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화랑' 개관식에 참석한 원로사진가, 왼쪽 네째 이경모선생, 다섯째 임인식선생, 일곱번째 이해선선생, 열번째 성두경선생 / 임인식사진

인사동에 ‘눈빛사진산책’ 갤러리인덱스‘가 개관했다는 사실은

인사동에 불어오는 한 가닥 봄바람이 아니라 사진바람이다.

 예술 일번지에서 사진의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명동선생을 비롯한 원로사진가들이 인사동거리에 나섰다.

사진가들이 인사동을 드나들 때는 시인이 몰려들던 천상병선생의 ‘귀천’시절보다 훨씬 이전이다.

 

'북스갤러리'에서 열린 '인사동, 봄날은 간다' 전시 개막식에서...

1959년, 종군기자로 활동한 임인식선생께서 관훈동에 사진전문 갤러리인 '신한화랑'을 개관하며 비롯되었다.

임인식선생을 비롯한 성두경, 이해선, 이경모씨 등 작고한 원로사진가들이 자주 회합한 장소였다.

 

임인식선생게서 찍은 1953년의 인사동 거리

그곳에서 우리나라 사진 문화 발전을 도모하며 사진 아카이브 개념을 선도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한 인사동에 최초의 사진 화랑을 만든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옛 인사동 예총회관 앞 포장마차에서... 좌로부터 고영준, 조문호, 윤재성, 유성준

내가 부산에서 올라와 인사동과 인연을 맺은지는 1980년도 였다,

그 이전에 있었던 사진가들의 인사동 왕래는 알 수 없으나 남인사마당 맞은편 ‘예총회관’에

사진협회가 있어 사진인의 왕래가 잦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예총회관’에서 가까운 건물에 ‘꽃나라’라는 흑백현상소가 있었다.

 

인사동 골목에서... 고영준씨와 정영신씨

신작가로 불린 신희순씨가 운영한 ‘꽃나라’는 많은 사진인들이 몰렸다.

그곳을 왕래하는 사진인들이 ‘진우회(초대회장:양은환)’란 사진동아리를 만들었으니,

진로회 아닌 ‘진우회’가 인사동을 거점으로 활동한 최초의 사진 모임이었다.

 

'85동아미술제' 시상식에서, 좌로부터 고영준, 신희순, 양은환, 홍순태, 조문호, 정동석, 유성준

‘꽃나라’를 운영한 신희순씨는 참 성실하고 착한 분이었다.

촬영자의 뜻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프린트해 신작가란 별명이 생기지 않았나 싶다.

암실에서 인화하는 걸 보면 귀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는다.

오래된 시커먼 약물에서 건져내는 인화지에 상이 드러나는 것이 신기했다.

 

옛 진우회 회원들이 인사동에서 만났다., 좌로부터 유성준,이혜순,정용선,김종신,목길순,김흥묵,하상일,최성규,배창완,조문호

모든 게 정해진 데이터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고 감으로 결정하는데,

이미지를 변형시키는 몽타쥬에는 탁월한 재능을 가졌다.

한번은 하이포 약물통을 비워 보니, 약물에 쥐가 빠져 죽어있었다고 한다.

 

'인사아트프라자'에서 열린 박옥수씨 개인전에서 장사익씨가 축가를 부르고 있다

‘꽃나라’ 신희순씨의 인화는 콘트라스트가 강해 사진 계조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으나,

인화 가격이 재료비 정도 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싸다는 것이 매력이었다.

 주변에서 찍은 기념사진들은 맡겼으나, 필름 현상만은 맡길 수가 없었다.

그렇게 프린트된 사진들이 공모전 심사위원의 눈에 들어 줄줄이 당선되는 것을 어쩌랴!

명암이 강하면 일단 눈에 먼저 들어오니까...

 

인사동에 촬영 나온 안00, 이용정씨와 이기윤씨

‘꽃나라’ 암실에서 탄생한 대상 작가는 한 둘이 아니었다.

양은환씨와 이기윤씨가 국전에서 바뀐 '한사전'에서 대상을 받았고,

윤 옥, 이혜순씨는 ‘동아살롱’ 금, 은상을 수상하는 등 주요 공모전을 ‘꽃나라’에서 휩쓸었다.

 

'토포하우스'에서 열린 권철개인전에서,,,이규상, 김지연, 김남진, 정영신, 권철, 곽명우, 엄상빈 등

그러나 ‘꽃나라’를 운영한 신희순씨는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버렸다.

그토록 건강한 사람이 유명을 달리 한 것은 바람이 통하지 않는 암실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 약물중독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떻게 생각하면 사진이 그를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

 

인사동 거리에서... 좌로부터 김보섭, 정영신, 한정식선생

아무튼, 만 명이 넘는 공룡집단이 된 지금의 사진협회 회원 모두가

작가의 주관이 결여된 공모전이란 과정을 거쳐 모였으니,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구와바라 시세이 수상전에서,,,좌우로 김남진씨와 이규상씨가 있다.

이웃한 낙원동에는 민태영씨가 운영한 ‘한국사진학원’이 있어

지도교수로 있던 성낙인, 유동호씨도 종종 나타나셨다.

 

인사동 '양반집'의 원로 사진가 오찬모임, 좌로부터 한정식, 이완교, 이명동, 차용부, 황규태, 이기명

‘꽃나라’에 자주 방문한 사진인으로는 원로사진가 김대현, 정철용씨를 비롯하여

고영준, 양은환, 유성준, 김계산, 정동석, 정영신, 하상일, 이수영, 정용선, 윤 옥, 김종신, 박만재, 정철균

이혜순, 안영상, 변홍섭, 이기윤, 윤재성, 김정혜, 김순자, 민정진, 윤 옥, 고 헌, 최수영, 최성규

진대원, 배창완, 한상근씨 등 오래되어 이름도 가물가물한 많은 사진인들이 드나들었다.

 

인사동 벽치기골목의 '유목민' 에 모인 이광수, 한금선, 성남훈씨, 김문호씨 전시뒤풀이에서...

저녁 무렵이 되면 인사동의 삼겹살집이나 시골집에 모여 앉아

사진협회 비리를 안주 삼아 회포를 풀던 추억들도 아련하다.

 

'부산식당' 전시뒤풀이에서 고헌씨가 춤을 추고 있다. 옆엔 전상삼씨가 앉았다.

85년도 무렵 ‘귀천’이 생겨나며 사진인보다 문인이나 화가를 더 자주 만나게 되었다.

대표적인 분으로 민병산, 천상병, 박이엽 선생이 계셨고,

뒤를 이어 김동수, 이계익, 심우성, 강 민, 채현국, 황명걸, 이호철선생이 돌아가셨다.

그리고 적음스님에서 부터 강용대, 김종구에 이르기까지

전설처럼 인사동을 떠돌던 많은 분들이 이승을 하직했다.

 

옛 ;실비집'에서 찍은 기념사진. 실비대학 총장 모녀와 김종구, 김민경씨

김종구씨는 수시로 '실비집'이나 '시인통신'에 들려

오가는 거지 예술가들 술값을 도맡았으니,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육명심, 이명동, 한정식선생, 뒤에 이완교씨와 전민조씨도 보인다

87년도 '민주항쟁' 시절엔 김종구씨에게 필름도 많이 얻어 썼다.

필름이 떨어 져 인사동 ‘귀천’에 죽치고 있으면 체류탄 냄새를 풀풀 풍기며 들어와

진토닉 한 잔으로 분노를 삭혔다.

 

'갤러리 룩스'에서 열린 김영수 유작전에서.. 좌우로 곽명우씨와 정범태선생

박한웅씨도 한 때 인사동을 풍미했다.

사진가는 아니지만 당시 '사협' 회보 편집장으로 일하며

 사진판과 인사동 패거리를 오가며 여러가지 일화를 만들었다.

 

'실비집' 골목에서.. 좌측이 박한응씨고 그 옆은 조해인시인

사진인 모임은 술값을 똑같이 나누어 내지만, ‘실비집’ 술자리는 돈 있는 사람이 냈다.

돈 낼 사람이 없으면 외상도 통하는 인간적인 면이 참 좋았다.

 

인사동 '초당' 앞에 선 주명덕 선생

주명덕, 육명심선생도 인사동을 자주 찾으셨다.

주명덕 선생은 ‘초당’이 단골인데, 차보다 초당 보살이 더 좋았는지 모른다.

나도 그랬으니까...

 

'갤러리 나우' 옆에 사진가들이 모여있다.

육명심선생은 ‘갤러리나우’를 기점으로 '전각갤러리' 등 들리는 곳이 많았는데,

한번은 ‘백상사우나’까지 따라붙은 적이 있다.

목욕사진을 찍은 것 까지는 좋았으나, 경찰관이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인사동 '백상사우나'에서 찍은 육명심선생

인사동은 예술단체가 모여 있었다는 점도 또 하나의 특징이다.

남인사마당 맞은편의 포도대장 터에는 초창기 ’예총회관‘이 있었고,

80년대 중반에는 ‘민미협’이 생겼고, 88년에는 ‘민예총’이 건국빌딩에 둥지 틀었다.

 

인사동거리에서...한정식선생과 이완교선생

94년에는 고 홍순태선생이 총대 맨 ‘민사협’이 북인사마당 크라운베이커리 2층에 자리 잡으며,

예술 판도 진보와 보수로 나누어졌다.

 

인사동 '쌈지'를 배경으로 포즈 취한 김영수씨

김영수씨가 주도적으로 이끈 ‘민족사진가회’는 정범태, 주명덕, 홍순태, 이창남, 박옥수,

이갑철, 김광수, 양성철, 김영태, 정인숙씨 등 많은 사진가를 규합하여 활동했는데,

정기적인 기획전 외에도 한국사진사를 대표하는 굵직한 기획전도 여러 차례 열었다.

 

인사동 '관훈미술관' 앞에 선 정인숙씨

인사동에서 거주한 사진가로는 김영수, 정인숙씨가 유일하다.

‘민사협’ 사무실과 가까운 곳에서 살았는데, 콧구멍만한 방 하나와 암실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김영수씨가 세상을 떠남에 따라 ‘민사협’은 10년을 넘기지 못한 채, 막을 내리고 말았다.

세상을 떠나며 남긴 유물 같은 그 잡동사니와 집기들은 잘 있을까?

 

인사동 '이즈갤러리' 앞에서 만난 곽명우씨

그 당시 곽명우씨는 ‘민사협’의 행사 기록을 맡아 사진전이 열릴 때마다

전시장을 들락거렸으니, 누구보다 인사동과의 인연이 많은 편이다.

 

'갤러리 룩스'에서 열린 권태균사잔전에서... 좌로부터 박옥수, 정범태, 권태균

사진 모임에 끼이지 않는 사진가로는 한국일보 사진기자 김종구씨와

곤충사진가 이수영, 자유기고가로 활동한 이만주, 하형우, 김문호씨가 전부인데,

김문호씨는 이구영선생의 ‘이문학회’ 회원이라 주기적으로 인사동을 들락거렸다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김문호씨의 '풍리진경' 사진전에서..

2000년대의 인사동은 사진의 전성기였다.

2003년 김영섭화랑이 생겨나며 일본의 호소에 에이코사진전이 개관전으로 열렸고,

2006년은 ‘갤러리 나우‘의 개관에 이어 2007년은 ’갤러리룩스‘도 개관했다.

 

'갤러리나우'에서 열린 박진호씨의 '내가 저달을 훔쳤다'전에서 박진호씨가 양재문씨를 소개한다.

인사동에 사진전문화랑만 세 곳이나 생긴데다, 돌아가신 원로사진가 한정식선생의 ‘밝은방’과

사진평론가 진동선씨가 기획한 ‘하우포토’도 인사동에 있었다.

'밝은 방'에서는 한정식선생 제자인 김정일씨의 사진강좌도 있었다.

 

한정식선생의 작업실 '밝은 방'에서.. 옆에 안미숙씨도 있다.

그리고 한정식선생께서 정기적인 사진인 모임을 만든 것도 특기할 만한 일이다.

이명동선생을 모시는 오찬 모임 외에도 가까운 분들과 신년 모임을 갖는 등

틈틈이 사진가들을 인사동으로 불러 모아 친목을 도모했다.

 

'양반집' 오찬회, 좌로부터 유병용, 한사람 건너 이명동, 한정식, 이기명, 김녕만,이완교, 황규태선생

초청하는 인사로는 이명동선생을 비롯하여 육명심, 황규태, 이완교, 차용부, 구자호,

최재영, 유병용, 김녕만, 김영수, 윤세영, 이기명, 최경자, 이규상, 전민조, 김보섭, 이재준,

김생수, 엄상빈, 정영신씨 등의 사진가들이 인사동 ‘양반집’이나 ‘수연’에서 주기적으로 만났다.

 

'양반집' 오찬모임, 좌로부터 이완교, 최재영, 이명동, 구자호. 한정식. 유병용, 이기명, 김녕만씨

2011년부터 인사동에 차 없는 거리가 실시되며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이상한 거리로 서서히 변해가며 인사동의 사진 문화도 퇴행 길에 접어들게 된다.

 

김영섭씨가 '김영섭화랑에서 포즈를 취했다. (장성용사진)

인사동에 살가도와 브랏사이, 브레송, 빌 브란트, 로베르 두아노, 로버트 프랭크, 게리 위노그란드 등 세계 사진사에 남을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유치하여 사진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린 ‘김영섭화랑’이 먼저 문을 닫았고, 2015년에는 심해인씨가 개관한 ‘갤러리 룩스’도 옥인동으로 옮겨갔다.

 

'갤러리인덱스' 최건수관장이 반갑게 인사를 건낸다.

옮겨간 ‘룩스’를 최건수씨가 인수하여 ‘인덱스’로 바꾸었으나, 대관전으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했다.

그리고 이순심씨가 개관한 ‘갤러리 나우’도 사진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원룸 원포토' 캠페인을 벌이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2020년 2월, 14년간의 인사동 시대를 접고 강남으로 옮겨 사진에서 미술로 전향해 버렸다.

 

'갤러리나우' 이순심관장

인사동을 오가며 기록하는 사진인이야 헤아릴 수 없이 많으나,

이기윤씨와 김순자씨는 주말마다 ‘인사아트센터’ 앞에서 지나치는 이들의 표정을 망원렌즈로 포착했다.

때로는 정운봉, 이용정, 정철용씨 등 원로사진가들도 함께 있었다.

 

'인사아트센터' 앞이 촬영 대기실인가? 이용정씨와 이기윤씨가 보인다.

그렇게 열심히 기록하던 이기윤씨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는데,

그 많은 사진 자료들은 어찌 되었는지 궁금하다.

 

인사동에 있었던 '김영섭화랑 '

한때 ‘한사전’ 대상 수상 작가라는 영광도 아무 소용없었다.

반평생을 사진과 살았으나 개인전은 물론 사진집 한 권 내지 않았다.

하기야! 팔리지 않는 전시나 사진집 만드는 것 또한 자뻑에 불과하니까...

 

인사동 사진출력실 '아트온'을 방문한 인사동 사람들, 좌로부터 전활철, 김의권, 변형주, 김언경씨

89년에는 ‘툇마루’ 옆 건물 5층에 ‘카메라워크’란 취재대행 업소를 차려 ‘한국환경사진가회’ 사무실도 겸했다.

공덕동에서 충무로로 떠돌다, 2010년부터  정영신씨와 함께 '아트온'이라는 사진출력소를 다시 차렸다. 

 

인사동 '아라아트'에서 열린 '청량리588'사진전에 사진수강생들을 데리고 온 최건수씨

그 외에 인사동에서 업소를 운영한 사진가로는 고미술점 '하가'의 윤옥씨와

출판사를 운영한 안영상씨, 그리고  ‘구름에 달 가듯이’란 카페를 운영한 김수길씨가 있다.

 

'갤러리인덱스'가 있는 인덕빌딩

그리고 건물주와의 오랫동안 분쟁에 휘말렸던 인사동 복합문화공간 ‘KOTE’에서

성남훈씨를 비롯한 젊은 사진인들의 활약도 이어지고 있다.

 

'나무화랑에서 열린 정영신의 '어머니의 땅' 전시에서... 좌로부터 이규상,양시영

지금은 양한모씨가 운영하는 마루아트 ‘아지트’와

‘눈빛‘ 안미숙관장이 운영하는 ‘갤러리인덱스’가 사진갤러리로 남았다.

 

지난 11일, '갤러리인덱스'가 재 개관하며  ‘그해 겨울은 따뜻 했네’로 막을 올렸다.

1948년 겨울, 이름도 모르는 어느 미군이 촬영한 소중한 기록이다.

 

그리고 '눈빛'에서 출판한 800여종의 사진책을 한 자리에 모아 놓았다.

진귀한 사진집을 골고루 만날 수 있으니, 도랑치고 게잡는 일이 아닌가. 

인사동 가는 길에 32계단의 '눈빛사진산책' 하자.

 

‘그해 겨울은 따뜻 했네’는 2월 13일까지 열리지만, 인사동 사진바람은 계속분다.

 

G A L L E R Y I N D E X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인사동길 45. 인덕빌딩 3층 02-722-6635

사진, 글 / 조문호

 

인사동 '수연' 에서 열린 신년오찬회에서...
찻집에 들린 사진가들, 좌로부터 김생수, 이재준, 김보섭, 전민조, 이규상, 엄상빈, 한정식선생

 

전시작가 최치권 / 사진 정영신

누가 찍었는지 출처도 알 수없는 일세기 전의 사진을 우연히 만났다.

어린이들이 호떡 판을 목에 걸고 찍은 기념사진인데, 가련하면서도 따뜻한 정이 느껴진다.

먹고 싶어도 참아야 할 처지지만, 사진사가 시켰는지 먹는 시늉도 한다.

시대를 잘 못 만나 힘든 삶은 살았지만, 어쩌면 물질문명에 찌들지 않아 행복한 삶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래 사진은 세월이 더 지난 1940년대로 추정된다.

먹거리를 팔러 나온 아낙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는데,

지게꾼 한사람이 지게에 걸터앉아 맛있게 먹고 있다.

먹는 사람보다 파는 사람이 많으니, 팔아보았자 몇 푼이나 되겠는가?

배고픈 시절이었지만,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정경이다.

 

장에서 돌아오는 아낙의 머리에는 탐스러운 꽃이 함지에 담겼다.

곡예사처럼 걷는 걸음걸이도 정겹지만, 왼 손에 깡통을 들고 있다.

고단한 삶의 현장이지만, 한 시대의 삶이 담긴 아름다운 정경이 아니겠는가?

 

유명한 작가의 비싼 작품보다 이름도 모르는 무명작가 사진이 더 마음에 다가온다.

사진 속에는 세월의 무게와 함께 우리네 정서가 꿈틀거리기 때문이다.

 

글 / 조문호

 

우리 시대의 다큐멘터리사진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갤러리 브레송’의 기획전,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서준영론이 지난 22일 오후6시 개막되었다.

양승우, 강재구, 김동진, 김은주씨에 이어 다섯 번째로 열리는 서준영 론은 ‘테마파크, ’오타쿠공화국‘,

’중간정산‘, ’캣워크‘, ’너에게 이름을 주고 싶지 않아’ 등 그동안의 작업을 주제별로 보여준다.

 

 '브레송' 송년회를 겸하는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서준영 전시개막식에는

이번 기획전에 글을 쓰는 이광수교수를 비롯한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모였다.

요즘 전시 개막식엔 잘 가지 않지만, 더구나 그 날이 ‘홈리스추모제’가 열리는 날이었다.

그러나 멀리서 우리 교주님이 오시는데, 어찌 외면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나에 관한 사진논문을 쓰고 있다는데...

 

여태 이광수교수를 교주라 부르는 것은 그로부터 많은 진리를 깨우치기도 하지만,

최민식사진상의 문제점을 제기했을 때 부터다.

썩어 문드러진 사진판에 누가 감히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있었겠나?

입바른 소리로 사진판에 외톨이가 된다는 걸 본인인들 어찌 모르겠나.

자기 밖에 모르는 사진판에 이런 분이라도 있어 숨통이라도 트이는 것이다.

 

서울역광장에서 열리는 ‘홈리스추모제’는  홈리스행동, 동자동사랑방, 빈곤사회연대,

37개 단체가 함께한 ‘2022 홈리스추모제 공동기획단’에서 주최하고 있다.

 

올 해 '홈리스 추모제'는 주거제공 우선 홈리스 정책 실행, 홈리스 차별 금지, 권리기반 정책 시행,

홈리스의 평등한 의료접근권 보장, 여성홈리스 존재 인정, 젠더 관점 기반 정책 시행,

무연고 홈리스 사망자의 애도받을 권리, 애도할 권리 보장 등

다섯 가지 요구를 중심으로 각종 토론회와 집회를 개최하며,

지난 12일부터 추모제가 열린 22일까지 11일간의 추모 주간을 보냈다.

 

2022년 한 해 동안 서울의 거리에서 숨진 사람은 442명으로 파악되었으나,

그것도 정부의 공식 통계가 없어 추모제를 진행하는 단체에서 자체 집계한 것이다.

전국 무연고 사망자는 3600여 명으로 3년 전보다 1.4배 증가했고

10년 전인 2012년보다 3.5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전시 개막식과 홈리스 추모제가 한 시간 사이로 열려 개막식부터 들렸는데,

마침 이광수교수의 강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입구에는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가 지켜 섰고,

안쪽에는 사진가 김문호, 성남훈, 강제욱, 김동진, 김영호씨등 반가운 분이 여럿 보였다.

 

그런데, 이번 기획전을 추진한 김남진관장이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알아보니 코로나에 감염되어, 주인 없는 집에 나그네들만 잔치를 벌이는 격이었다.

 그렇찮아도 건강에 이상이 생겨 병원을 들락거리는데, 빨리 완쾌하길 바란다.

 

귀가 어두워 이광수교수의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작가에게 지적한 한마디는 귀에 들어왔다.

‘어깨에 힘을 빼라’고 말했는데, 그 말은 사진의 힘을 빼라는 말이었다. 학자다웠다.

전시 개막식에 대부분 듣기 좋은 공치사나 하는 판에, 누가 이런 이야기를 해주겠나. 

 

개막식이 끝나 이교수와 인사를 나누고 나니, 정영신 동지가 나타났다.

뒷일은 정동지에게 맡겨두고 서울역으로 달려갔는데, 기다렸다는듯이 추모제가 시작되었다.

 

그날따라 날씨가 얼마나 추운지 숨이 턱턱 막혔다.

여태 추모제에 여러번 참여해 보았으나, 이렇게 추운 날은 처음이었다.

고생하는 활동가나 참여한 젊은이들의 모습에 존경심이 일었다.

거리에서 죽은 442명의 영혼을 달래는 무용가 서정숙씨의 위령무에 마음 실어보냈다.

 

빨리 오라는 정동지의 전화를 받고서야 충무로로 갔더니, 이미 뒤풀이는 파장이었다.

모지웅, 이일우, 박찬호, 임성호씨 등 전시장에서 미처 보지 못한 분도 여럿 있었다.

 

그 자리에서 ‘눈빛’ 이규상대표가 인사동 '인덱스'를 인수한다는 반가운 이야기도 들었다,

사진집 한 권 만들면 사백만원씩 손해보는 무지한 출판 현실에서 살아 남으려면,

사진작품 유통업으로 확대시켜서라도 출구를 찾아야 했을 것이다.

 

오후10시로 예약해 두었다는 부산행 열차 시간이 가까웠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광수교수더러 한 잔 더하고 주무시고 가라며,

박찬호씨를 비롯한 후배들이 가로 막았다.

 

차마 거절하지 못해 이광수교수는 다시 자리에 앉아버렸다.

가라할 수도 없고 있으라할 수도 없는 난처한 입장이라, 슬며시 합바지 방귀 새듯 새버렸다.

늙은이는 사라지는 것이 도와주는 일이다.

 

그 순간을 뿌리치지 못해, 낮선 여관에서 자게되었다며 걱정했으나,

다음날 이광수씨 페이스 북을 보니, 늦게라도 간 모양이더라.

아무튼, 좋은 시간 만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전시는 12월 31일까지 열리오니, 많은 관람 바란다.

그리고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여섯 번째 사진가는 강제욱씨다.

 

사진: 정영신, 조문호 / 글 : 조문호

 

 

20주년 맞아 뉴미디어, 영상까지로 영역 확대
국내 최초 저온·냉장수장고 조성, 소장품 2만점 보존
한국 현대사진사 조망한 개관전 21일 개막

[서울 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

 

국내 최초의 사진 전문미술관인 한미사진미술관(관장 송영숙)이 20주년을 맞아 삼청로 시대를 연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서 한미사진미술관을 운영하던 가현문화재단은 종로구 삼청동에 '뮤지엄한미 삼청'을 신축하고 오는 12월 21일 개관한다.

 

[서울 뉴스핌] 임응식, '나목'. 1953. 젤라틴 실버 프린트. 33x24.8cm

한미사진미술관은 지난 20년간 국내외 주요 사진작품 수집, 전시 기획및 작가 지원, 출판및 교육사업을 펼치며 우리 사진예술계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또 세계 사진계에서도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 미술관으로 주목받아왔다. 그러나 한미약품 사옥 내에 미술관이 있어 단독 미술관 건립이 오랜 목표었고, 이번에 그 숙원을 마침내 이루게 됐다. '뮤지엄한미 삼청'을 위해 송영숙 관장(한미약품 회장)은 수백억 규모의 사재를 출연하며 수년간 건립을 진두지휘했는가 하면, 새 세대를 적극 끌어안기 위해 뮤지엄의 방향도 대폭 전환했다.      

서울 북촌에 새로 들어선 '뮤지엄한미'는 삼청동 문화거리에서 삼청공원 오르는 길 끝에 자리잡았다. 바로 옆에 목조석가여래좌상(보물)을 모신 칠보사가 있다. 뮤지엄한미 삼청의 건축은 기오헌건축사무소의 민현식 건축가가 설계했다.

 

[서울 뉴스핌] 정해창, 1923~1930's. 젤라틴 실버 프린트. 12.2x16.5cm.

민 소장은 미술관 중심에 '물의 정원'을 두고 3개의 건물이 수직 수평으로 연결되도록 디자인했다.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600평에 4개의 전시실과 멀티홀, 수장고, 라운지 등이 들어섰다. 

뮤지엄한미 삼청은 21세기 디지털 이미지의 등장으로 급변하는 사진매체 전반을 수용할 예정이다. '사진예술의 확장과 다가가는 미술관'을 목표로 보다 폭넓은 영역을 다루고, 사진애호가 뿐 아니라 각계각층 관람객을 끌어안는다는 비전을 수립했다.

이에따라 뮤지엄한미는 사진을 기반으로 한 랜드아트(land art)와 장소특정적 미술(site specific art), 개념미술, 그리고 뉴미디어아트와 영상까지로 전시 대상을 확장한다. 한미사진미술관에서 뮤지엄한미로 명칭을 바꾼 것도 이 때문이다. 미디어 아트를 수용하기 위해 7m 높이의 전시벽과 콘서트홀 수준의 음향설비를 갖춘 멀티홀을 지하 1층에 조성했다. 다만 최근의 미디어아트와 영상작업이 큰 스케일로 이뤄지는 추세여서 복도식 전시실 등은 다소 협소하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서울 뉴스핌] 서울 종로구 삼청로에 새로 건립된 '뮤지엄한미 삼청' 전경. 12월 21일 개관한다. [사진= 이영란 기자]

기존 방이동 한미약품 건물에 있던 한미사진미술관은 사진및 미술자료 도서관으로 전환되고, 삼청동의 뮤지엄한미 삼청이 본관으로 구심점이 된다. 또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해 2019년부터 'MoPS 삼청 별관'으로 전시가 활발히 열리고 있는 별관까지, 뮤지엄한미는 이제 총 3개관 체제로 운영된다. 앞으로 전시및 연구, 출판 등과 함께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이벤트, 아카데미 등을 개최할 예정이다. 

뮤지엄한미 삼청은 개관전으로 한국 현대사진사 안팎을 조망한 아카데믹한 전시를 마련했다. '한국사진사 인사이드 아웃,1929~1982'라는 타이틀로 1929년부터 1982년까지 한국사진이 어떠한 제도적 조건과 역사적 문맥 속에서 그 흐름을 이어갔는지 살펴보는 기획전이다.

1929년은 정해창(1907~1968)과 관련이 있다. 정해창이 일본, 중국 유학 후 돌아와 서울 광화문빌딩2층에서 개인전을 연 것이 1929년이다. 이를 기점으로, 임응식(1912~2001)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회고전을 연 1982년까지 우리 사진계 흐름을 촘촘하게 재구성했다.

 

임응식, 구직. 1953. 젤라틴 실버 프린트, 34x26.3cm. 전쟁 후 피폐한 한국의 사회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1929년 정해창이 한국 최초의 개인 사진전을 개최한 뒤 1930년대는 신문사들이 주최한 공모전을 통해 사진가들이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시기다. 공모전에서 수상한 작가들은 예술적, 사회적 승인을 받았다. 1950~60년대에는 해외 사진공모전에 도전하는 작가들이 등장했고, 이후 관전과 민전의 시대인 1970년대로 이어진다.

전시는 반세기 이상 한국사진계를 지배했던 공모전의 주요 당선작을 두루 살펴본다. 이후 독자적인 전시와 출판 등을 통해 사진가 개인의 이력을 키워나갔던 작가들의 작품도 조망하고 있다.

공모전의 영향력이 확연히 줄어들고, 1982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석조전에서 '임응식 회고전'이 열렸다. 이 회고전은 임응식 개인의 성취이자, 동시에 사진이 독자적 예술매체로 순수미술의 한 분야로 인정받는 전기가 됐다. 이를 기점으로 한국 사진은 현대미술의 장르로 도약했고, 본격적인 수집(컬렉션)의 대상으로 부상했다.

 

[서울 뉴스핌] 주명덕, '포토에세이-홀트씨 고아원 중에서'.1964. 젤라틴 실버 프린트. 16.8x25.4cm
[서울 뉴스핌] 전몽각, '윤미네 집' 중에서, 1968. 젤라틴 실버 프린트, 28.1x40.3cm

전시에는 총 42명 작가의 사진 207점과 관련자료 100여 점이 나왔다. 1929년에서 1982년에 이르는 50여년의 한국 사진사 안팎을 샅샅이 살핀다는 취지의 전시는 빈지티 프린트의 부재로 많은 난관을 겪었다. 한국사진사의 몇몇 사진가들은 자신들의 대표작을 전하지 못한채 작고했고, 소유권과 저작권 문제, 부실한 소장관리로 어려움이 컸던 것.

개관전 기획을 총괄한 최봉림 부관장은 "뮤지엄한미의 이번 전시는 한국사진사 정립을 위한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책임감으로 어려움을 헤쳐갔다. 당대의 사진적 조건과 사진가 고유의 성향을 담지하기 위해 최대한 원본 빈티지 사진으로 전시를 구성했다"고 했다. 또 필름만 남은 경우에는 당시 사진 인화기법과 사이즈대로 재제작했고, 디지털 파일만 남은 경우도 최대한 원본을 따랐다.

 

개방형 수장고를 통해 공개된 김규진 천연당 사진관의 전문대생들 기념사진, 젤라틴 실버 프린트 12.7x19.1cm,

한편 뮤지엄한미는 지난 20년간 수집한 2만 여점의 사진 소장품을 효과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저온 수장고와 냉장 수장고를 구축했다. 미술관 관계자는 "사진은 종이에 화학물질로 인화해 열화(劣化)가 올 수 밖에 없다. 연구에 따르면 온도가 5도 낮아지면 사진수명은 2배 늘어난다고 한다. 이에 저온수장고(15℃에 습도 35%)와 냉장수장고(5℃에 습도 35%)를 조성했다. 소장품 중에는 1860년대 사진도 있는데 항온항습시스템으로 수명을 500년이상 유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작품과 접촉하는 모든 재료는 중성 아카이벌 재료를 사용했고, 수장고 외장재도 보존성이 높은 스테인레스스틸을 사용하는 등 사진 보존에 관한 제반사항을 최대한 고려했다.

 

뮤지엄한미 삼청의 개관전 '한국사진사 인사이드 아웃,1929~1982'에 출품된 황규태의 '가이아(Gaia)',1969. 잉크젯 프린트, 29.5x45cm

개관전과는 별도로 '개방형 수장고'를 활용한 전시도 선보인다. 냉장 수장고의 한쪽 벽을 유리로 만들어 소장품을 공개하는 일종의 특별부스인데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사진을 도입한 황철이 촬영한 1880년대 사진부터, 고종의 초상사진, 흥선대원군의 초상사진 원본을 전시한다. 또 1907년 서울 소공동에 천연당 사진관을 차린 해강 김규진의 사진과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사진가로 알려진 경성사진관 이홍경이 촬영한 여인초상 등 총 12점의 사진을 공개한다. 개관전과 연계한 특별세미나도 두차례(2023년 1월3일, 2월11일) 개최한다. 뮤지엄한미 삼청의 개관전은 내년 4월 16일까지 열린다. 월요일 휴관 

 

'뮤지엄한미'에 조성된 섭씨 5도, 상대습도 35%의 냉장수장고 한켠에 자리잡은 줄리아 마가렛 카메론(1815~1879)의 1867년도 작품.

 

 

 
 

 

붓과 종이, 열한 번째

얼터네이티브 검프린트 사진 그룹展

 

 2022_1203 ▶ 2022_1213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김성환_김예랑_백난숙_박상준_박승환

박지현_석은미_이경수_유희영_이완희

임혜진_최시내_홍혜전_한옥란

 

관람시간 / 11:00am~05:00pm

 

갤러리 한옥란

HAN OK RAN

서울 종로구 안국동 110번지

 

붓과 종이 전시는 14명의 사진가로 구성된 신구대학교 평생교육원 얼터네이티브 사진(Alternative Photography) 그룹의 전시입니다. ● 각 사진가들의 개성을 자유롭게 반영하여, 4색(Black, Yellow, Magenta, Cyan) 컬러 검프린트와 흑백(Monochrome) 검 프린트까지 다양한 색상의 혼합과 계조의 표현을 선보입니다.

 

김성환_L’or de Provence #1_검프린트_50.8×40.6cm_2022
김예랑_화지몽 #12_검프린트_50.8×40.6cm_2022
백난숙_Memories #1_검프린트_40.6×50.8cm_2022
박상준_Flora #21_검프린트_50.8×40.6cm_2022
박승환_What's in your Bag: 누군가의 가방 #3_검프린트_40.6×50.8cm_2022
박지현_정지된 틈 #1_검프린트_50.8×40.6cm_2022
석은미_Untitled_검프린트_40.6×50.8cm_2022
이경수_Untitled #01_검프린트_50.8×40.6cm_2022
유희영_Bottle Series 22 #1_검프린트_50.8×40.6cm_2022
이완희_겨울이야기 1_검프린트_40.6×50.8cm_2022
임혜진_Untitled_검프린트_50.8×40.6cm_2022
최시내_Untitled_검프린트_2022
홍혜전_Behind the Dress #1_검프린트_50.8×40.6cm_2022
한옥란_Untitled #1_플래티늄&팔라듐 프린트_50.8×40.6cm_2022

검프린트는 비은화상 사진이며, 이 기법은 19세기 고전적 사진인화기법입니다. 사진가의 긴 수작업으로 만들어지는 검프린트(Gum Bichromate Print)는 아라비아 고무, 감광제를 물감에 조합하여, 종이 위에 사진가의 감성과 테크닉으로 자신만의 작품을 표현합니다. ● '붓과 종이, 열한 번째'는 한 학기 동안 사진가들의 시간이 담긴 27점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며, 안국동 '한옥란 갤러리'에서 12월 3일(토)부터 12월 13일(화)까지 10일간 진행됩니다. ■ 갤러리 한옥란

 

Vol.20221203c | 붓과 종이, 열한 번째展

캐피탈 블랙 CAPITAL BLACK

최원준展 / CHEONEJOON / 崔元準 / photography.video

 2022_1130 ▶ 2022_1231 / 일,월요일 휴관

최원준_나이지리아에서 온 윌프레드와 은희, 서울_에디션 1/3_ 피그먼트 프린트_120×160cm, 60×80cm_202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월요일 휴관

 

학고재 본관

Hakgojae Gallery, Space 1

서울 종로구 삼청로 50

Tel. +82.(0)2.720.1524~6

www.hakgojae.com@hakgojaegallerywww.facebook.com/hakgojaegallery

학고재 오룸Hakgojae OROOM

online.hakgojae.com

 

최원준: 캐피탈 블랙, 아프로-아시아의 미래 ● 최원준은 정치, 이데올로기 등 사회구조의 변경이 어떠한 방식으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장소와 그들의 정체성의 변화에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고민하며 작업하고 있다. 작업 활동 초반,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냉전 이데올로기와 근현대사의 숨겨진 맥락들을 사진, 영상, 아카이브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드러내던 작가는 2013년부터 아프리카와 동아시아의 관계에 대한 연구와 작업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 아프리카와 동아시아, 두 지역은 그 지리적 거리만큼이나 심리적 거리감이 있어 연결 짓기가 쉽지 않다. 지배-피지배 관계를 구성했던 서구 열강과 아프리카, 또 서구 열강과 동아시아 사이에는 선의의 관계는 아니었지만 외려 그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교류가 많은 편인데 반해, 각각 대상화되었던 두 지역은 과거 피식민지의 역사, 이로 인해 불가피하게 후행되는 냉전 이데올로기 하의 민족 통합의 과제, 군부 독재의 등장 등 연쇄 고리로 얽혀있는 복잡다단한 역사적 과정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여러모로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과거에도 관계가 전무한 것은 아니었으며, 최근에는 교통과 통신, 미디어의 발달로 공식적인 국가 간의 관계 외에도 다양한 사적 관계 맺음이 늘어나고 있다.

 

최원준_가나에서 온 레건과 선미, 서울_ 에디션 1/3_피그먼트 프린트_149×118cm, 75×60cm_2021

아프리카와 동아시아 사이 내재한 관계의 구조들 ● 최원준은 아프리카와 동아시아에 대한 외교, 정치, 문화적 관계를 탐구하며 국제정세의 거대 흐름 속에서 그간 주목되지 않았던 보이지 않던 관계의 구조들을 드러낸다. 그 시작점, 「만수대 마스터 클래스」 (2013- )에서 최원준은 북한의 만수대 해외개발사그룹(Mansudae Overseas Project Group of Companies, MOP)의 해외 활동, 그 중에서도 북한의 아프리카외교 활동을 추적한다. 그가 중점적으로 다루어 온 '한반도의 분단'과 '근대화'라는 주제는 이 작업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조우하고 확장한다. ● 북한은 1974년 에티오피아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아프리카 약 18개국에 수많은 동상, 기념비, 정부건축물 등을 건설했다. 북한은 1994년 대기근이 오기전까지 아프리카에 무상건축을 시행했고, 2000년대에 들어서는 본격적으로 기념비미술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북한은 약1억 6,000만 달러 규모를 수주했다. 최원준은 3년간 아프리카 8개국 12개 도시를 방문하여 북한 주체사상의 흔적이 담긴 기념비와 건축물을 미학적 관점에서 촬영하고 언론인, 종교인, 전직 군인 등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 이 과정에서 그는 남한 또한 이 외교 전쟁에 적극적으로 가담해 가봉의 유신백화점을 지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의 평화, 휴전선, 미군 주둔 문제 등은 유엔(UN)의 연례 상정안이 되었고, 유엔은 회원국들의 투표를 통해 해당 문제들을 결정했다. 그러던 중 1960년대 말에 이르러 많은 신생 아프리카 독립국들이 유엔에 가입하자, 남북한은 앞다투어 이들의 지지를 얻고자 아프리카 원고외교를 시작했다. 작가는 남한과 북한의 외교경쟁과 관련된 파운드 풋티지와 아프리카의 북한미술(동상, 기념비, 건축물)과 관련자료들을 몽타주해 다큐멘터리 장편영화와 3채널 영상 설치 작업을 완성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는 조각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관련 자료들을 모은 아카이브 설치와 사진으로도 선보였다. ● 이후 실존 인물 모니카 마시아스의 삶의 서사를 다룬 「나의 리상국」(2018)에서 작가는 국가 간 관계보다 아프리카와 동아시아의 정치, 이데올로기 등 사회구조의 변경에 영향을 받은 개인의 정체성 변화에 보다 더 집중했다. 마시아스는 적도기니의 초대 대통령이자 독재자였던 프란스시코 마시아스의 딸로, 혼잡한 본국의 정세를 피하고자 여섯 살에 북한으로 보내져 김일성 주석의 수양딸로 15년간 엘리트 교육을 받고 자랐다. 아프리카인으로 북한인의 정체성(현재는 유럽거주)을 가진 그녀의 복잡한 정체성은 20세기 냉전 이데올로기와 아프리카의 잔혹한 근현대사, 그리고 남북 분단의 산물이었다. 작가는 마시아스를 실제로 초대해 렉처 퍼포먼스와 다큐멘터리연극을 만들고 이를 기록하여 3채널 영상 설치로 선보였다. ● 2019년에 작가는 콩고 루붐바시 비엔날레의 커미션을 받아 콩고의 중국광산에서 일하는 콩고 노동자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카탕가의 소년들」을 연출했다. 2000년경부터 아프리카 대륙은 우라늄, 구리, 알루미늄, 철광석, 코발트 망간 등 중국 경제의 주요 광물 공급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공격적으로 아프리카 대륙에 진출해 광산을 설립하고 광물을 수입하고 있는데, 이 흐름은 아프리카의 생활환경과 노동환경에 큰 영향을 미치며 아프리카인들의 삶의 지평을 바꾸고 있다. 작가는 카탕가 소년들의 일상과 꿈에 초점을 맞추어 추적하면서 변해가고 있는 삶의 구조와 풍경을 자연스럽게 담아냈다. 이렇듯, 최원준은 아프리카와 동아시아 간 보이지 않는 관계의 구조들을 국가적 차원과 개인적 차원을 오가며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다.

 

최원준_파티들, 동두천_에디션 1/3_피그먼트 프린트_160×600cm_2022

아프리카 이주노동자 타운: 동두천, 파주, 송탄 ● 이번 전시 『캐피탈 블랙(Capital Black)』에서 작가는 한국에 거주하는 아프리카인들의 삶과 문화에 집중한다. 전시의 제목 『캐피탈 블랙(Capital Black)』은 '자본, 수도, 중요한, 훌륭한' 등을 의미하는 'Capital'과 '흑인, 검은'을 의미하는 'Black'을 합성하여 작가가 만든 신조어로, 자본주의 흐름 안의 중요한 흐름으로서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흑인, 아프리카인의 삶과 맥락을 살펴보겠다는 작가의 의지를 담고 있다. 한자의 '검을 현'(玄)이 '오묘하다, 신묘하다, 빛나다'라는 의미를 내재하듯, 검은색에는 다양한 색이 포함되어있고 색상학적으로도 이 색들이 겹치면 다시 오묘한 검은 색이 된다. 마찬가지로 쉽게 통칭되는 '흑인'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유럽인들만이 아니라 아프리카 이주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맥락을 가진 이들이 포함된다. 1) 그 오묘한 개개인의 삶을 조명해 들여다보는 것은 초국가적 네트워크가 가능한 이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따라서 이번 최원준의 개인전 『캐피탈 블랙(Capital Black)』은 우리가 읽어내야 하는 중요한 흐름으로서 블랙이라는 미명 하에 숨겨진 다양함을 들춰내려는 시도이자 그들과 우리의 관계성을 살펴보려는 시도다. ● 추상적으로 멀게만 느껴지던 아프리카는 국제적인 자본주의 흐름 하에 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이주'는 여러 학자들이 언급하듯, 아프리카의 역사나 사회를 이해하는 데 주요한 키워드로 작동해왔다. 이는 16세기 이후 대서양 노예무역을 위해 강제로 이주당한 아프리카인의 대이동에서 시작되었지만, 식민주의 시대가 공식적으로 종료된 이후로는 자본주의 흐름 하에 개개인의 적극적인 의지로 전 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경제적 침체-저임금, 고물가-와 정치적 혼란이 아프리카 전 대륙을 휩쓸었고, 일자리를 찾지 못한 수많은 아프리카인들은 유럽이나 북미 외에도 전 세계 각국에 대한 정보들을 얻어 아프리카대륙을 벗어나는 노동 이주를 결행하고 있다. 2) 한국 역시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아프리카인들이 한국 경제에 대한 깊은 인상을 받으면서 하나의 주요한 이주 희망지로 자리 잡았다. ● 1990년대 초반부터 아프리카인들이 노동을 위해 한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고,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현상이 한국 냉전 이데올로기의 흐름 안에 있던 동두천, 파주, 송탄 지역의 풍경에 영향을 주어 변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지역들은 이주를 꿈꾸는 아프리카인들에게 적합한 몇 가지 조건들을 갖추고 있었다. 과거 주한미군 기지와 기지촌이 위치했던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국에서 예외적으로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해왔고, 2004년 8월 이후로는 한미 양국이 용산기지와 미2사단을 평택으로 이전하기로 합의한 '2004년 용산기지 이전 협정' 등에 따라 공동화되고 있었다. 또한 인근에는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다양한 가게와 공장들이 자리하고 있어 노동 접근성이 좋았다. 이에 과거 한국 체류 기간이 길었던 미군들의 가족이 머물던 부동산에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고, 이산 형태로 살아가는 지역들과는 달리 동두천, 파주, 송탄의 미군기지였던 지역에는 곧 아프리카 타운이 형성되었다. 동두천 나이지리아 국적의 이보(Igbo) 타운, 파주의 가나인 타운, 그리고 송탄(평택)의 카메룬인 타운이 대표적이다. 해당 지역들은 이러한 흐름에 따라 '기지촌'으로 인식되던 과거에 더 이상 머무르지 않고, 아프리카인들이 대규모로 거주하는 지역으로 점차 변모하고 있으며, 따라서 '서로 다른 문화권의 융합'이라는 과제를 누구보다 먼저 안게 되었다.

 

최원준_지밀과 에디, 동두천_피그먼트 프린트_160×120cm, 80×60cm_2021

공동체, 지역, 그리고 노동 ● 최원준은 2020년부터 이러한 변화 양상에 주목하여 위 지역들에 거주하는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의 삶과 생활을 연구하고 기록하고 있다. 2021년 더 레퍼런스에서 선보인 개인전 「High Life」에서는 식민지 시절 가나에서 태동해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댄스 음악 장르로 자리 잡은 하이라이프(Highlife)를 메타포로 삼아 한국에 거주하는 흑인들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나 유럽인들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실제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이 어떤 삶을 살면서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소개했다. ● 「캐피탈 블랙」에서 작가는 아프리카 이주노동자 커뮤니티에 한 발 더 다가간 작업들을 선보인다. 보다 정확한 분석을 위해 전시의 세 축을 '공동체'와 '지역' 그리고 '노동'으로 구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주한 아프리카 노동자들이 구성하게 되는 공동체에는 다양한 관계들이 존재한다.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 스스로가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아프리카 커뮤니티 내부에서 형성하는 관계, 한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속하게 되는 이주노동자-한국인 간의 관계, 1세대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어린 시절 한국으로 이주하거나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2세대가 구성하는 관계 등이 다양한 층위로 쌓이며 복합적인 공동체들을 구성해낸다.

 

최원준_이보 유니언, 동두천_피그먼트 프린트_118X149cm, 60X75cm_2022

공동체-가족사진 ● 최원준은 공동체에 대한 첫 번째 이야기로 가족사진의 형식을 꺼내 든다. 가족은 공동체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로, 특히 이주노동자에게는 이주 1세대와 이주 2세대의 갈등과 화합이 공존하는 장이기도 하다. 전형적인 가족사진의 형식을 전유하거나 조금씩 비틀면서, 작가는 가족 내의 이야기를 공동체적 차원으로 끌어낸다. ● 작가는 이주노동자 가족의 집, 동네 등 그들이 거주하며 살아가는 공간을 배경으로 가족의 초상을 담아낸다. 작가가 사진의 '기록적' 특성을 살리기 위해 전시에 선보이는 모든 작업에서 의상이나 배경을 특별히 연출하지 않았다고 소회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카메룬에서 온 크리스와 살로메 그리고 한국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일산의 공원에서 촬영했다. 한국의 근현대사가 응축되었다고 볼 수 있는 아파트의 외관을 배경으로 촬영한 작업에서 자연스레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장소성이 드러난다. 또한 전통 의상을 입고 있는 부모 세대와 캐주얼 의상을 입고 전통 모자 등을 착용한 2세대의 복식 대비를 통해 이주노동자 1세대와 2세대의 다른 문화 향유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한편, 가족생활의 중심지라고 볼 수 있는 거실에서 촬영된 「나이지리아에서 온이구웨 (왕) 찰스와 호프 그리고 한국에서 태어난 자녀들」의 배경은 이주노동자 가족의 다양한 내러티브를 드러낸다. 이 작업에서 가족 구성원 모두가 전통 의상을 입고 있지만, 그 배경에는 한국의 전형적인 졸업 사진 형식으로 기록한 2세대의 초상들이 장식적으로 걸려있고, 국적을 초월하는 다양한 아이콘의 인형들이 2세대의 삶의 전유물로 존재한다. 그 옆에 아카이브로 제시된 과거 나이지리아에서 촬영한 가족사진 「찰스와 호프 그리고 지밀, 아남브라, 나이지리아」와 비교해본다면, 이들의 삶이 얼마나 변모하고 있는가를 살펴볼 수 있다. ● 「나이지리아에서 온 엠마와 넬슨 그리고 한국에서 태어난 자녀들」, 「나이지리아에서 로렌스와 은고지 그리고 한국에서 태어난 자녀들」, 「나이지리아에서 온 제니퍼와 존 그리고 한국에서 태어난 자녀들」에서는 가족과 지역성이 결합한다. 이 시리즈에서 작가는 과거 동두천에 체류하던 미군들이 기념사진을 찍던 한 사진관을 임대하고 아프리카 이주노동자 가족을 초대해 촬영한다. 변화하는 역사의 흐름을 증명이라도 하듯, 미군 기념사진의 배경이 되던 한국과 미국의 관계를 상징하던 깃발은 이면의 레이어로 후방에 존재하게 되며, 한국 풍경을 그려낸 회화 앞에는 이 지역에서 살아가는 아프리카 이주노동자 가족이 새로운 주체로 서게 된다. "원하는 의상을 입고 가족사진을 찍자"는 작가의 권유에 어떤 가족은 본인들이 직접 한복을 준비하고 착장한 채로, 또 다른 가족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실히 드러내는 전통 의복을 착장한 채로 카메라 앞에 섰다. ● 작가는 아프리카 이주노동자가 이루고 있는 다문화 가정의 모습도 기록하는데,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한국에서는 편견 탓일지, 흑인-한국인 다문화 가정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나이지리아에서 온 윌프레드와 은희 그리고 한국에서 태어난 자녀들」, 「가나에서 온 레건과 선미 그리고 한국에서 태어난 아들」에서 작가는 예외적으로 의상을 참여자들과 논의했다. 앞으로 다가올 다문화 사회에서 '한국인'은 어떤 방식으로 규정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서로 상기하기 위해 한복을 착용하기로 했고, 참여자 대부분이 한복에 익숙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도 한복을 잘 소화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사진 전반에서 느껴지는 화목함은 국적과 경계가 가족이라는 공동체 형성에 있어서 중요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최원준_저의 장례식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_단채널 4K 영상, 컬러_00:07:50_2022

 

공동체-유대와 결속 ● '이주'는 집단 내의 유대와 결속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새로운 환경에 거주해야 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유지하는 집단을 형성해 활동하는데, 그가 기록한 「이보 유니언」과 「이모 스테이트 공동체 여성회원들」은 이러한 양상을 잘 보여준다. 특히 나이지리아계 이보(Igbo)족의 대다수가 거주하는 동두천 보산동의 경우, 이들이 하나의 전체 공동체(이보 유니언)를 형성하고 각기 다른 스테이트 출신 이주민들이 이모 스테이트 공동체, 아남브라 스테이트 공동체와 같이 교민회에 가까운 다른 공동체를 구성할 정도로 이들 공동체는 다분히 세분화되어있다. 한국이라는 본국과는 전혀 다른 지역에서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만나 개인의 문제와 커뮤니티 공동의 과제를 함께 풀어나가는 다수 집단의 존재는 특히 성인이 된 후 이주해 정체성 변화가 쉽지 않은 이주노동자 1세대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1세대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유지하고 향유하는 데는, 사실 한국에서의 고단한 노동 조건 역시 한몫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주간근무와 야간근무를 격주로 진행하고 주말에는 교민회 행사에 참여하며 여가를 보낸다. 바쁜 생활환경 속에서 이들이 한국 문화를 접할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1세대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한국 문화나 음식에도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 이들의 문화와 관련한 사진 중 「파티들」에서 아프리카 이주노동자 1세대가 한국에 살아가면서도 관혼상제와 관련된 통과의례 파티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지속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최원준은 이보족의 다양한 파티의 단면들을 추출해 5면화로 구성한다. 서아프리카에서 일반적인 축하를 기원하기 위해 돈을 하늘에 뿌리고 얼굴에 붙이는 풍습이 그가 기록한 생일파티, 유아 세례식(헌아식) 등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여기서 이주노동자 1세대의 삶과 생활 방식을 엿볼 수 있는데, 한국 문화에 적응도가 높은 2세대와 달리 1세대는 자신들의 문화와 정체성을 유지하고 향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는 이주 공동체 구성에 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많은 디아스포라 상황에서 교회의 역할은 일반적으로 중요하지만, 특히, 나이지리아의 경우 전 국민의 50% 이상, 가나의 경우 70% 이상이 기독교인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그 영향력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파주 지역에 위치한 '엘림교회'는 2004년 설립되어 아프리카 이주 노동자들의 구심점으로 작동해왔다. 특히, 엘림교회 이복자 선교사는 일찍이 이주노동자 1세대의 성향을 파악하여 나이지리아, 가나 출신의 목사를 초빙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 교회는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의 요구에 발맞추어 변화하면서 이들이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화합을 돕고 있다. 최원준은 "오늘은 한국, 내일은 세계"라는 교회의 비전을 배경으로, 아프리카 이주노동자와 선교사, 목사의 모습을 기록함으로써 함께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제시한다. ● 문화 공유를 바탕으로 다른 방식의 공동체를 구성하는 또 다른 하나의 사례는 「묘정, 린다, 코코, 모스, 썸머 그리고 가나에서 온 콰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진의 여성들은 직장인 아프로비트 댄스 동호회 회원들이고, 콰즈는 한국에서 앨범을 낸 가나 출신 가수다. 아프로비트(Afrobeat)라는 공동의 매개로 이들이 음악과 댄스 활동을 함께하는 공동체를 형성한 것처럼, 유대감과 서로에 대한 이해에 기반 해 새로운 사적 공동체들이 생겨날 수 있다. ● 한편, 작가는 '이주 2세대'에 대한 대화의 포문을 역시 마련한다. 앞서 언급했듯,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한국에 이주했거나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십 대로 성장하면서 이제 한국과 아프리카의 관계는 다음 단계를 맞은 셈이다. 다양한 개개인의 조건에 따라 한국 국적을 취득한 경우와 아닌 경우가 공존하지만, 어느 경우이건 생활·문화적으로 2세대 대부분은 한국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고 한국의 문화를 자신이 향유하는 주요 문화로 인식한다.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익숙지 않은 1세대와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따라서 갈등은 단연 존재할 수밖에 없다. 「지밀과 에디」, 「프레드와 친구들」, 「삼남매」에서 작가는 1세대와 달라진 2세대의 삶을 기록한다. 부모의 국적에 상관없이 이들은 더 이상 한국 사회와 분리되지 않고, 그 일원으로 살아간다. 한국인들과 한국어로 이야기하고 함께 학교에 다니고 같은 대중문화를 경험하며 시간을 공유한다. '다름'을 이유로 갈등이 형성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공동 생활권을 구성하는 상태에서 발생하는 갈등이며, 1세대가 한국 사회에서 분리된 채로 경험했던 갈등과는 사뭇 다르다. 따라서 한국 사회는 이 아이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는 질문을 목도하게 된다.

 

최원준_저의 장례식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_단채널 4K 영상, 컬러_00:07:50_2022

 

노동의 풍경 ● 작가는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 이주의 근원이 된 '노동'의 풍경 또한 기록한다. 사실, 이주 자체를 위해서는 일정한 전문성이나 이주 비용을 충당할 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륙 밖으로 이주할 수 있는 아프리카인들은 대부분은 전문직 노동자들이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요구하는 인력은 생산직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 대다수는 생산직 노동자로 입국하게 된다. 경기도 인근에 있는 다양한 공장에서 노동하는 이들의 모습을 기록함으로써 작가는 자본주의의 흐름이 만들어낸 변화하는 한국의 노동 구조를 드러낸다. 한국의 경제, 산업 구조가 바뀌면서 노동력이 비게 된 자리엔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의 생산 구조를 떠받치며 자리하고 있다. 이제는 한국 사회에도 없어서는 안 될 이주노동자들은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꿈꾸며 일한다. 사진속에서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에게 노동은 고되지만 아름다운 결과를 약속하는 신성한 행위로 존재한다. 실제 노동자들이 일하는 공간을 배경으로 촬영한 「나이지리아에서 온 발렌타인」, 「가나에서 온 밀러」 등에서 아프리카 노동자들의 긍정적 표정과 태도를 엿볼 수 있다. ● 최원준은 그간 전반적인 작업 활동에 있어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사회과학적으로 주제에 접근해 도큐멘팅하는 자세를 취해왔지만,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작업을 진행하면서부터 이러한 방향성을 일정부분 유지하면서도 이들과 함께 작업하는 공동체 기반 작업 역시 이어가고 있다. 실제 작가는 지역에 기반 한 아프리카 이주 공동체를 보다 더 잘 이해하고 연구하기 위해 2020년 동두천 보산동으로 이주하기도 했다. 이후 아프리카 이주 공동체를 긴밀하게 도우며 지속해서 교류하며 작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카메룬에서 온 올리비아의 점심식사』와 『하이라이프』에서는 아프리카 이주노동자 공동체와의 지속적인 관계 맺음 속에서 객관적 관계를 유지하던 작가와 이주노동자들의 거리감이 한층 좁혀진 것을 살펴볼 수 있다. ● 특히, 작가는 본국에서 예술인으로 활동하던 아프리카노동자들을 찾아내 이들을 작업 과정에 초대함으로써 이들과 창작활동을 함께하기도 한다. 현재는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는 예술가들을 한국 관객에게 소개하며 한국과 아프리카 두 문화를 연결하는 이 프로젝트는 2020년 나이지리아 가수 오시나치와의 첫 협업에서 시작되었다. 2020년 개인전 『High Life』에서 선보인 뮤직비디오 「Made in Korea」에서는 아프리카 이주노동자의 일과를 조명하면서, 한국과 아프리카 사회의 공존과 화합에 대한 희망을 제시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작 뮤직비디오 「No pain No gain」은 초국가적 이주노동자의 삶의 애환을 다룬다. 오시나치뿐만 아니라 다양한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이 실제 일을 하는 장면을 기록한 영상 푸티지들은 백화점 명품관의 파사드 풍경과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전태일 열사상 등의 영상 푸티지와 결합하면서, 노동자들의 꿈과 처우 사이를 오간다. 이 뮤직비디오에서 드러나는 노동은 신성하다. 노력 이후 따르는 정직한 결과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노래한다.

 

최원준_저의 장례식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_단채널 4K 영상, 컬러_00:07:50_2022

삶과 죽음의 사이-저의 장례식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작가는 지금까지 아프리카 이주노동자 공동체와 관계하면서 사망자 두 명의 사후 처리와 시신의 본국 송환업무를 진행했다. 작가는 이 경험이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의 삶 전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생로병사와 같은 삶의 과정들은 예기치 않게 불가피하게 찾아온다.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이 관혼상제와 관련된 통과의례 파티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지속하고 있다는 점 역시 생과 사의 자연스러운 순환이 이곳 에서도 계속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 작가는 우리가 알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하는 사이 떠나간 개개인을 포함한 이주노동자 전체의 삶을 기리기로 한다. 이를 위해 파주의 가나인 래퍼 나이팅게일, 문경의 나이지리아의 가수 찰스, 서울의 래퍼 라직 그리고 프로듀서 이로운을 초대해 뮤직비디오 「저의 장례식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를 완성한다. 의례를 통해 죽음의 슬픔을 축제로 승화시키는 아프리카 문화나 한국의 문화처럼, 모두가 함께 모두를 기리는 한풀이의 장을 마련한다. 뮤직비디오를 통해, 삶도, 죽음도 축제가 된다. 작가는 다양한 모양으로 관을 제작해 고인을 기리는 가나의 장례 방식에 착안해 이주노동자를 상징하는 구두 모양으로 관을 만들었다. 아프리카인들 외에도 한국인과 다양한 피부색을 지닌 다국적 노동자들이 모여 모두가 동료로서 이 관을 함께 들고,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의 발이 닿는 곳들을 돌아다니며 위로한다. 이 영상에서는 비자를 연장하지 못해 도망 다녀야 했던 1세대 이주노동자의 삶과 새로운 세대로서 이 땅을 살아가야 하는 이주 2세대의 삶이 교차하는 등 이주노동자의 맞이하는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질문이 담긴다. 그리고 장례식은 이주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의식이 된다. ● 최원준은 아프리카-동아시아 간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중요한 흐름으로서, 동두천, 파주, 송탄 지역을 중심으로 존재하는 한국 아프리카 이주노동자들의 생활과 문화에 세심히 접근하면서 보이지 않던 관계의 구조들을 드러낸다. 이러한 그의 연구와 작업 활동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그가 이 관계를 통해 미래를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점차 더 많은 다국적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의 생산직 노동시장으로 유입되고 있으며, 따라서 동두천, 파주, 송탄 지역의 현재 모습은 앞으로 한국 전역에 다가올 미래의 모습을 가늠케 한다. 함께 잘 살기 위해서는, 이들이 이주하게 된 배경과 상황을 연구하고 서로 이해의 발판을 마련하는 준비 과정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 최원준은 창작작업의 출발점인 사진을 사용함에 있어서 과거작업에서는 휴머니즘적인 메시지를 담기보다는 사회과학적으로 주제에 접근해 도큐멘팅하는 태도를 지녀 왔다. 주제에 대해 감정적으로 접근하기보다 거시적이거나 미시적인 차원에서 객관적으로 접근해 우리가 쉽게 볼 수 없었던 사실들을 들춰내 목도하게 만들어서 우리를 고민하게 하는 것은 그의 특기였다. ● 이러한 태도 아래 주요 작업 방향은 자연스레 아카이브 구성으로 이어졌고,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가 『아카이브 열병 Archive Fever』(1995)에서 '수집의 전제는 수집이 없었어도 존재했을 그 어떤 것들의 보고를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듯, 그는 존재했던 기록과 존재하지 않던 아카이브를 스스로 형성해 가며 자신만의 과거-현재의 역사 쓰기를 이어왔다. ● 이번 전시가 흥미로운 점은 작가가 이 방향성을 한편으로는 유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스스로 전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프리카 이주노동자 공동체를 아주 객관적으로 기록하는 한편, 이들을 참여시켜 함께 작업을 생산하기도 한다. ● 그간 소외되어 왔던 수많은 미시 담론들, 역사적 사실들과 대화하며 미래를 형성해가던 최원준은 이제 대화의 대상에 현재를 살아가는 다른 사람을 포함하기 시작했다. 그가 새로이 다른 공동체를 구성하며 만들어 낼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다. ■ 문선아

* 각주1)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미국에서 온 데븐, 동두천」의 데븐은 나이지리아계 흑인이지만, 미국에서 출생한 미군이다. 이처럼 다양한 서사를 가진 이들이 흑인이라는 범주로 통칭되고 있다.2) 한건수, 「본국으로 귀환한 아프리카 이주 노동자의 사회문화적 적응과 정체성에 관한 연구 : 가나와 나이지리아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국아프리카학회, 2008, 234쪽.

 

최원준_저의 장례식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_단채널 4K 영상, 컬러_00:07:50_2022

현재 한국은 저출산으로 인한 노동력 부족으로 과거보다 더 많은 외국인 노동자를 필요로 하고 있다. 한국에 외국인 노동자들은 19세기부터 존재하여 왔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생산직 인력난이 가시화되면서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국내에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한국의 아프리카인들은 대부분 단순 기술직으로 취업을 하기 위해 한국에 입국하는데 이들이 취업하는 업종은 섬유, 가구, 플라스틱 등 다양한 제조업 종이다. 한국의 아프리카 이주민 중 다수를 차지하는 서아프리카인들은 약 15여년 전부터 자신들의 공동체를 형성하기 시작하였고, 현재는 동두천 나이지리아 국적의 이보인 타운, 파주의 가나인 타운, 그리고 송탄(평택)의 카메룬인 타운 등으로 나눌 수 있다. ● 이들의 커뮤니티는 자국 교민회를 중심으로 구성되며 이들 타운에 있는 아프리카 교회를 중심으로도 구성된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의 대표적인 아프리카 타운들이 미군부대가 현재 주둔하거나 과거 주둔했던 기지촌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들이 미군부대 지역으로 유입된 현상은 미국의 한반도 군비 정책의 변화가 만든 현상으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동두천과 파주의 경우 미군 군무원과 가족들을 상대하던 부동산 월세 시장이 미군의 감소와 함께 무너지자 자연스레 값싼 월세를 찾던 아프리카인들이 모여들게 되었다. 또한 동두천, 파주와 그리고 평택(송탄)은 모두 지역에 제조업 공장지대가 형성되어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 아프리카인들에게 매력적인 곳이 되었다. 이 중에서도 동두천의 아프리카공동체는 미군부대 캠프 케이시와 매우 가까운 거리에 많은 아프리카인들이 거주하면서 사실상 이곳은 이제 기지촌과 아프리카 타운 두 곳으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 동두천 거주 아프리카인들 중 90%는 나이지리아 국적의 이보(Igbo) 부족인들이며 (나이지리아인은 크게 욜로바, 이보, 하우사, 풀라니 부족으로 구성) 나머지 10%는 남아공, 에디오피아, 라이베리아, 카메룬인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두천의 이보족 향우회들은 10여 년 전부터 투표를 통해 나이지리아 각 지역을 대표하는 회장단들을 선출하고 향우회를 만들어 매달 정기적인 모임을 한다. 이들은 전통을 중시하여 아프리카 전통방식대로 매달 여러 행사를 진행한다. 이렇게 이들은 동두천에서 자신들의 문화를 견고히 하며 공동체의 결속을 다진다. 이런 동두천 이보족의 문화는 파주, 송탄의 아프리카 공동체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이들의 강한 결속 문화는 이들을 한국 문화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만들며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 이들의 이주는 세계 경제의 불균형과 한국의 노동력 감소로 인한 이유들로 설명이 되지만 이들의 문화적 고립의 이유는 좀 더 복잡하다. 심지어 한국의 많은 아프리카인들은 한국의 문화, 음식에도 관심이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한국에 대해 무관심한 아프리카인들의 이런 태도는 초국가적 노동자들의 삶의 단면이기도 하다. 주간 근무와 야간 근무를 격주로 하는 대부분의 아프리카 노동자들은 주말에는 자신들 교민회 행사에 참여하며 여가를 보낸다. 이들에게 한국의 문화는 알아야 할 이유도 딱히 없지만 접할 기회 또한 쉽게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 이들의 한국 문화에 대한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들의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멀지 않은 미래에 한국 노동 시장의 일정 부분을 아프리카인들이 차지하는 시점이 올 것이며, 그때가 한국 사회가 다문화 사회로의 진입 시점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낯선 아프리카인들의 사진을 외국인 노동자가 아닌 민중의 초상으로 그리고 있다. 또한 이들과의 문화적 협업으로 탄생한 음악과 뮤직비디오는 이들이 현재 처해있는 문화적 고립을 타파하기 위한 도구이자 한국인들에게 문화를 소개하고자 하는 이들과 나의 제스처이다. ■ 최원준

 

Korea is in need of more foreign workers than in the past due to labor shortage due to low birth rate. Foreign workers have existed in Korea since the 19th century, but many foreign workers began to flow into Korea on a large scale as the production labor shortage became visible in the late 1980s. Most Africans in Korea enter Korea to find employment in simple technical jobs, and the industries they work in are various manufacturing industries such as textiles, furniture, and plastics. West Africans, who make up the majority of African immigrants in Korea, started forming their own communities about 15 years ago. Currently, it can be divided into Nigerian Igbo Town in Dongducheon, Ghanaian Town in Paju, and Cameroonian Town in Songtan (Pyeongtaek). ● Their communities are organized around their home countries and also around the African churches in these towns. One interesting fact is that Korea's representative African towns located in the US military camp towns where US military units are currently or were stationed. Their influx into the US military camp area can be interpreted as a phenomenon created by the change in the US military policy on the Korean Peninsula. In particular, in the case of Dongducheon and Paju, as the real estate rental market that dealt with US military personnel and their families collapsed along with the decrease in the US military, Africans who were looking for cheap monthly rent naturally gathered. In addition, Dongducheon, Paju, and Songtan (Pyeongtaek) all have a common feature of manufacturing factories in the region, making them attractive places to African workers. In particular, the African community in Dongducheon is now divided into two places: a military camp town and an African town, as many Africans live close to Camp Casey, a US military base. ● About 90% of the Africans living in Dongducheon are Igbo tribesmen of Nigeria nationality (Nigerians are largely composed of Yolova, Igbo, Hausa, and Fulani tribes), and the remaining 10% are South Africans, Ethiopians, Liberians, Ghanaians and Cameroonians. etc. Dongducheon's Igbo people's associations elected presidents representing each region of Nigeria through a vote about 10 years ago, and formed a local association to hold regular monthly meetings. They value tradition and hold several monthly events in the African traditional way. In this way, they solidify their culture and solidify the unity of the community in Dongducheon. This culture is similar to the African communities in Paju and Songtan. However, their strong solidarity culture further alienates them from Korean culture and sometimes results in isolation. ● Their migration can be explained by the imbalance of the global economy and the decrease in Korea's labor force, but the reasons for their cultural isolation are more complex. Even many Africans in Korea are not interested in Korean culture and food. This attitude of Africans who are indifferent to Korea is also a cross-section of the lives of transnational workers. Most African workers, who work day and night shifts biweekly, spend their leisure time on the weekends by participating in their local community events. They have no particular reason to know about Korean culture, but they are not easily given opportunities to come into contact with it. ● Despite their indifference to Korean culture, the reason why we must pay attention to and understand their culture is that Africans will occupy a certain part of the Korean labor market in the not-too-distant future, and that is when Korean society becomes a multicultural society. For this reason, I tried to portray unfamiliar Africans as portraits of the people, not foreign workers. In addition, the song and music video created through cultural collaboration with them are tools to break the cultural isolation they are currently in, and a gesture of mine and those who want to introduce culture to Koreans. ■ CHE Onejoon

 

Vol.20221130h | 최원준展 / CHEONEJOON / 崔元準 / photography.vi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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