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 김순경의 맛 기행

밥 같은 집, 세월을 이겼네
이름났어도 주인이 안 보이면 소개에서 탈락
늘 변화를 거듭하며 성장해가는 나의 단골 맛집 20

 

 

 

 

 

<한겨레21>이 창간 20주년을 알려왔다. 우리 옛말에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다. 강산이 변해도 두 번은 변했다. 나의 ‘21’ 연재는 창간을 앞두고 있던 1994년 봄, 오귀환 부장(2대 편집장)과 창간 준비를 위한 만남의 자리에서 별미집과 음식에 관련된 연재 이야기를 꺼낸 것이 시작이 됐다. 말은 그럴듯했지만, 전국의 그 많은 음식점들 중에 옥석을 가려 매주 1곳씩 소개하는 책임이 만만치 않았다.

 

연재가 1년쯤 이어진 뒤에는 독자들도 호흡을 같이하며 힘을 보태주었다. ‘21’을 받으면 맨 앞에 실린 편집장의 글 ‘만리재에서’와 맨 뒤의 별미집 소개부터 읽는다거나, 창간호부터 한 회도 거르지 않고 스크랩을 했다는 독자들의 글이 후기로 오를 때는 참으로 고맙고 힘이 되곤 했다.

 

 

1세대는 타계하고 도시 개발에 밀리고

 

 

대학 캠퍼스에서는 <뉴스위크>나 <타임> 대신 ‘21’ 제호가 보이도록 접은 <한겨레21>을 뒷주머니에 꽂고 다녀야 시선을 받는다고 할 정도로 바람을 일궜던 덕분에 ‘21’에 소개되는 음식점들도 즐거웠다. 가는 곳마다 얌전한 젊은이들이 조용히 찾아와 음식을 먹고 가는 모습이 늘고 있다며 반가워했고, 3~4년이 지나면서부터는 고객이 세대교체가 되고 있다는 곳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10년이 지나고 또다시 10년이 지나고 있는 지금, 많은 것이 변하고 또 변해가고 있다.

 

예전 사람들 말에 말과 음식만큼 변할 줄 모르는 것이 없다고 했지만, ‘21’에 소개된 별미집들도 겉모습으로는 많은 것이 변했다. 북한의 향토음식을 전해준 실향민 1세대 주인들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들이 저세상 사람들이 됐고, 지방의 이름난 장터국밥집의 지역문화재급 음식장인들도 차례로 타계하며 이제는 그 기록조차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당시 유명세를 자랑하던 서울의 토박이 음식점들도 더러는 사람들의 입맛이 변하면서 아예 간판을 내렸거나 도시 개발에 밀려 흔적도 없이 사라진 곳이 적지 않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변하고 있는 세상의 많은 것들과 비교하면, 아직은 옛 모습 그대로 크게 변하지 않고 이어져오는 곳이 내력 있는 음식점들인 것 같다. 1대조에 해당하는 원조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손맛을 아들딸들이 물려받고 다시 3대로 이어지며 가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곳을 청바지 뒷주머니에 ‘21’을 꽂고 갔던 젊은 청년들이 사회 중견 인사가 되고 가장이 된 지금도 꾸준한 골수 단골이 되어 찾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음식의 기본 바탕을 이루는 창업주의 정신과 늘 먹어도 물리지 않고 인이 박이도록 끌리는 맛이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음식은 삶의 근본을 이루는 기본 요소 중 하나다. 햇빛과 공기, 물, 세 가지는 타고나면서부터 주어지는 자연의 선물이라지만, 음식은 같은 수준의 필수 요소이면서 선택의 여지를 지녔다. 그 선택 기준이 삶의 질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특히 하루 한 끼를 밖에서 해결하는 직장인들에게는 음식의 선택이 인생을 바꿔놓는 행운이 되고 불행을 초래하기도 한다.

 

 

 

 

 

1. 을밀대/ 냉면·편육/ 서울 마포구 염리동 249(마포KT 앞)/ 02-717-1922
2. 역전회관/ 선지해장국·바싹불고기/ 서울 마포구 염리동 173-21/ 02-703-0019
3. 구마산/ 추어탕·갈비구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43(미원빌딩)/ 02-783-3269
4. 영등포복집/ 참복매운탕·복수육/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3가 7-14/ 02-2678-3467
5. 고려삼계탕/ 삼계탕/ 서울 중구 서소문동 55-3/ 02-752-2734
6. 무교동북어국/ 북엇국/ 서울 중구 다동 173/ 02-777-3891
7. 하동관/ 곰탕/ 서울 중구 명동1가 10-4 / 02-776-5656
8. 명동함흥면옥/ 함흥냉면/ 서울 중구 명동2가 25-1/ 02-776-8430
9. 이문설렁탕/ 설렁탕·수육/ 서울 종로구 견지동 88/ 02-733-6526
10. 시골집/ 안동장터국밥·바싹불고기/ 서울 종로구 인사동 230/ 02-734-0525
11. 문화옥/ 설렁탕·우족탕·꼬리곰탕/ 서울 중구 주교동 118-2/ 02-2265-0322
12. 평양면옥/ 냉면·만둣국/ 서울 중구 장충동1가 26-1/ 02-2267-7784
13. 만두집/ 만둣국·녹두전/ 서울 강남구 신사동 661-1/ 02-544-3710
14. 한일관/ 동판불고기·갈비탕/ 서울 강남구 신사동 619-4/ 02-732-2002
15. 평안도찹쌀순대/ 돼지국밥·찹쌀순대/ 서울 강남구 역삼동 820-2/ 02-553-3234
16. 평양집/ 양·곱창구이·내장탕/ 서울 용산구 한강로1가 137-1/ 02-793-6866
17. 어도횟집/ 자연산활어회·매운탕/ 서울 강남구 논현동 99-1/ 02-548-7766
18. 대성집/ 도가니탕/ 서울 종로구 교북동 87/ 02-735-4259
19. 문경산골메밀묵/ 메밀묵·청국장/ 서울 송파구 가락동 70-10/ 02-443-6653
20. 박찬숙순대(경상도집)/ 순댓국·머리고기/ 서울 마포구 서교동 355-1/ 02-336-9909

 

 

옛이야기 들어줄 일 없는 집들도

 

 

그런 만큼 소개되는 음식점의 선별은 주인의 인품과 성실성이 첫째 조건이 됐다. 그다음이 음식 맛인데, 이 역시 음식의 내용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제외했다. 따라서 아무리 유명한 음식점이라도 식사 시간에 주인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곳은 몇 번이고 돌아섰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선택된 음식점들은 주인과 고객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웬만한 경기 변동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고 변화에 민감할 이유도 없이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며 주인과 고객 모두 변하지 않고 대물림되고 있다.

 

나의 단골집이 된 음식점들도 면밀하게 살펴보면 늘 변화를 거듭하며 성장하고 있다. 서울곰탕의 본포인 하동관은 옛 수하동(청계천 입구)이 재개발되면서 명동 외환은행 뒤편으로 옮겼고 출가한 딸이 여의도에 직영점을 냈다. 용산역의 명소이던 역전회관은 용산역 재개발로 역전과는 전혀 상관없는 마포 돼지골목(용강동)으로 옮겼다. 터주골로 문을 연 무교동북어국은 외관을 깔끔하게 단장하고 ‘터주골’이란 옛 이름을 ‘무교동북어국집’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또 ‘21’에 소개되면서 서울의 100년 음식점 1호로 정확한 내력이 밝혀진 종로통 이문설렁탕도 종로타워 뒤편에서 조계사 건너편으로 옮기며 100년 터전을 다져놓은 옛 건물이 철거를 앞두고 있다. 그리고 종각과 대각선으로 마주하고 있던 한일관은 강남 압구정동으로 옮겨 새로운 위상을 펼쳐내고 있다.

 

그 밖에 여의도의 추어탕집 구마산은 MBC와 가까운 미원빌딩으로, 창신동 형제추탕은 하월곡동을 거쳐 평창동 예고 앞으로 이전했다. 만두집과 명동돈가스·명동교자·명동함흥면옥·명동할머니오징어찌개 등은 옛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20주년 기념호를 들고 찾아간들 옛날 이야기를 실감나게 들어줄 주인공들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다시 단골이 되어

 

나의 단골집들은 지금도 하루 한두 끼니는 음식점을 찾아가야 하는 일상을 살고 있는 나에게는 내 집 음식처럼 입에 익은 음식을 차려낸다. 오랜만에 그중 몇 곳을 골라 다시 한번 선보이고자 한다. 다시 찾아가 재확인한 결과 단골이 되어도 괜찮은 집들이다. 언제 가도 믿고 먹을 만한 음식을 차려낸다.

스포츠서울 [고기박사 최계경의 육도락기행]

1902년 개업, 공식적으로 국내 등록 1호 음식점. 무려 개업 역사가 111년이다. 이 아득한 전통을 자랑하는 식당은 바로 종로 '이문(里門)설농탕'이다. 이집은 옛날부터 명성이 자자해 장안의 별미집으로 통했다. 아마도 짐작컨데 현진건의 소설 '운수좋은 날(1924년작)'에 등장하는 설렁탕도 이곳 이문설농탕의 것이 아닌가 한다. 국내 최초 맛칼럼니스트 고(故)백파 홍성유의 별미여행에도 첫번째로 등장하기도 했다.


푸짐하고 든든한 수육이 깔끔한 국물에 담겨나오는 이문설농탕.
 

임금이 권농의 제례를 지내는 선농단(先農壇)에서 유래했다는 탄생의 비화부터 철저히 서울 음식인 설렁탕(雪濃湯)은 전국 각 지역에서 발달한 곰탕과는 달리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60년대에는 직장인들의 모든 외식이 설렁탕 한그릇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대표적인 '점심 메뉴'였다. 설렁탕은 소머리와 혀, 도가니, 내장 등을 넣고 끓인 음식이다. 그래서 설렁탕집에선 보통 수육을 함께 메뉴로 낸다.




과연 백년 명가다. 한번 숟가락을 들면 마지막 국물까지 싹 비우게 만드는 이문설농탕 특유의 맛이 담겨있다.
 

몇 년만에 다시 찾은 이문설농탕은 아쉽게도 역사적인 장소에서 옮겨 인사동 쪽으로 한걸음 물러났다. 하지만 시선이 탁 트일만큼 넓어졌고 인공조미료를 쓰지않는 다소 슴슴한 국물맛이 여전한 까닭에 감사할 지경이다. 변함없는 옛맛을 지키는 것은 식당이 단골 손님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미덕이 아닐까?. 환절기에 몸을 보하기에는 역시 이런 설렁탕이 최고다. 국수와 밥을 말아낸 국물을 한술 뜨니 우선 입이 즐겁고, 몸 또한 제 좋은 것 먹이는 줄 미리 알고 춤을 춘다. 숟가락으로 깍두기를 얹어 뜨고 나중엔 뚝배기를 들고 국물까지 단숨에 들이켰다.




설렁탕집이 제대로 된 곳인지를 알려면 얼마나 다양한 수육을 내느냐를 보면 된다. 왼쪽은 혀밑(우설)이며 오른쪽은 마나(비장)수육이다.
 

마나 수육을 주문했다. 마나는 원래 '만하'가 맞는 말로 지라(비장)를 뜻한다. 서울의 토속음식점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비장은 호불호가 크게 엇갈리는 메뉴 중 하나다. 소의 비장을 삶아 국물을 내고 수육으로 썰어서 파는데, 이맛이 별미 중 별미로 치는 이가 있는데 반해 푸석하고 이상한 냄새가 나서 못먹겠다는 이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비장에는 특유의 향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별미들이 처음에는 특유의 향 때문에 진입장벽이 있지만, 그것을 극복하고나면 도저히 잊을 수 없는 맛이 된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홍어나 과메기도 그렇잖은가.



 
1902년 창업한 이문설농탕은 공식적으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이다. 사진은 1949년 서울신문에 낸 광고. 


마나는 술안주로 딱이다. 질겅질겅 씹는 것보다는 말랑해서 먹기에 좋고 흔한 간이나 수육보다는 맛이 훨씬 진해서 좋다. 특히 쫄깃한 혀밑(우설)수육과 함께 주문하면 꽤 잘 어우러진 맛의 하모니를 느껴볼 수 있다. 늘 맛을 추구하는 젊은 육도락가들에게 마나는 꼭 먹어보길 권한다. 우리 선조들은 이처럼 다양하고 깊이있는 육도락을 옛부터 즐겨왔음을 알게될 기회가 될테니 말이다.



<축산물쇼핑센터 AZ쇼핑 대표사원>
★이문설농탕=당대의 권투, 씨름, 유도선수들이 거의 이문설농탕의 사골국물을 먹고 경기에 나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명한 설렁탕집이다. 오랫동안 우려내는 까닭에 가스비가 몇백만원씩 나온다고 한다. 불편한 몸에도 옛맛을 못잊어 가게를 찾아오는 어르신들 때문에 물가에 맞춰 가격을 못올린다고 한다. 설렁탕 7000원. 설렁탕(특)9000원. 마나 1만5000원. 혀밑 2만8000원. 서울 종로구 견지동 센터파크 호텔 뒷편.(02)733-6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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