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속담처럼, 사람도 아닌 박근혜보다

그 호위무사로 호시탐탐 자리 노리는 황교안이 더 밉다.

꼬리 내린 반기문 득으로 어부지리 꿰 차려 하지만, 국민들이 그리 어리석지 않다.

국정농단의 중심에 있는 자가 대통령에 출마 할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박근혜가 탄핵절차를 밟는 상태에서, 그 대행하는 자가 국정을 중단시키고

대선에 출마한다는 것은 정치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도저히 용납 할 수 없는 일이다.

행여 그런 생각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뜻을 밝히고 권한대행 자리부터 그만둬야 한다.

법치를 내 세웠지만, 그가 여지 것 벌여 온 짓으로 보아 정의와는 오래전부터 담 싼 인간으로 보인다.

진실을 뒤집는 언론인, 제 멋대로 해석하거나 자기 편한 데로 악용하는 학자나 법률가처럼

우리나라의 대표적 부역 지식인의 한 사람이었던 그였지만,

이젠 부역자가 아닌 국정농단 세력의 주범임이 명백히 밝혀진 것이다.

이번에 보여 준 특검연장 거부 또한 엄연한 수사방해 행위였으며, 직무 유기와 직권 남용죄를 위반했다.
"특검 연장은 1400만 촛불의 명령으로 황교안 대행의 권한이 아니라 의무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특검 연장을 승인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박근혜 대통령의 종범 임을 자백한 것이다"고

이재명 성남시장이 실랄하게 비판하며, 황교안의 탄핵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미 드러난 걸 보아서는 대통령 자질이 아니라 뒷골목에 노는 양아치 자질보다 못하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군에 안 가려고 요령을 피운적도 있었다.

두드러기 질환의 하나인 ‘만성 담마진’ 판정으로 병력을 면제 받았다지만, 그 이듬해 사법고시에 합격했다고 한다.

군 면제를 받을 정도로 담마진이 악화된 상태에서 어떻게 사법고시에 합격할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법관에서 퇴임하여 대형 로펌에서 한 달에 일 억원의 수임료를 받은 전관예우도 있었다.

출세와 돈 때문에 저지른 일이라 쳐도, 요즘 보여주는 다양한 갑 질은 도저히 인간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자기 몸 좀 편 하려고 서울역 플랫폼 안까지 차를 끌어들여 말썽을 일으키지 않나,

시민들이 이용하는 시내버스 정류장을 점거하여 버스를 다른 곳으로 강제 이동시키기도 했다.

이 건 국민을 우습게 보는 전형적인 갑 질이다.

더 과관인 것은 대행 주제에 기념시계까지 만들어 배포했다는 것이다.

이런 자가 언감생심 용꿈을 꾼다니, 개가 들어도 웃을 일이다.

이제 본인 스스로 모든 걸 내려놓고 물러나야 한다. 시간 끌면 끌수록 박살난다.
대선 후보로 나선다면, 그가 저질러 온 간교한 갑 질의 사례들이 하나하나 드러나기 마련이다.

특히 특검수사 기간연장을 거부한 것은 스스로 자충수를 둔 일이었다.
더 이상 나라를 혼란에 빠트리지 말고 즉각 퇴진하라. 그 것이 모두가 사는 길이다.






탄핵 심판 선고를 눈앞에 둔 지난 25일 열린 17차 촛불집회는

'박근혜 4년 너희들의 세상은 끝났다'고 외치는 민주총궐기 였다.

여느 때보다 따뜻해진 날씨 탓에 가족 단위의 참석자도 많았다.

이 날은 노동자, 농민, 빈민, 학생 등 각 단체에서 나와

100만에 이르는 국민들이 서울 도심에 집결해, '이제 끝내자'고 외쳐댔다.





이 날 광화문광장에서는 "박근혜는 내란사범"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한 정원스님의 49재가 열려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기도 했고, 송파 세모녀 3주기 추모제를 겸한 민중생존권 쟁취를 위한 빈민총궐기대회도 열렸다.

그동안 기초법 개정을 요구해온 ‘빈곤사회연대’, ‘전국장애인부모연대’를 비롯하여 전국노점상총연합회, 전국철거민연합, 등

수 많은 빈민단체에서 나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촉구하며, 박근혜 퇴진과 특검 연장을 요구했다.'





‘광화문미술행동’의 촛불광장 열 번 째 프로젝트는 ‘님을 위한 행진곡이었다. 

신학철 선생의 100년 민중사를 담은 높이가 4미터나 되는 ‘한국근대사-금강’이 세워졌고.

그 옆에는 백기완선생의 글 ‘비나리’를 류연복씨가 옮겨 적었다,

탄핵을 주제로 한 김진하씨의 작품은 촛불시민 인증샷 배경막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안쪽에 설치된 빈 화폭에는 여태명씨와 박방영씨가 즉석에서 그림을 그려 시민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궁핍현대미술광장’의 ‘민미협’ 광장미술전도 성황이었고, 여태명씨의 서예퍼포먼스와 시민들의 바닥 글쓰기도 이어졌다.



 


이날 집회에서는 특검수사기간연장을 촉구하며, 특검연장을 거부한 황교안을 탄핵하라는 목소리가 더 높았다.


오는 삼일절의 집회에는 광화문광장이 태극기로 흔들릴 것이다.
다 같이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황교안의 탄핵을 외치자.

사진, 글 / 조문호











































































17차 촛불집회가 열린 지난 25일은 첫 출발부터 일진이 좋지 않았다.
늦잠에서 깨어나니 정오가 가까워 오고 있었다. 허급지급 공원으로 달려갔더니, 빵 배급은 이미 끝나버렸다.

그 날 사용할 전투식량을 배급받지 못한 채 광화문광장으로 나가야 했다.

지하철 타러 내려가니, 국적불명의 군복 입은 노장이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붉은 베레모에다 요상한 군장을 달았는데, 어깨에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꽂혀 있었다.
몇 개월 전 동자동과 남영동 노인들이 모인 경노잔치에서 한 번 뵌 적 있는 분이었다.

방한모를 눌러 쓴 빨지산 같은 내 행색도 별다를 바 없으나, 괜히 복장이 눈에 거슬려 알면서도 물었다.

“군복이 죽이네. 지금 어디 가는 기요?‘라고 물었더니 ’시청광장에 빨갱이 잡으러 간다”고 했다.

나도 태극기부대로 알고 자기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월남전에 참전해 세운 역역한 전과를 늘어놓는 걸 보니 피 맛 좀 본 것 같았다. 사람 이성을 잃게 하는 피 맛 말이다.

그러나 요즘은 아랫사람들 눈치 보느라 찍 소리 못하고 살았을 것이니, 모처럼 살 맛 난다고 했다.

주말마다 시청광장에 나와 고함을 쳐 질러대니, 오죽하겠는가? 그것도 나라를 위한다는데...

지하철 시청역에 도착하자 그가 일어나며, 왜 내리지 않느냐고 물었다.
“난 빨갱이니 종각역에서 내려야지”랬더니 화를 버럭내며 소리치고 나간다.
“정신 차려! 이 빨갱이야~”
이제 이 노인을 동네에서 만나면, 적대감부터 가질 것 같았다.

이 건 작은 사례지만, 이미 광화문과 시청으로 나누어진 이념의 갈등은 도를 넘고 있다.

늙은이들이 세에서 밀리니 이제 폭력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그들 또한 정치모리배들의 희생양에 다름 아니라는 측은한 생각도 들었다.

이제 더 이상 나쁜 정치인들이 발 붙일 수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정치적 색깔의 잣대보다 정의가 우선되는 세상 말이다.
박근혜야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겠지만, 기회를 엿보는 황교안 같은 교활한 자들부터 싹쓸이해야 한다.






종각역에 내려 광화문광장으로 갔더니, 날씨가 풀려 그런지 가족 나들이도 많았다.

탄핵을 눈앞에 둔 민중총궐기라 많은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미 ‘광화문미술행동’의 광장 에어갤러리의 설치작업도 마무리되어 있었다.






이 날 진행되는 촛불광장 열 번 째 프로젝트는 ‘님을 위한 행진곡이었다.

신학철 선생의 100년 민중사를 담은 ‘한국근대사-금강’이 세워졌는데, 높이가 4미터나 되는 대작이었다.
옆에는 백기완선생의 사진과, 선생의 글 ‘비나리’를 류연복씨가 옮겨 적어 놓았다.
탄핵을 주제로 한 포토존은 이철수씨의 목판화를 바탕으로 박방영씨와 강병인씨의 글을 합성한

김진하씨의 작품이었는데, 전체적인 전시 분위기가 중량감이 있었다. 



 



뒤 이어 안쪽에 설치된 빈 화폭에다 여태명씨와 박방영씨가 즉석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서예가 여태명씨는 세월호 희생자들의 몸부림을 그려 그날의 악몽을 되새기게 했다.

박방영씨는 방초색농(芳草色濃), 화영무접(花迎舞蝶), 장락무극(長樂無極)이란 한시에다 홍매화를 그렸다.

봄이 오듯 ‘박근혜탄핵’이란 꽃소식을 바라는 염원이 담긴 것 같았다.






단단하지 않은 천위에 척척 그려나가는 대가들의 역량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돈 주고도 볼 수 없는 진귀한 작업 광경이라 몰려든 구경꾼들이 눈을 떼지 못했다.
사방 곳곳을 포토 존으로 활용해도, 그지 그만이었다.


여태명씨의 서예퍼포먼스와 시민들의 바닥 글쓰기도 이어졌다.
유대수, 류연복씨가 판화를 찍어주는 ‘궁핍현대미술광장’의 ‘민미협’ 광장미술전도 관객들로 미어터졌다.






시간이 지나자 광화문광장은 사람의 물결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광장에는 정원스님 49제를 비롯하여 노동자, 농민, 빈민, 학생 등의 사전집회로 발 디딜 틈 없었다.


마임이스트 유진규씨 일행의 옳 퍼포먼스는 어디에서 열리며,

서예가 여태명씨의 ‘아프니까 투쟁이다’ 퍼포먼스는 어디에서 열리는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사람에 밀리며 광화문광장을 몇 바퀴 돌다보니, 지쳐버렸다.






너무 힘들어 이인철 내외와 이기홍, 탁영호, 김천일씨가 어울린 술자리에 퍼져 버렸다.

거나하게 마시고 나오니, 광장전을 철수하고 오는 일행들과 마주쳐 또 한 잔 마셨다.

사진도 제대로 찍지 못하고 술만 잔득 마신 날이다.

아침부터 시작된 불발과 불편한 만남은 끝까지 좋은 결과를 만들지 못했다.






이 날도 광화문광장에서 많은 분들을 만났다.
‘광화문미술행동’의 김준권, 류연복, 김진하, 장경호, 여태명, 박방영, 유대수, 김봉준, 김남선,

정덕수, 김영배, 정영신, 송용민, 강성봉, 이광군, 이재민, 변정대섭, 이철재, 윤병권씨를 비롯하여

백기완, 임재경, 염무웅, 강 민선생, 신학철, 김진열, 최병수, 이윤엽,  권 홍,  남 준,

고 헌, 오춘석, 김영중, 장진영, 성효숙, 김미란씨 등이다.





다음 3,1절에 열릴 ‘민주주의 촛불공화국 만세!!“에서는 다 같이 광화문광장으로 몰려나와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만세 한 번 불러보자.



사진, 글 / 조문호



































































































































































‘광화문미술행동’에서는 정월대보름날의 맞은 지난 11일, 촛불 시와 사진으로 ‘Open Air 갤러리’를 장식했다. 

 “촛불의 함성은 멈추지 않는다.”, “100만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는 등

22명 시인의 시가 국민들의 탄핵 열망을 담아 깃발처럼 펄럭였다.

천만 촛불은 즐겁다!

촛불은 평화의 꽃이다.
촛불은 축제의 별이다.

촛불은 정치혁명이다.
촛불은 시민혁명이다.

촛불은 민주공화국이다.

촛불이 노래한다
전진하라 천만 촛불이여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 광화문미술행동]


참여시인은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소속으로 고 은, 공광규, 권위상, 김이하, 김정원, 김주대, 김창규, 김형효, 박노해, 박재웅,

백무산, 서안나, 신경림, 양문규, 유순예, 임성용, 정기석, 정세훈, 정수자, 정철훈, 정희성, 최종천 시인이 각각 한 점씩 내걸었다.
사진은 정영신, 권홍씨의 사진이고, 디자인은 김진하씨가 했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14일 열린 12차 촛불집회는 체감온도가 영하 13도에 이르는 매서운 날씨였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몰려 나왔다.

이 날 집회에서는 1987년 6월 항쟁의 뇌관이 됐던 박종철 열사의 30주기 추모제와

지난 7일 분신한 정원 스님의 영결식이 함께 진행되어, 민주주의를 위해 몸 바친 열사들의 넋을 기려야 했다.





지난 7일 분신한 정원스님의 운구가 만장에 휩싸여 광화문으로 들어 올 때는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다.

그 날 찍은 사진이 정원스님의 마지막 사진이 될 줄이야 꿈엔들 생각했으랴..

“나의 죽음이 어떤 집단의 이익이 아닌 민중의 승리가 되어야 한다.”는 스님께서 남긴 글은

자신의 목숨을 던져 국민들에게 승리를 안겨주겠다는 굳은 의지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이날은 1987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 받다 사망한 박종철 열사의 30주기 추모행사도 열렸다.

‘보고 싶다 종철아“, ’살려낼게 민주주의’란 글귀와 대형 영정사진이 광장에 내 걸렸고,

그를 기억하는 노래들이 울려 퍼졌다. 시민들의 추모 행렬도 줄을 이었다.




정영신사진


‘광화문미술행동’의 네 번째 프로젝트 ‘응답하라 1987! 한 걸음 더 2017’에선

‘박종철, 이한열 열사 30주기 추모시민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그림막 제작에 참여한 작가와 시민들은 언 손을 녹여가며 글과 그림을 그렸고,

민족춤협회에서 마련한 ‘백년의 바람 춤’도 강풍에 너울거렸다. 

현수막전에는 신학철의 ‘초혼가’, 조문호의 ‘87민주항쟁’, 최병수의 ‘한열이를 살려내라’등 그 때 그 시절의 이미지들이 내 걸렸다.






이날도 광장에는 말보다 실천을 앞세운, 주류가 아닌 비주류예술가들의 시국퍼포먼스도 열렸다.

일곱 번째 시국퍼포먼스 ‘옳’은 ‘덤벼!!’였다. 근혜야, 순실아 숨지 말고 나와! 글러브 끼고 한판 붙자!’고 했다.

박근혜는 물론 최순실, 김기춘, 조윤선, 이재용 등 악마의 가면을 쓴 사람들이 줄줄이 나와 시민 가면을 쓴 사람과 한 판 '붙었다.

고전 끝에 시민이 이기는 장면에서는 시민들의 박수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그들이 풀어내는 해학은 혹한을 물리치기에 충분했다.





이 날 광장에서 사진가 최인기, 권양수씨를 만났기에,

오후4시부터 대학로에서 열리는 ‘구하라 아랫마을’ 반 빈곤 운동 후원 행사에 참여하려, 두 시간 여 자리를 비웠다.






돌아오니 시민들의 촛불행진은 종로를 메우고 있었다.
‘박근혜를 구속하라’, ‘이재용을 구속하라’는 우렁찬 함성은 영하의 날씨를 녹이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촛불을 덮으려는 ‘박사모’ 패거리의 조직적인 반동도 일어났다.
오랫동안 누적된 피로와 추위로 주춤한 사이에 역습을 가한 것이다.


이제 오는 21일, 다 같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야 한다.
그들을 제압하지 못한다면 어리석은 노인들의 마음이 동요된다.



기어이 박근혜를 구속시키고, 불평등, 승자독식, 재벌천국, 노동지옥의 헬조선을 바꾸자.

사진, 글 / 조문호







































































정영신사진

정영신사진

정영신사진















세월호 참사 천일을 이틀 앞둔 지난 7일은 광화문광장에서 11차 촛불집회가 열렸다.
박근혜 퇴진과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새해 첫 촛불집회는 포근한 날씨 덕에 많은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이 곳 광화문광장은 토요일마다 다양한 퍼포먼스가 벌어져, 하나의 큰 예술 축제장으로 변신한다.

이제 상설전시장인 '궁핍현대미술광장' 개관에 이어 블랙텐트 '광장극장'도 문을 열었다.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 오후8시에 공연되는 광장극장 벽엔 “빼앗긴 극장, 여기 다시 세우다”란 현수막도 내 걸렸다.

판화가 이윤엽씨가 ‘광장극’이란 극장 현판도 즉석에서 썼다.

토요일마다 비주류예술가집단이 벌이는 ‘옳’ 시국퍼포먼스와 ‘광화문미술행동’이 벌이는 차벽공략 현수막전이 펼쳐져

광화문광장이 예술가들과 시민들의 전진기지로 활용되고 있다. 블랙리스트 예술가들의 뜨거운 에너지가 광장에 넘쳐난다.

그 날의 ‘옳’ 시국퍼포먼스 여섯 번째 주제는 ‘눈떠!’였다.

꼬깔로 눈을 가리고 장님 행세를 한 유진규씨와 멸치, 에이미신, 문성식, 박재범, 안현정, 오민정, 이명찬, 황현성씨가 나와

장님놀이 꼭끼오! 활갯짓으로 사람들을 일깨웠고, 박순영씨와 박미루씨는 바이올린과 북으로 흥을 돋구었다.

서예가 김기상씨는 ‘눈떠!’란 글과 눈동자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이명찬씨는 ‘접촉'이란 마임도 보여 주었다.

마임이스트 유진규씨가 눈이 그려진 부채를 펼쳐보이자,

다른 장님들은 눈뜨라며 손바닥의 눈동자를 펼쳐 보이는 사회를 향해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광화문미술행동’에서 세 번째 추진한 경찰 차벽공략 프로젝트 ‘우리 모두가 블랙리스트 예술가다’도 진행되었다.

여태명씨와 정고암, 박방영 세 사람이 벌이는 캘리그래피 퍼포먼스로 시민들의 발걸음을 모았고,

판화가 오윤의 ‘칼노래’, 홍선웅씨의 ‘역사의 길’, 이철수씨의 북을 쳐라 ‘새벽이 온다’ 류연복씨의 ‘따로 또 같이’.

이상호씨의 ‘무제’, 박제동씨의 그림을 정찬민씨가 각을 한 ‘세월호 미 수습 이웃9인’, 이윤엽의 판화 복합판 등

대형 걸게 그림이 걸려 광화문광장을 판화가 펄럭이는 축제 광장으로 만든 것이다.

김준권, 류연복, 김진하, 김천일, 정복수, 이재민, 김 구, 김 억, 한상진씨 등 많은 작가들의 일사불란한 현장작업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그림판에 볼거리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세종대왕상 뒤편 인증샷 배경막에서는 사진가들의 ‘그 날, 나도 거기에 있었다’ 초상사진 찍어주기도 이어졌다.

정영신, 엄상빈, 남 준씨도 나왔지만, 그 날 초상사진의 대부분은 양시영씨가 도맡아 찍었다.

오후5시 무렵에는 현수막을 미 대사관 앞의 경찰차벽으로 옮겨 갔으나, 국가 재산에 손 댈 수 없다며 경찰이 막아섰다.

그 많은 나라 돈을 거덜 내는 권력들이 국가재산 운운하며, 예술적 변신조차 용납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밀고 당기는 실랑이를 벌이며 작가들이 현수막을 들고 서 있기도 했으나,

결국은 경찰을 배경 조형물로 세운 채, 땅 바닥 전시를 하였다. 블리리스트 예술가들의 탄압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땅바닥 전시장은 많은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특히 박제동씨의 그림을 정찬민씨가 각을 한

‘세월호 미 수습 이웃9인’ 초상에는 애도하는 시민들의 촛불이 모여들어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이 날은 '광화문 미술행동'에 함께한 장경호, 이인철, 성기준씨 외에도 행사장 곳곳에서 많은 지인들을 만났다.

강 민, 방동규 선생을 비롯하여 하태웅, 김창규, 김창주, 고옥룡, 손병주, 이정환, 이점숙. 임경일씨 등 많은 분들이 다녀갔다.

오는 14일 열릴 12차 촛불집회도 시민들이 벌이는 예술행동은 이어진다.
더구나 박종철, 이한열 열사 추모 30주년을 맞이하는 날이라 추모영상 상영과 헌화도 있다.

‘민미협’의 광장 깃발전과 윤여걸, 류연복씨가 벌이는 캘리그래피 퍼포먼스를 비롯하여

‘한국민족춤협회’에서 보여주는 ‘백년의 바람춤’도 선 보인다.

사진가들의 인증샷 초상사진 찍어주기와 작가와 시민들이 만들어가는 글쓰기와 그림그리기 등

시민들의 예술적 저항의 불길은 꺼지지 않는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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