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종의 만인보]

 

따지고 보면 전통문화 전반의 문제겠지만, 그중에서도 오늘날 한복의 사정은 참 쓸쓸하고 적막하다. 이제는 결혼식날 아니고는 명절에도 한복을 입는 젊은이를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최근 참석한 어떤 모임에서 ‘한복 대중화’로 얘기가 흘러갔다. 모든 시선이 김영석(51)에게 모아졌다. 명성 자자한, 당대의 스타 한복 디자이너라니까 다들 기대가 컸다. 그랬는데, “공장형 한복, 생활한복 같은 한복 대중화도 필요하겠지만 그건 내 몫의 일이 아니다. 내가 이러니저러니 얘기하는 건 적절치 못하다”고 딱 자르는 거였다. 전문가라고 시건방지거나 폼잡고 잰 체하는 느낌 없이 담백하고 겸손한 말투고 태도였다. 이 친구 봐라…, 일종의 탐구심 같은 게 일어났다.

뭣보다도 김영석은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식과 외국 정상회담 때 입은 한복을 지어서 항간에 확 떴다. 하긴, 이미 2010년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 때 각국 대통령 부인들에게 출중한 한복을 입히면서 신데렐라 스토리를 썼던 그다. 거기다가 각계 명사, 연예인, 장안의 내로라하는 집안들이 특별한 날에 그의 한복을 입는다고 소문났다.

김영석은 체격 당당하고 얼굴 잘생기고 옷 입는 스타일이 아주 모던하고 세련된 멋쟁이 사내다. 인간문화재급 단아한 원로 여성 장인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한복계에서 그의 이런 모습과 활동은 반전이다. 특이하게도 어려서부터 이쪽 방면에 싹수가 좀 남달랐단다. 3남2녀 중 막내. 아버지 사업이 때로 흥망을 겪었지만 대체로는 부유하게 자랐다. 주로 서울 사대문 안 한옥에서 살면서 고궁을 마당 삼아 들락거렸다. 일찌감치 인사동, 황학동을 헤집고 다니면서 소품 골동품들을 사들이는 재미를 붙였다. 특히 노리개, 복주머니, 조각보처럼 예쁜 전통 자수품들을 좋아했다고 한다. 사내아이가 해진 수공예품을 사다가 바느질을 해서 말끔하게 고쳐놓는 걸 보고 할머니가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대학 축산과를 나온 뒤 일본에 유학해 음향과 연출을 공부했다. 그 후 이벤트 기획자로 웬만큼 잘 풀렸다. 어느 날 절친한 친구와 전통공예전을 보러 갔다가 한복에 필이 팍 꽂혔다. 때마침 IMF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인생의 진로를 아예 그쪽으로 틀어버렸다. 서른 훌쩍 넘은 노총각이 침선장 중요무형문화재인 구혜자 선생을 찾아가 3년 동안 바느질을 배웠다.




서울 삼청동길 모퉁이에 ‘전통한복 김영석’ 간판을 내걸고 본격적으로 ‘한복쟁이’로 나선 게 1999년이다. 새하얀 벽의 통유리 쇼윈도 안에 횃대를 걸고 예술작품처럼 저고리 하나 슬쩍 걸쳐놓는 식의 디스플레이로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단번에 잡아끌었다. 그런 갤러리식 쇼윈도 디스플레이를 한 달에 한 번씩 바꿨다.

결정적인 건 그가 만든 한복이 결혼식 같은 데서 아주 돋보이면서 입소문을 탄 거였다. 늦게 시작한 대신 단기간에 한복계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이름을 널리 알렸다. 2006년 신라호텔로 매장을 옮긴 뒤로 더 승승장구했다. 그 비결이 뭐냐니까 “전통의 격조와 눈썰미를 곧이곧대로 지키되 현대성과 창조적인 영감을 담아내는 문화종합력”이라고 했다. 이게 김영석의 남다른 콘셉트다. 그는 제대로 법고창신(法古創新·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의 핵심 포인트를 짚은 거다.

김영석은 시대 유행을 따르는 한복도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자신은 전통미를 알맹이로 한복 가치를 확 높이는 명품화 길을 택했다. 그는 전통에 충실하면서도 밀라노나 뉴욕에 내놔도 현대적 세련미에서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했다(박 대통령이 외교 무대에서 선보인 전통한복은 세계 패션계에서 성공작이라는 평을 들었다).

입구에 ‘傳統韓服’(전통한복)이라고 새긴 그의 매장은 화랑 혹은 예술공방에 더 가깝다. 우선 선반을 가득 채운 전통 오방색(청, 적, 황, 백, 흑의 다섯 가지 기본색) 옷감이 예사롭지 않다. 어느 집 장롱 속에 틀어박혀 살아남은 귀하디귀한 무명과 손명주를 값을 따지지 않고 사들였다고 한다. 그런 옷감들이 염색, 배색, 바느질을 거쳐 이 세상 유일무이한 한복으로 태어난다. 여기에 꽃신, 자수 베개, 노리개, 족두리, 비녀, 방석, 부채, 매듭 같은 전통 장신구와 규방 소품들이 티파니 보석가게는 저리 가라 하게 진귀한 빛을 뿜어낸다.

김영석은 틈날 때마다 박물관과 미술품 전시회를 보러다니고 이 땅 방방곡곡, 동서양 문화도시들을 여행한다. 그의 컬렉션은 전통공예품뿐만 아니라 동서고금을 넘나든다. 그는 전통 한옥과 현대성을 독특하게 결합시킨 서울 평창동 집에서 77세 노모와 둘이서 자유롭게 산다(그는 여태 미혼이다. 이상은 높고 현실은 받쳐주지 않아서 결혼을 못했다는 게 그의 변이다). 이 집 인테리어와 조경에 자신이 수집한 공예품, 예술품을 가득 채웠다. 한때는 출토복식(무덤에서 나온 전통 복식) 재현에도 힘을 쏟았다.

최근에는 작가, 문화연출가로 한걸음 더 나갔다. 서울 가회동 한옥에서 세계적인 미디어 설치작가 다쓰오 미야지마와 공동 전시, 울산 박물관에서 한복인들이 대거 참여하는 한복 페스티벌 연출, 그리고 대구미술관에서 현대 보석들로 장식한 족두리전을 열었다. 특히 그가 20년 넘게 모아온 규방 유물인 전통 장신구와 고가구들에 오늘의 스토리를 담아 전시한 울산의 ‘전통, 오늘 그리고 진화’전은 큰 화제가 됐다.

“왕실과 귀족·사대부집 상류층의 옷과 장신구, 살림살이는 그 시대 럭셔리의 표상이다. 그 시절에도 유행이 있고, 해외에서 수입하는 인기 품목이 있었다. 그런 당대 최고의 명품들을 호고(好古) 취미로 감상만 할 게 아니라 고유한 멋과 아름다움, 유물에 담긴 서사(敍事)까지 되살려 세계적으로 통하는 오늘의 한국 명품으로 재창조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고보니 한복이라고 다 거기서 거기가 아니다. 김영석은 “작은 차이가 큰 흐름을 바꾼다”고 했다. 전통문화는 한국 고유의 스토리와 디테일과 미학, 그리고 고전의 세계를 현대적 아우라로 장식하는 문화종합력이 더해져야 오늘의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

김영석은 이른바 우리나라 ‘전통문화 통조림’식 문화재 정책과는 전혀 다른 마인드로 한복을 대한다. 전통한복 수십년 적막강산에 새 꽃을 피우고 있는 ‘전통한복 작가’ 김영석에게서 21세기 한복 융성의 길, 한복 한류를 이끌 미래의 블루칩을 본다.

 
경향신문 / 김석종 선임기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