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전만규
매향리 평화마을 기록展


2018_0920 ▶︎ 2019_0201


월간 말, 2000년 9월호 표지 매향리 반미투사 전만규


초대일시 / 2019_0116_수요일_05:00pm @ 나무화랑


후원 / 경기도_화성시_경기문화재단_경기창작센터

경기만 에코뮤지엄_매향리 평화마을 추진위원회



2019_0116 ▶︎ 2019_0201

관람시간 / 11:00am~06:3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층

Tel.+82.(0)2.722.7760



매향리 스튜디오는 1968년 미군과 마을주민이 함께 건립한 매향교회 구 예배당을 재생시킨 시설로, 한국 현대사의 상처와 파편들이 오롯이 남아있는 장소에서 『매향리 평화마을 기록전시-청년 전만규』를 진행합니다. ● 매향리의 옛 지명은 고온리(ko-on ni). 이곳은 미 공군 폭격 연습장과 사격장으로 2005년까지 사용되었고 미군들은 쿠니 사격장(koon-ni range)으로 불렀습니다. 주민과 사회단체의 끈질긴 투쟁과 노력으로 이제 마을에 폭격 소리와 화약 냄새는 사라졌지만 녹슨 포탄과 탄피는 아직도 길가에 수북이 쌓여 있습니다. 이른 봄 마을에 퍼지던 매화꽃 향기를 뒤덮어 버린 폭격 소리, 지난 50년의 시간 앞에 삶의 평화를 외치고 살아온 매향리는 동아시아의 평화를 짊어지기에는 너무도 무겁고 버거웠습니다. 한국전쟁은 남과 북의 전쟁이 아니라 동아시아 더 나아가 인류의 이데올로기 각축장이었으며 매향리 주민들은 전쟁의 처참함을 삶과 일상에서 경험하며 살아왔습니다.


매향1리 청년회_1988년 6월 주민에게 드리는 글


여기 평화를 위해 고단한 길을 걸었던 청년이 있습니다. 『매향리 평화마을 기록전시-청년 전만규』는 매향리에 폭격 훈련이 멈추고 평화가 오기까지 젊은 청춘을 바치며 마을 주민과 함께 투쟁했던 '매향리 평화마을 건립추진위원회' 위원장의 분신과도 같은 소장품을 전시합니다. 이 전시를 통하여 매향리에 행해졌던 폭력과 고통, 남겨진 아픈 역사와 상처, 우리가 살아가며 느끼는 평화의 소중한 의미를 함께 공감하려 기획하였습니다.


2000년 5월 13일 동아일보 동아희평


매향리 기록사진


매향리 기록사진


매향리 기록사진


매향리 기록사진


이곳에 미공군 사격장이 설치 주둔하게 된 동기는 6.25 사변으로 인해 크게는 국가적으로 작게는 이곳 지역 주민들도 인민군에 의하여 점령당해 정신적, 육체적인 노역을 당한 것으로 어르신들한테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 더구나 난민촌인 석천4리가 바로 이웃에 형성됨으로 반공의식이 한층 더 고조되었을 것이고 미군이 일본군과 인민군을 내 몰아 주었으므로 맞이한 해방감과 자유에 만취되어 당시 비행기 소음은 아마도 대축제를 펼치는 폭죽이나 팡파르 쯤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또한 소음공해에 앞서 그들이 쏟아 붇는 구리탄피 등 고철이 당시 궁핍한 우리 주민의 생계에 도움이 되었기에 오히려 그들이 고마웠고 감사했을 것입니다.


농섬 기총표적판 수거작업


2010년 2월 농섬 갯벌 폭탄수거


"1988년 6월, 우선 청년들부터 설득했습니다. 오랜 세월 자포자기 심정으로 살아왔던 이들은 처음 저의 '투쟁' 제안에 반신반의하기도 하고, 경계심을 놓지 않았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빨갱이'로 몰려 집안이 패가망신할 수 있으니까요. 이들과 함께 주민총회를 열고, 7월에는 마침내 주민대책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전만규)매향리 스튜디오



Vol.20180920b | 청년 전만규-매향리 평화마을 기록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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