉회고백두능선_한지에 수묵_75×49cm_2018


2. 근래에 백범영은 유난히 산을 자주 찾았다. 그것도 '백두대간(白頭大幹)'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산을 찾아다녔다. 4년 동안 백두대간의 줄기를 따라 한 번에 20km 정도를 한 달에 두 번 산행을 하는 강행군을 하였다. 그가 남쪽 백두대간 줄기를 종주한 것도 이제 거의 두 바퀴는 돈 듯하다. 그의 산행은 단순한 발걸음이 아니라 마치 수행자의 고행과 유사한 느낌이 든다. 수행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하듯이 그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고행을 거듭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을 입증하듯 그는 발길이 닿은 곳들을 기록하듯 그림으로 남긴다. ● 산행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조선후기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가 조국의 산하를 지도로 남기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닌 고행길을 떠올리게 한다. 조국의 산야를 나무에 새겨 지도 한 장을 남기기 위해 전국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닌 김정호의 마음과 백두대간을 걸으며 그림을 그려낸 백범영의 마음은 필시 같을 것이다. 김정호가 남긴 「대동여지도」가 한반도를 이루고 있는 산야의 뼈대를 찾아 기록하였다면, 백범영의 그림은 그 뼈대 사이에 있는 자연을 찾아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화가로서의 열정과 자연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놀랍다. 스스로 힘에 부친다는 말을 하면서도 때가 되면 그는 다시 자연 속에 들어가 붓으로 자연을 그려 나온다. ● 도대체 그는 무슨 힘으로 그렇게 산을 찾는 것일까? 산에 무슨 매력이 있어 그렇게 끌리는 것일까? 필자의 생각에 그의 산행은 도연명(陶淵明)이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무릉도원(武陵桃源)'을 찾아가는 심정과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만일 속세에서 느낄 수 없는 희열이 그곳에 있다면 바로 그곳이 무릉도원이 아닐까 공감하기도 한다. 한편으론 아무도 없는 무한한 산속으로 무심코 내딛는 그의 발걸음을 보면, 소동파(蘇東坡) 글에 보이는 '산에는 사람 없으나 물 흐르고 꽃 피네(空山無人 水流花開)'라는 구절이 생각나기도 한다. 이러한 무위자연의 질서 속에서 느끼는 카타르시스(catharsis)가 있기에 그는 그렇게 쉬지 않고 산을 찾았을 것이다.


백범영_지리산 영신봉_숙선지에 수묵_69×70cm_2018


백범영_정령치의 봄_숙선지에 수묵담채_47×70cm_2018


3. 이번 전시의 주제는 그동안 했던 전시보단 훨씬 포괄적인 주제인 『백두대간』이다. 그러나 제목처럼 그렇게 장엄한 순간을 보여주려는 의도는 아니다. 한동안 그의 전시에서 보였던 일관된 주제의식을 버리고 자연을 이루고 있는 다양한 소재들을 보여주려는 관조적인 의식이 더 강해 보인다. 작품의 종류도 지리산 같이 큰 규모의 산세를 멀리서 바라다보는 그림에서 시작하여 산속에 들어가 그린 인간과 가까운 다정한 산도 있다. 또한 산을 구성하고 있는 나무들과 다양한 꽃들, 특히 이름조차 생소한 야생화들까지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 이번 전시회의 주류인 산수화는 자연에 대한 경외감으로 가득 차 있다. 특히 백두대간의 맥을 잡아 그린 몇몇 산수에서 종교적인 무한한 신비로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시선을 멀리하여 구성을 하고 수묵으로 그린 그림에서 이런 모습이 더욱 강하다. 산세의 세부묘사를 생략하여 단순화시켜 그린 중첩된 산의 모습은 우리 민족의 역사나 인생역정을 드러내 보이는 듯한 감성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규모가 크지 않은 산수작품에서는 화가로서의 따뜻한 감성이 스며들어 자연에 대한 우호적인 애정을 느끼게 한다.


백범영_하산덕유(夏山德裕)_장지에 수묵담채_120×200cm_2018


백범영_삼불봉(三佛峰)_한지에 수묵담채_47×60cm_2018


그동안의 전시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던 꽃그림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이번 전시의 큰 특징 중의 하나다. 특히 이름도 생소한 야생화들은 작가의 자연관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하는 특별한 소재들이다. 그가 백두대간을 걸으며 만난 이름 모를 나무와 벌레들, 봄맞이꽃ㆍ앵초ㆍ생강나무ㆍ나리꽃 등속의 야생화는 그의 다정한 친구들이다. 그에게 있어 자연은 예술의 근원이기도 하려니와 인성도야의 도량이기도 하였다. 그들에게 있어 산속의 모든 자연은 한 몸이나 다름없다. ● 백범영 회화의 가장 큰 미덕은 적당하다는 데 있다. 중용의 아름다움이다. 특별히 세련되지도 않고 지나치게 졸박하지도 않다. 딱 거기에 맞게 적당하다. 그가 그린 산은 큰 그림을 그려도 그리 우악스럽지 않다. 과장도 없고 잔 기교도 탐하지 않는다. 설령 유명한 소나무를 그려도 그의 손에서 나오면 매우 친근하다. 풀이나 야생화를 그릴 때에도 작고 소박한 것에 대한 애정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면은 자연에 대한 그의 인식태도에서 나온 시선이다. 그런 사소한 사물에 대한 기록은 자연에 대한 평등의식이자 애정이다. 이런 민중적인 생각이 그의 그림 속에 내재되어 있음을 그의 작품들이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 ■ 황정수


Vol.20190116f | 백범영展 / BAEKBEOMYOUNG / 白凡瑛 / painting



정비파, 아라아트센터서 목판화전
6m ‘백두대간’서 ‘한국근대사’까지
진경산수화같은 회화적 미감 물씬

 

 

판화가 정비파 씨의 '백두대간'

 

 

칼칼한 선으로 주름 잡힌 산줄기들이 첩첩이 파도처럼 뻗어오른다. 칼창으로 파내고 찍은 거대한 목판화폭 위에서 이 땅의 뼛기운 송연한 백두대간 자락이 약동하는 장관이 펼쳐지고 있다. 고난의 역사에 멍들고 문명의 파괴에 찢겨나가도, 대간의 큰 줄기는 묵묵히 한반도의 등짝을 이루며 북으로 달려간다. 멀리 운무에 떠 있는 산줄기 자취들이 백두대간의 힘찬 기운을 더욱 소슬하게 드러낸다.

 

 

판화가 정비파(59)씨가 파내고 찍은 목판화 대작 ‘백두대간’(도판)은 역사 깃든 우리 국토의 초상이다. 길이 6m짜리 이 대작을 위해 작가는 경주 불국토 남산 기슭 조양동에 흙집을 짓고 10년간 칼로 나무를 파고 찍는 작업에 몰두했다. 틈나는 대로 나라 안 곳곳을 돌며 벌여온 국토기행의 결과물을 쉼없이 사생하며 풀어냈다. 18세기 진경산수의 거장 겸재 정선이 발견했던 금강산 암봉의 서릿발 같은 기운을 백두대간과 동해바다의 해안에서 발견해 목판에 옮겼다. 15일부터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가 광복 70돌 특별기획전으로 마련한 그의 목판화전 ‘국토’는 이런 노고의 결실로 탄생한 전례 없는 대작들의 연속이다. 22점의 출품작들은 백두대간 연작을 비롯한 가로 6m짜리 작품이 넉점이고, 제일 작은 소품도 가로 2m가 넘는다. 무상한 역사가 깃든 국토의 진경을 오랜 숙고 끝에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한국 판화사에 일찍이 없었던 기념비적인 수작들이라 할 만하다.

 

 

한지 화폭에 유성잉크로 찍어낸 그의 다색목판화들은 조선후기 진경산수화처럼 사실적인 이 땅 산하의 경치를 새롭게 재해석한 회화적 미감이 물씬하다. 강퍅한 암봉 위 허공에서 매들의 싸움판이 벌어진 풍경으로 질곡의 한반도 역사를 은유한 ‘한국근대사’ 연작과, 새떼들의 군무로 저녁놀이 출렁거렸던 낙동강변의 옛적과 갖은 개발로 새떼들의 자취가 거의 사라진 현재를 대비시킨 낙동강 연작 등에서 이를 감지할 수 있다. ‘판화 특유의 판깎기를 통해 최대한 실경을 덜어내고 남은 응축된 풍경’(평론가 김종길)이면서, 기법적으로는 번들거리기 쉬운 유성판화의 맹점을 피한 것이 참신하다. 그냥 먹으로 찍은 수성판화처럼 더욱 담백한 분위기로 장대한 국토의 풍수와 기세를 포착하려는 각고의 기법적 노력까지 더해졌다는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정 작가는 대학에서 양화를 전공했으나 1980년대 초부터 목판화 작업을 시작해 80년대 참여미술 진영에서 민중판화가로 활동했다. 90년대 이후 조국강산의 기운생동한 현장을 좇는 국토기행과 석굴암 등 불교미술 쪽으로 작업을 전환하면서 선이 굵은 진경목판화 작업의 새 경지를 여는 데 진력해왔다. 작가는 “내가 사는 이 땅 국토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에게 제대로 보여주고 감동을 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작업해왔다”며 “여전히 출판물 정도로 인식되는 목판 그림의 다양한 회화적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한겨레신문]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아라아트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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