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생활수급비가 나온 지난 19일의 동자동 새꿈 공원은, 공원 자체가 술상이었다.
평소에는 수급비가 20일 나오지만, 당일이 공휴일이라 하루 앞당겨 나온 것이다.

수급비래야 노령년금 제하고, 쪽방 달세내고 나면 40만원 가량 남지만,
이런 저런 사정으로 수급비를 못타는 빈민들의 입장에서는 부럽지 않을 수 없다.
먹고 싶은 것 참아가며 알뜰하게 모우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대개 얼마가지 않아 바닥 나 또 다시 수급 날을 기다리게 된다.


수급비가 나와도 이웃에 빌린 돈이나 외상값 갚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으니 
쪼달리는 생활이 반복되는 것이다.






대개 술 담배를 즐기는 사람과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의 차이인데,
희망도 없는 빡빡한 살림에 술 한 잔 하는 낙마저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겠는가.


동자동 사람들은 예사로 이웃과  술 담배를 나눈다.

어디를 가나 없는 사람의 인심이 더 후한 것은 기정사실이다.


구두쇠처럼 야멸차게 사는 사람과 인심 좋은 사람을 두고,
대개의 사람들이 후자를 더 안 좋게 보는 세상이다.
사람보다 돈의 논리를 더 앞세우기 때문이다.






다들 술이 취해 별 것 아닌 일에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싸울 듯 맛 서기도 했다.
김씨가 이씨에게 나라 망친 역적의 후손이라니, 듣는 이씨 기분이 어떻겠는가?
그러나 아무도 주먹을 휘두르지 않았다. 그 뒤의 결과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끌벅적 소란스럽지만, 이내 다시 술잔이 오간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이진수씨가 내 팔을 당기며 따라 오란다.
비닐봉지에는 마시다 남은 소주병과 따지 않은 소주병이 있었지만, 기어이 새 병을 땄다.
먹던 술을 두고 왜 새 병을 따냐고 물었더니, 대접하는 술은 새 술이라야 된다나...


몇 발자국 옆의 정옥상씨를 부르니, 저 놈은 술 취하면 잔소리가 많으니 그냥 두란다.
그러면서 지갑 속에 들어 있는 신사임당 지페 몇 장을 꺼내 보이며 자랑 해댄다.
허구한 날 허덕이다 모처럼 돈이 생겼으니, 기분 좋은 모양이다.






공원 한 쪽 구석에서는 잔돈 섰다판이 벌어지기도 하고,
한 쪽에서는 빌린 돈을 갚는지 돈을 주고 받기도 했다.

구멍가게 옆의 공원 입구 자리는 일찍부터 정재헌씨가 판을 벌여 놓았다.
배용식, 이준기, 이원식, 강완우씨 등 여러 명이 주위를 배회하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김장수씨는 문대통령이 5,18유가족을 포옹했던 이야기를 꺼내며,
좋은 대통령이 되었다며 칭찬에 침이 말랐다.






공원에 어둠이 몰려오자 하나 둘 둥지로 돌아갔다.

정재헌씨는 엊그제 계단에서 넘어져 얼굴을 다쳤는데, 이 날도 술이 취해 몸을 가누지 못했다.
5층 사는 정재헌씨 방까지 부축하느라 얼마나 용을 썼던지, 마셨던 술이 깰 지경이었다.
간신히 방에 앉혀 놓았더니, 말없이 쳐다보는 눈길에 고마움이 묻어난다.





다행스럽게도 정씨는 혼자 술을 마시지는 않는다.
술 취해 오르기가 힘든 줄 알면서도 매일같이 공원으로 내려오는 것은
사람 사는 정이 그리워서다.


정 때문에 울고, 정 때문에 사는 사람들이다.


사진, 글 / 조문호













































우리나라는 어딜 가나 둘로 나누어진다.
마지막 분단국가의 한이 곳곳에 뿌리박혀 있다.
진보, 보수로 나뉘는 정치적 대립은 물론, 종교적 갈등도 마찬가지다.
색깔이야 다를 수 있겠으나, 문제는 다르면 상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 역시 광신도적인 종교적 성향을 가졌거나,
박사모 같은 보수꼴통의 친구들은 잘 만나지 않는다.
더구나 인터넷 매체에 노골적으로 박근혜를 씹어대니,
그들도 나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 살며 마음 주고 받으면 그만인데,
몰지각한 정치꾼이나 맹신도들의 놀음에 왜 우리가 휘둘리는지 모르겠다.





빈민들이 모여 사는 동자동도 마찬가지다.
일단 주민들을 돕는 조직부터 둘로 나뉘어져 있다.
주민들이 스스로 꾸려가는 ‘동자동사랑방’과
관변 조직 ‘서울역쪽방상담소’가 있는데, 서로 반목한다.

싶게 말해 애들처럼 사탕가지고 장난치지 말라는 것이다.
가시적인 지원행사는 빈민들의 자립심만 잃게 한다는 말이다.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이곳도 정치적 성향으로 갈려있다.
몇일 전 진보성향의 ‘동자동사랑방’ 정기총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축사 하는 분이 지금 인양되고 있는 세월호의 아픔을 잠깐 언급하자
한 분이 대뜸 일어나 총회에서 정치적인 이야기 하지 말라는 것이다.
세월호의 아픔이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자체가 슬픈 일이다.






지난 30일 시나리오작가 최건모씨가 내가 사는 쪽방을 방문했다.
‘동자동사랑방’ 박정아씨를 만날 일이 있다고 했다.
‘식도락’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박정아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건모씨에게 닥아오는 어버이날, 주민들 사진 돌려줄 수 있도록
사진 프린트 지원업체를 한 번 알아봐 달라는 부탁도 했다.






‘동자동사랑방’사무실 주변에는 여러 명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김정호씨는 사랑방 입구에 걸린 간판을 자기가 새로 만들었다며 자랑 했다.
최건모씨가 돌아간 후 ‘새꿈공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공원 입구에 버틴 목련 꽃송이는 터질듯 부풀어 있었다.
그 아래 정재헌씨가 이른 시간부터 낮술에 젖어 있었다.
목련꽃 몽울진 봄바람에 취했는지, 지난날을 그리워하며 허무를 달래고 있었다.
옆에 있던 김장수씨는 기계체조 선수 시절의 추억을 씹었다.






‘동자동사랑방’ 주변에는 낮에 술 취한 사람이 전혀 없지만,
공원주변에는 낮에 취한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술을 좋아하고 안 좋아하는 차이가 아니라
희망을 가진 사람과 희망이 없는 사람으로 나눌 수도 있겠다.
한 가닥 희망마저 포기했기에 죽음 제촉하는 독주를 대낮부터 퍼 마셔대는 것이다.





돌아서니 최남선씨가 나를 불렀다.
영정사진을 한 장 찍어 달라고 했다. 요즘은 사진 찍어달라는 부탁을 하면 반갑다.
가진 재주가 그 뿐이니, 주변에 세워 두 컷을 찍었다.
슬며시 내 손에 전해주는 베지밀 병의 온기가 따뜻하게 전해졌다.
정치논리에 휘둘리지 말고, 이처럼 따뜻한 온기를 나누었으면 좋겠다.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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