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금상경 衣錦尙絅

Over herembroidered robe she puts on a plain garment 

2023_0118 ▶ 2023_0225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최명영, 이동엽, 박영하, 이인현, 천광엽, 장승택, 김길후, 왕쉬예,

김영헌, 박기원, 김현식, 박종규, 박현주, 윤상렬, 박인혁 

 

기획 / 이진명(미술비평·미학·동양학)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월요일 휴관

 

학고재 본관

Hakgojae Gallery, Space 1

서울 종로구 삼청로 50Tel. +82.(0)2.720.1524~6

www.hakgojae.com@hakgojaegallerywww.facebook.com/hakgojaegallery

 

학고재 아트센터

Hakgojae Art Center

서울 종로구 삼청로 48-4 B2

Tel. +82.(0)2.720.1524-6

artcenter.hakgojae.com

 

학고재 오룸

Hakgojae OROOM

online.hakgojae.com

 

학고재는 2023년 1월 18일(수)부터 2월 25일(토)까지 대형 기획전 『의금상경 衣錦尙絅』을 연다. 의금상경(衣錦尙絅)은 동아시아의 고전 『중용(中庸)』의 마지막장을 수놓는 말로서 『시경(詩經)』의 「정풍(鄭風)」에 실려 있는 '봉(丰)'이라는 노래의 노랫말이다. '봉(丰)'은 우리말로 '의젓한 님'으로 번역된다. "비단 저고리 위에 홑저고리 걸치고, 비단 치마 위에 홑치마 걸치고, 여러 남자들이여! 수레만 몰고 오면 나는 따라가리라(錦 褧衣, 裳錦 褧裳. 叔兮伯兮, 駕予與行)" 노래의 화자는 여인이다. 여인은 비단 저고리와 비단 치마처럼 근사 한 옷을 입고도 홑옷으로 화려함을 감추는 겸양의 남자를 기다린다. 비단 저고리와 비단 치마는 남자의 신분을 말하기보다는 남자의 내면을 가리킨다. 『중용』 의 저자는 이러한 남자를 군자 君子 라고 정의했으며, 소인(小人)과 대비된다. 그러면서 『중용』 의 저자는 군자를 세 가지 단어로 묘사한다. '담(淡)'과 '간(簡)'과 '온(溫)'이다. 군자는 맑고, 간이하면서도 온화하다. ● 전시회 『의금상경』 은 의금상경(衣錦尙絅)이 지닌 진정한 뜻으로 동아시아 모더니즘 회화를 바라보고자 한다. 군자가 맑고 간이하면서 온화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군자가 가는 길(道)은 "은은하나 날이 갈수록 드러난다(黯然而日章)"라고 말했다. 이와 반대로 소인이 가는 길은 "선명하나 날이 갈수록 없어진다(的然而日亡)"이라고 규정한다. 이번 전시회는 화려함을 뒤로 하고 맑고(담백하고) 간이하며 온화한 동아시아 모더니즘의 15명 작가를 선별했다. 서구 모더니즘은 본질주의(essentialism)를 강조하며 순수성(purity)이라는 명제 아 래 그 나머지를 배제하는 억압을 연출했다. 동아시아의 모더니즘은 그림과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내면을 분리시키지 않았다. 내면의 성장을 그림 그리는 진정한 목적으로 삼았기에 자연과 타인을 배제하거나 억압하지 않았다. 따라서 모든 그림이 담백하고 간이하면서 온화하다. ■ 이진명

 

최명영_평면조건 22-710 Conditional Planes 22-710_ 캔버스에 유채_130×130cm_2022
이동엽_사이-여백 908 Interspace-Void 908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2×259cm_1991
박영하_내일의 너 Thou To Be Seen Tomorrow_캔버스에 혼합재료_182×227.5cm_2022
이인현_회화의 지층 L'épistémè of Painting_캔버스에 유채_80×240×10cm_2017
천광엽_옴니 웨이브 no. 8 Omni wave no. 8_캔버스에 유채, 혼합재료_117×91cm_2018
장승택_겹회화 150-21 Layered Painting 150-2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20×170cm_2022
김길후_화성 Mars_종이에 아크릴채색_100×70cm_2014
왕쉬예_시공나체·즉(152) A Space Time Nude Identical(152)_ 캔버스에 유채_181.8×227.3cm_2021
김영헌_p22052_일렉트로닉 노스탤지어 p22052_Electronic Nostalgia_ 리넨에 유채_130×194cm_2022
박기원_넓이 13번 Width 13_한지에 유채_214×150cm_2007
김현식_Who Likes Obang Color(r)_ 에폭시 레진에 아크릴채색, 나무 프레임_54×54×7cm_2021
박종규_수직적 시간 Vertical Tim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2×130.3cm_2022
박현주_빛그림 37 INTO LIGHT 37_캔버스에 안료, 혼합재료_162.2×130.3cm_2022
윤상렬_ 조금 어둡게 조금 밝게 _  종이에 샤프,  아크릴판에 디지털 프린트_ 172 X 102cm_2022

 

박인혁_회색 풍경 Gray landscape_캔버스에 혼합재료_162×130cm_2022

 

드러내지 않아도 드러나는 겸양의 미

학고재갤러리, 기획전 ‘의금상경(衣錦尙絅)

‘비단옷 위에 삼베옷 걸치듯’ 동양 미의식 응축한 회화 55점 선보여

단색화 원로~소장작가 15명 참여, 중국 왕쉬예 작품도 첫 선

“한국 현대미술의 힘과 정신, 정체성 살펴보기”

 

학고재갤러리의 의금상경 기획전에 나온 장승택, 김현식 작가 작품의 전시 전경(사진 위). 사진 아래 왼쪽은 장승택의 겹회화 150-23 (2022, 캔버스에 아크릴릭, 220, 170㎝), 오른쪽은 김현식의 Beyond The Color (2021, 에폭시 레진에 아크릴릭 나무틀,  학고재 제공

동서양은 아름다움을 대하는 태도나 표현하는 방식에서 달랐다. 그림은 물론 문학이나 음악, 건축과 조경, 공연 등 각 부문에서 마찬가지다. 미의식의 차이이자 특성이다. 글로벌화 속에 뒤섞여 융합되고 있지만 그 독특성은 여전히 알게 모르게 작품들의 저변에 깔려 있다.

 

현대미술에 녹아든 동양의 미의식을 조명하는 기획전 ‘의금상경(衣錦尙絅)’이 서울 종로구 학고재갤러리에 마련됐다. ‘의금상경’은 ‘화려한 비단옷 위에 수수한 삼베옷을 차려 입는다’는 의미다. 동양 고전인 <시경> <중용> 등에 언급되고 있다.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 여성 장강이 위나라 임금과 결혼할 때 화려한 비단 옷 위에 백성들의 위화감 등을 고려해 삼베옷을 걸쳐 입었고, 이를 본 위나라 백성들이 그의 덕성을 기린 노래 ‘석인’(碩人·높으신 님)을 부른데서 유래한다.

 

‘의금상경’(또는 의금경의)은 이후 아름다움을 굳이 내보이기보다는 내면에 숨기고 감추듯 쌓고 쌓으면 자연스레 드러난다는 동양 미의식, 삶의 도리로 이어졌다. 시·서·화에서 외형·형식보다 내면·내용을, 직설보다 은유를, 잘난 체하기보다 겸손과 양보의 겸양을 강조하는 것이다. 동양화에서 달을 표현할 때 서양에서와 달리 달을 직접 그리지 않고 구름을 그려 달을 표현하는 홍운탁월 기법, 텅 빈 공간으로 사유를 유도하는 여백의 미, 인물의 외형보다 정신을 담아내는 전신사조 등과 비슷한 맥락이다.

 

의금상경전에서 이동엽, 최명영 작가의 작품 전시 전경(사진 위), 아래는 최명영의 평면조건 22-710 (2022, 캔버스에 유채, 130, 130㎝ 학고재 제공

이번 의금상경 전에는 모두 15명 작가의 회화 55점이 선보이고 있다. 80대 원로 단색화 작가부터 40대 소장작가, 작고 작가와 중국 작가까지 다양하다. 작품철학이나 표현방식·재료는 다르지만 작품들이 지닌 공통적인 고갱이, 미의식은 ‘의금상경’으로 수렴된다.

 

전시 기획자인 이진명 미술평론가와 우찬규 학고재 대표가 동아시아의 원초적 미의식이라 할 의금상경, 겸양의 미학이 두드러지는 작품들을 엄선한 것이다. 이진명 기획자는 “의금상경의 의미와 가치를 지향하고 또 다채롭게 표현한 동시대 작품들을 통해 작가들의 정신성, 작품성을 살펴보고자 한다”며 “이는 한국 현대미술의 힘과 정신, 나아가 정체성을 재고·확립하는 작업의 하나”라고 밝혔다.

 

전시장에서는 근래 주목받는 단색화의 대표주자인 원로 최명영(82)과 이동엽(1946~2013)의 작품을 만난다. 담백한 화면 속에 작업의 수행성·정신성을 강조하는 최 작가 작품은 손가락에 물감을 입혀 몸의 움직임·감각이 그림에 작용하도록 함으로써 화면에 특유의 리듬감도 드러난다. 한국미를 순백의 순수로 해석해 ‘백색 회화의 거장’이라 불린 이동엽의 ‘사이-여백 908’(1991)에도 동양 미의식이 응축돼있다. 두터운 질감과 갈색계통의 자연적인 색채, 절제한 화면구성 등으로 고향집 흙 담장 등 갖가지 상상력을 자극하는 박영하 작가(69)의 ‘내일의 너’ 연작도 있다. 작품명은 작가의 작업 화두이자 부친 박두진 시인이 제시한 것이다.

 

색채의 향연이라 할만한 장승택·김현식 작품도 나란히 내걸렸다. 두 작가는 마치 수행하듯 몸과 정신을 집중해 수십번에 이르는 반복적 행위의 힘든 작업 과정으로 유명하다. 장 작가 작품에서 관람객 눈에 보이는 색은 사실 수많은 색들이 속에서 다투고 또 화해하면서 겹겹이 쌓인 결과다. 색과 색면의 폭, 여백, 붓질 흔적 등의 여러 요소를 감상할 만하다. 김 작가는 에폭시를 칼로 그어 물감을 바르는 반복적 과정을 수행한다. 결국 화면은 관람객 시선을 끝없이 빨아들이는, 시공을 초월한 듯한 무한한 시각적 깊이가 압권이다.

 

이인현은 정면만을 강조하는 일반적 회화에 딴지를 걸었다. 작품 틀의 위, 아래, 옆도 화면이다. ‘회화의 지층’이란 명제이자 연작을 통해 그리기보다 안료의 자연스러운 번짐, 스며듦을 추구하고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허물기도 한다. 바다 색깔인 코발트블루로 여백을 만들어 드넓은 바다, 우주를 상상하게 한다. 옆에는 설치미술가 박기원의 회화 연작 ‘넓이’가 있다. 무수한 선들이 그려지지 않은듯 그려져 공간을 생성하며 시간의 흐름, 자연의 순환 등을 떠올리게 한다. 박종규는 디지털시대 속 시그널과 노이즈의 이분법적 구분을 넘어서 인간 세계의 평형상태를 추구하는 추상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 위는 이인현 작품(왼쪽)과 박기원 작품의 전시 전경. 사진 아래는 이인현의 회화의 지층 (2022, 캔버스에 유채, 10, 160㎝). 학고재 제공

유일한 외국 작가인 왕쉬예(60) 작품도 국내에 첫선을 보인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그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감수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자연을 분석하고 타자화·대상화시키는 태도에서 벗어나 ‘무차별적 바라보기’라는 명제로 작업한다. 왕 작가를 전시에 추천한 이우환 작가는 “화가들은 대부분 표현에서 존재를 드러내는데 그는 도리어 붓의 숨김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며 “자기를 잊게 만드는 망아의 신비한 쾌감을 선사한다”고 평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는 또 물감층과 플라스틱 구슬로 화면의 시각적 운율이 드러나는 천광엽, 세상과 사물의 본질을 파고드는 김길후, 혁필화 기법으로 시대의 내면을 담아내는 김영헌, 치열한 재료 연구로 독특한 예술의식을 보여주는 박현주, 극히 가는 선들로 깊이감이 도드라지는 윤상렬의 선형 회화, 무의식적인 붓 터치가 생생한 박인혁의 작품도 관람객을 맞는다.

 

우찬규 대표는 “이른바 ‘K아트’ 등 한국 미술에 국제적 관심이 높은 상황에서 견고한 미의식과 높은 작품성의 작가와 작품 발굴은 절실하다”며 “이번 전시가 작가들의 치열한 작업, 미술애호가들의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 평론계와 화랑계의 역할을 다시 한번 성찰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전시는 2월25일까지.

 

의금상경 전시장에 왕쉬예의 시공나체 즉(151 (가운데)과 박현주의 연작 빛그림 (오른쪽), 박인혁의 연작 회색 풍경이 선보이고 있다. 학고재 제공

[경향신문 / 도재기기자]

학고재 새해 첫 전시 '의금상경' 기획전을 선보인 이진명 미술평론가(왼쪽)과 학고재 우찬규 회장이 중국작가 왕쉬예 작품앞에서...

 

 

첫눈에 At First Sight

강요배展 / KANGYOBAE / 姜堯培 / painting 

 

2022_0826 ▶ 2022_0930 / 월요일 휴관

 

강요배_산상 山上 On the Mountai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7&times;667cm_2022 (사진_양동규)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학고재 본관

Hakgojae Gallery, Space 1

서울 종로구 삼청로 50

Tel. +82.(02.720.1524~6

www.hakgojae.com@hakgojaegallerywww.facebook.com/hakgojaegallery

학고재 오룸Hakgojae OROOM

 

원인(原人)과 원도(原道): 사람을 묻고 도리를 묻다.-강요배의 예술세계 - 1. 들어가는 말(자연과 역사) ● 이탈리아 철학자 갈바노 델라 볼페(Galvano Della Volpe, 1895-1968)는 그의 대표작 『취미비판(Critique of Taste)』에서 시에 관한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의 주장을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괴테는 "최상의 시어는 결정적으로 역사적이다. ...핀다로스(Pindar)의 송가에서 신화와 역사적 요소를 분리시키는 일은 그들의 내면적 삶을 송두리째 잘라내는 것과 같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1) 델라 볼페는 시의 본질은 역사적이며 시공의 지배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소포클레스(Sophocles, c. 497/6-406/5B.C.)의 비극적 파토스는 그가 처한 물질적 토대나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따라서 당연히 비평 기준은 역사적 토대에서 설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서 델라 볼페는 200년간의 시어들을 분석하면서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와 낭만주의 시대에 설정된 비평과 미학 개념을 역사적, 사회학적 차원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낭만주의 시인들은 현실로부터 초월했기 때문에 환상이라는 개념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시인들을 환상 속에 가둔 역사적 조건이 분명히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역사적 조건의 정확한 진단과 해석으로부터 시인과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열리게 된다. 그리고 그 통로는 회화 세계에서도 통용한다. 따라서 우리는 하인리히 뵐플린(Heinrich Wölfflin, 1864-1945)의 그토록 유명한 선언을 다시 한 번 상기해야 한다. ● "모든 예술가는 이미 존재하는 시각적 가능성을 발견한다. 예술가는 그 가능성에 묶여있다. (밀접히 연관된다.) 모든 것이 모든 시대에 가능한 것은 아니다. 무언가를 어떻게 보는 것 자체가 역사에 좌우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적 지층(optical strata)을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미술사의 가장 기초적인 책무이다." 2) ●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이탈리아의 철학자와 스위스 출신 미술사가는, 마치 동일 인물인 것처럼 같은 관점을 시사한다. 전자가 말하는 역사적 조건과 후자가 말하는 시각적 가능성은 예술가를 어떠한 영역에 가둔다. 그 영역은 세계를 바라보는 방법이다. 우리는 "모든 것이 모든 시대에 가능한 것은 아니다."라는 문장에 보다 집중해야 한다. 세계를 바라보는 방법은 시대에 구속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이러한 전제를 존중하면서 예술가와 마주해야 한다. ● 그리고 지금 우리는 강요배(姜堯培, 1952-)라는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예술가와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누구나 강요배 작가에 대하여 '제주의 작가', '4·3 항쟁의 작가'로 인식하고 있다. 우리는 작가를 바라보며, 작가가 1980년대와 1990년대를 통하여 시대의 그릇된 역사인식과 사회 부조리와 맞서 싸운, 실천적 예술가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작가의 작품 속에 외부세계(인간세계)의 역사적, 사회학적 묘사는 1980년대 작품에서 마무리되며, 그 후 작품세계는 자연 풍경의 묘사로 집중되고 있다. 강요배 작가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문장이 있다. ● "제주의 역사적 체험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캔버스 위에 담는 작품으로 유명하며, 자연의 풍경을 단순한 객체로서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의 심적 변화를 읽는 또 다른 주체로 다룬다." 3) ● 작자미상의 이 글에서 작자는 강요배의 세계가 제주의 역사적 체험의 묘사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는데, 묘사하는 대상이 객관적 세계라기보다 주체로 다룬다고 설명한다. 이를 우리는 의경(意境)이라고 배웠다. 사전적 의미로 의경(意境)은 작자의 주관적인 사상과 감정이 객관적인 사물이나 대상을 만나 융합하면서 생성되는 의미 또는 형상이다. 강요배의 회화세계는 의경의 세계이다. 예컨대, 강요배가 그리는 한라산과 내금강 중향성(衆香城)은 단순히 감상을 위한 대상으로서의 아름다운 산이 아니다. 물론 한라산과 금강산은 각각 우리 국토의 남쪽과 동쪽에서 우리들의 심성을 기르고 포옹해주었던 영적 대상이다. 우리는 생업을 위해서 살지 않는다. 옳게 산다는 믿음 속에서 산다. 믿음은 진리가 되고 진리는 삶을 견디게 해준다. 진리는 역사를 통해서 드러난다. 한라산과 금강산은 우리의 흔들리는 믿음을 다잡아주었고, 역사 속에서 살아간 모든 사람을 지켜본 역사 속의 눈이다. 산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을 초월한다. 작가에게 산은 스스로 그러하다는 뜻으로서의 자연(自然)의 상징이다. 그렇기에 강요배 작가가 표현한 한라산과 금강산은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근원적 동력이자 심신을 바루게 해주는 거울이며 우리가 디디고 있는 대지의 얼굴이다. 우리는 그 대지에 속해있다. 우리는 대지를 떠나서 살 수 없다. 그리고 강요배는 대지의 철학을 옹골진 획의 힘으로 표현한다. 강요배는 대지의 철학으로부터 발아되는 획의 힘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그림의 획과 속도는 매우 중요하다. 나는 쉭쉭하고 소리 나게 선이 그어지지 않으면 그림이 안 그려지는 것 같다. 속도가 있어야 하고, 선들이 벡터를 가져야 하고, 강약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자연을 관찰하고, 자연을 만지고, 자연 속에 살아봐야 그런 선이 나온다는 거다. 디지털 이미지나 사진 등 인간이 가공해 놓은 이미지로부터 출발하면 획이 나올 수 없다. 이 차이는 매우 크다." 4) ● 강요배가 그리는 산과 풍경은 스스로 그러하다는 뜻의 자연(自然)이다. 사람이 자연으로부터 분리되면 자연의 바깥에 존재하게 된다(ex-sist). 자연의 바깥에 존재하는 것은 인위이며 문화이다. 서구의 풍경화는 대상을 객관화한다. 화가는 대상(자연)으로부터 분리된다. 이에 반해 강요배 작가는 대상과 분리되지 않고 하나가 된다. "자연을 만지고, 자연 속에 살아봐야" 그릴 수 있는 의경으로서의 그림이다. 그 의경의 발원지는 올곧은 역사인식과 무한한 국토애(國土愛)이다. 자연(공간)과 역사(시간), 그리고 자아(주체)가 총체적으로 통합된 경계에서 획과 속도, 벡터와 강약이 더불어 용솟음친다. 거듭 말하자면 작가는 "단순한 객체로서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의 심적 변화를 읽는 또 다른 주체로 다룬다."

 

강요배_'바비'가 온 정원 Garden During Typhoon "Bavi"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4&times;520cm_2021 (사진_오권준)

2. 하이퍼 카오스(hyper-chaos)와 굳건한 토대 ● 하인리히 뵐플린의 말로 되돌아 와서 다시 한 번 생각할 것이 있다. "모든 것이 모든 시대에 가능한 것은 아니다. 무언가를 어떻게 보는 것 자체가 역사에 좌우되는 것이다." 이 말은 헝가리 출신의 사회학자 카를 만하임(Karl Manheim, 1893-1947)의 가장 유명한 테제인 사유의 존재 구속성(Seinsverbundenheit des Wissens)을 상기시킨다. 사유(예술)는 내 몸이 속한 토대를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강요배 작가의 위대성을 확인하려면 작가를 지배하던 시공의 구속성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 강요배는 실천주의 예술가였으며 사회참여적 예술가였다. 강요배가 일생 동안 추구했던 경계는 내용과 형식 사이의 팽팽한 균형이었다. 내용은 세계를 바라보는 방법, 즉 세계관이며, 형식은 누구도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운 시각의 모험을 가리킨다. 모든 예술가는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허들 경기를 한다. 그림을 그리는 데에는 제약과 장애물이 존재한다. 미술의 역사를 통해서 이미 존재했던 모든 형식을 피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화면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 화면이 새로운 형식이 될 때 비로소 작가의 타이틀을 수여 받게 된다. ● 강요배 작가가 젊은 시절을 보냈던 1980년대, 우리나라 화단은 두 개로 분할되어 있었다. 큰 범주로 모더니스트 회화와 리얼리즘 회화였다. 문제는 한국 화단을 이끈 두 개의 바퀴가 서구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더욱이 모더니스트 회화는 순수주의(purism)를 표방해야 했다. 외부 세계의 모든 내용, 가령 인간의 삶의 문제나 정치적 사안은 배제되어야만 했다. 심지어 형상도 제거되거나 축약되어야 했다. 순수주의는 배타주의와 같은 말이다. 회화에 조각적 요소가 진입해서는 안 되며 조각에 회화적 요소가 투사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순수주의라는 말에는 본질주의(essentialism)라는 말이 내포되어 있다. 모더니스트 회화를 지지하는 이론가들은, 회화의 본질이 평면성(flatness)에 있으며, 이는 철학적 진리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노선은 리얼리즘 회화를 배격한다. 회화의 본질을 흐리며, 회화의 순수함을 더럽힌다는 것이다. 반대로 리얼리즘은 회화와 삶의 일치를 주장한다. 리얼리스트는 삶을 위한 회화에 헌신해야 하며, 순수주의라는 미명 아래, 현실로부터 도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가장 절실한 철학적 요청이었다. 이토록 혼란스러운 시기에 강요배 작가는 리얼리즘 회화의 철학을 구축하기 위해서 헌신했다. 강요배 작가는 모더니스트 회화의 순수주의 철학과 리얼리스트 회화의 삶의 철학의 건널 수 없는 심연이 있다는 사실로부터 자기 철학의 제1원칙을 세웠다. 우리는 그 원칙을 「미술의 성공과 실패」이라는 강요배 작가의 에세이에서 찾을 수 있다. ● "이른바 고급미술이 명시적으로 표방하는 예술 이념은 '순수주의'다. 순수라는 말은 보통, 삶의 모든 국면에서 좋은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그러나 순수주의 예술 이념에서의 순수라는 말은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말도 좋은 말이다. 그것은 예술이 예술다워야 한다는 말이다. 예술다운 예술이란 어떤 뜻인가? 인간다운 삶, 의미 있는 삶을 가꾸어나가는 데 예술의 본래 사명이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삶을 외면하고 무의미한 짓을 되풀이하는 것이 예술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처럼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말은 자유로운 인간성을 지키자는 뜻이다. 나아가 삶을 가장 값진 것으로 하는 데에 예술이 어떤 것과도 결탁하지 말자는 뜻이다. 그것은 예술의 가치와 그 힘을 믿고, 예술의 힘이 삶을 왜곡하는 갖가지 힘에 억압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5) ● 순수주의와 자율성을 표방하는 예술은 예술을 위한 예술이다. 그러나 작가는 삶의 가치를 고양시키지 못하는 예술을 경계하고 있다. "인간다운 삶, 의미 있는 삶을 가꾸어나가는" 예술만이 진정성이 보장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록 인간다운 삶을 가꾸는 예술이 있을지언정 그 예술이 모두 의미 있고 위대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칸트의 위대한 명제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6) 모더니스트 회화에는 삶의 내용이 결여되어 있다. 반면에 리얼리스트 회화는 개념을 축적하지 못하고 있다. 강요배 작가는 삶과 개념의 무게를 영원한 수평으로 만들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 그것이 바로 새로운 형식의 풍경화이다. 힘과 속도, 벡터와 강약이 더불어 용솟음치는 무대(arena)를 만들었다. 이러한 힘과 속도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생각해보는 것이야말로 강요배 회화의 진수를 알게 되는 지름길이다. ● 나는 우리나라의 미술 현상을 극도의 카오스가 할퀴고 간 현장이라고 생각한다. 하이퍼 카오스의 현장이다. 거의 대부분의 작가들이 예술의 본질과 책무를 망각하고 있다. 서구 사회에서 마름질한 외투를 걸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외투는 몸에 맞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무게로 인해 우리 스스로 움츠러들게 한다. 그러나 우리 눈에는 융프라우(Jungfrau)보다 한라산이 위대해 보이며, 우리의 혀끝은 칠리소스보다 고추장을 선호한다. 그림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우리나라 화가의 그림을 좋아하게 되어있다. 동시에 그 선호는 취미를 넘어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내적 필연성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강요배의 예술철학은 바로 여기에 뿌리를 내린다. 내적 필연성은 다름 아닌 인간에 대한 애정과 신뢰에서 비롯된다. 이에 반해 여타 다른 작가들은 자기의 뿌리를 타국의 토양에 둔다. 즉, 타자의 세계관을 빌린다. 7) 타자의 세계관은 나의 세계관이 아니다. 타자의 세계관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일은 혼돈의 극치이다. 더군다나 인간에 대한 애정과 신뢰, 자연에 대한 존숭을 망각하고 만다. 이렇게 되면 절망적인 것이다. 이를 우려했던 강요배 작가는 일찍이 자기의 세계를 일곱 단어로 표현하며 친지와 동료를 격려한 적이 있다. ● "따스하게 벗처럼 살면 어디든 중심이 되는 법이다." 8) ● 강요배의 철학은 불망(不忘)이라는 단어로 집약되며 무불경(毋不敬)이라는 진리로 드러난다. 불망은 시간(역사)에 대한 철학이며, 무불경은 현재 공간에서 접하는 모든 인연에 대한 존숭을 뜻한다. 불망과 무불경이 내면화될 때, 나의 내면은 중용의 평형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불망과 무불경이 사회적으로 실행될 때, 나를 비롯한 공동체가 세상의 중심이 된다. 이것이 바로 강요배가 평생 간직했던 철학이자 예술을 실행하는 근거이다. 이러한 강요배 철학의 핵심은 놀랍게도 『논어(論語)』 「자한(子罕)」편의 한 구절과 한 입에서 나온 것처럼 동일하다. ● "공자께서 여러 동쪽 오랑캐의 나라에 살고 싶어 하시자 어떤 사람이 "거기는 누추할 터인데 그것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사는데 어찌 누추함이 있겠느냐?"" 9) ● 나는 여러 동쪽 오랑캐의 나라(九夷) 중에 제주(濟州)가 포함되어 있다고 믿는다. 군자는 특정 계급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불망과 무불경을 내면화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라고 믿는다. 강요배의 삶의 철학은 예술적 테마로 표현된다. 강요배 작가에게 그림은 단순한 미적 대상이 아니라, 철학이라는 정신을 담아서 현시하는 그릇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또 다시 놀라운 이야기를 한다. ● "만일 미술이라는 것이 막대한 금력의 기반 위에만 구축되는 거대한 건조물 같은 것이라면 그것은 그 기반이 무너질 때 하루아침에 허물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만일 미술이 사람들의 마음밭에 뿌리내려 자라는 나무 같은 것이라면, 그것은 쉽사리 죽어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10) ● "막대한 금력의 기반 위에만 구축되는 거대한 건조물"과 "사람들의 마음밭에 뿌리내려 자라는 나무 같은 것"은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메타포이다. 전자는 하이퍼 카오스의 세계이며, 후자는 굳건한 믿음의 토대를 뜻한다. 전자의 시간이 100년이라면, 후자의 시간은 만세(萬歲)를 이룬다. 강요배가 그토록 아름다운 경계를 지향한 것은, 시간(역사)으로서의 불망, 공간(사회)으로서의 무불경을 화면에 담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이러한 예술의 시원을 3,000년 전의 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시경(詩經)』에 등장하는 「팥배나무(甘棠)」라는 시이다. ● "무성한 저 팥배나무, 자르지도 말고 베지도 마셔요. 우리 소백님께서 자리하던 곳이랍니다. 무성한 저 팥배나무, 자르지도 말고 꺾지도 마셔요. 우리 소백님께서 쉬시던 곳이랍니다. 무성한 저 팥배나무, 자르지도 말고 구부리지도 마셔요. 우리 소백님께서 말씀하시던 곳이랍니다." 11) ● 시에서 가리키는 소백님은 주나라 무왕(武王, ?-1043B.C.)의 동생 소공 석(召公 奭, ?-?)을 가리킨다. 민중에게 소공은 불망의 대상이다. 무불경으로 민중에 다가갔으며 민중을 위한 경세를 실천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소공이 쉬었던 팥배나무 그늘은 당연히 후세대에게 불망의 대상으로 승격된다. 팥배나무는 객관의 대상이 아니다. 민중의 심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주체로 자리 잡게 된다. 강요배가 자연을 대하는 태도와 정확하게 닮았다. ● "1월 1일 새벽에 찾은 한라산 백록담은 마치 깊은 웅덩이에서 거센 바람이 올라오는 것 같아 눈을 뜨고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웅장했다. 그 장엄함에 압도되어 같이 간 일행은 모두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향해 절을 드렸다." 12)

 

강요배_중향성 衆香城 Junghyangseong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7&times;333.3cm_2019 (사진_오권준)

3. 천하일신론(天下一身論) ● 연도를 알 수 없는 어느 해의 1월 1일 새벽에 작가는 한라산 정상에 올라 백록담을 바라보았다. 깊은 웅덩이에서 올라온 거센 바람은 과학과 객관적 사유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단순한 현상이 아니다. 자연과 나와의 신비한 교감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교감은 일행과의 공통적 체험이었다. 이러한 교감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자연과 내가 주객으로 분리되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러한 경험은 주어지지 않는다. 보통 이러한 교감은 자연과 내가 같다고 믿는 사람에게 찾아온다. 이러한 교감은 천지와 내가 하나라는 천지일신(天地一身) 사상으로부터 출발하여, 모든 사람들과 내가 하나라는 천하일신(天下一身) 사상으로 변용된다. 급기야 천지(우주)에 대한 믿음은 인간에 대한 낙관적 신뢰(仁)로 발전된다. 강요배 작가는 인간에 대한 낙관적 신뢰, 즉 인(仁)을 추구하며, 인간다움의 참된 의미를 묻고 그린다. ● "소통에 이르는 길은 인간 긍정 과정을 통과한다. 허구적 전달세계와 억압구조에도 불구하고 삶의 도처에서 생동하는 올바른 삶의 모습과 인간성을 발견하고 드러내어 서로 나누는 일이 이루어져야 한다. 건강한 삶의 실천자가 도처에 있다. 삶은 늘 오늘의 일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힘이 사람에게 있다. 여기에 인간다움도 있는 것이다." 13) ●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알아가려는 영원한 과정 속에서 예술이 피어난다. 그것은 동아시아의 사유방식이다. 아방가르드 예술은 대부분 반항(反抗), 추비(麤鄙), 선정(煽情), 장려(壯麗)의 내용으로 나타난다. 동아시아의 예술에서 이러한 파격의 역사는 서구의 그것보다 오래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지양한다. 인간다움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사유에서 최상의 제1원인은 자연(自然)에 귀속한다. 노자(老子, ?-?)의 사유가 대표적이다. 노자는 "사람은 땅을 따른다. 땅은 하늘을 따른다. 하늘은 도를 따른다. 그리고 도는 스스로 그러함(自然)을 따른다"라고 14) 말했다. 진실로 사람은 대지를 따라야 한다. 대지 없이 사람도 있을 수 없다. 대지는 하늘을 따라야 한다. 하늘이 대지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하늘은 도리, 즉 우주법칙을 따라야 한다. 그리고 우주는 스스로 그러함을 따를 수밖에 없다. 우주가 운영하는 법칙은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은 대지이며, 대지는 하늘이고, 하늘은 법칙이고 법칙은 자연스럽다. 사람과 대지와 하늘과 도리는 같은 것이다. 삶은 자연스러워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자유이다. 강요배 작가가 지향하는 세계가 여기에 있다. ● 사람과 자연이 본래 하나라는 관념은 동아시아에서 장구하게 유지되었던 사유방식이다. 사람과 자연과의 관계(天人之際)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禮樂刑政)로 구체화된다. 자연(우주)이 사람을 기르는 것을 가리켜 인(仁)이라 한다. 모든 사람의 본성(性)은 선(善)하며 인(仁)을 내재하고 있다. 따라서 나와 타인과 자연은 인(仁)을 통하여 하나로 연결되어있다. 이에 대해 정명도(程明道, 1032-1085)는 우리의 사체(四體)와 우주의 유비관계를 통해 설명한다. ● "의서(醫書)에서 손발이 마비된 것을 가리켜 불인(不仁)하다고 말한다. 이 말은 가장 좋은 설명이다. 인(仁)이라는 것은 천지만물을 하나로 여기기에 무엇 하나 자기가 아닌 것이 없다. 모든 것이 자기라고 여기니 이르지 않는 곳이 있겠는가? 만일 자기에게 있지 않은 것이라면 자기와 관여하지 않게 된다. 만일 손발이 불인하다면 기운이 통하지 않게 되어 손발은 자기에 속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널리 베풀고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은 성인의 공용이다. ...배우는 사람은 가장 먼저 인(仁)을 알아야 한다. 인(仁)이란 어떠한 차별도 없이 모든 대상(萬物)과 하나 되는 것(同體)을 말한다." 15) ● 정명도 사상의 연원은 상고시대의 전설적 인물 황제(黃帝) 헌원씨(軒轅氏, ?-?)가 지었다는 『택경(宅經)』으로까지 소급된다. 황제는 사람들에게 "(자연의) 형세를 자기 몸으로 여기고, 대지에 흐르는 샘물을 자기의 혈맥으로 여기고, 대지는 자기의 살과 피부처럼 여기고, 초목은 자기의 머리털처럼 여겨야 한다"라고 16) 가르친다. 천지와 자기, 타자를 하나로 여기는 마음은 후대로 지속하여 이어진다. 가령, 천하가 하나라는 관념은, 왕양명(王陽明, 1472-1528)의 양지(良知) 사상의 토대가 되었다. ● "사람이라는 것은 천지의 마음이다. 천지의 모든 것은 본래 나와 한 몸인 것이다. 사람들의 고난과 그 여파 중 그 무엇 하나 나의 아픈 통증 아닌 것이 있겠는가? 내 몸의 아픔을 모르는 사람은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도 없는 사람인 것이다." 17) ● 천지가 사람과 만물을 낳는 마음(天地生物之心)을 가리켜 인(仁)이라 한다. 동아시아 사람들은 우주가 운영되는 법칙을 인(仁)으로 보았다. 우리의 마음(心身)에도 인(仁)이 내재되어 있다. 우리의 마음에 하늘(天)이 숨어있다. 마음 속 하늘을 찾는 것이 바로 강요배가 오랫동안 걸어왔던 예술의 길이자 삶의 요체이다. 나의 몸은 자연과 분리되어 존재하는 독립된 현상이 아니라, 자연과 타인과 과거와 미래와 연동되어 움직이는 대신(大身)이다. ● 「산상(山上)」에서 웅혼하게 넘실거리는 운무는 사람이 마땅히 함께 해야 할 기상이며, 「만매(晩梅)」에서 피어오르는 향취는 모든 사물을 낳고 기르는 천지의 마음을 상징한다. 「독조(獨鳥)」의 움직임은 스스로 그러한 세계의 참모습, 차별을 떠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의 진리를 표현하고 있다. 「풍설매(風雪梅)」는 고난으로부터 되레 아름다운 모습을 극화시키며, 사람에게 가야할 길을 가르쳐준다. 「장밋빛 하늘」은 아름다운 대상으로서의 하늘이 아니라, 나에게 말을 거는 하늘의 목소리이다. 태풍이 할퀴고 간 정원을 표현한, 「'바비'가 온 정원」은 시공과 인연의 착종(錯綜)과 생멸의 순환을 상징한다. 이처럼 강요배 작가가 그린 이 모든 것은 바로 하늘(天)의 마음을 그린 것이다. 만명(晩明) 시기의 사상가 고반룡(高攀龍, 1562-1626) 역시 같은 이야기를 했다. ● "사람은 하늘을 아는 것보다 긴요한 것이 없다. 하늘을 알기 위해서는 감응(感應)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하늘이라는 것은 저기 푸르고 푸른 하늘을 가리킬 뿐이다. 저기 아홉 개로 포개있는 하늘 이상의 높이와 저기 아홉 겹으로 켜켜이 쌓여있는 땅부터 나의 피부와 털, 뼈와 골수에서 우주 끝까지, 하늘 아닌 것이 없다. 그러니 내가 하나의 선한 마음을 동하면 하늘이 반드시 알고, 하나라도 불선한 마음을 먹으면 하늘이 반드시 안다. 하늘은 또 어리하지 않아서 선함을 보면 반드시 보답한다. 불선함을 보면 반드시 그 불선함에 보답한다. 감응이라는 것은 형체와 그림자의 관계와 같다. 선함이 감하면 선함이 응수하게 된다. 불선함이 감하면 불선함이 응수하게 된다. 무릇 자감자응(自感自應)이 어째서 하늘을 이른다는 것인가? 어째서 하늘은 반드시 안다고 말하는 것인가? 자감자응(自感自應) 바로 그것이 하늘인 것이며, 또 그것은 사물, 사건과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하는 주체와 응하는 주체가 따로 있다면 이는 둘인 것이다. 오로지 둘이 아님에 (하늘은 만사에) 착오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선을 행하는 것은 스스로 복을 짓는 것이며, 불선을 행하는 것은 스스로 화를 부르는 것이다. 따라서 "화복(禍福)은 자기가 구하지 않음이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를 알았다면, 선을 행하고 악을 거하는 뜻이 반드시 정성스러워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악은 정화되고 선은 순전해질 것이니, 이러한 경계에 도달한 사람을 가리켜 바로 하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18)

 

강요배_구룡폭 九龍瀑 Ⅲ Kuryongpok Ⅲ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59&times;181.5cm_2019 (사진_오권준)

4. 맺는말(지천(知天)의 회화) ● 자감(自感), 즉 내가 감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자응(自應), 즉 하늘이 바로 안다. 선을 행하고 악을 거하는 뜻이 지극히 정성스러워지면, 내재한 선이 드러나고 악은 정화될 것이다. 이러한 경지의 사람은 그 자체로 하늘이다(人乃天). 이 말은 공자(孔子, 551B.C-479B.C.)가 지었다는 『주역(周易)』 「계사(繫辭)」에 나오는 문장을 재해석한 것이다. "역(易)은 생각도 없고 하는 것도 없어 고요히 움직이지 않다가 느끼어 드디어는 천하의 일을 통한다. 천하의 지극한 신비로움이 아니면 그 누가 여기에 참여할 수 있겠느냐." 19) 강요배 작가 역시 동아시아 사상의 장구한 역사에 동참하여 본인의 사상을 구성했고 예술의 바탕으로 삼았다. 강요배 작가의 사상이 갖는 깊이를 우리는 다음 문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우리는 자연을 통과해서 하늘을 찾아가야 한다. 또 천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 본연의 어떤 좋은 것들이 모여 있는 장소가 '천'일 텐데, 그것이 바로 마음 깊은 곳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모든 사물과 모든 인간 깊은 곳에 '천'이 있다. 이곳이 인간이 도달할 곳이다. 예술가를 비롯한 만인은 '천'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천'에 도달하는 순간 우주 보편성에 도달한다. 사람은 '인트로스펙션(introspection, 자기 성찰)을 통해 마음을 편안하게 갖고, 자연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이 그림을 보면서 감동을 일으키는 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천'의 곡조를 듣는다는 거다. 그런 면에서 회화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나는 회화를 통해 모든 사람이 우주의 단독자로서 한 사람 한 사람씩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마음의 무늬를 그리는 것을 꿈꾼다." 20) ● 마을에 유전되는 전설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공동체가 간직해온 역사에 대한 평가와 세계를 바라보는 방법, 공동체 선인들의 정서와 잠언(箴言)이 함축되어있다. 전설은 유년기 소년에게 상상의 공간을 개척하도록 도와준다. 상상의 공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현실로 구체화되더라도 시들지 않고 현실에 개입한다. 세계와 사태를 바라보는 시선의 방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은 4․3의 잔혹한 스토리와 어울리지 않는다. 천성적으로 아름답고 예민하되 건전했던 작가에게 커다란 마음의 상처로 다가왔을 것이다. ● 앞서 보았던 것처럼 작가는 처음에 역사와 현실을 그렸다. 그리고 작가에게 그림은 단순히 예술형식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세계와 역사, 사람과 소통하는 창구이자 세계에 대한 학습의 집체(集體)였다. 지난한 여정을 통하여 작가의 세계는 변모하게 된다. 작가는 사람의 소리로부터 땅의 소리로 나아가더니 급기야 하늘의 소리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느껴서 천하의 일에 통한다는 것(感而遂通)이 곧 하늘의 소리일 것이며, 하늘은 "모든 사람이 우주의 단독자로서 한 사람 한 사람씩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마음의 무늬를 그리"기를 바랄 것이다. 따라서 강요배의 작품을 바라볼 때, 우리는 작가가 바라보는 세계의 진면목에 바로 진입할 수 있어야 한다. 강요배 작가의 풍경은 우리의 역사이며 동시에 하늘의 마음을 그린 것이다. 우리는 그림에서 보았던 진리를 현실에서도 다시 확인할 수 있어야 하며, 나아가 그것을 넓혀야 한다(人能弘道). 이것이 강요배 작가가 그림으로 말하려는 것이다. 즉, 그림으로 말하는 강요배 작가의 사상이다. ●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는 노래한다. "강물이여! 계곡을 따라서 흐르는구나. 불사주야(不舍晝夜) 흐르는구나. 너는 고요한 나의 이야기에 말을 건다. 속삭이는 음악소리이구나." 21) 시의 화자는 강물 흐르는 소리로부터 내면의 소리를 취하여 의미로 충만한 멜로디를 구성해낸다. 이내 자연과 화자는 음악으로 하나가 되는 경지로 승격한다. 강요배의 거의 모든 그림 역시 자연과 화가를 하나로 이어주며, 나아가 시공과 인연, 사람과 도리의 의미를 체현한다. ■ 이진명

* 각주1) Galvano Della Volpe, (trans.) Michael Caesar, Critique of Taste (London: New Left Books, 1979), p. 25.2) Heinrich Wölfflin, Principles of Art History: The Problem of the Development of Style in Early Modern Art (Los Angeles: The Getty Research Institute, 2015), p. 93.: "Every artist finds certain preexisting 'optical' possibilities, to which he is bound. Not everything is possible at all times. Seeing as such has its own history, and uncovering these 'optical strata' has to be considered the most elementary task of art history."3) 「Doopedia」 강요배(두산백과, 2014, 작자미상).4) 강요배, 『풍경의 깊이』(돌베개: 파주, 2020): 52쪽.5) 강요배, 「미술의 성공과 실패」, 같은 책: 255-256쪽.6) Frederick Copleston, A History of Philosophy: Wolff to Kant Vol.6 (Burns & Oates: Wellwood, 1999), p. 247.: "thoughts without content are empty, intuitions without concepts are blind."7) 프랑스에서 수입된 노마드니, 리좀(rhizome)이니, 상징계(象徵界, symbolic)니, 에로티시즘이니, 사변적 리얼리즘(speculative realism)이니 하는 말들은, 나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우리 현실과 상황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맞는 경우보다 많다.8) 강요배, 앞의 책: 66쪽.9) 『論語』 「子罕」: "子欲居九夷. 或曰: '陋, 如之何?' 子曰: '君子居之, 何陋之有?'"10) 강요배, 앞의 책: 286쪽.11)『詩經』 「國風․召南․甘棠」: "蔽芾甘棠, 勿翦勿伐, 召伯所芨. 蔽芾甘棠, 勿翦勿敗, 召伯所憩. 蔽芾甘棠, 勿翦勿拜, 召伯所說."12) 강요배, 앞의 책: 182쪽.13) 강요배, 앞의 책: 263쪽.14) 『老子』 25章: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15) 程明道, 『二程遺書』 卷2上: "醫書言手足痿痺為不仁, 此言最善名狀. 仁者, 以天地萬物為一體, 莫非己也. 認得為己, 何所不至? 若不有諸己, 自不與己相干. 如手足不仁, 氣已不貫, 皆不屬己. 故博施濟衆, 乃聖人之功用. ...學者須先識仁. 仁者, 渾然與物同體."16) 黃帝, 『黃帝宅經』 卷上 「凡修宅次第法」: "以形勢為身體, 以泉水為血脈, 以土地為皮肉, 以草木為毛髮."17) 王陽明, 『王陽明全集』 「答聶文蔚」: "夫人者, 天地之心; 天地萬物, 本吾一體者也. 生民之困苦茶毒, 孰非疾痛之切於吾身者乎? 不知吾身之疾痛, 無是非之心者也."18) 高攀龍, 『高子遺書』 卷3 「知天說」: "人莫要於知天, 知天, 則知感應之必然. 今人所謂天, 以為蒼蒼在上者云爾, 不知九天而上, 九地而下, 自吾之皮毛骨髓以及六合內外, 皆天也. 然則吾動一善念而天必知之, 動一不善念而天必知之, 而天又非屑屑焉, 知其善而報之善, 知其不善而報之不善也. 凡感應者, 如形影然, 一善感而善應隨之, 一不善感而不善應隨之, 自感自應也, 夫曰自感自應, 而何以謂之天? 何以謂天必知之也? 曰自感自應, 所以為天也. 所以為其物不貳也. 若曰有感之者, 又有應之者, 是貳之矣. 惟不貳, 所以不爽也. 然則人之為善, 乃自求福, 為不善, 乃自求禍, 故曰: "禍福無不自己求之." 知此, 則為善去惡之意必誠, 惡浄而善純, 人乃天矣."19) 『周易』 「繫辭」 上: "易无思也, 无為也, 寂然不動, 感而遂通天下之故. 非天下之至神, 其孰能與於此."20) 강요배, 앞의 책: 306쪽.21) Johann Wolfgang von Goethe, "An den Mond":     "Rausch, Fluss, das Tal entlang,     Ohne Rast und Ruh',     Rausch, flüstre meinem Sang     Melodien zu!"

 

강요배_장밋빛 하늘 Rosy Sky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81.7&times;227.5cm_2021 (사진_오권준)

천기(天機)의 관조, 나선형적 사유 - 1. 천기(天機)의 감응 ● 『장자』 제2편 「제물론」에는 대지에서 일어나는 바람인 지뢰(地籟)와 사람이 부는 피리소리인 인뢰(人籟)가 모여 우주적 바람인 천뢰(天籟)를 불러일으킨다는 우화가 있다. 이는 고대적인 자연관이자 세계관의 하나로서 우주적 시간의 흐름, 에너지의 팽창이 소용돌이처럼 나선형의 율동으로 움직이는 순환 원리를 상징한다. '바람'이 일어나며 내는 소리는 제각각 다르며, 각 존재가 저마다 저절로 움직여 천기(天機)에 감응한다. ● 강요배의 회화 초기부터 후기까지 전반에 걸쳐서 드러나는 천기(天機)의 감응력은 우주와 사람의 길을 담은 '윤도(輪圖)'에 근거하여 세상의 이치를 해석하는 집안의 정서적 환경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의 창작 원리의 근저에 천기(天機)의 운행을 마음의 움직임으로 살피는 천문적 인식이 자리 잡고 있고, 오랜 관찰과 사유의 결과가 회화 화면에 다양한 시간성의 반영으로 드러난다. 때(時)에 따라 달라지는 달, 바람, 구름, 해의 변화를 민감하게 관찰하고 몸 안의 감관을 통해 포착된 그 심상(心象)을 되새김질하며, 실재의 풍경에서 추출된 기억의 모티프가 상상적 세계로 확장하는 강요배의 회화세계는 구상에서 반추상, 실재와 상상 사이를 가로지르며 나선형적 사고의 회전운동으로 나아간다. ● 1976년 첫 개인전 『각(角)』 이후, 2022년 26번째 개인전을 맞이한 강요배의 개인전이 '첫눈에'라는 타이틀로 초가을의 문을 여는 것은 새로운 계절의 기미, 맨 처음 순진한 마음의 회복을 상기시킨다. 이번 개인전 출품작은 총 30점으로, 나와 우주와의 마주침, 나와 자연과의 대화, 그리고 생태 환경 속에서 포착된 제주섬의 일상의 정경이 적절하게 안배되어 있다. 회화에서 시간성의 탐구를 지속해온 작가의 관심이, 회화 화면의 구성, 재료 사용 방식에서 그 변화를 확연하게 보여주는 작품들이 늘어난 것이 이번 개인전의 특색 중 하나다. 특히 올해 신작인 「월식」(2022)은 태양-지구-달이 일직선을 이루는 때, 지구의 그림자가 달에 비친 현상을 주홍빛으로 표현하여 달과 지구, 어둠 속의 두 존재의 만남의 순간을 세 층위의 색상의 차이로 단순화시켜, 색면추상 그 자체의 심미적 효과와 정서적 환기력을 충족시킨다. 각자의 궤도에 돌고 있다가 우연한 시기에 마음의 마주침으로 인해 서로의 세계로 침잠해들어가는 첫 만남의 마음의 교감을 연상시키는 월식의 장면은 검은색과 주홍색 사이의 벌어진 틈새에 음양이 교착하여 일어날 상황이 흰 여백으로 예비되어 있다. ● 거친 바람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친 이후의 밝아져오는 때를 담은 「구름 속에」(2021), 태풍이 불어닥치기 직전 유난히 붉게 타오르는 아침의 조도(照度)를 표현한 「'장미'의 아침놀」(2021), 밝아오는 햇살의 기운을 가득 품고 있는 「장밋빛 하늘」(2021) 등 강렬한 색조 변화로 천(天)의 흐름이 순환하는 순간을 색채 운동성으로 표현한 색면추상은 아크릴 물감의 수성의 특징을 잘 살린 작가의 기량이 극대화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푸른 하늘에 뜬 달 「정월(正月)」(2022), 「흰 해」(2022), 「비천(飛天)」(2022) 등에서 회화의 붓질은 힘을 덜어내고 회화의 표면 위에 자신이 본 것, 해와 달, 흰 구름 자체의 느낌을 관객에게 직접 가닿게 한다. "최고의 기교는 서툰 것처럼 보인다"는 노자의 말이 적합해 보이는 「비천(飛天)」(2022)은 「천고(天高)」(2017)의 깃털처럼 가벼운 구름보다 한층 자유로이 흩날리는 기운으로, 고구려 벽화의 천장에서 볼 수 있는 상서로운 기운의 문양처럼 기류(氣流)의 스침이 날렵하다.

 

강요배_배나무꽃 Blossoming Pear Tre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7&times;91cm_2022 (사진_양동규)

2. 산수적 경계, 화면 포치의 정면성 ● 강요배의 회화세계에서 자연과의 만남은 대자적(對自的) 풍광을 조망하는 자아와 대상과 대화하는 정물과의 사귐으로 구별될 만큼 율동감 있는 기세(氣勢)의 풍경 화면과 단순하고 소략한 소품 정물로 나뉜다. 한라산 백록담의 분화구를 부감적인 시각으로 담은 「산상(山上)」(2022)은 10여 차례 한라산 정상에 오른 작가의 기억을 되살려 여러 장면을 머릿속에서 재구성한 실재의 환영적 공간이다. 화산 분출로 생긴 거대한 구멍 움부리를 신비스럽게 표현한 「움부리-백록담」(2010)에서는 신화적인 분위기를 강하게 느낄 수 있지만, 「산상(山上)」(2022)의 회화세계에서 백록담은 그 실체가 뚜렷하지 않고 자유롭게 유영하는 광활한 풍광이 펼쳐져 있다. 또한 「대지 아래 산」(2021) 역시 어느 지역을 특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광대한 시점으로 조망한 먼 산의 형체가 비정형적 붓질로 표현되어 있다. 이는 작가가 장소성이 뚜렷한 제주지역의 산을 역사적 장소, 신화적 장소로만 대상화하지 않고, 심미적 대상으로 관조하여 회화의 형식적 실험을 시도한 효과로 보인다. ● 2021년 대구미술관 이인성미술상 수상기념전에서 선보였던 「쳐라 쳐라」(2021), 「'바비'가 온 정원」(2021)에서 회화 화면은 격렬한 기세의 표현이 화면의 역동성을 보여주고, 「홍도 Ⅱ」(2018)는 홍도를 휘감은 붉은 구름으로 지명의 장소성과 자연의 숭고함을 중첩시킨다. 1998년 북한에 방문했을 때 본 금강산 풍경을 세 번째 그린 「중향성(衆香城)」(2019), 「구룡폭(九龍瀑) Ⅲ」(2019)에서는 같은 화제(畫題)를 다시 그리면서 작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금강산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겸재 정선이 그린 「금강전도(金剛山圖)」의 구도로 같은 화제(畫題)의 다른 판본을 시도하며 과거의 자신의 회화에 대한 도전의식을 보여준다. ● 반면, 「풍설매(風雪梅)」(2022), 「눈 속에서」(2022), 「배나무꽃」(2022) 등은 작가의 작업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나무들의 일상적 모습을 관찰하여 대상을 화면 중앙에 포치시켜 대상과 작가, 대상과 관객이 서로 마주보며 대화하듯이 정관적(靜觀的) 구도로 설정하였다. 그런가 하면, 「독조(獨鳥)」(2019), 「새 한 마리」(2019), 「소향(素向)」(2019), 「꽃 두 송이」(2019), 「봄볕」(2022) 등 화조(花鳥), 정물을 다룬 회화에서는 마치 팔대산인(八大山人)의 화면처럼 과감한 생략, 대상의 정면 포치를 통해 여백과 공간구성에서 현대 문인화적 분위기가 회화 전면에 감돈다.

3. 매체특정적 색채표현 ● 강요배는 초기 유화, 펜화, 삽화를 제외하고 다수의 작품을 아크릴화로 제작해왔다. 마음의 무늬, 즉 심상(心象)을 추상화하려는 작가에게 일필휘지의 수묵화가 더 어울릴 듯싶지만, 아크릴을 애용한다. 이는 작가의 창작 태도, 기질적인 성향과 연관이 깊어 보인다. 작가는 오전에는 인문학, 자연과학 등 여러 분야의 책을 읽고 실제 작업은 하루 3-4시간 몰두하는데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이 몰입되는 순간에 단박에 그리고, 또 수정하며 작업의 결과를 확인한다. 물의 농도를 조절하며 색감의 변화를 다루는 기술적 방법론을 다양하게 터득한 작가는 자신의 성향에 잘 맞는 매체특정적 색채표현, 표면의 질감 처리로 수묵화 같은 아크릴화 효과를 내는 데 성공하여 강요배의 아크릴화의 특장점을 차별화하고 있다. 이러한 매체의 단조로움에 변화를 가져온 것이 접은 종이 붓이나 말린 칡뿌리, 빗자루 등 보조도구인데, 작가는 화면의 질감, 결을 다듬을 때 주로 사용한다. ● 강요배의 회화세계를 표현할 때 서양화 재료로 동양화적인 요소를 가미한 작품을 그리는 작가로 말하기에는 다 수렴되지 않는 지점이 있다. 동양화와 서양화, 전통적인 문인화와 현대미술, 추상과 반추상, 구상과 비구상 몇 개의 키워드로 압축시켜도 설명되기 어렵다. ● 우주적인 기류의 변화를 색면의 변화, 색감의 차이로 치환하여 색채 운동감을 부각시킨 색면추상은 강요배의 회화세계를 민중미술의 서정적 정서나 제주 지역미술의 풍토성을 반영하는 대표 화가의 타이틀에 포획시켜온 관성적 평가에서 나아가, 통시적 현대미술의 또 다른 경향으로 바라보게 한다. 강요배의 회화적 실험은 나선형적 사유 회로에 따라 유동적으로 움직이며, 동양화와 서양화의 장르적 분류를 벗어나 미술에서 '그리기'라는 가장 오래된 고대적이고 원시적인 표현방식의 형식적 실험이 2020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현재적 응답으로 보인다. ● 첫눈에, 첫 마음에 무엇이 낚일 것인가? 바람이 내는 소리를 듣는다. ■ 김정복

 

강요배_독조 獨鳥 Lone Bir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times;117cm_2019 (사진_오권준)

Discussion on the Origin of Humanity (原人) and Origin of the Way (原道): Inquiring about Humanness and the Right Way of Existence - The Artistic World of Kang Yo Bae - 1. Introduction: Nature and history ● In his most important book, Critique of Taste, Italian philosopher Galvano Della Volpe (1895-1968) quoted 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who "declared that 'the highest lyric is decidedly historical,' and that if for instance you tried 'to separate the mythological and historical elements from Pindar's Odes,' you would find that 'you had cut away their inner life altogether.'" 1) As such, Della Volpe said the inherent nature of poetry is historical and cannot escape the control of space-time. For instance, the tragic pathos created by Sophocles (c. 497/6-406/5 B.C.) cannot free itself from the material conditions or ideology to which Sophocles was exposed, and hence, criticism should be based on historical backdrop. Della Volpe also argued, based on his analysis of 200 years of poetic language, that critical and aesthetic concepts, defined in Immanuel Kant's day (1724-1804) and the romantic period, should be replaced with historical and social concepts: Romantic poets did not pursue fantasy because they transcended reality, but there were certainly historical conditions that confined them to fantasy. According to Della Volpe, only correct diagnosis and interpretation of historical conditions of the times can open a channel to understanding a poet. And this channel also works in the world of painting. In this regard, we should be reminded once more of the famous declaration by Heinrich Wölfflin (1864-1945): ● "Every artist finds certain preexisting 'optical' possibilities, to which he is bound. Not everything is possible at all times. Seeing as such has its own history, and uncovering these 'optical strata' has to be considered the most elementary task of art history." 2) ● Della Volpe, the Italian philosopher, and Wölfflin, the Swiss-born art historian, were contemporaries and offer the same viewpoint, as if they had been the same person. The former's historical conditions and the latter's optical possibilities both confine artists in a certain sphere, which is a way to view the world. More focus should be paid to the statement, "Not everything is possible at all times," which means the way one sees the world is confined by the times in which one lives. This is a premise that needs to be respected whenever we consider the work of any artist. ● And now we encounter Kang Yo Bae (1952-), the most important artist of our times. The general recognition of Kang is the artist for Jeju and of the April 3 Uprising. We still see him as an activist artist who worked against disinformed historical perceptions and social irregularities throughout the 1980s and 1990s. In fact, the historical and social descriptions of the outside (secular) world were found in his paintings only until the 1980s, after which his work has focused on natural landscapes. The following quote helps us understand his artistic world: ● "(The artist is) known for his works that portray on canvas Jeju Island's historical experiences and natural beauty. He looks at the natural landscape not as a mere collection of objects, but as a subject that represents the emotional changes of another subject (the artist)." 3) ● In this article, the uncredited author explains that the world created by Kang depicts Jeju's historical experiences and natural beauty, and the objects of depiction are dealt with as subjects rather than as objects. We know this to be yijing (意境), which the dictionary defines as meanings or forms created when the author's subjective feelings and thoughts meet and combine with persons, things or events in an objective context. Kang's world of painting is characterized by yijing. For instance, Jeju's Hallasan Mountain and Junghyangseong in the Inner Geumgangsan area in Kang's paintings are not just beautiful mountains to be admired as objects. They have spiritual existences that nurture our mind and embrace us at the southern and northern end, respectively, of the Korean peninsula. We do not live simply to exist but in the belief that we live in the right way. This belief becomes truth and that truth makes our lives bearable. It also reveals itself through history. Hallasan and Geumgangsan are the eyes of that history, bolstering our belief when it is shaken and witnessing every person who has lived on the peninsula throughout history. Mountains predate mankind and outlive us. To the artist, they embody nature itself, as it is naturally. The two mountains as rendered by Kang are the underlying force that allows us to exist, the mirror that rejuvenates our minds and bodies, and the face to the earth upon which we stand. We belong to this earth and cannot live apart from it. Kang expresses the philosophy of the earth with the force of powerful strokes. He explains this power as arising out of the philosophy of the earth as follows: ● "The stroke and speed are critical in painting. Painting doesn't seem to go well for me if the lines are not drawn in a way that makes a "swoosh" sound. There should be speed and lines should be with vectors and dynamics. What's certain is that such lines can be drawn only after having observed, been in touch with, and lived amidst nature. Such strokes cannot come from manmade things like digital images and photographs. This makes a huge difference." 4) ● Mountains and landscapes painted by Kang correspond to nature as it is of itself. When separated from nature, man "exists" outside it (ex-sist). Existence of this sort is artificiality and culture. Western landscape paintings externalize objects and the artist is separated from the object. In contrast, Kang becomes one with the object of nature. His paintings are that of yijing which can be painted only after "having been in touch with and lived amidst nature." The origin of yijing is a correct historical understanding and infinite love of his native soil. On the boundary where nature (space), history (time) and the self (subject) integrate, strokes and speed soar together with vectors and dynamically. To point out again, the artist deals with nature "not as a mere collection of objects, but as a subject that represents the emotional changes of another subject."

2. Hyper-chaos and a solid foundation ● Let us give one more thought to Wölfflin's statement: "Not everything is possible at all times. Seeing as such has its own history." This is reminiscent of "existential determination of thought (Seinsverbundenheit des Wissens)," the most important thesis of Hungarian-born sociologist Karl Manheim (1893-1947). This suggests that thought (art) cannot escape the foundation to which one's body belongs. To properly see the greatness of Kang Yo Bae, we need first understand the determination of space-time that rules over the artist. ● As we all know, Kang used to be an activist artist who was active in social issues. The boundary he has pursued throughout his life is a tight balance between substance and form. Substance refers to a way of viewing the world, namely, a worldview, while form refers to an adventure in a novel viewpoint no one else has shown. No artist runs a 100-meter sprint: Rather, they jump over hurdles as painting involves restrictions and obstacles. They must avoid every form existing in art history and present images never seen before. When this image becomes a new form, its creator is only then given the title of "artist." ● South Korean art circles in the 1980s, when Kang was still young, were largely divided into those that followed after modernist and realist painting styles. The problem was that the two wheels that drove the Korean art world originated from the West. Moreover, modernist painting advocates purism, excluding everything belonging to the outside world like problems people face and political issues. Even more, shapes have to be omitted or simplified. Purism amounts to exclusionism. It argues that painting should not feature sculptural elements and vice versa. Purism also alludes to essentialism. Theorists who tout the modernist style contend that the essence and philosophical truth of painting lies in flatness. ● This line of thought rejects realist painting for its obscuring of the essence of painting and blemishing its purity. On the other hand, realism applauds the oneness of painting and life. At the time, this was the most earnest philosophical request: That realists should dedicate themselves to painting to improve life and not turn their back on reality for the sake of purism. During this confusing time, Kang devoted himself to practicing the philosophy of realism. He based the first principle of his own philosophy on the fact that there is an abyss that cannot be crossed between the purist philosophy of modernist painting and the philosophy of life in realism. We can find that principle in his essay "Success and Failure of Art": ● "The artistic ideology upheld by "high-end" art is purism. Purity mostly has a positive ring to it in all aspects of life. In purist art, it denotes "autonomy of art," which is also good. This means that art should be artistic. Then what is artistic art? This signifies that the inherent mission of art resides in building a humane life, a meaningful life. Art does not involve looking away from real life and repeating meaningless acts. Autonomy of art refers to keeping the human quality of freedom. Further, art should not collude with anything in granting life the highest value. This requires believing in the value and power of art and that power not being repressed by forces that distort life." 5) ● Art that advocates purism and autonomy is art for the sake of art alone. Kang is wary of any art that does not enhance the value of life. He sees that only art that nurtures "humane and meaningful life" is genuine. Nevertheless, even when art nurtures a humane life, it is not always meaningful or great. At this point, we need to recall the great thesis of Kant: "Thoughts without content are empty, intuitions without concepts are blind." 6) Modernist painting lacks the content of life while realism fails to accumulate concepts. Kang has ceaselessly striven to achieve an ever-lasting balance between the weight of life and concept, developing his landscape of a new form—an arena where power and speed surge together with vectors and dynamically. The shortcut to understanding the essence of Kang's paintings is to look into the source of power and speed. ● I think the art phenomenon in South Korea is what is left after devastation during extreme chaos—it is a scene of hyper-chaos. Almost every artist is oblivious to the essence and duty of art and wears a coat fashioned by Western society. This coat does not fit us, and more, we shrink under its weight. To the eyes of we Koreans, Hallasan is greater than Jungfrau and our tongues prefer gochujang (traditional red pepper paste) to chili sauce. This applies to painting, too: Korean DNA prefers paintings by Korean painters. At the same time, this preference is intrinsically inevitable and can therefore be more than individual tendency and gain universal recognition. This is where Kang's philosophy of art is rooted. Inner inevitability derives from none other than affection for and faith in people. Conversely, other artists place their roots in foreign soil—in other words, they borrow the worldview of others.7) But others' worldview is not ours. Seeing the world only through the eyes of others results in extreme chaos. Moreover, it hollows out affection for and faith in people, and reverence for nature. This is reason for despair. Concerned about this, Kang early on described his world in seven words (in Korean), encouraging his relatives and colleagues: ● "If you are warm-hearted and friendly, you will become a center of everywhere." 8) ● Kang's philosophy can be summarized as buwang (不忘: "never forgetting") and exhibits itself through wubujing (毋不敬: "never be in any moment without reverence"). The former is a philosophical view of time (history) while the latter pertains to reverence for every connection one makes here and now. When these two ideas are internalized, a state of equilibrium can be maintained in one's inscape. When these two ideas are practiced in society, the community, which includes oneself, becomes the center of society. This is the philosophy Kang has upheld all his life and the foundation upon which he practices his art. Surprisingly, the core of Kang's philosophy is as if spoken by the author of a passage from the "Zihan" chapter of the Analects: ● "The Master wanted to settle among the Nine Wild Tribes of the East. When someone said, "Perhaps it will be hard to tolerate their lack of refinement," the Master responded, "If a true gentleman were to settle among them, there would soon be no worries about lack of refinement."" 9) ● I believe Jeju to be among the "Nine Wild Tribes of the East" and a "true gentleman" to refer not to someone from a specific class of society but to those who internalize and practice buwang and wubujing. Kang's philosophy on life is expressed in all sorts of artistic themes. To him, painting is more than an aesthetic object: It is a vessel in which to place and display the spirit of his philosophy. As such, the artist provides another surprising statement: ● "If art is something like a gigantic structure built only upon the basis of the immense power of money, it will crumble down the moment the basis is gone. When it is like a tree that takes root and grows in the minds of people, it will not easily be killed and disappear." 10) ● "A gigantic structure built only upon the basis of the immense power of money" and "a tree that takes root and grows in the minds of people" together create a starkly-contrasting metaphor. The former relates to a world of hyper-chaos and the latter to the foundation of an ardent belief. When the time given in the former case is 100 years, the latter case makes up 10,000 years or an eternity. The reason Kang has sought so much after the beautiful boundary is to represent on canvas buwang for time (history) and wubujing as space (society). We can find the origin of this art in a poem from 3,000 years ago: "Gangtang (甘棠: Sweet Pear Tree)" featured in the Book of Songs: ● "O leafy tree of sweet pear! Don't clip or cut it down, for once our Duke lodged there. O leafy tree of sweet pear! Don't clip it or break a twig of it, for once our Duke rested there. O Leafy tree of sweet pear! Don't clip it or bend a twig of it, for once our Duke spoke there." 11) ● The duke in the poem is Shi, Duke Kang of Shao (?-?), a younger brother of King Wu (?-1043 B.C.), the founding king of Zhou. To the people, he is the target of everlasting remembrance (buwang) for he always treated them with reverence (wubujing) and truly cared for them as he governed. The shade of the sweet pear tree where he rested is naturally elevated to an object of buwang by later generations. The tree is not objectified: Instead it becomes something that induces changes in the minds of the people. This is exactly the same as Kang's attitude toward nature: ● "Baengnokdam, a crater lake that sits on top of Hallasan Mountain, visited at dawn on January 1st, looked grand with strong winds seemingly rising up from the deep water, making it difficult to keep the eyes open. Overwhelmed by that grandeur, all of us bowed deeply in the direction from where the winds were coming." 12)

3. The self is one with all people (天下一身論) ● Kang Yo Bae climbed Hallasan and saw the lake at its top in the early hours of the morning on January 1st of an unknown year. The blast of wind rising up from the deep water is a phenomenon that cannot be explained scientifically or objectively. In fact, it is not a simple phenomenon: It is a mysterious communion with nature and a common experience for the entire group. Such communion is not given to just anyone: One who believes they exist separately from nature as subject and object is not privy to such an experience. It is received only by those who believe they are part of nature. This communion arises out of the belief that the self is one with Heaven and Earth (天地一身) and develops into a belief that the self is one with all people (天下一身). The belief in Heaven and Earth (the universe) finally transforms into an optimistic trust in man, or ren (仁). Kang pursues this ren, or benevolence, and inquires about and paints the true meaning of humanness. ● "The path to communication lies through the process of developing a positive view of man. Despite the fictional world of delivery and oppressive systems, one should discover, reveal, and share (with others) the upright aspects of life and humanity that occur vibrantly everywhere people live their lives. People who lead their lives in a healthy way are everywhere. Life is always about today. Man has the power to be benevolent. This is where humanness resides." 13) ● Art blooms in the perpetual process of trying to understand humanness. This is a way of thought conceived in East Asia. Avant-garde art is mostly characterized as defiant, coarse, suggestive, and splendid. East Asian art has a longer history of such unconventionality than Western art but has refrained from it for its distance from the true human character. The utmost cause in East Asian thought is reversion to nature. The epitome of this is the philosophy of Laozi (?-?). He said, "Man models himself on Earth, Earth on Heaven, Heaven on the Way (dao 道), and the Way on that which is naturally so." 14) Man should truly follow the laws of Earth as he cannot exist without Earth. Earth should follow the laws of Heaven as Heaven is its origin. Heaven should follow the Way, namely, the laws of the universe. And the universe should follow itself as it is because the law by which it operates is natural. In other words, man is Earth, Earth is Heaven, Heaven is the Way, and the Way is natural: Man, Earth, Heaven, and the Way are the same. Life should be natural and that is true freedom. This is the world to which Kang aspires. ● The perception that man and nature are originally one has been maintained in East Asia since ancient times. The relationship between man and nature (天人之際) is concretized as that between people (as represented by rituals, music, punishment, and governance (禮樂刑政), the four requirements to educate the people). Cultivation of man by nature (the universe) is referred to as ren (仁) or benevolence. The nature of all men is originally good and inherently benevolent. Accordingly, the self, others, and nature are connected as one through ren. In this regard, Chinese philosopher Cheng Hao (also known as Cheng Mingdao, 1032-1085) offered an explanation through the analogical relationship between the limbs of our body and the universe: ● "Medical books describe numbness in the hands and feet as "unfeeling" (不仁 buren): This is the best possible explanation. According to ren (仁), Heaven and Earth and all things are regarded as one, so that there is nothing that does not relate to the self. As such, there is nothing one will not do for them. If they do not belong to the self, one does not care, just as when the hands and feet are unfeeling, the qi energy does not channel through them and they no longer belong to the self. All sages do a kindness to and save many people. (...) A student must first understand ren, which means becoming one with all things without discrimination." 15) ● The origin of Cheng's philosophy dates all the way back to Zhaijing, believed to have been written by the Yellow Emperor or Huangdi (?-?), a legendary Chinese sovereign from ancient times. He taught, "Consider the topography (of nature) as one's body, the springs of water flowing through the earth as one's blood vessels, the earth as one's skin and flesh, and the plants and trees as one's hair." 16) This mindset treats Earth and Heaven, the self and others as one and has been passed on to this day for posterity. As one example, this teaching laid the foundation for the "primary knowledge" (liangzhi 良知) notion of Chinese philosopher Wang Yangming (1472-1528): ● "Man is the mind of Heaven and Earth. Heaven and Earth and all things are originally one body with me. Is there any hardship or suffering of the people that does not pain me? One who is ignorant of the pain one's body suffers is one unable to discern right and wrong." 17) ● The consciousness of Heaven and Earth that gives birth to man and all things (天地生物之心) is called ren (仁). In East Asian thought, the law by which the universe operates is ren. Ren is inherent also in our minds, where Heaven is hidden. Seeking this Heaven in the mind is the path of art Kang has long trod and the key to his life. One's body is not an independent phenomenon, separate in existence from nature, but a fantastic entity (大身) that moves in sync with nature, others, the past, and the future. ● The vigorously surging cloud and mist, featured in his painting On the Mountain, represent the spirit man must have. The fragrance invisibly rising from Late Plum Blossom denotes the mind of Heaven and Earth giving birth to and nurturing all things. The movement in Lone Bird reveals the truth of the world in a way it naturally is without discrimination. Plum Blossom in Snowstorm dramatizes beauty despite hardship and shows the way man should follow. Rosy Sky features the sky as the voice of Heaven speaking, rather than simply a beautiful space. Garden During Typhoon "Bavi" depicts a ravaged garden, symbolizing the entanglement of space-time and connection, also the cycle of birth and death. As such, everything Kang has painted features the consciousness of Heaven. This is essentially the same as what philosopher Gao Panlong (1562-1626) of the late Ming Dynasty said: ● "Nothing is more required of man than to understand Heaven, and to this end, ganying (感應) or correlative resonance, is a prerequisite. By Heaven, people nowadays only point up to the wide blue sky. In truth, from the nine layers of sky and the nine layers of earth, my skin, hair, bones and marrow to the entire universe, there is nothing that is not Heaven. Therefore, Heaven never fails to know every good intention I have, and every evil intention I have cannot be hidden from it. Also, Heaven is not foolish and never fails to respond to the good and evil it sees. Ganying is likened to the relationship between a shape and its shadow. When good is sensed, good is returned, and when evil is sensed, evil is returned. Why is it said that zigan ziying (自感自應) amounts to Heaven? Why is it said that Heaven always knows? Because zigan ziying is Heaven itself and is not separate from anything or any event. If one subject senses, and another responds, then they are two separate entities. Only as they are inseparable, there is no error (on the part of Heaven in every matter). Consequently, doing a good deed is doing good to oneself and doing evil is harming oneself. Hence the saying: "Fortune and misfortune come from no place other than the self. If one knows this, one cannot help but be serious when considering doing good or evil. Then evil will be purged and good become perfect. One who reaches this level is regarded as Heaven." 18)

4. Conclusion: Painting that understands Heaven ● Everything I sense and think about (自感) is immediately known to Heaven (自應). As one becomes very serious when considering doing good or evil, one's innate good will be revealed and evil purged. One who reaches this stage is Heaven itself (人乃天). This is a reinterpretation of a passage from the "Xici" commentary in the Book of Changes believed to have been written by Confucius (551-479 B.C.): "'Yi (易)' is without thought, without action. It is static and doesn't move. It eventually gains access to the truth of the world by sensing. If not for the most divine thing on earth, how could anyone participate in such a process?" 19) For his part, Kang Yo Bae envisioned his own philosophy out of the long-standing history of East Asian thought and founded his art upon it. The depth of his thought is revealed in the following passage: ● "We must find our way to Heaven through nature or the mind of Heaven. The place where certain good things inherent in man are gathered must be Heaven and this resides deep in the human mind. Heaven is deep in all things and all men: This is where man must reach for. I believe all men, including artists, must strive for Heaven. The moment of arrival at this Heaven is when one can attain universality. One's mind can be put at ease and feel natural through introspection. (...) People are moved by a painting because they hear the melody of Heaven naturally within them upon seeing it. I regard painting highly in this respect. I dream of each and every man, who is one solitary individual in the universe, painting the patterns of the mind in a natural and restful way." 20) ● Legends handed down in villages are not simple stories. They imply evaluation of community histories, ways of viewing the world, and sentiments and adages of those who lived in the community in the past. Legends encourage development of an imaginary world during early childhood. This imaginary world does not fade away even when reality catches up over the years, and even manages to intervene in life's reality. This is because it influences the direction of our eyes in looking at the world and its situations. The horror story of the April 3 Uprising does not fit the beautiful scenery of Jeju. It must have left a great mental wound on Kang, whose nature is beautiful and sensitive and whose mind is sound. ● As explained above, the artist began by painting history and the reality of it. To him, painting is more than an art form: It is a window of communication with the world, history, and mankind, and an assembling of what he has learned about the world. His world has transformed through an arduous journey. He has come to understand the voice of man, then that of Earth, and eventually that of Heaven. "Gaining access to the truth of the world by sensing (感而遂通)" must pertain to the voice of Heaven and Heaven must want "each and every man, who is one solitary individual in the universe, to paint the patterns of the mind in a natural and restful way." When viewing Kang's work in this light, we should be able to immediately arrive at the true character of the world as seen by the artist. His landscapes show our history as well as the mind of Heaven. We should be able to confirm in reality the truth we see in his paintings and share and contribute to that truth through our lives (人能弘道). This is the artist's philosophy and what he wishes to present in his works. ● Goethe sang: "River! (You) flow through the valley without ceasing. You talk to my silent story. (You are) whispering melodies." 21) The speaker in this poem is inspired by the sound of the river flowing and composes a melody full of meaning. Nature and the speaker soon move up to a level where they become one through music. Nearly every one of Kang's paintings integrates nature and the artist as one and embodies the meaning of space-time and connection, man and the Way. ■ Jinmyung Lee

* footnote1) Galvano Della Volpe, (trans.) Michael Caesar, Critique of Taste (London: New Left Books, 1979), p. 25.2) Heinrich Wölfflin, Principles of Art History: The Problem of the Development of Style in Early Modern Art (Los Angeles: The Getty Research Institute, 2015), p. 93.3) Entry on Kang Yo Bae, "Doopedia" (Doosan Encyclopedia, 2014, author unknown).4) Kang Yo Bae, Depth of the Landscape (Dolbegae: Paju, 2020): p. 52.5) Kang Yo Bae, "Success and Failure of Art," Depth of the Landscape (Dolbegae: Paju, 2020): pp. 255-256.6) Frederick Copleston, A History of Philosophy: Wolff to Kant Vol. 6 (Burns & Oates: Wellwood, 1999), p. 247.7) Seen from my experience, such terms imported from France as nomad, rhizome, symbolic, eroticism, and speculative realism suit the Korean reality less often than they fail to do so.8) Kang Yo Bae, Depth of the Landscape (Dolbegae: Paju, 2020): p. 66.9) "Zihan (子罕)," Analects (論語): "子欲居九夷. 或曰: '陋, 如之何?' 子曰: '君子居之, 何陋之有?'"10) Kang Yo Bae, Depth of the Landscape (Dolbegae: Paju, 2020): p. 286.11) "Gangtang (甘棠)," "Odes of Shao and the South (召南)" chapter, "Lessons from the States (國風)" section, Book of Songs (詩經): "蔽芾甘棠, 勿翦勿伐, 召伯所茇. 蔽芾甘棠, 勿翦勿敗, 召伯所憩. 蔽芾甘棠, 勿翦勿拜, 召伯所說."12) Kang Yo Bae, Depth of the Landscape (Dolbegae: Paju, 2020): p. 182.13) Ibid., p. 263.14) Chapter 25, Laozi (老子):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15) Cheng Hao (程顥), Surviving Works of the Two Cheng Brothers (二程遺書) Vol. 2, Part 1: "醫書言手足痿痺為不仁, 此言最善名狀. 仁者, 以天地萬物為一體, 莫非己也. 認得為己, 何所不至? 若不有諸己, 自不與己相干. 如手足不仁, 氣已不貫, 皆不屬己. 故博施濟衆, 乃聖人之功用. ...學者須先識仁. 仁者, 渾然與物同體."16) Yellow Emperor (黃帝), "Secondary Method of Site Repairing (凡修宅次第法)," Huangdi Zhaijing (黃帝宅經) Vol. 1: "以形勢為身體, 以泉水為血脈, 以土地為皮肉, 以草木為毛髮."17) Wang Yangming (王陽明), "答聶文蔚," Complete Works of Wang Yangming (王陽明全集): "夫人者, 天地之心; 天地萬物, 本吾一體者也. 生民之困苦荼毒, 孰非疾痛之切於吾身者乎? 不知吾身之疾痛, 無是非之心者也."18 ) Gao Panlong (高攀龍), "知天說" section, Surviving Works of Master Gao (高子遺書) Vol. 3: "人莫要於知天, 知天, 則知感應之必然. 今人所謂天, 以為蒼蒼在上者云爾, 不知九天而上, 九地而下, 自吾之皮毛骨髓以及六合內外, 皆天也. 然則吾動一善念而天必知之, 動一不善念而天必知之, 而天又非屑屑焉, 知其善而報之善, 知其不善而報之不善也. 凡感應者, 如形影然, 一善感而善應隨之, 一不善感而不善應隨之, 自感自應也, 夫曰自感自應, 而何以謂之天? 何以謂天必知之也? 曰自感自應, 所以為天也. 所以為其物不貳也. 若曰有感之者, 又有應之者, 是貳之矣. 惟不貳, 所以不爽也. 然則人之為善, 乃自求福, 為不善, 乃自求禍, 故曰: "禍福無不自已求之." 知此, 則為善去惡之意必誠, 惡浄而善純, 人乃天矣."19 ) Part 1, "Xici (繫辭)," Book of Changes (周易): "易无思也, 无為也, 寂然不動, 感而遂通天下之故. 非天下之至神, 其孰能與於此."20 ) Kang Yo Bae, Depth of the Landscape (Dolbegae: Paju, 2020): p. 306.21) An den Mond (To the Moon), a poem by Goethe:     "Rausch, Fluss, das Tal entlang,     Ohne Rast und Ruh',     Rausch, flüstre meinem Sang     Melodien zu!"

Observation of the Heavenly Mechanism and a Vortex of Thought - 1. Resonance with the heavenly mechanism ● "Equality of Things" (Qiwulun 齊物論), the 2nd chapter of Chuang-tzu, features an allegory where the wind from Earth (dilai 地籟) comes together with the sound of the flute played by mankind (renlai 人籟), creating cosmic music (tianlai 天籟). This is one of the ancient views of nature and of the world and symbolizes a cycle where the flow of time and expansion of energy in the universe move in a whirlpool-like vortex. Winds rise, making different sounds, and each existence moves on its own to resonate with the heavenly mechanism (tianji 天機). ● Resonance with the heavenly mechanism, apparent in Kang Yo Bae's paintings since the early days, is closely related to the emotional environment of his family, who interpreted the world through a geomantic compass of information on the ways of the universe and man. On the foundation of his artistic process lies the thinking of an astronomer, who looks at the operation of the heavenly mechanism through the eye of the mind. The results of lengthy observation and contemplation are revealed as various temporalities on canvas. Kang carefully observes even the slightest changes occurring with the moon, the wind, clouds, and the sun over time, ponders on their mental imagery captured through the body's senses, and develops motifs of the memory extracted from actual scenery into an imaginary world. His world of art crosses between figurative and semi-abstract, reality and imagination, carrying out a rotary motion of vortex thinking. ● With his first solo show, Angle, in 1976, Kang's solo show in early autumn 2022 is his 26th. Entitled At First Sight, it ushers in the new season and reminds us of the restoration of a mind back to its innocent beginnings. The show presents a total of 30 works somewhat evenly divided into the three themes of an encounter between one and the universe, a dialogue between one and nature, and daily scenes to be viewed in the natural environment on Jeju Island. One thing that sets this show apart is that Kang, who has shown constant interest in temporality, presents a larger number of works where change is clear in terms of composition and in how the materials were used. For instance, the orange Lunar Eclipse (2022) is a painting of the shadow of the earth cast on the moon, when the sun, the earth, and the moon align in a straight line. The meeting of the moon and the earth, two entities in the dark, is simplified as three different layers of color to create the aesthetic effect of color field abstraction itself and to evoke the emotions. The scene of an eclipse suggests a communion of feelings at the first encounter between two entities, each moving in their own orbits, meeting each other at a timing that is unexpected, and beginning to permeate the world of the other. The gap between the black and the orange remains as a white blank to prepare for what will happen in the future with the mixing of yin and yang. ● The color field paintings in this show include In the Clouds (2021), which depicts the sky brightening after a gale has swept through; Morning Glow of Typhoon "Jangmi" (2021), representing the exceptionally burning red illuminance of the morning just before a typhoon hits; and Rosy Sky (2021), which is filled with the energy of a brightening sun. Together, they represent moments when the energies of Heaven circulate, with a feeling of motion in the paintings achieved through the juxtaposition of intense colors. Here the artist masterfully put to use the water soluble nature of acrylic paint. On the other hand, in paintings like First Month of Lunar Year (2022), White Sun (2022), and Flying in the Sky (2022), Kang is more relaxed in his strokes and conveys what he saw and felt about the sun, the moon, and the white clouds that he painted on canvas to the viewers to the viewer through the picture screen. In Flying in the Sky, which seems an example of Laozi's saying, "Great skillfulness seems clumsy," the white forms drift much more freely than the featherlike clouds in The Sky Is High (2017)Pl. 1. The air currents flash across as deftly as the auspicious patterns seen on the ceiling of an ancient Goguryeo tomb.

2. Boundaries as seen in landscape painting and frontal placing of objects ● Encounters with nature in Kang Yo Bae's paintings are depicted either as landscapes with rhythmic force (featuring the self-viewing nature existing on its own) or as small, simple, still life paintings (dialogues with an object). On the Mountain (2022) portrays the Baengnokdam crater on top of Hallasan Mountain from the air, and is an illusionary rendering of the actual place Kang reenacted from different scenes in his memory of having climbed to the top at least ten times. While Umburi - Baengnokdam (2010)Pl. 2, a mystical representation of the gigantic hole from a volcanic eruption, is shrouded in a mythical atmosphere, the same crater in On the Mountain looks vague and instead a vast scene unfurls and spreads out freely. In Mountain under the Land (2021) as well, the mass of a distant mountain set in a broad view and without the need to specify the location, is expressed with less defined brushstrokes. It seems that the artist did not objectify mountains in Jeju as historical or legendary locations with a strong sense of place, instead choosing to paint them as aesthetic subjects while experimenting with a different form of painting. ● In Strike Strike (2021) and Garden During Typhoon "Bavi" (2021), presented during the 21st Lee In Sung Art Prize Recipient Exhibition at the Daegu Art Museum in 2021, savage forces electrify the canvas. In Hongdo Ⅱ (2018), the red clouds that engulf Hongdo ("Red Island") emphasize both the sense of place and the sublimity of nature. Junghyangseong (2019) and Kuryongpok III (2019) are third renderings of the same motifs since his 1998 visit to Geumgangsan Mountain in North Korea. These demonstrate Kang's willingness to take on challenges even with his own paintings, recalling his memories of the mountain and painting different versions. His Junghyangseong takes after the composition shown in Jeong Seon's General View of Geumgangsan from 1734. ● Meanwhile, Plum Blossom in Snowstorm (2022), In the Snow (2022), Blossoming Pear Tree (2022), and other works—all from Kang's daily observation of trees near his atelier—feature objects in the center of the canvas to complete a work that is contemplative in nature, where the artist and the object, or the viewer and the object, face each other and engage in communication. Paintings which depict birds, flowers or fruit like Lone Bird (2019), A Bird (2019), To the White (2019), Two Flowers (2019), and Spring Sunshine (2022) are highlighted by an atmosphere of a modern literati painting with its blanks and composition. Objects are frontally placed and the scenes include bold omissions as seen in works by Chinese painter Bada Shanren (c. 1626 - 1705).

3. Color representations peculiar to the medium ● Besides some oil paintings, pen-and-ink sketches, and illustrations from the early stages of his career, Kang Yo Bae has mainly painted with acrylic. It seems that ink wash painting, dashed off with quick strokes, better suits an artist striving to render mental imagery in an abstract way. Despite this assumption, Kang prefers acrylic painting, which appears to be deeply rooted in his perspective on the creative process and personal tendency. On most days, Kang reads in the morning on a variety of fields, such as the humanities and natural sciences, and spends only three to four hours in painting, during which he creates quickly while fully engrossed in thought or feeling, making the necessary corrections later. Well-versed in various techniques to obtain the desired colors by adjusting water concentration in his paint, he paints with acrylic as if making an ink wash painting, using color representation and texture treatment on the surface peculiar to the medium that suits his tendencies. This is what makes his acrylic paintings unique. He also uses folded paper brushes, dried kudzu roots, brooms, and such as auxiliary tools to enhance the feel of the canvas and add variety to the otherwise monotony of the medium. ● The description of Kang Yo Bae as an artist who creates paintings using Western painting materials and adding Oriental painting elements does not fully explain his art. Terms like Oriental and Western painting, traditional literati painting and modern painting, abstract and semi-abstract, figurative and non-figurative are also insufficient. ● Kang's color field painting represents the changes in cosmic energy flows with the transition of fields of color and different impressions of it to emphasize a sense of motion. It allows us to regard Kang's practice not only as an outcome of Minjung Art's lyrical sentiments or the local characteristics of Jeju regional art, which is the established view confining him, but also as another diachronic trend in contemporary art. His challenging practice in painting moves fluidly along the circuits of vortex thinking. The picture screen invalidates the genre distinction between Oriental and Western paintings and reveals that the act of "painting"—the most ancient and primal method of expression, is still valid in the era of the 2020s. ● What will be caught "at first sight" and by an "innocent mind from the beginning"? I hear the sound of the wind. ■ Jeongbok Kim

 

Vol.20220826a | 강요배展 / KANGYOBAE / 姜堯培 / painting

웃는매화

 

성태훈展 / SEONGTAEHUN / 成泰訓 / painting 

2022_0325 ▶ 2022_0410

 

성태훈_웃는매화_한지에 수묵아크릴채색_38.5&times;53cm_202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한벽원미술관

HANBYEOKWON ART MUSEUM

서울 종로구 삼청로 83(팔판동 35-1번지)

Tel. +82.(0)2.732.3777

www.iwoljeon.org

 

성태훈의 회화: 상실된 꿈과 인간화 과정 ● 성태훈(成泰訓, 1968-) 작가는 역사와 사회를 그렸다. 단순히 역사의 사건을 화면에 재현한 것이 아니라, 특정 시간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했다. 급기야 인간의 역사는 무엇인지 묻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고 인간의 의미를 묻기 시작했다. 작가는 미술대학교에서 붓을 들고 지면과 마주치는 사건으로는 인간의 의미를 알 수 없다고 생각하여 철학을 배웠다. 『예기(禮記)』를 보아 인간의 제도를 보고, 사서(四書)를 보아 인간의 마음을 보고, 『사기(史記)』를 보아 인간의 사건을 통찰했다. 작가는 인간의 길이란 정기성(情其性)에서 성기정(性其情)으로 가는 부단한 노력이라는 것을 알았다. 정기성은 내가 살면서 배운 욕망으로서의 습(習)이 선(善)으로서의 본성을 처참하게 누른 것을 말한다. 반대로 성기정은 선한 본성이 회복되어 욕망의 정을 아주 여유 있게 극복한 것을 말한다. 인간의 길을 우리는 흔히 도리[道]라고 부른다. 도리는 선한 본성의 회복에 있다. 내가 선한 본성을 회복하면 그다음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작게는 가사(家事)를 가지런하게 하고 더 나아가 공동체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 공동체의 생명력 넘치는 활기는 국가에 혈류를 돌게 하고 나아가 천하(세계)를 기쁘게 한다. 여민동락(與民同樂)의 꿈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도리를 아는 사람[君子]은, 따라서 경세(經世)를 향한 책무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욕망을 종용하고 고인(古人)이 물려준 가치를 철저히 부정하는 자본주의, 그리고 더욱 처절해진 후기자본주의의 폭주는 본성의 회복[復其性]을 허언(虛言)이자 망상(妄想)이라고 부추겼고, 우리는 그대로 세뇌되다 급기야 그것의 노예가 되었다. 우리는 원래 선한 본성을 모두 공유하면서 기운 부분을 서로 괴면서 완전한 전체를 세우며 살고자 했다. 완전한 전체가 이루어진 때도 있었고, 그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에 준한 시절이 있었다.

 

성태훈_웃는매화_한지에 수묵아크릴채색_52.5&times;77.5cm_2022
성태훈_빨간고양이_한지에 수묵아크릴채색_52.5&times;77.5cm_2022
성태훈_웃는매화_한지에 수묵아크릴채색_55&times;76cm_2022

성태훈 작가는 2012년부터 「날아라, 닭(Fly, Roosters)」 연작을 그렸다. 작가는 경기도 외곽 시골 작업실에서 키우던 닭을 보고 가슴 울렁이는 깨우침이 있었다고 한다. 작가는 우리에 모여 사는 닭 중에서도 수탉(rooster)에 유달리 관심이 갔다. 수탉을 뜻하는 'rooster'의 어원 'roost'는 '횃대(架)’나 '쉬다’라는 뜻을 지닌다. 수탉은 날면서 광활한 영역을 오가며 사냥하고 새끼 기르던 시절을 망각한 존재이다. 지금 우리[圈]의 횃대에서 편안히 쉬는 것을 안락해하며, 더욱이 많은 암탉을 다루는 지위에 자부심을 느낀다. 작가는 수탉의 본성, 즉 하늘을 나는 능력과 수탉의 욕망, 즉 현재의 처지에의 안주를 화면에 극화시킨다. 「날아라, 닭」 연작은 많은 실험을 거치다 2013년부터 형식적 완결성에서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옻칠로 그린 화면은 칠흑같이 까만 어두운 밤이나 이른 새벽을 극적으로 나타낼 수 있었다. 불에 탄 나무의 물질적 특성을 드러내기에도 좋았다. 따라서 「날아라, 닭」 연작이 가리키는 말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불에 타고 있는 세상에서 타죽지 않고 나는 법을 기억해내라." "남들이 부산하게 움직여서 난리법석이 되는 한낮이 되기 전 새벽녘에 날아서 떠나라.(남들보다 먼저 깨달아라.)"

 

성태훈_웃는매화_한지에 수묵아크릴채색_76&times;111cm_2022
성태훈_웃는매화_한지에 수묵아크릴채색_77&times;106cm_2022

불교 경전인 『법화경(法華經)』에는 "삼계에는 편안함이 없어서, 비유하면 불난 집과 같다."라는¹ 문장이 나온다. 불난 집은 곧 화택(火宅)이다. 그리고 삼계(三界)란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를 가리킨다. 여기서 욕계는 아수라장을 말하고, 색계는 선정(禪定)을 닦은 사람이 사는 곳이다. 그런데 무색계까지 포함되어 있다. 무색계란 무색천(無色天)과도 같은 말로서 육체와 물질의 속박을 벗어난 정신적인 사유(思惟)의 세계를 이른다. 그런데 지옥‧악귀‧축생‧아수라‧인간‧육욕천이 화택인 것은 알겠는데, 색계와 무색계까지 화택에 포함되는 것이 놀랍다. 그것이 제아무리 정신적 만족을 얻는 삶이라고 할지라도 개인만의 사사로운 만족에 그친다면 화택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성태훈 작가가 묘사하고 있는, 대지가 불타고 하늘이 붉게 물든 화면은 화택을 연상시킨다. 주인공 수탉은 화택을 넘으려 안간 힘을 쓰며 하늘을 난다. 수탉은 우리를 가리킨다. ● 인간화(humanization)라는 말에는 동식물의 인간에 대한 길들여짐(domestication)이라는 말도 있지만, 인간의 인간에 대한 길들여짐(civilization)이라는 말도 포함된다. 그러나 인간의 길들여짐, 즉 문명화라는 말은 함양(cultivation)과는 다르다. 문명화는 인간의 외적 제도에 대한 적응과 관련된다. 반면에 함양은 내면에 깃든 본성의 회복과 관련된다. 동식물에 대한 인간화는 인간의 욕망을 위하여 그들의 본성을 제거한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인간에 대한 인간화를 뜻하는 문명화는 인간의 욕망을 위하여 인간의 본성을 제거한 것을 뜻한다. 문명화가 가장 극단적으로 발현된 것을 후기자본주의라고 하자. 이것은 『법화경』에서 말하는 화택의 대명사이다. 세계를 수량적으로 계측하며 사람을 수량 속에 가둔다. 외부 환경에 폭압을 가하며 왜곡하고 수탈하며 정복한다. 그럴수록 내면의 선함은 어두움에 가려져 저 멀리 달아난다. 성태훈 작가가 전면에 그렸던 수탉의 우화는 우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 올해 2022년 성태훈 작가가 들고 나온 화두는 「웃는 매화」이다. 지붕 위로 빨간 고양이가 서너 마리 노닐고 있다. 지붕 위로 매화꽃이 올라와서 붉게 피어있다. 때때로 참새가 나타나서 소리가 들리는 듯 하며 화면이 노니는 고양이의 정겨운 동태와 새소리, 매화 향기가 섞여서 공감각적이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지붕 위를 설정하고 있다. 지붕은 건축의 외면이다. 지붕만을 묘사한다는 것은 건축의 내부를 완전히 배제한다는 의도를 뜻한다. 내부는 사람의 내면을 뜻한다. 지붕이라는 건축의 외부는 인간의 사회화와 제도를 뜻한다. 여기서 또한 고양이는 독립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세태를 상징한다. 작가는 후기자본주의라는 극단적인 외부에 적응하여 유유자적 노니는, 그래서 독립적이며 방해받지 않는 자아(自我)를 고양이로 묘사했다. 그러나 이 연작의 제목이 「웃는 매화」라고 되어있다. 「웃는 매화」는 희망을 상징한다. 매화의 향기는 무의식의 하수구에서 썩어 흐르는 욕망‧이기심‧시기심‧나르시시즘‧새디즘의 악취를 옅게 희석해줄 정신성을 은유한다. 그래서 조선 중기의 문신 상촌(象村) 신흠(申欽, 1566-1628)은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오동은 천 년이 되어도 항상 곡조를 간직하며,매화는 평생을 춥게 지내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달은 천 번을 어그러져도 그 본질을 잃지 않으며,버들은 백 번을 꺾여도 새 가지를 돋아낸다.²

 

성태훈_웃는매화_한지에 수묵아크릴채색_148&times;211cm_2022

성태훈 작가가 묘사하는 매화는 신흠 선생이 말하는 매화와 같다. 희망은 의지에서 비롯된다. 정념의 살을 개의치 않는 의지의 뼈가 그것이다. 오동은 천 년의 곡조를 지니며 매화 역시 의지를 꺾지 않는다. 달은 변하는 것 같지만 변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버들은 강인한 생명력을 잃지 않는다. 인의예지신이라는 오상(五常)이 인(仁)이라는 한 글자에 모두 귀속되듯이 신흠의 사군자는 성태훈 작가의 「웃는 매화」 하나에 모두 포괄된다. 「웃는 매화」는 그래서 희망이다. 빨간 고양이는 우리의 세태를 뜻한다. 후기자본주의 하나, 과학주의 하나, 물질만능주의 하나, 경쟁주의 하나가 그것이다. 현재의 사악(四惡)이다. 그러나 이것은 난공불락의 영원한 요새가 아닐 것이다. 사악은 아주 사소하고 쉬운 것에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다. 매향(梅香)이 그것이다. 사악에 포위되어 노니는 고양이, 화택에 불타기 전 수탉의 우화는 결국 매향을 기억해서 본래의 나를 찾는 과정을 가르쳐주고 있다. ?장자(莊子)?의 「제물론(齊物論)」에도 "오상아(吾喪我)"라는 말이 나온다. "내가 나를 버리다." 혹은 "내가 나를 장사지내다."라는 이 말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함의하는 바는 매우 크다. 살아가며 얻은 습(習)으로 물든 나[我]는 본래의 나[吾]로부터 멀어져 있다. 나[我]는 붉은 고양이이다. 나[吾]는 매화 향기로 말미암아 본연에 도달하려는 나이다. 성태훈 작가의 「웃는 매화」는 따라서 잃어버린 나와 상실된 꿈을 다시 회복하려는 간단하지만 웅대한 서사를 하나의 화면에 응축시키고 있다. 이 뜻을 눈으로 직감할 때 우리의 내면에도 작은 울림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 이진명

 

¹. 『法華經』: "三界無安, 猶如火宅."². 申欽, 「野言」: "桐千年老恒藏曲, 梅一生寒不賣香, 月到千虧餘本質, 柳經百別又新枝."

 

Vol.20220322b | 성태훈展 / SEONGTAEHUN / 成泰訓 / painting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