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허물고 대중에 공개된 송현동 열린송현녹지광장
2027년 정식 개장까지 공간 활용 위한 대화 이뤄져야

제4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기간 열린 송현녹지광장에 설치됐던 '하늘소' 전망대 ⓒ김지나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얼마 전 폐막했다. 2017년 처음 시작해 벌써 4회째를 맞이한 도시, 건축 분야의 전시축제다. 갈수록 다양한 모습으로, 또 복잡하게 변해가는 도시 문제들을 각계 전문가와 시민들이 함께 고민해보는 장으로 기획됐다. 그동안 전시공간으로 활용된 장소들도 이색적이다.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세운상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등 서울 도시개발의 여러 가지 실험을 이루어졌던 현장들이었다.

주로 실내에서 전시가 이루어졌던 지난 행사들과 달리, 이번에는 메인 전시장이 야외라는 점이 눈에 띄었다. 열린송현녹지광장이란 곳이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만큼 생경하게 느껴질 법한 이 공간은 서울 송현동에 생긴 넓은 녹지다. ‘생겼다보다는 공개됐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오랜 세월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 누구도 손대지 못했었던 땅, 부동산 시장에서는 나름 뜨거운 감자였던 송현동 땅이 바로 여기다.

 

하늘소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녹지광장과 주변 풍경 ⓒ김지나
'페어 파빌리온'. 비엔날레 기간 열린 송현녹지광장에 설치된 파빌리온 중 하나다. ⓒ김지나

활기 채워가는 도심 속 녹지광장

작년 10월 처음 임시개방이 됐을 때만 해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서울 한복판에 드물게 남아 있던 금싸라기 땅이었지만 녹지광장이란 쓰임새는 낯설고 또 당황스러운 결정이었던 듯하다. 그러다 올해 도시건축비엔날레의 전시장으로 결정된 후, 풍경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늘소라는 거대한 전망대가 가장 먼저 들어섰고 곧이어 다양한 형태와 색감의 설치작품들이 푸른 녹지를 조금씩 채워나갔다. ‘파빌리온이라 불리는 임시 건축물들로, 모두 비엔날레 기간 동안에만 전시됐다가 이후 해체돼 자재들만 재활용될 예정이다.

그러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지난 두 달간은 평일 낮에도 찰나의 가을 날씨를 만끽하기 위한 사람들로 녹지광장에는 활기가 넘쳤다. 전시기간동안 광장에 전시된 작품들이 난해한 구조물로 보였을 법도 했지만, 시민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즐기는 모습이었다. 하늘소 전망대에서는 인왕산과 북악산을 품은 서울 도심의 경관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이 땅이 어떤 환경 속에 있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지하철역과 가까운 데다 경복궁과 국립현대미술관, 북촌한옥마을, 인사동으로 둘러싸인 위치도 사람들을 불러들이기에 부족한 점이 없었다. 비엔날레 관람객이 약 80만 명으로 집계됐다고 하니, 열린송현녹지광장을 찾은 사람들의 숫자도 결코 적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송현동은 관광객도, 업무 차 드나드는 사람도 많을 수밖에 없는 동네다. 하지만 이전에는 녹지광장 자리가 어떤 풍경이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작년 초까지만 해도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일반 사람들은 들어가 볼 수도,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도 없는 땅이었기 때문이다. 서울 도심 한복판, 이토록 넓은 평지가 개발되지 않고 비어 있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녹지광장을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 ⓒ김지나

공간의 미래 위한 시민 토론 이어져야

지금의 열린송현녹지광장이 되기까지, 그 과정을 살펴보면 기구하다는 표현 말고는 더 적합한 단어가 없을 정도다. 그 이름에서 나타나듯 조선시대에는 소나무가 울창한 숲이었다. 경복궁을 보호한다는 목적이었지만 조선 말기 안동 김씨 집안 소유로 넘어간 것을 시작으로 으로서 역할은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식산은행 사택, 미국대사관 직원숙소를 거쳐 개발을 노리고 삼성생명, 대한항공이 차례로 주인이 됐으나 별다른 진전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 땅에 얽힌 각종 규제 때문이었다. 결국 서울시에서 이를 다시 매입하고 공원으로 개방하게 된 것은 자연스런 수순에 가까웠다. 서울 한복판, 우리나라 역사 도심 속 남아 있는 빈 공간에, 공공 공간 말고 또 어떤 용도를 논할 수 있었을까.

이제 여기 새로운 녹지가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지난 두 달 동안 보고 느꼈다. 앞으로도 크고 작은 문화예술 행사들이 예정돼 있다. 하지만 송현동 땅이 앞으로 어떤 공간이 돼야 할지,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 정부나 지자체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통보하는 방식은 재고해야 한다.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충분한 시민적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은 결과물은 또 다른 갈등을 낳을 뿐이다.

다행인 것은 이번처럼 유휴공간이 생겼을 때 임시 개방기간을 가지고 시민들이 실제로 사용해볼 기회가 주어지는 사례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반환 미군기지인 원주 캠프 롱, 벽돌공장 건물이었던 연천 DMZ피스브릭하우스, 이번 안양 공공미술 프로젝트 전시장인 옛 농림축산검역본부 등 이슈도 다양했다. 이런 시도들이 임시방편으로 끝나지 않고 시민들의 경험을 실제 개발계획에 반영할 수 있도록 고민이 필요하다. 열린송현녹지광장이 정식 개장하는 2027년까지 이 땅의 미래에 대한 많은 대화가 오고가는 여건이 마련되길 바란다.

출처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북인사마당이 내려다 보이는 거리풍경 / ⓒ 조문호
57th갤러리에서 내려다 본 풍경 / ⓒ 조문호
57th갤러리에서 내려다 본 풍경 / ⓒ 조문호
57th갤러리에서 내려다 본 풍경 / ⓒ 조문호
57th갤러리에서 내려다 본 풍경 / ⓒ 조문호
57th갤러리에서 내려다 본 풍경 / ⓒ 조문호
57th갤러리에서 내려다 본 풍경 / ⓒ 조문호
57th갤러리에서 내려다 본 풍경 / ⓒ 조문호

지난 2월 21일 인사동 오찬 모임으로 나섰는데, 인사동은 나설 때마다 마음이 늘 바쁘다.
갈 곳도 할 일도 많다는 생각이 앞서나 막상 당도하고 나면 새로운 전시를 찾거나 길거리를 돌며

사진 찍는 일이 전부다. 수시로 드나드는 인사동에 무슨 사진찍을 것이 그렇게 많으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사진은 만남의 예술이고, 발견의 예술"이기에 부지런히 돌아다니는게 상책이다.


거리는 전통과 무관한 별의 별 장사들도 많지만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 인사동이다.
세상의 중심인 사람보다 더 좋은 사진 소재는 없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을 함부로 찍을 수도 없는 시대다.

작년에는 인사동과 장터에서 사진찍다 문제가 생겨 종로경찰서와 안동경찰서에서 각 각 조서를

받은 적이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평생의 주제가 사람인데, 이제 와서 사진 작업을 접을 수는 없다.

그래서 오래 전 부터 허락한 사람의 이름과 나이를 기록해 두고, 정면 입상사진을 찍어왔으나

스냅의 가치 또한 무시할 수 없기에 가끔은 카메라를 휘 둘 때도 더러 있다.
찍을 때 사전 양해부터 구해야 되지만 순간적인 감정 표현이나 동작을 포착하려면 순서가 바뀌지 않을 수 없다.

상황이 바뀌기 전에 찍은 후  인사도 하고 양해를 구하는 식이었는데, 본인이 거부하면 즉석에서 지워줘

말썽의 소지를 없애면 된다. 그러나 그 사람을 찍지 않았는데, 찍었다고 우겨 가끔 문제가 생긴다.

정오무렵, 안국역 6번출구로 나오니 한 아주머니가 조각천을 이용한 밥상보등을 만들어갖고 나와

손바닥만한 노점상을 펼쳐놓고 있었다. 인사동에 어울리는 노점상이란 생각에 카메라를 들었더니

대뜸 손사레를 치며 “초상권 침해야~”라고 쏘아붙였다. 카메라는 내렸으나 뒷 맛이 씁쓸했다.

요즘 젊은이들이나 외국 사람들은 카메라를 들면 오히려 포즈를 취해 난감할 정도로 적극적인데 비해, 

나이가 지긋 할수록 거부하는 분들이 많은 건 무언가 피해의식이 있는 듯했다.
초상권이란 얼굴모습을 분별할 수 있는 사진이 상업용으로 활용되었을 때 문제를 제기할 수 있지만,
정면사진이 아니거나 군중 속에 뒤 섞여 있는 조그만 모습까지 시비 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거리에는 중국관광객들이 몰려다니기도 하고, 패션쇼를 홍보하는 모델들이 줄지어 다니기도 했다.
원로사진가 이명동선생님을 만났고, 음유시인 송상욱선생과 박찬성씨,사진가 육명심, 한정식, 이완교선생

그리고 현장스님도 만났다. 그래도 인사동 나들이의 묘미는 우연히 인사동 터줏대감이나 인사동을

사랑하는 유목민들을 만날 때가 가장 즐겁다.

'노마드'에 도착한 현장스님에게 카메라를 겨냥하자 쓸데없는 기념사진은 왜 만날 때마다 찍느냐고 반문하였다.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너무 우습게 생각하는 것 같다.

한정식선생의 말씀처럼 "사진예술의 첫머리에 기념사진이 존재하고, 기념사진의 밑바닥에 초상사진이 존재한다"

는 것을 왜 모를까....

 

 

 

 

 

 

 

 

 

 

 

 

 

 

 

 

 

 

 

 

 

 

 

 


지난 23은 전인경, 허미자씨의 전시 오프닝이 있어 오랜만에 인사동에 나왔다.
인사동은 변함없이 사람들로 붐볐고, 애절한 바이얼린 소리도 여전했다.

전시 축하연에서 회포나 풀 작정으로 지난 달부터 날짜를 비워두었기에
한결 여유로운데다, 창원의 김의권씨도 상경한다기에 모처럼 마음이 들떴다.
길거리에서 김영복씨를 만났지만, 인사도 하지않은 채 카메라부터 들여댔다.
전시장에서 만난 벗들도 사진부터 찍었으니, 좀 몰인정스럽게 보였을 것이다.

마치 사진을 처음 시작한 30여년 전으로 돌아간 것 처럼, 새삼 사진에 빠져들고 있다.
혹시 죽을 때가 가까워 마음이 조급해진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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