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즌에 주목할 전시로 ‘한국근현대 회화 100선전’(2013.10.29-3.30,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분관), ‘박수근전’(1.17-3.16, 가나인사아트센터), ‘종이에 실린 현대작가의 예술혼’(2.5-3.9,갤러리현대)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작년 부터 열린 ‘한국근현대 회화 100선전’은 현재(2월 12일 자)로 23만명이란 관중을 동원한 근래에 보기 드문 열기를 보여주고 있으며, ‘박수근전’, ‘종이에 실린 현대작가의 예술혼’전에도 관람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 시간으로 따지면 거의 반세기 전에 창작된 작품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기획전들로 어떤 점으로 보면 현대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근현대회화 100선전’은 20년대에서 70년에 걸친 반세기에 창작된 회화며 ‘박수근전’도 50년대, 60년대에 제작된 작품들이다. ‘종이에 실린 현대작가의 예술혼’은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이 역시 30년을 상회하는 작품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편이다. 세 전시에 나온 작품들을 두고 현대의 고전이라 불러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우리의 근, 현대란 시간의 개념이 보편적 기준에서 다소 벗어난 압축된 것이고 보면 더욱 현대의 고전이란 에피세트가 결코 과장은 아니리라 본다.


고전이란 과거에 만들어진 전범이란 의미를 지닌다. 그러기에 전범은 하나의 모델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따라야 할 준거틀, 가치의 기준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근, 현대미술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어떻게 전개되었느냐는 역사적 맥락을 추구할 수 있으며 종내에는 우리미술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하는 미학적 탐구에 이르게 된다고 본다.


이들 전시에 많은 관중이 밀려온다는 것은 단순한 흥미 본위의 차원을 떠나 우리 것에 대한 목마름의 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자유로운 해외여행을 통해서 외국의 고전이나 명화들을 대할 기회는 많아졌으며 흥행 위주의 해외명작전들이 수없이 많이 열린 반면 막상 우리미술에 대한 보다 집중된 전시가 없었다는 데 대한 반사작용이라고나 할까. 외국 것에 대해 식상할 즈음에 나타난 우리 것에 대한 보상심리의 단면이라고나 할까. 국립박물관이나 간송미술관에서 가끔 열린 우리 고전에 대한 기획전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던 점도 같은 맥락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본다.


                         박수근, 앉아있는 여인, 1963, Oil on canvas, 65×53cm



우리의 아름다움 다시 찾기

우리 것이 좋다, 우리 것이 아름답다는 국수적 발상이 아니라 우리 것이 결코 외국 것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자각현상, 우리 독특한 아름다움이 세계적인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의 발견이야 말로 감상적, 편파적 국수풍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우리 것이 아름답게 보일 때 남 것의 아름다움도 제대로 보인다는 데서 진정한 미술감상은 시작되기 때문이다.


‘한국근현대 회화 100선전’은 우리의 근, 현대미술사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기획이다. 시대별 경향의 추이, 방법의 다양한 모색, 그 속에서 가꾸어진 개별성을 점검해볼 수 있으려면 이만한 작품들이 집중적으로 모이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박수근전’은 박수근의 전체 유화작품이 대개 300점을 약간 상회하는 것으로 추론되고 있는데 이 전시에 유화작품이 100점이 나왔다는 것은 그의 전체 작품의 약 3분의 1이 출품되었다는 계산이다. 작품 하나하나가 각기 독특한 향기를 지니고 있지만, 그것들이 한자리에 대량으로 진열되었을 때는 또 다른 감동의 열기로 다가온다. 개별에서 못 느끼는 무게라고나 할까. 파워라고나 할까. 우렁찬 합창을 듣는 기분이다. 그래서 한자리에 대량의 작품들이 진열되는 회고전이 유달리 감동을 자아내는 이유도 이에 말미암은 것이다. 5월에 열리게 될 박수근 탄생 100주기 기념전(박수근미술관)은 박수근의 인간적인 면모가 또 다른 감동으로 다가올 것을 기대하게 한다.


‘종이에 실린 현대작가의 예술혼’전은 종이란 매체에 의해 이루어진 작품만을 모았다는 데서 또 다른 기획의 묘미를 발견한다. 특히 우리에게 있어 종이는 각별한 데가 있다. 종이로 에워싸인 공간에서 생활해온 한국인들에게 종이란 매체는 단순한 지지체에서 벗어난 정서로서의 그 엇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그것은 한국인과 육화된 어떤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을 조형의 방법으로 접근한다는 데서 이 전시가 갖는 진정한 의미가 있지 않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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