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리얼리즘 역사 풍경화의 대가로 꼽혀온 원로화가 손장섭선생께서 지난 1일 오전 향년 81세로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빈소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백병원 장례식장 3호실로 장례는 3일 오전 7시30분부터 민족미술인협회장으로 치렀다.

유족으로 부인 이영자씨와 아들 병권씨, 딸 수현·수진씨가 있다.

 

고인은 1980년 출범한 국내 최초의 현실비판 모임 ‘현실과 발언’의 창립 동인이자

1985년 결성된 민미협 초대 회장으로 1980년대 진보적 미술 운동을 이끌었던 주역이다.

 

전남 완도군 고금면 출신으로 유년시절 바다에 둘러싸인 고향에서 유년을 지내다

1960년 서라벌고에 진학한 직후 4월 혁명을 체험하며 ‘역사 속에서 자각한 인간’이란 평생의 화두를 품고 사실주의 화가의 길을 걸어왔다.

 

선생의 그림들은 한국 현대미술사에 리얼리즘 풍경회화의 획을 그었다고 평가한다.

1990년대 이후에는 민중의 역사가 녹아든 이 땅 곳곳의 산야와 바다, 신목들을 그린 풍경 연작들을 탄생시켰다.

“자연은 역사가 배어있는 현장”이라는 지론으로 각지의 자연과 사적지를 끊임없이 답사 탐구한 한국 풍경회화의 거인이었다.

 

수상으로는 민족미술상(1991)과 금호미술상·이중섭미술상(1998)을 수상했다.

 

아래는 선생의 생전 모습과 유작 일부이오니, 지난 날을 추억하며 명복을 빌어주시기 바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지난 23일,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이인철의 ‘in the paradise’가 개막되었다.
이 전시는 우리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정치적 모순, 분단국으로서의 전쟁위기,

그리고 인간성 상실로 치닫는 야만성을 해학적으로 풍자하며 비판하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3D 프로그램과 2D 포토샵으로 그린 도형적 이미지들인데,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이 마치 과학 교재실에 들어 온 듯, 흥미롭기도 경직된 느낌도 준다.

그러나 자세히 드려다 보면, 하나하나의 이미지가 주는 메시지가 분명하다.






로켓이 김밥 잘리듯 잘려있고, 스텔스기에 치즈를 발라 놓았다.

인조 잔디밭에 누워 휴식을 취하는 인간이 있는가하면, 힘없이 날아가는 탄두는 어디 떨어질지 불안하다.






불행한 세상으로 치닫는 현실을 파라다이스에 비유하며 풍자하고 있으나,

파라다이스를 꿈꾸는 작가의 이상 또한 작품 속에 오롯이 담겨있다.






작가 이인철은 야만성의 현실을 비판하는 가상의 세계를 그렸지만, 그리 비관적이지 않다.

‘in the paradise’란 제목이 주는 의미처럼,

무기를 해체하고 세상의 부조리를 타파하여 사람답게 사는 낙원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컴퓨터로 그려진 그의 작업들은 그림보다 사진에 더 가까운 이미지로,

사진처럼 철저한 사실묘사로 이루어진 가상의 디지털 작업이었다.

인간이 만들고 인간이 당하는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여, 그 구조적 모순을 공격하는 것도 흥미롭다.






몇 일전 문영태화백 유작전에서 만난 민중미술가 신학철선생께서

“이인철 작품은 과학적 감성의 결과물”이라고 호평한 바도 있지만,

과학적 감성에 의한 창의력으로 사회를 향해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또한 사회 규범과 권위에 도전하는 거친 표현도 있다.

표제작으로 내놓은 작품은 성경에다 칼을 꽂아 놓았고,

그 작품 옆에는 기아에 허덕이는 어린 난민이 고개 숙이고 있다. 이게 뭘 말하는가?

나 역시, 성경이나 법전에 나오는 거룩한 말씀을 거지발싸개 정도로 여기지만,

신이 계시다면 세월호 같은 사건이 어찌 생길 수 있으며,

착한사람은 못 살고 나쁜 사람이 잘 사는 이런 세상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인철씨가 간이 부어도 단단히 부었다. 부인 김명희씨가 목사님이 아니던가?

그래서 전시 뒤풀이에서 만난 김명희 목사께 그 문제를 어떻게 생각 하냐고 물어보았다.

“너희에게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칼을 주러왔다”는 예수님 말씀이 마태복음에 있다고 했다.

평화로운 세상을 쟁취하라는 역설적인 표현이라며, 이인철씨 표현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역시 한 편인 것 같았다.






이인철씨 작품을 비평한 미술평론가 김진하씨의 글이다.
“비록 가상의 세계지만, 그 쉬르와 하이퍼 리얼을 교직한 미적 쾌감은 소통의 폭을 확장시킨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정확하게 반영한다는 것이다.

그 반영은 인식을 담보하고 거기서부터 현실을 개진해 나가려는 비판성과 사회적 함의가 발생한다.

이인철은 바로 그런 ‘이미지노동’을 통해 디스토피아를 파라다이스로 역전시키고 있다.

거기에 이인철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소통하는 이미지’의 힘이 있다.”






그리고 이인철씨의 인간적 친화력은 개막 전시장을 북적이게 했다.
원로 손장섭선생을 비롯하여 김명희, 민정기, 황의선, 윤범모, 김진하, 정복수, 장경호, 김재홍, 곽대원,

최경태, 김 구, 이재민, 변대섭, 한상진, 박홍순, 김영중, 김보중, 이원석, 김경지, 송용민, 김영진, 마문호,

양상용, 황준연, 박승원, 조경숙, 현린씨 등 많은 미술인들의 축하를 받는 자리가 되었는데,

뒤풀이 장소인 ‘낭만’에는 손기환, 박은태, 임정의, 성기준, 소리꾼 유주현씨 등이 합류하여

판소리가 흘러 나오는 질퍽한 친목의 자리를 만들었다.





6월 5일까지 인사동 ‘나무화랑’(02-722-7760)에서 열리는

이인철씨의 일곱 번째 개인전 ‘in the paradise’에 많은 관람 있기를 바란다.


사진, 글 / 조문호




















































































역사, 그 물질적 흔적으로서의 회화
Painting as Tangible Vestige of History

손장섭展 / SONJANGSUP / 孫壯燮 / painting
2017_0517 ▶ 2017_0618 / 월요일 휴관



손장섭_동도에서 서도를 보다 Looking at Seodo from Dongdo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7×291cm_2009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20411g | 손장섭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7_0517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학고재Hakgojae

서울 종로구 삼청로 50(소격동 70번지)

Tel. +82.(0)2.720.1527

hakgojae.com



역사, 그 물질적 흔적으로서의 회화: 손장섭의 2000년대의 회화 ● 2000년대 손장섭의 작업은 나무들과 자연 풍경을 집중적으로 탐구한다. 그의 이러한 작업은 그를 민중미술 작가로 분류하도록 만들었던 1980년대 역사화 연작과 비교해 보면 많은 사람들에게 다소 낯설게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손장섭의 작품 전반에 관한 글은 성완경, 『삶의 길, 회화의 길: 손장섭』(샘터아트북, 1991)을 참조. 손장섭의 1980년대 역사화 연작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는 『삶의 길, 회화의 길』에서 4장 「조선총독부」와 7장 「역사의 창」 연작을 참조.) 그렇다면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이러한 차이 혹은 변화는 어떻게 이해되어야만 할까? 작가 손장섭은 초기 자신의 작품세계를 규정했던 민중미술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미술적 실천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가? 어떤 면에서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탐구하고 재현하는 주제들의 변화가 그의 작가정신과 작품세계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손장섭_울릉도 향나무 Juniperus Chinensis in Ulleungdo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45×112cm_2012


사실 자연사물과 풍경은 민중의 역사와 삶을 표현하였던 1980년대의 역사화 연작 시기에서도 손장섭의 주요한 탐구대상이었다. 이 시기에 이 자연 풍경은 당시에 손장섭이 주제적으로 그려냈던 민중들의 삶의 터전과 환경으로 등장하였다. 말하자면, 손장섭에게 자연 풍경은 현실의 삶과 역사에서 유리된 관조적 대상이 아니라 민중의 삶과 역사가 전개되고 있는 터전이자 그 역사가 배어있는 환경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손장섭이 나무와 풍경을 그리는 것 자체는 민중미술로부터의 탈피가 아니라 반대로 민중미술을 실천하는 손장섭 고유의 방식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손장섭_인천 남동구 은행나무 Maidenhair Tree in Namdong-gu, Incheo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62cm_2016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2000년대 나무 연작과 풍경화 연작은 1980년대 작품들과 비교하여 분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1980-90년대 풍경화에서는 풍경과 민중의 삶이 직접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가령 「그물 손질하는 어부」(1989)와 「개울가 고추밭」(1990)과 같이 이 시기의 풍경화는 농부와 어부가 일하는 풍경이나 노동의 장소를 주로 다루었다. 또는 분단의 풍경과 일하는 사람들을 한 화면에서 결합시킴으로써 (가령 「철책과 굴조개 따는 여인들」(1990)), 작가는 한국의 자연 속에 첨예하게 살아있는 분단의 역사를 형상화해낸다. 반면에, 2000년대 작품들에서 나무와 자연 풍경은 하나의 배경이나 터전으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가 중심적인 주제가 되고 있다.



손장섭_산신목 Tree of the Guardian Spirit of a Mountai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62cm_2008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앞에서 말했듯이 손장섭에게 자연은 민중의 삶과 역사와 분리되어 나타나지 않는다. 이 둘의 관계를 이해하는 방식에서 손장섭의 2000년대 작품은 중요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1980년대에 자연은 민중의 삶의 터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과 민중은 서로 유기적 관계 속에서 표현되었다. 그러나 2000년대 작품들에서 자연은 민중의 삶의 배경이 아니라 민중 자체와 동일화된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서 소위 민중의 삶을 직접적으로 지시하는 요소들은 거의 사라지고 나타나지 않는다. 그 자연이 곧 민중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민중을 이해하는 작가 손장섭의 시선은 자연을 바라보고 그리는 시선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손장섭_변산 신목 Sacred Tree in Byeonsa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3×91cm_2013


그렇다면 이 나무와 풍경을 통해 그려지는 민중은 어떠한 것인가? 1980년대 역사화 연작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민중은 억압받고 고통받는 존재로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그 억압에 저항하는 전투적 모습으로도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손장섭이 그리고 있는 저 나무들과 산들처럼 민중은 침묵 속에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이 침묵은 어떤 무능력이나 수동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반대로, 그 어떤 저항보다도 강력한 저항, 그 어떤 능동적인 행위보다 더 능동적인 존재로 나타난다. 요란하지도 않고 아우성치지도 않지만 500년을 넘게 한 자리에서 자신을 지키며 존재하는 저 나무들, 그것은 역사와 삶의 주체인 민중의 모습 자체인 것이다. 손장섭은 저 나무들과 자연 풍경 속에서 민중이 자연과 함께 가지고 있는 이 생명력과 힘을 포착해낸다. 이 근원적 힘은 고요하지만 역동적이다. 작가 손장섭은 여기에서 어떤 정신적인 숭고함을 보고 있는 것이다. ■ 유혜종


Painting as Tangible Vestige of History: SON Jang Sup’s Paintings from the 2000s ● Son Jang Sup focuses on trees and landscapes in his works from the 2000s. These works may feel rather unfamiliar compared to Son’s well-known history paintings from the 1980s, which categorized him as a Minjung artist, an artist of the people. How should this visible distinction or transition between the two groups of works be interpreted? Is it that Son is deviating from his defining earlier Minjung art and practicing a new path for his oeuvres? While this appears to be so, the transition of his works’ subjects does not signify the alteration of his overall artistic practice and oeuvres. ● In fact, nature and landscapes were Son’s primary subject even in the 1980s, the period in which he created the historical painting series. The nature and landscape in his works from this period were the foundation of life and of his principal subject, the people. In other words, nature was not an introspective subject disengaged from life and history; instead, it served as a site and foundation of ongoing life and history of the people, the grounds from which this ongoing life and history has been unfolded. With this perspective, Son’s painting of trees and landscapes is not breaking away from Minjung art. Instead, it is Son’s unique method of practicing Minjung art. ● Nonetheless, Son Jang Sup’s tree and landscape series from the 2000s are clearly distinct from his earlier works. In the earlier landscapes, nature and the people’s lives are directly united, usually depicting the site of labor for farmers or fishermen. Examples are seen in his Fishermen Tending Their Nets (1989) and The Pepper Farm by the Brook (1990). In another aspect, Son fuses the scenery of national division between South and North Korea with laborers into one picture screen, as seen in Security Fence and Women Picking Oysters (1990), embodying the acute reality of the division in his work. However, trees and nature themselves become the main subject matter in Son’s more recent works, rather than just background or the grounds for the people’s labor and living. ● So how could this shift be interpreted? As mentioned before, nature in Son Jang Sup’s work is closely connected with the history of the people. In Son’s recent works from the 2000s, nature shifts from a background for the people’s life and becomes the people themselves. For that reason, the elements that signify or are directly related to the lives of the people disappear in his works. In short, Son’s understanding of the people is reflected in his works through his observation and representation of nature. ● With this idea in mind, what is the meaning of the people depicted as trees and landscapes? The people are not depicted as oppressed or suffering, nor as resisting and antagonistic, as they were in Son’s historical paintings from the 1980s. Instead, the people are depicted as silent as the trees and mountains in his later work. However, this silence does not imply incapacity or passivity. In fact, it signifies just the opposite. The silence represents the most powerful resistance and the most determined and energetic force of the people. The calm and non-boisterous tree that exists and protects itself in one place for over 500 years is the very image of the essential force of history and life: the people. Son Jang Sup grasps the vitality and strength of the people and symbolically equates it to nature’s force and strength, a force evident in his trees and landscapes. His work captures this essential power as silent and tranquil, yet always as dynamic, embodying the spiritual sublimity of this force in his work. ■ Hyejong Yoo



Vol.20170517e | 손장섭展 / SONJANGSUP / 孫壯燮 / painting




지난 30일 오후5시, 광화문광장에서 ‘궁핍현대미술광장’ 개관전이 열렸다.
24일 문을 열었지만, 열림식은 뒤늦게 가졌는데 전시장은 미어 터졌다.
워낙 궁핍하다보니, 자리가 좁아 다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찾아오신 분들도 한 눈에 다 알아볼 수 있는 분이었다.
백발투사 백기완선생을 비롯하여 원로화가 손장섭, 주재환선생, 민중미술의 거목 신학철화백,

그리고 박불똥, 류연복, 장경호, 이인철, 정영철, 양혜경씨등 많은 분들이 자리하여 궁핍한 정치의 멱살을 잡았다.

사람만 많은 게 아니라 작품들도 빼곡했다. 회화, 판화, 사진, 시, 포스터, 신문 등이 골고루 벽면을 장식했다.
입구 정면에는 송경동시인 의 시 ‘폴리스라인'이 걸려있다. '이제 그만 그 거대한 무대를 치워주세요/

우리 모두가 주인이 될 수 있게/ 작은 사람들의 작은 테이블로 이 광장이 꽉 찰 수 있게/

이제 그만 연단의 마이크를 꺼 주세요/ 모두가 자신의 말을 꺼낼 수 있게/

백만 개의 천만 개의 작은 마이크들이 켜질 수 있게'라고 노래하고 있었다.

판화가 이윤엽씨의 작품들도 눈길을 끌었다.

결의를 다지게 하는 주먹과 절규하는 모습, 다양한 풍자로 보는 이의 분발심을 일으켰다.

한쪽 벽면에는 시민예술가들이 벌여 온 다양한 광장의 기록을 담은 정태용씨의 사진이 걸려있었고,

노순택씨의 대형 사진 한 장은 공권력의 가혹함을 해부하고 있었다.

‘박근혜 전격구속’, ’박근혜 옥중편지 단독입수‘ 등 한 발 앞서 가는 광장신문 호외판 전시도 눈길을 끌었다.

군데군데 최병수씨의 날카로운 철제 작품들도 세워져 있었다.

결의를 다지게 하는 백기완, 신학철선생의 말씀에 이어 송경동, 이윤엽, 노순택, 최병수씨 등

참여 작가들이 차례로 나와 인사말을 했는데, 사진가 노순택씨의 절규에 가까운 사연도 들었다.

‘타임’표지를 풍자한 박근혜, 최순실, 이재용을 담은 작품을 전시장 외벽에 붙였는데,

어느 날 새벽, 누군가의 예리한 칼로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새로 만들지 않고 언 손을 녹여가며 한 땀 한 땀 꿰맸다고 한다.

그 따위 비겁한 탄압에 굴복할 전사로 아직까지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개관전인‘내가 왜’란 설명문의 마지막 글귀가 다시 한 번 묻고 있다.
“당신은 지금 여기에, 왜 서 계신가요. 우리는 지금 여기에, 왜 서 있을까요.”

사진,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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