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킹스 Markings

구경숙/ KOOKYUNGSOOK / 具庚淑 / mixed media

2023_1004 2023_1017

구경숙 _Markings 23-3_ 목판화 , 탁본화 ,유채 _186X469cm_2023_ 부분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5:0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

Tel.+82.(0)2.722.7760

 

'마킹스(Markings)'는 인간의 삶을 실증적으로 표현하는 다수의 시리즈 작업으로 이루어져 있다. 2004년 건강상의 문제로 지난한 병원치료를 받은 이후 이를 주제로 지속하여 작업하고 있다. MRI를 비롯한 여러 정밀검사를 받으면서 인간의 생명이 눈에 보이거나 또는 보이지 않는 복잡한 생물학적 조화로 이뤄졌고 그로서 이어져 간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었다. 인체는 유기적인 구조로서 그에게 주어진 환경과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하면서 진화한다는 점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병리적 현상과 치유의 과정을 통해서 인간 삶이 지닌 생물학적, 심리학적, 그리고 감정 변화의 복합성에 대해 깊이 사유하게 되었다. 육체와 정신의 이중성 그리고 안과 밖의 중첩성은 작품제작 과정에 뚜렷이 드러난다.

 

구경숙_Markings 23-3_목판화, 탁본화, 유채_186X469cm_2023
구경숙_Markings 23-3_목판화, 탁본화, 유채_186X469cm_2023_부분
구경숙_Markings 23-1_목판화, 탁본화, 유채_202X496cm_2023
구경숙_Markings 22-1_목판화, 탁본화, 유채_186X201cm_2022_부분

나는 작업을 시작할 때 마음에 특정한 이미지를 지니지 않는다. 대신, 수백 장의 종이 위에 에어캡(뽁뽁이), 반짝이 천, 구겨진 비닐봉지, 혹은 가발 같은 용품들을 이용해 즉시적이며 즉흥적인 자국(marking)을 만들어낸다. 그런 다음 나의 직감에 따라 자국들을 선택 조합하고, 그 속에서 뭔가를 발견하고, 또다시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최종적인 인체 이미지를 구축해낸다. 나의 작품에서 자국(marking)은 인체를 구성하는 기본요소인 물, 림프, 세포, 정맥, 혈액처럼 작품을 구성하는 필수 요소이다. 이렇게 얻은 이미지를 나무판에 파내어 새기고 그 표면에 유동적으로 번지는 유성 잉크를 발라 찍어낸 작업은 유형과 무형의 힘에 대한 인식도 함께 전달한다. 결과적으로 생명력의 에너지는 즉시 즉흥의 자국들이며 이들의 복잡한 구조의 조합 속에서 자연스레 생성된 것이다.

 

구경숙_Markings 22-1_목판화, 탁본화, 유채_186X201cm_2022
구경숙_Markings 19-1_목판화, 탁본화_86X69cm_2019
구경숙_Markings 19-2_목판화, 탁본화_86X69cm_2019
구경숙_Markings 15-4_목판화, 탁본화_107X75cm_2015

사진, 페인팅, 콜라주를 포함한 다양한 매체는 물론 전통과 현대의 판화기술을 실험한 뒤 나는 이 모두를 접목한 멀티미디어 공정으로 작업을 한다. 본 전시회는 2015년 이후 제작한 열 점의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두상을 주제로 한 부조적 목판화 여섯 점과 목판화에 오일페인팅을 더해 전통적인 목판의 범주를 벗어난 대형작품 네 점이 포함된다. 가장 최근의 작품들은 그 폭이 6m에 달하며 재활용된 목판조각들을 서로 붙이고, 떼어 내고, 지우고, 덧바르는 고된 과정을 통해 음양의 대립을 드러낸다. 나는 '마킹스(Marking)가 삶, 성장, 투쟁, 생존에 대한 내 스스로의 욕구이며, 동시에 자신의 삶과 환경을 축하하려는 관객의 욕망이 되기를 희망한다. (September 2023) 구경숙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하고 광주정신의 동시대성 탐색을 위한 기획전이

인사동 ‘나무아트’와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16일 전시가 열리는 인사동 ‘나무아트’를 들렸다.

요즘 전시장이 조용할 것으로 알았는데, 의외로 사람이 많았다.

김진하관장을 비롯하여 화가 최은경씨와 정복수씨 내외,

‘네오록’의 최금수씨 등 여러 명이 전시를 관람하며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전시장에는 조진호씨를 비롯한 광주작가들의 5,18 목판화와 출판자료들이 전시되었는데,

목판화’를 통해 당시의 상황과 울분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었다.

 

그 때의 통한을 잊을 수 있겠냐마는 또 다시 분노가 치밀었다.

철면피같은 전두환이가 아직까지 처단되지 않고 뻔뻔스런 상판대기를 내 밀고 다니니

어찌 5,18 원혼들이 편히 잠들 수 있겠는가?

그 죽일 놈 하나 작살낼 의인 한 사람 없단 말인가.

 

그동안 광주비엔날레에서 5.18을 기억하기 위한 작품들을 꾸준히 선보였다.

이번에 전시되는 ‘민주주의의 봄’은 역대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인

5.18 민주화운동 기념 전에 소개해 온 작품을 한데 모았다.

80년부터 90년 사이 광주작가들이 제작한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전시작을 통해 1980년 5월 이후 40년이 흐른 시점에서

민주주의의 또 다른 표현인 ‘광주정신’을 재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전시가 중요한 것은 광주항쟁을 주제로 10년 동안 쉬지 않고 작업해 왔다는데 있다.

광주 작가들이 현장에서 직접 체험한 작업이라 누구보다 가슴에 쌓인 한과 분노가 컷을 것이다.

1980년 이후 40년이 흐른 오늘의 시점에서 ‘광주정신’을 되돌아보았다.

 

‘아트선재센터’는 7월 5일까지 열리고 ‘나무아트’는 30일까지 열린다.

다시 한 번 그 날의 아픔을 기억하자.

 

사진, 글 / 조문호

 




인사동 거리를 가득 메우던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 갔을까?
징그럽도록 많은 인파와 상인들의 장삿속에 진저리를 쳤지만, 막상 사람이 없으니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코로나 19’가 휩쓴 여파가 실로 대단했다.
사람이 나오지 않으니, 문 닫은 가게가 속출하고 건물을 헐고 다시 짖거나 실내장식 하는 점포도 있었다.




돈 많은 사람들이야 한동안 쉬면되겠으나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그 비싼 가게 임대료에 얼마나 버텨낼지 모르겠다.
소비심리마저 꽁꽁 얼어붙어, 이러다 나라는 배겨날 수 있을까?




남 탓할 일은 아니지만, 이제 사이비종교는 과감히 정리해야 할 것 같다.
아무리 종교의 자유라지만, 사람을 쇠뇌 시켜 갈취하는 일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
모든 행사는 물론 사소한 모임까지 취소하는 판국에
신도들을 교회에 집결시키는 인간들이 살인마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신천지’란 정신 나간 교주 말에 어떻게 그 많은 신도들이
모든 걸 다 갖다 바치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일이 한 둘 아니었다.
아무리 사람이 영악해도 참 어리석다는 생각도 들었다.
‘천국 좋아 하지마라.’ 죽고 나면 한 줌의 흙일 뿐이니, 제발 사람답게 살아라.




인사동에 사람 찍으러 왔으나, 사람이 없으니 찍을게 없었다.
사람만 보이면 쫓아갔으나, 그마저 마스크로 무장한 괴한 같았다.
미세먼지도 심각한데다 전염병마저 설쳐대니, 머지않아 거리엔 얼굴가린 사람뿐일 게다.
어쩌면 산소 호흡기를 짊어지고 다닐 날도 머지않을 것이다.




이달 전시소식지 한 권 구해, 손기환씨 판화전이 열리는 ‘나무아트’로 올라갔다.
전시장에는 김진하관장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하루 관람객이 몇 명되지 않는다며, 한 숨을 쉬었다.




전시작을 돌아보니, 거친 칼질이 빚어낸 반 풍경적인 궤적들이 마치 지옥도를 보는 듯 했다.
분단현실을 상징한 정치적 도해가 한스럽게 또는 격렬하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칼질의 힘을 한지릴리프기법에 의한 요철로 드러내어 더 강한 느낌을 주었다.
그동안 궁금하게 여겨 온 릴리프기법에 대해 물어보았더니, 김진하씨가 상세히 가르쳐주었다.
그 복잡한 과정을 거쳐 이룩해낸 작품들이라 작가에 대한 존경감이 일었다.




전시장에서 커피도 얻어 마시고, 제작기법까지 상세히 설명해 주었는데,
손기환 판화작품집도 한권 가져가란다.
벼룩도 낯짝이 있지 판매하는 책을 어찌 그냥 가져올 수 있겠는가?
소중한 책 한 권 살 수 없는 형편이 부끄럽긴 했으나,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모두 돈을 우습게 여긴 죄다.
그러나 아무리 무식하고 거지같이 살지라도, 돈만은 발가락 사이 때보다 더럽게 여기며 살 것이다.




인사동거리는 가보지도 못한 평양거리처럼 적막에 휩싸였으나,
전시장에 들어가면 인사동만의 또 다른 기쁨조들이 기다리고 있다.




코로나야! 봄 가기 전에 빨리 물러가거라.
양심은 전당포에나 맡긴 정치꾼과 사기꾼들이 우글대는 이 더러운 세상,
꽃놀이라도 한 번 가보고 죽어야 할 것 아니가.

사진, 글 / 조문호














손기환·목판화 2019-1981

손기환展 / SONKIHWAN / 孫基煥 / painting 

2020_0226 ▶︎ 2020_0310



글_손기환, 김진하 || 판형_국배판 22.5×28cm || 초판발행_2019년 12월20일

ISBN_979-11-88845-02-6(부가기호 97650) || 정가_20.000원 || 발행인_김진하 || 발행처_나무아트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80405c | 손기환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3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층

Tel.+82.(0)2.722.7760



시공의 단층과 떨림-손기환 목판화의 역사적 형상성 ● 가로로 길게 늘어지는 풍경이 어느 지점에서 단층처럼 어긋나고 다시 다른 시점의 풍경으로 연결된다. 또 그 풍경은 거기 그렇게 가만히 있지 않고 진동한다. 대기도, 산도, 물도, 나무도, 기타 건물도 모두 비끼어서 흔들리듯 정지를 거부한다. 떨림-움직임-흔들림의 칼의 궤적, 시공을 건너뛰는 입체파적인 공간 몽타쥬, 호방하게 편집된 구도 등이 화면을 거침없이 견인한다. 그 화면은 "풍경화인가?" 싶을 정도로, 대상은 풍경으로 묘사되지 않고 활달한 필치의 밑그림과 듬뿍듬뿍 퍼낸 칼질로 거칠다. 풍경은 풍경이되 시각적 대상으로 소위 '멋진' 풍광은 해체되고 의도와 표현의 결과물인 어떤 상징이 '풍경'을 대신한다. 풍경이라기보다는 풍경을 통한 작가의 이념 혹은 지향성의 기호라고나 할까, 그도 아니면 감각 뒤에 숨겨진 분단의 현실적 리얼리티를 풍경으로 번역한 것이라 할까. 그러니까 그것은 그 풍광을 감상이나 관조의 대상을 넘어서서 현재 그렇게 존재하는 풍경의 조건에 대한 인식적, 그리고 반어적 접근으로의 풍경, 즉 시각에 대한 '反-풍경'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손기환_산수 A Scene at Korea_A.P 1/ Ed. 5_목판화에 한지릴리프_68×140cm_2017


"反-풍경. 풍경에 反한다는 것. 눈으로 보는 시각의 범주를 넘어서서 풍경을 풍경이 아닌 것으로 보는 것. 왜일까. 근대 이후 풍경은 죽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의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게 하라"는 명제처럼, 산업사회 이래로 인류는 자연을 개발의 대상으로 지명하고 그 능동성을 사살했다. 그런 폭력적 인위에 의해서 풍경도 자연과 함께 그 성격을 박탈당했다. 한국에서는 제3공화국에 들어서 서구의 근대적 개발방식을 추종했다. 국토는 난개발 되었고, 거기에 분단국의 군사적 목적까지 더해져서 풍경은 더 능욕을 당했다. 손기환의 「한강」연작은 이런 국토와 풍경의 죽음을 쓸쓸하게 독백한다. 자연은 간데없이 회색 가득한 화면에 GP와 벙커 넘버만 기입된, 전술적 작전지도의 개념이 '풍경화'를 대체한 현실을 형상 없이 그렸다. 뿐인가, 「DMZ-강박산수」연작에서는, 그가 근무했던DMZ의 기억과 전통적인 조선시대 문인화나 산수화에서의 풍경들이 오버랩되는 강박을 기록한다. 거꾸로 옛 산수화를 보면 DMZ의 풍경이 떠오르는 강박도 동시에…. 그것도 명료한 형광색으로. 그래서 손기환의 '산수山水'는 풍경이되 '反-풍경'이다. 한반도의 풍경, 그 표피적 일루젼 뒤에 감추어진 분단현실의 심리적 풍경이자, 이데올로기의 정치적 도해라서 그렇다." (김진하, 『정치적 팝, 팝의 정치학-손기환의 회화』 중에서, 나무아트, 2017)


손기환_산수 A Scene at Korea_A.P 1 / Ed. 5_목판화에 한지릴리프_68×140cm_2017


'반-풍경' 작업을 하는 이유는 작가의 동시대적 상황에 대한 태도와 통일하는 미적 이념에서 기인한다. 즉 그의 세계관과 미학이 향하는 건 감상의 대상인 경치가 아니라, 그런 작가의 생각과 시선을 반영하는 감성적 기호(記號)로써 분단풍경의 드러냄이다. 손기환만의 개인적 서정과 역사적 서사, 조형방식, 화면배치, 판각기법 등을 통해서 형상화된 도상의 상징적 조형방식으로 말이다. 손기환의 목판화에서 상징을 유발하는 주된 매개 이미지는 산수(山水), 즉 산과 강이다. 풍경으로 산과 더불어 강은 한국 근현대사의 역사성을 아우르면서 항일, 분단, 그리고 그런 역사적 사건들이 문화적인 결과로 반영되는 시간적 흐름과 공간에 대한 서술적·상징적 표지(表識)다. 거기에서 물이란 소재는 한강이나 임진강 등을 의미하기도, 또 현재적 일상과 과거의 역사를 연결하는 시간성을 리드미컬하게 매개하는 역할도 한다. 실제로 물이란 소재는 문예작품에서 그런 이미지와 역할을 한다. 예컨대 한 시대와 지리를 가로지르는 장편의 문학작품엔 큰 강을 의미하는 대하(大河)란 접두어를 그 장르적 특성으로 쓴다. '임꺽정'이나 '토지'와 같은 대하소설이나 '한라산'과 같은 대하시처럼 물은 역사성을 함축한 의미다. 장엄한 국토풍경과 함께 민중에 대한 삶의 이력이 산과 골, 강과 호수, 도시와 마을마다 유장하게 배어있다. 그 삶의 애환이, 역사로, 그리고 현장의 삶의 애환으로 드라마틱하게 스토리텔링으로 펼쳐지는 것이 대하문학작품이다.



손기환_산수 A Scene at Korea_Ed. 5_목판화에 한지릴리프_50×135cm_2016


물론 손기환의 회화나 판화는 장르와 형식적 조건상 그런 '이야기'를 서술하는 것은 아니다. 그 길고도 긴, 질기고도 질긴, 민중의 역사가 하나의 장면으로 압축되고 환원된 형상을 띄는 핵심적 이미지로, 손기환의 정서와 지향성을 드러내는 표현적이면서도 개념적인 사유의 결과다. 작가는 그 핵심적 형상으로 말을 대신하고 싶은 것이다. 역사에 대해서, 분단조국의 현실에 대해서, 월남한 아버지의 기원과 자식인 자신의 희구를 반영하면서 목판화란 장르형식과 드로잉, 그리고 칼과 맛 프린팅으로… 바로 그런 과정이 화면에서 목판화적인 상징성으로 돌올하게 된다. 특히 근작에서 이 모두를 아우르는 조형적 질료인 '물(水)'은 새로운 형식인 '릴리프'기법을 구사하는 더 큰 단서가 된다. 물이 있는 빈 여백을 채우는 묘철의 한지 표정으로 말이다. 이런 손기환의 목판화를 통해서 40여 년을 가로지르는 작업의 줄기는, 결국 역사는 단절되거나 정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현재-미래로 끊임없이 시제와 공간을 유동하며 넘나드는 움직임 혹은 운동의 맥락이라는 것이다. 그의 판화에서 한강이나 임진강(『강 건너 고향』 연작), 기타 통영이나 제주 풍경 등에서 물의 흐름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이런 시간성과 공간성이 역사성으로 대체되는 한 징표다. 그것은 일종의 염원이다. 크게는 비극적인 근현대사를 대체하는 성숙한 민주주의와 통일, 작게는 남북 이산가족의 재회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즉, 식민지와 분단 이후 군부독재로 대변되는 산업화시대를 거친 지식인 작가가 조국의 상황에 대한 정치적 인식의 문제의 의지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월남한 부친의 실향에 대한 슬픔-망향-그리움-귀향에 대한 간구가 그의 정서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한 가족이 피난과 이산을 통해서, 남쪽에서 정착하는 과정과 그 이후 귀향에의 염원을 안고 사는 것은, 분단이라는 정치사회적 사건과 문화현상의 한 전형이라 하겠다. 문학에서야 분단문학을 통해서 이런 크고 작은 실례들이 다양하게 형상화 되었지만, 미술에서는 한국전쟁 직후부터 서구 미술의 세례를 받은 모더니즘 형식론이 화단의 축을 형성하면서 그 서사적 형상성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그런 와중에 손기환은 회화와 만화를 통한 '팝 Pop'적인 방식으로 대하적 역사성을, 목판화를 통해서는 가족사로부터 분단으로 확대되는 제유(提喩)방식의 서사적 서정성을 펼쳐 보인다. 「물의 노래」, 「의병」, 「강 건너 고향」, 「우리 동네」 등으로 명제화 된 다소 을씨년스런 풍경들의 '분단기호'를 통해서 그의 이 '반(反)풍경'적인 풍경들은 한스럽게, 때로는 건조하고 을씨년스럽게, 또 때로는 장렬하고도 크게 우리 근현대사를 소환하고 있는 것이다. '풍경화'나 '산수화'의 자연 감탄의 풍경과는 전혀 다르게 한국현대사적 맥락으로 '山水'를 소환하며 재개념화하면서 내용과 형식의 연관이 자기 완결성을 띄고 있다는 점에서, 손기환의 목판화가 주목받아야 하는 근거는 충분하다. 기실, 한국 근현대목판화에서 역사·정치·사회를 정면으로 소재화해서 다루는 경우는 그리 많지가 않았고 또 단편적이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양기훈의 『혈죽도』, 1909년 『대한민보』의 이도영 그림-이우숭 판각의 만평 형식의 연재물, 그리고 1932년 조선일보에 연재한 이북명의 소설 『질소비료공장』의 이상춘 삽화가 있다. 이후 해방공간에서 정현웅·손영기·최은석 등의 좌파적 문예운동 이후 1980년대 민중미술에 이르기까지 그 맥락은 끊어졌었다. 그러던 것이 70년대 후반 오윤과 이상국의 등장, 80년대 이철수·조진호 · 홍성담 · 『두렁』 · 『목판모임-나무(손기환 · 이상호 · 이섭 · 정원철 · 김억 · 김진하…)』 · 화가 문영태가 기획한 『시민미술학교』 · 홍선웅 · 김준권 · 류연복 · 최병수… 등의 활동, 90년대의 이윤엽으로 다시 연결된다. 그러니까 손기환은 80년대 초반부터 『서울미술공동체』 · 『민족미술협회』 · 『목판모임 나무』를 통해서 목판화운동의 주역 중 하나로 지금까지 작업해오고 있는 것이다.

손기환_물의 노래-한강, The song of Water-Han river_A.P 2 / Ed. 25_한지에 목판화_12×90cm_1995
손기환_물의 노래-한강, The song of Water-Han river_A.P 2 / Ed. 10_한지에 목판화_12×90cm_1995
손기환_한강 Han River_A.P 2 / Ed. 10_한지에 목판화_12×90cm_1995
손기환_한강 Han river_A.P 2 / Ed. 10_한지에 목판화_12×90cm_1995
손기환_한강 Han river_A.P 2 / Ed. 10_한지에 목판화_12×90cm_1995


최근 손기환의 목판화는 그 형식에 있어서 하나의 전기를 맞았다. 일단 스케일이 대형으로 커지고, 그다음으로는 프린팅 과정에서 한지릴리프(Relief) 기법을 수용했다. 규모가 커진 작업은 판각이전 활달하고 액티브한 드로잉의 힘을 묘철의 표정으로 더 깊이 반영한다. 전보다 훨씬 더 직접적으로 몸의 반응을 실어냈다는 것. 저간의 손기환의 작업은, 회화와 판화를 막론하고, 디테일을 생략한 채로 짧은 작업시간의 집중력에 의한 표현성과 작업내용의 통일이 빚은 형상으로 그 개념성이 강했다. 그런데 큰 판화로 전이되면서 드로잉의 붓 맛은 더 강하되, 칼의 쓰임이 자유로워지면서 오히려 심미적인 '기운'이 더 '생동'하게 된 것이다. 뭐랄까, 서사적인 풍경화의 개념을 유지하면서도 추상표현주의적인 몸짓으로 드로잉하고 판각한 화면은, 그래서 살아서 진동하고 요동치는 듯 활발해진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 역설적으로 한지 저부조(低浮彫) 기법의 장인적 과정을 수용하면서 더 꼼꼼해진 입체적 화면은, 한지의 물성을 제대로 발현하며 질료적 물질성과 촉감이 더 견고해졌다. 판각하고 찍은 판화를 다시 빈 여백에 묘철로 텍스쳐를 준 판에 대략 6~7겹의 배접으로 릴리프를 한 이런 방식은 한지로만 가능한 기법이다. 긴 시간 반복되는 단순한 노동력과 작업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니까 드로잉과 판각에서의 회화적인 액션과, 릴리프 과정에서의 정교한 공예성을 합치면서 이전의 판화와는 다른 얼굴이 탄생한 것이다. 작업 내용과 개념이란 몸과 뼈대는 여전하나, 피부와 옷은 훨씬 세련되고 중후한 묵직함을 더하게 된 것이라고나 할까. 아니, 조형적 근육을 더 튼실하게 키웠다는 표현이 맞겠다.


손기환_희망 Hope_A.P 2 / Ed. 10_한지에 목판화_44×38cm_1994


한편 손기환의 또 다른 특징인 대상의 구체적인 묘사를 많이 생략해버린 실루엣의 형상은 여전하나, 근골과 뼈대로 구축된 대상의 형태감과 큐비즘적 공간 및 시간의 몽타쥬 형상은 강력하고 동적인 이미지로 확장되었다. 거기에 대담하고 호방한 터치를 곁들인 칼의 구사는 소재인 강과 산, 그리고 여타의 구조물과 건물들을 진동시키듯 시공을 흔든다. 대상의 정밀한 재현보다는 화면 전체를 동적인 움직임의 궤적으로 표현해냄으로 인해서 가능한 방식이고, 그것은 실루엣으로 대상의 외적 형태를 취했을 때 원근법이나 명암법이 제거된 평면성의 형태적 미감과 칼의 표정 때문에 그렇다. 마치 수묵화에서 운필의 운용이 빚은 이미지가 대상의 객체성을 대체한 주관적 표현성처럼 말이다. 이 지점은 손기환의 회화와 목판화가 완전히 다른 조형적 감수성을 띄고 있음을 의미한다. 개념과 인식을 통해서 대상을 파악하고 발언하고 소통하는 '물리적 풍경'이란 반성적 사유의 회화에 비해, 이 목판화는 '심리적 풍경'으로 좀 더 강한 표현적 감성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월남한 부친의 귀향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손기환이 대신해 드러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손기환_6월-고문 June-pain_A.P 1 / Ed. 5_한지에 목판화_38.5×65cm_1987


이처럼 미디어와 장르에 따라 같은 소재라도 작가적 어법과 장치를 달리하는 건 분명히 긍정적이다. 다양한 여러 장르의 미디어를 다루고 있는 작가(손기환은 회화, 만화, 애니메이션, 목판화 등의 다양한 장르를 다룬다)에게서는 각 미디어마다의 특징에 따라 진술방식을 달리해야 하는 멀티플레이어의 면모가 필요하다. 회화와 목판화에서는, 적어도, 손기환이 나름의 자기 언어와 스타일을 각기 독립적으로 확보했음은 분명하다(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쪽은 필자가 그 정보나 전문성이 모자란지라 여기서는 언급을 생략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증거하는 그의 독자적 시각작업의 형식성이 정치적 함의를 자연스레 발생시키는 소통성으로 연결되는 문제의식을 분명하게 보이고 있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관객들에 대해서 계몽적인 태도로부터 벗어난 수평적인 작품의 언술과 제시방식이 주는 교감의 폭이 넓어서 그렇기도 하다. ● 손기환은 난해한 미학적 수사를 통해 관객에게 선험적인 미적 아우라를 제시하지 않는다. 그의 미적 방식인 '팝'적 이미지와 거기에서 연유하는 소통과정의 정치적 공감력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내용과 분위기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목판화에서 이런 소통의 시도는 자연스럽다. 형식이 내용을 견인할 수 있는 튼실한 기량이 있어서다. 미술작품의 이미지가 어떻게 소통의 정치학으로 연결되는가는 작가의 세계와 작업에 대한 태도와, 거기에 비례하는 매체에 대한 인식, 그리고 표현 역량에 의해서 증명된다. 목판화를 다루는 손기환은 능숙하다. 그러면서도 기술적·기능적으로만 작업에 매달리지 않는다. 무엇을 위한 테크닉인가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최근 많은 목판화가 작가의 뛰어난 기술력은 보여주고 있으나, 적어도 자신의 미학적 이념과 목판화라는 매체의 개념적 합일에 대한 인식적 논리를 드러내는 경우는 빈약하다. 그런 기술과 기교가 무기력하고 무용한 이유다. 손기환은 자신이 목판화를 진행하는 분명한 목적성과 거기에 따른 문제의식을 스스로가 작업으로 증명하고 있기에, 우리시대 중요한 목판화작가 중 하나라고 단언할 수가 있는 것이다. 목판화 작업에 대한 관념적·문화속물주의자의 껍데기는 모조리 벗어 던진 채 자신의 미학적 목표점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분명하다. 특히 그의 근작은 이런 지점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Well made'의 미적 표현성과 함께, 동시대의 사회적 문제를 말하는 그의 목판화에 대한 역사적·조형적 문제의식으로 말이다. ■ 김진하



Vol.20200223a | 손기환展 / SONKIHWAN / 孫基煥 / painting





김진열씨의 목판화전 ‘이웃’과 ‘모심’이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가 열린 지난 17일 오후6시 무렵, 전시장에는 전시작가인 김진열씨를 비롯하여 '나무화랑' 김진하 관장,

미술평론가 이태호, 최석태씨, 화가 김 구, 손기환, 이인철, 이흥덕, 나종희씨 등 여러 명이 작품을 돌아보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반가움을 뒤로하고 작품부터 돌아보니, 몇 년 전 그 장소에서 보았던 작품의 대상과 소재만 달랐지 작가가 말하는 메시지는 일맥상통했다.

철판을 주워 모아 시뻘겋게 녹 슨 금속의 질감으로 담아내었던 그 때 작품이나,

한 스린 민초들의 삶을 통해 우리민족의 아픔을 나타내는 시대정신은 한결같았다. 그런데, 작품이 너무 좋았다.

거친 노동의 투박한 질감이 주는 동질감이 가장 한국적인 작품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전시된 김진열씨의 목판화에서 한 평생 인간에 초점을 맞추다 세상을 떠난 휴머니스트 사진가 최민식선생이 떠오르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바로 그의 작품이 소외된 서민을 통해 인간애를 담아내고 동시대의 아픔을 그려내려 했던 최민식선생의 작업과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아래로부터 자신의 미학을 구현하며, 묵묵히 견뎌내는 서민들의 초상으로 우리 시대의 아픔과 존재의 진정성을 담아내고 있었다.






작년에 박수근 미술상을 수상하였다는 기사를 읽었을 때, 꼭 받아야 할 작가라고 여겼다.

박수근 화백의 작품과 정신세계에 가장 적합한 작가가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앉아서 그림만 그려내는 화가가 아니다. 그 생각을 온 몸으로 실천하는 작가다.

오랫동안 원주에서 환경 운동을 하며 후학들을 지도해 왔는데, 지금은 대학 총장 직책까지 맡아 그 임무를 다 하고 있다.

학교를 개선하기 위한 일련의 노력을 접하며, 진짜 그 학교는 복 받은 학교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썩어 빠진 교육 권력이 난무하는 현실에 한 가닥 희망이 아닐 수 없다.






민중미술 경향의 칙칙하고 거친 질감으로 표현한 작품들은 강한 소구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사람중심의 작품에서 생명존중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작품의 대상을 머리나 책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공간인 원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찾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오래 전부터 스쳐 가는 사람 모습을 스케치하며 사실적인 현장감을 작품 속에 불어넣어 온 것이다. 

버스터미널을 중심으로 이동하는 서성이거나 기다리는 모습에서,

서민적인 인간애를 넘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말하며, 그 배후에 존재하는 권력과 착취의 이데올로기를 인식케 하는 것이다.






전시 제목에 붙은 이웃과 모심(母心)은 그 모심을 통해 생명존중과 평화공존을 말하는 것이다.
이번에 보여 준 목판화도 처음 보았지만, 드로잉과 사진들을 나란히 배치한 작품도 인상적이었다.

왼쪽에 배치한 흑백사진의 버려진 황량함과, 오가다 만난 사람을 드로잉한 그림을 나란히 배치하였는데, 자세와 표정이 다양했다.

많은 볼거리와 생각거리를 준 그 작품으로 작가가 이야기하려 한 것이 무엇일까?

인간의 소외감에서 한 걸음 나아가 인간성 상실을 질책하는 것은 아닐까 유추해 본다.






아무튼 인간과 자연에 대한 애정을 자신만의 특유한 기법으로 구현하는 김진열씨의 작업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쓰레기 같은 작가가 넘쳐나는 세상에 이런 훌륭한 작가도 있다는 것이 살아야 할 한 줄기 빛이고 유일한 위안이다.


미술평론가들은 "김진열은 삶의 체험적 질료를 중시하는 작가"라고 규정한다.

"그의 작품 속에는 우리 시대의 인간적 꿈, 우리 자신이 간과하고 상실해온 꿈이 끈적끈적하게 깃들어 있다"고 설명한다.

우리들의 벌거벗겨진 자화상이라는 것이다.

 

이 전시는 30일까지 이어진다.







작가 김진열씨를 비롯한 일행들이 모두 전시장에서 내려와 뒤풀이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인사동 ‘평화만들기’ 옆에 있는 ‘자미향’은 숨은 가게라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민예총 관련 인사들이 자주 찾는 술집이다.

술 안주가 깔끔하고, 조용해서 좋다. 열 명 남짓 이층에 자리 잡았는데, 독방이라 술 마시며 놀기 안성마춤이었다.

뒤늦게 화가 정복수씨와 한겨레 임종업 기자가 들어오니 자리가 꽉 찼다.

 




그런데, 간장게장에 밥 비벼 맛있게 소주 한 잔 하는데, 개 한 마리가 들어왔다.

개도 개 나름인지라, 보기 싫어 고개도 들지 않고 뒷자리로 옮겼으나, 영 맘이 편치 않았다.

사람 될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 무슨 말을 하겠는가?

김진열씨가 곧 잘 하는 판소리 한 자락 못 듣고 와 버렸다.



사진, 글 / 조문호






























































          

롯데백화점 청량리점 롯데갤러리, 28일까지

[서울문화투데이] 2018년 10월 10일 (수) 23:28:22정영신 기자/사진가 press@sctoday.co.kr

자신만의 색채로 유성과 수성판화를 넘나들며 우리나라 미술사에 독보적인 판화화가로 불리는 판화가 김준권의 ‘산운山韻'전이 지난 3일 청량리 롯데갤러리에서 열렸다.

그가 한반도를 잇는 백두대간을 켜켜이 쌓아 형상화한 ‘산운山韻'은 5개월이라는 시간동안 48개의 목판에 먹물을 묻혀 찍어낸 수묵목판화로 지난 4월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서명할 때, 뒤쪽에 내걸린 그림이다.


▲ 자작나무 아래-가을 101×187cm 유성목판(사진제공:나무기획)


그는 “남북은 단절됐지만 산은 그대로 있고, 산이 갖고 있는 우리 삶의 역사가 본모습인 한반도의 산하와, 강 건너 북한 혜산인근 ‘두만강가’ 풍경을 화폭에 담으며, 중국 땅에서만 볼 수 있는 우리나라를 경계 짓는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를 그리면서 마음속에 이미 남북한을 연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 ‘산운山韻'의 김준권 판화가 Ⓒ정영신


대동세상(大同世上)을 염원하며 35년째 나무에 새긴 목판화로, 그는 조국의 산하와 민중의 정서를 보통 사람들이 보는 것과 다르게 평화롭게 풀어낸다. 그의 작품 ‘청죽’은 대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찬 것으로 보이지만, 바람에 살랑거리는 미세한 떨림은 감상자로 하여금 고향산천을 떠올리게 한다.



▲ 山韻-0901 400x160cm 수묵목판 2009 (사진제공:나무기획)


그의 작품 ‘청죽’을 한참동안 들여다보면 시간의 문이 열리면서 어렸을 적 경험과 해후하게 된다. 어렸을 적, 맑은 햇빛이 조각난 채 내려오는 날이면 대나무 안에 소리가 들어있다며 할머니가 대나무밭으로 내 몰았었다. 음악이 귀했던 시절이라 대나무밭에 들어가 귀를 기울이면 안에 고여 있던 온갖 소리는 바람의 세기에 따라 속삭이다가, 때로는 합창을 하듯 맑디맑은 소리가 청록색으로 흘러 내려, 대나무 숲에서 부는 바람이 내 마음에 닿는 듯한 울림은 고향산천에 두고 온 기억으로 남아있다


▲ 청죽 167x90cmx3ea (사진제공:나무기획)


목판화는 죽은 나무를 살려내 작업하기 때문에 “나무의 맛을 읽어내는 것이 본질‘이라며, 옛 판화를 보면서 새로운 방식의 그림으로 창조할 줄 알아야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옛것에 토대를 두면서, 당 시대를 읽어내 변화시킬 줄 알아야 목판화의 근본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대중미술문화를 창조하려는 의지로 사회정치적 이념을 풍자한 비판적인 리얼리즘을 모색했고, 기존미술에서 소홀히 다루던 현실문제등과 민족, 민중미술이라는 목적의식으로 미술운동을 펼쳤다. 80년대 후반기부터 2000년 초반까지 그의 작품은 저항적인 그림으로 우리사회에 메시지를 전달하고, 풍경을 통해 우리국토와 이웃의 상처를 형상화함으로써 자신만의 감성을 수묵목판화로 드러낸 것이다.


▲ 60X89cm 독도-서도 (사진제공:나무기획)


그는 한국현대사 속의 민중미술이 우리사회와 정치, 경제적 상황 속에서 자생적으로 파급되고 확산된 새로운 아방가르드 미술운동이었다고 회고했다. 갤러리를 벗어나 대학가, 노동현장, 노상집회, 정치운동의 현장과 대중생활을 파고드는 새로운 형식과 매체를 개발해 자신만의 목판화의 색체를 연구한 것이다.




▲ 이 산~ 저 산~채묵목판- 2017 합 285cmx188cm (사진제공:나무기획)


또한 전국의 절간을 돌아다니면서 대장경판을 살펴보고 탱화를 모사하기도 했다. 전국의 풍경을 스케치하며 재현하기 위해 치열하게 전통목판화 작업에 정교한 기법까지 연구하면서 자신의 작품과 연결시킬 수 있도록 다양한 실험을 시도한 것이다. 판으로 찍어 낸 그림인 판화는 종래의 복제기능으로서의 한계를 벗어나 유화 또는 수채화 작품과 마찬가지로 자기만의 조형언어를 담기 위해 우리나라의 산과 땅, 들과 물을 수묵목판화로 표현했다.



▲ 두만강가-무산 부근 109×187cm 유성목판 (사진제공:나무기획)


미술평론가 황정수씨는 “그가 작업한 태백마을을 형상화한 판화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감정의 내면이 잘 표현된 대표작으로 현실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는 작품이다. 자신의 작품과 연결시키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시도한 일본의 전통목판화인 '우끼요에(浮世繪)'의 정교한 기법을 연구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루신(魯迅)미술학원에서 중국의 전통 목판화인 '수인(水印)판화'를 집중 연구하기도 했다. 이는 한국과 일본, 중국의 목판화를 비교연구하면서 새로운 목판화의 길을 찾으려는 그의 열정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리고 그가 산을 그리고 새긴다는 것은 한국인의 마음을 그리고 새기는 일로 한국인의 원형질인 정신이다” 고 평했다.


▲ 산에서...1303 160X84cm (사진제공:나무기획)


1000년이라는 긴 역사를 갖고 있는 판화의 맥이 끊어진 우리 고유의 판화기법을 되살리기 위해 그의 작업실 인근에 목판대학을 만들어 문화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잇는 플렛폼을 만들었다. 그가 지향하는 전시장미술에서 현장미술의 기능을 수행하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지난 2016년 12월부터 탄핵정국이 되는 2017년3월까지 ‘광화문미술행동’을 결성해 미술인들과 광화문텐트촌에서 현장미술을 온몸으로 실천해 일반대중과 문화예술로 소통했다.



▲ 40X70cm 꽃비 - 첫사랑 2015 (사진제공:나무화랑)


미술평론가 김진하씨는 “판화가 김준권은 국토를 순례하면서 삶과 어우러지는 풍광과 이웃들의 정서를 사실적으로 포착한다. 전통과 현대를 넘나들며 목판화에 대한 수행자처럼 장인적 정신으로 대상에 대한 감성과 사유가 함께 녹아서 어우러져 있다.

또한 자기실존의 결과물을 반영하는 것이 그의 작품이기 때문에 벽에 부딪치면서 새로운 변주를 끊임없이 시도하는 고행의 길을 걷고 있다. 쉬지 않고 목판화의 새 방식을 모색하는 그에게 작업은 그의 살아있음의 ‘과정’을 증거 하는 행위다. 그가 앞으로 더 깊어진 사유로 회귀할지, 아니면 기계적 프로세스를 타파하고, 더 놀라운 기술을 수용하며 목판화의 표현방법과 개념을 극한까지 넓힐지 좀 더 지켜봐야 알 수 있을 듯하다” 고 평했다.


▲ 산에서..240x140cm 수묵목판 2009 (사진제공:나무기획)


판화가 김준권의 이번 전시는 2007년 이후 10여 년간 그린 작품과 남북정당회담 작품인 ‘산운’을 직접 감상 할 수 있고, 사실적 풍경을 담은 유성목판화도 선보인다.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8시30분까지 관람할 수 있으며, 판화체험이벤트를 진행하고 ‘산운’작품 포스터는 500장 한정으로 증정해준다. 아울러 전시기간 중에 관람객 누구나 ‘산운’앞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죤을 준비했다.

판화가 김준권의 ‘산운山韻'전은 롯데백화점 청량지점 롯데갤러리에서 이달 28일까지 열린다.





한국현대목판화 발굴 프로젝트1 無有等等


조진호展 / CHOJINHO / 趙眞湖 / printing
2018_0905 ▶︎ 2018_0921



조진호_오월시 동인지 외 조진호의 목판화가 표지화에 실린 80년대 시집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3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층

Tel.+82.(0)2.722.7760



무유등등無有等等1) - 한과 해원의 목판화 ● 난 지금 판화시집을 보고 있다. 五月詩2) 판화집.『가슴마다 꽃으로 피어있어라』(1983, 한마당)와『다시는 절망을 노래할 수 없다』(1984, 청사) 두 권이다. 전자는 '오월시' 동인들의 시와 조진호와 김경주의 목판삽화가 어우러진 것이고, 후자는 조진호의 목판화가 표지에 디자인된 것이다. 1980년 광주항쟁에 대한 시인들의 비애와 탄식, 분노와 저항 등으로 엮어진 이 시집에 조진호의 목판화가 어우러지며 억울하게 이승을 떠난 이들에게 한바탕 살풀이와 회심곡을 올리는 진혼제가 된 시집이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오래된, 그러나 생생한 80년대의 청년기 기억과 함께 이 시와 판화는 그렇게 다시 내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다. 그만큼 80년 광주는 한국 현대사에서 불의한 힘에 의해 죽임을 당한 질곡이자, 이를 극복한 희망의 상징이다. 조진호의 목판화도 바로 그 질곡과 희망의 현장에서 살아있는 정서로 기능한 작품이다. ● 조진호는 80년대 내내 '광주목판화 연구회'와 '광주전남 미술인 공동체(광미공/공동대표 조진호 홍성담)'을 중심으로 미술운동을 펼친 작가이자 미술운동가다. 목판화를 중점적으로 발표하며 활동했다. 70년대 후반 군에서 제대하고 복학한 이후 80년 광주를 겪으면서 제작한 첫 작품인 80년 「오월의 소리」부터 10여 년간 제작한 목판화는 대략 백수십 여 점에 이른다. 그동안 광주를 중심으로만 활동했기에 그의 이 작품들은 타 지역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묻힌 것에 반비례할 정도의 판화사적인 가치가 있음은 그의 활동상과 작품 모두가 증명해준다. 특히 당시 민미협을 정점으로 진행되었던 중앙 집권적 미술운동의 궤에서 보더라도, 광주미술의 독자적인 지역 활동과 결과는 80년대 미술의 중요한 축이었다. 바로 그 운동의 궤적에서 작가 조진호의 목판화와 여타의 활동도 그런 광주미술의 한 축을 형성했다. 이런 객관적인 사실로 인해 그의 목판화가 80년대와 한국현대목판화사에서 그가 활동한 만큼의 자리를 잡아야 함은 타당하다. ● 전체적으로 조진호 목판화의 궤와 특성을 보면 시기적으로, 형식적으로, 또 내용적으로 크게 4분화가 된다. 일차적으로는 1980년 목판화를 시작할 때부터 1982년까지의 형식적 모색과 실험기의 작업이 있다. 80년 광주를 소재로 한 것부터 습작기 특유의 각법과 작은 목판에 어울리는 판법이 주축이 되는 시기다. 다색과 단색을 아우르며 일러스트적인 편화와 밑그림에 충실한 각법 등으로 비교적 초보 단계에서의 칼맛과 프린팅의 깔끔한 어울림을 선사한다. 중년 남자의 얼굴을 클로즈업시킨 처녀작 「무제」에서는 제작년도인 1980이란 숫자를 수인번호 명찰처럼 가슴에 새겼다. 중의적 메시지다. 80년 5월 이후 이 땅의 살아 남은 모든 성인 남자는 죄수라는 듯이. 형식과 표현언어에 대한 모색의 바탕에서 이 시기 작업들은 당대 한국 사회에 대한 심리와 비판이 동시에 반영되는 작업들이다.


조진호_오월의 소리 1980 Ⅱ_리놀륨판화_24×35cm_1980


조진호_오월시판화_리놀륨판화_22.5×31cm_1983

이어서 '오월시 판화집'으로 타 장르인 시인들과 연대하고 출판미디어를 활용한 1983~1984년의 표현주의적 수법이 독특한 삽화로 기능한 시기다. 「오월시 판화」 연작과 함께 「잡풀베기」 연작도 이런 스타일에 해당된다. 공포, 불안, 분노, 그리고 남도 민중의 거칠고 뜨거운 생명성, 소박한 이웃에의 애정과 서정성… 등이 함께 게재된 시인들의 시어들과 함께 직접적인 판각법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당시 작가는 자기 작품만이 아닌 시라는 타 장르와의 어울림에 대한 형식을 찾느라 꽤나 고민이 많았던 듯싶다. 판화가 김경주와 함께 오월시 동인들의 시를 엮은 판화시집 『가슴마다 꽃으로 피어있어라』의 서문에서, 시와 만났을 때의 목판화에 대해서 쓴 다음의 텍스트를 보면, 이런 그의 고민이 잘 드러난다. ● "시를 주제로 한 판화작업을 나는 새로운 감각으로 반갑게 시작하였다. 언어로 표현되는 시의 관념이 나의 관념 속에서 형상화되는 과정에서 에로점이 많이 있었지만 나름대로의 즐거움도 있었다. 구체적인 주제가 설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언어를 하나의 독립된 형상으로 작화시키는 것과, 그 형상이 판화의 독특한 표현 기법 과정을 거쳐 화면에 나타났을 때 시의 본래 뜻이 왜곡되지 않나 하는 의문점이 있긴 하다. 나의 작업과정이 시인의 시 쓰는 과정과 같지 않을진대 양자의 합일점을 찾기는 어려웠지만, 현실의 아픔을 찾아 따사로운 어머니의 손길로 어루만지는 듯한 시의 느낌을 미래에 대한 희망 속에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조진호_고향, 흙-2_목판화_36×49.5cm_1985


온전히 자신만의 형상과 목판언어로 풀어내는 개인적 작품과, 타인의 시와의 만남에서 이루어져야 할 어울림에 대해서, 그 형상이나 어법의 차이점을 간파한 것이었다. 이 시기 조진호의 목판화의 특징은 ①대상인 사람의 형태의 왜곡과 해체, ②一刀一劃의 칼질로 인한 강력한 회화적(목판화적) 표현성, ③시적 분위기의 회화적 형상성 등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특히 ②항은 목판화만이 가질 수 있는 칼맛에 대한 회화적 연역이란 점에서 시의하는 바가 크다. 당시 상당부분의 작가들이 오윤의 판법을 전형화한 형태중심의 정교한 선각線刻의 형식을 취하고 있음에 반해, 자유분방하고도 즉흥적인 칼의 즉발적 운용으로 나이브한 원시적 표현성을 보여준다. 덜 다듬어진 상태에서 작가 몸의 궤적이 그대로 형상에 반영되는 칼질은 면面판화의 액티브함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 그리고 세 번째는 1985년 이후부터 90년까지 전개되는 재현적 양식으로 풀어낸, 이웃과 서민들의 삶과 향토적 정서가 단정하게 드러난 작업들이다. 꼼꼼한 사실적 밑그림, 주로 세모칼의 운용에 의한 섬세한 판각, 오랜 시간 공들인 묘사에 등장하는 이웃들은 주로 주변부 시골 노인이나, 어머니, 고향 등의 소재가 주가 된다. 특히 80년에 가족을 잃은 한을 간직한 듯한 모습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이 그 중심을 이룬다. ● 마지막으로 86년부터 90년까지의 호방하고도 굵은 필획이 선각으로 두드러지는 풍경이 있다. 이른바 '무유등등' 연작이다. 남도의 한을 넉넉하게 풀어주고 해원시켜주는 어머니 품과 같은 무등산의 장엄함과 생명성에 대한 작가의 애정과 시선이 녹아 있는 장면들이다. 또한 80년 광주를 회고하면서도 생명에 대한 능동적인 여유가 느껴지는 90년대의 이 대작 목판화에서의 서정성은 자기 양식화에 성공한, 무르익은 목판화 기량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한편 이와는 또다르게 '광주항쟁 10주기 거리미술제'에 츨품한 「학살도」와 「대학살도」의 대하서사적 역사화의 대형 스케일과 다양하게 구사한 기법은 목판화가로서 조진호의 절정기를 반증하기에 충분했다. 무유등등의 담담한 서정성의 배경에 치열한 80년의 한과 역사적 기억과 인식이 여전히 그에게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작이었다. 그러니까 90년도의 「무유등등」과 「학살도」연작은 조진호의 목판화양식이 완성되었음을 증명하는 실례라 하겠다.



조진호_학살도-광주민중항쟁 10주기 거리미술제_김남주 시인의 '학살'을 판각_목판화_75×150cm_1990

조진호_대학살도-광주민중항쟁 10주기 거리미술제_김남주 시인의 '학살'을 판각_목판화_30×127cm_1990


그러나 바로 그 시기에 조진호는 목판화를 멈췄다. 목판화를 중단하고 또 다른 맛의 회화작업으로 작업의 주 매체를 전환한 것이다. 작업 미디어와 내용을 바꾸는 것은 머무르지 못하는 작가의 몸과 의식과 본능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지만, 한편 광주목판화의 흐름에서 보자면 아쉬운 일이기도 했다. 90년대 들어 시대상과 미술문화의 흐름이 바뀌고, 문민정부의 등장으로 5공 청문회를 통한 특별법으로 전두환 세력의 응징(너무나 미약한 것이긴 하지만)이 있었기에 80년대식의 목판화운동은 80년대식의 지나간 미디어라는 인식이 보편화한 문화적 환경 때문이기도 할 것이었다.(이때는 광주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목판화의 활동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던 시기였다.) 아무튼 이 기점에서 조진호의 목판화는 80년대와 함께 지나간 과거의 유산이 되었다. 그것은 안타깝지만 한편 자연스런 것이기도 했다.


조진호_무유등등_목판화_18×48cm_1990


글을 쓰다가 보니 조진호의 80년대 여러 형식의 목판작업 궤적을 가로지르면서도 이를 동시에 관통하고 꿸 수 있는 수사가 떠오른다. 80년대 군사독재의 불의한 힘에 대한 격렬하되 "따뜻한 저항"이 그것이다. 조진호는 그와 함께한 동료, 이웃, 서민들 삶에서의 비애까지를 따뜻하게 아우르는 시선으로 비판적 형상성을 견인했다. 광주를 모티프로 비극적 서사의 바탕에서, 좀 더 애잔한 시선으로 이웃에의 애정을 덧붙였다는 것. 소박한 태도다. 부드러운 감성의 발현이기도 하다. 저항적 운동가였지만 운동의 근원인 사람과 세계에 대한 여린 공감의 시선을 가져서다. 미술과 운동 이전, 사람 냄새 나는 부드러운 성격과 감성을 지녀서 그런 모양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진호의 80년대 목판화가 2018년에 발굴되고 체계적으로 기록되어야 할 필요성은 거기에 있다. 80년대 목판화사에서 지역미술운동의 활동, 작품으로 드러나는 조형적 독자성, 그리고 세계에 대한 그의 따뜻한 시선 때문이기도 하다. ● 작가의 심성과 통일된 조형적 방법이 주제로 연결되는 진정성의 과정은 관객의 소통에의 집중을 강하게 만든다. 저항과 투쟁이 필요할 땐 그리 실천하고, 그 저항의 이면에선 恨을 넘어선 해원解寃의 넉넉함으로 서로 위무하고 보듬어주는 심성의 발현 같은 것 말이다. 그것은 무유등등의 무등산과 닮았다. 저항으로 날이 서있으되, 평화를 위한 보편적 세계정신에 이르는 광주시민의 의식처럼, 성숙한 품성이자 너비다. 그 근저에 무등산과 어머니를 같은 품으로 여기는 믿음이 있다. ● 조진호의 목판화는 현실적으로 광주의 자연과 문화와 정치적 기질을 소탈하게 담아낸 함지박이다. 엎어놓으면 무유등등한 형태로 무등산의 완만한 능선을 닮았다. 무기교의 소박한 칼질과 흔적은 풍상을 겪은 할머니의 손등이나 어머니의 눈빛과 비슷하다. 거기에 남도의 손때와 정서와 상흔과 삶의 힘이 담겨있다. 기록이자 기억이고, 내면이자 일상이기도 한 그런 힘이 조진호다움으로 그의 80년대 목판화에 질박하게 남아있다. 오로지 결과적인 작품을 통해서 드러나는 그 소탈한 정서가 귀하고 반갑다. 나무아트의 '한국현대목판화 발굴 프로젝트'에 조진호 작가를 소환한 건 바로 그런 작품의 제작과 소통과정에서의 미감이 증명하는 진실성을 보아서다. ■ 김진하


* 각주1) 無有等等 : 반야심경 '무등등(無等等)'에서 어원을 찾는다. '부처님은 세간의 모든 중생과 같지 않으므로 무등한 것이요', '무등등'은 '부처님이 가장 높은 자리에 있어서 견줄 이가 없다'는 뜻으로 '무유등등'은 부처 아래 있는 모든 만인은 평등하다는 의미가 된다. 이러한 어원의 '무등산'은 광주의 진산(鎭山)이자 모산(母山)으로 백제 때는 '무당산'으로 고려 때는 '서석산'으로 조선시대에는 '무등산'이라 불리웠다. 무등산은 '비할 데 없이 높은 산' 또는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산' 이기도 하고, 그 반대로 '너나 나나 같은 산' 이라는 평등의 의미도 담고 있다. '無有等等'과 '無等山'은 오랜 세월 속에 눅눅하게 녹아 들어 이제는 광주의 정신이자 상징이 되었다. - 광주시립미술관 '갤러리 GMA' 개관展 설명 중에서.2) 五月詩 : 21cm-23cm. 75면-300면 가량 등으로 판형과 면수가 다양하게 발행되었다. 1981년 7월에 1집이 나온 이후, 1985년 5월까지 총 5권이 발행되었다. 시 동인지인 이 잡지는 시를 주로 실었으며 3집부터는 동인의 평론과 산문 등도 함께 실었다. 각 권은『이 땅에 태어나서』(1집), 『그 산 그 하늘이 그립거든』(2집),『땅들아 하늘아 많은 사람아』(3집),『다시는 절망을 노래할 수 없다』(4집),『5월』(5집) 등으로 제목이 따로 붙어 있다. 처음에는 김진경, 박상태(박몽구), 나종영, 이영진, 박주관, 곽재구가 동인으로 참여하여 시 작품을 주로 발표하였으며, 이후에는 윤재철, 최두석, 나해철, 고광헌이 합류하여 시와 평론 등을 발표하였다.


Vol.20180905c | 조진호展 / CHOJINHO / 趙眞湖 / pr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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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나무화랑’에서 12일까지 열려

붓 대신 조각도를 들고 전국 팔도강산을 떠도는 김억(61세)은 가히 이 시대의 김정호라 할 만한 목판화가다.

그의 ‘남도풍색’ 목판화전이 오는 12일까지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열린다.

김 억은 그동안 우리의 땅과 산, 바다를 30여 년 동안 목판에 담아왔다.


▲남도풍색, 부분도


서양화의 원근법과는 달리 멀던 가깝던 한 눈에 볼 수 있는 그의 목판화는 한 폭의 산수화 같기도 하고, 마치 공중에서 내려다 본 도면 같기도 하다.


‘남도풍색’이란 자연풍경만이 아니라 대기와 기운, 그리고 그 곳에 사는 민초들의 문화적 풍모와 질긴 생명력까지 아우르는 말이다.


전시작은 “남도풍색‘을 비롯하여 만덕사의 다산초당, 백련사, 해남 땅 끝 마을, 덕룡산, 월출산, 보길도 등 10여점을 내놓았다.


특히 ’나무화랑‘ 전시장 한 쪽 벽면을 가득 메운 10미터에 달하는 대작 ’남도풍색‘은 압권이었다. 남도 300리를 새긴 이 작품은 장쾌하고도 섬세하며 유장하다. 남도의 정서가 압축된 거대한 서사라 하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역사와 삶의 문화, 그리고 정신까지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남도풍색, 한지에 목판화 60x959cm


다들 드럼으로 찍은 부감사진 같은 세밀화 작업을 어떻게 해냈을까 궁금해 하지만, 그는 오로지 걷고 걸어 국토미술의 독보성을 개척해 낸 사람이다. 그의 작업은 한마디로 '걸어 다니는 미술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문명의 편의성에 대한 유혹을 철저하게 물리쳤다고 한다.


자동차는 풍경 바깥까지는 운반 수단이 될지언정, 일단 풍경 안으로 들어서면 기어이 자연경제시대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 길'이란 유행가 가사처럼, 억척스레 걷고 또 걸으며 발품을 팔아가며 칼로 새겨낸 것이다.



▲남도풍색, 부분도


‘국토’를 소재로 진경(眞景) 목판 지리지 작업에 전념해 온 그의 작업은 바로 국토의 재발견이자 국토미술의 재발견이다. 그는 국토를 주유천하하며 무위를 관조하였다. 그러다 보면 마음의 그릇이 가득 채워지는 포만감을 느끼게 된다.


끝 간 데 없는 산봉우리와 굽이치는 물은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감동으로 물들이게 마련이다. 어느 시대나 예술가란 ‘여기’서 ‘저 너머’를 내다보는 몽상적인 존재들이 아니던가.



▲해남 땅끝마을외, 한지에 목판 릴리프 136,5x59,5


하이데거가 장소는 인간의 깊이를 위치시켜 준다 하였듯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지형적 공간과 사유를 통해 그것을 이해하고 체득한다. 달나라에 진짜 토끼가 있을까라는 어릴 적 호기심 같은 것이 상상력을 키워 예술의 씨앗이 되기도 하고, 초월의 계기도 되는 것이다.


김억의 국토미술 목판화는 분명 새로운 패러다임이고 새로운 로드맵이다. 그의 목판화는 이 땅의 문화 예술인들의 게으름을 나무라고 이 땅의 정치인들에게 도대체 그 동안 국토에서 무슨 짓거리를 벌여온 것이냐고 꾸짖는 새로운 질문이고 메시지였다.



▲덕룡산외, 한지에 목판 릴리프 136,5x55cm


김억은 작업노트에 이렇게 적고 있다.

“목판 위의 산계(山系)와 수계(水系)들은 하나의 실감으로 명증한 형태를 드러내고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물의 발원지와 경유지, 산맥의 뻗어가고 이어짐, 옛길과 도로들, 촌락들에 구체적 존재감을 불어넣는 일이다.


목판 위에서 풍부한 사실감과 존재감을 뿜어내는 자연 경관들은 그냥 그대로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다. 그것은 실존의 의미 있는 사건들이 이어지는 장소이며, 우리의 도덕적, 지적, 정신적 토대가 만들어지는 근원적 자리이다.


▲만덕산외, 한지에 목판 릴리프 136,5x59cm


이중환의 택리지에서는 지리를 보고, 생리(生利)를 얻으며 인심과 산수가 수려함을 살만한 곳의 으뜸이라 논하고 있다. 풍경은 마음속의 근원적인 형상과 상호 조응한다.”


작가 김억은 홍익대와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뒤 강단에 서기도 했지만, 주로 작업에 전념해 왔다. 우리 국토를 발로 따라가며 마음에 담아온 뒤 나무판을 촘촘히 깎고 그림을 찍어낸다.


▲월출산외, 한지에 목판 릴리프 136,5x57cm



1985년 관훈미술관에서 가진 ‘여름,가을,겨울,봄’이란 한국화전을 시작으로 수원화성, 한강 등 열여덟 차례의 개인 국토전을 가졌고, 국립현대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경기도립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인사동 ‘나무화랑’(02-722-7760)


[서울문화투데이 / 조문호기자/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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