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Joke, Light and Shade

 

박종호展 / PARKJONGHO / 朴鍾皓 / painting 

2021_1111 ▶ 2021_1201 / 월요일 휴관

 

박종호_깊은 곳에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53×45.5cm_2021

박종호 블로그_blog.naver.com/noah250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서울특별시_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1:30am~06:30pm / 월요일 휴관

 

 

인디프레스_서울INDIPRESS

서울 종로구 효자로 31(통의동 7-25번지)

Tel. 070.7686.1125

@indipress_gallerywww.facebook.com/INDIPRESS

 

'월리를 찾아라'에서 월리는 군중 틈에 숨어 있다. 둥근 뿔 테 안경, 방울모자와 줄무늬 티셔츠. 월리의 차림새는 늘 같다. 장소와 주변 사람이 바뀌어도 월리의 본체는 동일하다. 위장해도 결국 알아챌 수 있다. 우리는 인간 정체성을 월리 식으로 오해하곤 한다. 언제 어디서나 변함없고 타인과 단번에 구별될 고유함. 인간 정체를 사물의 속성처럼 생각한다. 사람의 정체는 개별적이다. 각기 경험과 기억 속에서 찾아야 할 숨은 이야기다. 가끔 사람의 정체는 은폐되거나, 가벼운 농담 취급을 받는다.

 

박종호_별이 빛나는 밤_황마에 유채_194×112cm_2019

작가의 주제는 서사가 단절된 자기 경험이다. 사건의 잔상에 배어 있는 느낌을 추적한다. 기억의 낱 알갱이를 일상의 형상에 투영한다. 작품의 주인공은 주로 소년이다. 그는 소년에서 생명력, 가능성의 원천이라는 외피를 벗겨낸다. 억눌린 유년기를 보상하는 자유의 대리 물로 세우지 않는다. 소년은 '아직도' 자기를 찾는 떠돌이, 정체불명의 존재다. 「알고 있어요」 연작의 소년은 언뜻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얼굴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위를 응시한다. 소년은 '누구'가 아닌, 짓누르는 힘에 맞서는 미약한 저항으로 드러난다. 소년은 무겁고 단단한 코트를 벗어 던질 수 없다. 짙은 청색의 사각형이 소년의 어깨 위에 걸려 있다. 공허하나 엄격한 규율처럼. 소년의 시선은 가장자리를 맴돈다.

 

박종호_달아 달아!_캔버스에 유채_194×112cm_2021

작가는 기억에 몽환의 색채를 덧씌우지 않는다. 작품 속 인물은 부옇고 포근한 환상 세계를 유영하다 건져 올린 형상이 아니다. 작품마다 잿빛, 검푸른색이 스며들어 있다. 과거 기억의 장소와 상황을 암시한다. 휘몰아치는 어둠과 적막을 등지고 선 인물은 위태로운 침묵으로 일관한다. 작가에게 기억은 열어 보기 전엔 잠들어 있는 사진첩 속 추억이 아니다. 갑작스러운 경련처럼 강렬하고, 스스로 살아 움직인다. 그에게 기억의 느낌은 상상 아닌 현실이다.

 

박종호_검은개_캔버스에 유채_100×73cm_2019

흐릿한 정체는 박종호 작가의 중요한 모티브다. 정체의 모호함은 단지 당사자의 문제가 아니다. 나의 정체는 타인과 영향 관계에 있다. 「검은 개」는 타인의 시선이 강조된 작품이다. 서늘한 회색 배경이 검은 개 형체에 불길한 기운을 더한다. 순전히 어떤 개인지 몰라서 생기는 위협감이다. 한편 상단부의 따뜻한 노란 빛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앉은 개 모양새가 어쩐지 측은해 보인다. 주인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늙은 개 얼굴이 떠오른다. 어느 쪽도 확신할 수 없다. 공포와 연민 모두 보는 이의 선입견에서 나온다. 결국 정체 모를 검은 개는 기피 대상이다.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다. 「회색 점」은 상호 불신 상황을 벗어나는 사회적 방식을 묘사한다. 사회는 신분으로 고착된다. 지위와 위상의 불투명함은 사회 안정의 위협 요소다. 불안은 자기를 묻는 인간이 겪는 자연스런 감정이다. 사회의 인간은 서로를 알 수 없음에 불안해한다. 낯 설음은 공포의 근원이다. 공포를 벗어나려 택한 방법이 동일시와 반복이다. 닮음에서 안정감을 찾는다. 사회는 피상적인 모방으로 유지된다. 사회에 속하지 않는 것은 폭력에 쉽게 노출된다. 티끌만한 다른 낌새에도 두려움에 발작하는 검은 개 무리가 나타난다.

 

박종호_젤리곰과 나한상_캔버스에 유채_41×32cm×2_2020

자기를 찾기 보다 집단에 속하려 애쓰는 태도를 비난하기는 쉽다. 그러다 문득 집단의 행동양식을 생각없이 따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자기 탐구가 고립된 삶을 뜻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동물원 체험」은 작가의 반성적 자각이 반영된 작품이다. 목에 노란 뱀을 두른 아이의 눈동자가 텅 비어 있다. 아이에겐 달갑지 않은 이벤트다. 굳은 얼굴에 원망마저 스친다. 두터운 칠이 경직된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아이 부모는 줄을 길게 선 여느 아이들과 똑같이 해주고 싶었다. 새로운 체험을 시켜주고 싶은 부모의 사랑이다. 작가는 사랑 아래 숨어 있던 강제를 포착한다. 일상에서 감지하기 어려운 악의 없는 강제다. 다른 아이 같길 바라는 마음이 아이의 개별성을 지워버렸다. 지극한 사랑의 손길이 아이를 낯설고 두려운 '모두'의 세계에 밀어 넣었다.

 

박종호_서툰 아이 2021_캔버스에 유채_117×91cm_2021

박종호 작가에게 타인과의 거리는 미묘한 문제다. 이런 면에서 「젤리 곰과 나한상」은 독특한 시도이다. 언뜻 보면 형태의 유사성을 이용한 단순 유희 같다. 젤리 곰과 나한상은 작가가 우연히 목격한 이웃의 비극을 대변한다. 길에서 쓰레기 봉지를 뒤지던 여인은 반쯤 남은 젤리 곰을 찾았다. 굶주린 여인이 손에 쥔 젤리 곰이 작가에겐 자비로운 나한상으로 보였다. 여인의 시선을 자기화한 순간이다. 여인에겐 그저 젤리 곰일 뿐이다. 작가는 젤리 곰과 나한상을 별개 작품으로 작업했다. 두 형상이 한 화면에 있다면, 여인의 시선은 완결된 서사에 가려졌을 것이다. 젤리 곰과 나한상 사이에는 틈새가 있다. 작품의 거리 이상으로 시선의 불연속, 의미의 단절이 있다. 시선의 균열은 존재의 간극, 채워야 할 의미의 자리로 남는다.

 

박종호_진지한 사람_캔버스에 유채_100×80cm_2018

작가의 기억은 이정표보다 정지신호에 가깝다. 소환된 기억은 아주 쉽게 일상의 뿌리를 쥐고 흔든다. 하지만 자기 파멸의 구덩이에 빠트리진 않는다. 오히려 삶은 행복으로 가득해야 한다는 환각을 흐트러뜨린다. 작품에 투영된 삶은 농담 같은 현실이다. 작가는 농담의 현실을 통해 과거를 드러내고 미래를 마주할 수 있다. 그림은 현실이란 텍스트를 비추는 '반反텍스트(anti-text)'이다. 박종호 작가의 물음은 하나다. 실존이다. 그에게 실존의 의미는 형상으로 드러난다. 그의 작품은 숨겨진 기억의 반 텍스트다. 완결되지 않고, 반성을 통해서만 나타나는 의미의 텍스트다.

 

박종호_저는 남을게요_캔버스에 유채_45×38cm_2021

익살꾼의 진심은 알기 어렵다. 그는 사실을 그대로 말하지 않는다. 비틀고 부풀리면서 다시 조합한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묶어낸다. 대개는 숨기고 싶어하는 약점, 결핍도 농담거리가 된다. 그는 쉽게 오해를 산다. 땅에 발붙이지 못하고, 웃음 바람에 인생을 실려 보낸다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익살꾼은 허풍선과 다르다. 허풍선의 말은 비눗방울 과 같다. 아무리 많아도 어떤 무게감도 없다.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하고 흩어져 버린다. 애초에 외부와 어떤 연결점도 없기 때문이다. 반면 농담의 요소는 모두 경험 안에 있다. 누구도 자신이 전혀 모르는 것을 두고 맘껏 웃지 못한다. 반복되고 익숙한 것에도 웃지 않는다. 농담의 성패는 '낯설지 않은 새로움'에 달려 있다. 탁월한 익살꾼은 역설을 좇는 예민한 관찰자다. ■ 유성애

 

 

Vol.20211111i | 박종호展 / PARKJONGHO / 朴鍾皓 /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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