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의 해학이 담긴 동화 같은 정기호의 작품세계는 명상에 의한 자기 수련의 한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밤새도록 그림에 집중하다 실명 위기까지 간 적도 있었다는데, 결국 말년에 정신병원에 들어가셨다.
화구도 물감도 없는 정신 병원에서도 스케치북에 수많은 에스키스를 그리다 5년 전 운명하셨다.
행복한 화가일까? 불행한 화가일까?
글 / 조문호
고)정기호화백 / 조문호사진
평평한 존재자들의 세계
최근 과학기술학 등지에서 ‘평평한 존재론(flat ontology)’이 뜨고 있다. 평평한 존재론은 크기와 상관없이, 권력의 편중과 상관없이 세상 만물에 우열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인간이 인간중심적 사고를 바탕으로 동물, 기계, 물질과 같은 비인간(nonhuman)을 도구화하고 도외시한 점을 비판하며, 모든 존재가 “실재한다는 점에서 동등”하며, 서로 연결되어 영향과 효과를 주고받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논자들은 ‘객체들의 민주주의’, ‘사물정치’ 등의 표현을 사용하는데, 그러한 용어들보다 더 효과적으로 평평한 존재자들의 세계를 가시화하고 있는 것이 정기호의 평면이다.
2008 72.5cm x 60.6cm 천위에 유채
평평한 존재자 1. 여인
정기호의 그림에서 여인은 부드럽다. 유려한 곡선과 흐름은 모두를 끌어안기에 적절하다. 자연 또는 실내에 누워 휴식을 취할 때도 세상을 향한 염려와 보호의 시선은 쉬지 않는다.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하지만 강함을 가진 존재이다.
1993 72.5cm x 60.6cm 천위에 유채
평평한 존재자 2. 자연
세모난 해의 햇살은 다리처럼 그 어디든 달려가서 비춘다. 나무는 곧게 또는 삐딱하게, 홀로 또는 함께 자라도 어디나 어우러진다. 꽃은 해만한 크기로 존재감을 드러내거나, 때로는 화가의 얼굴이 된다. 산과 바다, 연못과 같은 자연은 아예 인간의 형상이 되기도 한다.
2006 91cm x 72.7cm 천위에 유채
평평한 존재자 3. 동물
소는 그림을 그리거나, 여인을 관조하는 화가의 분신이다. 개는 여인의 곁에서 온기를 주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생활을 영위하는 독립체이기도 하다. 나무 꼭대기에 앉은 새는 세상을 향해 지저귀는데, 그 소리는 모든 존재자들에게 닿을 만큼 울림이 있다. 아이들을 태운 용은 하늘을 날면서 미소를 보인다. 정기호의 그림에서 동물들은 인간과 다름없거나 인간과 소통하는 존재다.
1994 72.7cm x 60.6cm 천위에 유채
평평한 존재자 4. 사물: 붓, 이젤, 마차, 집, 교회
화가는 붓으로 이젤 위에 놓인 캔버스에 신의 숨결을 불어 넣는다. 인간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신의 숨결처럼 놀라운 창조와 변형 능력이다. 이성과 자연의 규칙을 초월해, 여인과 집, 나무를 태우고도 무거움을 모르는 마차는 구름과 바람의 도움을 받아 달린다.
1993 41cm x 31.8cm 천위에 유채
정기호의 그림에 등장하는 모든 존재는 평등하다. 이들은 나무-연못-새-해-얼굴 등으로 뗄 수 없는 사슬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 존재자들은 다시 다른 존재자와 결합하여 새로운 회집체(assemblage)를 만든다.
1990 40cm x 23cm 천위에 유채
정기호가 만들어 놓은 ‘매끈한 평면’은 이러한 연결과 교환 그리고 새로운 배치를 자유롭게 실현한다. 이 평면에는 결합의 규칙과 같은 홈이 패여 있지 않다. 평면이 매끄럽기 때문에 무한 확장이 가능한 창조의 세계이다. 이곳에서 정기호는 존재자들의 크기와 형태를 다양화하고, 결합과 해체를 자유자재로 반복한다.
2002 53cm x 45.5cm 천위에 유채
그러나 이 세계의 화가는 다른 존재자들의 생사를 쥐락펴락하는 신과 같은 존재가 아니다. 정기호는 이 평평한 세계 안에 자리한 또 하나의 평평한 존재자, 단지 그림을 그리는 존재자로 머무는 것을 기뻐했다.
2008 72.7x60.6 천위에 유채
화가로서 그는 연결된 자연, 사물들이 이끄는 대로 숨을 참고 붓과 펜을 든 팔을 움직이는 수행자 역할을 했을 뿐이다. 그의 평면 위에서 이 모든 존재자들은 움직이고 새롭게 결합해 생명력과 자유로움을 누린다. 그 존재자들에게 하나하나 숨을 불어 넣어주었던 그가 그립다. 하늘이 눈부시게 파란 날에는 더욱 그렇다.
인사동에 살가도와 브랏사이, 브레송, 빌 브란트, 로베르 두아노, 로버트 프랭크, 게리 위노그란드 등 세계 사진사에 남을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유치하여 사진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린 ‘김영섭화랑’이먼저 문을 닫았고, 2015년에는 심해인씨가 개관한 ‘갤러리 룩스’도 옥인동으로 옮겨갔다.
'갤러리인덱스' 최건수관장이 반갑게 인사를 건낸다.
옮겨간 ‘룩스’를 최건수씨가 인수하여 ‘인덱스’로 바꾸었으나, 대관전으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했다.
그리고 이순심씨가 개관한 ‘갤러리 나우’도 사진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원룸 원포토' 캠페인을 벌이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2020년 2월, 14년간의 인사동 시대를 접고 강남으로 옮겨 사진에서 미술로 전향해 버렸다.
'갤러리나우' 이순심관장
인사동을 오가며 기록하는 사진인이야 헤아릴 수 없이 많으나,
이기윤씨와 김순자씨는 주말마다 ‘인사아트센터’ 앞에서 지나치는 이들의 표정을 망원렌즈로 포착했다.
35년 동안 사진 책만 만들어 온 ‘눈빛출판사’가 인사동에 사진 전문 갤러리 ‘인덱스’를 개관했다.
서인사주차장으로 가는 인사동11길 옆에 위치한 '갤러리인덱스'
지난 11일 오후3시 무렵, 인사동에 있는 전시장을 찾아 나섰다.
전 날 마신 술에다 감기까지 걸려, 술자리를 피하고 싶어 차를 끌고 나간 것이다.
옛 '수희제' 자리인 '도채비도 반한 찻집'을 거쳐가는 32계단의 사진산책이었다.
전시장에는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를 비롯하여 ‘인덱스갤러리’ 안미숙관장
아트디렉터 김지연씨, 사진가 김보섭, 엄상빈, 정영신, 이은숙, 임재천씨도 있었다.
좌로부터 안미숙 관장과 김지연 아트디렉터 / 전민조사진
개관 첫 전시로 걸린 사진은 어느 미군병사의 눈에 포착된 1948년 겨울의 서울이었다.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란 제목처럼 애잔한 그리움이 몰려오는 정겨운 풍정이었다.
그때는 한반도에 소련군과 미군이 주둔해, 민족분단의 서막이 오를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 겨울이 지난 지 몇 달도 되지 않아 남과 북은 갈라지고 말았다.
전시된 사진들은 75년의 세월을 되돌린 소중한 기록이었다.
설빔 입은 아이들의 옷 색깔이 한층 아름다운 것은, 그 때 사진들은 흑백으로 밖에 볼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기개 넘치는 어른들의 모습에서는 한 가닥 희망도 엿보였다.
‘눈빛아카이브’가 소장한 슬라이드 필름은 촬영한 사람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부 사진에 미군정 관계자가 있는 것으로 보아 미군에 의해 촬영된 것으로 추정 된다,
미국으로 건너간 원판이 어떤 경로를 통해 경매에 흘러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75년 전의 사진이라면 내가 태어난 이듬해다.
사진 속의 어린이들이 살아 있다면 팔순이 넘었을텐데, 전시된 사진을 본다면 알아볼까?
그리고 전시된 사진 외에도 ‘눈빛출판사’에서 발행한
사진서적도 700여종이나 진열되어 사진의 진가를 골고루 찾아 볼 수 있었다.
이형록 사진집에 게재된 1959년도작품, '강화도아이들'
둘 곳도 주머니 사정도 여의치 않지만, 사진 책만 보면 욕심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12년 전에 펴낸 이형록선생 작품집을 정동지 책 사는데 꼽사리 끼어 한 권 구입한 것이다.
오래전 부터 사고 싶었지만, 다른 책에 밀려 번번히 사지 못했던 원을 기어이 풀었다.
책 속의 보지 못한 사진 한 장만으로도, 스스로 준 새해 선물로는 최고였다.
많은 사진 중에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를 개관전에 내놓은 것도 시사 하는바가 크다.
유명작가의 내용 없는 작품보다 무명작가의 시대적 기록이 더 소중하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아래는 ‘눈빛출판사’ 이규상대표의 글이다.
“내용 없는 사진 홍수 속에서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혼란스러웠던가. 또 우리가 제 것을 버리고 남의 것을 얼마나 탐해왔는가를 오히려 미군정기 틈입자의 시선을 통해 확인해보고자 한다. 식민과 전쟁(태평양전쟁)을 겪은 조선인들이 이방인의 카메라 앞에서 저렇게 당당하고 의젓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들은 또 얼마나 발랄한가. 그해 겨울 ‘종이거울’ 속의 사람들은 나라를 잃었어도 기개를 버리지 않았고 가난해도 비굴하지 않았으며 혹한 속에서도 그 어떤 생명력으로 충만해 있었다고 사진은 전한다.”
이 전시는 2월13일까지 이어진다.
어쩌면 '눈빛출판사'와 '인덱스갤러리'의 융합은 시대적 요구인지도 모른다.
사진 소장자가 점차 늘어나는 현실이기도 하지만, 출판과 전시는 불가분의 관계가 아니던가?
단지 불경기란 것이 마음에 걸릴 뿐이다.
솔직히 말해, 사진인의 한사람으로서 ‘눈빛출판사’에 대한 부채의식도 지울 수 없다.
‘눈빛’이 없었다면 우리나라의 소중한 기록, 아니 우리나라의 역사가 이렇게 남아 있겠는가?
만들면 만들수록 손해 보는 사진책을 만들 수 밖에 없는 것은 사진의 가치 이전에 장인정신의 귀결이다.
다들 시간 내어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전시도 보고, 진귀한 사진집도 구입하자.
전시된 작품과 함께 한국사진을 골고루 살펴 볼 수 있으니 '도랑치고 게잡는 일' 아니겠는가?
사진∙이미지! 그대를 향한 헌사(獻辭)● 사진! 그대와 나는 애증의 관계이다. 이제 나는 그대를 거역할 수 없다. 그대는 나에게 매우 각별하다. 그대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 그대와 나는 숙명적 동반자이다. ● 빛으로 농밀하게 빚어진 그대! 참으로 매력적인 그 자국! 진정 그대는 수려하고 화사하고 강렬하고 육감적이고 즉각적이다. 그대를 수놓은 색깔과 명암과 농담도 정말 섬세하고 오묘하고 싸하고 느낌적이다. 그대는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고 오롯이 낚아채어 과거로 남겨버린다. 그대에게 찰나와 그 연쇄는 자신이 세상에 존재해야할 바로 그 이유이다. 그대는 매순간을 즐기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대의 흔적은 곧잘 존재와 인식이라는 까탈하고 난해한 차원의 문제로 치환된다. 그리고 종종 그것은 신화적 차원으로까지 끌어올려진다. ● 그대의 시선은 늘 외부로 향한다. 그대는 나로 하여금 세상을 내다보거나 들여다보도록 만든다. 그대는 자신을 통해 나를 반추하도록 유도한다. 그대는 부유하면서 자신을 소비하도록 이끈다. 그대는 과거의 사건이나 장면을 기민하게 현시하고 즉각적으로 지시한다. 그대는 그 힘으로 나의 눈과 의식을 예리하게 찌르고 불현듯 기억을 호명한다. 그리하여 그대는 나로 하여금 과거를 현재로 착시하고 거기에 직시하도록 인도한다. 그대는 얼마든지 자신을 증식하도록 나에게 자신의 몸을 내맡긴다. 진정 그대가 상시적으로 베푸는 복제와 전파의 은혜는 나에게 하해와 같다. 정녕 그대가 보시하는 무한증식으로의 해탈은 인류에게도 축복이다.
이강우_썰(說)-사진과 말의 밀당 Pushing and Pulling between Photography and Saying_
이미지, 거울, 텍스트, C 프린트_108×540cm_2021
이강우_썰(說)-사진과 말의 표리 Two Sides between Photography and Saying_
이미지, 거울, 테스트, C 프린트_90×450cm_2021
이강우_말-말을 해야 한다∙말도 쉬어야 한다∙말은 달려야 한다_
C 프린트, 이미지, 텍스트_18×324cm_2021
자연은 자신의 근원적 질서에 따라 조화로우면서도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인류는 자신의 사회이념과 시대정신과 굳은 욕망으로 대지의 곳곳에 깊숙한 외상(外傷)을 남긴다. 그대는 그러한 현상들을 예리하고 리얼하고 세밀하게 포획하는 남다른 능력을 갖췄다. 그대가 대상을 단일시점으로 납작하게 압축해서 물질화하고 정보화하는 능력은 경탄스럽다. 사각의 평면에 균일하고 균질하게 현시된 그대는 바늘로도 찔리지 않을 만큼 견고해 보인다. 그렇게 정밀하게 구현된 그대의 환영 체는 또 하나의 독자적인 세계 같다. ● 그대는 삶과 사회의 현실에 대한 밀착과 노출에 안성맞춤이다. 진실성의 신화를 몸에 두른 그대가 발휘하는 사회적 영향력이나 여론형성능력도 만만치 않다. 그런 그대를 선점하거나 점유하려는 주체들(개인∙집단)이 벌이는 경쟁은 항상 치열하다. 그대는 인간사(개인∙가족∙단체∙사회∙국가)의 대소사를 전형적인 방식으로 기념한다. 그대는 자신을 통해 성∙연령∙계층∙계급별로 구조화된 질서와 스타일과 그 차이를 노출시킨다. 그리하여 그들 각자에게 사회적 낙인을 찍어주고 공고한 제도의 틀을 다시금 각인시킨다. ● 그대는 여행과 찰떡궁합이다. 여행자와 더불어 그 즐거움을 만끽하며 자신의 재능을 한껏 드러 낸다. 그런데 그 이면에 숨은 한 의미가 흥미롭다. 그대는 여행자를 따라가며 곳곳을 배경으로 한 지배자적 형식과 승리적 감각이 어우러진 기념물로 남는다. 이때의 그대는 여행자가 그 장소에 대해 갖는 일종의 정복 내지 소유 의식의 발로이자 그 표상 체라 할만하다. ● 그대가 엄정하고 객관적인 모습을 갖추기란 여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대에게는 주체(인간∙사회)의 이념과 의지와 선택과 감각이 필연적으로 개입되기 때문이다. 다만 그대에게 작용하는 그러한 주관성을 어느 정도까지 최소화할 수는 있겠다. 그대는 자신이 가진 어쩔 수 없는 나약함을 애써 방어하거나 감추려하지 않는다. 줄곧 자신에게 밀어닥칠 수많은 간섭이나 압력에 고스란히 자신을 열어둔다. 그리하여 그대는 자신에 대한 각각의 반응과 개입과 재단과 쓰임새를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이강우_말이 필요 없을 법한 사진 - 뜬 구름 속으로 날아오르다_
C 프린트_112×90cm_2021
이강우_말을 부르는 사진 - 철암 2006_C 프린트_40×120cm_2021
이강우_말을 부르는 사진 - 사북 2006_C 프린트_40×120cm_2021
이강우_내가 말을 가장 많이 쓴 사진–1979 부산마산민주시민항쟁도
_혼합재료_300×1100cm_1999
그대는 화려한 기술과 빼어난 감각으로 나의 눈을 사로잡고 심리와 결핍을 자극하며 욕망을 부추긴다. 결국 나는 그대에게 포섭되어 그대의 포로가 되고 만다. 그대가 던지는 현란한 유혹이나 내밀한 추파를 외면하기 어렵다. 그 누구라도 방심하는 순간 거기로 빨려 들어가 명멸하고야 만다. 그대는 은밀하게 도촬을 즐기다가 예기치 않은 시점에-요사스런 방식으로-전격 등장한다. 그대의-찰거머리 같은-파파라치 컷은 단숨에 사회로 퍼지며 대중의 이목을 확 끌어당긴다. 그리고 수많은 가십과 소문을 횡행하게 만들어 사회적 쟁점을 흐리거나 국면을 전환시킨다. ● 그대는 일상의 친숙한 동반자인 반면 삶과 문화로 포장된 제도이자 구조화된 권력이다. 그대는 자신의 그러한 상반적 면모를 굳이 감추려하지 않는다. 물론 그대는 자신의 그러한 이중성을 교묘하게 위장하거나 은밀하게 숨길 줄도 안다. 그대는 인류의 삶과 문화와 사회에 풍요로움을 안겨준 것만은 아니다. 그대는 지배 권력과 함께 하면서 인류에게 뼈아픈 상처를 안기는 데에 크게 일조해왔다. 아직도 그대는 인류에 대한 관찰∙감시∙관리∙통제∙격리∙통치∙지배의 수단으로 사랑받는다. ● 그대는 나를 두드리고 일깨우고 주무르는 이미지요 물질이요 정보요 미디어이자 메시지이다. 그대는 실재∙허상, 존재∙인식, 기록∙표현, 순수∙실용, 과학∙예술 등의 영역을 부단히 오간다. 그대에게서 여전한 자랑거리는 실재를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탁월한 유사적 재현성이 아닐까? ● 그대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는 화가가 이미지 생산을 주도하고 일부계급이 그 소유를 독점했었다. 그대의 출현과 산업화와 관련기술 발전은 이미지 생산∙유통∙소비∙소유의 전반을 혁신시켰다. 이제는 폰 카메라와 1인 다중 미디어 시대로 넘어오며 그것의 대중화가 더더욱 촉진 중이다. 그 지형도 많이 변하여 지금은 그대를-예전처럼 숙련된 전문가가 아니라-대중이 주도한다. ● 정보로 치환된 그대는 확장된 유통망과 다양한 소통망을 따라 세상에 상시적으로 전파되고 공유된다. 그대에 대해 사람들이 던지는 각양각색의 시선과 반응(댓글)은 그대를 만든 주체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요로로 자리 잡았다. 이제 그대를 매개로 해서 많은 사람들은 예전처럼 나르시시즘을 은밀하게 탐닉하기보다 공개적으로 즐긴다.
이강우_사진의 문맥을 채집하기 Collecting the Context of Photography_
이미지, 단어, 텍스트, C 프린트_29.7×42cm×10_2021
이강우_썰(說)-사진과 말의 밀당 Pushing and Pulling between Photography and Saying_
이미지, 거울, 텍스트, C 프린트_108×540cm_2021
현재 그대의 활동 반경은 드넓고 그 영역도 다양하다. 인류가 관장하고 있는 가시 세계에서 초거시∙초미시 세계에 이르기까지 손을 뻗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이다. 최근 과학∙기술 분야에서 그대가 수행하는 다양한 첨단의 역할과 그 업적은 실로 놀랍다. 그대가 열어주는 비가시 세계의 경이로운 광경들에 그저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 그대는 이 시대의 생생한 화석이자 기념비로 칭송받는다. 그런 만큼 그대는 어떤 절대자로서의 성상에 비견될만하다. 그러하기에 그대는 내게 경외의 대상이다. ● 사진∙이미지! 그대의 수명은 무한하다. 반면 내 인생은 너무 짧다. 아! 사진과 관련하여 한마디를 덧붙이자면... 그대는 나름의 '당파적 관점과 논리'를 등에 업고 세상에 자신만의 '독자적인 존재성(Index)'을 한껏 뽐낸 바 있다. 그런 그대가 한쪽에서는 예술의 바다에 한 다리를 걸친 채 꾸준히 노를 저어왔다. 이제 예술에서 그대는-그대가 펼쳐온 표현의 차원과는 별개로-그대 자체만으로도 예술적 의미와 가치의 대상으로 후하게 대접받는다. ■이강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