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동에 사는 정재헌씨는 여자 없이는 살아도 술 없이는 못 사는 알콜 중독자였다.
동자동 새꿈공원 입구만 가면 항상 술 취한 정재헌씨를 만날 수 있었다.
취하여 바닥에 드러 누워 있기 일 수였고, 몸을 가누지 못해 누군가 도와주어야
4층 방까지 올라갈 수 있지만. 그래도 매번 곤드레만드레 취했다.



지난 9월, 새꿈공원에서 술에 취해 잠든 정재헌씨



그런데, 최근 들어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병이라도 난 게 아닌가 걱정되어 한번 찾아 볼 작정을 했는데,
지난 번 동자동 잔치에서 말끔한 모습의 그를 만나게 된 것이다.
어디 갔다 왔냐고 물었더니, ‘술을 끊었다’고 말했다.




-지난 번 지역축제에서 만난 정재헌씨-


한편으론 술친구를 잃어 서운하기도 했으나, 천만다행이다 싶었다..
어려운 환경에 처해 유난히 알콜 중독자가 많은 동자동이다.

용산구에서 ‘술 끊는 마을’로 만들기 위해 장애 검진, 건강음주 캠페인 등

여러 가지 절주사업을 벌이기에, 어떤 도움을 받아 결심 했는지 궁금했다.





심한 중증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황춘화, 정용성씨 모자도 절실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술을 좋아하지만, 혼자서는 마시지 않는 스스로의 약속으로 버티지만,
그들은 시도 때도 없이 돈만 있으면 마시는 분들이라 절제가 안 된다.






지난 16일 오후 연락도 없이 정재헌씨의 방을 방문했다.
이제 술 끊은 지 2개월째 접어들었다는데, 특별한 일 없으면 외출을 삼간다고 말했다.
술 마시는 사람 보면 술 생각이 난다는 걸 보니, 아직은 미련이 남은 듯 했다.
끊게 된 동기란 심한 복통으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끊었다고 했다.





외출도 하지 않고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더니, 티브이만 끼고 산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티브이를 보니, 군것질을 많이 한다고 했다.
군것질 값이 술값보다 더 많이 든다는 푸념도 했지만,
죽어서 가져 갈 돈 아니니, 아끼지 말고 많이 사 먹으라고 했다.






술을 끊는다는 것은 고통에 따른 것이든 어떻던, 본인의 강한 의지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저 불쌍한 두 모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22일은 하루 종일 쪽방에서 죽쳤다.
하는 일이래야 컴퓨터와 노닥거리다 잠자는 것뿐이다.
마침, 맞은편 방에 사는 김응수씨가 소주 한 잔 하잖다.
소주 세병과 소시지 세 개를 사왔지만, 방에 들일 수가 없었다.

침대에다 책상까지 들여 놓았으니 방이 좁아 앉을 자리가 없었다.

하는 수 없어 문턱에다 술상을 차려 손님을 맞았는데, 그와는 처음 갖는 술자리였다.

나이는 일흔 셋인데, 그 날은 오랜 숙원사업이 해결의 기미가 보인다며 약간 고무되어 있었다.





부산에서 아들과 아내가 살고 있지만, 사업자금 융자받으러 상경해 쪽방에서 체류한지가 삼년이 되었다고 한다.

경남 고성이 고향인 그가 고성에다 대규모 야시장을 개발하려는 야무진 꿈을 갖고 있었는데,

서류 갖추고 보완하느라 3년이 흘렀단다, 그런데 융자 신청액이 무려 300조가 넘는 엄청난 규모였다.

이포 용지에 적힌 확인서 비슷한 내용을 보여주었는데, 너무 큰 금액이라 믿기지 않았지만, 한 번 물어 보았다.

야시장에 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냐 아니면 돈을 벌기 위해서냐 물었더니 당연히 돈 때문이라고 했다.

그 나이에 엄청난 일을 꾸며 벌어본들 어디에 쓸 것이냐고 물었더니, 아들과 손자를 위해서란다.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그만두는 것이 돕는 것이라며 말을 끊었더니, 이번엔 정치이야기를 꺼냈다.

박정희의 경제 성장론을 늘어놓으며, 삼년만 더 했다면, 세계 최고의 경제국가가 되었을 것이란다.

더 이상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생각이 사라져, 화장실 가는 송범섭씨를 불러 앉혔다.

이 친구는 아래층 사람들과 복도에 둘러앉아 한 점에 백원짜리 고스톱을 치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도록 결말이 나지 않는 것을 보니, 돈 따는 것보다 시간 보내는 놀이였다.

후래삼배라며 석 잔을 연거푸 따라 주었으나,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던지 서둘러 내려가버렸다.






이번에는 옆방에 사는 최완석군이 나타났다. 이 친구는 막걸리만 마셔 끼일 형편도 아니지만,

이미 취해 들어왔다. 내년이면 50에 접어들지만, 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틈틈이 괴성을 질러 옆방 사람들을 깜짝 깜짝 놀라게 한다.

건물 관리하는 정씨로부터 숱한 욕을 먹으며 구박 당하지만, 그 때 뿐이었다.

그런데 방에서 조그만 컵에다 물고기를 키우는데, 하루에 몇번이나 물을 갈아주었다.

유일한 친구인 냥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며, 티브이도 물고기가 노는 화면을 자주 틀어놓았다.

다들 정신적 질환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다.






쪽방 촌에는 별의 별 사연의 사람들이 많지만, 하나같이 힘들어하는 것은 소외감이고 외로움이다.

문제는 이웃과 어울리거나 공원에 나와 사람을 만나는 분은 극히 일부라는 것이다.

다들 혼자 사는데 익숙해 사람 만나는 것을 기피하는 것이다.

그러니 먹는 것조차 부실할 수 밖에 없어 결국은 건강마저 잃어버린다.

혼자 살다 비참한 죽음을 당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병원은 고사하고 언제 사망한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 이어 급증하는 고독사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시대가 만들어 낸 사회적 병이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경우, 지난달부터 한국 야쿠르트와 업무협약을 맺고 개인정보제공을 조건으로

3회씩 야쿠르트 배달원들이 홀몸노인 가구를 방문해 음료를 전달하며 안부까지 확인하기로 했는데, 정말 잘 생각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극소수의 사람들이 신청했고, 그것도 외부 출입이 잦은 분들이 대부분이다.

아무 조건 없이 해당되는 분은 주기적으로 방문해주었으면 좋겠다.

정부의 좀 더 적극적인 대처가 절실하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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