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 촌에는 명절만 다가오면 선물을 나누어 준다.

대개의 선물은 특정한 사람에게 감사의 표시로 전달해주지만,

동자동에서는 일방적으로 줄 세워 주는 선물이다.

 

선물을 주고받는 것이 아름다운 풍속이긴 하나 사람대접하지 않는 선물은 선물이 아니다.

이건 선물 이름을 단 배급에 불과하다.

 

줄을 서서 기다리게 하므로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심한 자괴감을 안겨준다.

그동안 ‘줄 세우지 마라’고 줄기차게 외쳐왔지만 시정되지 않았다.

 

누군 ‘배가 덜 고파 하는 말’이라고 나무랄지 모르지만,

배고픔 보다 받는 사람의 마음이 편해야 고마움도 우러난다.

 

허구한 날 줄서서 얻어만 먹다 보니 선물의 고마움조차 잊어버리고,

선물이라기보다 자존심 상하는 일상으로 여길 뿐이다.

 

그리고 명절이 되면 쪽방 주민들은 심한 외로움과 소외감에 시달린다.

가족이 없어 만날 사람도 없지만, 밥도 사 먹을 수 없다.

쪽방에 홀로앉아 라면 국물을 안주삼아 한 잔술로 적적함을 달랜다.

 

며칠 전에는 ‘이에수스 핸즈’선교회에서 팥죽을 나누어 주었다.

동짓날만 되면 서울역광장에서 열리는 ‘홈리스추모제’에서 팥죽을 나눠 줬지만,

코로나 때문에 2년째 팥죽 맛을 보지 못한 터라 반갑기 그지없었다.

홍보하지 않은 자선이라 밖으로 나온 몇몇만 팥죽 맛을 즐겼으나,. 다들 고맙게 먹었다.

 

다음 날은 ‘케이티’에서 보내 온 명절선물을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나눠줬다.

오전10시로 정한 한 시간 전부터 긴 줄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코로나 방역을 위해 물러서라고 외칠 뿐, 나눠 주는 시간을 앞 당 길 생각은 하지 않았다.

 

빈민들에게 주는 명절선물은 식료품이 주종을 이룬다.

햇반과 라면, 김 등 지난 년 말 선물과 빼 닮았다.

이제 줄 세워 주는 선물은 그만 끝내기를 거듭 부탁드린다.

'대 주고 빰 맞는다'는 말처럼, 올 해는 범한테 물린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화요일 '케이티'에서 식료품을 나누어 준다는 벽보가 나붙었다.

'케이티'는 오래전부터 동자동 쪽방촌을 지속적으로 후원해 온 고마운 기업이다.

 

'케이티'에서 시설을 제공하고 서울시에서 운영비를 대는 ‘돌다리골 빨래터’를 만들어

세탁기 없는 쪽방빈민들의 세탁문제를 해결해 주었고, 겨울철에는 외투를 나누어주는 등 좋은 일을 많이 해왔다.

 

삼년 전에는 KT 황창규 회장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요리사 모자를 쓰고 나온 적도 있었다.

주민들에게 ‘수박화채‘를 퍼 주고, 소방호스로 공원 주변에 물을 뿌리기도 했다.

일손 도우려 나선 게 아니라 잠간동안 사진기자들 모델 노릇을 자처한 쇼다.

 

케이티 황창규 회장과 박원순시장이 도로에 물을 뿌리고 있다. / 2018년 8월 5일 

그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정치적인 쇼하지 말라고 나무란 적이 있었는데,

세상을 떠난 지금에 이르니 송구한 마음이 앞선다. 비서들이 짜놓은 일정에 따랐을 뿐일텐데...

고향 후배라 좀 잘 했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의 지적이지만, 착한 양반이 얼마나 서운했을까?

 

자선을 알리고 싶은 것을 탓할 필요야 없으나, 비참해지는 당사자 입장도 생각해야 한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 만나는 자체를 피하는 데다, 더구나 무더운 여름날 줄 세워 생색내는 짓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먹을 것을 줄 세워 나누어 주는 형태는 가난한 사람들 길들이는 일에 다름 아니다.

 

그 동안 줄 세워 주는 것을 꾸준히 지적하며 시정을 요구했으나 ‘서울역쪽방상담소’는 마이동풍이었다.

하기야! 주는 측에서 줄 세우는 것을 원한다면 그들로서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창궐하자 줄 세우는 것을 자제하며,

시간 날 때 찾아가는 배급이 자리 잡아 가는 중에 또 다시 재연된 것이다.

 

주민이 천명이 넘는데, 준비한 식료품이 700개뿐이라 선착순으로 준다는 것은 변명에 불과했다.

동자동 사정을 훤히 아는 '케이티'에서 300개가 아까워 적게 가져왔겠는가?

여름철이라 문 닫힌 쪽방도 많지만, 바깥출입을 하지 않아 벽보를 못 보거나

몸이 불편한 분들이 많아 700개 정도면 충분하다는 것은 알고 한 짓이다.

선착순으로 준다는 것은 줄 세워 사진찍기 위한 하나의 핑계일 뿐이었다.

 

많은 독지가들이 빈민들을 돕고 있지만, 이처럼 광고하며 돕지 않는다.

대표적인 분으로 두산그룹의 박용만회장을 꼽을 수 있다.

그 분은 내가 오기 전인 5년 전부터 매주 ‘가톨릭사랑평화의 집’에서 실시하는

도시락 장만에 직접 앞치마를 두르고 일손을 도와왔다,

지금은 창신동 산 꼭대기에 직접 주방을 만들어 홀로 사시는 노인을 돕고 있다.

일주일에 두번식 반찬을 만들어 드리고 계절마다 이불을 걷어 세탁해 드리는 등 남 모르게 자선을 베푼다.

 

처음 박회장의 봉사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기자 근성이 발동해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린 적도 있었다.

그만한 온정의 뉴스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 내용을 내려달라는 연락을 받았는데, 오히려 자선을 노출시킨 내가 부끄러웠다.

 

그리고 몇 개월 전부터 화요일마다 쪽방에 도시락을 전해주는 젊은이들이 있다.

어디서 보내 준다는 말도 없이 사람 있는 쪽방에만 전해 줘 고맙게 받아 먹었는데,

다른 경로를 통해 알아보니 가수 임영웅씨가 보내는 도시락이라는 것이다.

자선이란 이처럼 생색내지 않고 마음에서 우러나 돕는 것이 아니겠는가?

 

얻어먹는 주제에 매번 잔소리 해대는 것도 이젠 지겹다.

자선을 광고하기 위해 빈민들을 줄 세우는 이런 구태가 아직까지 재연되고 있다는 사실이 슬프다.

 

지난 26일 밤은 너무 더워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늦게서야 일어났는데, 얼마나 물을 많이 들이켰는지 밥 생각도 없었다.

건물 관리하는 정씨가 오늘 식료품 나누어 준다며 사람 몰리기 전에 빨리 받아오라고 귀뜸해 주었다.

하기야! 이 더운 날 줄서서 기다리는 일이 예삿일은 아닐 것이다.

 

정해진 배급시간 보다 30분이나 빨리 갔으나 이미 줄은 골목까지 뻗어 있었다.

더위도 더위지만, 행여 코로나 감염자라도 생길까 걱정스러웠다.

주는 측도 마음에 걸렸는지, 다른 때는 당사자가 아니면 대리수령은 할 수 없으나, 

그 날은 주민등록증만 가져오면 대리수령도 가능했다.

그렇다면 선착순이라는 줄 세우기의 의미가 없지 않은가?

 

그나저나 대신 받아 주는 사람도 손수레 없이는 가져갈 수 없었다.

작은 생수 20병까지 함께 주니 노인이 들기에 무리였다.

여름철에는 라면 같은 부식보다 생수가 더 반가운 품목이라 다들 낑낑거리며 받아갔다.

노인들이 높은 층까지 들어 올리려면 수십번은 쉬어야 할 것이다.

 

다들 속은 상하지만 아무 말 없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느 노인은 쪽방상담소 직원에게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해댔다.

본인 소유의 집도 있는 사람이 빈민으로 위장해 배급을 타 갔다는데, 그게 들통 나 거절당한 모양이다.

아무리 공짜가 좋다지만, 가진 사람이 더 무섭다는 것을 실감했다.

 

다들 몸에 베인 익숙한 자세로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는데,

‘케이티’ 유니폼을 입은 직원 한 사람은 받는 장면을 정면에서 사진 찍고 있었다.

더운 날 줄 세워 식료품 나누어 주는 것이 그렇게 자랑하고 싶었을까?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구시대적인 줄 세우기로 기업 홍보를 하려는가? 

어느 부서의 바보같은 임원 잔머리인지 모르지만, 뭐 대주고 빰 맞는 짓이다.

'케이티' 얼굴에 똥칠하는 짓은 이제 집어치우라.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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