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의 나목’ 그 황량함에 대하여...사진전이 

 96일부터 23일까지 충무로2가에 위치한 아주특별한사진교실에 초대 전시되고 있다.

 

 먼저 나목이란 제목 자체가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온다.

소설가 박완서씨가 나목으로 등단하기도 했지만, 신경림 시인의 시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시각예술로는 박수근화백의 나목에 이어 사진가 임응식선생의 대표작이 줄줄이 떠오른다.

벌거벗은 나무로 벌거벗은 인간을 말한 그 상징성이...

 

1983년 발행한 '한국현대사진대표작선집'에 게재된 임응식선생의 '나목', 글은 고 이명동선생께서 쓰셨다 .

한국전쟁이 발발한 50년대 부산에서 촬영한 임응식선생의 나목은 포화에 불타버린 앙상한 가지에서

희망을 건져 올리려는 당시 시대상황을 대변했지만, 박종호의 나목은 사진으로 쓴 시에 가깝다.

 

박종호는 작가노트에 기다림은 희망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그 시간을 묵묵히 견뎌내며, 조용히 준비하는 것이다. 언젠가 다가올 그 봄을 말이다.

그 때가 오면 앙상했던 나목에는 푸르름이 가득하게 될 것이다.

나목은 우리에게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오히려 모진 겨울 한가운데 서서 그 시간을 인내하라고 한다.

그 속에 봄에 대한 희망을 간직한 채, 그 속에 생명을 간직한 채 말이다.

그렇게 나목은 찬란하게 빛날 그 봄을 기다리고 있다고 적었다.

 

 박종호의 작업노트를 읽다보니, 근원적인 인간의 모습이 나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모두가 나목처럼 벌거벗은 존재로 오지 않던가?

 

 박종호의 사진들은 잎을 모두 떨구고 매서운 추위를 견디는 앙상한 나목을 통해 인간의 삶을 성찰하고 있다.

이미지의 형상성이나 심미감에 앞서 작가의 삶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깔려있는 것이다.

 

아래 적힌 신경림시인의 나목시구처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목은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소외된 자들의 상징이고,

하늘을 향해 길게 팔을 내뻗은 것은 무언가를 간절히 기원하는 인간의 간구일 수도 있겠다.

 

 나무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서서

하늘을 향해 길게 팔을 내뻗고 있다.

밤이면 메마른 손끝에 아름다운 별빛을 받아

드러낸 몸통에서 흙 속에 박은 뿌리까지

그것으로 말끔히 씻어내려는 것이겠지

터진 살갗에 새겨진 고달픈 삶이나

뒤틀린 허리에 배인 구질구질한 나날이야

부끄러울 것도 숨길 것도 없어

한밤에 내려 몸을 덮는 눈 따위

흔들어 시원스레 털어 다시 알몸이 되겠지만

알고 있을까 그들 때로 서로 부둥켜안고

온몸을 떨며 깊은 울음을 터뜨릴 때

멀리서 같이 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전시는 9월 23일까지 열린다.

 

/ 조문호

 

박종호 나목그 황량함에 대하여...’

전시기간 202396-23(12:00-19:00, ,월 휴관)

서울 삼일대로(충무로2)414 신원빌딩 401

아주특별한사진교실’ 02-771-5302

 

 

 

신나는 음악을 들으면서, Listening to exciting music,

박종호展 / PARKJONGHO / 朴鍾皓 / painting 

 

2022_0707 ▶ 2022_0723 / 일,월요일 휴관

 

박종호_내가 만약,_캔버스에 유채_130×97cm_2022

 

초대일시 / 2022_0707_목요일_04: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월요일 휴관

 

 

갤러리 자작나무

GALLERY WHITE BIRCH

서울 종로구 율곡로1길 40-7(사간동 36번지)

Tel. +82.(0)2.733.7944

www.galleryjjnamu.com

 

(이 글은 내가 그려온 소년에 관한 글이다. 나는 오래 전 부터 그에 대한 짧은 소설을 쓰다 지우기를 반복해왔다. 이것은 그 일부이다.)

 

박종호_Good morning~_캔버스에 유채_80×130cm_2014

눈을 떴다. 날이 이미 환하게 밝아 있었다. 어제 어떤 깨달음에 매료되어 붓을 들었지만, 늘 그래왔던 습성처럼 어제와 같은 그림을 그려놓는다. 그러고는 그 독특한 깨달음 혹은 느낌을 제목으로 달아놓았다. ● 그려보고 싶었던 그림은 그 느낌과 그려놓은 그림 사이에서 잠시 머물다 떠나간 것이다. 습관의 힘에 씻겨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수많은 기회를 잃는다. 어제의 실패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시간은 극도로 느리게 흘러가지만, 바깥의 태양은 뜨고 지기를 반복한다. 나의 시간과 외부의 시간의 균열이 시선이 닿을 수 없을 만큼 벌어진다.

 

박종호_길은 어디에나_캔버스에 유채_163×112cm_2022

어제 잠에서 깨어났을 때, 커튼을 걷어 둔 방 안은 여전히 어두웠다. 평소보다 긴 하루를 보내기 위해 일찍 집을 나서기로 했다. 밤사이 눈이 내려 있었지만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은 미끄럽지 않아 걷기가 수월하다. 매서운 한기에 옷깃을 여미며 이 시간에 과연 버스가 다니는지 알아보고 나올 걸 그랬나 후회가 들 때쯤, 첫차일지도 모를 버스가 도착했다. 보통 그렇듯 버스에 올라서면 몇몇의 시선이 느껴지다 사라진다. 버스에는 새벽일을 나가는 듯 보이는 사람들이 때묻은 백팩을 무릎 위에 두고 앉아 있었다. 손잡이를 움켜쥐거나 가방을 안고 있는 그들의 손은 구부정하고 작은 전체적인 모습과 달리 크고 강해 보여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박종호_미안해_캔버스에 유채_120×91cm_2022

몇 분쯤 흘렀을까, 한 소년이 버스에 올라섰다. 그 또래의 아이를 보기에는 너무 이른 시각이라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아이는 아무것도 읽히지 않는 표정으로 기사의 뒤편에 비어있던 좌석에 자리했다. 마르고 긴 체구에 얼굴이 창백할 만큼 하얬다. 입고 있는 낡고 얇은 남색 패딩점퍼는 새벽의 추위를 막아 줄 것 같지 않았지만, 그는 버스에 올라타는 여느 사람들처럼 몸을 움츠리지는 않았다. 시간이 멈춘 듯 버스 창에 시선을 두고 소년은 미동 없이 앉아 있다. 위에서 비추는 조명에 어깨 뒤가 해져 솜이 비죽 나와 있는 것이 보인다. 나는 그가 나를 찾아다니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박종호_해 질 녘_캔버스에 유채_162×112cm_2013/2022

갑자기 기사가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크리스마스에 관한 팝송이 들려왔다. 그 경쾌한 노래가 끝나자 아이는 뒷문 쪽으로 와 내 앞에 섰다. 그는 세계의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결심한 듯 앞만 바라보고 있다가, 결국엔 내리면서 눈을 마주쳐 주었다. 나는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박종호_대답 좀 해봐요_캔버스에 유채_45.5×38cm_2022

수년이나 지났지만, 그 순간이 잊히지 않고 종종 떠오른다. 어떤 장소도 담지 못한 그의 적막한 눈빛은 수많은 이야기를 건네고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내쉴 수 없이 가슴에 차오르기만 하는, 앎의 세계에 흔적조차 없는 그 무한의 느낌을 안고 작업실에 도착했다. ● 내가 건네받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기 위해 애써 보았다. 그것은 나와 관련된 이야기였고, 반드시 이해해야만 하는 이 세상의 말이라고 생각했다...

 

박종호_바람이 불어오고 있어_캔버스에 유채_45.5×53cm_2022

어제, 이 시도 중에 작은 결론의 말이 잡음을 일으켰기에 잠시 생각을 멈추었다. 아직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은, 소음일지 모르는 모순의 문장이 갑자기 나의 많은 것들을 망가뜨리기 시작했다. 그 문장을 건너뛰고 생각하던 것을 계속하려 했지만 지직거리던 문장이 더 소란스러워졌다. 그것은 유일하게 주어진 찰나의 순간, 그에게 건네야만 했던 한 문장의 완벽해야 할 말이었다. ● 그럴 때면 나는 그날 나와 그 소년이 함께 들었던 낭만과 행복이 가득한 음악을 튼다. 붓을 들고 움직일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신나는 음악과 함께, ■ 박종호

 

Vol.20220707j | 박종호展 / PARKJONGHO / 朴鍾皓 / painting

농담. Joke, Light and Shade

 

박종호展 / PARKJONGHO / 朴鍾皓 / painting 

2021_1111 ▶ 2021_1201 / 월요일 휴관

 

박종호_깊은 곳에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53×45.5cm_2021

박종호 블로그_blog.naver.com/noah250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서울특별시_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1:30am~06:30pm / 월요일 휴관

 

 

인디프레스_서울INDIPRESS

서울 종로구 효자로 31(통의동 7-25번지)

Tel. 070.7686.1125

@indipress_gallerywww.facebook.com/INDIPRESS

 

'월리를 찾아라'에서 월리는 군중 틈에 숨어 있다. 둥근 뿔 테 안경, 방울모자와 줄무늬 티셔츠. 월리의 차림새는 늘 같다. 장소와 주변 사람이 바뀌어도 월리의 본체는 동일하다. 위장해도 결국 알아챌 수 있다. 우리는 인간 정체성을 월리 식으로 오해하곤 한다. 언제 어디서나 변함없고 타인과 단번에 구별될 고유함. 인간 정체를 사물의 속성처럼 생각한다. 사람의 정체는 개별적이다. 각기 경험과 기억 속에서 찾아야 할 숨은 이야기다. 가끔 사람의 정체는 은폐되거나, 가벼운 농담 취급을 받는다.

 

박종호_별이 빛나는 밤_황마에 유채_194×112cm_2019

작가의 주제는 서사가 단절된 자기 경험이다. 사건의 잔상에 배어 있는 느낌을 추적한다. 기억의 낱 알갱이를 일상의 형상에 투영한다. 작품의 주인공은 주로 소년이다. 그는 소년에서 생명력, 가능성의 원천이라는 외피를 벗겨낸다. 억눌린 유년기를 보상하는 자유의 대리 물로 세우지 않는다. 소년은 '아직도' 자기를 찾는 떠돌이, 정체불명의 존재다. 「알고 있어요」 연작의 소년은 언뜻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얼굴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위를 응시한다. 소년은 '누구'가 아닌, 짓누르는 힘에 맞서는 미약한 저항으로 드러난다. 소년은 무겁고 단단한 코트를 벗어 던질 수 없다. 짙은 청색의 사각형이 소년의 어깨 위에 걸려 있다. 공허하나 엄격한 규율처럼. 소년의 시선은 가장자리를 맴돈다.

 

박종호_달아 달아!_캔버스에 유채_194×112cm_2021

작가는 기억에 몽환의 색채를 덧씌우지 않는다. 작품 속 인물은 부옇고 포근한 환상 세계를 유영하다 건져 올린 형상이 아니다. 작품마다 잿빛, 검푸른색이 스며들어 있다. 과거 기억의 장소와 상황을 암시한다. 휘몰아치는 어둠과 적막을 등지고 선 인물은 위태로운 침묵으로 일관한다. 작가에게 기억은 열어 보기 전엔 잠들어 있는 사진첩 속 추억이 아니다. 갑작스러운 경련처럼 강렬하고, 스스로 살아 움직인다. 그에게 기억의 느낌은 상상 아닌 현실이다.

 

박종호_검은개_캔버스에 유채_100×73cm_2019

흐릿한 정체는 박종호 작가의 중요한 모티브다. 정체의 모호함은 단지 당사자의 문제가 아니다. 나의 정체는 타인과 영향 관계에 있다. 「검은 개」는 타인의 시선이 강조된 작품이다. 서늘한 회색 배경이 검은 개 형체에 불길한 기운을 더한다. 순전히 어떤 개인지 몰라서 생기는 위협감이다. 한편 상단부의 따뜻한 노란 빛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앉은 개 모양새가 어쩐지 측은해 보인다. 주인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늙은 개 얼굴이 떠오른다. 어느 쪽도 확신할 수 없다. 공포와 연민 모두 보는 이의 선입견에서 나온다. 결국 정체 모를 검은 개는 기피 대상이다.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다. 「회색 점」은 상호 불신 상황을 벗어나는 사회적 방식을 묘사한다. 사회는 신분으로 고착된다. 지위와 위상의 불투명함은 사회 안정의 위협 요소다. 불안은 자기를 묻는 인간이 겪는 자연스런 감정이다. 사회의 인간은 서로를 알 수 없음에 불안해한다. 낯 설음은 공포의 근원이다. 공포를 벗어나려 택한 방법이 동일시와 반복이다. 닮음에서 안정감을 찾는다. 사회는 피상적인 모방으로 유지된다. 사회에 속하지 않는 것은 폭력에 쉽게 노출된다. 티끌만한 다른 낌새에도 두려움에 발작하는 검은 개 무리가 나타난다.

 

박종호_젤리곰과 나한상_캔버스에 유채_41×32cm×2_2020

자기를 찾기 보다 집단에 속하려 애쓰는 태도를 비난하기는 쉽다. 그러다 문득 집단의 행동양식을 생각없이 따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자기 탐구가 고립된 삶을 뜻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동물원 체험」은 작가의 반성적 자각이 반영된 작품이다. 목에 노란 뱀을 두른 아이의 눈동자가 텅 비어 있다. 아이에겐 달갑지 않은 이벤트다. 굳은 얼굴에 원망마저 스친다. 두터운 칠이 경직된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아이 부모는 줄을 길게 선 여느 아이들과 똑같이 해주고 싶었다. 새로운 체험을 시켜주고 싶은 부모의 사랑이다. 작가는 사랑 아래 숨어 있던 강제를 포착한다. 일상에서 감지하기 어려운 악의 없는 강제다. 다른 아이 같길 바라는 마음이 아이의 개별성을 지워버렸다. 지극한 사랑의 손길이 아이를 낯설고 두려운 '모두'의 세계에 밀어 넣었다.

 

박종호_서툰 아이 2021_캔버스에 유채_117×91cm_2021

박종호 작가에게 타인과의 거리는 미묘한 문제다. 이런 면에서 「젤리 곰과 나한상」은 독특한 시도이다. 언뜻 보면 형태의 유사성을 이용한 단순 유희 같다. 젤리 곰과 나한상은 작가가 우연히 목격한 이웃의 비극을 대변한다. 길에서 쓰레기 봉지를 뒤지던 여인은 반쯤 남은 젤리 곰을 찾았다. 굶주린 여인이 손에 쥔 젤리 곰이 작가에겐 자비로운 나한상으로 보였다. 여인의 시선을 자기화한 순간이다. 여인에겐 그저 젤리 곰일 뿐이다. 작가는 젤리 곰과 나한상을 별개 작품으로 작업했다. 두 형상이 한 화면에 있다면, 여인의 시선은 완결된 서사에 가려졌을 것이다. 젤리 곰과 나한상 사이에는 틈새가 있다. 작품의 거리 이상으로 시선의 불연속, 의미의 단절이 있다. 시선의 균열은 존재의 간극, 채워야 할 의미의 자리로 남는다.

 

박종호_진지한 사람_캔버스에 유채_100×80cm_2018

작가의 기억은 이정표보다 정지신호에 가깝다. 소환된 기억은 아주 쉽게 일상의 뿌리를 쥐고 흔든다. 하지만 자기 파멸의 구덩이에 빠트리진 않는다. 오히려 삶은 행복으로 가득해야 한다는 환각을 흐트러뜨린다. 작품에 투영된 삶은 농담 같은 현실이다. 작가는 농담의 현실을 통해 과거를 드러내고 미래를 마주할 수 있다. 그림은 현실이란 텍스트를 비추는 '반反텍스트(anti-text)'이다. 박종호 작가의 물음은 하나다. 실존이다. 그에게 실존의 의미는 형상으로 드러난다. 그의 작품은 숨겨진 기억의 반 텍스트다. 완결되지 않고, 반성을 통해서만 나타나는 의미의 텍스트다.

 

박종호_저는 남을게요_캔버스에 유채_45×38cm_2021

익살꾼의 진심은 알기 어렵다. 그는 사실을 그대로 말하지 않는다. 비틀고 부풀리면서 다시 조합한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묶어낸다. 대개는 숨기고 싶어하는 약점, 결핍도 농담거리가 된다. 그는 쉽게 오해를 산다. 땅에 발붙이지 못하고, 웃음 바람에 인생을 실려 보낸다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익살꾼은 허풍선과 다르다. 허풍선의 말은 비눗방울 과 같다. 아무리 많아도 어떤 무게감도 없다.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하고 흩어져 버린다. 애초에 외부와 어떤 연결점도 없기 때문이다. 반면 농담의 요소는 모두 경험 안에 있다. 누구도 자신이 전혀 모르는 것을 두고 맘껏 웃지 못한다. 반복되고 익숙한 것에도 웃지 않는다. 농담의 성패는 '낯설지 않은 새로움'에 달려 있다. 탁월한 익살꾼은 역설을 좇는 예민한 관찰자다. ■ 유성애

 

 

Vol.20211111i | 박종호展 / PARKJONGHO / 朴鍾皓 / painting




지난 22일부터 25일까지 정선 '아라리공원'에서 ‘전국5일장박람회’가 열렸다.
박람회에 초대된 ‘정영신의 한국의 장터’사진전을 위해 일주일 남짓 정선에서 잘 놀았다.

전시장에서 정선 지역민들도 만났지만, 먼 곳에서 찾아주신 분들도 많았다.

날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정영신씨 사진을 만나러 왔지만, 좌우지간 반갑기 그지없었다.






전시 전날부터 시작된 정선 귤암리의 술 파티가 만만찮은 앞 날을 예고했다.
최종대씨 댁에서 나병연, 송종삼 내외 가 모여 꽁치구이와 돼지고기로 전야제가 시작되었다.
단지, 동네 주민들의 갈등 현안인 물 관리에 대한 이야기가 불편하게 했지만...






기억력이 신통찮아 사진에 찍힌 모습을 돌아보며, 지난 날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내가 사는 귤암리의 서덕웅씨가 급히 다녀가는 모습이 포착되었고,

해외 전통시장을 찍는 사진가 하재은씨의 방문에 이어, 문경에서 오신 이선행씨, 귤암리 최종열씨도 다녀갔다,

신승철씨는 전시가 열리는 나흘 동안 매일같이 나타나 겸연쩍은 웃음을 흘리며 전시장을 기웃거렸다.





17년 전 펴낸 ‘동강 백성들’이란 포토에세이집에 ‘법도 씹도 모르는 신승철씨’로 소개하기도 했지만,

바보처럼 착하게 사는 동네 이웃이다. 신통한 것은 글도 모르는 사람이 ‘장날’사진집을 샀다는 점이다.

이번 전시에서 유심히 지켜보았는데, 관람객에 비해 책을 사는 사람이 너무 적었다.

대부분 아는 분들이 사주는 정도인데, 기초생활수급자인 신승철씨가 사진집을 샀다는 것은 분명 뉴스거리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관람객들이 전시된 사진집들을 보고 ‘이거 파는 책입니까?’라고 묻는다는 점이다.

여지것 각종 행사장에서 나누어 주는 무분별한 홍보물 세례에 길들어, 돈 주고 책 산다는 걸 잘 이해하지 못했다.

어떤 분은 책이 너무 비싸다며 항의하는 분들도 있었다. 인터넷 문화에 치어, 죽을 쓰는 책의 수모가 어디 이 뿐이겠는가?






그리고 태백의 사진가들도 여럿 다녀가셨다. 박병문씨를 비롯하여 박노철, 전제훈, 박종호씨등인데,

‘아버지는 광부였다’로 알려진 사진가 박병문씨는 재론할 필요가 없지만,

이석필씨 소개로 만나게 된 박노철씨와 전제훈씨는 ‘사협’에 적을 둔 사진가였다.

쓰레기 통에서도 장미가 핀다는 말이 있듯이, 그만의 의미 있는 작업을 하는 앞날이 유망한 사진가였다.

그 무더운 날 포트폴리오까지 챙겨왔었는데, 박노철씨는 오는 7월15일부터 서울 ‘류가헌’에서

‘폐광, 흔적에 길을 묻다“라는 주제의 전시를 연다고 했다.

시뻘겋게 흘러내리는 폐광 오염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의미 있는 사진전이었다.





그리고 전제훈씨의 사진작업 이야기에는 귀가 번쩍 뜨였다. 그는 현역 광부로 일하며 광부사진을 찍는다고 했다.

몇 장 보여준 사진에서도 알 수 있었지만, 외부에서 지나치다 찍은 탄광사진과는 다른 구석이 있었다.

광맥은 물론 전 작업과정을 깨 뚫고 있기에 좀 더 전문적인 시각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번 여름 영월에서 열리는 ’동강사진축제‘의 강원도사진가전에 소개된다고 했는데,

광부사진에 또 하나의 자취를 남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두 분 다 사진을 예쁘게 찍는 성향이 있었다.

이것이 오랫동안 공모전사진에 길들어 온 폐해인데, 앞으로 그 틀을 벗어나는 것이 숙제였다.






충무로에서 디자인 작업을 하는 한만인씨를 비롯하여 사진가 이 민, 오 환씨가 오셨고,

횡성에서 오신 사진가 구자호씨와 최정태씨는 술과 안주까지 전시장에 공수해 오셨다.

전시가 끝나는 다음 날 장터 인문학 강의를 듣는 수강생들과 횡성장으로 탐방 가는 일정이 짜여있어,

구자호 선생께 잘하는 식당을 추천해 달랬는데, ‘마옥 원조 막국수’라는 좋은 밥집을 소개해 주었다.

뒤늦게 들은 이야기지만, 하나같이 맛있게 먹었다며 고마워했다는 것이다.


덕산 터에 ‘숲속책방’을 차린 소설가 강기희씨와 동화작가 유진아씨,

그리고 안용현씨가 찾아주어 늦은 시간까지 술자리를 옮겨가며 마셨다.

‘술의 인문학’ 강사로서 더 잘 알려진 정선군청 문화관광과 전상현씨의 배려 하에 모두 거나하게 마셨다.







전정환 정선군수를 비롯하여 신주호 부군수, 김수복 자치행정과장, 유홍균 지역경제 팀장,

'전국 오일장 박람회' 행사를 기획한 노현숙씨 등 주최 측 인사들도 여러 분 다녀가셨다. 

뒤늦게 나타난 귤암리의 최영규씨는 전시장으로 술과 안주를 배달시켜 전시장을 주막으로 만들었다.

MBC 황지웅 PD와 화암면에서 G갤러리를 운영하는 화가 김형구씨 내외도 다녀갔고,

전시가 끝 날 무렵에는 사진가 곽명우씨가 나타나 전시철수를 도와주기도 했다.




다들 반가웠고, 고마웠습니다.

사진, 글 / 조문호













































































그 집

松巖 탄신 100주년 기념展 

2017_0513 ▶ 2017_0701 / 일,월요일 휴관

.

큐레이터 토크2017_0531_수요일_07:00pm2017_0628_수요일_07:00pm


참여작가

석지 채용신_우청 황성하_박경종_박종호

양정욱_유근택_이우성_이현호_임택

은희_정재호_한상익_허수영_홍정욱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수요일_10:00am~09:00pm / 일,월요일 휴관


OCI 미술관

OCI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45-14(수송동 46-15번지)

Tel. +82.(0)2.734.0440

www.ocimuseum.org



그 집: 미술관의 된 집 ● 서울 종로의 한복판, 호젓한 옛 골목에 단정한 미술관이 한 채 들어서 있다. 바로 OCI미술관이다. 주변에는 하루가 다르게 마천루가 치솟으며 세상은 이리 바뀌어가는 것이라고 채근하여도, 그래도 세상의 어떤 것은 여전히 가치 있지 않으냐고 되묻듯 빨간 벽돌과 뽀얀 대리석으로 튼튼하게 쌓아 올린 건물이다. 외벽에는 큼직하게 '松巖會館(송암회관)'이라 적혀있어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데, 여기는 과거 송암 이회림(松巖 李會林, 1917~2007) 선생이 자신의 사저 터를 미술관으로 내어준 곳이다. ● 개성 출신의 송암이 이 자리에 둥지를 튼 것은 동란이 막 끝나 부산 피난길에서 올라왔던 1954년이었다. 이 터를 유난히 아껴 오래된 양옥집에서 직접 살다가, 다시 5층짜리 송암문화재단 건물로 증축과 개축을 거듭하여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이 건물을 지을 때는 송암이 손수 나무를 가꾸고, 벽돌을 쌓는 조적공(組積工)까지 직접 데려왔다고 하니 그 정성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이 된다. 매일 서류를 검토하고, 서예를 연마하던 여기에 그는 1989년 전시장을 만들었다. 자신이 모아온 소장품을 혼자 보는 게 아까워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처음에는 '송암미술관'의 이름으로 한학(漢學) 사료와 문인화(文人畫)를, 그리고 고향 땅을 그리며 모아온 북한 유화를 전시하여 연구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기도 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10년, 이곳은 현대미술을 전시하는 'OCI미술관'으로 다시 한번 탈바꿈을 하였다


그 집展_OCI 미술관 1층_2017 (Photo ⓒ 박성훈)


한때 송암의 '집'이었던 OCI미술관은 이제 한국 현대미술의 보금자리가 되어 가고 있다. 경쟁과 시장 원리로 각박한 미술계에서 작가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터전이 되고, 언제라도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 OCI미술관의 활발한 움직임 중에서도 특히 손꼽히는 것은 'OCI Young Creatives'이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해마다 만 35세 이하의 신진 작가를 선발하여 창작지원금 1천만 원을 수여하고 개인전을 열어, 젊은 작가들의 높은 기대를 받고 있다. 공모 때마다 5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보이고, 개관 이후 벌써 55명의 작가가 배출되었다. 또한, 작업 공간이 없는 작가들을 위하여 'OCI미술관 창작스튜디오'도 운영하고 있다. 인천 남구 학익동 소재의 사무동 건물 일부를 작업실로 개조한 것으로 매해 8명의 작가에게 '방'을 내어주고 있다. 그뿐이랴, 한 번 이렇게 작가들과 인연을 맺으면 그 정(情)이 행여라도 옅어질까, 작가들을 우리 "OCI 아들", "OCI 딸"이라고 부르며 알뜰살뜰 챙긴다. 수시로 안부를 묻는 건 물론, 격년제 지방 순회 전시인 『別★同行(별별동행)』을 기획해 전국에 알리기도 하고, 해외 교류 프로그램으로 국제무대에 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작가들도 미술관을 제집처럼 불쑥 드나들고, 또 그렇게 스스럼없이 찾아오는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니 정말 '집'이 되어 가고 있다.


그 집展_OCI 미술관 2층_2017 (Photo ⓒ 박성훈)


송암 탄신 100주년을 기념하여 기획된 특별전 『그 집』은 이렇게 미술관이 된 집에서, 미술품으로 지어보는 상상의 집이다. 송암이라는 한 사람이 뿌린 씨앗이 이처럼 무럭무럭 자랐다는, 그리고 지금은 그 집에서 미술 작품이 어엿이 주인공이 되어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보고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OCI미술관이 처음으로 그 집의 '곳간 보물'인 소장품을 내어 보인다. 송암이 모아왔던 고미술품과 북한 유화, 그리고 최근 수집한 현대미술품 중 14점을 엄선하였다. 더불어 OCI Young Creatives와 OCI미술관 창작스튜디오를 거쳐간, '그 집에 세 들었던' 작가 중 여덟 명의 최근 작품을 함께 선보인다. ● 전시의 구성은 건물의 1, 2, 3층의 계단을 오르며 바깥에서 점차 집안 깊숙이 들어와, 거기에 사는 사람을 만나고, 살림살이를 구경하고, 또 누군가의 방을 살펴볼 수 있는 순서로 꾸며보았다. 1층에서는 집 안으로 들여온 바깥세상, 즉 풍경화로 이루어졌다. 우청 황성하의 10폭 산수화를 중심으로 박종호, 유근택, 이현호, 임택, 허수영이 바라보는 하늘, 숲과 산, 호수의 풍광을 담았다. 또한 OCI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1,500여 점의 북한 유화 중 한상익이 그린 금강산 풍경 「삼선암에서」를 출품하였다.


그 집展_OCI 미술관 2층_2017 (Photo ⓒ 박성훈)


2층에서는 전은희와 정재호가 그린 오래된 집으로 거리를 만들고, 양정욱의 「어느 가게를 위한 간판」을 세워 보았다. 거기에 석지 채용신의 「팔도미인도」와 이우성의 'outdoor painting'으로 사람이 북적이게 하였다. 또, 그 집의 물건도 꺼내보았다. 책가도와 도자를, 여기에 홍정욱이 이번 전시를 위해 만든 탁자와 작품을 함께 배치하여 세간을 갖추었다. ● 3층은 박경종의 '시공간 나그네'가 우연히 들러 모험을 펼치는 곳이다. 여기에서는 과거 송암이 사용하던 붓, 지팡이, 골프채 등과 현대의 일상용품이 작가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뒤섞여 흥미로운 시공간을 빚어낸다.


 

그 집展_OCI 미술관 3층_2017 (Photo ⓒ 박성훈)


『그 집』은 벽돌 쌓듯 차곡차곡 모아온 시간과 정성, 그리고 인연으로 만들어낸 집이다. 별난 사람, 별난 사건이 넘쳐나는 미술계에서도 고미술품과 현대미술품이 함께 전시되는 경우는 드문데, 이번 전시에서는 과감하게 시대의 경계를 짓지 않았다. 미술품이 주는 즐거움과 상상의 기쁨은 시간에 국한될 수 없기에, 게다가 대(代)를 이어 아름다움을 감상하라고 송암이 내어준 '집'이기에, 형제자매가 많은 대가족처럼 작품 이미지들이 저마다 마주치며 만들어내는 다양한 소리에 귀 기울여 보고자 하였다. 잔칫날처럼 흥겹기를 바라며, 이번 전시는 OCI미술관이 관람객에게 보내는 '그 집으로의 초대'이다. ■ 김소라

 


   Vol.20170513c | 그 집-松巖 탄신 100주년 기념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