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고기박사 최계경의 육도락기행]

1902년 개업, 공식적으로 국내 등록 1호 음식점. 무려 개업 역사가 111년이다. 이 아득한 전통을 자랑하는 식당은 바로 종로 '이문(里門)설농탕'이다. 이집은 옛날부터 명성이 자자해 장안의 별미집으로 통했다. 아마도 짐작컨데 현진건의 소설 '운수좋은 날(1924년작)'에 등장하는 설렁탕도 이곳 이문설농탕의 것이 아닌가 한다. 국내 최초 맛칼럼니스트 고(故)백파 홍성유의 별미여행에도 첫번째로 등장하기도 했다.


푸짐하고 든든한 수육이 깔끔한 국물에 담겨나오는 이문설농탕.
 

임금이 권농의 제례를 지내는 선농단(先農壇)에서 유래했다는 탄생의 비화부터 철저히 서울 음식인 설렁탕(雪濃湯)은 전국 각 지역에서 발달한 곰탕과는 달리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60년대에는 직장인들의 모든 외식이 설렁탕 한그릇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대표적인 '점심 메뉴'였다. 설렁탕은 소머리와 혀, 도가니, 내장 등을 넣고 끓인 음식이다. 그래서 설렁탕집에선 보통 수육을 함께 메뉴로 낸다.




과연 백년 명가다. 한번 숟가락을 들면 마지막 국물까지 싹 비우게 만드는 이문설농탕 특유의 맛이 담겨있다.
 

몇 년만에 다시 찾은 이문설농탕은 아쉽게도 역사적인 장소에서 옮겨 인사동 쪽으로 한걸음 물러났다. 하지만 시선이 탁 트일만큼 넓어졌고 인공조미료를 쓰지않는 다소 슴슴한 국물맛이 여전한 까닭에 감사할 지경이다. 변함없는 옛맛을 지키는 것은 식당이 단골 손님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미덕이 아닐까?. 환절기에 몸을 보하기에는 역시 이런 설렁탕이 최고다. 국수와 밥을 말아낸 국물을 한술 뜨니 우선 입이 즐겁고, 몸 또한 제 좋은 것 먹이는 줄 미리 알고 춤을 춘다. 숟가락으로 깍두기를 얹어 뜨고 나중엔 뚝배기를 들고 국물까지 단숨에 들이켰다.




설렁탕집이 제대로 된 곳인지를 알려면 얼마나 다양한 수육을 내느냐를 보면 된다. 왼쪽은 혀밑(우설)이며 오른쪽은 마나(비장)수육이다.
 

마나 수육을 주문했다. 마나는 원래 '만하'가 맞는 말로 지라(비장)를 뜻한다. 서울의 토속음식점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비장은 호불호가 크게 엇갈리는 메뉴 중 하나다. 소의 비장을 삶아 국물을 내고 수육으로 썰어서 파는데, 이맛이 별미 중 별미로 치는 이가 있는데 반해 푸석하고 이상한 냄새가 나서 못먹겠다는 이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비장에는 특유의 향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별미들이 처음에는 특유의 향 때문에 진입장벽이 있지만, 그것을 극복하고나면 도저히 잊을 수 없는 맛이 된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홍어나 과메기도 그렇잖은가.



 
1902년 창업한 이문설농탕은 공식적으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이다. 사진은 1949년 서울신문에 낸 광고. 


마나는 술안주로 딱이다. 질겅질겅 씹는 것보다는 말랑해서 먹기에 좋고 흔한 간이나 수육보다는 맛이 훨씬 진해서 좋다. 특히 쫄깃한 혀밑(우설)수육과 함께 주문하면 꽤 잘 어우러진 맛의 하모니를 느껴볼 수 있다. 늘 맛을 추구하는 젊은 육도락가들에게 마나는 꼭 먹어보길 권한다. 우리 선조들은 이처럼 다양하고 깊이있는 육도락을 옛부터 즐겨왔음을 알게될 기회가 될테니 말이다.



<축산물쇼핑센터 AZ쇼핑 대표사원>
★이문설농탕=당대의 권투, 씨름, 유도선수들이 거의 이문설농탕의 사골국물을 먹고 경기에 나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명한 설렁탕집이다. 오랫동안 우려내는 까닭에 가스비가 몇백만원씩 나온다고 한다. 불편한 몸에도 옛맛을 못잊어 가게를 찾아오는 어르신들 때문에 물가에 맞춰 가격을 못올린다고 한다. 설렁탕 7000원. 설렁탕(특)9000원. 마나 1만5000원. 혀밑 2만8000원. 서울 종로구 견지동 센터파크 호텔 뒷편.(02)733-6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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