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이야기' 표지 / 눈빛출판사 / 가격 25,000원

‘인사동 이야기’ 사진집이 나와 억지 춘향격으로 전시를 준비하다 보니 인사동을 다시 돌아 볼 기회가 생겼다, 인사동은 서울의 수많은 동네 중에 한 동네에 불과하나 마치 고향 같았다. 긴 세월 예술가들을 만나 정신적 키를 키워 온 것에 비한다면, 오래전에 떠나온 고향보다 더 가까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인사동이 마냥 좋아 때론 아쉽기도 하고. 원망스러워 밉기도 했다. 어쩌면 사람이 좋아 사람을 찍어왔듯 인사동도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돈에 병들어가는 사람이 미워져 가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이제 돈에 병든 인사동이 예전으로 돌아가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가끔 인사동 골목에서 벗들을 만나 회포 푸는 것으로 위안하는데, ‘맛이 간 인사동을 그만 찍을 때도 되지 않았냐?’고들 말한다.

 

나에게 인사동은 병든 가족 못버리는 것과 같다. 고향이 싫다고 아닐 수 없듯이 인사동은 인사동인 것이다.

 

오랜세월 인사동을 기록해 왔지만, 예술로서 작품을 찍은 것이 아니라 기록으로서의 사진을 찍었다. 찍은 사진들을 살펴보니 각양각색이었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거리풍경이나 전시장 풍경이 난무했고, 대폿집 정경을 비롯하여 인사동 향취가 묻어나는 사진도 있었다. 때로는 변해가는 인사동의 어두운 모습도 있었다.

 

수 많은 사진 중에서 '인사동 묵시록'이란 주제에 걸맞는 이미지만 골라냈는데, 백남준씨가 ‘예술은 사기다’고 말했듯이 이 또한 사기다. 사람이 별로 없거나 역광에 의해 무거운 분위기의 사진을 고르고 거기다 한술 더 떠 컬러사진을 흑백으로 바꾸었다. 사진을 실제보다 어둡게 프린트하여 흥겨운 놀이를 귀신놀음처럼 음산하개 만드는 등의 조작도 마다하지 않았으니, 이게 사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기도 아무나 치는 게 아니더라. 먹고살기 위해 사기를 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덫에 걸린 것이다.

 

작가라면 자신이 표현하려는 주관에 맞는 이미지를 찾아 찍는 게 상식이지만, 기록을 중시하는 사진가라면 편파적인 시선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만약 신문기자가 주관적인 기사를 만든다면 기레기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글만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도 얼마든지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카메라 각도에 따라 달라지고 앵글 선택에 따라 의미가 바뀔 수 있다.

객관적인 기록사진을 찍는 자가 다소 주관적 사진을 골라낸 데 따른 변명을 하다 보니 말이 길어진 것이다. 전시 의도는 눈 앞이 보이지 않는 인사동의 암담한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삭막해 가는 인사동의 그늘이 짙은 것도 사실이고, 망가져 가는 현실에 실망한 시선도 한몫했다.

 

인사동은 긴 세월 많은 사람에게 예술적 영감을 일깨워온 곳이다. 어찌 보면 예술을 공유하는 장터나 마찬가지다. 장에 갔다가 반가운 사람 만나 즐기듯이, 다들 뒷골목 주막에 모여앉아 정 나누어 온 장소다. 혁명을 외치고 사랑과 예술을 노래하며 꿈을 펼친 곳이다.

 

세상 흐름 따라 장터 변하듯 인사동 역시 변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모든 것은 사람이 만들어가지만 망치는 것도 사람이다. 유명세에 힘입어 관광지화 되다보니 돈맛에 병든 것이다. 예술보다 돈 되는 상품이 인사동을 장악하는 현실은 전통가게와 전시장까지 밀어내고 있다.

 

돈이 무섭고 악랄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얼마 전 인사동에서 무자비하게 철거된 문화공간 ’코트‘가 대표적인 예다. 전시장을 헐어 주차장을 만들기 위해 계약도 끝나지 않은 곳을 강제 철거했다. 용역업체를 끌어들여 고압수를 살포하며 입주자들에게 폭력까지 행사했으니, 돈 앞에서는 법도 소용없는 무서운 세상인데,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렇지만 인사동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 이상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전통가게나 문화공간이 어려워도 군데군데 버텨나갈 것이고, 예술가들도 작품을 펼쳐 놓고 어느 골목 주막에 모여앉아 담론으로 꽃 피울 거다. 그래서 하잘 것 없는 인사동 노래라도 부르기로 작정한 것이다.

 

이번에 출판된 '인사동 이야기’는 11년 전에 나와 절판된 사진집이다. 인사동에서 잔뼈가 굵은 노광래씨가 복간을 추진하다 개정판이 되었는데, 글과 사진을 일부 추가하여 부족한 부분을 메웠다.

 

내년에 출판할 예정인 인사동 반세기를 정리하는 준비 작업이기도 하다.

 

전시에 내걸 사진은 인사동의 현실을 말하는 40여점이 주를 이루는데, 책에 없는 사진이 더 많다. 그리고 한 쪽 벽에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입상사진 10여점도 내걸기로 했다.

 

주제와 다른 입상 사진을 내건 것은 ‘인사동이야기’의 많은 지면을 인사동 사람들의 입상사진이 차지하고 있기도 하지만, 본래 의도한 책 제목도 ‘인사동이야기’가 아니라 ‘인사동 사람들’이었다.

 

초판에 게재된 분들은 13년 전에 열었던 ‘인사동, 그 기억의 풍경’전에 내 걸었으니, 추가로 촬영한 20여 명 중 일부라도 선보이려는 것이다.

 

각자가 추억하는 장소에서 찍었으니, 인사동의 특정 거리나 공간도 포함되었다. 사실 인사동이란 장소에 앞서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어쩌면 그 사람들이 인사동을 지켜나갈 전사이기도 하다.

 

‘인사동 이야기’ 에는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 124명의 입상사진을 바탕으로 강민시인을 비롯한 43명의 작가가 쓴 48편의 인사동에 관한 시와 추억담이 있고, 인사동 사진도 37점이 중간 중간 들어있다. 책값은 25,000원이다.

 

이 전시는 11월 24일부터 30일까지 인사동 ‘나무아트’에서 열린다.

꺼져가는 등불처럼 가물거리는 인사동의 부흥을 위해 다 같이 신명난 굿판 한 번 벌이자.

 

사진, 글 / 조문호

 

대마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현영애 감독으로 부터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현 감독은 페이스 북에서 알았는데, 그 용기가 대단했다.

대마라는 말만 나와도 쉬쉬하며 주눅 드는 세상이 아니던가?

대마 명예회복을 위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기대되는 바도 컸다.

 

지난 2일 오후4시에 만나기로 했으나, 약속시간보다 일러 인사동 거리를 돌아다녔다.

추석 연휴라 그런지 평소보다 사람이 많았다.

단골 악사가 연주하는 비올라 리듬의 템포도 빨라졌다.

 

시간이 빠른건지 오래지 않았는데, 금방 약속시간이 지나 버렸다.

서둘러 갔더니, ‘귀천’의 목영선씨가 반겨주었다.

첫 대면이라 못 알아볼까 걱정했는데, 마침 찻집에 여자 손님은 한 분 뿐이었다.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는데, 좀 머쓱했다.

‘귀천’에서의 첫 만남은 이런 저런 정보를 공유하는데 그쳤다.

현감독이 보여 준 영화제작 기획안을 살펴볼 수 있었는데,

눈이 어두워 대충 보았지만 관심가는 내용이 많았다.

 

특별한 용건이 없어 혼자 콩팔칠팔 지껄였으나,

좋은 기록물이 될 수 있도록 힘 닿는데까지 도울 생각이다.

 

부디 마약으로 왜곡된 대마에 대한 인식을 바로 잡아, 대마합법화에 기여하기 바란다.

 

자원의 보고인 대마 해방을 위해 많은 분들의 관심과 협력을 부탁드린다.

 

사진, 글 / 조문호

 

 

인사동은 고향도 아니고 사는 곳도 아니지만,

비 온다고 나가고 날씨 개였다고 나간다.

전시한다고 나가고 사람 만난다고 나간다.

 

정든 사람 떠난 인사동을 허구한 날 맴돈다.

더러는 저승으로 떠나고 더러는 오리무중이다.

남은 건 인사도 안 하는 인사동이란 이름뿐이다.

아니면 술에 취해 인사 불성된 기억만 떠돈다.

 

가게들은 간판을 바꾸고 주인까지 바뀌었지만,

꼬불꼬불 미로처럼 얽힌 좁은 골목만 그대로다.

 

그러나 지울래야 지울 수 없는 기억의 저장고다.

그리움이 안개처럼 맴도는 추억의 공간이다.

 

삭막한 거리를 떠돌며 지워진 이름을 떠 올린다.

 

천향각, 실비집, 시인통신, 누님칼국수, 하가, 귀천,

레테, 춘원, 평화만들기, 수희재, 인사동사람들...

 

그리고 별이 된 사람들도 떠 올린다.

 

민병산, 박이엽, 천상병, 박재삼, 강 민, 심우성,

이구영, 김동수, 김대환, 이계익, 이호철, 목순옥,

원광스님, 중광스님, 적음스님, 김용태, 문영태,

김종구, 이존수, 여 운, 이동엽, 김영수, 강용대, 박광호...

 

다들 일상 너머 세상을 꿈꾸는 낭만적인 사람들이다.

지나간 세월이 그립고, 떠나 간 사람들이 보고 싶다.

 

사진, 글 / 조문호

 

[사진은 지루한 장마가 끝난 지난 일요일에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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