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트래블조선]

 

                                           창덕궁의 정문 돈화문 설경

 

위 치 : 서울 종로구 율곡로.종로

고궁의 겨울은 고요하다. 봄부터 가을까지 북적이던 관람객의 소음이 잦아들자, 비로소 고궁은 평화를 얻는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우리나라 궁궐은 경복궁이 아니라 창덕궁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궁궐로 경복궁을 꼽지만, 임금이 머무른 기간으로 따지면 창덕궁이 길다고 한다. 조선의 왕들은 왜 창덕궁을 아꼈을까?

 

                                          창덕궁 세계유산 표시석

 

창덕궁(사적 122호)은 태종 5년(1405) 경복궁 동쪽에 세워, 창경궁과 함께 동궐이라 불렸다. 왕이 거주하며 정사를 이끌던 곳을 법궁, 화재나 변고가 있을 때 머물며 정사를 보던 곳을 이궁이라 한다. 경복궁이 조선의 법궁이고, 창덕궁과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은 이궁이다. 하지만 태종부터 이후의 왕들은 창덕궁에 더 자주, 오래 머물렀다. 경복궁은 주요 건물들이 좌우대칭으로 반듯한데, 창덕궁은 산자락과 주변 지형에 따라 공간을 자연스럽게 배치했다. 사람과 건축물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어 친근하면서도 아름다운 궁궐이 만들어진 것이다.


 

                                          금천교를 지키는 사수

 

정면 5칸에 2층으로 된 돈화문(보물 383호)을 지나면서 궐내에 들어선다. 먼저 돌로 된 금천교(보물 1762호)를 건너는데, 궁궐로 들어갈 때 흐르는 물에 악한 마음을 씻어 맑게 한다는 의미다. 임진왜란이나 화재 등으로 창덕궁의 많은 건물들이 소실되었으나, 금천교는 처음 모습 그대로 600년을 이어오고 있다


 

                                         창덕궁의 중심 인정전

 

창덕궁의 중심은 인정전(국보 225호)이다. 인정전으로 들어가는 인정문(보물 813호)은 연산군, 효종, 현종, 숙종, 영조 등이 즉위식을 올린 곳이다. 문을 통과하면 넓은 마당이 펼쳐지고, 그 위에 우뚝 선 인정전이 보인다. 밖에서 보기에는 2층이지만 내부는 한 층으로 뚫린 구조다. 왕의 혼례나 외국 사신을 맞이할 때, 신하들의 하례를 받을 때 등 나라의 공식적인 행사를 치르던 공간이다.


 

                                          왕세자의 거처인 성정각

 

왕이 업무를 보던 곳은 인정전 동쪽에 지은 선정전(보물 814호)이다. 청기와를 올린 것이 특징인데, 수입 안료를 사용해 청기와를 만드느라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들었다고 한다. 왕실 도서관 규장각, 용마루를 얹지 않은 대조전(보물 816호), 희정당(보물 815호)에서 일을 마친 왕이 곧장 침전으로 건너갈 수 있게 만든 복도각, 왕세자가 공부하던 곳이자 1910년대부터 내의원으로 쓰인 성정각,


 

                                          창호 무늬가 아름다운 낙선재

 

마지막 황실 가족이 머무르던 낙선재(보물 1764호) 등도 눈여겨봐야 할 곳이다.


 

                                            창덕궁 후원의 부용정과 부용지

 

창덕궁의 또 다른 멋은 후원에서 찾을 수 있다. 업무에 지친 왕이 말을 타고, 때로는 걸어서 이곳에 와 머리를 식히고 사색에 잠겼을 것이다. 창덕궁 전체 면적의 3분의 2가 후원인데, 해설사와 함께 돌아보려면 1시간 30분이 걸린다. 후원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공간은 부용지 일원이다. 네모난 연못에 동그란 인공 섬이 있고, 연못에 발을 담근 부용정(보물 1763호)이 그림처럼 어울린다. 부용정 앞의 영화당은 유일하게 개방된 곳이다. 애련지와 존덕정 일원을 지나 후원의 가장 안쪽에 이르면 자그마한 폭포와 취한정, 취규정, 소요정, 태극정, 청의정 등 다섯 정자가 있는 옥류천이다. ‘구속 없이 천천히 노닐다’라는 뜻이 있는 소요정은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 나라 걱정은 잠시 잊고 쉬고픈 왕의 심정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종묘의 중심인 정전

 

종묘는 조선왕조의 역대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신 왕가의 사당이다. 태조 이성계는 경복궁과 함께 종묘를 세워 조상신을 섬겼다.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내건 조선은 무엇보다 효를 중시했는데, 바로 조상께 제사를 올리는 것이 효를 실천하는 방법이었다.

 

                                                                     붉은 기둥이 인상적인 정전의 신실

 

종묘의 중심 건물은 역대 왕과 왕비의 혼이 잠든 정전이다. 사후 왕으로 추존된 왕이나 재위 기간이 짧은 왕은 영녕전에 모셨다. 정전(국보 227호)은 세계에서 가장 긴 단일 건축물로, 이는 신위가 늘어날 때마다 증축했기 때문이다. 정전은 가운데 놓인 신로를 중심축으로 완벽한 대칭을 이룬다. 서쪽을 기준으로 몇 차례 증축하면서 신로와 정전 남문도 동쪽으로 조금씩 옮겼다는 점이 독특하다. 영녕전(보물 821호)은 처음에 지은 가운데 4실을 중심으로 좌우로 증축했다. 궁궐에 왕이 다니는 어도가 있다면, 종묘에는 길 가운데 영혼을 위한 신로가 있으니 가급적 밟지 않는 게 좋다.


 

                                          가운데 높은 길이 영혼이 걷는 신로

 

정전 동문 옆에 있는 건물은 재궁으로, 제사 하루 전에 왕과 세자가 머물면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던 곳이다. 정전 하월대 아래 있는 긴 건물은 공신당으로, 나라에 공을 세운 신하들의 위패를 모시고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선왕은 물론 공신들의 제사까지 지냈다는 점에서 임금뿐만 아니라 신하를 중히 여기던 조선의 철학을 읽을 수 있다.

역대 왕들에게 제사를 올리는 것을 종묘제례라 하는데, 지금은 해마다 5월 첫째 일요일에 종묘제례를 시현한다. 종묘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종묘제례 및 제례악은 ‘인류 구전 및 무형 유산 걸작’으로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등재됐는데, 한 공간과 그 공간에서 행해지던 의례와 음악이 함께 세계유산으로 선정된 유일한 예다.


 

                                          국립서울과학관의 티라보사우르스와 해남이크누스

 

창경궁 옆에 자리한 국립서울과학관은 1945년에 개관해서 지금까지 어린이들에게 과학의 꿈을 안겨준 소중한 공간이다. 1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백악기 공룡 타르보사우루스와 하늘을 나는 해남이크누스가 맞아준다. 공룡 화석 옆으로는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휴머노이드 댄스 로봇들이 일사불란한 춤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우주와 별자리 이야기를 듣는 천체투영관, 움직이는 트리케라톱스 모형, 과학 원리를 이용해서 장난감을 만들어보는 과학놀이마당, 재미있는 수학이야기, 4D영상관 등 흥미로운 코너로 가득하다.

 

                                          국립민속박물관 마당

 

국립민속박물관은 한국인의 생활ㆍ민속 문화를 전시하고 체험ㆍ교육하는 문화 공간이다. 한민족 생활사, 한국인의 일상, 한국인의 일생 등을 상설 전시하고, 흥미로운 기획 전시가 자주 열린다. 우리나라 명문 종가의 생활철학을 소개하는 기획 전시 〈종가〉는 2월 24일까지 이어진다. 〈종가〉는 조용한 리더 종손의 길, 종가 안살림의 구심점 종부의 길, 종가의 제사 등으로 구성된다.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는 오감 체험으로 우리 전통문화를 자연스레 익힐 수 있는 어린이박물관도 인상적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담장없는 입구

 

지난해 11월 기무사 터에 문을 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담장이 없는 열린 미술관이다. 여러 건물이 자유롭게 들어섰고, 건물 사이에 골목길이 생기고 광장이 형성되어 흥미롭다.


 

                                          종친부를 배경으로 놓인 따뜻한 의자

 

굳이 전시실에 들어가지 않아도 광장과 마당에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종친부 앞에 드문드문 놓인 빨간 의자들이 대표적이다. 김승영의 ‘따뜻한 의자’는 보일러가 설치되어 온돌처럼 따뜻하다. 찬 바람 속에서 엉덩이를 따뜻하게 녹이며 작품 감상을 즐기는 셈이다. 주 전시실에는 서도호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최우람의 〈오페르투스 루눌라 움브라〉 같은 대형 프로젝트가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광장시장의 명물 빈대떡

 

여행의 마지막은 역시 맛있는 먹거리가 최고다. 종묘 앞에 자리한 광장시장은 이런 욕구에 맞아떨어진다. 고소한 맛이 혀에 감기는 빈대떡, 쫄깃한 순대, 허기를 달래주는 마약김밥, 술술 넘어가는 육회를 맛보면 피곤함이 스르르 녹아내린다.

<당일 여행 코스>
문화 유적 답사 / 창덕궁→국립서울과학관→국립민속박물관→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종묘→광장시장

<1박 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 창덕궁→북촌한옥마을→국립민속박물관→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인사동길(숙박)
둘째 날 / 국립서울과학관→종묘→광장시장→흥인지문→동대문패션거리

○ 관련 웹사이트 주소

- 창덕궁 www.cdg.go.kr
- 종묘 http://jm.cha.go.kr
- 국립민속박물관 www.nfm.go.kr
- 국립서울과학관 www.ssm.go.kr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www.mmca.go.kr

최근 경복궁 동쪽 출입구인 건춘문 앞에 웅장한 현대식 건물 하나가 들어섰다. 오는 11월13일 개관하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하 '서울관')이다. 서울관 부지는 경복궁, 창덕궁 등과 인접해 있고 동쪽으로는 북촌 한옥마을, 남서쪽으로는 광화문 광장, 남동쪽으로는 인사동 거리와 연결된다. 서울관은 2011년 착공해 현재 막바지 공사로 분주한 모습이다. 공사 기간 동안 대형 화재, 돌담 복원 논란 등 여러 곡절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관이 들어서는 부지의 오랜 내력에 비하면 곡절이랄 것도 없다.

서울관은 서쪽을 정문으로 하며 야트막한 구릉에 위치해 있다. 맞은 편 담장 너머로 경복궁이 한눈에 들어온다. 건물 앞에는 수령이 200년이나 된 비슬나무 한 그루가 우람한 자태를 뽐낸다. 마치 세상의 풍파를 다 견딜 수 있다는 듯, 굳건한 형상이다. 비슬나무는 5월 하순에 잎이 피며 궁궐이나 한옥의 마당 한켠에 심긴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서울관 전체 연면적 중 전시공간은 8개실로 1만450㎡(27%), 수장공간 3825㎡(10%), 문화ㆍ교육공간 4750㎡(12%), 자료ㆍ정보공간 2155㎡(5%), 사무공간 2941㎡(8%), 주차장 1만4806㎡(38%)로 구성된다. 전시실은 옛 기무사 건물을 리모델링한 곳에 집중 배치했으며 제1전시실을 제외하고는 전부 지하에 있다. 최은주 국립현대미술관 학예팀장은 "해외의 일부 미술관이 지하를 적극 활용한 사례는 있기는 하지만 우리 미술관처럼 전면적으로 집중, 배치한 경우는 매우 특이한 사례"라고 설명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공공보행통로. 사진/남궁선


서울관은 주변 도로 4면 어디서든 전시실로 접근이 가능하다. 또한 마당을 가로질러 누구나 인근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는 골목길 형태의 동선은 열린 공원과 같은 개방형 미술관을 표방한다

서울관은 경복궁을 등지고 보면 좌측으로는 초현대식 건물, 우측으로는 고졸한 느낌의 벽돌 건물이 나란히 분리, 배치돼 있다. 두 건물 사이로 통로가 놓여 있어 서울관 중심 마당으로 이어진다. 통로를 따라 몇 걸음 올라가면 마당 건너편, 즉 서울관의 후면에 옛 전통 궁궐 형식의 건물이 우뚝 솟아 있다. 서울관 설계를 맡은 민현준 엠피아트 대표는 "옛 전통 건물은 서울관의 역사적 맥락과 한국적 문화 특성을 설명해 주면서도 정체성을 이루는 요소"라고 설명한다.

설명과는 달리 건물은 전각처럼 기단 위에 설치돼 위용을 보이기는 하나 주변 건물과는 규모상으로 왜소한 탓에 부조화스러워 보인다. 또한 마당과 건물 주위로 나무 등 조경이 이뤄지지 않아 한국적 전통을 상징하고 있다기에는 무엇인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따라서 건물이 국립현대미술괸의 정체성을 설명해주기에는 왠지 부족하다. 그러나 서울관 부지의 정체성을 상징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서울관 부지는 서울 종로구 삼청로 36으로 주소가 돼 있다. 당초 부지는 조선 왕실 종친부 건물인 경근당과 옥첩당 자리다. 조선 시대 종친부는 인근 안동별궁(현 풍문여고 자리)의 경연당, 정화당, 현광루와 감고당(현 덕성여고 자리) 등 여러 현저(임금이 왕위에 오르기 전 혹은 왕의 아버지가 살던 집)와 어울려 왕궁을 옹위하고 있었다. 즉 왕실 외척과 후궁들이 경복궁을 드나드는 건춘문 앞에 위치, 감시 초소 역할도 했음직하다. 턱하니 건춘문 앞을 지키는 종친부에 왕실 친족들이 자리하고 있으니 외척들도 궁을 출입하면서 눈치가 보이지 않을 리 없을 터다.

                                          종친부 건물. 1981년 신군부에 의해 옛 경기고 자리로 옮겨졌다가 최근 제자리로 돌아온 경근당과 옥첩당.사진/박흥순


종친부는 어보(임금의 도장)와 영정(초상화) 등을 보관하고 왕과 왕비의 의복관리, 종친의 봉작세습 및 관혼상제 등 사무를 담당했다. 조선 전기에는 '제내제군소'로 불렸으며 세종 12년(1430년) 종친부로 이름을 바꿨다. 종친은 왕의 정식 왕비가 낳은 4대손, 후궁이 낳은 3대손로 한정한다. 순종 융희 1년(1907년) 폐지돼, 규장각으로 쓰였다. 건물은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는 이곳에 학무국 분실을 뒀다. 학무국은 경복궁 담장 너머로 총독부와 총독부 박물관 등과 인접해 있으면서 식민지 교육, 문화정책을 수행했다. 이후 1928년 일제는 종친부 자리 일부에 3층 높이의 경성의학전문학교(현 서울대 의대) 부속병원으로 활용했다. 해방 이듬해 서울대 의대 제2부속병원으로 활용되다가 1978년 국군 서울지구병원으로 개편됐다.

종친부의 비운은 신군부 때 절정에 달했다. 1981년 12ㆍ12 군사 반란을 통해 권력을 잡은 신군부는 병원을 국군기무사령부로 썼다. 당시 신군부는 기무사 건물을 지으며 경근당과 옥첩당을 옛 경기고등학교 자리(현 정독도서관)로 옮겼다. 이전 이유를 보면 가관이다. 바로 테니스장을 짓고, 운동장 등 체육시설로 쓰게 위해서였다.

종친부는 서울관 공사가 한창이던 2010년 발굴 조사에서 월대(月臺ㆍ궁전이나 누각 앞에 세운 섬돌)와 다짐층 등 기단부 흔적이 발견되면서 옛 터가 드러났다. 그러나 이전 문제를 놓고 설계변경, 공시기간 문제 등 여러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현재 기무사 건물은 서울관 남측의 붉은 벽돌건물로 리모델링돼 전시실로 탈바꿈됐다.

                                                    일제는 1928년 경성의전(현 서울대 의대) 부속병원으로 썼다. 그 이전에는 식민지 교육,

                                                    문화정책을 담당하는 학무국으로 활용했다. 사진은 옛 경성의전 부속병원의 모습.


기무사는 군부대로 각종 정보 수집 및 사찰, 민간인 감시 등 정권 하수인 노릇을 하며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와 더불어 정보기관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시민운동가들의 체포, 구금, 고문 및 간첩단 조작 등으로 악명이 높았다. 기무사는 2001년 김대중 정부 시절 이전이 확정돼 송파로 옮겨갔다. 2009년 문화예술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립이 확정되자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방부에 부지 매입비 1038억원를 지불하고 땅을 확보, 공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국립미술관이 들어서면서 고통의 흔적은 말끔히 세탁돼 역사적 증거가 인멸된 상태다. 옛 기무사터라는 내력은 그저 붉은 벽돌 일부에만 남겨져 있을 뿐이다. 서울 종로구의 한 문화해설사는 "종친부는 조선 후기 외척에게 짓밟히고 세력이 약화됐고, 일제와 신군부를 거치며 갖은 수난으로 기구한 운명을 이어 왔다"고 "그나마 이제라도 복원돼 조선 후기 건축 문화재로 보존될 수 있게 됐다"설명했다.

종친부의 본채인 경근당과 별채인 옥첩당을 이루는 두 건물은 복도로 연결, 본채 앞은 월대라는 높은 기단을 형성하고 있다. 복도는 본채 뒷편과 부속채 앞쪽의 트인 공간을 연결하면서도 두 건물의 서로 다른 높이로 계단 역할을 겸한다. 경근당은 앞면 7칸으로 목조건물로는 규모가 큰 편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종친부, 신축된 현대식 건물, 리모델링한 기무사 건물 등 각기 성격이 다른 세 개의 건물을 이루며 오는 11월 이후 관람객을 맞게 된다. 또한 서울관은 경복궁 등 문화재 및 북촌 한옥 보존마을의 배경으로 기능하면서 한국 미술의 새로운 메카로 자리한다. 미술이 과연 외세와 군부에 의한 수난사를 덮어줄지, 역사 인멸의 한 방편이 될지는 수많은 관람객의 역사적 이해에 달렸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정면. 사진/명이식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관 개관 이후 각종 기획전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문화적 향취와 더불어 다시금 역사적 교육을 새길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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