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 옆에 선 최상철 작가. 사진 = 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마음을 비우는 순간 삶이 행복해진다” 등 경쟁사회에서 욕심을 버리라는, 마음공부를 권하는 글귀들이 많다. 말이야 쉽다. 실천이 어려워 문제지. 그런데 최상철 작가는 마음을 비우는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작품을 통해서다. 그가 갤러리 그림손에서 3월 8일까지 여는 개인전의 주제는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욕심을 버린 상태로’, 즉 무물(無物)을 지향하는 작품 시리즈를 보여준다.

검은 점들, 때로는 선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 것 같지만, 전반적으로 고요함이 느껴진다.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평온한 경지에 다다른 듯한 작가의 마음이 언뜻 보이는 듯하다. 작가는 욕심을 버리는 첫 단계로, 자신의 의지를 최대한 배제한다. “어떤 의지가 조금이라도 들어가는 순간, 의도치 않게 바로 욕심의 첫 밑거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작가는 “자본주의 사회 속 작품은 상품화 되는 경향이 크다. 그러다 보니 그림 속에 진실한 나를 담기보다 남들에게 멋지게, 근사하게 보이고 잘 팔리는 그림을 그리려는 의지가 들어가는 경우가 흔하다”며 “그림에서 욕심이 빠지려면 내 의지가 될 수 있는 대로 적게 적용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멋지게, 잘 보이려는 의지 말이다. 그러다보니 작업에 우연성이 많이 적용됐다”고 말했다.



▲ 최상철, ‘무물(無物) 14-12’. 캔버스에 아크릴릭, 145.5 x 97cm. 2014. 사진 = 갤러리 그림손



작가의 말처럼 무물(無物) 시리즈는 많은 우연이 모여 만든 결과물이다. 그의 작업엔 돌멩이와 물감이 꼭 필요하다. 일단 캔버스 양 가장자리에 울타리를 만들어 세운다. 그리고 이 캔버스를 바닥에 눕힌다. 돌멩이엔 고무바퀴를 달고, 이것을 물감을 풀어놓은 통에 담갔다가 뺀다. 그리고는 캔버스 위로 훌쩍 던진다.


위로 높이 도약했던 돌멩이는 캔버스 안에 떨어진다. 때로는 한 자리에 멈추기도 하고, 역동적으로 굴러다니기도 한다. 돌멩이의 흔적은 오롯이 캔버스에 남는다. 울타리에 부딪혀 방향을 바꾸며 선을 그리기도 하고, 물감이 주변에 번지기도 한다. 모두 돌멩이가 만들어내는 우연성의 결과물이다. 돌멩이에 뭍은 물감이 캔버스에 모두 스며들어 더 이상 흔적을 남기지 않게 되면 다음 돌멩이를 집어 든다. 한 작품에 평균 1000번 정도 돌멩이 던지기를 반복한다. 

돌멩이가 캔버스 위에 만들어내는 1000번의 우연

크기가 작은 작업보다는 주로 큰 작업 위주로 이뤄진다. 틀이 작으면 돌멩이가 보여주는 우연성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일반화된 패턴을 보일 수 있기 때문. 따라서 더 자유롭게 돌멩이가 마구 돌아다닐 수 있도록 큰 틀에서 작업한다. 체력적 한계도 있지만 완성된 작업은 작가에게 평온함과 자유로움을 준다고.


▲ 최상철, ‘무물(無物) 13-8’. 캔버스에 아크릴릭, 145.5 x 97cm. 2013. 사진 = 갤러리 그림손


연필 선이 무수히 그려진 작품도 눈길을 끈다. 이것 또한 우연성을 기본으로 의지를 최대한 배제한 작품이다. 앞뒤로 합판을 붙인 큰 패널을 수직으로 세우고, 의자에 앉아 이 화면 쪽으로 연필을 든 손을 뻗는다. 그리고 조용히 심호흡을 한 뒤 눈을 감은 상태에서 종이에 연필이 닿으면 종이를 조금씩 잡아당기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팔에 느껴지는 중력이나 심호흡 할 때의 가슴 흔들림이 연필에 전달된다. 그리고 조금씩 흔들리는 선이 화면에 그려진다. 한 개의 선을 긋는 데 평균 3분 정도가 걸린다.

작가는 “노자 사상 중 중요하게 거론되는 것 중 하나가 ‘하지 않고 한다’다. 정치하는 사람에게는 ‘다스리지 않고 다스리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는 이 이야기들을 내 작업에 ‘그리지 않고 그려지도록 하라’로 적용했다. 그리기는 의지를 넣는 것이지만, 그려지는 것은 모든 흘러가는 섭리와 우연에 맡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작가로 활동하면서 몇 십 년 넘게, 남들 못지않게 기술 훈련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욕심이라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고 필요없는 것인지를 조금씩 깨닫게 됐다. 손끝으로 그리고자 하는 의지를 버렸다”며 “작업을 할 때 항상 먼저 마음을 가라앉히는 명상을 한다. 마음을 비우는 과정 중 하나다. 온전하게 내 작품 속에 내 이야기를 담으려면 욕심을 버려야 한다. 앞으로도 이 작업은 꾸준히 이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뿔 The Horn


이희명展 / LEEHEEMYOUNG / 李希明 / painting


2015_0826 ▶ 2015_0907

 

이희명_거미숲_캔버스에 과슈, 아크릴채색_162×130cm_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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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명 블로그_heemyoung.egloos.com

 

초대일시 / 2015_0826_수요일_05:00pm

후원 / 서울시_서울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요일_12:00pm~06:30pm

 

갤러리 그림손GALLERY GRIMSON

서울 종로구 인사동 10길 22(경운동 64-17번지)

Tel. +82.2.733.1045

www.grimson.co.kr

 

 

이름 안에 구멍이 생기고 / 몸의 모서리는 지워진다. / 지평선 사이의 틈. / 심장에 돋아난 뿔. ● 멀리서 보았을 때 평화로운 것들이 가까이서 보았을 때 얼마나 치열하고 저열한 전쟁을 치루고 있는가. 꽃의 아름다움에 취해 다가가면 줄기마다 붙어있는 진드기들이 보일 것이다. 삶은 아름다움과 추함을 동시에 선물하며, 무작위적인 풍경과 질문들로 나를 놀라게 한다. 이러한 삶 속에서 예술이란 거울은 행복의 물음표를 비추며, 이제껏 많은 형상과 문답을 쏟아냈다. 삶의 무게와 헛헛함이 더해질수록, 고통과 인내 혹은 허랑한 뿔이 자라났다. 나는 내면에 존재하는 이 뿔을 마주하며, 토해낸 에너지와 함께 예술의 가치를 매번 증명하려 하였다. 그리고 그 가치에 대한 확신과 벽을 동시에 맞이하는 현재의 나, 현재의 뿔은 그만큼 허상과 진실 사이에서 방황하며 자라나고 있다.

 

이희명_희생제의_캔버스에 과슈, 아크릴채색_162×130cm_2014

 

이희명_모순 속의 모순_캔버스에 과슈, 아크릴채색_162×130cm_2012~4

 

이희명_Bottom Sound_캔버스에 과슈, 아크릴채색_130×162cm_2012~5

 

이희명_밤의 새_캔버스에 과슈, 아크릴채색_162×260cm_2013~4
 

이 뿔의 파편들은 나의 작품 속에서 조각나거나 왜곡된 인체의 형상들로 표면화 되어 나타난다. 특히 숲과 자연, 인간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삶과 죽음, 평화와 전쟁 등 양면적인 내용이 혼합된 인간 사회의 원초적 단면과 함께 자아의 음지를 대변하고자 하였다. 또한, 다른 이질적인 산물들과 자유롭게 결합하거나 해체되는 이미지의 변화를 통해, 화면 속에서 혼란한 긴장감과 미적인 자율성을 동시에 찾으려 하였다. 평온함으로 위장된 싸움이 계속되는 삶의 도화지처럼, 작품 속에서 이미지와 나는 동등한 시합을 이끌어내며, 팽팽한 줄다리기를 유지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희명_The Siren_천에 과슈, 아크릴채색_162×440cm_2014~5

 

이희명_Mind Game_캔버스에 과슈, 아크릴채색_72×60cm_2013~5

 

이희명_Pierrot Song_캔버스에 과슈, 아크릴채색, 유채_117×91cm_2013

 

이희명_낮은 독백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60cm_2014~5

 

이희명_커피와 담배_캔버스에 과슈, 아크릴채색_53×45cm_2013
 

나의 작품은 회색 둥지 속을 걷고 있는 인간의 그림자를 뜻한다. 이 그림자 속엔 외로움이란 꽃과, 허망한 유머의 날갯짓, 희망의 미세한 입김이 있다. 이 삶의 조형물들은 '뿔(The Horn)' 이란 카테고리 안에서 너와 나의 경계를 허물고, 서로를 향한 알몸의 아이들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 아버지가 말을 잃었을 때 어린 왕자는 별에서 떨어졌다. / 검은 달이 하얀 밤을 채우고 숲은 거짓말을 했다. / 허공을 떠도는 이름들. 혀의 파편이 만들어낸 우스운 소리 상자. / 적막의 눈 위에 까만 불이 켜지고 그림자의 뒷면이 찢어졌다. / 새파란 침묵과 비명 사이에서 뿔은 자라났다. ■ 이희명

 

 

Vol.20150826b | 이희명展 / LEEHEEMYOUNG / 李希明 /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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