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의 고물차가 사람 놀라게 하네"

별 탈 없이 잘 굴러다니다 갑자기 문제가 생겨 버렸다.

이차는 올 2월에 190만 원에 산 투싼’으로, 아산에 있는 선우가 소개해 준 차다.

다른 곳은 문제가 없으나 하체가 부식되어 비포장 이나 도로 턱만 조심하면 된다기에 산 것이다.

 

일 년 육개월 타고 폐차한 크루즈300만원에 샀는데, 그 차에 비하면 공짜로 얻은 차나 마찬가지다.

인수하여 8개월 동안 정비소 한 번 가지 않고 잘 끌고 다녔으나,

얼마 전부터 노면이 고르지 못한 곳만 지나면 뭔가 심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혹시 짐칸에서 나는 소리로 착각해 짐을 비우기도 했으나, 마찬가지였다.

 

지난 9월 14일, 황명걸선생 문상 때, 함께 움직이자는 김명성씨 연락으로 

마음에 걸렸던 자동차 점검부터 한 것이다.

정비소에서 차를 올려놓고 하체를 들여다보니, 귀가 막혔다.

부식된 철판이 떨어져 나가 큰 구멍이 생겼는데,

그 철판에 고정된 지지대가 떨어져 철판을 두들긴 것이다.

정비소 주인은 수리 자체가 안 된다며 폐차하라고 했는데,

잘못하면 차가 내려앉을 수도 있다며 겁까지 주었다.

 

진짜 문제는 차를 바꿀 돈이 없어 큰 일이었다.

, 자동차가 없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등산은 물론 일 킬로만 걸어도 하루종일 드러누워, 차가 휠체어나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기초생활수급자는 자동차를 가질 수 없어, 정동지를 차주로 모셨을까?

수급비의 대부분이 차 밑에 들어가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정동지가 아산 선우한데 전화하여 자초지종을 이야기한 모양인데,

선우는 일단 평택 월드카 라이프로 끌고 오라는 것이다. 그 차에 대해 잘 아는 정비소니까..

그곳을 운영하는 송계석씨는 자동차공장에서 퇴직하여 정비소를 차린 분인데,

자동차 구조는 물론 차가 움직이는 원리까지 상세하게 설명해 주는 전문가다.

마음까지 좋아 왠 만한 수리비는 받질 않으니, 그게 마음에 걸리지만...

 

그동안 불안하여 차주는 못 타게 하고 혼자 끌고 다니다, 지난 28일에서야 평택 정비소에 간 것이다.

마침 정동지가 그 쪽 지역에 촬영할 일이 있어 일박이일의 일정으로 겸사겸사 떠났다.

 

정오무렵, 평택 월드카 라이프에 도착하니, 선우도 시간 맞추어 왔더라.

송계석씨가 시운전을 해보고 차를 들어 올리더니, 덜거덕거리는 지지대를 없애버리자는 것이다.

그 지지대는 뒷좌석의 안정감을 잡아주는 것으로, 운행에는 전혀 지장이 없단다.

내년 쯤에는 조기 폐차에 해당되어 폐차보조금 삼백만원도 받을 수 있다며,

그때 차를 바꾸는 것이 좋겠다기에, '얼씨구나!' 했다.

 

단지 앞바퀴가 너무 마모되어 중고타이어로 교체하라기에 12만원을 투자했다.

차를 타보니 승차감이 달라졌다. 타이어가 중요하다는 걸 다시 실감했다.

정비사는 물론 의사나 법관이나 무슨 일을 하던지 사람을 잘 만나야한다.

 

선우와 국수집에서 식사를 한 후, 저녁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요즘 정동지가 장항선 따라가는 장터기행 책을 만들기 위해 현장을 찾아다니는데,

당일치기로 떠나는 기차여행의 답사기라 혼자 다니고 있다.

내가 동자동 있는 동안 일을 많이 해 두었는데,

너무 빠듯한 일정이라 놓친 장면을 하나하나 찾아 간다는 것이다.

갈대가 흔들리는 서해안 포구를 찾아 찍기도 하고, 추수가 끝난 들판의 건초더미도 찍었다.

그런데, 농로를 따라 찍기 좋은 위치를 찾다 운전석 바퀴가 농로 밖으로 빠지는 일이 생겼다.

 

보험회사에 긴급출동을 불렀으나, 황량한 논이라 정확한 위치를 알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급히 선우를 찾아 주변 상황을 이야기했더니, 자기가 아는 곳 같다며 기다리라고 했다.

마치, 석양 무렵의 건초더미를 찍기위해 기다리게 한 것 같았다.

선우가 먼저 도착하여 위치를 일러주어 견인차가 오도록 만든 것이다.

 

간단히 차를 끌어낸 후 선우 따라 집에 갔더니, 이미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곳에서 일하던 김창복씨도 만났는데, 그동안 공사에 많은 진척을 보였다.

연못 공사는 물론 곳곳에 산길까지 닦아 놓았다.

김창복씨는 "요즘 일하다 보면 금방 해가 진다"며 짧은 시간을 아쉬워했지만,

적은 연세가 아닌지라 골병 던다며 몸을 아끼라 했다.

며칠 전에도 말뚝 박다 함마로 손을 내려쳐 고생하지 않았던가?

 

저녁 식사하러 가자며, 또 삽교천 횟집으로 데리고 갔다.

이번에는 술을 마실 수 있어,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무슨 회인지도 모르는 놈이, 홀짝홀짝 마시는 소주에 젖어갔다.

문제는 술이 취하면 그 다음부터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데 있다.

기분 좋게 마시고는 아산 온천에 있는 만인장으로 들어갔는데,

열 명도 잘 수 있는 큰 방의 방값이 삼만원이라 말에 깜짝 놀랐.

더 놀라운 것은 우연히 체널 돌리다 나온 '프레이 보이' 화면?

 

온천탕에서 편히 쉰 것까지는 좋았으나, 차를 술자리에 두고 와 또 선우에게 불편을 끼쳤다.

새벽 일찍부터 선우가 여관으로 찾아와, 그 차로 옮겨 간 것이다.

주말에 집에서 쉬어야 할 사람을, 일찍부터 나오게 해 미안스러웠다.

 

인주면에 있는 충무공 유적 '게바위'도 들리고, 공세리성당도 들렸다.

공세리 성당은 32분의 순교자를 모신 성지였다. 

정동지가 선우 차를 타, 선우 차 꽁무니만 졸졸 따라 다닌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어디 가는지도 모르고 따라가다 차를 놓쳐버린 것이다.

차를 놓친 것을 안 것도 한 시간이 훨씬 지나서 였다.

열심히 따라가다 천안휴게소로 들어가기에 따라가 보니, 다른 사람 차였다.

차종과 색갈만 같은 엉뚱한 차를 한시간 넘게 따라 다닌 것이다.

그때사 전화해보니, 아산 외암민속마을에 있다는 것이다.

내 휴대폰은 네비전용이라 전화를 받지않아 몰랐는데, 전화도 여러차례 와 있었다.

너무 멀리 와 버렸지만, 다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정동지와 선우는 외암리 민속마을을 다 둘러본 후,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다.

점심때가 늦도록 아침 식사도 못했으니, 얼마나 가슴 태웠겠는가?

정동지 말로는 선우가 내비 주소를 찍어주지 못한 것을 후회하여, 가슴이 새까맣게 타버렸단다.

 

민속마을의 '코다리랑 낙지집'에 들어가 식사부터 했는데,

정신을 놓아 그런지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더라.

온양장터를 비롯하여 가볼 곳은 많지만, 일정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그날 오후 네시부터 양평에서 열리는 황명걸시인 추모제에 들리기로 한 것이다.

촬영 일정이 있어 못 간다고는 했으나, 늘 마음에 걸렸던 일이다.

 

선우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양평으로 떠났는데,

이번 여행은 자동차로 인한 문제가 많아 이래저래 촬영이 지연되었다.

차만 고물이 아니라 기사까지 고물이라  어쩔 수 없었다.

 

그동안 차를 구할 때마다 같이 세상을 떠나기로 다짐에 다짐을 하건만,

차만 먼저 떠나보낸 지가 벌써 몇 번째던가?

이제 자동차 장례 치루는 일도 지긋지긋하다.

 

사진, / 조문호

 

 

 

 

 

정선 만지산 집이 불난 이후로 쉴 곳이 없어 막막했으나,

공유공간 ‘마인’을 운영하는 김선우 소유의 아산시 인주면에 둥지 틀기로 했다.

 

그 땅은 20여 년 전 김선우를 비롯한 몇몇 활동가들이

대안학교를 만들기 위해 구입한 4천평 규모의 땅이란다.

그러나 건축규제에 묶여 지연되다 한 참후에야 규제가 풀렸으나,

열기가 식어 대안학교 설립 자체가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고 한다.

 

사진작업실을 만들기 위한 집터로 개간해 두었다

그중 김선우 소유의 땅 2천여 평에 한옥 한 채를 지어 텃밭을 일구며 살았다고 한다.

오래 전 현장을 둘러본 후, 그 곳에서 마지막 여생을 보낼 작정을 한 것이다.

 

지금은 교통이 불편하지만, 서울 연신내에서 출발하는 GTX가

아산 인주면까지 30분밖에 걸리지 않아 수도권이나 다름없다는데,

열차뿐 아니라 고속도로까지 그 곳을 경유해 아산 인주면이 교통요충지가 된 것이다.

아산역이 생기게 될 인주면 인근에 부동산 업소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선 것이 잘 말해준다.

그러나 김선우 땅은 한 평도 매각하지 않고, 환경 친화적인공간으로 가꾸어 나갈 생각이란다.

세월이 한참 지나면 이 곳만이 자연경관을 헤치지 않은 유일한 공간이 될 것으로 여겨졌다.

 

김창복씨 집터로 기초공사를 해두었다.

마침, 지난 15일부터 예산장터에서 삼국축제가 열린다는 정동지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나섰다.

예산 가는 길에 집터 현장을 둘러보러 아산 인주면부터 들린 것이다.

한 달 전에도 들린 적이 있으나, 그때보다 공사가  많은 진척을 보였다.

내가 머물 집터는 물론 김창복씨 집터까지 평지로 개간해 놓았고, 한 쪽에는 연못까지 파 놓았다.

주변 조경을 위해 여러 가지 과일나무를 옮겨 심는 등 일을 많이 했더라.

 

연못을 만들기 위한 공사현장

김선우의 복안은 기존의 한옥은 전시장으로 개조하고,

나를 비롯한 김창복씨가 머물 주택 두 동과 손님 받을 카페 등

대략의 공사를 올 겨울까지 마무리 할 계획이란다.

내년 봄에 입주가 가능할 것 같은데, 가을쯤에는 신세진 분을 초대할 예정이다.

 

예산장터와 추사고택을 돌아본 후, 저녁 무렵 다시 김선우를 만나기로 했다.

 

국화를 감상하며 국밥과 국수를 즐기는 '예산삼국축제'는

예산장터 일원에서 10월 14일부터 20일까지 열렸다.

 

예산 장마당에는 국화로 장식한 다양한 조형물이 만들어졌고,

그 옆 공연장에는 미스터트롯 가수 정동원이 출연한다는 광고에 많은 관광객이 모여들고 있었다.

역시 지역축제는 유명가수 출연이 관객동원의 성패를 좌우했다.

 

국화 향기 그윽한 가을 정취 속에 흥겨움과 정겨움이 넘치는

‘예산장터 삼국축제'는 코로나로 몸과 마음이 지친 군민들에게 큰 위안을 줄것 같았다.

그러나 장터축제가 열리는 장소성의 의미 외는 장터 축제다운 특성이 드러나지 않았다.

 

10년 전에 촬영한 예산장터의 국수공장들

예산장터의 특징 중에 하나였던 옛날 국수공장들은 모두 철거되고 없었다.

‘예산장터 삼국축제’라는 명칭에 국수까지 집어넣었지만,

정작 예산 장터 문화의 원형은 지켜내지 못한 것이다.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룬 공연장이나,

긴 줄을 선 국밥집과는 대조적으로 국수가게는 한산했다.

 

큰 공장에서 만들어 오는 국수야 어디엔들 없겠는가?

 

예산장에서 3대째 국수를 만든 김성근 씨는 어디 갔을까? / 2011년 1월 촬영

옛날식으로 대꼬챙이에 국수를 받아 주렁주렁 말리는 장면은

관광객들의 관심을 불러 모을 수 있는 좋은 볼거리가 아니겠는가?

 

그 흔한 엿장수 한 사람 보이지 않고, 장터마다 늘린 뻥튀기조차 없었다.

볼거리로 관광객을 즐겁게 하려면 전국 장돌뱅이들을 불러 모아 흥겨운 장마당을 연출하거나,

옛날의 보부상 등 잊혀져 가는 소재들을 발굴해 내는 것이 거금 들여 유명가수 불러 오는 것보다

훨씬 의미 있는 장터축제가 아닐 까 생각된다.

 

장옥 위에 올라가서 행사장과 장터 구석 구석을 지켜보았는데,

장날이었으나 장 보러 온 손님이 없어 난장은 파리만 날렸다.

이름만 장터축제지 음악과 춤이 난무하는 공연 축제나 다름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있는 추사 고택에 들려

진한 묵향이 베인 고건축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보기도 했다.

 

추사고택은 조선후기 학자며 서화가인 김정희 선생이 태어난 곳으로

추사의 증조부 월성위 김한신이 영조의 따님 화순옹주와 혼인하며 지어졌다고 한다.

건축 당시는 53칸 규모의 대저택이었지만,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사당만 남아있다.

 

손님을 접대하며 문학적 유회를 즐기던 사랑채를 지나면

6칸 대청에 안방, 건넌방, 부엌, 광, 등을 갖춘 안채가 나온다.

 

대청 대들보에는 김정희가 쓴 것으로 보이는 글씨가 붙어있고,

여성들의 생활공간이라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는 구조였다.

 

특이한 것은 안채 부엌은 난방전용이고 요리용 부엌은 따로 두었는데,

이는 화순옹주가 살던 왕실 주택 구조여서 그렇다고 한다.

 

한옥 특유의 따뜻하고 정갈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

기둥 곳곳에 걸린 주련이 추사 정신을 일깨우며 그 의미를 더했다.

 

높은 가을 하늘과 붉게 물든 단풍도 아름답지만,

주렁주렁 달린 감이나 모과는 고택의 여유로움을 더했다.

 

윗쪽에는 김정희가 세상을 떠난 뒤 아들 김상무가 세운 ‘영당’이 있다.

김정희의 벗인 권돈인은 ‘추사영실’이라는 현판을 썼고,

김정희의 제자였던 이한철이 추사 초상화를 그렸단다.

 

고택 후문으로 나오니, 가문 대대로 이용해 온 우물이 있었다.

추사 고댁 인근에 있다는 '용궁리 백송'도 찾아보았다.

이 백송은 올해로 2백 살을 갓 넘긴 소나무로

추사 고택에서 북서쪽으로 난 도로 따라 약 6백 미터 지점에 있었다.

 

한눈에도 예사롭지 않은 나무임을 알 수 있는 백송은 생각보다 가냘팠다.

원래 땅에서 50센티미터 위로 줄기가 셋으로 갈라져 자랐으나

그 중 큰 줄기와 서쪽으로 뻗은 줄기가 오래 전에 부러졌다고 한다.

 

지금은 세 줄기 가운데 하나만 남아 빈약하게 보이는 것이다.

추사가 중국에서 가져 와 애지중지 키운 것은 한 선비가 살아온 내력이나 다름없다.

백송 나무에서 오랜 역사를 돌아보는 것이다.

 

오는 길에 김선우에게 전화했더니, 삽교천 회센터에서 만나잖다.

선우에 이어 김창복씨도 삽교천에 도착했는데, 선우가 단골집에서 해산물을 너무 많이 샀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회로 배를 채우기는 난 생 처음이었다.

 

술 한 잔하고 내일 가라지만, 여관보다 집이 편할 것 같아 술은 사양했다.

그런데, 저녁식사를 하고나니 노래방에 가잖다.

갑작스런 불운으로 어머니 장례를 치룬 선우씨가 

그 슬픈 마음을 풀고 싶은 심정은 이해하고도 남았다.

 

얼마 전, 술 취한 트럭기사가 슈퍼마켓에 난입하여, 밤늦게 물건 사러 간 선우씨 어머니를 들이받은 것이다.

사고를 내고 도주한 운전자는 인근 도로에서 경찰에 체포되었으나,

아무것도 없는 빈털털이라 아무런 보상도 받을 수 없었다고 한다.

 

 어찌 이런 날벼락이 하필이면 착한 선우한데 떨어졌는지 모르겠다.

 장례를 치루고 난 뒤 알아 문상도 못 갔지만,

하늘이 무너진 슬픔을 어찌 쉽게 잊을 수 있겠는가?

 

늦었지만, 선우씨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빈다.

 

몇 년 만에 노래방이란 곳도 들렸는데, 술 한 잔 마시지 않은 상태에서 간 적은 처음이었다.

대개 술김에 고래고래 소리 질렀으나, 술도 없이 못하는 노래가 어찌 나오겠는가?

기관지가 나빠 숨쉬기조차 힘든 상황이라 노래하기가 힘들었다.

대개 술이 취해 불러 잘 몰랐으나, 이제 노래는 끝났다는 비참한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김창복씨는 ‘휘나리’, 김선우씨는 ‘킬리만자로의 표범’ 등,

다들 애창곡으로 100점을 줄줄이 받아가며 가수의 면모를 과시했으나,

없는 놈 제삿날 돌아오듯 순서는 빨리도 닥쳐왔다.

 

김상국의 ‘불나비’등 케케묵은 노래만 골라 부르기는 했으나,

노래를 부른 건지 가사를 읽은 건지, 기억 하기도 싫다.

아무튼, 선우씨 덕분에 잘 먹고 잘 놀았다.

뻥 뚫린 고속도로를 질주해 한 시간 반 만에 도착했다.

 

선우씨! 고마워요. 언젠가는 신세 갚을게...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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