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에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인사동만 젖는 게 아니라 마음까지 젖는다.

 

분주했던 수요일 거리치고는 한적했다.

 

찾아 간 전시는 어설픈 모방에 불과했다.

 

어차피 사는 자체가 모방이 아니던가?

 

비에 젖은 허탈감에 술 생각만 간절하다.

 

그런데, 그 많던 술벗들은 어디 갔는가?

 

전화를 버렸으니, 내가 버린 거나 마찬가지다.

 

술 한 잔에 마음 달래려 해도 처량하게 궁상떨기는 더더욱 싫었다.

 

애잔하게 연주하는 ‘예스터데이’가 들려온다.

 

가사 후반부를 곱씹으니, 남의 말이 아니었다.

 

“Now I long for yesterday

yesterday love was such an easy game to play

now I need a place to hide a way

oh, I believe in yesterday“

 

“이젠 지난날이 자꾸만 그리워지네.

지난 날 사랑은 너무 쉬운 게임 같았어.

이제 난 어디든 숨을 곳이 필요해.

오! 그 때가 좋았었는데“

 

사진, 글 / 조문호

 

 

 

 

 

 

 

예스터데이



박신흥 글·사진|눈빛|160쪽|1만5000원

흑백사진 속 열 살 남짓 아이는 이제 쉰 살 어른이 됐을 것이다. 지금은 사라진 세로쓰기 신문과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잡지 '선데이서울'이 표지가 보이도록 꽂혀 있다. 껌과 개비 담배를 함께 파는 가난한 좌판이다. 엄마는 잠깐 자리를 비운 모양이다. 아이가 손님 없는 가게를 지키고 앉아 작은 손에 연필을 쥐고 낡은 공책에 글씨를 쓰고 있다. 이번 받아쓰기 시험엔 꼭 백점을 맞겠다는 듯 표정이 자못 진지하다.

1970년대 사진 속 풍경은 아련한 추억으로 달려가게 한다. 수도 시설 없는 서울 변두리 달동네에 '물차'가 오는 날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1.8t 트럭에 실려온 물을 받으러 판잣집 주민이 다 모였다. 허리춤까지 올라오는 커다란 물통 두 개를 양손에 든 아이, 젖먹이를 업고 나온 엄마, 어린 동생을 안은 여자아이의 활짝 웃는 얼굴에서 힘들어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삶의 힘을 읽을 수 있다. 변변한 놀이 시설은 없지만 말타기 놀이를 하며 친구들과 함께 뛰노는 아이들 모습은 건강해 보인다. 동무 등 위에 올라타려고 달려온 아이 얼굴엔 장난기가 그득하다.


 

엄마 대신 가게에 앉아 공부하는 이 아이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 가난해도 꿈이 있던 시절이다. 1976년 경기도 부천. /눈빛 제공

 

버스 옆을 두드리며 '오라이'를 외치던 여(女)차장의 무표정한 얼굴, 졸업식날 검은 교복에 허연 밀가루를 뒤집어쓴 남학생들의 모습을 이제는 볼 수 없다. 한갓 고단한 시대였다고, 단지 고통의 나날이었다고 함부로 말하지 마라. 40여년 전 서울·경기·강원 지역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은 작가는 "모두가 어려웠다. 그러나 꿈을 안고 살아가던 시절이었다. 이제 그 시절이 그립다. 그때가 자랑스럽다"고 썼다. 1970년대 일상을 담은 사진집이다. 어제가 있기에 오늘이 있다.

 

조선일보 / 이한수기자

 

 

박신흥 킨텍스 상임이사 개인 사진전 'Yesterday'

 

박신흥 킨텍스 상임이사가 13~18일 서울 정동갤러리에서 개인 사진전 'Yesterday'를 갖는다.

1970년대 경기도 일대 서민들의 생활상을 필름 카메라 렌즈로 서정적으로 담아낸 47점이 전시된다. 주요 작품으로는 일하러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 말로만 듣던 카메라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까까머리 어린이, 오빠들이 하던 '턱걸이'를 흉내 내는 아이들 등이 공개된다. 작품의 제목에서 잘 나타나 있듯이 당시의 생활상이 따뜻한 아날로그의 감성으로 표현됐다


박신흥 이사가 1975년에 찍은‘턱걸이’. 한 여자 아이가 오빠들이 하던 턱걸이를 안간힘을 쓰고 흉내 내고 있다.

 

박 이사는 "70년대 학창시절에 사진기자를 꿈꾸며 찍었던 작품들"이라며 "이제는 우리 마음속에만 그려지고 보기 힘든, 이야기가 담겨있는 장면들을 골라 전시회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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