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봄바람인지 콧바람 쐬러 남도 강진으로 떠났다.
유배길인지 봄나들이인지도 모른 체 정영신씨 따라 나섰다.
우여곡절 끝에 이틀이나 늦게 떠났으나, 가는 목적을 몰라 더 궁금했다.
가는 이유는 아직 말할 단계가 아니란다.
무슨 공공칠 작전도 아니고, 여지 것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으니 답답했다.






새벽 일찍 떠났는데, 하필이면 봄비가 청승맞게 내렸다,
봄비하면, 왜 쓸쓸해지고 슬퍼질까?
이별이 연상되는 봄비가 유행가 가사 때문만은 아닐 것 같다.






병석에서 간신히 몸을 추슬러 떠나는 여행이라 그런지,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유배지로 알려 진 강진을 간다는 이유는 도대체 뭔가?
나야 유배 갈만한 위인은 아니니, 요양소 같은 곳에 버리러 가는 걸까?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호남 고속도록 풍경 또한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다.
‘부여 휴게소’에 차를 세워, 자판기 커피 한 잔 뽑아 생각에 빠져들었다,
무슨 도통한 도사처럼, 무위자연과 허무가 느껴졌다.
이 봄비가 암시하는 건 사람과의 이별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과의 이별 같았다.






다시 핸들을 잡았다. 찍찍 빗물을 가르는 와이퍼 소리까지 귀에 거슬렸다.
네 시간을 달려서야 도착할 수 있었는데, 처음 찾아 간 곳은 영랑 김윤식선생의 생가였다.
미리 약속해 두었는지, 남자 한 분과 인사를 나누며 소개시켰는데,

순수시를 추구하는 시문학파 기념관 도슨트으로 일하는 이재광씨였다.

영랑의 행적은 물론 사소한 뒷이야기 까지 구수하게 풀어 안내해 주셨다.






강진은 남도답사1번지로 불릴 만큼 ‘백련사’,‘다산초당’등 갈 곳이 널렸지만, ‘영랑생가’부터 찾았다.
‘모란이 피기까지 나는 아즉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잇슬테요.’로

시작되는 영랑 김윤식선생의 시를 떠 올리며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주변의 사물이나 사소한 환경이 선생의 시 소재로 등장한다는

이재광씨의 말을 들으며 잠깐이나마 선생의 시세계에 빠져보았다.






뒤뜰에는 동백꽃이 떨어지고 있었다.

이 즈음엔 곳곳에 동백꽃이 피지만, 남도의 동백만큼 처연하지 않다.

그것은 유배 온 자들의 여한이 묻어 있기 때문일까?






그 다음엔 다산 정약용선생의 첫 번째 거처로 사용된 ‘사의재’로 안내받았다.
정약용선생께서 처음 강진으로 왔을 때, 관청에서 고의로 거처를 마련해 주지 않아 떠돌았다고 한다.

딱하게 여긴 이 곳 주모가 방을 내주어 머물게 된 곳이 지금의 ‘사의재’라고 한다.






비록 주모는 바뀌었지만, 그 주막이었던 ‘동문매방가’에 들려 아침 겸 점심식사를 했다.

그런데, 아욱 된장국의 국 맛이 기가 막혔다.

이 얼마 만에 맛보는 진국이냐? 그 비결은 바로 아욱국에 푼 된장이었다.

밑 반찬도 정갈하고 다 맛있었는데, 가격도 착한 육 천 원이었다.

저녁에 강진만 갯벌탕에서 먹은 짱둥어탕도 맛있었지만,

아욱 된장국의 시원한 맛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마지막엔 갈대밭과 물오리가 어울리는 강진만생태공원으로 안내받았다.

역시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보다 역사가 있는 이야기가 더 마음을 움직였다.



 


이번 여행길은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나오는 명언이 그렇게 다가 올 수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눈이 침침한 것은, 필요 없는 작은 것은 보지 말고 필요한 것만 보라는 것이며,

귀가 잘 안 들리는 것은 필요 없는 작은 말은 듣지 말고, 필요한 큰 말만 들어 라는 것이고,

이가 시린 것은, 연한 음식만 먹고 소화불량 없게 하려 함이고,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운 것은 매사에 조심하고 멀리 가지 말라는 것이지요

머리가 하얗게 되는 것은, 멀리 있어도 나이든 사람인 것을 알아보게 하기 위한 조물주의 배려랍니다.

정신이 깜박거리는 것은, 살아온 세월을 다 기억하지 말라는 것이니,

지나 온 세월을 다 기억하면 아마도 머리가 핑 할 터이니 좋은 기억, 아름다운 추억만 기억할 터이고,

바람처럼 다가오는 시간을 선물처럼 받아들여, 가끔 힘들면 한숨 한 번 쉬고 하늘을 볼 것이라.

멈추면 보이는 것이 참 많소이다."






난 유배지를 방문하면 유배자의 시간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현실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이 풍광 좋은 고요한 유배지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오롯이 가질 수 있으니 말이다.



   



동백꽃이 떨어지듯 꽃 피는 것도 잠깐이지만, 사람 사는 것도 잠깐일 텐데,

이런 저런 걱정에 파묻혀 사는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니, 어찌 유배자가 부럽지 않겠는가?



 


정영신씨의 고향인 함평에 여장을 풀어, 그 이튿날은 시골 장터를 돌아서 상경하는 일정을 잡았다.

 

고풍스러운 장옥이 2년 전에 철거되었다는 나산장 부터 들렸는데, 진짜 깜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옛 장옥이 있던 자리에는 창고 같은 흉물 하나가 버티고 있었다

 언젠가 만들어질 '장터박물관'에 나산장옥도 옮겨야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개소리 말라는 투다.





나산시장을 비롯하여 월야시장, 무장시장, 봉동시장을 돌아 보았으나, 다 비슷 비슷했다.

멀쩡하게 지은 장옥을 두고, 후미진 골목에 좌판을 깐 장삿꾼들만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비록 이 곳만이 아니라 전국의 재래시장들이 '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이란 포탄에 전멸 상태다.

지역 실정은 개의치 않고 업자들과 손잡아 무조건 토목공사부터 벌이는, 꽉 막힌 탁상행정의 결과다.

도둑의 원조 격인 박근혜와 이명박이 잡혀갔으니 이젠 좀 나아지지려나...

 

사진, / 조문호

















































 

 


'화개장터의 냇물은 길과 함께 흘러서 세 갈래로 나 있었다…

경상 전라 양도의 경계를 그어주며 다시 남으로 남으로 흘러내리는 것이, 섬진강 본류였다.'

(김동리 소설 '역마(驛馬)' 중)

 


화개장터는 소설 '역마'의 주무대가 되는 곳이기도 하지만

조영남씨의 노래 '화계장터'가 인기를 끌며 더욱 유명해 졌다.

일단은 관광지나 장터는 유명해진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면서 부터 서서히 본래의 모습을 잃어 간 것이다.

갈 때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오래전의 화계장터 흔적들은 찾을 수 없었다.

장 모퉁이 한 쪽에 적혀 있는 다산 정약용의 '화계장' 시가 

옛날을 추억하게 할 뿐이다.


 
 

 

             

               화계장


          -다산 정약용-


조랑말 고개 늘여 골짜기 벗어나니,
나룻배 뜬 강에 봄물이 푸르구나.

따사로운 백사장에 이제 막 장이서니,
부엌마다 연기나고 술고기 벌려있네.

언덕엔 소와 말이 서로 얼려 희롱하고,
포구엔 돛배들이 엮은 듯이 총총하네,

송경. 중국비단이 거쳐서 들어오고,
울릉. 탐라의 생선도 이 곳으로 수입되네.

오고 가는 이 발길들 모두다 이익 때문,
그 누가 이를 말려 장사잇속 막을 손가.

돌아보니 지리산이 구름 속에 잠겨있고,
청학은 높이 날아 쫓아가기 어렵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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