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 올라가다 길에서 송범섭씨를 만났다.




송씨는 만나기만 하면 찍은 사진들 언제 주냐며 독촉이 빗발 같다.
빚쟁이 된 것처럼 만날까 피해 다닐 정도다.




예전에는 어버이날과 추석에 했던 빨래줄 전시로 사진을 주었으나,
그 일을 방해하는 사람으로 접고부터는 사진이 잘 만들어지지 않았다.
빨래줄 전시는 협찬 받아서라도 꼭 해야 할 일이었지만,
이젠 정해진 날자가 없으니, 차일피일 미룰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몇 일전, 재난지원금 받은 게 남아, 사진을 만들어 두었기에 전해줄 수 있었다.




생각난 김에 다른 분도 주어야 할 것 같아, 사진을 챙겨 동네 한 바퀴 돈 것이다.
먼저 노숙자 아지트로 찾아가 유정희씨와 병학이 사진을 전해주었다.
병학이는 사진 둘 때가 없어 유씨가 챙겨두겠단다.




노숙하는 이의 설움이다.
몸 하나 거둘 곳 없는 사람에게 사진이 무슨 소용이랴!




공원에서 만난 이남기씨에게 사진을 주었더니,
고맙다며 음료수 한 잔 마시라고, 천 원짜리 한 장을 준다.
한 푼이라도 남에게 신세지는 걸 싫어하는 성미다,




박성일씨와 박소영씨도 만났는데, 소영씨는 식혜를 주었다. 
다른 사람 주지 말고, 보는 앞에서 마시라며 채근했다.



자기 핸드폰을 열어 이런 저런 사진을 보여주며 속삭였다.
별 일도 아닌 사소한 일을 열심히 설명해가며 수긍해 주길 바랬다.
그 만큼 외롭다는 이야기다.




요즘 공원에서 술 마시는 사람도 많이 줄어 들었다.
무료급식도, 줄 세워 배급 주는 일도 다 끊겼다.
코로나가 빈민들의 생활 환경까지 서서히 바꾸고 있다.



그들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세상 외로움은 깊어만 간다.

사진, 글 / 조문호







 






그동안 해온 사진 작업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공익을 위해서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피할 수 없다는
오래된 인식을 바꾸게 되었다.

대개 본인이 원하거나 묵인할 때 찍지만,
더러는 원하지 않을 경우도 있다.






흔한 예로 잠든 노숙인을 찍을 때가 그렇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아닌 것도 아닌데, 
찍고나서 양해를 구한다 해도 찍는 순간은 도둑사진일 뿐이다.
사람을 위해 사람을 찍는다는 공익에 대한 명분도
한 사람의 프라이버시 앞에서는 무참하게 무너져 내린다.



뒤늦게 고민에 빠지기 시작한 일주일 전부터
습관처럼 찍어 온 동자동 사진도 이전처럼 노출할 수 없었다.
결정적으로 마음을 굳힌 것은 어저께 장경호씨 집에서 찍은 사진 때문이다.
알리지 말라는 후배의 말에도 사는 처지가 딱해 노출시켜 버린 것이다.
본인이 보았는지 모르지만, 심한 자책에 시달린 것이다.
사람을 위한다며 당사자의 뜻이 무시된 사진이 어디 이 뿐이겠는가?
그래서 사진을 내리며 생각을 바꾼 것이다.






평생을 사람만 생각하며, 사람을 찍어 왔지 않았던가.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말도 어쩌면 헛소리일 뿐이다.
종국엔 지구의 모든 것이 사라질테니까.

그러면 앞으로 동자동과 인사동 사진은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서로가 통하는 사람 대 사람의 일대 일 기록 말이다.
이제부터 블로그에 올리는 사진도 본인이 수긍할 수 있는
다섯 장 이내로 제한하기로 했다.






여기에 올린 사진은 지난 토요일 찍은 사진이다.
사진을 부탁한 쪽방주민 조인형씨와 노숙하는 유정희씨다.
조인형씨는 빵 타기 위해 찬송가 적힌 순서 표를 들었고,
유정희씨는 머물고 있는 처소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날따라 원로사진가 황규태선생께서 동자동을 방문해 맛있는 음식을 사 주셨다.
나뿐 아니라 동자동 친구 이기영씨 까지 고마워했다.


사진, 글 / 조문호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