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일전 ‘뮤아트’ 김상현씨로부터 이태주를 비롯한 몇 명과 식사 한 번 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걱정해 주는 후배들이 고맙기는 하나 벼룩도 낯짝이 있다는데, 매번 얻어먹기가 편치않았다.
글쓰는 문인들과 함께 한다는 이야기를 했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몰랐다.






지난 23일 오전 김상현씨가 찾아와 손님들이 기다리는 공원으로 내려갔다.
그 곳에는 '고기방앗간'을 운영하는 이태주씨와 처음 보는 최진희와 박호경씨도 있었다.
그런데, 최진희씨는 나 줄려고 김밥을 잔뜩 말아 왔더라.
공원 옆에 노숙하는 친구들에게 다 주고 싶었으나, 가져온 분의 성의를 무시하는 것 같아 다섯 개만 주었다.
남은 량도 혼자 먹기 벅찬 량이었으나, 일단 쪽방에 올려놓아야 했다.





냉장고에 김밥 넣어두려 쪽방으로 가는데, 김용만씨가 자전거를 타고 오며 불렀다.
아마 누군가의 부탁으로 도시락을 나눠주는 모양인데, 딱 하나 남았다며 날 주었다.
이 친구는 참 착한 친구인데, 전해 주는 표정이 받는 사람 표정보다 더 밝았다.
여지 것 사진이나 옷 같은 물건을 나에게 받기만 했기에,
모처럼 도시락이라도 하나 전해주니,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다.






동자동 사람들이 맨 날 얻어만 먹었지, 언제 베풀어 본 적이 있겠는가?
나 역시 동자동에 와서야 남에게 베푸는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지 체득하였다.
다들 쪽방에 올라갔으나, 방이 적어 다 들어갈 수도 없었다.
받은 김밥과 도시락을 챙겨두고, 기념사진만 찍고 내려왔다.






이태주씨가 예약해 둔 식당은 명동의 ‘오리백숙집’이라 했다.
동자동에서 걸어가는데, 남대문경찰서 앞에서 기다리던 또 한분을 만났다.
김정은씨라 했는데, 다들 글 쓰는 모임에 함께 하는 분이었다.
온라인에서는 자주 만나지만, 가끔 이런 모임도 있다는 것이다






아들 햇님이가 마흔 두 살인데, 세 아가씨도 비슷한 또래였다.
그런데, 세 아가씨 모두 처녀라니, 욕심 생기더라.
여지 것 장가도 못간 아들이 있으니 며느리 삼고 싶은 생각이 어찌 없겠는가?
애비 마음이야 어쩔 수 없지만, 처녀나 아들이나 사람이 없어 결혼 못 했겠는가?
오늘 만난 처녀들도 다들 사정이 있겠지만,
햇님이도 단칸방에서 노모와 외할머니를 모시고 사니, 어찌 결혼할 엄두를 내겠는가?






그런데, 명동이 이태주씨 고향 같았다.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 나누고, 구멍가게 주인까지 그를 반겼다.
그 짧은 시간에 아는 사람을 몇 사람이나 만났는지 기억도 분명치 않다.
더구나 친형이란 분을 만났는데, 이태주씨 에게 용돈까지 주었다.
이태주씨는 동자동에서도 살았지만, 명동에서도 오래 산 듯 했다.






나그네들만 북적이는 명동에서, 아는 사람을 많이 만난다는 것이 신기했다.
요즘은 같은 동네 살아도 정 나누지 않으니, 누군지도 모르며 살아가는 세상 아니던가?
모든 건 상대적이다. 이태주씨가 정을 주니 가능한 것이겠지.






예약해 두었다는 식당에 갔더니, 예약시간보다 빨라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예약손님만 받을 정도로 손님이 많은 모양인데, 얼마나 맛있을지 기대되었다.
손님이 많은 집은 미어터지고, 없는 집은 파리만 날려야하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어쩌겠는가?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니, 없는 사람은 늘 가난하게 살아야 할 운명의 장난인 것이다.






시간이 되어 식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으니, 이태주씨 친구인 김종국씨도 찾아왔다.
그 자리에서 김정은씨가 시화 액자를 꺼내 남자 친구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너무 고마운 분인데, 이름도 요즘 뜨고 있는 김정은이가 아니던가?
‘명백한 생“이라는 제목의 시였는데.“저주의 피를 토 한다”라는 대목이 머리에 박혔다.






온갖 한약재들이 들어 간 오리백숙이 나왔는데,  좀 색다른 맛이었다.
시를 생각하니 그 맛있는 음식이 차마 목구멍에 넘어 가지 않았다.
남은 음식을 싸 가지고 나왔는데, 찻집에서 커피까지 얻어 마셨다.






다들 헤어진 후 김상현씨와 동자동으로 돌아오다, 차 안에서 잠시 생각에 빠졌다.

매번 남에게 도움만 받는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어저께 지하철을 기다려다 보았던 '촛불'이란 시가 떠올났다.
“나는 당신을 위해 눈물로 땅을 적시고, 대지에 입을 맞추려는 촛불입니다.“

난, 누구를 위해 과연 몸을 태운 적이 있었던가?

사진, 글 / 조문호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은 적은 없었다.
입이 호강한 건지 고생한 건지 도저히 분간이 안 된다.

지난 토요일은 동자동 노숙자들과 어울려 한 잔했는데,
마침 ‘뮤아트’ 김상현씨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조폭 두목이나 탈 듯한 검은색 밴츠를 타고. 술 마시는 현장까지 찾아 온 것이다.






같이 놀던 노숙하는 친구들 볼까 황망하게 차에 올라탔다.
마음이 다급해, 막걸리 두병 사주기로 한 약속마저 잊어버린 것이다.
멀찍이서 쳐다보는 눈길이, 마치 정앙중보부에 끌려가는 것처럼 보았다.
차에는 뮤지션 김상현씨를 비롯하여 ‘고기방앗간’ 이태주씨,
재즈피아니스트 박상민씨가 타고 있었다.






해방촌에서 ‘고기방앗간’을 운영하는 이태주씨로부터
오래전부터 식사 한 번 대접하겠다는 걸, 여지 것 미루어 왔던 터다.
해방촌이면 같은 용산구에 있으니 지척이 아니던가.
이태주씨는 오래전에 동자동에서 살아 이곳 사정도 훤히 알고 있었다.
내 사는 것이 안타까워, 원도 한도 없이 먹이고 싶었던 모양이다.






고기방앗간에 도착해 보니, 아래층은 방앗간 음식이 맛있다는 소문이 났는지

방앗간 참새들이 가득 자리를 메우고 있었고, 이층 한적한 곳에 준비해 두었다.


피아니스트 박상민씨의 ‘The lonly one’과 김상현씨의 ‘imagine“등
향수에 젖어들게 하는 멋진 피아노 연주로 분위기를 잔득 돋우었다.






현역 육군소령인 조대현씨가 음식을 갖다 나르기 시작했는데,
먹어 치우기 바쁘게 다른 음식들이 쏟아져 나왔다.
피자로 시작하여 스파게티와 스테이크가 줄줄이 나왔고,
마지막에는 바다에서 급송해 왔다는 회까지 가져 왔는데,
도저히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고급 위스키마저 눈에 들지 않았다.






식사가 끝난 후, 김상현씨가 동자동까지 데려다 주었는데,
술이 떨어져 빈병만 쳐다보고 있는 동자동 친구들에게
늦게나마 막걸리를 사줄 수 있었다.






김상현씨는 내 사는 것을 본다며 쪽방까지 따라 올라 왔는데,
제과점에서 빵을 잔뜩 사 온 것이다. 그 날은 토요일이라 빵 탄 날인데...
좌우지간, 먹을 복이 터진 하루였다.
소처럼 되새김질만 할 수 있다면, 며칠 동안 먹지 않아도 될듯했다.






그런데, 자고 일어나니 또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이가 없는 사람에게 스테이크를 드려 미안하다며, 아침식사로 닭죽을 끓였다는 것이다.
이가 빠져도 갈비까지 녹여 먹을 수 있다며 허풍을 떨어댔다.






김상현씨가 타고 온 택시에 실려 다시 해방촌으로 갔는데,
그 자리에는 전활철씨와 아들 시원이와 딸 예원이도 함께 왔었다.
닭죽은 물론 백숙까지 잔뜩 먹어 치운 것이다.






이태주씨 덕에 연 이틀 동안 맛있는 음식을 포식할 수 있었다.
거지 주제에, 이렇게 과분하게 먹어도 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잊었던 음식 맛을 일깨워준 이태주씨 내외에게 감사드린다.
사진이라도 멋지게 한 판 찍어줘야 할 텐데...



사진, 글 / 조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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