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 되면서 기온이 뚝 떨어졌습니다. 갑작스런 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날, 서울 인사동의 한 구세군 자선냄비 앞에서 종을 흔들고 있는 초로의 남성을 보게 됐습니다. 구세군 제복도 입지 않은 초라한 행색이었지만 그의 손끝을 타고 울리는 종소리는 제 마음에 깊은 울림을 만들었습니다.

독신으로 올해 환갑을 맞은 박동기 씨 입니다. 박 씨는 기초생활수급자입니다. 당뇨병을 앓고 대장암 수술까지 받은 환자이기도 합니다.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13년 전 오랫동안 당뇨병에 시달리던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그는 세상에 홀로 남겨졌습니다. 혼자 남은 이후 10년 넘게 박씨는 1평짜리 쪽방에서 지내며 병마와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길에서 종을 흔듭니다. 무슨 사연일까요?

박 씨가 혼자 살고 있는 집입니다. 성인 두 명이 앉으면 꽉 찰 정도로 좁습니다. 방에 들어서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사진이 한 장 놓여 있습니다. 사진 중앙에 모자를 쓰고 환하게 웃고 있는 남성이 박 씨입니다. 그리고 박 씨와 똑같은 모자를 쓰고 휠체어에 앉아 있는 한 노인이 있습니다. 그는 이 노인을 ‘아버지’라 불렀습니다.

노인과의 인연은 11년 전 박 씨가 처음 쪽방에 왔을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박 씨 바로 옆방에 살고 있던 노인은 지체장애 2급으로 거동이 불편한 상태였습니다. 그해 추석이었습니다. 시장에 가는 박 씨에게 노인은 “명절인데 어릴 때 먹었던 토란국이 생각난다”며 재료를 사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박 씨는 토란과 약간의 고기를 사서 노인에게 건넸고, 얼마 뒤 잘 끓여 드셨나 봤더니 변변한 양념조차 없었던 노인은 그저 맹물에 토란과 고기만 넣고 국을 끓였습니다. 아무 맛도 나지 않는 토란국을 혼자 먹는 노인의 모습에 그만 박 씨의 마음은 미어졌습니다. 이때부터 박 씨는 노인에게 밥을 해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의 손과 발이 됐습니다.

노인이 매주 1번씩 혼자 힘들게 다녔던 병원 가는 길은 박 씨가 함께 하면서 둘만의 나들이가 됐습니다. 매일 1평짜리 방에 누워만 있었던 노인은 박 씨의 부축으로 하루에 한번 씩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었습니다. 노인에게 박 씨는 친구이자 아들이자 보호자였습니다. 노인은 마지막 순간에도 박 씨는 함께 했습니다. 노인은 자신의 곁을 유일하게 지키고 있는 박 씨의 손을 마지막으로 꼭 잡고 편안히 눈을 감았습니다.

박 씨의 마지막 직업은 석공이었습니다. 중동 공사현장에서도 설비담당자로 일하며 밝은 미래를 꿈꿨습니다. 금은방 구석 작업실에서 금을 가공하면서도 더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을 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당뇨, 대장암, 뇌경색, 고지혈, 고혈압이 박씨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박씨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월 48만 3천원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1평짜리 쪽방의 월세 21만원을 내고 나면 생활비는 27만 3천 원이 고작입니다. 이 돈으로 아픈 몸을 추스르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고통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박 씨는 처음 본 노인을 10년 넘게 아버지처럼 모셨습니다.

지금은 동네 청소를 하고 구세군 자선냄비 앞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통과 번민, 원망과 불평 속에 힘겹고 무의미한 나날을 보내기 쉬운 환경이지만 그는 감사와 배려라는 따듯한 마음으로 자신보다 힘든 이웃들을 위해 세상에 외치고 있습니다. 비록 작고 어눌한 말투지만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담겨 있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면 몸이 움츠려 듭니다. 몸을 웅크려 체온을 뺏기지 않으려는 본능입니다. 우리는 몸이 움츠려 드는 이 시점에 주변을 돌아보게 됩니다. 추위라는 외부의 공격에서 나를 보호하고자 하는 본능이 위기를 인지하고, 이 인지는 다른 사람들은 괜찮나 하는 관심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흔히 이 관심은 연민으로 이어집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에 앞서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사는 곳의 환경이 열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안쓰럽게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들을 보며 위안을 삼기도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연민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 누구보다 따뜻하고 바른 심성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남들과 비교하며 좌절하지도, 왜 내가 더 가지지 못했는지 푸념하지도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도 않습니다. 당장 저부터 고개가 숙여집니다.

 

[SBS 최재영기자]



지난 12일은 이른시간 부터 함박눈이 쏟아져 내렸다.

팬문학수상 기념사진을 전해 드리려고 최정자선생님과 약속은 했었지만,
갑자기 내리는 눈발에 들떠 서둘러 인사동으로 나갔다.
절뚝거려 미끄러운 길을 걷기가 조심스러웠지만 기분은 날아갈 것만 같았다.

 

눈 내리는 인사동거리는 평소보다 한적해서인지 더욱 낭만적이었고,
딸랑거리는 구세군 종소리는 또 한 해를 떠나보내는 늙어감을 위안하는듯 했다.
가게들은 눈치우는 손길들로 분주했지만 지나치는 젊은이들의 얼굴은 함박눈처럼 밝았다.

'사동집'에서 최선생님을 만나 식사를 하고 '귀천'에 들리니 화가 박양진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들 애들처럼 좋아라 기념사진들을 찍는데, 노광래씨와 편근희씨가 찾아 왔다.
미국으로 돌아가는 최선생님 작별선물로 노광래씨는 시집 몇 권을, 편근희씨는 초코렛을 사왔다.
저녁식사를 같이하자는 박양진씨의 호의를 거절치 못해 술 한 잔 없이 인사동을 맴돌았는데,
오후10시부터 시작된 아내의 교통방송 녹화를 끝내고  돌아오니 자정이 지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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