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아름다운 삶을 살던 분들이 여럿 세상을 떠나셨다.

연세가 많은 황명걸 시인이나 박기정 화백은 병으로 돌아가셨지만,

안애경 감독은 마음 정리할 틈도 없이 갑작스럽게 떠나 더 안타깝다.

 

떠난 분은 말이 없으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일 뿐이다.

, 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더 빨리 데려간다고 믿으니,

고난의 삶을 끝내고 새로운 길을 떠나는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가 있겠는가?

사는 동안 나쁜 일만 아니라면 꼴리는 대로 즐겁게 사는 것을 최고로 친다.

 

가끔 정동지가 언제 무슨 일이 있다고 약속을 해오면 하는 답은 똑 같다.

그 때가지 내가 살지 모르겠다.”

.오늘 죽을 것처럼 사니, 두려울 것도 꿀릴 것도 없는 것이다.

 

지난 19일 박기정화백의 부음을 받았다.

정영신, 김명성, 조해인씨를 녹번역에서 만나 서울아산병원장례식장을 찾아갔다.

장레식장 입구에는 조화가 줄을 이었고, 많은 조문객이 모여 들었다.

좀 있으니 박인식 시인에 이어 박재동 화백도 나타났다.

 

그리고 '삼총사’, ‘가정교사등을 펴낸 박기정화백의 친동생 박기준화백도 만났다.

박기준화백은 평소 형님께서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셨는데,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며 지난 일을 회고했다.

 

박기정화백은 최근 폐암진단을 받아 투병하시다 고통스럽게 돌아가셔서 더 안 서럽다.

평생 소신이 '백절불굴(百折不屈, 백 번 꺾이더라도 휘어지지 않는다)'이던

선생께서는 시대를 보는 눈도 매섭지만, 재치 있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남달랐다.

 

1956별의 노래로 데뷔하여 은하수’ ‘들장미’ ‘도전자’ ‘황금의 팔

레슬러’ ‘폭탄아’ ‘치마부대등 다양한 극화 만화를 남겼다.

특히 도전자훈이폭탄아탄이는 선생의 대표적 캐릭터였다.

 

내가 고인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60년대 발표한 가고파

주인공 훈이가 엄마를 찾아 헤매는 순정만화였다.

탄탄한 스토리와 사실적인 캐릭터가 돋보였는데, 지금도 보고 싶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흰 구름 검은 구름’에서는 오동추의 캐릭터가 인상적이었다.

친구들 보는데, 교실창문으로 도시락을 넣어주는 할머니에게 난색을 표하는 장면은

어린 시절 내가 겪은 일이라 더욱 잊혀 지지 않았다.

 

박기정화백을 실제 뵙게 된 것은 창예헌고문으로 모신 10여 년 전이었다.

가끔 박인식씨가 운영하는 로마네꽁티에서 뵙기도 했는데,

가수 최백호와 박인식, 김명성씨 등 몇몇이 

오동추란 박기정 펜클럽을 만들 정도로 박기정화백을 좋아했다.

 

그러나 선생께서는 지난 18일 운명하시어, 20일 남양주 영락동산에 안치됐다.

많은 분들의 추모 속에 분주히 길을 떠났지만, 쪽방 사람들은 죽어서도 마음대로 떠나지 못한다.

없는 연고자를 기다리며 한 달 동안 갇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약자는 죽어서도 차별받는 세상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상주-

배우자 : 정기창

 : 박영훈, 박영술,  : 박영지

사위 : 이동엽, 자부 : 정재연, 정진희

 

사진 / 조문호

 

 

 

 

 

 

 

만화 '도전자', '폭탄아'를 그린 우리나라 1세대 대표 만화가 박기정 화백(88세)께서

지난 18일 오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박기정화백은 1934년 만주 용정에서 태어나 해방 후 서울에서 자랐습니다.

경복고 미술반 상급생이던 ‘고바우’ 김성환 화백의 연재에 자극받아

1956년 스물두 살 나이에 만화계에 데뷔했습니다.

 

1956년 중앙일보에 4컷짜리 만화 '공수재'로 출발하여 1963년에 '흰 구름 검은 구름'을 발표하며

주인공 ‘훈이와 미미’의 캐릭터를 창출해냈고, 1964년에 발표한 '도전자'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동안 '별의 노래', '허허박사', '뚱딴지', '개구쟁이 형제', '사회만보', '오중어부부',

'황금의 팔', '폭탄아', '레슬러' 등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보관문화훈장, 문화관광부장관 만화공로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제3대 한국만화가협회 회장도 역임하였습니다,

그리고 '인사동사람들' 모임이었던 '창예헌'고문일 뿐 아니라,

같은 회원인 가수 최백호는 박기정  팬클럽 ‘오동추’ 회원이기도 합니다,

 

박기정선생님의 극락왕생을 빕니다.

 

빈소 :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호실 (02)3010-2000,

발인 : 20일 오전 9시40분

장지 : 경기 남양주 영락동산

 

-상주-

배우자 : 정기창

자 : 박영훈, 박영술, 녀 : 박영지

사위 : 이동엽, 자부 : 정재연, 정진희

 




지난 29일 오후6시 무렵, 인사동 센터마크호텔 지하 ‘경복궁’으로
60여명의 인사동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인사동에서 칠백평이 넘는 전관을 갤러리로 운영하다 망한,
‘아라아트’ 김명성씨가 재기의 깃발을 들고 입성한 것이다.





부도가 나 ‘아라아트’가 중국기업에 넘어갈 때, 가슴을 친 사람은
당사자 뿐 만 아니라, 인사동의 가난한 예술가들도 많았다.






몇 년 동안 무료대관으로 전시를 연 작가도 부지기 수지만,
‘창예헌’이란 인사동 사람들의 모임을 김명성씨가 후원했기 때문이다.
인사동에서 그를 만나게 되면 빈 털털이도 마음껏 취할 수 있었다.






그의 몰락과 함께 모임도 흐지부지해 인사동의 구심점을 잃어 갔는데,
느닷없이 옛 벗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은 것이다.






그 명목은 청백리 이 성 구로구청장의 삼선을 축하하고,
현충일 추념식에서 ‘늙은 군인의 노래’를 불러 건재함을 과시했던,
가수 최백호씨가 내세우는 孝사상의 효교 모임을 만든다는
쌍권총을 들고 입성한 것이다.






이 날 참석한 분으로는 인사동을 노래하는 강민시인을 비롯하여,
방배추로 통하는 조선의 구라 방동규선생, 원로 만화가 박기정선생,
원로 언론인 임재경선생, 이수호, 박재동, 조경석, 정기범, 강찬모, 신상철,
이미례, 진옥섭, 이 성, 최백호, 김신용, 조해인, 이만주, 김상현, 조준영, 이청조,
임채욱, 정영신, 허미자, 임태종, 공윤희, 송일봉, 김혜련, 최유진, 서길헌, 최 윤,
고중록, 이상훈, 김용국, 전인미씨 등 오랜만에 반가운 분들이 어울려,
완전 잔치 집 분위기였다.






그런데, 전주로 간 음유시인 송상욱씨와 도예가 한봉림씨도 나타났고,
울산에서 황금기와로 유명세를 떨친 기와장 오세필씨가 김위경씨를
데려 오는 등 지방에서까지 올라오는 열성을 보였다.
그리고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 못오게 된 가수 장사익씨는
그 날 만찬비용을 부담하겠다는 등, 다들 김명성씨의 재기를 축하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빠진 분이 너무 많았다.
사정이 있어 못 나왔으면 모르겠으나, 미처 연락을 못 했다면 욕먹을 소지가 있었다.
예전에는 ‘창예헌’ 총무가 일괄적으로 통보해 별 탈이 없었지만
김명성씨가 직접 연락했다면, 구설수에 오를 수도 있다.






아무튼. 별다른 행사 없이 술 마시며 회포 푸는 자리로는 너무 과분했다.
덕분에 맛있는 음식에다 코가 비틀어지도록 마시고,
‘유목민’으로 옮겨 밤늦도록 흥청댔지만, 뭔가 아쉬웠다.






술이 취해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
남은 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쪽방으로 향하는 내 모습이 한심스러웠다.
거지 행색이 아니라, 바로 거지였다.



 



그래도 인사동이 맺어 준 인연은 아름다웠다.

사진,글 / 조문호





































































소설가에서 미술평론, 희곡, 극본, 시나리오 등 글 쓰는 일이라면 전방위로 활약해 온

박인식씨가 이번에는 ‘겨울모기’라는 시집을 내놓아 주변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그는 한 때 월간지 ‘산’을 비롯해 ‘사람과 산’에서 일한 산악인이었으나,

삼십년 전부터 일 년에 봄가을 두 번씩 전국에 산삼을 심으러 다닌 ‘농심마니’ 좌장 노릇을 했다.






또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여지 것 TV는 물론 핸드폰, 컴퓨터, 신용카드, 운전면허증 등

일체의 이기를 거부해 온 아날로그 맨 이라는 거다.

그중 제일 불편할 것 같은 게 핸드폰과 컴퓨터일 것으로 생각된다.


핸드폰이야 불편한 대신 이로운 점도 많다. 자신이 필요한 연락은 다른 전화를 사용하면 되지만,

그 외의 전화는 일체 받을 수가 없으니 남의 일에 끌려 다니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한편으론 독선적이라 할 수 있겠으나, 그건 그렇다 치고 글 쓰는 사람이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다니...

시라면 모르겠으나 소설은 공력이 많이 드는데다 결국은 출판사에서 다시 쳐야하니, 그 불편함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런 불편함을 모두 참고 끝가지 버티는 집념이 정말 대단 하다는 거다.





‘도서출판 다빈치’에서 출판된 박인식의 ‘겨울모기’시집은 한글 자모를 활용한 시 작업이다.
‘일찌감치 한글의 글꼴을 보는 詩로, 읽는 그림으로, 듣는 말로 여겼다,“는 시인의 말처럼

옛날에는 글씨와 시와 그림을 종이 한 장에 하나로 표현했다. 그래서 인지 그의 시는 그림 같은 시라고 말 할 수 있겠다.

많은 시작들이 작품을 감상하며 느낀 단상이라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박인식의 시는 사람과 사람의 어울림을 한글 자모의 통합으로 표현하면서 사랑의 조건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사람과 자연의 어울림으로 사랑의 조건을 내 세운다“고 문학평론가 이경호씨는 말했다.

좌우지간 남의 이야기는 제쳐두고, 그의 ’저절로‘라는 시 한 편을 들어보라.






“나를 낮춰 너를 높이는
산의 절
저 절로
산은 산

너를 낮춰 나를 높이는
물의 절
저 절로
물은 물

저절로
저절로“






지난 29일 ‘로마니꽁띠’에서 열린 출판기념회는 박인식씨를 비롯하여 원로 만화가 박기정 선생, 시인 송상욱, 김명성씨,

‘도서출판 다빈치’ 김영선대표,  문학평론가 이경호씨, 화가 송성묵, 서길헌씨, 도예가 한봉림, 황예숙씨, 사진가 정영신씨,

구로구청장 이성씨. 뮤지션 김상현씨, 사업가 김각환, 이상훈씨등 대략 20여명이 모였다.






시낭송은 물론 송상욱, 송성묵, 김상현, 세 사람이 돌아가며 들려준 흘러간 가요와 판소리, 째즈 음악이 한데 어우러져

마치 음악회에 온 듯 신명난 출판기념회가 되었다.





출판기념회에 오기 직전 ‘툇마루’와 ‘여자만’을 돌아다니며 많은 분들과 어울려 퍼 마셨기에 더 이상 마실 수가 없었다,

그러나 회비도 받지 않으면서 그 비싼 와인 값은 누가 내는지 걱정스럽더라.

김명성씨 잘 나갈 때 같으면 그까짓 것쯤이야 걱정할 필요도 없으나, 좌우지간 인사동 술꾼들에게 찬 바람 도는 시절이다.

박인식의 시집 제목 ‘겨울모기’는 마치 비실비실 맥 못 추는 인사동 술꾼들을 비유하는 것 같더라.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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