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환·목판화 2019-1981

손기환展 / SONKIHWAN / 孫基煥 / painting 

2020_0226 ▶︎ 2020_0310



글_손기환, 김진하 || 판형_국배판 22.5×28cm || 초판발행_2019년 12월20일

ISBN_979-11-88845-02-6(부가기호 97650) || 정가_20.000원 || 발행인_김진하 || 발행처_나무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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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30pm



나무화랑

NAMU ARTIST'S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4-1 4층

Tel.+82.(0)2.722.7760



시공의 단층과 떨림-손기환 목판화의 역사적 형상성 ● 가로로 길게 늘어지는 풍경이 어느 지점에서 단층처럼 어긋나고 다시 다른 시점의 풍경으로 연결된다. 또 그 풍경은 거기 그렇게 가만히 있지 않고 진동한다. 대기도, 산도, 물도, 나무도, 기타 건물도 모두 비끼어서 흔들리듯 정지를 거부한다. 떨림-움직임-흔들림의 칼의 궤적, 시공을 건너뛰는 입체파적인 공간 몽타쥬, 호방하게 편집된 구도 등이 화면을 거침없이 견인한다. 그 화면은 "풍경화인가?" 싶을 정도로, 대상은 풍경으로 묘사되지 않고 활달한 필치의 밑그림과 듬뿍듬뿍 퍼낸 칼질로 거칠다. 풍경은 풍경이되 시각적 대상으로 소위 '멋진' 풍광은 해체되고 의도와 표현의 결과물인 어떤 상징이 '풍경'을 대신한다. 풍경이라기보다는 풍경을 통한 작가의 이념 혹은 지향성의 기호라고나 할까, 그도 아니면 감각 뒤에 숨겨진 분단의 현실적 리얼리티를 풍경으로 번역한 것이라 할까. 그러니까 그것은 그 풍광을 감상이나 관조의 대상을 넘어서서 현재 그렇게 존재하는 풍경의 조건에 대한 인식적, 그리고 반어적 접근으로의 풍경, 즉 시각에 대한 '反-풍경'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손기환_산수 A Scene at Korea_A.P 1/ Ed. 5_목판화에 한지릴리프_68×140cm_2017


"反-풍경. 풍경에 反한다는 것. 눈으로 보는 시각의 범주를 넘어서서 풍경을 풍경이 아닌 것으로 보는 것. 왜일까. 근대 이후 풍경은 죽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의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게 하라"는 명제처럼, 산업사회 이래로 인류는 자연을 개발의 대상으로 지명하고 그 능동성을 사살했다. 그런 폭력적 인위에 의해서 풍경도 자연과 함께 그 성격을 박탈당했다. 한국에서는 제3공화국에 들어서 서구의 근대적 개발방식을 추종했다. 국토는 난개발 되었고, 거기에 분단국의 군사적 목적까지 더해져서 풍경은 더 능욕을 당했다. 손기환의 「한강」연작은 이런 국토와 풍경의 죽음을 쓸쓸하게 독백한다. 자연은 간데없이 회색 가득한 화면에 GP와 벙커 넘버만 기입된, 전술적 작전지도의 개념이 '풍경화'를 대체한 현실을 형상 없이 그렸다. 뿐인가, 「DMZ-강박산수」연작에서는, 그가 근무했던DMZ의 기억과 전통적인 조선시대 문인화나 산수화에서의 풍경들이 오버랩되는 강박을 기록한다. 거꾸로 옛 산수화를 보면 DMZ의 풍경이 떠오르는 강박도 동시에…. 그것도 명료한 형광색으로. 그래서 손기환의 '산수山水'는 풍경이되 '反-풍경'이다. 한반도의 풍경, 그 표피적 일루젼 뒤에 감추어진 분단현실의 심리적 풍경이자, 이데올로기의 정치적 도해라서 그렇다." (김진하, 『정치적 팝, 팝의 정치학-손기환의 회화』 중에서, 나무아트, 2017)


손기환_산수 A Scene at Korea_A.P 1 / Ed. 5_목판화에 한지릴리프_68×140cm_2017


'반-풍경' 작업을 하는 이유는 작가의 동시대적 상황에 대한 태도와 통일하는 미적 이념에서 기인한다. 즉 그의 세계관과 미학이 향하는 건 감상의 대상인 경치가 아니라, 그런 작가의 생각과 시선을 반영하는 감성적 기호(記號)로써 분단풍경의 드러냄이다. 손기환만의 개인적 서정과 역사적 서사, 조형방식, 화면배치, 판각기법 등을 통해서 형상화된 도상의 상징적 조형방식으로 말이다. 손기환의 목판화에서 상징을 유발하는 주된 매개 이미지는 산수(山水), 즉 산과 강이다. 풍경으로 산과 더불어 강은 한국 근현대사의 역사성을 아우르면서 항일, 분단, 그리고 그런 역사적 사건들이 문화적인 결과로 반영되는 시간적 흐름과 공간에 대한 서술적·상징적 표지(表識)다. 거기에서 물이란 소재는 한강이나 임진강 등을 의미하기도, 또 현재적 일상과 과거의 역사를 연결하는 시간성을 리드미컬하게 매개하는 역할도 한다. 실제로 물이란 소재는 문예작품에서 그런 이미지와 역할을 한다. 예컨대 한 시대와 지리를 가로지르는 장편의 문학작품엔 큰 강을 의미하는 대하(大河)란 접두어를 그 장르적 특성으로 쓴다. '임꺽정'이나 '토지'와 같은 대하소설이나 '한라산'과 같은 대하시처럼 물은 역사성을 함축한 의미다. 장엄한 국토풍경과 함께 민중에 대한 삶의 이력이 산과 골, 강과 호수, 도시와 마을마다 유장하게 배어있다. 그 삶의 애환이, 역사로, 그리고 현장의 삶의 애환으로 드라마틱하게 스토리텔링으로 펼쳐지는 것이 대하문학작품이다.



손기환_산수 A Scene at Korea_Ed. 5_목판화에 한지릴리프_50×135cm_2016


물론 손기환의 회화나 판화는 장르와 형식적 조건상 그런 '이야기'를 서술하는 것은 아니다. 그 길고도 긴, 질기고도 질긴, 민중의 역사가 하나의 장면으로 압축되고 환원된 형상을 띄는 핵심적 이미지로, 손기환의 정서와 지향성을 드러내는 표현적이면서도 개념적인 사유의 결과다. 작가는 그 핵심적 형상으로 말을 대신하고 싶은 것이다. 역사에 대해서, 분단조국의 현실에 대해서, 월남한 아버지의 기원과 자식인 자신의 희구를 반영하면서 목판화란 장르형식과 드로잉, 그리고 칼과 맛 프린팅으로… 바로 그런 과정이 화면에서 목판화적인 상징성으로 돌올하게 된다. 특히 근작에서 이 모두를 아우르는 조형적 질료인 '물(水)'은 새로운 형식인 '릴리프'기법을 구사하는 더 큰 단서가 된다. 물이 있는 빈 여백을 채우는 묘철의 한지 표정으로 말이다. 이런 손기환의 목판화를 통해서 40여 년을 가로지르는 작업의 줄기는, 결국 역사는 단절되거나 정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현재-미래로 끊임없이 시제와 공간을 유동하며 넘나드는 움직임 혹은 운동의 맥락이라는 것이다. 그의 판화에서 한강이나 임진강(『강 건너 고향』 연작), 기타 통영이나 제주 풍경 등에서 물의 흐름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이런 시간성과 공간성이 역사성으로 대체되는 한 징표다. 그것은 일종의 염원이다. 크게는 비극적인 근현대사를 대체하는 성숙한 민주주의와 통일, 작게는 남북 이산가족의 재회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즉, 식민지와 분단 이후 군부독재로 대변되는 산업화시대를 거친 지식인 작가가 조국의 상황에 대한 정치적 인식의 문제의 의지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월남한 부친의 실향에 대한 슬픔-망향-그리움-귀향에 대한 간구가 그의 정서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한 가족이 피난과 이산을 통해서, 남쪽에서 정착하는 과정과 그 이후 귀향에의 염원을 안고 사는 것은, 분단이라는 정치사회적 사건과 문화현상의 한 전형이라 하겠다. 문학에서야 분단문학을 통해서 이런 크고 작은 실례들이 다양하게 형상화 되었지만, 미술에서는 한국전쟁 직후부터 서구 미술의 세례를 받은 모더니즘 형식론이 화단의 축을 형성하면서 그 서사적 형상성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그런 와중에 손기환은 회화와 만화를 통한 '팝 Pop'적인 방식으로 대하적 역사성을, 목판화를 통해서는 가족사로부터 분단으로 확대되는 제유(提喩)방식의 서사적 서정성을 펼쳐 보인다. 「물의 노래」, 「의병」, 「강 건너 고향」, 「우리 동네」 등으로 명제화 된 다소 을씨년스런 풍경들의 '분단기호'를 통해서 그의 이 '반(反)풍경'적인 풍경들은 한스럽게, 때로는 건조하고 을씨년스럽게, 또 때로는 장렬하고도 크게 우리 근현대사를 소환하고 있는 것이다. '풍경화'나 '산수화'의 자연 감탄의 풍경과는 전혀 다르게 한국현대사적 맥락으로 '山水'를 소환하며 재개념화하면서 내용과 형식의 연관이 자기 완결성을 띄고 있다는 점에서, 손기환의 목판화가 주목받아야 하는 근거는 충분하다. 기실, 한국 근현대목판화에서 역사·정치·사회를 정면으로 소재화해서 다루는 경우는 그리 많지가 않았고 또 단편적이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양기훈의 『혈죽도』, 1909년 『대한민보』의 이도영 그림-이우숭 판각의 만평 형식의 연재물, 그리고 1932년 조선일보에 연재한 이북명의 소설 『질소비료공장』의 이상춘 삽화가 있다. 이후 해방공간에서 정현웅·손영기·최은석 등의 좌파적 문예운동 이후 1980년대 민중미술에 이르기까지 그 맥락은 끊어졌었다. 그러던 것이 70년대 후반 오윤과 이상국의 등장, 80년대 이철수·조진호 · 홍성담 · 『두렁』 · 『목판모임-나무(손기환 · 이상호 · 이섭 · 정원철 · 김억 · 김진하…)』 · 화가 문영태가 기획한 『시민미술학교』 · 홍선웅 · 김준권 · 류연복 · 최병수… 등의 활동, 90년대의 이윤엽으로 다시 연결된다. 그러니까 손기환은 80년대 초반부터 『서울미술공동체』 · 『민족미술협회』 · 『목판모임 나무』를 통해서 목판화운동의 주역 중 하나로 지금까지 작업해오고 있는 것이다.

손기환_물의 노래-한강, The song of Water-Han river_A.P 2 / Ed. 25_한지에 목판화_12×90cm_1995
손기환_물의 노래-한강, The song of Water-Han river_A.P 2 / Ed. 10_한지에 목판화_12×90cm_1995
손기환_한강 Han River_A.P 2 / Ed. 10_한지에 목판화_12×90cm_1995
손기환_한강 Han river_A.P 2 / Ed. 10_한지에 목판화_12×90cm_1995
손기환_한강 Han river_A.P 2 / Ed. 10_한지에 목판화_12×90cm_1995


최근 손기환의 목판화는 그 형식에 있어서 하나의 전기를 맞았다. 일단 스케일이 대형으로 커지고, 그다음으로는 프린팅 과정에서 한지릴리프(Relief) 기법을 수용했다. 규모가 커진 작업은 판각이전 활달하고 액티브한 드로잉의 힘을 묘철의 표정으로 더 깊이 반영한다. 전보다 훨씬 더 직접적으로 몸의 반응을 실어냈다는 것. 저간의 손기환의 작업은, 회화와 판화를 막론하고, 디테일을 생략한 채로 짧은 작업시간의 집중력에 의한 표현성과 작업내용의 통일이 빚은 형상으로 그 개념성이 강했다. 그런데 큰 판화로 전이되면서 드로잉의 붓 맛은 더 강하되, 칼의 쓰임이 자유로워지면서 오히려 심미적인 '기운'이 더 '생동'하게 된 것이다. 뭐랄까, 서사적인 풍경화의 개념을 유지하면서도 추상표현주의적인 몸짓으로 드로잉하고 판각한 화면은, 그래서 살아서 진동하고 요동치는 듯 활발해진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 역설적으로 한지 저부조(低浮彫) 기법의 장인적 과정을 수용하면서 더 꼼꼼해진 입체적 화면은, 한지의 물성을 제대로 발현하며 질료적 물질성과 촉감이 더 견고해졌다. 판각하고 찍은 판화를 다시 빈 여백에 묘철로 텍스쳐를 준 판에 대략 6~7겹의 배접으로 릴리프를 한 이런 방식은 한지로만 가능한 기법이다. 긴 시간 반복되는 단순한 노동력과 작업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니까 드로잉과 판각에서의 회화적인 액션과, 릴리프 과정에서의 정교한 공예성을 합치면서 이전의 판화와는 다른 얼굴이 탄생한 것이다. 작업 내용과 개념이란 몸과 뼈대는 여전하나, 피부와 옷은 훨씬 세련되고 중후한 묵직함을 더하게 된 것이라고나 할까. 아니, 조형적 근육을 더 튼실하게 키웠다는 표현이 맞겠다.


손기환_희망 Hope_A.P 2 / Ed. 10_한지에 목판화_44×38cm_1994


한편 손기환의 또 다른 특징인 대상의 구체적인 묘사를 많이 생략해버린 실루엣의 형상은 여전하나, 근골과 뼈대로 구축된 대상의 형태감과 큐비즘적 공간 및 시간의 몽타쥬 형상은 강력하고 동적인 이미지로 확장되었다. 거기에 대담하고 호방한 터치를 곁들인 칼의 구사는 소재인 강과 산, 그리고 여타의 구조물과 건물들을 진동시키듯 시공을 흔든다. 대상의 정밀한 재현보다는 화면 전체를 동적인 움직임의 궤적으로 표현해냄으로 인해서 가능한 방식이고, 그것은 실루엣으로 대상의 외적 형태를 취했을 때 원근법이나 명암법이 제거된 평면성의 형태적 미감과 칼의 표정 때문에 그렇다. 마치 수묵화에서 운필의 운용이 빚은 이미지가 대상의 객체성을 대체한 주관적 표현성처럼 말이다. 이 지점은 손기환의 회화와 목판화가 완전히 다른 조형적 감수성을 띄고 있음을 의미한다. 개념과 인식을 통해서 대상을 파악하고 발언하고 소통하는 '물리적 풍경'이란 반성적 사유의 회화에 비해, 이 목판화는 '심리적 풍경'으로 좀 더 강한 표현적 감성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월남한 부친의 귀향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손기환이 대신해 드러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손기환_6월-고문 June-pain_A.P 1 / Ed. 5_한지에 목판화_38.5×65cm_1987


이처럼 미디어와 장르에 따라 같은 소재라도 작가적 어법과 장치를 달리하는 건 분명히 긍정적이다. 다양한 여러 장르의 미디어를 다루고 있는 작가(손기환은 회화, 만화, 애니메이션, 목판화 등의 다양한 장르를 다룬다)에게서는 각 미디어마다의 특징에 따라 진술방식을 달리해야 하는 멀티플레이어의 면모가 필요하다. 회화와 목판화에서는, 적어도, 손기환이 나름의 자기 언어와 스타일을 각기 독립적으로 확보했음은 분명하다(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쪽은 필자가 그 정보나 전문성이 모자란지라 여기서는 언급을 생략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증거하는 그의 독자적 시각작업의 형식성이 정치적 함의를 자연스레 발생시키는 소통성으로 연결되는 문제의식을 분명하게 보이고 있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관객들에 대해서 계몽적인 태도로부터 벗어난 수평적인 작품의 언술과 제시방식이 주는 교감의 폭이 넓어서 그렇기도 하다. ● 손기환은 난해한 미학적 수사를 통해 관객에게 선험적인 미적 아우라를 제시하지 않는다. 그의 미적 방식인 '팝'적 이미지와 거기에서 연유하는 소통과정의 정치적 공감력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내용과 분위기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목판화에서 이런 소통의 시도는 자연스럽다. 형식이 내용을 견인할 수 있는 튼실한 기량이 있어서다. 미술작품의 이미지가 어떻게 소통의 정치학으로 연결되는가는 작가의 세계와 작업에 대한 태도와, 거기에 비례하는 매체에 대한 인식, 그리고 표현 역량에 의해서 증명된다. 목판화를 다루는 손기환은 능숙하다. 그러면서도 기술적·기능적으로만 작업에 매달리지 않는다. 무엇을 위한 테크닉인가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최근 많은 목판화가 작가의 뛰어난 기술력은 보여주고 있으나, 적어도 자신의 미학적 이념과 목판화라는 매체의 개념적 합일에 대한 인식적 논리를 드러내는 경우는 빈약하다. 그런 기술과 기교가 무기력하고 무용한 이유다. 손기환은 자신이 목판화를 진행하는 분명한 목적성과 거기에 따른 문제의식을 스스로가 작업으로 증명하고 있기에, 우리시대 중요한 목판화작가 중 하나라고 단언할 수가 있는 것이다. 목판화 작업에 대한 관념적·문화속물주의자의 껍데기는 모조리 벗어 던진 채 자신의 미학적 목표점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분명하다. 특히 그의 근작은 이런 지점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Well made'의 미적 표현성과 함께, 동시대의 사회적 문제를 말하는 그의 목판화에 대한 역사적·조형적 문제의식으로 말이다. ■ 김진하



Vol.20200223a | 손기환展 / SONKIHWAN / 孫基煥 /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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