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28cm x45cm 천위에 유채

정기호 유작전 '하늘보다 눈부신 파랑'이 인사동 '갤러리 인덱스'에서 4월5일부터 24일까지 열린다.

 

정기호 화백은 미치도록 그림만 그리다, 정말 미쳐버린 화가다.

초반에는 탯줄 같이 뒤엉킨 잿빛의 시리즈를 그렸으나,

그 뒤는 천상의 세계를 연상케 하는 다소 몽상적이며 낙천적인 그림을 그렸다.

그만의 해학이 담긴 동화 같은 정기호의 작품세계는 명상에 의한 자기 수련의 한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밤새도록 그림에 집중하다 실명 위기까지 간 적도 있었다는데, 결국 말년에 정신병원에 들어가셨다.

화구도 물감도 없는 정신 병원에서도 스케치북에 수많은 에스키스를 그리다 5년 전 운명하셨다.

 

행복한 화가일까? 불행한 화가일까?

 

글 / 조문호

고)정기호화백 / 조문호사진

 

평평한 존재자들의 세계

최근 과학기술학 등지에서 평평한 존재론(flat ontology)’이 뜨고 있다. 평평한 존재론은 크기와 상관없이, 권력의 편중과 상관없이 세상 만물에 우열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인간이 인간중심적 사고를 바탕으로 동물, 기계, 물질과 같은 비인간(nonhuman)을 도구화하고 도외시한 점을 비판하며, 모든 존재가 실재한다는 점에서 동등하며, 서로 연결되어 영향과 효과를 주고받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논자들은 객체들의 민주주의’, ‘사물정치등의 표현을 사용하는데, 그러한 용어들보다 더 효과적으로 평평한 존재자들의 세계를 가시화하고 있는 것이 정기호의 평면이다.

 

2008 72.5cm x 60.6cm 천위에 유채

평평한 존재자 1. 여인

 

정기호의 그림에서 여인은 부드럽다. 유려한 곡선과 흐름은 모두를 끌어안기에 적절하다. 자연 또는 실내에 누워 휴식을 취할 때도 세상을 향한 염려와 보호의 시선은 쉬지 않는다.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하지만 강함을 가진 존재이다.

 

1993 72.5cm x 60.6cm 천위에 유채

평평한 존재자 2. 자연

 

세모난 해의 햇살은 다리처럼 그 어디든 달려가서 비춘다. 나무는 곧게 또는 삐딱하게, 홀로 또는 함께 자라도 어디나 어우러진다. 꽃은 해만한 크기로 존재감을 드러내거나, 때로는 화가의 얼굴이 된다. 산과 바다, 연못과 같은 자연은 아예 인간의 형상이 되기도 한다.

 

2006 91cm x 72.7cm 천위에 유채

평평한 존재자 3. 동물

 

소는 그림을 그리거나, 여인을 관조하는 화가의 분신이다. 개는 여인의 곁에서 온기를 주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생활을 영위하는 독립체이기도 하다. 나무 꼭대기에 앉은 새는 세상을 향해 지저귀는데, 그 소리는 모든 존재자들에게 닿을 만큼 울림이 있다. 아이들을 태운 용은 하늘을 날면서 미소를 보인다. 정기호의 그림에서 동물들은 인간과 다름없거나 인간과 소통하는 존재다.

 

1994 72.7cm x 60.6cm 천위에 유채

평평한 존재자 4. 사물: , 이젤, 마차, , 교회

 

화가는 붓으로 이젤 위에 놓인 캔버스에 신의 숨결을 불어 넣는다. 인간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신의 숨결처럼 놀라운 창조와 변형 능력이다. 이성과 자연의 규칙을 초월해, 여인과 집, 나무를 태우고도 무거움을 모르는 마차는 구름과 바람의 도움을 받아 달린다.

 

1993 41cm x 31.8cm 천위에 유채

정기호의 그림에 등장하는 모든 존재는 평등하다. 이들은 나무-연못---얼굴 등으로 뗄 수 없는 사슬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 존재자들은 다시 다른 존재자와 결합하여 새로운 회집체(assemblage)를 만든다.

 

1990 40cm x 23cm 천위에 유채 ​

정기호가 만들어 놓은 매끈한 평면은 이러한 연결과 교환 그리고 새로운 배치를 자유롭게 실현한다. 이 평면에는 결합의 규칙과 같은 홈이 패여 있지 않다. 평면이 매끄럽기 때문에 무한 확장이 가능한 창조의 세계이다. 이곳에서 정기호는 존재자들의 크기와 형태를 다양화하고, 결합과 해체를 자유자재로 반복한다.

 

2002 53cm x 45.5cm 천위에 유채

그러나 이 세계의 화가는 다른 존재자들의 생사를 쥐락펴락하는 신과 같은 존재가 아니다. 정기호는 이 평평한 세계 안에 자리한 또 하나의 평평한 존재자, 단지 그림을 그리는 존재자로 머무는 것을 기뻐했다.

 

2008 72.7x60.6 천위에 유채

화가로서 그는 연결된 자연, 사물들이 이끄는 대로 숨을 참고 붓과 펜을 든 팔을 움직이는 수행자 역할을 했을 뿐이다. 그의 평면 위에서 이 모든 존재자들은 움직이고 새롭게 결합해 생명력과 자유로움을 누린다. 그 존재자들에게 하나하나 숨을 불어 넣어주었던 그가 그립다. 하늘이 눈부시게 파란 날에는 더욱 그렇다.

한의정 (미학, 충북대학교 교수)

 

 
1993 53x45.5 천위에 유채
1985 26.2x19 천위에 유채
1985 26.2x19 천위에 유채

 

삭막한 세상을 꽃피우는 고) 김기찬 선생의 대표사진선집 골목안 풍경이 출판되며,

‘Again 골목안 풍경 속으로사진전이 개막되었다.

 

지난 34일부터 인사동 갤러리 인덱스에서 열리는 김기찬선생의 골목안 풍경

보면 볼수록 정겹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아련한 추억을 불러 들이는 이토록 정겨운 사진을 어디서 볼 수 있겠는가?

지난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골목 안 풍경은 사진인 만이 아니라

그 시절을 살아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감을 느낄 수 있는 우리의 역사다.

 

더구나 권력 중심이나 가진 자들의 역사가 아니라 이름 없는 서민의 역사라 더 애착이 가고,

압축 성장에 의해 읽어버린 것들을 보여주는 터라 그 의미는 더 커다.

 

만약 김기찬 선생께서 서울의 골목을 기록하지 않았다는 것을 가정해보니, 한 순간 아찔해 진다.

그 많은 사진가들은 어디서 뭘 찍었을까?

 

35년 동안 오로지 서울의 골목풍정을 기록해 온 김기찬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도 어느 듯 십 팔년의 세월이 흘렀다.

 

모처럼 김기찬 선생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전시라 개막하기가 무섭게 찾아가 보았는데, 처음 보는 사진이 더 많았다.

그동안 골목 안 풍경 사진집을 여러 권 펴 내 대부분의 작품을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 사진들은 어디 갔다 이제 왔을까?

 

아마 선생께서 사진을 고르며 비 컷으로 분류되어 누락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내가 보기로는 여태 선정된 사진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는 좋은 사진이었다.

 

바둑판을 지켜보는 강아지의 귀여운 모습이나, 강아지를 안고 뛰어가는 소녀의 모습에서

그때나 지금이나 강아지가 가족처럼 친근한 존재임을 말해주며, 정겨움과 따뜻함까지 더해준다.

 

회초리를 들고 있는 아낙과 그 앞에서 우는 어린이의 모습을 보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사랑의 매라는 체벌이 일상화된 당시의 모습은, 지금으로서는 생각치도 못할 일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리어카에 달라붙어 짐을 옮기는 장면은 골목이라면 어쩔 수 없는 흔한 일이었지만,

정겨운 풍정에 가려 걱정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가파르고 계단이 많은 골목을 통해 이삿짐도 나르고, 서민의 필수품인 연탄이나 생필품을 옮기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급한 일이 생기면 소방차는 물론 구급차도 들어오지 못하는 열악한 상황이 아니던가?

 

그러한 열악한 조건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의 인정만은 넓은 아파트나 대궐 같은 저택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어린이들이 뛰 노는 정겨운 추억의 공간이기 이전에 서민들의 서러움이 담긴 공간이라는 것을 이 사진들이 잘 말해준다.

 

주옥같은 골목 사진들은 당시의 상황이나 애잔함을 직접 들려주는 것처럼 다정하고 생생하게 다가오며,

선생의 따사로운 온기가 느껴졌다. 그것은 지나치며 찍은 사진이 아니라 골목 사람들과 함께했기 때문이다.

세월에 의해 숙성된 사진이라 보면 볼수록 정겨워, 몇 차례나 돌아보았으나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골목을 사랑한 김기찬 선생이 더욱 그리워지는 시간이었다.

 

그리움과 더불어 아름다운 추억이 봄 아지랑이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골목 안 풍경 43일까지 열린다.

추억의 보물 창고를 놓치지 마시길 바란다.

 

/ 조문호

 

 

'신한화랑' 개관식에 참석한 원로사진가, 왼쪽 네째 이경모선생, 다섯째 임인식선생, 일곱번째 이해선선생, 열번째 성두경선생 / 임인식사진

인사동에 ‘눈빛사진산책’ 갤러리인덱스‘가 개관했다는 사실은

인사동에 불어오는 한 가닥 봄바람이 아니라 사진바람이다.

 예술 일번지에서 사진의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명동선생을 비롯한 원로사진가들이 인사동거리에 나섰다.

사진가들이 인사동을 드나들 때는 시인이 몰려들던 천상병선생의 ‘귀천’시절보다 훨씬 이전이다.

 

'북스갤러리'에서 열린 '인사동, 봄날은 간다' 전시 개막식에서...

1959년, 종군기자로 활동한 임인식선생께서 관훈동에 사진전문 갤러리인 '신한화랑'을 개관하며 비롯되었다.

임인식선생을 비롯한 성두경, 이해선, 이경모씨 등 작고한 원로사진가들이 자주 회합한 장소였다.

 

임인식선생게서 찍은 1953년의 인사동 거리

그곳에서 우리나라 사진 문화 발전을 도모하며 사진 아카이브 개념을 선도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한 인사동에 최초의 사진 화랑을 만든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옛 인사동 예총회관 앞 포장마차에서... 좌로부터 고영준, 조문호, 윤재성, 유성준

내가 부산에서 올라와 인사동과 인연을 맺은지는 1980년도 였다,

그 이전에 있었던 사진가들의 인사동 왕래는 알 수 없으나 남인사마당 맞은편 ‘예총회관’에

사진협회가 있어 사진인의 왕래가 잦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예총회관’에서 가까운 건물에 ‘꽃나라’라는 흑백현상소가 있었다.

 

인사동 골목에서... 고영준씨와 정영신씨

신작가로 불린 신희순씨가 운영한 ‘꽃나라’는 많은 사진인들이 몰렸다.

그곳을 왕래하는 사진인들이 ‘진우회(초대회장:양은환)’란 사진동아리를 만들었으니,

진로회 아닌 ‘진우회’가 인사동을 거점으로 활동한 최초의 사진 모임이었다.

 

'85동아미술제' 시상식에서, 좌로부터 고영준, 신희순, 양은환, 홍순태, 조문호, 정동석, 유성준

‘꽃나라’를 운영한 신희순씨는 참 성실하고 착한 분이었다.

촬영자의 뜻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프린트해 신작가란 별명이 생기지 않았나 싶다.

암실에서 인화하는 걸 보면 귀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는다.

오래된 시커먼 약물에서 건져내는 인화지에 상이 드러나는 것이 신기했다.

 

옛 진우회 회원들이 인사동에서 만났다., 좌로부터 유성준,이혜순,정용선,김종신,목길순,김흥묵,하상일,최성규,배창완,조문호

모든 게 정해진 데이터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고 감으로 결정하는데,

이미지를 변형시키는 몽타쥬에는 탁월한 재능을 가졌다.

한번은 하이포 약물통을 비워 보니, 약물에 쥐가 빠져 죽어있었다고 한다.

 

'인사아트프라자'에서 열린 박옥수씨 개인전에서 장사익씨가 축가를 부르고 있다

‘꽃나라’ 신희순씨의 인화는 콘트라스트가 강해 사진 계조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으나,

인화 가격이 재료비 정도 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싸다는 것이 매력이었다.

 주변에서 찍은 기념사진들은 맡겼으나, 필름 현상만은 맡길 수가 없었다.

그렇게 프린트된 사진들이 공모전 심사위원의 눈에 들어 줄줄이 당선되는 것을 어쩌랴!

명암이 강하면 일단 눈에 먼저 들어오니까...

 

인사동에 촬영 나온 안00, 이용정씨와 이기윤씨

‘꽃나라’ 암실에서 탄생한 대상 작가는 한 둘이 아니었다.

양은환씨와 이기윤씨가 국전에서 바뀐 '한사전'에서 대상을 받았고,

윤 옥, 이혜순씨는 ‘동아살롱’ 금, 은상을 수상하는 등 주요 공모전을 ‘꽃나라’에서 휩쓸었다.

 

'토포하우스'에서 열린 권철개인전에서,,,이규상, 김지연, 김남진, 정영신, 권철, 곽명우, 엄상빈 등

그러나 ‘꽃나라’를 운영한 신희순씨는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버렸다.

그토록 건강한 사람이 유명을 달리 한 것은 바람이 통하지 않는 암실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 약물중독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떻게 생각하면 사진이 그를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

 

인사동 거리에서... 좌로부터 김보섭, 정영신, 한정식선생

아무튼, 만 명이 넘는 공룡집단이 된 지금의 사진협회 회원 모두가

작가의 주관이 결여된 공모전이란 과정을 거쳐 모였으니,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구와바라 시세이 수상전에서,,,좌우로 김남진씨와 이규상씨가 있다.

이웃한 낙원동에는 민태영씨가 운영한 ‘한국사진학원’이 있어

지도교수로 있던 성낙인, 유동호씨도 종종 나타나셨다.

 

인사동 '양반집'의 원로 사진가 오찬모임, 좌로부터 한정식, 이완교, 이명동, 차용부, 황규태, 이기명

‘꽃나라’에 자주 방문한 사진인으로는 원로사진가 김대현, 정철용씨를 비롯하여

고영준, 양은환, 유성준, 김계산, 정동석, 정영신, 하상일, 이수영, 정용선, 윤 옥, 김종신, 박만재, 정철균

이혜순, 안영상, 변홍섭, 이기윤, 윤재성, 김정혜, 김순자, 민정진, 윤 옥, 고 헌, 최수영, 최성규

진대원, 배창완, 한상근씨 등 오래되어 이름도 가물가물한 많은 사진인들이 드나들었다.

 

인사동 벽치기골목의 '유목민' 에 모인 이광수, 한금선, 성남훈씨, 김문호씨 전시뒤풀이에서...

저녁 무렵이 되면 인사동의 삼겹살집이나 시골집에 모여 앉아

사진협회 비리를 안주 삼아 회포를 풀던 추억들도 아련하다.

 

'부산식당' 전시뒤풀이에서 고헌씨가 춤을 추고 있다. 옆엔 전상삼씨가 앉았다.

85년도 무렵 ‘귀천’이 생겨나며 사진인보다 문인이나 화가를 더 자주 만나게 되었다.

대표적인 분으로 민병산, 천상병, 박이엽 선생이 계셨고,

뒤를 이어 김동수, 이계익, 심우성, 강 민, 채현국, 황명걸, 이호철선생이 돌아가셨다.

그리고 적음스님에서 부터 강용대, 김종구에 이르기까지

전설처럼 인사동을 떠돌던 많은 분들이 이승을 하직했다.

 

옛 ;실비집'에서 찍은 기념사진. 실비대학 총장 모녀와 김종구, 김민경씨

김종구씨는 수시로 '실비집'이나 '시인통신'에 들려

오가는 거지 예술가들 술값을 도맡았으니,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육명심, 이명동, 한정식선생, 뒤에 이완교씨와 전민조씨도 보인다

87년도 '민주항쟁' 시절엔 김종구씨에게 필름도 많이 얻어 썼다.

필름이 떨어 져 인사동 ‘귀천’에 죽치고 있으면 체류탄 냄새를 풀풀 풍기며 들어와

진토닉 한 잔으로 분노를 삭혔다.

 

'갤러리 룩스'에서 열린 김영수 유작전에서.. 좌우로 곽명우씨와 정범태선생

박한웅씨도 한 때 인사동을 풍미했다.

사진가는 아니지만 당시 '사협' 회보 편집장으로 일하며

 사진판과 인사동 패거리를 오가며 여러가지 일화를 만들었다.

 

'실비집' 골목에서.. 좌측이 박한응씨고 그 옆은 조해인시인

사진인 모임은 술값을 똑같이 나누어 내지만, ‘실비집’ 술자리는 돈 있는 사람이 냈다.

돈 낼 사람이 없으면 외상도 통하는 인간적인 면이 참 좋았다.

 

인사동 '초당' 앞에 선 주명덕 선생

주명덕, 육명심선생도 인사동을 자주 찾으셨다.

주명덕 선생은 ‘초당’이 단골인데, 차보다 초당 보살이 더 좋았는지 모른다.

나도 그랬으니까...

 

'갤러리 나우' 옆에 사진가들이 모여있다.

육명심선생은 ‘갤러리나우’를 기점으로 '전각갤러리' 등 들리는 곳이 많았는데,

한번은 ‘백상사우나’까지 따라붙은 적이 있다.

목욕사진을 찍은 것 까지는 좋았으나, 경찰관이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인사동 '백상사우나'에서 찍은 육명심선생

인사동은 예술단체가 모여 있었다는 점도 또 하나의 특징이다.

남인사마당 맞은편의 포도대장 터에는 초창기 ’예총회관‘이 있었고,

80년대 중반에는 ‘민미협’이 생겼고, 88년에는 ‘민예총’이 건국빌딩에 둥지 틀었다.

 

인사동거리에서...한정식선생과 이완교선생

94년에는 고 홍순태선생이 총대 맨 ‘민사협’이 북인사마당 크라운베이커리 2층에 자리 잡으며,

예술 판도 진보와 보수로 나누어졌다.

 

인사동 '쌈지'를 배경으로 포즈 취한 김영수씨

김영수씨가 주도적으로 이끈 ‘민족사진가회’는 정범태, 주명덕, 홍순태, 이창남, 박옥수,

이갑철, 김광수, 양성철, 김영태, 정인숙씨 등 많은 사진가를 규합하여 활동했는데,

정기적인 기획전 외에도 한국사진사를 대표하는 굵직한 기획전도 여러 차례 열었다.

 

인사동 '관훈미술관' 앞에 선 정인숙씨

인사동에서 거주한 사진가로는 김영수, 정인숙씨가 유일하다.

‘민사협’ 사무실과 가까운 곳에서 살았는데, 콧구멍만한 방 하나와 암실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김영수씨가 세상을 떠남에 따라 ‘민사협’은 10년을 넘기지 못한 채, 막을 내리고 말았다.

세상을 떠나며 남긴 유물 같은 그 잡동사니와 집기들은 잘 있을까?

 

인사동 '이즈갤러리' 앞에서 만난 곽명우씨

그 당시 곽명우씨는 ‘민사협’의 행사 기록을 맡아 사진전이 열릴 때마다

전시장을 들락거렸으니, 누구보다 인사동과의 인연이 많은 편이다.

 

'갤러리 룩스'에서 열린 권태균사잔전에서... 좌로부터 박옥수, 정범태, 권태균

사진 모임에 끼이지 않는 사진가로는 한국일보 사진기자 김종구씨와

곤충사진가 이수영, 자유기고가로 활동한 이만주, 하형우, 김문호씨가 전부인데,

김문호씨는 이구영선생의 ‘이문학회’ 회원이라 주기적으로 인사동을 들락거렸다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김문호씨의 '풍리진경' 사진전에서..

2000년대의 인사동은 사진의 전성기였다.

2003년 김영섭화랑이 생겨나며 일본의 호소에 에이코사진전이 개관전으로 열렸고,

2006년은 ‘갤러리 나우‘의 개관에 이어 2007년은 ’갤러리룩스‘도 개관했다.

 

'갤러리나우'에서 열린 박진호씨의 '내가 저달을 훔쳤다'전에서 박진호씨가 양재문씨를 소개한다.

인사동에 사진전문화랑만 세 곳이나 생긴데다, 돌아가신 원로사진가 한정식선생의 ‘밝은방’과

사진평론가 진동선씨가 기획한 ‘하우포토’도 인사동에 있었다.

'밝은 방'에서는 한정식선생 제자인 김정일씨의 사진강좌도 있었다.

 

한정식선생의 작업실 '밝은 방'에서.. 옆에 안미숙씨도 있다.

그리고 한정식선생께서 정기적인 사진인 모임을 만든 것도 특기할 만한 일이다.

이명동선생을 모시는 오찬 모임 외에도 가까운 분들과 신년 모임을 갖는 등

틈틈이 사진가들을 인사동으로 불러 모아 친목을 도모했다.

 

'양반집' 오찬회, 좌로부터 유병용, 한사람 건너 이명동, 한정식, 이기명, 김녕만,이완교, 황규태선생

초청하는 인사로는 이명동선생을 비롯하여 육명심, 황규태, 이완교, 차용부, 구자호,

최재영, 유병용, 김녕만, 김영수, 윤세영, 이기명, 최경자, 이규상, 전민조, 김보섭, 이재준,

김생수, 엄상빈, 정영신씨 등의 사진가들이 인사동 ‘양반집’이나 ‘수연’에서 주기적으로 만났다.

 

'양반집' 오찬모임, 좌로부터 이완교, 최재영, 이명동, 구자호. 한정식. 유병용, 이기명, 김녕만씨

2011년부터 인사동에 차 없는 거리가 실시되며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이상한 거리로 서서히 변해가며 인사동의 사진 문화도 퇴행 길에 접어들게 된다.

 

김영섭씨가 '김영섭화랑에서 포즈를 취했다. (장성용사진)

인사동에 살가도와 브랏사이, 브레송, 빌 브란트, 로베르 두아노, 로버트 프랭크, 게리 위노그란드 등 세계 사진사에 남을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유치하여 사진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린 ‘김영섭화랑’이 먼저 문을 닫았고, 2015년에는 심해인씨가 개관한 ‘갤러리 룩스’도 옥인동으로 옮겨갔다.

 

'갤러리인덱스' 최건수관장이 반갑게 인사를 건낸다.

옮겨간 ‘룩스’를 최건수씨가 인수하여 ‘인덱스’로 바꾸었으나, 대관전으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했다.

그리고 이순심씨가 개관한 ‘갤러리 나우’도 사진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원룸 원포토' 캠페인을 벌이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2020년 2월, 14년간의 인사동 시대를 접고 강남으로 옮겨 사진에서 미술로 전향해 버렸다.

 

'갤러리나우' 이순심관장

인사동을 오가며 기록하는 사진인이야 헤아릴 수 없이 많으나,

이기윤씨와 김순자씨는 주말마다 ‘인사아트센터’ 앞에서 지나치는 이들의 표정을 망원렌즈로 포착했다.

때로는 정운봉, 이용정, 정철용씨 등 원로사진가들도 함께 있었다.

 

'인사아트센터' 앞이 촬영 대기실인가? 이용정씨와 이기윤씨가 보인다.

그렇게 열심히 기록하던 이기윤씨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는데,

그 많은 사진 자료들은 어찌 되었는지 궁금하다.

 

인사동에 있었던 '김영섭화랑 '

한때 ‘한사전’ 대상 수상 작가라는 영광도 아무 소용없었다.

반평생을 사진과 살았으나 개인전은 물론 사진집 한 권 내지 않았다.

하기야! 팔리지 않는 전시나 사진집 만드는 것 또한 자뻑에 불과하니까...

 

인사동 사진출력실 '아트온'을 방문한 인사동 사람들, 좌로부터 전활철, 김의권, 변형주, 김언경씨

89년에는 ‘툇마루’ 옆 건물 5층에 ‘카메라워크’란 취재대행 업소를 차려 ‘한국환경사진가회’ 사무실도 겸했다.

공덕동에서 충무로로 떠돌다, 2010년부터  정영신씨와 함께 '아트온'이라는 사진출력소를 다시 차렸다. 

 

인사동 '아라아트'에서 열린 '청량리588'사진전에 사진수강생들을 데리고 온 최건수씨

그 외에 인사동에서 업소를 운영한 사진가로는 고미술점 '하가'의 윤옥씨와

출판사를 운영한 안영상씨, 그리고  ‘구름에 달 가듯이’란 카페를 운영한 김수길씨가 있다.

 

'갤러리인덱스'가 있는 인덕빌딩

그리고 건물주와의 오랫동안 분쟁에 휘말렸던 인사동 복합문화공간 ‘KOTE’에서

성남훈씨를 비롯한 젊은 사진인들의 활약도 이어지고 있다.

 

'나무화랑에서 열린 정영신의 '어머니의 땅' 전시에서... 좌로부터 이규상,양시영

지금은 양한모씨가 운영하는 마루아트 ‘아지트’와

‘눈빛‘ 안미숙관장이 운영하는 ‘갤러리인덱스’가 사진갤러리로 남았다.

 

지난 11일, '갤러리인덱스'가 재 개관하며  ‘그해 겨울은 따뜻 했네’로 막을 올렸다.

1948년 겨울, 이름도 모르는 어느 미군이 촬영한 소중한 기록이다.

 

그리고 '눈빛'에서 출판한 800여종의 사진책을 한 자리에 모아 놓았다.

진귀한 사진집을 골고루 만날 수 있으니, 도랑치고 게잡는 일이 아닌가. 

인사동 가는 길에 32계단의 '눈빛사진산책' 하자.

 

‘그해 겨울은 따뜻 했네’는 2월 13일까지 열리지만, 인사동 사진바람은 계속분다.

 

G A L L E R Y I N D E X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인사동길 45. 인덕빌딩 3층 02-722-6635

사진, 글 / 조문호

 

인사동 '수연' 에서 열린 신년오찬회에서...
찻집에 들린 사진가들, 좌로부터 김생수, 이재준, 김보섭, 전민조, 이규상, 엄상빈, 한정식선생

 

35년 동안 사진 책만 만들어 온 ‘눈빛출판사’가 인사동에 사진 전문 갤러리 ‘인덱스’를 개관했다.

 

서인사주차장으로 가는 인사동11길 옆에 위치한 '갤러리인덱스'

지난 11일 오후3시 무렵, 인사동에 있는 전시장을 찾아 나섰다.

전 날 마신 술에다 감기까지 걸려, 술자리를 피하고 싶어 차를 끌고 나간 것이다.

옛 '수희제' 자리인 '도채비도 반한 찻집'을 거쳐가는 32계단의 사진산책이었다.

 

전시장에는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를 비롯하여 ‘인덱스갤러리’ 안미숙관장

아트디렉터 김지연씨, 사진가 김보섭, 엄상빈, 정영신, 이은숙, 임재천씨도 있었다.

 

좌로부터 안미숙 관장과 김지연 아트디렉터 / 전민조사진

개관 첫 전시로 걸린 사진은 어느 미군병사의 눈에 포착된 1948년 겨울의 서울이었다.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란 제목처럼 애잔한 그리움이 몰려오는 정겨운 풍정이었다.

 

그때는 한반도에 소련군과 미군이 주둔해, 민족분단의 서막이 오를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 겨울이 지난 지 몇 달도 되지 않아 남과 북은 갈라지고 말았다.

 

전시된 사진들은 75년의 세월을 되돌린 소중한 기록이었다. 

설빔 입은 아이들의 옷 색깔이 한층 아름다운 것은, 그 때 사진들은 흑백으로 밖에 볼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기개 넘치는 어른들의 모습에서는 한 가닥 희망도 엿보였다.

 

‘눈빛아카이브’가 소장한  슬라이드 필름은 촬영한 사람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부 사진에 미군정 관계자가 있는 것으로 보아 미군에 의해 촬영된 것으로 추정 된다,

 

미국으로 건너간 원판이 어떤 경로를 통해 경매에 흘러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75년 전의 사진이라면 내가 태어난 이듬해다.

사진 속의 어린이들이 살아 있다면 팔순이 넘었을텐데, 전시된 사진을 본다면 알아볼까?

 

그리고 전시된 사진 외에도 ‘눈빛출판사’에서 발행한

사진서적도 700여종이나 진열되어 사진의 진가를 골고루 찾아 볼 수 있었다.

 

이형록 사진집에 게재된 1959년도작품, '강화도아이들'

둘 곳도 주머니 사정도 여의치 않지만, 사진 책만 보면 욕심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12년 전에 펴낸 이형록선생 작품집을 정동지 책 사는데 꼽사리 끼어 한 권 구입한 것이다.

오래전 부터 사고 싶었지만, 다른 책에 밀려 번번히 사지 못했던 원을 기어이 풀었다.

책 속의 보지 못한 사진 한 장만으로도, 스스로 준 새해 선물로는 최고였다.

 

많은 사진 중에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를 개관전에 내놓은 것도 시사 하는바가 크다.

유명작가의 내용 없는 작품보다 무명작가의 시대적 기록이 더 소중하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아래는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의 글이다.

“내용 없는 사진 홍수 속에서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혼란스러웠던가. 또 우리가 제 것을 버리고 남의 것을 얼마나 탐해왔는가를 오히려 미군정기 틈입자의 시선을 통해 확인해보고자 한다. 식민과 전쟁(태평양전쟁)을 겪은 조선인들이 이방인의 카메라 앞에서 저렇게 당당하고 의젓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들은 또 얼마나 발랄한가. 그해 겨울 ‘종이거울’ 속의 사람들은 나라를 잃었어도 기개를 버리지 않았고 가난해도 비굴하지 않았으며 혹한 속에서도 그 어떤 생명력으로 충만해 있었다고 사진은 전한다.”

 

이 전시는 2월13일까지 이어진다.

 

 어쩌면 '눈빛출판사'와 '인덱스갤러리'의 융합은 시대적 요구인지도 모른다.

사진 소장자가 점차 늘어나는 현실이기도 하지만, 출판과 전시는 불가분의 관계가 아니던가?

단지 불경기란 것이 마음에 걸릴 뿐이다.

솔직히 말해, 사진인의 한사람으로서 ‘눈빛출판사’에 대한 부채의식도 지울 수 없다.

 

‘눈빛’이 없었다면 우리나라의 소중한 기록, 아니 우리나라의 역사가 이렇게 남아 있겠는가?

만들면 만들수록 손해 보는 사진책을 만들 수 밖에 없는 것은 사진의 가치 이전에 장인정신의 귀결이다.

다들 시간 내어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전시도 보고, 진귀한 사진집도 구입하자.

전시된 작품과 함께 한국사진을 골고루 살펴 볼 수 있으니 '도랑치고 게잡는 일' 아니겠는가?

 

아무튼, 인사동 눈빛사진산책 ‘인덱스갤러리’가 우리나라 기록사진의 전당이 되길 축원한다.

 

사진, 글 / 조문호

 

 

말 풍경∙말 풍선

[사진∙말∙천국=Photography∙Text∙Utopia=Photextopia]"

사진∙Photography ↔

아이콘∙Icon-인덱스∙Index-심벌∙Symbol에 관한 썰(說)"

 

이강우展 / LEEGANGWOO / 李康雨 / photography 

2021_1027 ▶ 2021_1109

 

이강우_말 풍경∙말 풍선 PHOTEXTOPIA_C 프린트_70×47cm_202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7:00pm

 

갤러리 인덱스

GALLERY INDEX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45 인덕빌딩 3층

Tel. +82.(0)2.722.6635

www.galleryindex.co.kr

 

 

사진∙이미지! 그대를 향한 헌사(獻辭) ● 사진! 그대와 나는 애증의 관계이다. 이제 나는 그대를 거역할 수 없다. 그대는 나에게 매우 각별하다. 그대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 그대와 나는 숙명적 동반자이다. ● 빛으로 농밀하게 빚어진 그대! 참으로 매력적인 그 자국! 진정 그대는 수려하고 화사하고 강렬하고 육감적이고 즉각적이다. 그대를 수놓은 색깔과 명암과 농담도 정말 섬세하고 오묘하고 싸하고 느낌적이다. 그대는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고 오롯이 낚아채어 과거로 남겨버린다. 그대에게 찰나와 그 연쇄는 자신이 세상에 존재해야할 바로 그 이유이다. 그대는 매순간을 즐기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대의 흔적은 곧잘 존재와 인식이라는 까탈하고 난해한 차원의 문제로 치환된다. 그리고 종종 그것은 신화적 차원으로까지 끌어올려진다. ● 그대의 시선은 늘 외부로 향한다. 그대는 나로 하여금 세상을 내다보거나 들여다보도록 만든다. 그대는 자신을 통해 나를 반추하도록 유도한다. 그대는 부유하면서 자신을 소비하도록 이끈다. 그대는 과거의 사건이나 장면을 기민하게 현시하고 즉각적으로 지시한다. 그대는 그 힘으로 나의 눈과 의식을 예리하게 찌르고 불현듯 기억을 호명한다. 그리하여 그대는 나로 하여금 과거를 현재로 착시하고 거기에 직시하도록 인도한다. 그대는 얼마든지 자신을 증식하도록 나에게 자신의 몸을 내맡긴다. 진정 그대가 상시적으로 베푸는 복제와 전파의 은혜는 나에게 하해와 같다. 정녕 그대가 보시하는 무한증식으로의 해탈은 인류에게도 축복이다.

 

이강우_썰(說)-사진과 말의 밀당 Pushing and Pulling between Photography and Saying_

이미지, 거울, 텍스트, C 프린트_108×540cm_2021

이강우_썰(說)-사진과 말의 표리 Two Sides between Photography and Saying_

이미지, 거울, 테스트, C 프린트_90×450cm_2021

이강우_말-말을 해야 한다∙말도 쉬어야 한다∙말은 달려야 한다_

C 프린트, 이미지, 텍스트_18×324cm_2021

 

자연은 자신의 근원적 질서에 따라 조화로우면서도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인류는 자신의 사회이념과 시대정신과 굳은 욕망으로 대지의 곳곳에 깊숙한 외상(外傷)을 남긴다. 그대는 그러한 현상들을 예리하고 리얼하고 세밀하게 포획하는 남다른 능력을 갖췄다. 그대가 대상을 단일시점으로 납작하게 압축해서 물질화하고 정보화하는 능력은 경탄스럽다. 사각의 평면에 균일하고 균질하게 현시된 그대는 바늘로도 찔리지 않을 만큼 견고해 보인다. 그렇게 정밀하게 구현된 그대의 환영 체는 또 하나의 독자적인 세계 같다. ● 그대는 삶과 사회의 현실에 대한 밀착과 노출에 안성맞춤이다. 진실성의 신화를 몸에 두른 그대가 발휘하는 사회적 영향력이나 여론형성능력도 만만치 않다. 그런 그대를 선점하거나 점유하려는 주체들(개인∙집단)이 벌이는 경쟁은 항상 치열하다. 그대는 인간사(개인∙가족∙단체∙사회∙국가)의 대소사를 전형적인 방식으로 기념한다. 그대는 자신을 통해 성∙연령∙계층∙계급별로 구조화된 질서와 스타일과 그 차이를 노출시킨다. 그리하여 그들 각자에게 사회적 낙인을 찍어주고 공고한 제도의 틀을 다시금 각인시킨다. ● 그대는 여행과 찰떡궁합이다. 여행자와 더불어 그 즐거움을 만끽하며 자신의 재능을 한껏 드러 낸다. 그런데 그 이면에 숨은 한 의미가 흥미롭다. 그대는 여행자를 따라가며 곳곳을 배경으로 한 지배자적 형식과 승리적 감각이 어우러진 기념물로 남는다. 이때의 그대는 여행자가 그 장소에 대해 갖는 일종의 정복 내지 소유 의식의 발로이자 그 표상 체라 할만하다. ● 그대가 엄정하고 객관적인 모습을 갖추기란 여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대에게는 주체(인간∙사회)의 이념과 의지와 선택과 감각이 필연적으로 개입되기 때문이다. 다만 그대에게 작용하는 그러한 주관성을 어느 정도까지 최소화할 수는 있겠다. 그대는 자신이 가진 어쩔 수 없는 나약함을 애써 방어하거나 감추려하지 않는다. 줄곧 자신에게 밀어닥칠 수많은 간섭이나 압력에 고스란히 자신을 열어둔다. 그리하여 그대는 자신에 대한 각각의 반응과 개입과 재단과 쓰임새를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이강우_말이 필요 없을 법한 사진 - 뜬 구름 속으로 날아오르다_

C 프린트_112×90cm_2021

이강우_말을 부르는 사진 - 철암 2006_C 프린트_40×120cm_2021

이강우_말을 부르는 사진 - 사북 2006_C 프린트_40×120cm_2021

이강우_내가 말을 가장 많이 쓴 사진–1979 부산마산민주시민항쟁도

_혼합재료_300×1100cm_1999

 

그대는 화려한 기술과 빼어난 감각으로 나의 눈을 사로잡고 심리와 결핍을 자극하며 욕망을 부추긴다. 결국 나는 그대에게 포섭되어 그대의 포로가 되고 만다. 그대가 던지는 현란한 유혹이나 내밀한 추파를 외면하기 어렵다. 그 누구라도 방심하는 순간 거기로 빨려 들어가 명멸하고야 만다. 그대는 은밀하게 도촬을 즐기다가 예기치 않은 시점에-요사스런 방식으로-전격 등장한다. 그대의-찰거머리 같은-파파라치 컷은 단숨에 사회로 퍼지며 대중의 이목을 확 끌어당긴다. 그리고 수많은 가십과 소문을 횡행하게 만들어 사회적 쟁점을 흐리거나 국면을 전환시킨다. ● 그대는 일상의 친숙한 동반자인 반면 삶과 문화로 포장된 제도이자 구조화된 권력이다. 그대는 자신의 그러한 상반적 면모를 굳이 감추려하지 않는다. 물론 그대는 자신의 그러한 이중성을 교묘하게 위장하거나 은밀하게 숨길 줄도 안다. 그대는 인류의 삶과 문화와 사회에 풍요로움을 안겨준 것만은 아니다. 그대는 지배 권력과 함께 하면서 인류에게 뼈아픈 상처를 안기는 데에 크게 일조해왔다. 아직도 그대는 인류에 대한 관찰∙감시∙관리∙통제∙격리∙통치∙지배의 수단으로 사랑받는다. ● 그대는 나를 두드리고 일깨우고 주무르는 이미지요 물질이요 정보요 미디어이자 메시지이다. 그대는 실재∙허상, 존재∙인식, 기록∙표현, 순수∙실용, 과학∙예술 등의 영역을 부단히 오간다. 그대에게서 여전한 자랑거리는 실재를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탁월한 유사적 재현성이 아닐까? ● 그대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는 화가가 이미지 생산을 주도하고 일부계급이 그 소유를 독점했었다. 그대의 출현과 산업화와 관련기술 발전은 이미지 생산∙유통∙소비∙소유의 전반을 혁신시켰다. 이제는 폰 카메라와 1인 다중 미디어 시대로 넘어오며 그것의 대중화가 더더욱 촉진 중이다. 그 지형도 많이 변하여 지금은 그대를-예전처럼 숙련된 전문가가 아니라-대중이 주도한다. ● 정보로 치환된 그대는 확장된 유통망과 다양한 소통망을 따라 세상에 상시적으로 전파되고 공유된다. 그대에 대해 사람들이 던지는 각양각색의 시선과 반응(댓글)은 그대를 만든 주체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요로로 자리 잡았다. 이제 그대를 매개로 해서 많은 사람들은 예전처럼 나르시시즘을 은밀하게 탐닉하기보다 공개적으로 즐긴다.

이강우_사진의 문맥을 채집하기 Collecting the Context of Photography_

이미지, 단어, 텍스트, C 프린트_29.7×42cm×10_2021

이강우_썰(說)-사진과 말의 밀당 Pushing and Pulling between Photography and Saying_

이미지, 거울, 텍스트, C 프린트_108×540cm_2021

 

현재 그대의 활동 반경은 드넓고 그 영역도 다양하다. 인류가 관장하고 있는 가시 세계에서 초거시∙초미시 세계에 이르기까지 손을 뻗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이다. 최근 과학∙기술 분야에서 그대가 수행하는 다양한 첨단의 역할과 그 업적은 실로 놀랍다. 그대가 열어주는 비가시 세계의 경이로운 광경들에 그저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 그대는 이 시대의 생생한 화석이자 기념비로 칭송받는다. 그런 만큼 그대는 어떤 절대자로서의 성상에 비견될만하다. 그러하기에 그대는 내게 경외의 대상이다. ● 사진∙이미지! 그대의 수명은 무한하다. 반면 내 인생은 너무 짧다. 아! 사진과 관련하여 한마디를 덧붙이자면... 그대는 나름의 '당파적 관점과 논리'를 등에 업고 세상에 자신만의 '독자적인 존재성(Index)'을 한껏 뽐낸 바 있다. 그런 그대가 한쪽에서는 예술의 바다에 한 다리를 걸친 채 꾸준히 노를 저어왔다. 이제 예술에서 그대는-그대가 펼쳐온 표현의 차원과는 별개로-그대 자체만으로도 예술적 의미와 가치의 대상으로 후하게 대접받는다. ■ 이강우

 

 

Vol.20211027d | 이강우展 / LEEGANGWOO / 李康雨 / photography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