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백암길사람사진관’ 개관을 기념하며 입주 신고식으로 가진 

‘사람사는이야기’ 설치전이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정해진 일정을 잘 마무리했다. 

 

야외에 설치한 사진이라 현충사 둘레 길을 산책하는 분들이 쉽게 볼 수 있어, 

아산 현충사 둘레 길의 야외전시장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돈 한 푼 없는 처지에 전시를 치룰 수 있었던 것은 ‘예술인복지재단’의 지원금 덕이었다. 

 

3백만 원에 불과하지만, 그걸 바탕으로 주변의 도움을 받아 어렵사리 치루 게 되었다. 

 

그러나 지원금을 받기위한 난감한 일도 감수해야 했다. 

 

연노한 지원금 선정자들을 대상으로 성교육을 시켰는데, 

성기능이 사그라진 늙은이들에게 손자 같은 애들이 교육시켰다.

 

다들 지원금을 받기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두 시간 가까이 곤욕을 치루어야 했다.

 

주입시킨 성 교육이란 프로그램이 현실적으로 체감할 수 없는 내용인데, 

딱 하나 수긍되는 말은 성을 예술로 위장한다는 말이었다. 

 

성을 예술로 위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전시도 처음엔 미투의 폐해를 말하는 신체발언전인 ‘말하다’로 정했으나, 

이 또한 스스로의 실책에 발목 잡혀 ‘사람 사는 이야기’로 바뀐 것이다. 

 

 사람들에게 양면적인 면이 다소 있겠으나, 나는 유독 야누스 같은 두 얼굴을 가졌다. 

 

사람에 대한 일에 대해서는 철저한 원칙주의자지만, 

사적으로는 자유롭고 낙천적인 삶을 살아온 성개방주의자다. 

 

죽고 나면 아무 소용없다는 생각에서 즐겁게 사는 것을 최고로 친다. 

 

그리고 여태 저축이란 걸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지금이야 돈 벌 능력도 없지만, 돈을 잘 벌던 젊은 시절도 돈은 생기면 생기는 데로 썼다. 

 

영화, 음악, 사진 등 어느 한곳에 미치면 다른 것은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개인주의적 삶을 살아 늙어 가난하게 살지만,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다. 

 

정선 화재로 아끼던 것을 모두 잃기도 했으나, 한편으론 홀가분한 생각도 들었다. 

 

아무것도 없다는 홀가분함이란 모든 두려움에서 해방시켜주었다. 

8년 전 쪽방에 들어오고 부터 오히려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지금은 아산 김선우 덕에 ‘사람사진관’을 만들어 왔다 갔다 하지만, 죽을 준비 중이다. 

 

화가 장경호씨 말처럼, 김선우가 나를 요양하는 요양원 원장이나 마찬가지다. 

원장 말은 잘 들어야 하니, 순한 양처럼 길들어 가는 것이다.

 

이제 겨울이 오면  쪽방으로 돌아갈 것이다.

 

겨울철은 농사일도 없는데다, 전시장도 누구나 오가며 쉽게 볼 수 있어 지킬 필요가 없다.

서울의 쪽방 두고 보일러 기름 태워가며 아산에 머물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동안 등한시한 동자동 일이나 사람 사는 일을 기록하며 마무리하고 싶다.

 

행여 아산을 지나친다면 ‘백암길사람사진관’에 들려 잠시 쉬어가시라.

 

전시된 ‘사람 사는 이야기’사진들을 돌아보며,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도 갖기 바란다.

준비된 방명록에 추억의 말씀도 한마디 남기시고...

 

사진, 글 / 조문호

 

 

어쩔 수 없어 치룬 아산 백암 길 사람 사는 이야기사진 설치전이 많은 분의 도움으로 잘 마무리했다.

 

바쁜 중에도 어려운 걸음 해주신 분들과 멀리서 성원해 주신 많은 분께 고마움을 전한다.

또 하나의 빚을 짊어졌지만, 백암 길에서의 만남은 잊을 수 없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모든 게 넘치면 안 되듯, 행복도 과하면 힘들었다.

 

엊저녁에는 모든 일을 마무리 하고 서울로 올라와 자고 또 잤다.

죽으면 끝없이 잘 텐데, 무슨 잠이 그리 많이 오는지 모르겠다.

 

예전 같았으면 하루가 멀다 하고 노닥거리던 컴퓨터조차 켜기 싫었지만,

일주일 동안 찍은 분들의 안부에 등 떠밀려 좌판기를 두드린다.

 

지난 화요일에는 늦게 사 일어나 아산 갈 준비를 서둘고 있었는데,

사진가 양시영씨가 넋전 춤 양혜경씨를 모시고 아산 백암길 전시장에 도착했다는 전갈이 왔다.

 

야외에 걸린 사진 보러왔다면 양해를 구하겠으나,

사방에 길을 뚫는 굿을 하러 왔다는데, 어찌 그냥 보낼 수가 있겠나?

옆에 있는 현충사부터 구경하길 부탁해 놓고, 휴게소까지 마다하며 달려갔으나,

마음은 급한데 차까지 밀려 안절부절 하게 만들었다.

 

현장에 도착하니 양혜경씨를 비롯하여 사진가 양시영, 박종진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양혜경씨는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이며 한국전통넋전춤연구소소장으로

긴 세월동안 용미리 무연고자 묘역의 합동 위령제를 백번이 넘도록 치룬 의인이다.

 

불쌍한 원혼들의 맺힌 한을 풀어주었으니, 그 춤이 어찌 영험하지 않겠는가?

 

함께 온 박종진씨는 얼마 전 펴낸 숙명에서 고려를 보다사진집 한권을 선물 했다.

 

김선우가 준비해 둔 음식으로 식사부터 한 후, 이야기 나눌 틈도 없이 굿판을 벌였는데,

양혜경씨 어께에 앉은 앵무새가 길조를 예언하는 듯 했다.

 

양혜경씨가 직접 오려낸 종이각시를 들고 버선발로 마당에 내려섰다.

산자와 죽은 자의 길을 터는 넋전 춤으로 사방에 길을 터는 도리뱅뱅이 굿을 시작한 것이다.

 

길을 열어 백암길사람사진관으로 사람이 몰려오기를 바라는 기원 굿이었다.

그녀의 간절한 염원이 한 자락 가을바람에 휘날렸다.

 

굿이 끝난 후, 돌아가신 심우성 선생 이야기로 꽃을 피우기도 했다.

 

힘들여 굿을 해 주셨지만, 사례는커녕 인사도 제대로 드리지 못했다.

 

저녁 무렵에는 스마트협동조합서인형 이사장과 전방위예술가 이익태선생께서 오셨다.

 

귀한 술까지 챙겨 먼 길을 오셨는데, 삼겹살을 구워 대마불사주를 대접했다.

 

장작 타는 소리를 음악 삼아 저물어가는 가을밤 정취에 빠져들었으나,

운전에 발목 잡혀 술 한 잔 마시지 못하는 서인형씨가 마음에 걸렸다.

 

마침 양평에 사는 사진가 정인숙씨가 손님을 한 분 모시고 왔는데,

그 역시 느닷없는 병마에 시달리다 술을 끊은 처지라 술도 한 잔 권할 수 없었다.

일전에 인사동에서 만날 때보다 훨씬 건강이 좋아진 것 같았다.

 

다 떠나고 난 후, 정동지와 단둘이 호젓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지나가던 마을버스 기사가 차를 세우고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었다.

 

오라고 손짓하니 시동을 켜둔 채 내렸는데, 끝내고 집으로 가는 길이란다.

대마불사주 한 잔 따라주었더니, 단숨에 들이켰다.

술이 아까운 게 아니라 기사 술 먹이는 죄가 무서워 더 이상 권할 수도 없었다.

 

그 다음 날은 소설가 임헌갑씨가 친구 홍선생을 모시고 왔다.

마땅한 안주가 없어 시장에서 전어를 사와 구워 먹으면 어떨까?” 했더니.

홍선생께서 대신 갔다 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다.

무려 두 시간이 지나서야 돌아왔는데, 전어가 없어 시장을 헤매고 다닌 것 같았다.

돌고 돌아 전어를 구해 왔는데, 괜히 전어 이야기를 꺼내 홍선생만 고생시켰다.

 

그런데다 사진집까지 여러 권 구입해 주셨는데. 고맙다는 인사가 고작 성적 말장난이었다.

임헌갑씨는 해학으로 돌리지만, 죽기 전엔 고치지 못할 큰 병이다.

오래된 영화제목이 생각난다. “다정도 병이련가?”

 

자고 일어나 정신 나간 사람처럼 서성이고 있었더니, 화가 류연복, 손기환, 김석환씨가 찾아왔다.

갑자기 찾아 온 손님이라 미처 준비할 겨를도 없었는데,

어제 먹다 남은 전어 세 마리를 안주로 대마불사주 한 잔 했다.

 

부안에 갈 일이 있다며 일어서고 나니 성혜선씨가 다녀가셨다.

 

기아 노동자로 일하는 사진가 황상윤씨를 비롯하여 평택에 계신 임성일씨도 오셨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거리를 둔 채 지켜보던 마을 분들의 관심이었다.

단감을 선물하는 분도 있었고, 간간히 찾아와 사진을 유심히 지켜보는

모습에서 허튼 짓은 아니었다는 위안이 되었다.

 

마지막 날에는 서울에서 정동지가 내려와 다 같이 쫑파티를 했다.

선우와 이현이가 준비해 온 돼지수육으로 저녁을 맛있게 먹었으나, 다들 술은 마실 수 없었다.

식사가 끝난 후 모닥불에 둘러앉아 김창복선생의 생명사상에 관한 강의를 듣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전시 때문에 여러 사람 고생시켰지만, 다들 고맙고, 고맙습니다.

 

전시는 끝났으나 다음 전시가 이어질 봄까지 사진은 걸려 있으니, 지나치는 걸음에 보셔도 됩니다.

술이나 차 한 잔 하시려면 제가 상주하는 목요일부터 주말에 오시면 됩니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사람 사는 이야기사진 설치전이 지난 24일 막을 올렸다.

전시를 여러 차례 해 보았지만, 이번 처럼 힘든 전시는 처음이다.

 

경비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지원금으로 해결할 수 있었으나,

몸이 송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죽더라도 전시는 열어놓고 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주눅들어,

어떻게 준비했는지도 모르겠다.

 

오죽하면 전시장 찾은 손님 받는 게, 상가 문상객 받는 기분이었다.

차라리 그랬다면 대마불사주라도 마음껏 대접할 수 있고,

손님도 두 번 걸음 하지 않아도 될 것인데...

 

여러 사람 고생만 시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불편한 이곳까지 오라는 말도 부담스럽지만, 오셔도 손님 맞을 일이 걱정되었다.

 

음식이야 김선우가 준비했지만, 술을 끊었으니 술 고문을 어떻게 당하느냐도 관건이었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이곳에 오는 교통편과 숙박이었다.

 

승용차로 오면 술을 마실 수 없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엔 불편한 점이 너무 많았다,

일만 없다면 역까지 마중 갈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한가롭지 않을 것 같았다.

 

일단 일을 벌였으니 죽을 각오로 최선을 다하기는 했으나, 식구들이 고생 많이 했다.

전 날밤은 김창복, 김선우, 양이현, 김평 등 온 식구가 동원되었는데,

힘들게 길 낸 가마솥에다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안도의 한숨을 쉰 것이다.

 

전시 날자는 기다려주지 않고 어김없이 찾아왔는데,

문 열자마자 세종시에 산다는 오세인씨가 오셨다.

 

이광수씨 페북을 보고 알았다는, 첫 손님의 진지한 관람에 기분이 좋았다.

커피 한 잔 드렸더니, ‘두메산골사람들사진집도 한 권 사주었다.

 

이어 홍유선, 김현아씨가 다녀가고 나니, 소설가 임헌갑씨가 심영태씨와 같이 오셨는데,

지리산 막걸리를 두 박스나 가져오셨다.

 

때맞추어 온 완주의 사진가 김종신씨는 오다 보니 안내 현수막이 없더라며

현수막 두 개를 주문해 주었다.

 

임헌갑씨 일행은 온천장에 숙소를 잡았으나,

김종신씨는 캠핑 카에서 지내기로 하고 술자리를 만들었는데,

모처럼 옛이야기를 안주 삼아 늦은 시간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임헌갑씨는 지난번에 주지 못한 책이라며, 인도로 가는 동안이라는 연작 소설을 한 권 주었다.

 

초대일인 26일에는 마산의 변형주씨가 마산 중리 막걸리를 가져왔다.

유목민전활철씨가 준 '느린마을' 막걸리와 '송명섭' 막걸리 두 박스에다

우리가 준비한 소주와 맥주를 비롯한 대마불사주에 이르기까지 곳곳의 명주가 다 준비되었다.

 

'사람 사는 이야기' 전시가 아니라 사람 사는 주막 같은데, 아무래도 술은 남아돌 것 같았다.

 

이튿날은 화가 신상덕씨와 정복수씨, ‘사진바다곽명우씨,

사진비평가 이광수씨가 연이어 오셔서 전시장 분위기가 한결 무르익었다.

 

정복수씨는 나무화랑에서 진행한 프로젝트인 초상화를 전복하는 초상화 작품집을 선물했다.

역시 고생한 보람이 느껴지는 훌륭한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마운 것은 이광수교수로 부터 받은 따끈따끈한 선물 '따마스' 사진집이었다.

 

무겁게 마음을 휘어잡는 사진에서 '악의 꽃'이 연상되었다.

스토리의 연관성보다, 인간은 악이지만 꽃처럼 아름답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기존의 전시형식에서 벗어난 좋은 사진전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늦게는 뮤아트김상현씨와 기타리스트 김병수씨가 나타났다.

인사 나누기가 무섭게 시작된 두 분의 협연은 가을밤의 정취를 무르익게 했다.

김상현씨의 아코디온 연주에 덧붙인 김병수의 기타 음율은 애간장을 녹였다.

 

그런데, 수술 후 한 번도 불러보지 못했다는 김상현씨가 처음으로 노래를 불렀는데,

예전보다 음색이 훨씬 깊어졌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옛말이 딱 맞았다.

특히 하얀 목련은 듣는이의 심금을 울려 준 절창이라, 우리 식구만 듣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모닥불 앞에서 듣는 협연이라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새벽닭이 울어 시간을 보니, 새벽 네시가 훌쩍 넘었더라.

편치 않은 몸으로 먼 길까지 달려와 준 것만도 고마운데, 너무 고생하셨다.

 

그들의 뜨거운 음악 사랑과 깊은 인정에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잠깐도 눈을 붙이지 못하고 떠나는 뒷모습에 마음이 아렸다.

 

그다음 일요일에는 일찍부터 유목민의 전활철씨가 술안주를 잔뜩 짊어지고 왔는데,

좀 있으니 사진가 고영준씨는 친구들을 데려 왔고,

우기곤씨 역시 사우 여러 명을 데리고 나타났다.

 

뒤이어 전통무예가 하태웅씨가 지리산에서 오셨고,

시인 이은정, 전태수, 홍대춘, 서정란씨 등의 문인들과 사진가 마동욱, 김영숙 내외,

화가 칡뫼 김구, 함상규, 고선애, 최보현, 박효링, 권현석, 노인자, 송춘애,

박귀옥, 엄근배, 성혜선씨 등 많은 분이 다녀가셨다.

 

오는 1113일부터 26일까지 인사동 나무화랑에서 황무지, 우상의 벌판개인전을 여는

화가 칡뫼 김구는 열차와 택시를 갈아타며 어렵사리 오셨는데, 가제본 된 책을 가져왔다.

 

손님이 한꺼번에 몰려 한 자리에 오래 머물 수도 없었지만,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아무래도 손님 접대가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다들 떠나고 나니 죄송스러운 마음만 남았다.

 

오죽하면 전시 시작한 지 며칠 동안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기는 커녕 들여다볼 틈도 없었다.

 

그 뒤 이틀 동안 오신 분 사진 역시, 정리할 시간이 없어 주말까지 찍은 사진만 올리는 것이다.

끝나는 날까지 마무리하려면 두 번은 더 소개해야 할 것 같았다.

 

빚진 생각에 마음은 무겁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을 어쩌겠는가?

시간이 맞지 않은 분을 위해 주말인 113일까지 연장하기로 했으니,

가을 가기 전에 나들이 한 번 해도 좋을 것 같다..

 

다들 성원해 주셔서 고맙고 고맙습니다.

아무쪼록 깊어가는 현충사의 가을을 오래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 조문호

 

 

전시 일자가 다가오나 준비작업에 진도가 나가지 않아 걱정했으나, 다행스럽게 잘 마무리했다.

 

지난 일요일 오전에는 기웅서씨가 앵글 작업을 마무리해주자,

오후에는 김창복씨와 양이현이는 물론 평이 까지 함께 도와 밤늦도록 일했다.

 

김창복씨는 감나무를 가리는 패널 제작 등 어려운 일을 맡아 주셨고,

이현이와 나는 현수막 사진 묶느라 죽을 고생을 했다.

 

어두워 머리에 전등을 달고 일했는데, 마무리하고 나니 자정이 가까웠다.

 

다들 24시 해장국집에서 자정 무렵이 되어 저녁 식사를 한 것이다.

이런 강행군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는데, 살다 보니 별일도 다 있다.

 

나야 내가 벌인 일이라 감수해야 겠지만,

김창복씨와 이현이는 무슨 죄가 있어 이렇게 고생시키는지 모르겠다.

 

식사를 끝낸 후 정동지와 나는 서울로 올라와야 했다.

정동지도 아침 일찍 일이 있지만, 나역시 동자동에 볼일이 있었다.

늦게 먹은 저녁 탓에 졸음이 몰려오지만, 목숨 건 질주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는 이런 일을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하건만, 개 명세에 가깝다.

별 도움도 되지 않는 일 만드는 천성은 바꾸기 어렵기 때문이다.

모진 놈 탓에 주변 사람들만 힘들게 한다.

 

다들 불평 없이 도와주어 고맙고 고맙다.

 

사진, 정영신 / 글, 조문호

 

감나무야 미안하다.

​사람이 참 이기적이다. 문화란 이름으로 자연을 학대 한다.

설치전 한다며 만든 굴뚝이 감나무를 처다 봐, 가림 막을 세우고 이 글을 썼다.

생명체들이 인간의 이기에 의해 핍박 받는 일이 어디 이 뿐이겠는가?

인간보다 더 이기적이고 영악한 존재는 없을 것이다.

이광수교수는 인간을 악이라 규정하지만, 그런 악을 40여 년 찍어왔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좋아 사람을 찍었으나, 주변에 사람이 없다.

이런 저런 일에 마음 다쳐, 많은 사람이 멀어졌다.

잘 아는 가족이나 가까운 분일수록 그 폐해는 심했다.

남의 집 불 보듯 하는 세상에 나섰다가 독박 쓴 것이다.

내가 가진 가치관이나 생각이 옳다고 단정할 수도 없었다.

술 취해 벌인 여러 가지 폐해를 생각하니, 남 탓할 자격도 없었다.

교육과 도덕이 무너지는 세상이지만, 벙어리가 되기로 했다.

 

​‘사람 사는 이야기’ 설치전은 상처 입힌 자연과 인간에게 사죄하는 마지막 전시다.

지난 시간을 불러내어, 힘겹게 살아 온 아픔 속의 인간애를 돌아본다.

 

”돈 벌어 가족 먹여 살렸다“는 청량리 소녀의 하소연에서부터

”내 아들을 살려내라“는 김세진 어머니의 울부짖음도 있다.

”허리가 아파 누워 장사한다“는 장터 할머니,

”죽도록 고생해도 빚만 남았다“는 최덕남씨,

”세상에 믿을 건 두 손 뿐이다“는 정선의 최종대씨,

”춥고 배 고프다“는 노숙인 이덕영씨의 절규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힘든 서민들이 살아가는 애달픈 이야기다.

그리고 “몸은 저승에 보내고도 인사동에서 맴돈다”는 고)신경림 시인에서 부터

“예술은 오기, 무기, 놀기다“는 화가 박건씨의 말 등

인사동 사람들 이야기까지 곁들인 30여 점을 자연 속에 풀어 놓았다.

 

사람 사는 정이 메말라 가는 비정한 세상, 인간은 있으나 사람은 없다.

슬프지만 따뜻한 인간애가 모닥불처럼 피어오르는 한 가닥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시간 나면 차 한 잔 나누며 사람 사는 정을 나누자.

 

조문호

 

다시는 스스로를 내세우는 보여주기식 전시나 인터뷰는 하지 않기로 다짐했건만,

어쩔 수 없이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여러 사람을 힘들게 만든다.

 

며칠 전에는 온 식구가 동원되어 전시 준비 작업에 나섰다.

선우만 가게 일 하느라 동참하지 못했지, 다들 솥을 걸거나 칠을 하는 등 정신없이 바빴다.

김창복씨는 목공 일을, 기웅서씨는 용접일을, 이현이는 조경 일로 다들 고생했다.

용접할 자제가 부족해 마무리는 못했지만, 대략의 가닥은 잡혔다.

 

거지 처지에 남의 돈 까먹는 이 힘든 일을 왜 하는지, 하면서도 고개를 흔들어 댔다.

발단은 김선우가 만들어 준 아산 백암길 사람사진관의 개관식을 겸한 전시도

한번 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정선 집 화재 때 도움 주신 많은 분에게 드리는

보고 형식의 자리도 필요했다.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었는데,

마침 스마트협동조합에서 신청해 준 한국예술인복지재단 ‘2024 예술활동준비지원사업

선정되어 진행하였으나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르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지원금 삼백만원으로 준비하기도 부족하지만,

동자동에서 아산 백암길을 드나들며 준비한다는 것은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그보다 무슨 사진으로 무슨 말을 할지가 관건이었다.

전시 기획안부터 마련되어 추진하는 것이 순서겠으나.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

 

그래서 삼십 년 전에 찍었으나 제대로 발표하지 못한 신체발언사진을 꺼내

사회적 문제로 꼽히는 미투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로 했는데,

시골인 것도 걸리지만, 사진관을 만들어 준 선우의 입장도 고려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긴 세월 작업해 온 전체 사진에서 주요 사진만 추려내어 그때 말을 되새기는

말한다사진 설치전을 열기로 결정한 것이다.

단지 신체발언사진은 내 사진 한 점만 숲속에 내걸어 당사자 문제를 제기하기로 했다.

 

그러던 중 진안 계남정미소에서 열린 정영신의 진안 그 다정한 풍경

작가와의 대화에 따라갔는데, 그날 밤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 자리에서 오래된 사우 김종신씨를 만나 완주 자택에서 자기로 하고 술을 마셨는데,

술만 마시면 발동하는 성적 발언이나 장난 끼가 도진 것이다.

그것도 여러 사람 있는 자리에서 딸 같은 선우에게 큰 상처를 입히고 말았다.

그 당시는 심각한 상황도 인식하지 못한 채 며칠이 지났는데,

뒤늦게 선우로부터 장문의 이메일을 받아 보며 화들짝 놀란 것이다.

선우에게 사죄하고, 앞으로 술을 완전히 끊기로 하고 덮었으나, 그냥 넘길 문제는 아니었다.

 

난, 성 개방주의자로 성 문제를 경직시키는 현실에 늘 불만을 가진 사람이다.

술자리에서 좌중을 웃기려고 가끔 성 문제를 거론해 말썽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오래된 술버릇이라 잘 고쳐지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잘 이해되지 않는 것은, 평상시에는 샌님처럼 말도 잘 하지 않다가

술만 한 잔 들어가면 백팔십도로 바뀌어 버린다는 사실이다.

 

술 취해 돼지 목따는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성을 안주 삼아 별 지랄을 다 한다.

다행히 돈도 권력도 명예도 없어 살아남았지,

아니었다면 벌써 미투에 걸려 매장되었을 것이다.

이번에 크게 깨달은, 뒤늦은 반성으로 평생 즐겨온 술마저 끊었지만,

미력하지만 그 문제를 개선하는데 힘을 보태고 싶다.

 

사회적 문제가 된 미투가 성 의식을 바로잡아 성차별을 없애는 데는 이바지했으나,

정치적이거나 개인적 목적에 의해 생사람 잡는 경우도 많았다.

더 큰 문제는 아름다운 성 문제를 경직시켜 남녀 간의 큰 벽을 만들었다.

사람답게 살자는 바람직한 운동이 남녀 간의 애정을 가로막는 역효과를 낸 것이다.

 

일단 이번 전시에 내 걸기로 한 사내 알몸 사진은 걸지 않기로 했지만,

언젠가 다시 보충 사진을 찍어 제대로 된 전시와 심포지움을 열어,

페미니즘 문제의 가해자로 낱낱이 고백하는 단두대에 서겠다는 것이다.

바라건대, 다시는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만들어,

경직된 남녀 문제에 봄바람을 일으키고 싶다.

 

건강이 그때까지 지탱해 줄지 모르겠으나 돌팔매는 나중에 맞기로 하고,

이번에는 사람 사는 이야기로 전시를 치루게 되었다.

 

평생 작업해 온 사진에서 추려 내 자연 속에 설치하는 전시인데,

전시장에 갇힌 사진에서 야외로 끌어내는 전시다.

동자동 빨래 줄 사진전에서 인사동 담벼락 전시에 이은 야외 전 행보다.

 

청량리에서 몸 팔던 소녀의 이야기에서부터 독재에 저항한 시민이나

살기 어려운 산골 농민이나 장터 사람들의 하소연,

거리에 내몰린 노숙인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그 시절의 인간애를 소환하는 전시다.

 

내 아들을 살려내라는 김세진 어머니의 울부짖음도 있고,

돈 벌어 가족 먹여 살렸다오팔팔김정숙씨의 하소연,

춥고 배 고프다는 노숙인 이덕영씨의 절규도 있다.

허리가 아파 누워 장사한다는 증평장의 정숙현 할머니,

죽도록 고생해도 빚만 남았다는 최덕남씨, ”세상에 믿을 건 두 손 뿐이다

정선의 최종대씨 등 대부분 힘든 서민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다.

그리고 예술은 오기, 무기, 놀기다는 화가 박건씨의 사진이나

막사발로 세계를 제패하고 싶다는 도예가 김용문씨 등

인사동 사람들의 투지가 포함된 30여 점의 사람사진이 자연 속에 설치된다.

 

사람 사는 정이 메말라가는 이 에이아이유령 세상에,

힘든 이야기지만 사람 사는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지나치는 걸음에 들려 차 한잔 드시며 사람 사는 정이나 나누자.

 

가을이 무르익는 24일부터 31일까지 백암길 사람사진관에 술상 차린다.

 

사진,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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