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3일은 달세 방에서 쫓겨 난 노숙자 거처에서 낮술에 취한 날이다.
이덕영씨와 씨잘 데 없는 한담을 나누고 있는데, 공윤희씨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인사동 나오지 않냐?”는 말에 나가기는 했으나,
숨이 가쁘기 시작해 더 이상 술을 마시기는 힘들 것 같았다.






습관적으로 인사동 거리를 찍으며 지나가는데,
세계일보 편완식기자가 도화가 이흥복씨와 미녀 한 분을 데리고 걸어가고 있었다.
이흥복씨를 보니, 지난 4월 하순 ‘통인’에서 개최한 개인전에 가보지 못한 미안함이 앞섰다.
개막식 날 작정하지 않으면 미루다 놓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이흥복씨는 백자도판을 픽셀 삼아 평면에다 입체적인 작업을 하는 도판화가인데,
고향인 거창에 작업실이 있어 자주 볼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다.
여럿이 가는 것으로 보아 무슨 약속이 있는 것 같아, 사진만 찍고 헤어졌다. 



 


공윤희와 약속한 ‘유목민’으로 갔더니, 민영기씨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은 그만 마시기로 작정했으나, 마시고 있는 ‘한라산’소주에 구미가 땡 겼다.
맛이나 본다며 시작한 술이 서너 잔은 족히 마셨는데, 그때서야 용건을 꺼냈다.
지난 번 말썽을 일으킨 “쓴 맛이 사는 맛”이란 전시 결산 내용을 정리해 줄 테니,
‘인사동 사람들’ 블로그에 올려 달라는 내용이었다.






한 차례 구설수에 몰렸던, 그 지긋지긋한 일을 왜 다시 거론하는지 모르겠다.
아직 미진한 것이 남았으면 투명하게 밝히는 것이 순리이지만, 
남은 일은 돈 받은 사람들 거명할 일인데. 잘 아는 분들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 썩 내키지 않았다.
내용을 보고 결정할 생각으로, 자료나 정리해 보내 달라며 나왔다.






그 후 잊고 있었는데, 이틀 뒤 정영신씨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노광래씨가 녹번동에 들려 많은 이야기를 하고 갔다는 것이다.

햇님을 위한 조각가 박상희씨의 마음을 전해주러 왔다는데, 나한테 꼭 전하라는 말도 있단다.







첫째는 채현국선생과 자기에게 사과하는 글을 올려 달라 했고,,
둘째는 채현국 선생께서 날더러 “동냥 보따리를 찢었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그 말에 인사동의 가난한 작가들이 엄청 자존심을 다쳤다는 이야기도 덧 붙였다.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만약 그런 일만 없었다면, 문제의 그 전시를 계속 할 작정이었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 당시 ‘시가연’에서 채현국선생께 드린 말이 와전되어 전해지기도 했다.
“선생님께서는 평생 갑의 입장에서 사셨기에 을의 입장을 모르지 않느냐?”는
내 말이 ‘최현국선생께서 갑 질 했다“는 말로 둔갑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더러 무엇을 사과하라는지 모르겠다.
‘시가연’에서 채현국 선생께 인간적으로 심려를 끼친데 대해 큰 절 올리며 사과했고,
노광래 씨에게는 개인적으로 밥그릇 걷어찬데 대하여 사과하지 않았던가?






난, 머리가 나빠 판단이 잘 안 되니,
내가 올린 글에 대해 조목조목 지적해 주면 충실한 답을 공개할 것이고,
잘 못된 일이라고 판단되면, 정중히 사과하겠다고 전하라 했다.






이제 와서 누구를 원망하랴! 다 돈이 원수다.
제발 굶어 죽어도 쪽팔리게는 살지 말자.



사진, 글 / 조문호
























인사동 '통인가게' 김완규회장이 주축이 된 "인사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약칭: 인사모)

11월 정기모임이 지난 24일 오후6시30분부터 인사동 '툇마루'에서 있었다.

이 날 참석한 분으로는 회장이신 민건식 원로 변호사를 비롯하여 박일환 전임 대법관, 한국화가 김양동,

서양화가 이목을씨, 영남대 도예교수 이흥복씨, 해병대 장군으로 퇴역해 국제봉사협회 고문으로 재임 중인

윤경원씨, 사업가 송재섭, 강윤구, 김완규씨, 그리고 새로이 나오신 외환은행 박상균지점장 등 11명이 참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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