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동 쪽방에도 어김없이 봄바람이 분다.
지난 9일 오후에는 무슨 불만이 그리 많은지 잔뜩 찌푸렸는데, 그런 날씨는 내 몸이 먼저 알아챈다.






찌푸둥한 몸을 이끌고 공원으로 나갔더니, 이미 사람들은 젖어있었다.
비가 아니라 술에 젖어 세상시름 다 녹였다.
그들의 텅 빈 가슴 위로 꽃비가 떨어지고 있었다.

그 날따라 흐드러지게 핀 목련이 슬퍼 보이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무슨 말인지도 알아듣지 못할 혀 꼬부라진 소리가 나를 반긴다.
세상에 여기처럼 인심 좋은 곳은 없을 게다.
담배와 술은 기본이고, 그 철천지원수 같은 돈도 나눠 쓴다.
공원의 비둘기조차 빈자들의 술안주를 축낸다.





다들 취했으나, 정용성씨가 소주 두 병을 더 사왔다.

할 술이 떨어져 사왔겠지만, 술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주량에 맞추어 알아서 마시는 습관이 몸에 배어서다.






한 쪽에선 장기로 상대의 수를 탐색하였고,
한 쪽에선 욕설로 상대의 정을 확인하였다.
못할 놈들의 “씨발넘아”는 사랑한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가끔 생각 차이로 실랑이가 생기고 큰 소리도 나지만, 옆에 있는 경찰초소 보안관이 판결 내린다.






이 꿀꿀한 봄날에 어찌 술 생각이 없겠냐마는 술을 자재 했다.
‘알중’들의 술자리를 부추긴다는 부정적인 시선을 의식해서다.
요즘 노숙자 술 마시는 사진을 올리지 않는 이유도 그래서다.






멀쩡한 놈들이 일은 안 하고 술만 마신다는 질책을 여러 번 들었다.
노인들도 폐지를 줍거나 일 하는데, 뭐 좋다고 그런 놈을 찍느냐는 거다.
대꾸는 안하지만, “잘난 놈보다 못난 놈이 정겹다‘고 구시렁거린다.






일하는 사람들은 희망이라도 있지만, 이들은 희망조차 잃은 사람이다.
그들의 죄라면 부모 잘 못 만나, 가진 것 없고 못 배운 죄 뿐이다.
세상에 아무런 미련도 없이 스스로의 목숨을 재촉하는 것이다.






술 없이는 못 사는 불쌍한 사람들, 너무 나무라지 말라.
“새벽종이 울렸네”의 새마을 시대도 아니고, 죽자 살자 일만하는 시대도 지났다.
그런 욕심들이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들지 않았던가?






뒤늦게 안면은 있으나 잘 모르는 아낙이 나타나 계속 시비를 걸어왔다.
싫어하면 사진을 찍지 않는 것은 기본인데, 왜 다른 사람까지 찍지 말라는 것인가?
가끔 심통 부리는 사람도 있지만, 일체 대꾸하지 않는다.






이대영씨가 사진작가라고 해도 소용없고, 정용성씨가 기자라 해도 소용없었다.
뒤에서 나를 지켜보다 카메라만 꺼내면 고함을 질러댔다.
결국은 황춘화씨의 “우리 편이야!”라는 혀 꼬부라진 한 마디가 그 여인의 입을 막았다.






우리 편이란 한 마디가 그렇게 친근할 수 없었다.
“그래, 우린 모두 한 편이야!
세상은 편 가르기에 눈이 뒤집혔지만, 모두 우리 편으로 만들어버리자“






노래 가사처럼 ‘아픈 가슴 빈자리에 하얀 목련이 진다’



사진, 글 / 조문호

















 

지난 밤 정선에서 돌아 와 늦잠에 빠졌는데, 아내가 깨웠다.
‘아라아트’ 김명성씨가 녹번동으로 온단다.

반가운 손님을 기다리며, 무심히 지나치던 동네 길을 거닐었다.
일요일의 화창한 봄날, 이웃 담장안의 목련이 눈부셨다.

갑자기 사진가 황규태선생의 벚꽃 사진 제목이 떠올랐다.
‘아! 미치겠구나’

김명성씨와 함께 인사동 ‘허리우드’로 넘어왔다.
‘조선일보’의 허성훈씨, ‘케이엠씨앤디’ 이상훈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차 마시며, 예술정책에 대한 문제점들을 김명성씨로부터 들었다.
그의 해박한 예술 경영론과 고미술에 대한 이야기 듣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유목민’에서 소주 한 잔하고, ‘로마네꽁띠’로 옮겨 와인도 마셨다.
설악산에서 산삼 심고 돌아 온 ‘농심마니’ 팀과 어울려 흠뻑 젖었다.

사진,글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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