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훈展 / HAJIHOON / 河芝勳 / painting

 

2020_0708 ▶︎ 2020_0728 / 일,공휴일 휴관

 

하지훈_Gemstone isle#40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105×150cm_2019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70304h | 하지훈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이화익 갤러리

LEEHWAIK GALLERY

서울 종로구 율곡로3길 67(송현동 1-1번지)

Tel. +82.(0)2.730.7818

www.leehwaikgallery.com

 

 

풍경이 갖고 있는 진실한 구조를 찾아서 ● 하지훈 작가의 작업은 안정적이고 단단한 수평의 지반을 기초로 수직으로 융기한 섬이나 산이 옹골지게 구조를 이루었다는 인상을 준다. 물감은 붓질의 기교에 의해 화면에 두텁게 올려지기도 하고 때로는 옅고 투명하게 올려지기도 한다. 많은 관람자와 비평가들은 하지훈 작가의 작품이 추상과 구상의 경계에서 벌이는 시각적 긴장을 즐겁게 바라본다. 그러나 그 내부에서 벌어지는 시적인 게임을 바라보지 못한다. ● 우선 하지훈이라는 작가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1978년 부산에서 태어났고 대구에서 수학했다. 당연히 대구 화단의 영향을 받았다. 대구 화단의 성좌(constellation)는 순수주의라는 중력에 의해서 그 좌표가 배치되고 결정된다. 순수주의는 매체가 지닌 가능과 한계를 절실하게 탐험한 작가에게 영예의 좌표를 허락하지만, 반대로 순수주의를 훼손시키는 움직임에 대해서만큼은 포폄의 논의에서조차 빗겨나도록 단호하게 배제했다. 순수주의의 기치(旗幟)를 옹호하는 성좌에 대하여 계보학의 선상에서 존중하는 매력을 발휘했지만, 동시에 수많은 인생경험과 다양한 실존을 넉넉하게 수용하지 않았다. 이것은 애정의 오류이다. 하지훈 작가는 이 애정의 오류가 부담스러웠다. 무엇보다도 작가는 동시대의 문제적인 회화가가 되길 바랬다. 새로운 형식, 자기만의 세계를 갖고 싶었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독일 뮌스터 쿤스트아카데미에서 수학했다. 트렌드와 전략을 중시하는 영미권의 교육 스타일보다 가는 길의 장애물들을 돌파하면서 사유의 깊이를 더해가는 독일어권의 예술을 더욱 사랑했기 때문이다. ● 여기서 스승 미카엘 반 오펜(Michael Van Ofen)을 만나게 된다. 스승 마카엘 반 오펜은 세계 미술의 전설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의 총애를 받으며 성장한 작가였다. 스승 미카엘은 제자의 재능을 알아보았고 하지훈 작가를 독려하면서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하지훈 작가에게 독일의 전통이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작가가 가장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개인주의의 자유와 공동체 정신 사이의 갈등과 화해의 변증적 역사였다. ● 18세기 말부터 유럽은 이미 전통이 지닌 강대하고도 위력적인 위용과 위계질서가 와해되고 있었다. 대신 자율, 평등, 정의, 자유와 같은 신생의 가치들이 규범적이고 종교적인 삶을 대체해갔다. 1840년 프랑스 사상가 알렉시스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은 개인의 욕망과 관심을 공동체적 가치보다 중시하는 경향을 가리켜 '개인주의(individualism)'라고 이름 지었다. 그것은 거대한 공동체의 가치로부터 가족, 친구, 서클 등 작은 사회로 가치가 이행하는 경향을 뜻한다. 공동체는 거대 서사(grand narrative)를 기반으로 존재했다. 거대 서사란 인간의 역사가 어떤 목적을 향해 움직인다는 세계관이다. 이를 목적론(teleology)이라 부른다. 그러나 작은 사회를 지향하는 움직임에 시동이 걸린 이상 이 움직임은 거대한 목적론과 서로 배치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거대한 목적론이 누르는 무거운 짐으로부터 벗어났을 때 날듯이 가벼웠지만, 동시에 부작용도 생겼다. 그것은 허전함이고 죄책감이며 방향성 없는 상실감이었다. 그리고 콘템프투스 문디(contemptus mundi), 즉 세상에 대한 경멸마저 생겼다.

 

하지훈_Gemstone isle#43(Kyoto)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227×182cm_2019

 

하지훈_Gemstone isle#48_패널에 아크릴채색, 유채_91×73cm_2019

 

하지훈_Landscape-structure#5(Corsica)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150×105cm_2020

 

사람들은 세 가지 의식의 차원이 있는데, 주지와 같이, 상상계(imaginary) 〮 상징계(symbolic) 〮 실재계(real)가 그것이다. 상징계는 어렸을 때 체화된 의식으로 세계에 대한 상(象)을 결정한다. 이것은 평생 고쳐지지 않는다. 합리적 이성으로도 고칠 수 없는 견고한 상이자 총체적 감수성이다. 예를 들면, 그리스 영웅 서사가 상징계에 자리 잡으면 그 사람의 세계관은 영웅적 서사가 되며 결정적의 삶의 계기에서 영웅의 마스크를 쓰게 된다. 기독교의 자애로운 사랑을 실천하는 성인에 대한 상이 상징계에 깃들게 되면 일평생 사랑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그리고 매사 성인의 마스크를 쓰고 세상을 접하며 실천한다. 몬타나 주의 크로우족 인디언(the Crow Tribe)은 어릴 적 형성된 상에 의해서 일평생 용맹한 전사로 살게 된다. 그러나 이렇듯 역사적 인간, 거대 서사의 인간, 공동체의 인간에서 개인주의적 인간, 모던의 인간으로 이행될 때, 사람은 사람을 계산된 사회 체계의 몰개성한 군체(群體) 정도로 인식하며 사람은 사람을, 그리고 사람들을 사물쯤으로 바라보고 대상화시킨다. 다만 작은 서클 속에서 공통의 관심과 취향을 누리며 그것이 모든 것이라 여기며 본연을 잊게 된다. 거대한 대아(大我, I)에서 작은 소아(小我, i)로 전락하며 근본을 상실한다. 사람을 목적으로 보지 않고 수단쯤으로 여긴다. 비루하지만 진중했던 삶에서 풍요롭지만 경첩(輕捷)한 삶으로 존재를 패퇴시킨다. 따라서 모더니즘과 개인주의가 지닌 커다란 두 가지 문제점은 자기 소외와 자기 상실이다. 이를 철학자 하이데거는 '고향상실(homelessness)'이라 하기도 하고 근절(根絶), 즉 '뿌리 뽑힘(uprootedness)'이라 부르기도 했다. ● 미술 역시 마찬가지이다. 상징계에 목적론의 거대 서사가 깃들었을 때 대형 작가와 위대한 작품이 나왔다. 그러나 개인주의가 성행하고 나서부터 미술 역시 목적을 잃고 개념과 세계는 파편화되었다. 개인주의로 가는 세계의 액셀러레이터를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것은 가속화된다. 그래서 위대한 철학자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는 "사람들은 더 이상 고귀한 목적의 의미를 수용하지 못할뿐더러 무언가를 위해 죽겠다는 생각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했다.1) 그런데 독일 미술계에는 요셉 보이스(Joseph Beuys)가 있었다. 요셉 보이스는 전통과 개인주의 사이에 놓인 심연을 건널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고 가르쳤다. 스스로에게 물어서 절실하고 진실된 체험이 무엇인지 생각하라고 독려했다. 자신에게 단 한 가지 변할 수 없는 진실은 전쟁 중 겪게 된 비행기 추락과 타타르족 무속인의 제식으로 자신이 깨어났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래서 보이스는 평생 버터를 만졌다. 요셉 보이스의 제자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나치 경력이 있는 집안사람에 의해 다른 집안사람들이 영원히 치유될 수 없는 고통의 늪으로 빠져들었으며 이 늪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픈 기억들을, 아픔이 빗겨있는 소중한 기억들을, 사진 속에 맺혀있는 어렴풋한 느낌들을, 화면에 소환시켜 되살리는 길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아침마다 가족의 안부를 묻고 신문기사를 보며 사회의 안녕을 살폈다. 그리고 하지훈의 스승 마카엘 반 오펜은 개인주의 시대의 사진과 전통 시대의 장르화 사이의 접점을, 추상과 재현의 접점을 찾는 여정에 자기의 대서사를 쓰겠다고 다짐했다. 따라서 사진과 미술사를 평생 화두로 삼았다. 개인주의와 전통이라는 건널 수 없는 심연을 매체로 극복하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 하지훈 역시 스승과 스승의 스승, 그 스승의 스승이 떠났던 고독한 길을 함께 따라 가기로 결심한다. 트렌디한 작품을 생산하다 명멸하는 수많은 작가들의 길을 걷지 않고, 첨예화되어 가는 개인주의로부터 회화의 힘을 복권시키는 데 자신의 명운을 걸기로 한다. 하지훈 작가는 어려서부터 빈번하게 이주한 경험이 있다. 부산에서 포항, 포항에서 대구, 대구에서 뮌스터, 뮌스터에서 서울로 이동했다. 이동할 때마다 기억으로부터 디아스포라가 물밀듯이 다가왔으며 빼앗긴 디아스포라의 영토를 마음 속에 재배치해야만 했다. 풍경은 하지훈에게 필연적 실존이었다.

 

하지훈_Landscape-structure#9(Aix-en-Provenc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117×91cm_2020

 

하지훈_Landscape-structure#10_캔버스에 유채_33×24cm_2020

 

하지훈_Landscape-structure#11_캔버스에 유채_33×24cm_2020

 

하지훈 작가는 풍경을 그린다. 그런데 재현이 아니다. 풍경을 구조화시키며 묵직하고 육중한 덩어리로 형상화시킨다. 스승 미카엘 반 오펜이 추상과 구상의 경계(Grenze zwischen Figuration und Abstraktion)에서 개인주의와 전통적 서사의 해후를 구조화시킨다면, 하지훈은 '본다'라는 시각적 행위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던진다.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서구의 풍경화는 고정 시점이다. 절대적이어서 움직이지 않고 고정되어있는, 그리고 기하학적으로 약속된 가상의 선을 그리고, 그 안에 보이는 대상을 집어넣는다. 그러나 그러한 시점을 우리는 누릴 수가 없다. 시시각각 움직이는 우리의 동작과 눈동자의 움직임으로 인해서 우리는 고정된 기하학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없다. 그렇다면 사진은 어떠한가? 사진은 0과 1이라는 이전법과 프로그래머가 만든 카메라의 시선이어서 자연스러운 우리의 시선이 아니다. 우리가 프랑스 코르시카 섬에 여행하더라도, 아니면 생 빅투아르 산에 놀러 가서 그것을 한껏 바라보더라도, 일단 집에 와서 침대에 누우면 섬과 산이 있는 그대로 사진처럼 보이지 않고 추상화된다. 우리 뇌리에 각인되는 코르시카 섬과 생 빅투아르 산은 순수하게 시각적인 것일 수 없다. 그것은 총체적 감수성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우리의 오온(五蘊), 즉 모든 감수성의 기제가 가담하여 기억을 재생시킨다. 그러나 그것은 근본적으로 추상적이다. ● 하지훈 작가는 우리의 시각을 해체한다. 우리의 시각이 지니는 문제점을 근본부터 사유하여 재조정하고 재배치한다. 우리 눈이 보았던 산의 시시각각 변화무쌍한 모습과 시점들은 걸음걸이와 이동과 손놀림과 제스처, 그리고 호흡과 함께 작용한다. 산에서 나는 소리, 공기의 청명한 맛, 바람의 손길을 동시에 느끼면서 산을 본다. 여기서 감각은 폭발하며 정서는 상승 무드를 탄다. 이러한 총체적 느낌을 사진과 고정시점의 풍경화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의 전통 산수화가 풍경을 만날 때 느끼는 총체적 느낌이 서구가 개발한 고정시점의 풍경화보다 더욱 진실된 것이다. 하지훈의 풍경 구조는 눈으로 표현한 풍경화가 아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오온, 즉 색온(色蘊: 육체, 물질) 〮 수온(受蘊: 지각, 느낌) · 상온(想蘊: 표상, 생각) · 행온(行蘊: 욕구, 의지) · 식온(識蘊: 마음, 의식)을 모두 종합시킨 풍경화이다. ● 우리의 마음에 영원히 자리하는 대시인 동파 소식(東坡 蘇軾)은 제서림벽(題西林壁)이라는 시에서 "가로로 보면 고개, 세로로 보면 봉우리. 멀고 가깝고 높고 낮음에 따라 모습이 제각각이구나. 여산의 진면목을 내 알지 못하는 까닭은 이 몸이 바로 산 속에 있기 때문이구나."라고 노래했다.2) 우리는 본질적으로 풍경을 묘사할 수 없다. 언어로도 그렇고 예술로도 그렇다. 진면목을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바로 그것, 이러한 메타적 인식이야말로 예술의 본질이다. 그리고 하지훈 작가는 갈수록 소외와 세상혐오가 짙어지는 세태에 가장 현대적인 철학을 바탕으로 고전의 감각을 원융회통(圓融會通)시켜 새로운 성찰의 길을 열어가는 작가이다. 내가 이 산 속에 있으면 그 산의 진면목을 절대로 알 수 없다. 그러나 산이 내게 주었던 총체적 느낌을 구조화시키고 마음 속에 심화시킬 수는 있다. 하지훈이 가고 있는 길은 아름답고 숭고하지만 절대로 무겁지만은 않다. 시원하고 상쾌한 길이다. 나는 여기서 우리나라 회화의 미래를 본다. 그림은 눈으로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온몸으로 사유하고 육화시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작가의 그림을 통해 배우게 된다. 하지훈의 풍경구조는 서구의 전통으로 감화되어 발아되었지만 우리 전통의 인생론과 우주관과도 절묘하게 짝을 이루며 무게와 깊이를 더해간다. ■ 이진명

 

하지훈_Landscape-structure#14_캔버스에 유채_33×24cm_2020

 

하지훈_Landscape-structure#23(Aix-en-Provenc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91×117cm_2020

 

In Search of the Veritable Fabric of Landscapes ● Ha Ji-hoon's works give an impression of islands and mountains springing up from a structure on a stable, solid ground. Paint is applied in either a thick or thin and semitransparent way to the canvas using brush techniques. Many viewers and critics may enjoy the visual tension that arises on the border between abstraction and figuration in his works. Be that as it may, they cannot detect the sort of poetic game that takes place within them. ● To begin, it is important to know more about artist Ha Ji-hoon. He was born in Busan and studied art in Daegu. As a result, he might very well have been influenced by the Daegu art scene. The coordinates of the Daegu art world is determined by the gravity of purism. Purism has allowed artists who have desperately explored a medium's functions and limits to attain a position of honor but resolutely excluded movement to defame or belittle the value of purism. When the Daegu art community subscribed to the concept of purism, it was respected in some accounts but it could not amply embrace numerable life experiences and existences. This is a so-called love-and-hate error which artist Ha felt was burdensome. Above all else, he wants to be a problematic painter. He would like to retain his own world and new form. Upon graduating from college, he went to study at the University of Fine Arts Münster (Kunstakademie Münster in Münster) in Germany because he had a strong affection for German-speaking regions which put more emphasis on depth of thought compared to English-speaking areas which stressed trends and strategies. ● It was here that he met Michael van Ofen. Ofen gained the favor of Gerhard Richter, a legendary German photographer. Ofen appreciated Ha's talents and taught him much about art while encouraging his activities. This resulted in German tradition gradually filtering into Ha's works. Most shocking to Ha was the dialectical history of confrontation and reconciliation between individual freedom and a communal spirit. ● Potent tradition and hierarchy began to collapse in Europe in the late 18th century. Normative, religious lifestyles were being replaced with newborn values such as autonomy, equality, justice, and freedom. In 1840 French thinker Alexis de Tocqueville referred to the tendency to emphasize individual desires and concerns over communal values as "individualism". This refers to the transition from a big society to a small community such as a community or circle of friends and families. A community exists based on a grand narrative, a worldview that sees human history as moving to fulfill some purpose. This grand narrative is called "teleology". This movement, however, could not help but be contrary to a massive teleology once the trend of seeking out small societies was triggered. When the heavy burden inflicted by a colossal teleology was removed, people felt as if they could fly but encountered some side effects like emptiness, a sense of guilt, and a sense of loss. In addition, contempus mundi, or contempt for the world, appeared. ● It is alleged that there are three dimensions of consciousness: the Imaginary, the Symbolic, and the Real. The Symbolic is one's consciousness as a child which determines one's image of the world and lasts a lifetime. It is both a solid image and a holistic sensibility immune to any rational reasoning. For instance, if Greek heroic epics were established in one's territory of the Symbolic, his worldview becomes like a heroic epic, and he dons a hero's mask at the decisive moment of his life. If a Christian saint who practiced merciful, benevolent love dwells in the Symbolic, one comes to view the world with love. He encounters the world and practices love with the mask of a saint. The Crow Tribe of Montana live as valiant warriors throughout their lives due to the image that is shaped in their childhood. When we undergo a shift from historical, narrative, or communal humans to individual or modern humans, we regard people as a colony of depersonalized individuals in the fabric of society, objectifying them. One enjoys common interests and tastes only in a small circle, regarding it as all there is. One loses elemental nature, degenerating from the higher self to the lower self. We no longer see a human as a purpose but as a means, degrading our lives from abject yet sedate lives to rich yet nimble ones. The two major drawbacks of modernism and individualism are self-alienation and loss which Heidegger described as "homelessness" and "uprootedness". ● Art is much the same. Prodigious artists and great artworks were brought forward when a grand narrative of teleology dwelled in the Symbolic. Ever since individualism became prevalent, however, art has become aimless and the world and the concept have become fragmented. We continue to press the accelerator to make the world go faster toward individualism; it has accelerated with time. As great philosopher Charles Taylor is quoted as saying: "People no longer have a sense of a higher purpose, of something worth dying for."1) In the German art world Joseph Beuys held that there is only one way to cross the abyss between tradition and individualism. He encouraged us to ask ourselves to think about what a desperate, sincere experience is. The only truth that he held as everlasting was the fact that he was in a plane crash during the war and was rescued thanks to a shamanic ritual performed by Tatar tribesmen. Butter was a material that Beuys used in his works throughout his life. Richter, his disciple, believed that his family members had fallen into a swamp of pain due to other members of the family who had collaborated with the Nazis and that the only way to escape from it was to use his works to hark back to invaluable memories fraught with pain and the dim memories laden in his pictures. That was why he asked after his family every morning and monitored social peace by reading the newspaper. Ofen, Ha's teacher, resolved to lay out his own epic and narrative in search of the interface between photography and genre painting in the era of individualism, or the interface between abstraction and figuration. As a result he made both photography and art history his lifelong topics and decided to overcome the untraversable abyss between tradition and individualism. ● Ha also decided to follow the path his teacher and his teacher's teacher had trodden alone. He bet his life to reinstate the power of painting from a sharpening individualism, and decided not to follow the paths of the countless artists who had appeared and disappeared in pursuit of trendy works. Ha moved frequently during his childhood, relocating from Busan to Pohang, Pohang to Daegu, Daegu to Münster, and Münster to Seoul. Whenever he moved, a diaspora of memories was formed and the territory of the diaspora was relocated to his heart. Landscapes were inevitable for Ha to exist. ● Ha paints landscapes. His are not a representation but a structuralization or figuration of landscapes as heavy, massive lumps. Ha poses an elemental question concerning the visual act of "seeing" while his teacher Michael van Ofen structuralized an encounter of individualism with traditional narratives on the boundary between figuration and abstraction. What is "seeing"? Western landscapes rest on a fixed viewpoint that results in absolutely stationary, geometrically promised imaginary lines and then puts objects into them. All the same, we cannot enjoy this viewpoint. We cannot see the world from a fixed geometric viewpoint due to our ever-changing motions and our eyes' movements. What, then, of photographs? A photograph relies on the camera's eye that has been shaped by binary numbers of 0 and 1 and programmers, not our natural eyes. ● Even if we travel to Corsica, one of the regions of France or view Sainte-Victoire mountain firsthand, both the island and the mountain are not seen as photographs but are abstracted in our minds. Those objects imprinted in our minds are not utterly visual. They come to us as something emotional. Our five aggregates (piles or heaps, 五蘊), a medium of every sensibility is involved in regenerating our memories. And yet, they are elementally abstract. ● Ha Ji-hoon has deconstructed our vision. He readjusts and rearranges issues pertaining to our sense of sight, elementally speculating on them. Mountains that change by the minute and our perspectives work together with his walk, movements, hand gestures, and breath. He looks over the mountains while feeling the sounds that come from them, the fresh taste of the air, and the hands of the wind. His senses burst forth and his emotions intensify. This holistic feeling can by no means be expressed in photography and landscape painting which rely on a fixed optical angle. Thus, everything we feel from our traditional landscape painting is more truthful than that which we feel from Western landscape painting which is dependent on a fixed viewpoint. Ha's landscapes are not the same as the ones seen with his eyes. They incorporate the five aggregates in Buddhism: Rupa (body, form, material); Vedana (feelings, sensations); Sanna (ideas, perception); Sankhara (desire, will); and Vinnana (mind, consciousness). ● Great poet Su Shi (Dongpo) who is forever located in our hearts sang in Writing an Inscription of the Wall of Xilin Temple (題西林壁) that "It's a range viewed in face and peaks viewed from the side / Assuming different shapes viewed from far and wide / Of Mountain Lu we cannot make out the true face / For we are lost in the heart of the very place."2) We cannot describe a landscape formed by nature either in language or art. We have to realize that we cannot portray its true nature. This meta-consciousness is none other than the nature of art. Ha is an artist who adopts a new introspection through a complete accommodation and unification of most modern philosophies and classical senses in social conditions where people become more alienated and repulsive in the world. If you are on a mountain, you never know its true face. And yet, you are able to structuralize the holistic feeling the mountain gave you and deepen it in your heart. What Ha is doing is beautiful and sublime but in no way heavy. It is fresh and bracing. I see the future of Korean painting here in his works. From his art I have learned that painting is not appreciated by my eyes but by my whole body which manages to thoroughly contemplate and incarnate it. Inspired and derived from Western tradition, Ha's landscape structure has weight and depth added to it in accordance with our traditional view of life and the universe. ■ Lee Jin-myung

* 각주 / footnote1) Charles Taylor, The Ethics of Authenticity. 1991. Cambridge, MA: Harvard Press, 4."People no longer have a sense of a higher purpose, of something worth dying for."2) 橫看成嶺側成峰, 遠近高低各不同, 不識廬山眞面目, 只緣身在此山中.

 

Vol.20200708c | 하지훈展 / HAJIHOON / 河芝勳 / painting

모르는 계절

 

박상미展 / PARKSANGMI / 朴相美 / painting

2020_0610 ▶︎ 2020_0623

 

박상미_equanimity scene 01_장지에 수묵채색_120×60cm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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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미 홈페이지_www.parksangmi.com

 

초대일시 / 2020_0610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공휴일 휴관

 

 

이화익 갤러리

LEEHWAIK GALLERY

서울 종로구 율곡로3길 67(송현동 1-1번지)

Tel. +82.(0)2.730.7818

www.leehwaikgallery.com

 

 

박상미의 작품은 기존의 자연에 대한 사유를 근간으로 이 시대에 형성된 공간에서의 자연을 언급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각 개인의 역사에 기반 된 상황과 감정을 일상 속 장면에 개입하여 식물로 대변된 평면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박상미 작업의 출발선은 기억 속에 남아있는 장면. 외할머니의 정원에서 시작된다.

 

 

박상미_equanimity scene-같은 공간_장지에 수묵채색_91×117cm_2020

 

 

박상미_scene-그들의 정원_장지에 수묵채색_91×117cm_2020

 

 

박상미_그녀의 정원_장지에 수묵채색_137×169cm_2020

 

모르는 계절 ● 어릴 적 나의 외할머니는 다재다능하신 멋진 분이셨다. 바느질, 정원 가꾸기, 요리 등 뛰어난 실력과 재주를 가지고 계셨던 나의 외할머니. 그 중에서도 그녀의 정원은 길을 가던 사람들이 발길을 멈출 정도로 멋지고 우아한 모습을 뽐냈다. 도시외곽 외할머니 댁에는 각 계절을 알아챌 수 있는 갖가지 식물과 꽃들이 가득 넘쳐났고, 그녀의 정원에서는 이름 모를 잡풀 하나 까지도 훌륭한 면모의 식물로 탈바꿈 했다. 그녀는 계절에 따라 꽃씨를 뿌리고 나무를 가꾸며 대부분의 시간을 정원에서 보내곤 하셨는데, 그 모습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상 이었고, 행복한 기운이 온 정원을 메워 싸고 있는 기분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 그 공간으로 비춰들었던 한 낮의 밝고 따사로운 햇살을 잊을 수가 없다. 5월이면 빨간 장미넝쿨이 온 화단과 담장을 뒤덮었고, 정원 곳곳에는 이런 저런 꽃들이 향기와 자태를 자랑했다. 그곳엔 어김없이 새들의 소리와 함께 나비들이 날아들었고, 그들의 움직임은 정원에 생명력을 더하고 미소를 더했다. 온통 초록을 담은 여름을 지나 가을은 정원을 아름답게 물들였고, 겨울이 되면 무채색의 정원 또한 훌륭했던 그곳에서 나의 외할머니는 다가올 봄을 준비하며 설레곤 하셨다.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외할머니 댁에서 보내던 나는 어느덧 성인이 되었고, 그동안 나의 외할머니는 병환 중에 계셨다. 계절이 지날수록 돌보지 못하는 정원에 대한 걱정도 그녀와 함께, 그리고 식물들과 함께 시들어갔다. 그렇게 할머니는 어느 내 생일날 아침에 하늘로 가셨다. 그녀의 부재와 함께 수년 동안 방치 되었던 그녀의 정원. 그곳에는 더 이상 새와 나비들의 구성진 몸짓은 없다. 이제 그녀의 정원은 나의 화폭에서 기억되고 있다. 외할머니와 함께 멀리 가버린 색과 소리, 냄새 그리고 움직임. 다시는 재현될 수 없는 그 모습을 생생하게 떠올리며 계절을 맞이한다. ● 나는 그녀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지금 내가 알고 있고 할 줄 아는 것들은 대부분 그 시절 그녀에게 배운 것들이다. 외할머니는 바르고 밝으셨으며, 매우 긍정적인 분 이셨다. 적어도 나에게 그러하셨다. 그런 외할머니를 닮아있는 그녀의 아름다운 정원. 그렇게 나는 세상을 아름답게 보았다. 정원의 식물들과 꽃들, 새와 나비, 그리고 그 냄새와 공기가 나와 우리와 공존하고 있었다. 그 공간은 장면이 된 채로 나는 내가 위치한 어딘가에서 내 방식의 정원을 만들고 장면을 만든다. 어쩌면 그 장면은 힘든 계절을 살아내는 나에게 보내는 가련한 시선일지도 모른다. 영원할 줄 알았던 것들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갖추어지지 않은 어른이 되어있었다. 기억 한 켠에 자리하고 있는 어릴 적 외할머니의 정원에 관한 기억들은 나의 시선이 거치는 곳곳에서 또 다른 장면이 된다. 도시 식물, 식물성, 장면_scene, seat

 

박상미_누운달_장지에 채색_122×163cm_2020

 

박상미_同色-연결된 관계_장지에 수묵채색_51×75cm_2020

 

박상미_모르는 계절I_장지에 수묵채색_137×169cm_2020

 

유한한 관계에 대한 물음들. 당연하게 곁에 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기도 하고, 예상치 못했던 사람이 나타나기도 하고, 기대하지 않았지만 늘 존재해있는 사람이 있다. 그 속에서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관계가 흐트러져 깨지고 상처받는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관계가 형성되고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모습. 어쩌면 나는 깊은 관계를 기대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각의 틀 속에 갇혀있는 관계성은 형형색색으로 만개한 모습의 조화(造花)를 통해 드러난다. 어느 순간 만들어져 타의에 의해 연결되어진 모습들. 같은 색끼리 진열되어진 장면들. 그러나 그들의 연결점은 끊어져 있다. 지속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상처는 나로부터 파생되는 '관계'인 '선'으로 연결되고 또 단절된다. 만개한 모습으로 고운 색을 드러내고 있는 조화들은 동색끼리 묶여져 나란히 진열되어 있다. 인공의 색을 지닌 그것들은 빛깔로 인식되지 않고 하나의 덩어리가 되었다. 각양각색의 다름이 존재하지만 동색으로 동색인 듯이 어우러져 살아가야만 하는 현재를 보고 있었다. 내 어릴 적 언제나 곁에 계실 것 만 같았던 외할머니의 부재는 관계의 유한성에 대해 생각하게 하였고, 살아가면서 그것은 죽음뿐만이 아니라 우연적 요소에 의한 인간관계의 발생과 지속성에 있어서도 그러했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들은 무엇 하나 분명한 이유를 수반하지 않은 채로 그렇게 휘어간다. 그리고 반복된다.

 

박상미_부유하는 관계-보라색 방_장지에 채색_137×104cm_2020

 

박상미_庭園-흐르는 계절01_장지에 수묵채색_53×53cm_2020

 

박상미_한번의 계절_장지에 수묵채색_137×169cm_2020

 

계절에 따라서 모습을 달리했던 외할머니의 정원. 그렇게 계절과 함께 시간이 흘러갔다. 그리고 영원할 것만 같았던 존재와 관계들은 영원할 수 없었다. 외할머니가 그러했고 나의 어머니가 그러했듯이 나는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계절을 겪어내고 있다. 그래서 알 수 없는 나의 계절과 누군가의 계절은 당황스럽고 먹먹하다. 세상에 없는 계절을 붙잡으려는 것은 아닐까. 한정된 계절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 박상미

 

 

Vol.20200610b | 박상미展 / PARKSANGMI / 朴相美 / painting

 










면벽수행 面壁修行

정소연展 / JEONGSOYOUN / 鄭素姸 / painting 

2019_0410 ▶︎ 2019_0430 / 일,공휴일 휴관


정소연_벽지 그림 Wallpaper Painting_캔버스에 유채, 나무 액자, 벽지, 우드스테인, 집성목_200×120cm_2019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61124c | 정소연展으로 갑니다.

정소연 홈페이지_www.soyounjeong.com



초대일시 / 2019_0410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이화익 갤러리

LEEHWAIK GALLERY

서울 종로구 율곡로3길 67(송현동 1-1번지)

Tel. +82.(0)2.730.7814

www.leehwaikgallery.com



정소연의 '면벽수행' ● "나는 갱년기 여성작가다. 육체도 정신도 예전 같지 않다. 체력이 딸리고 우울하다. 하염없이 벽을 보고 앉아있다. 벽을 보고 있자니... 웬만한 그림보다 벽지가 낫다. 벽지를 그리고 싶어진다. 면벽공심(面壁功深)은 아직 멀었다... ㅎㅎ" - 정소연의 '작가노트' 중에서 ● 머시라? 이화익 갤러리가 벽지가게로 업종을 변경한 것 같다고요? 당 필자,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기위해 이화익 갤러리를 찾았다. 필자가 갤러리 문을 밀고 들어서니 작품은 온데간데없고 백색의 백면에 다양한 벽지들로 '도배'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실크벽지에서부터 패브릭벽지 그리고 뮤럴벽지에 이르기까지 럭셔리 벽지들이 즐비했다. 물론 고급 벽지들은 마치 벽면에 포인트를 주듯 포인트 벽지처럼 '도배(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벽면에는 타원형 액자 거울들도 몇 개 눈에 띄었다. ● 오잉? 그런데 타원형 액자 거울에 비친 벽지가 이상하다. 왜냐하면 거울이 비추는 벽지가 맞은 편 벽면은 고사하고 1층 공간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궁금한 나머지 거울로 한 걸음 들어갔다. 헉!!! 타원형 액자 안에 있는 것은 '거울'이 아니라 '벽지'가 아닌가! 어니다! 그것은 '벽지'가 아닌 벽지를 보고 그린 '벽지 그림'이다. 그렇다! 그것은 캔버스에 유화로 그린 벽지보다 더 벽지 같은 정소연의 '벽지화(壁紙畵)'이다. 그렇다면 이화익 갤러리가 벽지가게로 업종을 변경한 것 같다는 '소문(所聞)'은 정소연의 '벽지화' 때문에 기인된 것이 아닌가?



정소연_벽지 그림 Wallpaper Painting 2_캔버스에 유채_60×50cm_2017


정소연_벽지 그림 Wallpaper Painting 18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0×50cm_2019


정소연의 '면벽구년(面壁九年)' ● 이화익 갤러리의 정소연 개인전 타이틀은 『면벽수행』이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면벽수행(面壁修行)'은 문자 그대로 벽을 마주 대하고 좌선하는 수행을 뜻한다. 문득 중국 선종(禪宗)의 창시자인 달마(達磨) 대사의 '면벽구년(面壁九年)'이 떠오른다. 면벽구년? 그것은 달마가 쑹산(嵩山) 소림사(少林寺)에서 9년간 면벽(面壁) 수행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고 보니 정소연 역시 9년간 '면벽' 수행했다. 말하자면 그녀는 '면벽구년'만에 '벽지화'로 돌아왔다고 말이다. ● 네?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냐고요? 설치와 비디오 설치 작업을 주로 하던 정소연은 2010년 미국 뉴욕에 소재하는 텐리 갤러리(Tenri Gallery)에서 『홀마크 프로젝트(The Hallmark Project)』라는 타이틀로 오랜만에 회화작품들로 개인전을 개최한 후 한국으로 귀국해, 2011년 이화익 갤러리에서 같은 타이틀로 오픈했다. 2014년 이화익 갤러리에서 개인전 『네버랜드(Neverland)』를, 2016년 이화익 갤러리에서 개인전 『어떤 풍경(Some Landscape)』을 개최했다. 그리고 올해 이화익 갤러리에서 열릴 개인전 『면벽수행』을 앞두고 있다. ● 이제 필자가 정소연이 '면벽구년'만에 벽지화로 돌아왔다고 말한 이유를 아시겠죠? 물론 그녀의 '화업'은 1997년 미술계 데뷔작으로 간주되는 『인형의 집』에서부터 시작된다. 2008년 그녀는 『오프닝 프로젝트(The Opening Project)』를 개최한 후 돌연 10년간 지속했던 오브제와 영상 등 설치작품을 '물류창고(Warehouse)'에 유보시킨 채 마치 '억압된 것의 회귀(the return of the repressed)'처럼 회화로 귀환했다. 그녀의 억압된 것의 회귀에 관해서는 지난 2014년 이화익 갤러리에서 열린 정소연 개인전 『네버랜드(Neverland)』 도록에 실린 필자의 졸고 『정소연의 네버랜드』를 참조 바란다. 

 


정소연_벽지 그림 Wallpaper Painting 2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00×180cm_2018



정소연의 「포스트-네버랜드(Post-Neverland)」 시리즈 ● 도대체 '네버랜드'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정소연은 '벽지화'를 작업한 것일까? 아니다! 그녀는 '네버랜드' 시리즈에서 곧바로 '벽지화'를 작업한 것은 아니다. 필자가 그녀의 '벽지화'를 언급하기 위해서라도 그녀의 '네버랜드' 시리즈 이후의 작품들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그녀는 '네버랜드' 시리즈 이후인 2015년 원형 캔버스에 각종 도감서적들에서 차용한 동·식물을 표현한 「포스트-네버랜드(Post-Neverland)」 시리즈를 작업했다. 그것은 일명 '크리스탈 볼-페인팅(Cristal Ball-Painting)'으로 불린다. ● 크리스탈 볼-페인팅? 그것은 마치 마법구슬에 담긴 이미지처럼 보이도록 표현해 놓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를테면 그것은 원형 캔버스를 마치 마법구슬처럼 표현해 놓아 관객을 착각에 빠트린다고 말이다. 그러나 관객이 그녀의 '마법구슬-그림'으로 한 걸음 다가가면 '민낯(평평한 평면)'을 만나게 된다. 와이? 왜 그녀는 뻔히 탄로(綻露) 날 것을 알면서도 적잖은 시간을 들여 정교하게 표현한 것일까? 혹 그녀는 그것을 '함정'으로 사용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녀가 진짜 감추고 있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 정소연의 「포스트-네버랜드」 시리즈에는 원형 캔버스뿐만 아니라 쉐이프드 캔버스(Shaped Canvas)를 사용한 작품들도 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낙하산에 마치 만발한 꽃들을 인쇄한 듯 보이는 작품, 공중에서 떨어뜨리는 보자기에 마치 화려한 꽃들을 수놓은 듯 보이는 작품, 구겨진 잡지에 각종 식물들을 인쇄된 듯 보이는 작품이 그것이다. 하지만 관객이 그녀의 「포스트-네버랜드」 시리즈로 한걸음 들어간다면 낙하산과 보자기 그리고 구겨진 잡지의 '민낯(평평한 평면)'을 곧 보게 된다. ● 와이? 왜 정소연은 작품으로 한걸음만 다가서면 뻔히 탄로 날 것을 알면서도 힘든 노동을 한 것일까? 혹자는 그녀의 「포스트-네버랜드」 시리즈를 "실재와 가상 사이의 틈을 화면에 펼쳐 놓은 것"으로 해석한다. 그런데 말이다. 만약 관객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낙하산이나 공중에서 떨어뜨리는 보자기 그리고 구겨진 잡지로 한걸음 들어서기만 한다면, 그것들이 시각적 착각을 일으키도록 세심하게 표현한 것임을 단방에 알아차릴 수 있다는 점에서 허망하기까지 하다. 혹 그녀는 '실재와 가상의 틈'을 '미끼'로 던져놓은 것은 아닐까? ● 원모아, 그렇다면 정소연이 진정 은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필자가 생각하기에 그녀의 「포스트-네버랜드」 시리즈는 제목 그대로 「네버랜드」 시리즈 2탄이다. 따라서 그녀의 「포스트-네버랜드」 시리즈는 자신의 「네버랜드」 시리즈를 업그레이드한 버전인 셈이다. 무엇을 그녀는 업그레이드한 것일까? 필자가 생각하기에 바로 '프레임(Frame)'이다. 이를테면 마법구슬 같은 '크리스탈 볼'과 하늘에서 떨어지는 낙하산이나 공중에서 떨어뜨리는 보자기 그리고 구겨진 잡지의 변형된 캔버스인 '쉐이프드 캔버스' 말이다. ● 정소연은 '크리스탈 볼'과 '쉐이프드 캔버스'로 관객에게 '실재와 가상의 틈'을 메우도록 유혹한다. 하지만 그녀는 정작 '크리스탈 볼'과 '쉐이프드 캔버스'에 각종 도감서적들에서 차용하여 그려놓은 식물들을 은폐시킨다. 아니다! '크리스탈 볼'과 '쉐이프드 캔버스'에 그려진 다양한 식물들은 마치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도둑맞은 편지(The Purloined Letter)」처럼 은폐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버젓이 관객 앞에 놓여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그것을 보면서도 보지 못한다. ● 그렇다면 관객이 보면서도 보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정소연은 '크리스탈 볼'과 '쉐이프드 캔버스'에 다양한 식물들을 마치 디지털로 인쇄한 것처럼 착각할 정도로 정교하게 그려놓았다. 그 다양한 식물들은 각종 식물도감에 사진과 그림으로 실린 다양한 식물들을 스캔 받아 잘라내어 컴퓨터의 포토샵 프로그램에서 하나의 화면에 재구성한 디지털이미지를 유화물감과 팬 브러시로 정교하게 그린 것이다. 물론 정소연은 그려진 그림 위에 팬 브러시로 글로스 바니쉬(Gloss Varnish)를 5-6회 부드럽게 발라 도자기 같은 윤광 피부로 만들어 놓았다. ● 머시라? 정소연의 '크리스탈 볼-페인팅' 표면은 반짝인다고요? 그렇다! 그녀는 '크리스탈 볼'에는 유리구슬의 효과를 위해 크리스탈 글로스 바니쉬(Cristal Gloss vanish)로 표면을 처리해 놓았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녀가 '크리스탈 볼'과 '쉐이프드 캔버스'에 그려놓은 다양한 식물들 면면을 보면 서로 다른 지역의 식물들이 마치 순간이동을 통해 한 화폭 안에서 서로 만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기후에 공존할 수 없는 식물들이 한 화면에 그려져 있다. 이를테면 그녀의 그림에는 열대기후와 온대기후 그리고 고산기후 또한 냉대기후의 식물들이 동거한다고 말이다. ● 한 술 더 떠 '정소연의 식물나라'에 있는 식물들은 기후에만 제약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 중력의 법칙도 따르지 않는다. 무슨 말이냐고요? 어느 식물은 지면에서 하늘로 자연스럽게 자라나 있는가 하면, 어느 식물은 하늘에서 지면을 향해 거꾸로 자라나 있기도 하다. 그리고 어느 식물은 측면에서 자라난 것처럼 보인다. 더욱이 만개한 꽃은 허공에 떠있기도 하다. 그녀는 회화를 가지고 재기발랄하게 놀 줄 아는 화가이다. 그래서 필자는 5년 전 정소연을 '초능력자'로 불렀다. 왜냐하면 그녀에게 임파셔블한 미션은 없기 때문이다.


정소연의 「토비아스의 카페(Tobias' Cafe)」 시리즈 ● 2015년 정소연은 「포스트-네버랜드」 시리즈 작업을 한 다음 해인 2016년 「토비아스의 카페(Tobias' Cafe)」 시리즈 작업을 한다. 그녀의 「토비아스의 카페」 시리즈는 노골적으로 '디지털 세계'를 드러낸다. 그것은 제목 그대로 토비아스 레베르거(Tobias Rehberger)가 베니스에 만든 카페의 한 부분을 차용하여 작업한 작품이다. 토비아스의 카페는 '위장무늬(camouflage patterns)'를 이용하여 새로운 건축적 공간을 만든 것이다. 정소연은 그 '토비아스 카페' 중앙에 사각의 창을 만들어 창 너머로 독특한 풍경들을 그려놓았다. ● 「토비아스의 카페 I」은 창 너머에 하늘에 부유하고 있는 거대한 미로를 그려놓은 반면, 「토비아스의 카페 II」는 창 너머에 언덕 아래로 펼쳐진 도시 풍경을 표현해 놓았다. 그런데 하늘에 거대한 미로가 부유한다는 것도 황당하지만, 뒤죽박죽으로 그려진 언덕 아래의 집들은 더 가관(可觀)이다. 머시라? 더 어이없고 터무니없는 이미지도 있다고요? 그렇다! 창문의 왼쪽 프레임에 마치 인쇄물처럼 부착되어 있는 듯 그려진 건축 이미지나 하늘 이미지를 보면 폭소를 터뜨리지 않을 수 엄따! ● 왜 필자가 지나가면서 정소연의 「토비아스의 카페」 시리즈에 대해 "노골적으로 '디지털 세계'를 드러낸" 작품으로 중얼거렸는지 감 잡으셨죠? 5년 전 필자는 그녀의 「네버랜드」 시리즈를 보고 정소연을 '디지털 아티스트'로 상상했다. 말하자면 그녀는 기발하고 독창적인 상상력을 지닌 아티스트로 일명 '점퍼(Jumper)'처럼 그녀는 원하는 곳이 있으면 순식간에 그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와 닮았다고 말이다. 따라서 그녀는 마치 꿈의 세계를 창조하는 설계자 아리아드네(Ariadne)처럼 또 다른 현실을 화폭에 설계해 놓을 것으로 예언(豫言)했다.


정소연의 「어떤 풍경」 시리즈 ● 정소연은 필자의 예언에 「어떤 풍경」 시리즈로 답변했다. 그녀는 관객들에게 그녀의 '회화나라'인 「어떤 풍경」으로 뛰어들어 놀랍고 마법 같은 모험을 떠나자고 제안한다. 만약 그녀의 '네버랜드'가 꿈과 현실이 해체된 또 다른 현실이라면, 그녀의 '어떤 풍경'은 현실과 가상이 해체된 또 다른 현실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필자는 그녀의 「어떤 풍경」 시리즈를 간략하게나마 언급하기위해 2016년 이화익 갤러리에서 발행한 정소연의 개인전 「어떤 풍경」 도록에 실린 서문을 인용해 보도록 하겠다. ●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어떤 풍경(Some Landscape)」 시리즈는 「홀마크 프로젝트」와 「네버랜드」 시리즈에 뒤이어 작가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즉 주관적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 「어떤 풍경」에 등장하는 것은 푸른 창공 아래 펼쳐진 적막한 도시 풍경이다. 눈부시도록 사실적으로 묘사된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부드럽고도 강렬한 빛이 그림 속의 백색 도시를 환상의 세계로 이끌고 있다. 도시의 건물은 석고 조형물처럼 하얗고 언덕이나 산들 역시 정밀한 등고선의 곡선으로 묘사되어 인위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사실적으로 그려진 하늘과는 대조적으로 건물들은 의도된 모형물임을 강조함으로써 실재와 가상이라는 두 개의 층위가 그림에 작동하며 관객의 시선을 낯설게 만들어 낸다."(김영호의 「실재와 가상의 틈에서 : 정소연의 '어떤 풍경(some Landscape)'」 중에서. 2006) ● 흥미롭게도 정소연의 「어떤 풍경」 시리즈에 사람이 부재한다. 따라서 그녀의 「어떤 풍경」 시리즈는 마치 유령도시(Ghost town)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당신이 그녀의 「어떤 풍경」으로 한걸음 들어간다면, 그 유령도시가 모형(模型)을 차용하여 그린 '회화도시'라는 것을 한방에 알 수 있다. 흔히 '모형'은 실물을 본떠서 만든 물건으로 이해한다. 이를테면 모형은 실물의 특성을 잘 보이도록 하거나 쉽게 설명하기 위해 실물을 본떠 만든 본보기를 가리킨다고 말이다. 따라서 그것은 '모델(model)'로 불리기도 한다. ● 물론 모형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실물보다 크게 만든 모형을 확대 모형, 실물과 똑같은 크기로 만든 모형을 실물 크기 모형, 그리고 실물보다 작게 만든 축소 모형이 그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재료나 장치를 만들기 위하여 미리 가상의 모형을 만들기도 한다. 말하자면 모형은 이미 있는 것을 모델로 상정해 만들기도 하지만 아직 없는 것을 상상해 만들기도 한다고 말이다. 정소연의 「어떤 풍경」 시리즈는 이 두 가지를 모델로 작업한 것이다. 김영호의 말을 더 들어보자. ● "정소연은 「어떤 풍경」 시리즈에서 건축모형 풍경을 두 개의 범주로 나누어 놓았다. 하나는 도시 풍경을 특정지역의 건축 모형에 의존하지 않고 작가가 컴퓨터 모니터 상에서 자유롭게 구상해 낸 것이며, 다른 하나는 경주의 '안압지'라는 특정지역의 모형을 사진으로 촬영해 화면위에 그대로 옮겨 그린 것이다. 전자는 세상 어디에도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가상 풍경(Virtual Landscape)이며 후자는 실제로 존재하는 특정지역의 원본 모형을 본뜬 의사 풍경(Pseudo Landscape)이다. 이 모든 경우에 작가가 의도하는 것은 실재와 가상의 접목된 세계에 대한 다층적인 해석의 가능성에 주목하도록 하는 것이다. 전자가 원본 없는 실재와 그 모형 사이에 대한 물음이라면 후자는 안압지라는 실재하는 정원과 그 모형 사이에 대한 물음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작가는 건축모형을 빌어 현실과 비현실의 세계가 서로 얽혀진 세계로 관객들을 안내한다. 거기서 만나는 것은 가상 풍경 또는 의사 풍경이라 부를 수 있는 낯설면서도 낯익은 풍경의 세계이다." ● 김영호는 정소연의 「어떤 풍경」 시리즈를 두 개의 범주로 나누어 설명했다. 하나는 '어떤 풍경'을 특정지역의 건축 모형에 의존하지 않고 작가가 컴퓨터 모니터 상에서 자유롭게 구상해 낸 것을 화폭에 표현한 것이다. 머시라? 정소연의 '어떤 풍경'이 컴퓨터 모니터 상에서 '무에서 유'를 자유롭게 구상해 낸 것이냐고요? 김영호가 말한 '특정지역의 건축 모형에 의존하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의 특정지역의 건축 모형에 의존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정소연의 '어떤 풍경'은 그녀가 국내외를 방문하여 보았던 건축가들의 건축 모형들을 사진에 담은 것을 컴퓨터에 다운받아 모니터 상에서 자유롭게 편집(재구성)한 것을 화폭에 표현한 것이다. ● 자, 이번에는 이미 있는 것을 모델로 상정해 만들었다는 경주의 '안압지 모형에' 대해 말해보자. 정소연은 경주의 '안압지'라는 특정지역의 모형을 사진으로 촬영해 화면위에 그대로 옮겨 그린 것이다. 이를테면 그녀는 경주의 안압지를 직접 찍은 사진이 아니라 경주의 '안압지 모형을 찍은 사진'을 보고 '어떤 풍경'을 그렸다고 말이다. 그것은 그녀가 자연의 하늘이나 동식물을 직접 보고 그리지 않고 홀마크사 카드나 도감들에 인쇄된 이미지를 보고 그린 것과 같은 셈이다. 따라서 정소연의 「어떤 풍경」 시리즈는 그것이 특정지역의 건축모형을 모델로 삼아 찍은 사진을 통해 작업을 했건 가상의 건축 모형을 모델로 삼아 찍은 사진들을 편집해 작업을 했건 모두 세상 어디에도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어떤 풍경'인 셈이다. ● 그렇다! 정소연의 「어떤 풍경」 시리즈는 그녀의 유일무이한 '회화 세계'에만 있다. 그녀는 '어떤 풍경'을 "가장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비현실적인 건축모형을 이용한 '유사(類似)풍경(pseudo-landscape)'으로서 풍경(화)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싶었다"면서 "실재하는 풍경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기존의 풍경화를 감상하는 방식과 달리 '전지적 관찰자 시점'을 제안하는 그림"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그녀의 「어떤 풍경」은 일종의 '내적 풍경'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점에 관해 김영호는 다음과 같이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 "정소연의 캔버스 회화가 가상과 실재의 틈이 확장되고 모순과 역설이 일상이 되어가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정소연의 회화작업에는 불교에서 갈구하는 이상향으로써 '니르바나(Nirvana)'의 세계가 숨 쉬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현실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존재의 실체를 깨닫는 것이 니르바나의 세계다. 그것은 가상과 실재의 틈을 직시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를 자연의 상태에 두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자유의지를 의미하며 정소연의 작품에서 그러한 자유의지를 발견하는 것은 분명 의미 있고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정소연_벽지 그림 Wallpaper Painting 20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00×180cm_2018


정소연_벽지 그림 Wallpaper Painting 24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우드_200×197cm_2019



'벽지'와 '벽화' 그리고 '벽' ● 정소연은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 구상 '비하인드 스토리'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아들이 어린시절 미키마우스 마니아였어요. 그런데 당시 아들은 정작 쥐를 본적이 없었지요. 아이가 실재보다 이미지를 통해 대상에 접근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죠." 당 필자, 이 진술이 그녀의 '회화세계'로 접근하는데 일종의 '길잡이'를 해준다고 본다. 네? 그녀의 진술이 당신에게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인지 아직 '접수'되지 못했다고요? ● 사람(소비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다는 슬러건을 내걸었지만 사실상 상업적 관점에서 제작(생산)되는 홀마크사 카드의 이미지나 독자들에게 실물(원본)을 대신하여 그림이나 사진으로 동류(同類)의 차이를 한 눈으로 식별할 수 있도록 교육적 관점에서 제작되었다는 도감 그리고 이미 있는 것이나 아직 없는 것을 상상해 만들었다는 모형은 흔히 원인(실재, 원본)으로 인해 발생된 결과(가상, 복제)로 간주된다. ● 하지만 정소연의 작품들은 원인/결과라는 이분법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녀의 작품들은 원인/결과라는 이분법을 넘어서있다. 왜냐하면 그녀의 작품들이 모델로 삼은 것은 바로 카드 인쇄물이나 도감 그리고 모형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그녀 작품들의 '원본(모델)'이 다름아닌 복제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녀의 작품들은 선형적인 인과론을 뒤집는 것도 가능한 것이 아닌가? 머시라? 원인 때문에 결과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결과 때문에 원인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요? ● 자, 이제 원점으로 돌아가자. 원점? 정소연의 '벽지화' 말이다. 필자는 지나가면서 그녀가 '면벽구년'만에 '벽지화'로 돌아왔다고 중얼거렸다. 대중매체 시대와 소비사회에서 '실재(the real)'를 대치해버리는 이른바 '모조(simulacrum)'를 모델로 삼아 작업했던 그녀가 '벽지'라는 구체적인 재료를 모델로 작업한 것이 바로 '벽지화'이다. 와이? 왜 그녀는 '벽지'를 모델로 삼은 것일까? 그녀가 9년간 화폭을 바라보면서 터득한 것이 '벽지'란 말인가? 필자는 그녀의 '벽지화'를 언급하기위해서 '벽지'의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추적해 보겠다. ● '벽지'를 거슬러 올라가면 '벽화'를 만나게 된다. 우리는 흔히 '벽화'하면 '동굴벽화'를 떠올린다. 필자는 이곳에서 고대부터 중세에 이르는 '벽화사'를 언급하지는 않겠다. 다만 건축물 내부의 벽면에 직접 그려졌던 그림이 '벽지'로 자리바꿈되었다는 점에 주목해 보자. 특히 건물 내부에 그려졌던 '벽화'는 상류층에서만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종이를 벽지로 사용하면서 대중화가 가능하게 되었다. 물론 최초의 벽지로 불리는 것은 종이가 아닌 비단이나 무명천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전히 상류층의 전유물이었을 것이다. ● 벽지의 대량생산은 인쇄 기술이 발달하기 시작한 르네상스 시대라고 한다. 벽지에 인쇄된 그림이나 문양은 화가의 몫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벽지의 그림이나 문양은 바로 미술에서 영향 받은 것임을 추론할 수 있다. 벽지가 대중화되면서 벽화는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이를테면 집 안에 벽화를 그려놓을 수 있는 재력이 있는 이들조차 벽지를 사용하게 되었다고 말이다. 벽지는 벽화와 달리 교체가 용이하다. 말하자면 집 안의 벽지가 싫증이 나면 다른 벽지로 손쉽게 교체할 수 있다고 말이다. ●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벽지는 어떨까? 조선시대 양반집 벽은 비단으로 도배되었던 반면, 가난한 선비집 벽에는 붓글씨를 연습한 종이를 바르거나 책장을 뜯어 바르기도 하였다고 전해진다. 일제시대 중산층에서는 벽지 대용으로 광목천을 사용했다고 한다. 물론 가난한 집안의 벽에는 신문지로 도배되기도 했다. 이후 벽지는 종이가 아닌 마·견·인조섬유·플라스틱·얇은 목재 판지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오늘날 벽지는 단순히 실내공간을 장식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일명 '아트 벽지'는 하나의 '예술작품'이기를 자처한다. ● 벽지는 실내의 단열과 방음 그리고 방수 등의 기능도 일부 하지만 실내 분위기를 장식하기위한 인테리어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는 무채색의 차가운 콘크리트 벽면을 벽지로 도배해 아늑하거나 쾌적한 혹은 화사한 분위기를 만들고자 한다. 그렇다! 벽지는 벽에 기생한다. 따라서 벽이 몸(알맹이)이라면, 벽지는 일종의 '옷(피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몸'으로 인해 파생한 '옷'이 오히려 '몸'을 결정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벽' 때문에 파생된 '벽지'가 오히려 '벽'을 결정하는 것이 아닌가?

정소연_벽지 그림 Wallpaper Painting 25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우드_200×182cm_2019



정소연의 「벽지 그림(Wallpaper Painting)」 시리즈 ● 정소연의 신작 「벽지 그림(Wallpaper Painting)」 시리즈는 기존 '벽지'들을 모델로 작업한 것이다. 그녀의 '벽지화'에는 사각형 이외에 원형과 타원형도 있다. 그녀의 「벽지 그림 1」에서부터 「벽지 그림 8」까지는 타원형 액자 안에 마치 집안의 벽지를 잘라 부착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타원형 캔버스에 다양한 고급 벽지를 보고 유화물감으로 정교하게 그린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녀의 「벽지 그림 9」에서부터 「벽지 그림 18」까지는 원형 캔버스에 각종 럭셔리 벽지를 보고 유화물감과 아크릴물감으로 세심하게 표현한 것이다. ● 정소연의 「벽지 그림 19」에서부터 「벽지 그림 23」까지는 직사각형의 캔버스에 건축적 공간에 줄무늬 벽지를 그려놓은 것이다. 그것은 마치 아직 건축되지 않은 '건축 모형'처럼 아직 인테리어 하지 않은 건축 내부에 일종의 '벽지 모형'을 그림으로 표현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녀의 「벽지 그림 24」와 「벽지 그림 25」는 직사각형의 캔버스에 아크릴물감으로 줄무늬 벽지를 그려놓은 것과 아크릴물감으로 채색한 기다란 각목을 설치해 놓은 작품이다. ● 왜 정소연은 캔버스에 그려진 벽지와 각목에 아크릴물감으로 채색된 것을 동거시킨 것일까? 그것은 마치 건물의 외부와 내부가 서로 맞물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문득 정소연의 「토비아스의 카페」 시리즈가 떠오른다. 그녀는 그 작품에 관해 '작가노트'에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글을 남겼다. "외부공간을 내부로 끌어들여서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흐리게 하며 내부와 외부를 결합시키고 일상의 공간을 확장시키는 작업." ● 그런데 그녀의 「벽지 그림 26」과 「벽지 그림 27」은 독특하다. 필자는 이곳에서 그녀의 「벽지 그림 26」만 간략하게 살펴보겠다. 왜냐하면 그녀의 「벽지 그림 27」은 「벽지 그림 26」과 같은 방식으로 작업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벽지 그림 26」은 언 듯 보기에 심플해 보이지만 한 걸음 들어가면 꽤 복잡하다. 따라서 한 문장의 호흡이 좀 길다. 미리 양해를 구한다. ● 그녀의 「벽지 그림 26」은 컬러풀한 줄무늬 벽지를 세로의 직사각형 캔버스에 그려놓고, 그 위에 컬러풀한 줄무늬 벽지를 그려놓은 작은 백색 타원형 캔버스를 설치해 놓은 다음, 그 작은 백색 타원형 캔버스 안에 컬러풀한 줄무늬 벽지를 그려놓은 더 작은 타원형 황금 액자를 설치한 것이다. ● 뭬야?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요? 그래서 필자가 미리 양해를 구한 것이다. 조타! 필자가 그것을 마치 양파의 껍질을 까듯이 하나씩 하나씩 벗겨보겠다. 먼저 세로의 직사각형 캔버스에 컬러풀한 줄무늬 벽지를 그려놓은 것을 보자. 오잉? 세로의 직사각형은 캔버스가 아니라 집성목이 아닌가. 그렇다! 그것은 세로의 직사각형 집성목 위에 컬러풀한 줄무늬 벽지를 그려놓은 것이다. 아니다! 그것은 세로의 직사각형 집성목 위에 컬러풀한 줄무늬 벽지를 부착해 놓은 것이다. ● 자, 이번에는 작은 백색 타원형 캔버스에 컬러풀한 줄무늬 벽지를 그려놓은 것을 보도록 하자. 네? 혹 백색 타원형은 캔버스가 아닌 집성목이고, 컬러풀한 줄무늬도 진짜 벽지냐고요? 아니다! 그것은 집성목에 벽지를 바른 것이 아니라 캔버스에 유화물감으로 그린 것이다. 네? 그러면 백색 액자도 유화물감으로 그린 것이냐고요? 아니다! 그것은 진짜 백색 액자이다. 따라서 백색 액자는 줄무늬 벽지를 바른 집성목에 설치해 놓은 것이다. ● 마지막으로 백색 타원형 캔버스 안에 설치된 더 작은 타원형 황금 액자를 보자. 헉!!! 타원형 황금 액자는 진짜 액자가 아닌 백색 타원형 캔버스 안에 유화물감으로 그려진 것이 아닌가. 따라서 타원형 황금 액자는 백색 타원형 캔버스에 설치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네? 그렇다면 유화물감으로 그려진 타원형 황금 액자 안에 있는 줄무늬 벽지는 진짜 벽지냐고요? 아니다! 그 줄무늬 벽지 역시 유화물감으로 그려놓은 것이다. ● 결국 정소연의 「벽지 그림 26」은 인쇄된 벽지와 손으로 그려진 벽지를 동거시킨 셈이다. 와이? 왜 그녀는 인쇄된 벽지와 손으로 그려진 벽지를 동거시킨 것일까? 혹 그녀는 '실재와 가상의 틈'을 표현한 것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녀는 이미 '어떤 풍경'을 통해 현실과 가상을 해체시킨 또 다른 현실을 표현했었다. 그렇다면 인쇄된 벽지와 손으로 그려진 벽지를 동거시킨 것은 일종의 '함정'이란 말인가? 그러면 그녀가 은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정소연_벽지 그림 Wallpaper Painting 6_캔버스에 유채_60×50cm_2018


정소연의 '추상게임' ● 정소연은 필자를 유혹한다. 그녀는 필자에게 '추상게임'을 제안한다. 추상게임? 정소연의 '벽지화'는 4차원의 세계를 2차원적 평면으로 추상화 작업을 한 것이다. 따라서 그녀의 '벽지화'는 일종의 '추상게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를테면 그녀는 실제적인 것에서 시간을 생략하고, 공간에서 깊이를 생략해 '평면'으로 추상한다고 말이다. 그녀는 추상게임을 통해 다양한 '비(非)실제적' 세계들을 표현해 놓았다. ● 정소연이 추상화한 깊이 없는 회화세계는 가능성들로 열려져 있다. 그런데 그녀가 인공적으로 표현한 새로운 평면세계는 '개념들의 피부'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녀의 '추상게임'은 구체적인 것으로부터 추상화한 전통적인 의미의 회화의 끝에서 구체적인 것을 향하는 움직임이란 말인가? 그녀의 추상게임은 필자를 유혹한다. 그러면 필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위험천만한 '조합게임'이란 말인가? ● 당 필자, 어디로 튈지 도통 알 수 없는 정소연의 신작에 대해 조합해 보겠다. 그녀는 가상공간에 머물지 않고 실재 공간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실재 공간'은 실재/가상이라는 구분을 넘어선 또 다른 실재 공간인 작품을 의미한다. 그런데 관객은 정소연의 실재 공간 속에서 당황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평평한 바닥이라고 생각한 곳을 직접 걸으면 기울기가 있는 바닥이라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두말할 것도 없이 당신은 '헛발'은 내딛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견디어내야만 할 것이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본다'는 것은 시각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온몸의 행위이다. 따라서 정소연의 작품은 관객에게 온몸으로 감각하고 체험하기를 유혹하게 될 것이다. 관객은 그녀의 작품에 '빠지게' 될 것이다. 관객이 작품에 빠진다는 것은 '견딘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면 관객이 작품 속에서 견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 머시라? '면벽공심'은 아직 멀었다고요? ■ 류병학



Vol.20190410d | 정소연展 / JEONGSOYOUN / 鄭素姸 /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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