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eddings, 2014, 161 x 76 x 216cm, Mixed media, Vitrine, Steel and Lighting Fixture

원고를 의뢰 받았다.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작업실 이사와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하느라 소위 ‘실무’라 불리는 현실적인 일들을 하나씩 해치워 온 터라 짤막한 에세이마저 생경한 느낌이었다. 부담스러운 마음에 며칠 동안을 말장난 같은 글들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그냥 편한 마음으로 내가 현재 고민하고 있는 내 작업의 맥락에 대해서 간단히 끄적거려 보기로 했다.

내가 지난 시간 동안 주로 했던 작업은 인체 조각이다. 좀더 세부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사회 현상이나 주변의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갈등하는 인간에 대한 생각을 정교한 표현으로 만들어 나가는 작업이었다. 사실적인 인체 조각이라는 물리적인 틀에 몇 가지 단서를 넣고 크기나 형태에 변형을 주어 의도를 암시하고, 관람자에 의해 해석되는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였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고전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보편적 시각에서 보면 사람은 정신 혹은 영혼과 물리적 신체로 인식한다. 나의 작업은 그러한 이원론적인 의미에서 관객에게 전달되고 감정이나 기억을 상기시킨다. 신체와 꼭 닮게 제작된 물질에 체온이나 핏기를 연상시키는 색채를 칠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여 관객에게 그 인체가 풍기는 냄새를 맡게 하는 것이다.
얼마 전부터인가 내 작업의 주제가 적절했는지는 논외로 치더라도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형식은 작위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갑갑할 정도로 내 머리 속을 차지했다. 그래서 몇 가지 변화를 갖기 시작했다.

 

Sheddings, 2014, 161 x 76 x 216cm, Mixed media, Vitrine, Steel and Lighting Fixture(Detail)

수년간 관습처럼 지속되어오던 작업과정이 결과물을 예상치의 범주 안에 머물게 한다는 생각에서 과정부터(작업공정)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Sheddings>(2014)이다. 이 작업은 그 동안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석고 원형이나 실험을 위해 제작된 것들 또는 제작과정의 오류로 실패한 조각들 등)들을 유리관에 단지 넣어놓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만들어진 조각들을 손이 가는 데로 하나씩 쌓아 올렸다. 각각의 모습이 구체적인 신체 부분의 모양을 하고 있으나 온전한 형상도 채색이 되어 있지도 않은 재료 그대로의 상태로 놓여져 있기에 일일이 설명이 필요 없는 상태였다. 보편적으로 인식되는 물리적인 신체 그 자체가 물질 그대로 놓여진 셈이다. 정신이나 영혼 또는 감정이나 기분을 연상시키는 어떠한 요소도 없는 물질 그대로의 신체들 말이다.

사회현상은 특정한 공간에서 수 많은 신체들의 기능과 행위들로 이루어진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나의 공간에서 벌어질지 기대해본다.

- 최수앙(1975- ) 서울대 조소과, 동 대학원 졸업. 프랑스(2009, 2010), 싱가폴(2013), 벨기에(2014), 중국(2014)에서 개인전. 성곡미술관 2010 내일의 작가 선정, 2014 김세중 청년조각상 수상.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성곡미술관, 미술은행, 코오롱문화재단 작품소장.


 

Fly, Rooster, 2014, 옻칠화(East Asian natural lacquer Paintting), 91x117cm

작가는 사회와 그 시대의 자양분을 먹고 살아간다. 개인적인 역경은 작가에게 시대와 사회를 읽는 눈이 되며, 유토피아적인 사회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뜻하지 않은 힘든 역경이 닥칠 수 있는데 나 역시 크고 작은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자주 겪게 되었다.

생활이 힘들었던 6년 전 늦봄,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작업실 앞마당에 수탉을 한 마리 키웠다. 어느 날 그 닭은 나뭇가지 위에도 올라가고 지붕에도 올라갔다. 장난삼아 그 닭을 쫓아가면 닭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나무로부터 제법 멀리 도망쳤다. 나의 <날아라 닭>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야생에서 자란 닭은 날갯짓을 하다 보니 언젠가부터 조금씩 날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둠을 뚫고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닭. 이것이 나의 닭 작업을 통해, 아니 작가적인 삶을 통해 꿈꾸는 세계인 것이다.

닭은 예로부터 벽사의 의미와 함께 어둠과 질병, 재앙을 몰고 오는 귀신을 물리치고, 새벽에 우렁찬 소리와 함께 새로운 시간을 여는 희망의 상징이었다. 솟은 머리는 벼슬과 같다고 여겨 입신출세와 부귀공명의 상징이기도 하였다. 닭은 날개가 있으되 인간에게 길들여져 가축화 된 후부터 퇴화되어 멀리 날지 못하게 되었다. 닭은 어쩌면 나의 삶의 모습과 닮아 있는지도 모른다.

나의 옻칠화 작품은 꿈과 이상을 향해 자유롭고도 힘차게 날개짓 하며 창공을 비상하고자 하는 소망을 담은 것이다.

닭은 나의 모습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현실을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처연한 자화상이기도 하다.

 

 

날아라 닭-새벽, 2014, 화판 위에 천, 천연옻칠화, 60x88cm

 

나의 작품들은 옻칠을 재료로 하고 있다. 옻칠은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는 만큼 제작과정이 복잡하다. 옻칠은 옻이 오를 때 심하게 붓거나 피부 알레르기가 생기고 심하게 간지럼을 타는 등 다루기가 상당히 까다로운 재료이지만 수 천 년간 변하지 않는 보존성과 자연광택, 방수·방충효과가 뛰어나며 그윽한 깊이감을 지니고 있다. 옻칠은 아마도 작가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아니 우리네 삶의 모습과 닮아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러한 옻칠의 재료를 다양한 색감이나 기법의 실험을 통해 옻칠공예를 넘어서 옻칠회화로 그 영역을 확장하려고 한다.   
 
요즘이 작가로서의 삶이 더욱더 힘든 시대라지만 오늘도 옻칠작업을 한다. 먼 훗날 돌이켜본다면 역설적이게도 개인의 역경뿐만 아니라 힘든 사회와 시대는 한편으로 예술가들에게 오히려 축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 성태훈(1968- ) 홍익대 동양화과 및 동 대학원 졸업,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박사 수료. 프랑스 파리, 독일 베를린, 미국 LA, 중국 북경 등 개인전 22회. ‘한국화의 재발견’(성남아트센터), ‘Wonderful Pictures’(일민미술관), ‘한.중 현대미술-환영의 거인’(세종문화회관) 등 기획전 참여. 2011 조니워커킵워킹펀드 최종 우승 및 인기상 수상. 국립현대미술관 고양창작스튜디오 6기 입주 작가. 현재 홍익대 겸임 교수 및 성신여대 출강.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최영욱 / 화가

 

 

사람은 살면서 변한다. 식성이나 외모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그릇도 변한다. 중요시 여기던 것이 덧없이 느껴질 때도 있고,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느꼈던 것도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이해하게 되기도 한다. 세월이 우릴 이해하게 해준걸 게다.

박물관에 놓여있던 달항아리가 나에게 다가온 적이 있다. 사람도 없던 박물관 안에 홀로 조명을 받으며 놓여 있었다. 소박하고 수수해 보이지만 많은 걸 품고 있고 한참을 보다 보면 지극히 세련된 달항아리. 나에게 그렇게 살라는 것 같았다.
나는 달항아리를 그린다. 하지만 똑같이 그리는 것은 아니다. 달항아리를 닮고 싶은 마음을 형태에 담고 그 안에 내가 살아온 인생길을 그린다. 그래서 제목이 ‘카르마’이다. 살면서 안타깝고 아쉬운 순간들이 있었지만 그것도 나의 인생이었다. 이 넓은 세상에서 우리가 만나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운명같이 느껴진다. 그래서 매 순간이 소중하고 지난 일들이 아련하다.
우리는 살면서 변해 왔지만 변하지 않고 우리 안에 있는 그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에게 늘 있었던 측은지심. 입장을 바꿔보면 이해하지 못할 일도 많지 않다. 레미제라블을 보며 왜 가슴이 뭉클했을까? 음악이나 연기력보다도 다같이 잘 살아야겠다는 공감 때문이었으리라.

점점 소박한 게 좋다. 화려한 장식보다 여백이 좋고 기름진 음식보다 찬물에 밥말아 오이지 한 점 먹을 때 행복을 느낀다. 많은 걸 말하지 않지만 우린 거기서 한끝의 정수를 본다. 내 그림이 그러했으면 좋겠다.

 

[출처 / 김달진미술연구소]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인생이다. 떠돌며 가는 길에 정도, 미련도 두지 말자는 어느 노래의 가사가 새삼스럽게 공감이 간다. 인생은 나그네길이다. 구름처럼 흘러가는 인생길의 나그네, 나그네는 하숙생처럼 집을 떠나 잠시 머물고 또 떠난다.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고 머무르고 싶어도 머물 수 없는 인생길. 그저 구름에 달 가듯이 흐르면 될 것을 무엇을 위하여 그토록 번민하고 치열하였던가 싶다.

인왕산의 붉은 나무(Red tree in Mt. Inwang), 2014, oil on canvas, 240×149cm

척박한 땅, 단단한 바위에서 싹을 틔우고 뒤틀며 살아 올라와 거친 삶을 살아온 소나무 한 그루는 나에 대한 오마주다. 힘들었기에 굳건하게 버텨왔다. 나뿐만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 치열해야 할 예술가의 숙명을 깨닫게 해주는 채찍이다. 오만과 욕심, 집착에 대한 채찍이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지 간에 제일 무서운 것은 나 자신일 것이다. 나그네길에 짐이 많으면 구름처럼 떠돌 수가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나 또한 그 짐을 벗지 못한다.

전시회를 할 때마다 그림들이 나에게서 머물다 떠난다. 돌이켜보면 후회도 남고 자책도 남는다. 집착하지 않는 것은 쉽고도 어렵다. 모든 것을 놓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을, 잊고 살았지만 당연한 진리를 이제야 다시금 떠올린다. 비워야 다시 시작한다. 사랑은 연필로 쓰라고 했던가. 그림도 연필로 그린 듯 깨끗이 지우고 싶다. 나를 떠나간 그림들이 홀연히 구름처럼 나를 떠나갔으면 싶다. 그들을 내려놓고 싶다. 하지만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나는 잊고 싶어도 그림은 나를 기억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사랑을 어떻게 깨끗이 지운단 말인가.


인왕산(Mt. Inwang), 2014, oil on canvas, 240×145cm


인생도, 그림도, 사랑도, 머물다 떠난다.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을 남기고서. 아닌 줄 알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이기에, 남아 있는 미련이 그림 속에 하얗게 빛나고 있다.

나는 희게 빛나는 빛을 따라가는 행복한 나그네다.


- 차대영(1957- ) 홍익대 동양화과 학사, 동 대학원 석사, 한국 미술국제교류협회 명예회장,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역임, 현 수원대 교수. 젊은 모색전(국립현대미술관), MC2000Effel-Brany (프랑스) 등 다수 개인전, 단체전 참가. 제10회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 제8회 한국미술 작가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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