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제3회 블루展 

2022_1019 ▶ 2022_1025

강유림_others-gazing_장지에 한국화_162.2×112.1cm_2021

 

초대일시 / 2022_1019_수요일_05:30pm

 

참여작가

강유림_권기철_김희진_노신경_모용수_문기전

박윤순_신주호_이경훈_이해기_임종두_정보연

 

후원 / BLUE 후원회

(강해경_구혁서_김덕신_김상규_김상원_김윤미

김일래_김재우_박근후_박시영_신명주

심맹식_이남곤_이성구_조천희_하태수)

 

관람시간 / 10:30am~06:00pm

 

갤러리 라메르

GALLERY LAMER

서울 종로구 인사동5길 26(인사동 194번지)홍익빌딩 1,2층 제3,4전시실

Tel. +82.(0)2.730.5454

www.gallerylamer.com@gallerylamer

 

더 넘어를 향하여 ● BLUE회가 창조의 빛깔을 담아 세 번째 정기전을 엽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섬처럼 만들고, 인류가 걸어온 길을 재조명해야 했던 역경의 시기에 창립하였습니다. 가혹한 난관에도 따뜻한 정이 넘치는 후원과 작가의 창작의지로 작품을 선뵈게 되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BLUE회는 다양성이 대자연의 결과인 것처럼 작가와 다양한 분야의 후원회원으로 이루어져 조화로운 면모를 갖추었습니다. 시간의 층이 쌓여 가면서 합심하여 연주하는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연상하게 합니다. 예술적으로 살고자 하는 갈망은 예술의 미래가치를 이야기하며 삶의 품격을 나눕니다. 예술에 있어서 후원은 창조하는 힘이 있습니다. 천지의 마음과 같이 길러내는 힘입니다. 후원이라는 씨를 뿌리면 반드시 꽃을 피우게 마련이고 문화재라는 미래로 남습니다. 예술작품은 살아오는 힘이 있고 유폐되지 않는 까닭입니다. 그래서 마음내기도 어려운 후원은 감동적인 예술의 모습을 지녔습니다. 관심과 사랑이 아름다움을 만들어 냅니다. 후원에 대한 의미와 소중한 가치가 더 해져, 더 넘어서의 세계로 향해 갈 것입니다.

 

권기철_untitled_한지에 먹_155×212cm_2022
김희진_Swallow_혼합재료_80.3×53cm×3_2022
노신경_inbetween 3030_한지에 바느질_145×112cm×2_2021
모용수_사랑합니다_캔버스에 유채_100×300cm_2018
문기전_관계풍경 Q-L-R 7 (Quantum-Landscape-Relationship)_종이에 연필_90×160cm_2021
박윤순_floralcomposition_캔버스에 유채_60×50cm×3_2022
신주호_심연 心淵_마천에 혼합재료_80.5×117.5cm_2022
이경훈_The sound of mine_리넨에 유채_116.8×182cm_2019
이해기_쿠사나가라 가는 길_비단에 분채, 금_46.5×109.5cm_2022
임종두_天地創造_장지에 석채, 금박_130.3×162cm_2022
정보연_한남동 2021_천에 수간안료, 금분_100×200cm_2021

예술의 영역은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범위가 확장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관객이 작품을 대하고 교감하는 고유의 방식은 대체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예술은 사고의 폭을 넓히고 위안을 얻을 수 있게 합니다. 지난해에 이은 대작 전시는 동시대 미술의 역할과 우리의 마음을 하나로 엮어주는 경지에 닿으리라고 봅니다.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늘 걷습니다. 창조의 기운으로 오늘도 걷는 작가들이 모였습니다. 구도자와 같은 태도로 작품을 보여 주신 작가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예술가들을 물심양면으로 가장 의미 있게 돕고 성장시키는 방식을 아시는 후원회원님들께도 깊은 감사와 존경의 말씀을 드립니다. BLUE회가 더 넘어서의 세계를 바라

보며 영속되기를 염원합니다. (2022. 9) ■ 임종두

 

Vol.20221019c | BLUE-제3회 블루展

인사동에서 전혀 다르게 접근한 두 가지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전쟁지역이나 소외지역을 기록한 성남훈의 “부유하는 슬픔의 시”와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알리는 한희준의 “플라스틱2”가

인사동 ‘KOTE’ 3층과 '갤러리 라메르' 1층에서 각각 열리고 있다.

 

둘 다 사진전이지만, 전자는 발로 뛴 다큐멘터리사진이고

후자는 머리로 만든 파인아트 사진이라는 것이다.

 

사진적으로 접근한 성남훈의 사진과는 달리 한희준은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았다.

사진과 회화, 설치미술을 넘나드는 혼종의 방식을 택한 것이다.

 

사진 개념이 확장되어 구분하는 자체가 고리타분한 생각이겠지만,

엄밀히 말해 한희준의 사진은 사진이 아니라 미술의 영역이다.

 

어떤 접근법이 더 바람직한가는 아무도 모른다.

내가 볼 때는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 문제다.

 

다큐사진가 성남훈의 ‘부유하는 슬픔의 시’는

지난 10일부터 오는 29일까지 인사동 복합문화공간 KOTE 3층에서 열린다.

 

이 전시에는 성남훈의 대표적 사진으로 꼽히는 집시소녀 사진도 있었다.

프랑스 사진에이전시 ‘라포’ 소속 사진가로 일할 당시에 촬영한 사진들로,

20여년에 걸쳐 세계의 수많은 분쟁지역과 소외지역을 찾아다니며 유민들의 부유하는 삶을 기록해 왔다.

 

코소보, 보스니아, 르완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레바논, 우즈베기스탄,

인도네시아, 에티오피아, 우간다, 페루, 발칸반도 등을 찍은 사진에서 일부를 보여준다.

난민들의 모습을 기록한 사진들을 살펴보면 한숨과 탄성이 절로 나온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 난민들의 고통을 온 몸으로 껴안으며 찍었다.

따뜻한 인간애에 휩싸여 더러는 서정적이고 시적인 느낌까지 든다.

 

세계 여러 나라의 전쟁지역이나 소외지역을 찍은 사진 외에도

제주 4.3사건을 주제로 한 “붉은 섬”도 새로이 선보였다.

제주의 아름다움에 감춰진 4.3사건이라는 역사적 아픔을 찾아 나선 것이다.

1948년 4.3사건 후, 7년 7개월 동안 3만 명에 가까운 주민들이 무고하게 희생되었지만,

유가족과 희생자들이 겪었던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못한 채 남아있기 때문이다.

 

성남훈의 사진은 온몸으로 부딪히며 찍은 사진이라

작품이 주는 울림이나 여운이 만든 사진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 와 다른 방법으로 접근한 한희준은 심각한 환경문제를 들고 나왔다.

그가 만든 사진 아닌 이미지는 카메라 없이 만든 ‘플라스틱2’다.

7월19일까지 인사동 ‘갤러리 라메르’ 1층 전시실에서 열린다.

 

초창기 인화방식인 검 프린트, 시아노타입 프린트에서부터

플라스틱 병에 흙과 에폭시를 혼합하는 등 표현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그리고 인화지에 인화하는 기존 틀에서 벗어나 헝겁, 유리, 한지 등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다양한 재료와 방법을 활용해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알리는 사회적 접근이라는 점에서는 다큐의 골격을 유지하나

표현방법에서는 기록사진의 객관화를 버리고 주관적 방법을 택한 것이다.

플라스틱은 잘 분해되지 않아 지구의 재앙이 된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지난 번 보여 준 ‘플라스틱1’에서는 세계 명소에서 나오는 생수병을 찍어,

좋은 생명수를 오염의 근원인 프라스틱 병에 담아 마시는 모순을 풍자하기도 했다.

이젠 한걸음 더 나아가 플라스틱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형상화하거나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차용하였다.

 

프라스틱 물병의 뒤틀린 형상으로 인체가 허물어지는 경각심을 깨우거나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시아노타입의 푸른 빛깔은 마치 영혼이 떠도는 것 같다.

죽음을 상기시키며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 이미지는 영상이 아니라 완전한 추상화다.

인지의 영역에서 벗어나 사유의 측면을 강조하였다.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면에서는 높이 평가되지만,

그 대신 사진의 기록성과는 결별한 것이다.

 

그렇지만 방법론에 고민하며 표현 방법을 확장해 간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겠다.

아무래도 대중에게 오염의 심각성을 인지시키는 데는 직설적인 사진에 미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온몸으로 부딪히며 찍은 성남훈의 사진에 따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사진에 바친 세월이 성남훈씨에 미치지 못해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노력에 따라서는 한 장의 이미지로 더 큰 울림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신이 추구하는 진정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

 

누구처럼 시대적 유행 따라 가느라 오랜 세월 일구어 온 자신의 색깔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한희준의 '플라스틱2'를 보고 나오니, 이층에서 또 다른 단체전이 열린다는 정보를 주었다.

'흑백사진 연구회'라는 동아리의 사진전인데,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어떤 이가 지도했는지는 모르지만, 하나같이 사진이 아니라 미술로서의 접근이었다.

자칫 겉 멋에 취해 허송세월할까 걱정되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예술이란 유행도 아니고 재미도 아니라는 점이다.

지도하는 자의 지시에 따를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 우선되어야 하고,

초지일관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정성에 있다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며 밀려오는 슬픔은 사진은 돈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작업도 돈 따라 가는 것 같았다. 예술 작업을 돈 벌려고 하는 것이던가?

제일 경계하야 하는 것이 모든 것을 망치는 돈인데...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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