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숨어있던 서양화가 김종숙씨의 '속초다'전 개막식이 지난 28일 오후5시, 인사동 아라아트 전시장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전시장에는 김종숙씨를 비롯하여 기획자 박인식씨, '아라아트'대표 김명성씨, 출판인 정광호, 이규상씨, 만화가 박재동씨. 도예가 황예숙, 김희갑씨, 사진가 임채욱씨, 시인 송상욱씨, 김정남, 이상철씨등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김종숙씨는 강원대미대를 졸업한 후 20대 중반부터 홀로 아들을 키우느라 갖가지 ‘막일’을 해왔단다. 황태덕장 등에서 생선을 다듬고 갈무리하는 일부터 식당의 서빙까지 닥치는 대로 했단다. 고등어, 꼴뚜기, 가자미, 대구, 말린 도루묵, 명태, 열갱이 등등 화폭 속에서 비린내가 느껴질 정도로 살아 펄덕이는 갖가지 생선들은 화가의 남다른 체험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전시를 기획한 박인식씨는 '나는 꾸덜꾸덜함과 쿰쿰함에 이미 중독되었다”고 표현해 놓았다.

 

 

 

 

 

 

 

 

 

 

 

 

 

 

 

 

 

 

 




 

(왼쪽부터) 화가 김종숙 씨, 기획자 박인식 씨. 사진 김경애 기자

[짬] 첫 초청개인전 ‘속초다’ 여는 화가 김종숙 씨, 기획자 박인식 씨

낯선 이름의 화가로부터 전시회 초대장이 왔다. ‘속초다’라는 전시회 제목과 작품 사진에서 드러나듯, 강원도 속초에 사는 김종숙(50)씨가 속초의 사람과 자연을 그린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초대인이 따로 있다. 그것도 무려 4명, 문화계에서 알아주는 이름들이다. 소설가이자 미술평론가 박인식씨, 아라아트센터 김명성 대표, 도서출판 낮은산 정광호 대표, 사진작가 임재욱씨다. 더구나 작가의 첫 개인전이자 아라아트센터의 기획 초대전이다.

“작품을 처음 보는 순간 ‘바로 내가 찾던 그림’이었고, 지금은 사라져버린 ‘정통 화가’를 발견했다는 직감이 왔어요. 보는 사람마다 ‘여자 고흐다’, ‘고흐+고갱이다’ 감탄들 합니다.”

초대전의 기획자이기도 한 박씨는 작품 못지않게 흥미로운 화가의 이력과 전시회 사연을 들려줬다.

미대 나와 속초서 혼자 작업해온 김씨
여고동창생들이 몰래 그림들고 상경
무작정 인사동 돌며 ‘전문가’ 수소문

작품 본 순간 감탄한 평론가 박씨
화랑 대표 등과 함께 ‘초대전 삼고초려’
“드문 정통 화가·회화 정신에 중독”

‘지난해 여름 화가의 속초여고 동창생 2명은 ‘물고기 그림’ 2점을 몰래 싸들고 무작정 상경했다. 친구의 작품이 골방에 숨겨두기엔 너무나 아까웠기 때문이다. 인사동의 화랑과 공방들을 돌아다니면서 그림을 가장 잘 보는 전문가를 수소문했다. 마침 한 공방에서 친분이 있던 박씨를 연결해줬다. 그림을 본 순간 감탄한 박씨는 곧장 아라아트 쪽에 초대전 기획을 제안하고, 속초로 달려가 화가를 만났다. 그런데 정작 화가는 동창생들에게 화를 내며 고개를 저었다. 박씨와 주위 사람들의 설득에 못 이겨 동의를 했던 화가는 인사동 아라아트센터 5층 전시공간을 보더니 또다시 고개를 저었다. “너무 넘치는 공간”이라는 이유였다. 이번에는 화가가 삽화를 그린 동화책 <그 꿈들>(글 박기범)의 출판사 대표인 정씨와 전시회 도록의 사진을 찍은 임씨도 가세해 초대인을 자원했다.’

그렇게 반년에 걸친 삼고초려 끝에 ‘은둔 화가’가 50년 만에 세상 속으로 나온 것이다.

전시회 개막 전날인 24일 전시장에서 만난 김씨는 여전히 주저하고 있었다. 1965년 속초에서 태어나 강원대 미대를 나와 ‘글과 그림’ 동인으로 활동하며 꾸준히 그림을 그려온 경력을 보면 첫 개인전이라는 게 의아스러울 지경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이제야 겨우 그림을 어떻게 그리면 되는지 알 것 같은데 대뜸 세상에 내놓기가 겁이 나요.”

그렇다고 다른 생업이 있거나 그림을 팔지 않고도 될 만큼 경제적 여력이 있거나 든든한 후원자가 있는 것도 전혀 아니였다. 오히려 20대 중반부터 홀로 아들을 키우느라 갖가지 ‘막일’을 해왔단다. 동해안 대표 항구도시인 만큼 황태덕장 등에서 생선을 다듬고 갈무리하는 일부터 식당의 서빙까지 닥치는 대로 했단다. 고등어, 꼴뚜기, 가자미, 대구, 말린 도루묵, 명태, 열갱이 등등 화폭 속에서 비린내가 느껴질 정도로 살아 펄덕이는 갖가지 생선들은 화가의 남다른 체험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마치 붓이 아니라 손가락이나 손바닥의 힘으로 물감을 통째로 찍어 놓은 듯한 그의 작품에 대해 박씨는 “나는 그 꾸덜꾸덜함과 쿰쿰함에 이미 중독되었다”고 표현해놓았다. “순수 회화에서 느낄 수 있었던 손맛이랄까 사람 냄새랄까, 80년대 이후 화단에서 보기 힘들어진 질감이 잘 드러나 있어요. 그것도 아주 기운차게.” 아라아트의 김 대표도 “회화의 원형과 정신이 살아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화가가 지금껏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지켜올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김씨는 인생의 멘토들 덕분이라고 소개했다. 여고 시절 은사인 김경희 교사와 그의 남편인 고 황시백 선생이었다. 전교조 창립회원으로 강원지역 지부장을 지냈던 황 선생은 교단에서뿐만 아니라 지역 문화계에서 존경받는 어른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리는 게 좋았고 그래서 미대에 입학도 했지만, 누구나 그랬듯이 80년대 중반의 대학에서 공부에만 몰두하기는 어려웠죠. ‘반문명’이랄까 일종의 치기도 있었고요. 그래서 그저 혼자 그렸어요. 재미도 있었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그리는 것뿐이었으니까요.”

이번 전시에서 함께 소개하는 동화 <그 꿈들>의 원화들에서는 사람에 대한 화가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작가 박기범씨가 ‘인간방패’ 체험을 바탕으로 이라크 소년들의 꿈을 담은 이야기인 이 작품의 삽화들로, 2014년 전국 순회전을 하기도 했다.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민중미술 이후 길을 잃은 회화의 원형을 찾아갈 겁니다. 때로는 막히고 절벽을 만날지도 모르지만, 한눈팔지 않고 뚜벅뚜벅 가고 싶습니다.”

김씨의 목소리는 낮고 어눌했지만 그 속에 담긴 강한 예술혼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작품은 새달 17일까지 서울 인사동 아라아트센터 5층에서 볼 수 있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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