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떠도는 부랑자는 어릴 때부터 가난하게 살다 노숙의 길로 들어선 사람이 많다.

대개의 가난이 부모에 의해 대물림 된다는 말이다.

더러는 사업실패나 이혼으로 집나온 사람도 있으나,

절반 이상이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

 

지식은 물론 배운 기술조차 없어 막일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처지였다.

그러니 어찌 가정을 꾸릴 생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제대로 먹지 못하니 일을 감당하지 못해 거지로 나 앉게 되었는데,

이젠 골병들어 생긴 병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무슨 천형의 죄로 짐승보다 못하게 살며 거리에서 죽음을 기다리는지 모르겠다.

평등하지 못한 세상을 원망해야 하겠는가?

아니면 잘 못 만난 부모를 원망해야 하는가?

 

지난 년 말 강명자씨로 부터 어려운 사람에게 전해 달라며 백만원을 보내왔다.

그냥 주는 것보다 당당하게 받으라고 인터뷰 사례비로 5만원씩 나누어 드렸는데,

말이 인터뷰지 이름과 인적사항이나 물어보는 정도였다.

그런데, 소문이 퍼져 노숙자들이 몰리는 곤욕을 치룬적도 있었다.

 

지난 18일은 마지막 남은 사례비 봉투 4개를 챙겨들고 서울역광장에 나갔다.

눈 오는 날 사례비를 주지 못한 김계열씨 부터 찾아 나섰다.

지하도로 들어가니, 방태원(53)씨가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술병과 종이컵을 몇 개나 놓고 있어, ‘한 잔 얻어 마시자’며 옆에 앉았다.

 

그런데, 그 소주병은 술이 아니라 물병이었다.

술을 오랜 세월 많이 마셔 몸이 다 망가졌다고 한다.

더 이상 마시면 죽는다는 선고에 술 대신 물을 마신다는 것이다.

술을 자제한지 한 달가량 되었다는데 이젠 담배를 입에 달고 산단다.

 

지하도에서 담배를 피우며 한 대 권하기도 했다.

역무원에게 쫓겨난다며 말렸으나 막무가내였다.

쫒아내면 나가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밖에 있다 너무 추워 잠시 들어왔다고 한다.

 

방태원씨는 영천에서 태어나 노숙의 길로 들어 선지가 30년 되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 우체국에서 일한 적도 있지만,

술을 너무 좋아해 일을 못하고 이 지경이 되었단다.

 

술을 끊으니 춥고 배고픈 것은 견디겠으나 외로워서 못살겠단다. 

여지 것 술이 취해 잠들었는데, 이젠 잠도 오지 않는다고 한다.

‘요즘 외롭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나?’고 다독였으나 마음이 아팠다.

 

서울역 광장에서 정읍이 고향이라는 김용만(57세)씨도 만났다.

평생을 노가다로 어렵게 어렵게 살아왔으나,

이젠 당뇨와 고혈압 등 온 몸이 종합병원이란다.

 

일을 못해 거리에서 빌어먹은 지는 3년밖에 되지 않았단다.

처음엔 노숙이 힘들었으나 이제 몸에 익었다며 비시시 웃는다.

추워도 이렇게 앉아 있으면 가끔 눈먼 돈도 생긴다며 자랑 질이다.

 

안 쓰고 알뜰이 모아 고향 정읍에 한 번 가고 싶다고 말했다.

아직 어머니 무덤이 남아 있는지도 모르지만,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싶단다.

여지 것 가난을 물려 준 부모를 원망하고 살았으나, 늦게나마 술 한 잔 올리겠다는 것이다.

 

그 옆에서 졸고 있는 이재득(52세)씨는 구룡포에서 태어나 중학생 때 상경했다고 한다.

노가다로 일하며 딸까지 두었는데, 돈 못 번다고 쫓겨났단다.

그리움도 미움도 다 잊어버리고 떠돈 세월이 어언 이십년이 되었다는 것이다.

천안에서 2년 지내다 서울역으로 옮긴지는 20일밖에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의 베개 옆에는 때가 묻어 반질반질한 법구경 한 권이 있었다.

궁금증이 발동해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이형! 당신은 돈을 어떻게 생각 하는기요?"

자다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하니, “경계해야 될 요물이지요”라고 되받았다.

그리고는 세상이치를 하나하나 풀어가는데, 끝이 없었다.

 

결론은 돈 때문에 정신이 황폐화한다며, 욕심 부리면 안 된단다.

처음으로 부랑의 세월을 슬퍼하지 않는 도사를 만난 것이다.

그는 탁발 스님처럼 거리에서 도를 닦고 있었다.

 

사례비라며 돈 봉투를 주었더니, 지나가는 노숙자를 불렀다.

몇 가지 사올 것을 적어주며 남는 돈은 자기 필요한 것 사라고 했다.

부랑의 세월을 떠돌아도 헛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한 사람 남은 김계열씨를 찾았는데,

그 날은 배급받은 깨끗한 외투를 입고 있어 다른 사람인줄 알았다.

눈 오는 날 멋 낸다고 가방에 숨겨둔 낡은 외투를 입고 나와

식당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쫓겨나지 않았던가?

옷으로 사람 차별하는 더러운 세상이지만 어쩌겠는가?

 

지난 12일 만난 김계열씨

 

작년에 환갑이었던 김계열(61세)씨는 전라도 화순이 고향이란다.

한 때는 창신동과 동대문에서 재단사로 일하며, 하청업을 하기도 했으나

경마에 빠져 가산 탕진하고 빚더미에 올랐다는 것이다.

이혼하고 가족과 소식 끊은 지는 15년 되었다고 한다.

 

지난 12일 만난 김계열씨

 

지금도 일거리가 생기면 노가다로 나가지만, 가뭄에 콩나기란다.

이젠 술과 벗 삼아 지내는데, 몸 생각하여 매일 마시지는 않는단다.

깨끗한 옷에다 안 취하니 얼마나 좋냐?며 칭찬했더니, 모르는 소리란다.

“이런 옷 입고 있으면 어느 놈이 돈을 줄 것이며,

마지막 낙인 술까지 못 먹는다면 살 필요가 뭐냐?“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 한 사람 사연 없는 사람이 없었다.

독지가 강명자씨의 자선은 빈털털이 부랑자에게 작은 힘이 되어주었지만,

덕분에 가슴 아픈 이야기 듣는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주고 받은 모든 분들이 복 받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집 없는 노숙인을 돕고 싶다며 백만원을 보내 준 강명자씨의 뜻에 따라

인터뷰 사례비로 5만원씩 드릴려고, 어제 밤에 이어 서울역광장으로 나갔다.

 

가랑눈이 내리고 있었지만, 다행히도 포근한 날씨 덕에 금세 녹아버렸다.

오 갈 곳 없는 부랑자로서는 아름다운 눈도 공포의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서울역 선별검사소 주변에는 코로나 검사 받으러 온 사람들이 길게 줄지었지만,

그 자리에 있던 터줏대감들은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노숙인 쉼터인 ‘다시서기’에 들어가려니, 입구에서 출입을 통제했다.

코로나 검사를 받아 음성으로 통보받은 자에 한해 출입이 가능하단다,

지난 22일자로 통보받은 음성 확인 메시지를 보여주었더니,

검사 받은 지가 며칠 지나 다시 검사 받아야 한단다.

 

그 사이 감염되었을 수도 있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나

그런 엄격한 통제라면 차라리 문 닫는 것이 편하다.

아니나 다를까 쉼터 안을 들여다보니 노숙인은 아무도 없었다.

 

이런 상항이라면 노숙인 합숙소나 밥 나눔도 제대로 운영될 수가 없다.

일 년 넘게 끌어 온 코로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잔혹했다.

밥 먹을 곳도, 추위 피할 곳도 없다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지하도로 내려가니, 노숙인 한 사람이 난간에 떨어질 듯 누워 있었다.

단잠을 깨워 인터뷰를 청했더니, 흔쾌히 받아들였다.

최승호씨는 30세 무렵 집을 나와 이제 환갑이 지났으니, 살아 온 절반을 거리에서 보냈다고 했다.

아무 간섭 받기 싫어하는 자신의 업보지만, 몸은 성한 곳이 없단다.

 

이어 집 나온 지가 3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김상순씨를 비롯하여

정정화, 김도식, 인태권씨를 차례대로 만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서 나왔는지 노숙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아마 돈 받은 노숙인으로 부터 정보가 새 나간 것 같았다.

인터뷰 인원수도 많지 않지만, 줄 세워 줄 일은 더 더욱 아니었다.

그리고 전염병으로 5인 이상 모이는 것을 금하지 않았던가?

 

서둘러 끝내고 자리를 떴으나, 여러 명의 노숙인이 따라붙었다.

돈이 무섭긴 무서운 존재였다.

하기야! 돈 준다는데 그냥 있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바꾸어 생각하니 내가 그들에게 갑 질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갑 질도 아무나 할 짓은 아니더라.

 

서부역 방향으로 자리를 옮겨 안효덕, 김기웅, 최완구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는데, 집에서 쫓겨 나온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주민등록증이 없는 분도 절반이 넘었는데,

신분확인이 안되니 관청에서 무슨 도움을 받을 수 있겠는가?

 

돈 나누어 준다는 소문이 퍼져 서울역 부근에 더 이상 머물 수가 없었다.

다음을 기약하고 돌아왔는데, 동자동 입구에 세 사람의 노숙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잘 아는 노숙자 이용삼씨 따라 김용철, 박동렬씨가 찾아 온 것이다.

김용철씨는 온 종일 굶어 배가 고파 죽겠다며, 도와달라고 하소연했다.

 

아는 노숙자는 제외하기로 했으나, 거절할 수가 없었다.

세 사람에게 간단하게 물어보고 사례비를 주었더니, 고맙다는 인사를 몇번이나 했다.

 

다들 몰래 만나야 했으나, 한 낯이라 노출될 수밖에 없었는데,

받지 못한 사람은 얼마나 속 상할까?

더 이상 소문 번지면 나다니기조차 힘들 것 같아,

이용삼씨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고 사정을 이야기했다.

 

쪽방에 올라와 돈 준 영수증을 확인해 보니 열세 명에게 주어졌고,

돈 봉투는 일곱 개가 남아 있었다.

 

돈을 그냥 받지 말고 수고비로 당당히 받으라고 인터뷰를 시작했으나,

서두는 바람에 제대로 된 인터뷰를 할 수 없었다.

 

사실상,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부랑자의 삶을 취재해 알리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그래서 남은 일곱 분의 인터뷰 사례비 전달은 서둘지 않기로 했다.

더 어려운 노숙인을 찾아 한 분 한 분 진솔한 속내를 들어보려 한다.

당사자의 고통스러운 삶과 더불어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세상에 전하고 싶은 것이다.

 

새해에는 밑바닥 인생 일곱 분의 이야기를 만나는 대로 소개하련다.

 

사진, 글 / 조문호

 

몇일 전 페친 강명자씨로부터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며 100만원을 보내왔다.

고맙게 받았으나 어떻게 나누어 주어야 할지 걱정되었다.

물론, 노숙인 쉼터나 밥 나누어 주는 단체에 보내주면 간단한 일이지만,

보낸 사람이 그걸 몰라서 나에게 보냈겠는가?

노숙하는 어려운 분들에게 바로 전달해 주고 싶은 것 같았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전달할지 결정해야 했다.

그들에겐 현금이 제일 필요한데, 만 원 정도는 가볍게 여긴다.

비상금으로 간직하려면 신사임당 한 장이 딱 좋은데, 20명을 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나누어 줄 수도 없고, 누군 주고 누군 안 줄 수도 없다.

이왕이면 아는 노숙인 주고 싶지만, 자칫하면 갑 질하기 십상이다.

 

궁여지책으로 생각해 낸 것이 그냥 주는 게 아니라

인터뷰를 하고 사례비로 지급하기로 했다.

말이 인터뷰 사례비지 이름과 나이, 어려운 점 정도만 이야기 해 주면 된다.

거지 적선이 아니고, 당당히 말하고 수고비로 받으라는 것이다.

일단 인터뷰에 응해주는 사람에 한하되, 잘 아는 노숙자나 알콜 중독자는 제외하기로 했다.

 

내일부터 마땅한 사람들을 찾아 나설 계획인데,

서울역광장에 코로나 선별검사소가 생겨 다들 쫓겨났다.

요즘은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다.

자정이 가까웠으나 서울역으로 나가 보았다.

 

몇몇 사람은 라면박스를 모아 관처럼 만들어놓았더라.

자는 사람도 있고, 잘 준비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나의 제안에 의외의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사례비를 준다 해도 인터뷰란 말에 두 사람이나 손사래 쳤다.

돈도 싫어하는 걸 보니, 무슨 사정이 있는 것 같았다.

아니면 내가 사기꾼으로 보였던지...

 

강 훈씨 (69세)

 

인터뷰에 응한 사람은 올해 69세인 강훈씨와 60세인 이미자씨 인데,

강훈씨는 이혼하고 거리에 나선지가 십 오년이 되었다고 한다.

노가다 판에 나가 벌기도 했으나, 이젠 힘들어 못한단다.

이미자씨는 정신이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더라.

연신 깡통에 침을 뱉으며 횡설수설하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두 사람에게 사례비로 오 만원씩 드리고 돌아왔다.

 

이미자씨(60세)  

 

내일은 아침식사 배급할 때 나가봐야겠다.

아무쪼록 자선한 분의 따뜻한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어

노숙하는 분들에게 작은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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