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전은 밤에 벌이는 전투가 아니라, 야외 전축을 줄인 말이다.
나이 지긋한 분들은 이 야전의 맛을 잘 알 것이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야외 모임이 없으면 쓸 일도 없었지만,

술 취해 어울려 놀던 그 맛을 알랑가 모르겠다.

앵앵거리는 ‘림보 룩’에 맞춰 허리를 재켜 가제 춤추던 모습은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난다.

아련한 청춘의 시절이 눈물겹도록 그립다.
이젠 다들 늙어 손자 재롱에 시간가는 줄 모르나, 가끔은 생각날 것이다.


누가 찍었는지도 모르는, 유령처럼 떠도는 사진 한 장을 붙잡았는데,

오랜 추억을 되돌려, 그 시절을 그립게 하네.


글/ 조문호




추석 명절에 대한 즐거움도 나이가 들어가며 점차 시들해진다.


어린 시절엔 꿈에도 그리던 명절이 아니었던가?

명절이 다가오면 모처럼 목욕도 하고, 엄마는 기와장 부순 재로 녹그릇 닦는다고 바빴다.
다들 옷에다 신발까지 새것으로 갈아주어, 완전 케이스 갈이 하는 날이었다.

그리고 먹거리도 지천에 늘렸었다.





들리는 친척 집마다 좋아하는 제삿밥은 물론 푸짐한 음식을 내놓았다.
대암골 산소에 가도 과실이 늘려있었다.

감나무 과수원이었으니, 감은 말 할 것도 없고, 밤, 대추가 주렁주렁 달렸다.






장난 삼아 감나무 밑에 입 벌리고 누워, 형 더러 감나무를 흔들라고 했더니, 진짜 홍시가 떨어졌다,

그런데 입이 아니라 눈에 떨어져, 눈탱이가 밤탱이 된 적도 있었다.
새 옷 버릴까바 얼굴을 풀밭에 비볐던 기억도, 이제 아스라한 추억이 되어버렸네.





어른이 되어서는 명절만 다가오면 걱정이 태산 같았다.
없는 돈에 선물 보낼 곳도 많은데다, 돈 들어 갈 곳이 한 둘이 아니었다. 

또한 고속도로에서 진을 빼버리는, 고향가는 길은 얼마나 힘들었던가?






늙어버린 말 년에는 그래도 은근이 기다려졌다. 좋아하는 제삿밥 생각에...
제삿밥은 탕국을 잘 끓여야 제맛이 나는데,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듯이 정영신씨도 곧 잘 끓인다.
전라도 여자지만, 경상도식 탕국을 제법 맛 낼줄 안다.  단지 박을 구할 수 없어 무우를 넣었지만...

그런데 동자동에 들어가고 부터는 그 좋아하는 제삿밥을 맛볼 수 없었다.






여지 것 명절 차례는 ‘서울역 쪽방상담소’에서 마련한 공동차례로 대신했는데,
소장이 바뀐 올 해부터, 추석날 지내야 할 제사를 삼일이나 앞당긴 21일에 치러 버렸다.

명절이라 직원들도 쉬어야 겠지만, 그렇다면 주민자치회에 제사를 맡겨야 할 것 아닌가?
이건 사진 찍기 위한 제사지, 오갈 데 없는 가난한 주민을 위한 제사는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 추석은 부득이 제사상을 차릴 수 밖에 없었다.

장가간 햇님이도 며느리 데리고 온다는데, 밥이라도 먹여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마침 누님께서 제사상에 과일이라도 올리라며 보낸 십만 원이 있어,
정영신씨를 대동하여 녹번동 대조시장으로 장보러 갔다.






물가가 높다는 이야기는 자주 들었으나, 진짜 물가가 장난이 아니었다.

병어 한 마리에 2만원이라, 만 원짜리 생선으로 대체하고,
과일 한 알, 나물 한 줌, 전 조금, 구색만 갖추었는데도, 십만 원이 금세 날아가 버렸다.

제사만 아니면, 식당에서 사 먹는 것이 싸게 먹힐 것 같았다.






다들 귀찮아 그런지, 시장에서 산 음식으로 제사 지내는 사람이 부쩍 많아 진 것 같았다.

대목장이라 분잡 서러웠는데, 나물과 전 부쳐 파는 곳은 장사진을 쳤고,

떡집은 불난 호떡집처럼 소란스러웠다.








정지용 시인의 “녹번리”가 적힌 공사장 가림막도 인상적이었고,
한쪽에서는 상인들의 노래 장단이 신바람을 돋우었다.







언제나 대묵장의 북적임은, 사람 사는 맛을 진득하게 느낄 수 있어 좋다.
물건이 잘 팔려, 돈 세는 장꾼 모습까지 얄미우면서도 정겹더라.
부대끼며 살아가는 서민들의 모습에서 살아 꿈틀거리는 힘이 느껴졌다.






그래도 조상 덕에 제사 밥이라도 먹을 수 있는 것을 고맙게 여겨야 했다.
쪽방에서는 제사 밥은커녕, 라면이나 빵으로 해결하는 사람도 한 둘이 아니다.  






십만 원짜리 제사상이라 초라하지만, 감지덕지다.
제사는 간단히 지내고, 음식은 햇님이 내외와 네 사람이 먹고 나니 깨끗하게 없어졌다.
좀 부족한 듯 했지만, 최고의 추석 상이었다.






이번 추석은 그래도 괜찮은 장사였다.

과일 사라며 보태 준 돈으로 제사까지 지냈으니 말이다.

평소 먹고 싶었던 제삿밥도 먹고, 아들 내외 밥까지 먹여 보냈으니, 괜찮은 장사 아닌가?

또 보름달은 얼마나 예쁜지, 햇님이가 질투할 지경이다.


사진, 글 / 조문호











 

현암 최규일선생 전시장에서 (돌아가신 타악기의 명인 김대환선생과 조삿갓, 최규일선생)

 

인사동 거리에서 (돌아가신 민병산선생과 박이엽선생 모습이 보입니다.)

 

괴산 막사발축제에서...

 (김용문과 이종문이 징과 꽹과리를 치는 방에서, 김언경과 신동여는 여유롭게 바둑을 두고 있네요)

 

지금은 소식이 끊긴 실비집 총장님 모습입니다.

(고인이 된 사진기자 김종구와 소리꾼 김민경, 그리고 모녀가 함께 찍었네요)

 

고 민병산선생 49제에서 (돌아가신 박이엽선생과 강용대의 모습도 보입니다.)

 

강릉 "테라로사" 커피공장 음악회에서 (요즘 통 소식이 없는 문순우씨의 모습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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