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티잔 미술가들의 게릴라전, 홍범도 장군 초상

지난 1일부터 13일까지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미술행동이 오늘의 행동으로 이어진 홍범도 장군의 초상전에는

35명의 민중미술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홍범도 장군이 누구인가?

조국 독립을 위한 항일 무장투쟁에 온 몸을 바친 분을 두 번 죽이려 한다.

 

윤석렬 친일 정권에서 홍범도 장군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흉상을 철거하는 암담한 현실을 두고 볼 수 없어 분연히 들고 일어난 것이다.

 

홍범도 장군의 정신을 반영할 수 있는 다양한 양식의 초상화가 제작되어

항일 독립 정신을 계승하는데도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생각된다.

 

더구나 장군에 대한 사진이나 이미지가 귀한 현실에서 재조명하는 의미도 있다.

 

그리고 이 전시는 참여작가만의 전시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하는 전시다.

홍범도 장군을 추앙하는 국민이 많을수록 역사 왜곡을 막을 수 있다.

 

전시를 관람한 후 방명록에 적는 것만으로도 함께 할 수 있다.

방명록에는 홍범도 부대 입단 지원 명단이라고 적혔다.

 

참여작가 명단 

강경구, 김구, 김억, 김인규, 김재홍, 김주호, 김준권, 김진열, 김진하, 류연복, 류준화, 문승영.

박건, 박건웅, 박순철, 박영균, 손기환, 송창, 유기호, 유대수, 이동환, 이명복, 이상호, 이원석,

이윤엽, 이인철, 이재민, 이태호, 이현숙, 장경호, 정기현, 정원철, 최경선, 최윤정

 

이번 게릴라전은 한때 광화문 미술행동을 추진했던 김진하씨가 기획했다.

 

아래는 전시 취지문이다.

 

1. 최근 윤석열 정권이 친일과 반공을 하나의 이념으로 묶어 국민을 상대로 이념 전쟁을 선전포고 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획책이 바로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제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홍범도 장군은 봉오동 전투를 비롯, 평생을 조국 독립을 위한 항일 무장투쟁에 일생을 바친 분이셨습니다.

 

2. 그런 홍범도 장군을 의도적으로 욕보임으로써 반공=친일이란 그릇된 프레임을 일반화시키려는 작태를 현 정권이 펼치고 있는 것입니다. 소련공산당 입당, 빨치산 활동, 자유시 참변 등의 이유로 홍범도 장군의 활동 폄하와 함께 무장 독립운동사를 우리 역사에서 숙청하고, 궁극적으로는 친일 극우 세력의 영구적 정치 기반을 만드려는 획책이기도 합니다. 역사학계와 양심적 지식인들은 이 정권의 황당한 양두구육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3. 1940년대 태평양전쟁이 한창일 때, 한 고독한 70대 독거노인이 소련군에 입대하겠다고 했답니다. 소련이 미국과 연합해서 대일본과의 전쟁에 참전하면 본인도 전장터에 나설 거라면서요. 일본에게 부인과 아들 둘 가족 모두를 잃은 봉오동 영웅 홍범도 장군의 이야기입니다. 모든 것을 잃은 채였지만, 파란만장했던 삶의 마지막까지 조국 독립을 위해 일본과 싸우려 했던 내면의 도저한 치열함은 가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임종하기 직전까지 30년의 저항, 그 고단했던 대일항쟁 편력이 아마도 그의 마지막 얼굴에 생생하게 스며있었을 것입니다. 그 절절했을 절대 고독, 그게 홍범도 장군의 실존적이고도 수명적인 '장군의 길'이었던 모양입니다.

 

4. 이런 과거-현재 얘기가 설왕설래하는 와중, 저희 나무아트에서는 깨어있는 작가들과 함께 게릴라형태로 홍범도-장군의 초상전을 기획했습니다. 현재 홍범도 장군에 대한 역사적 사진이나 이미지는 상당히 희박한 게 현실입니다. 따라서 미술인들이 홍범도 장군의 정신을 반영할 수 있는 다양한 양식의 초상화를 제작-전시함으로, 우리 근대사의 항일 독립 정신이 시민에게 널리 향유되면 좋겠습니다. 또한 작가마다의 고유한 개성과 상상력으로 이 초상화들이 진지한 역전의 역사화로 연결되면 더 좋겠습니다. [김진하]

 



강경구씨의 ‘달아 세상 끝까지 멀리멀리 비추어다오’라는 제목의 전시가
지난 3월18일부터 인사동 ’통인화랑‘5층에서 열리고 있다.




화가 강경구씨는 서울대 회화과 출신으로 이중섭미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자기 체험을 통하여 직관과 느낌을 주관적으로 그려내는 화가이다
그동안 도시의 감수성과 미의식을 스스로의 삶의 공간에서 찾아내는 시도를 꾸준히 했다. 


 

그의 작품에서는 삶의 무의미, 환희와 절망, 고뇌와 고독, 아픔과 희열 등
스스로의 궤적을 화폭에 담아 오늘의 시대상을 대변해 왔다.




동네풍경이나 귀가 길의 모습 등 소소하고 비근한 일상의 모습을 친근하게 그려낸다.
자신의 삶에 의한 구체적인 감성을 바탕에 둔 묘사라 더욱 친숙하다.




얼핏 보면 삽화나 가벼운 스케치 풍의 그림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구수한 해학과 정취가 농밀하게 담겨 있다.



호방한 필치에 의한 대담한 축약과 형태감은 보는 이로 하여금 후련한 느낌을 준다.



강경구씨의 화풍은 무엇보다 대담함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거칠고 중후한 필선이 때로는 중첩된 농묵으로 대상을 화면에 집약시킨다.




작가는 작품을 놀이처럼 자유롭게 해석하며 묘사한다.



절망과 고독으로 점철된 오늘의 시대미감을 드러내고 있는 
강경구씨의 ‘달하 노피곰 도다샤’전은 오는 4월12일까지 열린다.

글 / 조문호





























몇 일 동안 여러 가지 고민에 휩싸여 죽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코로나119'로 사회적 거리두기란 캠페인에 방콕해서 그런 게 아니라

김명성씨로부터 전달받은 돈도 한 몫했다.



세상을 어지럽히는 검찰이나 정치꾼들의 비인간적인 꼴에 간도 뒤집히지만,

몇 일 전에는 동자동 쪽방 촌의 유영기씨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왜 나쁜 놈들은 잘 살게 놔두고 착한 사람만 데려가는지 모르겠다. 과연 신이란 게 존재하는 것인가?.

종교라는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역할은 하지만, ‘신천지꼴을 보니 사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벌금 내라며 김명성씨가 200만원 상당의 사진을 팔아주었는데, 죽어도 벌금을 내기 싫은 것이다.

그 사건을 담당한 검사는 말할 것도 없고, 판결 내린 판사도 똑 같은 놈이었다.

돈에 눈깔 뒤집혀 자연환경을 망가트리는 개인의 명예가 중요한가? 공익이 중요한가?

그런 개좆같은 판결에 승복하는 자신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차라리 그 돈으로 서울역을 떠도는 부랑자나 쪽방 촌 친구들을 불러 모아 마지막 만찬이라도 벌이고 싶었다.

요즘 식당도 텅텅 비었으니, 도랑치고 게 잡는 격이 아닌가?

그러나 나를 걱정해 주는 이들이 눈에 밟히기도 하지만, 죽는다는 것이 생각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몇 날을 누워 이런 저런 생각만 하다 보니, 일단 주변정리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쪽방에 갇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페친을 정리하는 일 뿐이었다.

그동안 내가 지적한 일의 반감으로 뒤통수치거나, 한 통속이 되어 반응 없는 페친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대부분 오래된 인연이라 차마 친구 끊기를 못했는데, 이참에 100여명을 골라 삭제해버렸다.

그 대신 페친이 넘쳐 받아주지 못했던 잘 모르는 분들을 모두 받아들였다.

분풀이 치고는 치졸했으나, 엉뚱한데 신경 쓰지 않고 내 일에만 전념하겠다는 각오였다.


 

지난 18일은 모처럼 외출할 준비를 했다.

정영신씨께 연락해 인사동 통인화랑에서 열리는 변승훈씨와 강경구씨 전시를 보기로 했다.

개막식은 오후 다섯시였으나 요즘 전염병 때문에 사람 많이 만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오프닝에 날아들 똥파리를 피해 일찍 나선 것이다.


 

인사동도 며칠 전과 달리 사람들이 제법 나왔더라.

달라진 풍경이라면, 때 거리로 몰려다니는 외국관광객이 사라졌다는 것과

수도약국 앞에 마스크 사려고 줄선 행렬이었다.


 

강경구씨 전시가 열리는 통인가게’ 5층부터 올라갔더니, 관우선생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따라주는 와인 한 잔들고 전시작들을 돌아보았는데, 작품이 너무 좋았다.

마치 고뇌하는 오늘의 인간상을 그린 듯한데, 어찌 보면 이글어진 내 모습 같기도 했다.

좋은 작품들을 보니 마음이 편안했다.


 

다음에 볼 전시는 지하에서 열리는 변승훈씨의 도예전 手作禪이었다.

반갑게도 작가 변승훈씨도 있었고 이계선관장도 있었다.

오래 된 작품에서 부터 최근작까지 골고루 전시되었는데, 분청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변승훈씨만의 독창적인 작업이었다.

특히 최근에 제작한 불상 형태의 작품들을 보며 신은 인간자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작품은 불상이 아니라, 안성장터에서 몇 십년 동안 자리를 지킨 할머니들을 모델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예술의 힘은 무서웠다. 온갖 근심 걱정을 다 떠안은 불편한 마음이 눈 녹듯 녹아 내렸다.

전시들이 곳곳에서 열리지만, 별 의미 없는 불편한 전시가 더 많은 현실이라 운도 따라야 한다.




인사동에서 믿을 수 있는 갤러리로는 통인가게전시장과 나무화랑정도로 꼽는다.

통인은 대관에 의지하지 않고, 관우선생과 이관장의 안목으로 초대되는 전시라 일단 보증할 수 있고,

나무화랑역시 미술평론가 김진하씨가 운영하는 화랑이라 실망시키는 전시가 별로 없다.


 

좋은 전시들을 보아 기분이 좋으니, 반가운 연락까지 왔다.

정영신씨가 며느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는데, 아들 내외와 손녀 하랑이가 온다는 것이다.

부리나케 정영신씨 녹번동 집에 갔더니, 더디어 귀여운 공주님이 나타난 것이다.



귀신같이 생긴 내 모습에 울기도 하고, 제 모습을 담은 동영상에 깔깔거리기도 했다.

변화무쌍한 하랑이의 표정과 쉼 없이 휘젓고 다니는 모습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부근에 있는 연안식당으로 옮겨 외식까지 했는데, 밥도 엄청 잘 먹었다.


 

그래, 좋은 일에 위안 받고 살자. 사는 게 별 것 있겠나.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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