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의 풍경● 몇 번의 전생을 경험했는지 기억할 수 는 없지만 적어도 한가지이상일 것이다. 라고 확신 한다 지금 이 생을 살고 있는 나라는 정체성은 이번 한 생에만 유효한 것 이리라 정체성의 변화에 대한 관심을 시작으로 작업을 해오던 중 전생이라는 모티브가 우연히 드러났다. 한 가지 이상의 모습을 담고 있지만 그걸 알아채지 못하고 한 가지 정체성을 고수하며 한 평생을 성실히 사는 삶. 한 가지 얼굴에 진심으로 혼신을 다해 연기하는 삶에 혼란을 느꼈다. 하지만 반대로 전생은 지난 수많은 얼굴들을 보여준다. 두 발 달린 짐승으로.. 포효하는 새로.. 무수히 많은 흔적을 간직한 커다란 돌로... 지금 이 순간에도 전생은 수많은 힌트를 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너는 이런 것 일 수 도 또 저런 것 일 수 도..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놓치고 또 붙잡고 싶다면 지금 이순간 그것이 빠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잃어버린 얼굴을 찾는 것 일지도 모른다.
정지연_창가에 (by the window)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05×130cm_2022정지연_on the tabl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3×90cm_2022정지연_한나와 안나(hannanna)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3×60cm_2022정지연_3개의 머리(3 head )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7×130cm_2022정지연_window_종이에 아크릴채색_36×51cm_2023정지연_커다란얼굴/마스크(mask)/짚(hay)_종이에 아크릴채색_36×51cm_2023정지연_backyard-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0×45cm_2022
2022년 8월 ~ 2023년 4월 까지 만난 얼굴들● 각자의 언어들로만 표현하던 시기 이전/ 문득문득 만나지는 얼굴들이 있다. 지나는 길에서 우연히 스치는 벽에 그 잔상들이 남아있기도 하고 강아지 산초의 새초롬한 얼굴에서도. 어느새 더 많은 얼굴들이 여기저기서 마구잡이로 나오기도 한다. 각자의 얼굴마다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다. 그동안 그 이야기의 과정에 집중한 작업을 하였다. 이제는 그 끝 하나의 세계에서 의아함 없이 살아가는 모습에 더 관심이 간다. 하늘에 번개는 번개대로치고 커다란 새는 불을 뿜으며 날아가고 알을 품은 흰소는 굳건히 알을 지키며 각자의 이야기를 다르게 써간다. 왜? 가 빠진 세상 답이 없이 살아지는 세상
나는 풍경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길을 걷다 걸음을 멈추고 나무와 잎이 빼곡하게 들어찬 숲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은 나에겐 일상이다. 차를 몰아 여행을 다닐 때도 좋은 풍경을 만나면 차에서 내려 한참동안 풍경을 바라본다. 그냥 스쳐가는 풍경을 놓치지 않고 산의 생김새 능선의 아름다운 곡선, 나무와 넝쿨이 엉켜 만들어낸 특이한 형태나 패턴을 찾아 즐기는 행복을 놓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시간을 들여 자연을 관찰하는 일은 풍경을 그리는 나에게 그림의 영감을 얻는 가장 좋은 실천이다.
나는 길을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인간이 자연을 찾아 떠나기 시작한 후부터 모든 풍경에는 길이 생겼다. 그 길을 따라가면 누군가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으니 풍경에 길을 그리는 일은 그 자체로 인간을 그리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길 어딘가에 집이 있거나 사람이 떠난 빈 집과 터들이 흔적으로 남아있다. 그러니 길을 그리는 일은 풍경화를 인문학적 사고로 보게 하는 힘을 준다.
나는 시간의 흐름과 계절을 따라 자연을 그리는 풍경화가이다. 한국의 기후는 사계절을 가지고 있어서, 계절의 변화를 쉼 없이 그림으로 옮기는 나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스타일의 풍경화를 그리게 되었다. 각기 다른 계절의 풍경을 그리다보면 그것을 표현하는 나름의 화법을 찾아내게 된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내가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의 다양성으로 비춰지고 그 다양성만큼 여러 스타일의 시리즈를 그리게 된 것이다.
추니박_사색의 숲_한지에 먹, 아크릴채색_70×92cm_2022추니박_빨간버스가 있는 고성바다_한지에 먹_93×118cm_2022추니박_겨울 산책_한지에 먹_162×260cm_2022
모든 경험과 기억은 시간 앞에서 부서지고 흩어지고 흐려진다. 어떤 결심으로 어느 날 목격했던 감동적인 아름다움을 기억하려고 애쓴다 해도 그것을 온전히 생동감 있게 기억해내는 일은 쉽지 않다. 심지어 어떤 경우엔 스케치북을 들여다봐도 그 장소에 대한 느낌이 전혀 기억나지 않을 때도 많다. 그러니 기억이라는 것은 시간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경험이 시간에 의해 아련한 추억으로 숙성됐을 때 어쩌면 그림은 더욱 깊어지고 성숙해진다. 그래서 나는 현장에서 그리는 작업, 현장에서 사생을 하고 작업실에서 완성하는 작업, 온전히 작업실에서 완성하는 작업을 구별해서 꾸준히 병행해오고 있다. 그 세 가지의 작업 방식은 내가 자연을 관찰하고 해석하고 새롭게 창조하는 작업을 가능하게 해준다. 특히 현장에서 얻었던 살아있는 생동감과 기억을 더듬어 새롭게 상상하고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나의 표현력을 더 극대화 되고 더 나다워 진다.
추니박_밤나무숲의 가을_한지에 먹, 아크릴채색_72×142cm_2021
나는 두꺼운 한지위에 동양적 시각에 의한 필법과 구도, 서양의 현대미술이 추구하는 평면성과 채색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현대와 전통을 넘나드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을 내가 지난 2년여 동안 현장과 작업실을 오가는 작업을 통해 완성된 결과물들이다. 어떤 작업은 현장작업의 리얼리티가 있고 어떤 작업은 사실과 추상이 결합되기도 하고 어떤 작품들은 상상 속 풍경으로 보여 지기도 한다. 이런 작품들을 통해 내가 궁극적으로 관람자에게 전달하려고 하는 것은 위안과 힐링이다. (2023. 4) ■추니박
긴 or Kin : 작은 차이에 대한 믿음●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적색목록(Red List)을 정리하여 42100종 이상의 멸종 위기 생물을 알린다. 포유류의 경우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지 않으나, 볼품없는 식물이나 징그럽기까지 한 미물들의 존엄성을 수긍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생애 단 한 번도 가볼 일 없는 곳의 이름 모를 존재가, 우리에게 미치는 직간접적인 영향을 실증하기 어렵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구의 생각이 통념이 되고 있는 것은 실증적 가치를 넘은 일종의 '믿음'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은 국제자연보전연맹이 2차 세계대전 종료 직후인 1948년에 설립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진화론을 인간에게 적용한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와 토마스 헉슬리(Thomas Huxley)의 이론은 왜곡되어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 정점인 2차 세계대전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 자연의 섭리가 아님을 깨닫게 했다. 큰 희생으로 얻은 '생명 존중'이란 교훈은 인간에게만 적용되지 않았다.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를 존엄하게 여긴 결과 생명체 간의 차이는 작은 것에 불과하다는 믿음을 키웠다. 이러한 사고는 식민주의를 반대하는 20세기 초 추상화가들의 작품으로도 표현되었다. 르네상스 이후 대두되었던 식민주의는 레비나스(Levinas)가 말했듯이 헤브라이즘(Hebraism)을 헬레니즘(Hellenism)으로 해석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즉 고대 그리스의 주체주의 관점에서 기독교적 교리를 이해하였기에 기독교 공동체인 유럽을 주체화하고 타 종교인 타국을 타자화 한 것이다. 타자에 대한 모든 결정권을 주체가 갖는 이러한 사고는 회화에서 투시도법(Perspectiva)과 명암법(Chiaroscuro)으로도 나타났다. 그러나 선교와 식민의 과정에서 마주한 다양한 문화는 유럽 중심주의와 기독교적 관념에 균열을 일으켰다. 특히 라이프니츠(Leibniz) 등에 의해 유입된 동양의 기(氣) 철학은 만물의 보편성을 관념적으로 이해하는 데 기여하여 평등사상이 고취되도록 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반식민주의 화가들은 주체의 특권을 내려놓고 타자와의 괴리를 극복하고자 했다. 개체 간의 차이를 줄이려는 실험은 서양의 관습적·물질적 제약 속에 한계가 있었다. 특히 '색면'으로 개체를 표현하는 서양 회화의 전통이 걸림돌이 되었다. 만물에 적용된 '작은 차이에 대한 믿음'은 동양 사상과 밀접하기에 동양 회화의 전통적 물질과 기법으로 보완 할 수 있다. 이러한 의식 속에 이루어진 것이 '긴 or Kin'연작이다. 작은 차이를 뜻하는 '긴'과 친족을 뜻하는 'Kin'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들은 만물의 보편성을 토대로 한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반영하고 있는 조형적 특징은 크게 4가지로 태극 도상을 통한 보편성 표현, 먹의 농담을 통한 다양화, 점선을 이용한 개체의 고립 극복, 먹의 번짐을 통한 관계성의 강조이다. 태극 도상은 초기 추상화의 기하학적 형태를 극복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개체를 전체의 부분으로 인식하는 구조주의 관념 속에 사용된 사각형, 원, 삼각형 등의 기하학적 도상은 개체 간의 극복할 수 없는 이질감을 형성한다. 생명이라는 보편성을 강조하기에 획일화된 도상이 요구되었다. 이에 태극 도상은 흥미롭다. 한 원 안에 음과 양의 두 요소가 물결 모양으로 대립하면서도 어우러지는 태극 도상은 만물을 생성하는 우주의 근원을 형상화한다. 그런데 이처럼 음양으로 분화된 2태극은 송대(宋代, 960~1279)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이 있기 전까지는 3태극이 일반적 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만물은 세 개의 요소가 작용하여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 세 요소에 대한 정의는 시대나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세 개의 파문으로 이루어진 태극은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등 다양한 국가에서 나타나며 상나라(BC1600~BC 1046)에서부터 용례를 찾아볼 수 있을 만큼 오랜 역사를 갖는다. 또한 삼파문(三波紋)은 서양의 오랜 유물에서도 발견되기에 전 지구적 도상이라 할 수 있다. 동서양의 미술 문화가 발달하기 이전부터 만물의 원리를 표현한 태극 도상의 파문은 만물의 보편성을 표현하기에 적합하다. 태극 도상이 만물의 보편성을 나타낸다면, 수묵의 농담은 개체 간의 차이를 표현한다. 동양에서 먹은 검은색보다는 모든 색의 함축을 의미한다. 따라서 먹의 농담을 이용한 차이의 표현은 개체 간의 차이를 유지하면서도 차이의 이질감을 줄이기에 효과적이다. 이는 초기 추상화가 다양한 색으로 개체의 격차를 줄이지 못하거나 일률적인 색으로 만물을 획일화했던 것의 대안이 된다. '색면'으로 개체를 표현하는 서양화법은 개체 간의 선후와 우열을 불가피하게 드러내거나 개별자를 고립시킨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선으로써의 개체를 표현하고 먹의 번짐으로 관계성을 강조한다. 특히 점선은 다른 개체와 연결되어 있지 않은 개체도 세계로부터 고립되지 않게 표현한다. 이러한 사고는 물리적인 것을 넘어 수많은 존재를 인지하고 살아가는 현 사회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다. 이는 양면으로 배접하여 이면의 세계가 드러나게끔 한 것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즉 양면의 작품은 현 세계를 압축적인 모습으로 보여준다. 하나의 작품은 하나의 소우주라 할 수 있다. 그 결과 전시장은 대우주이다. 대우주와 소우주와의 관계는 작품의 설치에서 나타난다. 대우주 내에서 소우주는 유동적이고 가변적이다. 이것은 족자와 병풍의 전통적 기능에서 착안했다. '와유(臥遊)'의 개념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유동하며 다른 시공간을 보여주기도 하고 현재의 시공간을 가로지르기도 한다. 현 세계의 모습에 적합한 이러한 인식 역시 서양회화의 시공간 개념과 차이가 있다. 벽화를 기본으로 발전한 서양의 그림은 알베르티(Alberti)의 '열린 창문' 개념으로도 알 수 있듯이 고정된 시공간을 기본으로 한다. 그림을 벽에 고정하는 전시 방식은 이를 반영한 것이다. 직간접적으로 다양한 시공간의 우주를 수없이 마주하는 현 세계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동양의 전통적 전시 방식은 더 적합하다. 공감과 이해의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수많은 세계와의 공생에 필요한 것은 실증적 가치만이 아니다. 내가 속하지 않은 세계 역시 내가 속한 세계와 큰 차이가 없다는 믿음이 우리의 세계를 지탱할 것이다. ■윤여범
윤여범_긴 or Kin 2307 뒤_순지에 수묵_125×76cm, 양면_2023
긴 or Kin: Belief in small differences● The International Union for Conservation of Nature (IUCN) organizes the Red List to inform more than 42,100 endangered species. In the case of mammals, it is not difficult to form a consensus, but it is not easy to accept the dignity of unsightly plants or even disgusting creatures. It may be because it is difficult to prove the direct or indirect influence of unknown beings in places we have never visited in our lifetime. Nevertheless, the idea of this organization is becoming a common idea because a kind of 'belief' that goes beyond empirical value is emphasized. This belief is not unrelated to the fact that the International Union for Conservation of Nature was founded in 1948, right after the end of World War II. ● The theories of Herbert Spencer and Thomas Huxley, who applied Charles Darwin's evolutionary theory to humans, were distorted and used to justify imperialism. World War II, the culmination of which, made us realize that the 'strong diet' and 'survival of the fittest' are not the providence of nature. The lesson of "respect for life" obtained as a result of great sacrifice did not apply only to humans. As a result of respecting all living beings, the belief that the differences between living things are small is nurtured. This thought was also expressed in the works of abstract painters in the early 20th century who opposed colonialism. ● Colonialism that emerged after the Renaissance, as Levinas said, originated from the interpretation of Hebraism as Hellenism. In other words, because Christian doctrine was understood from the perspective of subjectivism in ancient Greece, Europe, the Christian community, was subjectified, and other religions, other countries, were made the other. This kind of thinking, in which the subject has all the right to decide on the other, also appeared in painting through perspective and chiaroscuro. However, the various cultures encountered in the course of missionary and colonialism caused cracks in Eurocentrism and Christian notions. In particular, the oriental ki(氣) philosophy, introduced by Leibniz and others, contributed to an ideological understanding of the universality of all things and promoted the idea of equality. In this process, anti-colonial painters gave up the power of the subject and tried to overcome the gap with others. ● Experiments to reduce differences between individuals were limited by Western customary and material restrictions. In particular, the tradition of Western painting, which expresses objects in "color fields," has become a stumbling block. The 'belief in small differences' applied to all things is closely related to Eastern thought, so it can be supplemented with traditional materials and techniques of Eastern painting. What was created in this consciousness is the '긴 or Kin' series. As can be seen from '긴', which means small difference and 'Kin', which means kinship, these works are based on the universality of all things. There are four major formative characteristics that are reflected to express this: expression of universality through the Taegeuk icon, diversification through light and shade of ink, overcoming isolation of objects using dotted lines, and emphasis on relationships through smearing of ink. ● Taegeuk icon was used to overcome the geometric form of early abstraction. Geometric icons such as squares, circles, and triangles used in the notion of structuralism, which recognizes objects as parts of a whole, create an insurmountable sense of heterogeneity between objects. A uniform icon was required to emphasize the universality of life. Thus, the Taegeuk icon is interesting. The Taegeuk icon, in which the two elements of yin and yang oppose each other in a wave-like shape in one circle, embodies the origin of the universe that creates all things. However, the two-taegeuk differentiated into yin and yang was common until Zhou Dunyi (周敦頤)'s 『Taegeukdoseo(太極圖說)』 of the Song Dynasty (Song Dynasty, 960-1279). In other words, all things are created by the action of three elements. Although the definition of these three elements differs by era or region, Taegeuk, which consists of three wave patterns, appears in various countries such as Korea, China, Japan, and Vietnam, and can be used from the Shang Dynasty (1600 BC to 1046 BC). has a long history. In addition, three wave patterns can be said to be a global icon because it is also found in old relics of the West. The ripples of the Taegeuk icon, which expresses the principle of all things even before the development of art culture in the East and the West, is suitable for expressing the universality of all things. ● If the Taegeuk icon represents the universality of all things, the light and shade of ink express the differences between individuals. It means the connotation of all colors rather than black eaten in the East. Therefore, the expression of difference using light and shade of ink is effective in reducing the heterogeneity of difference while maintaining the difference between individuals. This is an alternative to the early abstract paintings, which failed to reduce the disparity of objects with various colors or standardized everything with uniform colors. ● The Western painting method of expressing individuals with 'color fields' inevitably reveals the superiority and inferiority between individuals or isolates individuals. To overcome this, the individual is expressed as a line and the relationship is emphasized through the smearing of ink. In particular, the dotted line expresses objects that are not connected to other objects so that they are not isolated from the world. This kind of thinking reflects the current society where we recognize and live in countless beings beyond the physical. This is also shown through the two-sided double-layered material, revealing the world behind it. In other words, the two-sided work shows the present world in a compressed form. ● One work can be said to be a microcosm. As a result, the exhibition hall is a cosmo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macrocosm and the microcosm appears in the installation of the work. Within the macrocosm, the microcosm is fluid and variable. This was conceived from the traditional function of scrolls and folding screens. As can be seen from the concept of 'wayu', they are fluid and show other time and space or cross the present time and space. This perception suitable for the present world is also different from the concept of time and space in Western painting. Western painting, which developed based on murals, is based on a fixed time and space, as evidenced by Alberti's concept of 'open windows'. The exhibition method of fixing the painting to the wall reflects this. The traditional exhibition method of the Orient is more suitable to show the present world, which directly or indirectly encounters countless times and space universes. ● It is not only empirical value that is necessary for coexistence with numerous worlds that have no choice but to have limits of empathy and understanding. Our world will be supported by the belief that the world to which I do not belong is no different from the world to which I belong. ■Yoon Yeobeom
'민중미술가 오윤'이 바라본 봄● 생애 첫 개인전을 끝으로 세상을 떠난 작가 오윤을 돌아보는 전시가 마련됐다. 『봄의 소리』라는 제목으로 기획된 이번 전시는 한국 민중미술의 상징적인 존재인 '오윤'에서 시각을 조금 달리해, 봄을 떠올릴 만한 꽃과 새, 그리고 춤과 해학을 노래한 작품을 선보이며, 오윤의 또 다른 작품 세계를 선보인다. ● 『봄의 소리』는 서대문구에 자리한 다다프로젝트 갤러리에서 오는 22일 개막해 4월 12일까지 개최된다. 전시는 오윤 묘비명에 새겨진 "그는 바람처럼 갔으니까/ 언제고 바람처럼/ 다시 올 것이다"라는 글에서 시작해 '바람처럼 갔던 그가 봄의 소리를 찾아오다'라는 기획으로 구성됐다.
오윤은 1980년대 현실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80년대 사람들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저항의 메시지를 힘 있게 전한 상징적인 존재였다. 그를 향해 미술사학자 유홍준은 1950년대 박수근의 "서민미술"과 1960년대 신동엽의 "참여문학", 그 두 개의 가치가 분리되지 않은 '진짜 민중미술가' 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 동시에 평론가 성완경은 오윤의 작품 활동에 대해, 80년대 민중미술이라는 틀 안에만 가둘 수 없는 더 높은 예술적 성취가 있다고 평한 바 있다. 전시를 기획한 다다프로젝트는 그간 널리 알려져 온 저항의 메시지가 가득한 오윤의 민중미술 작품보다 봄과 우리의 삶, 해학이라는 시선으로 작품을 선별해 선보인다.
몇 년 만에 마스크를 벗고 맞이할 수 있는 봄이 오고 있다. '봄'은 계절의 의미도 있지만 여러 상징적인 의미도 갖고 있다. 저항과 민중을 외쳤던 오윤이 바라본 '봄'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봄이 오고 있는 시점, 오윤 판화 특별전 『봄의 소리』는 다층적인 아름다움과 생기를 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다프로젝트
그만의 해학이 담긴 동화 같은 정기호의 작품세계는 명상에 의한 자기 수련의 한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밤새도록 그림에 집중하다 실명 위기까지 간 적도 있었다는데, 결국 말년에 정신병원에 들어가셨다.
화구도 물감도 없는 정신 병원에서도 스케치북에 수많은 에스키스를 그리다 5년 전 운명하셨다.
행복한 화가일까? 불행한 화가일까?
글 / 조문호
고)정기호화백 / 조문호사진
평평한 존재자들의 세계
최근 과학기술학 등지에서 ‘평평한 존재론(flat ontology)’이 뜨고 있다. 평평한 존재론은 크기와 상관없이, 권력의 편중과 상관없이 세상 만물에 우열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인간이 인간중심적 사고를 바탕으로 동물, 기계, 물질과 같은 비인간(nonhuman)을 도구화하고 도외시한 점을 비판하며, 모든 존재가 “실재한다는 점에서 동등”하며, 서로 연결되어 영향과 효과를 주고받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논자들은 ‘객체들의 민주주의’, ‘사물정치’ 등의 표현을 사용하는데, 그러한 용어들보다 더 효과적으로 평평한 존재자들의 세계를 가시화하고 있는 것이 정기호의 평면이다.
2008 72.5cm x 60.6cm 천위에 유채
평평한 존재자 1. 여인
정기호의 그림에서 여인은 부드럽다. 유려한 곡선과 흐름은 모두를 끌어안기에 적절하다. 자연 또는 실내에 누워 휴식을 취할 때도 세상을 향한 염려와 보호의 시선은 쉬지 않는다.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하지만 강함을 가진 존재이다.
1993 72.5cm x 60.6cm 천위에 유채
평평한 존재자 2. 자연
세모난 해의 햇살은 다리처럼 그 어디든 달려가서 비춘다. 나무는 곧게 또는 삐딱하게, 홀로 또는 함께 자라도 어디나 어우러진다. 꽃은 해만한 크기로 존재감을 드러내거나, 때로는 화가의 얼굴이 된다. 산과 바다, 연못과 같은 자연은 아예 인간의 형상이 되기도 한다.
2006 91cm x 72.7cm 천위에 유채
평평한 존재자 3. 동물
소는 그림을 그리거나, 여인을 관조하는 화가의 분신이다. 개는 여인의 곁에서 온기를 주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생활을 영위하는 독립체이기도 하다. 나무 꼭대기에 앉은 새는 세상을 향해 지저귀는데, 그 소리는 모든 존재자들에게 닿을 만큼 울림이 있다. 아이들을 태운 용은 하늘을 날면서 미소를 보인다. 정기호의 그림에서 동물들은 인간과 다름없거나 인간과 소통하는 존재다.
1994 72.7cm x 60.6cm 천위에 유채
평평한 존재자 4. 사물: 붓, 이젤, 마차, 집, 교회
화가는 붓으로 이젤 위에 놓인 캔버스에 신의 숨결을 불어 넣는다. 인간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신의 숨결처럼 놀라운 창조와 변형 능력이다. 이성과 자연의 규칙을 초월해, 여인과 집, 나무를 태우고도 무거움을 모르는 마차는 구름과 바람의 도움을 받아 달린다.
1993 41cm x 31.8cm 천위에 유채
정기호의 그림에 등장하는 모든 존재는 평등하다. 이들은 나무-연못-새-해-얼굴 등으로 뗄 수 없는 사슬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 존재자들은 다시 다른 존재자와 결합하여 새로운 회집체(assemblage)를 만든다.
1990 40cm x 23cm 천위에 유채
정기호가 만들어 놓은 ‘매끈한 평면’은 이러한 연결과 교환 그리고 새로운 배치를 자유롭게 실현한다. 이 평면에는 결합의 규칙과 같은 홈이 패여 있지 않다. 평면이 매끄럽기 때문에 무한 확장이 가능한 창조의 세계이다. 이곳에서 정기호는 존재자들의 크기와 형태를 다양화하고, 결합과 해체를 자유자재로 반복한다.
2002 53cm x 45.5cm 천위에 유채
그러나 이 세계의 화가는 다른 존재자들의 생사를 쥐락펴락하는 신과 같은 존재가 아니다. 정기호는 이 평평한 세계 안에 자리한 또 하나의 평평한 존재자, 단지 그림을 그리는 존재자로 머무는 것을 기뻐했다.
2008 72.7x60.6 천위에 유채
화가로서 그는 연결된 자연, 사물들이 이끄는 대로 숨을 참고 붓과 펜을 든 팔을 움직이는 수행자 역할을 했을 뿐이다. 그의 평면 위에서 이 모든 존재자들은 움직이고 새롭게 결합해 생명력과 자유로움을 누린다. 그 존재자들에게 하나하나 숨을 불어 넣어주었던 그가 그립다. 하늘이 눈부시게 파란 날에는 더욱 그렇다.
인사동 '선화랑'에 핀 벚꽃은 언제나 절정이다. 설치미술가심영철(66)의 개인전 ‘댄싱 가든(Dancing Garden)’의 설치 작품 덕분이다.
1층에서 4층으로 이어지는 전관에서 열리는 ‘댄싱 가든'은 설치미술, 조각, 조명, 미디어아트 등 다채로운 장르의 작품이 전시된다. 작품을 팔아야 생존할 수 있는 화랑 입장에서, 설치미술과 미디어아트 장르의 전시를 대규모로 여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일반 회화와 달리 판매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원혜경 '선화랑' 대표는 “평소 수장고로 쓰던 4층을 전시장으로 개조하는 등 야심 차게 준비했다”고 말했다.
흙의 정원 2F-1
심영철 52회 개인전 ‘춤추는 정원’은 작가가 일구어온 40여 년 작품 세계를 함축적으로 담아낸 새로운 작품들로 구성된다.자연과 환경은 그녀에게 영감의 원천이다. 2002년 ‘환경을 위한 모뉴멘탈 가든’은 그녀에게 자연, 환경 속 인간 존재를 탐구했던 대표적인 예다. 코로나19, 대지진, 전쟁 등 재난이 가시화된 오늘날 포스트 팬데믹 시대에, 환경과의 공생은 인류에게 주요한 화두이자, 그녀의 작업에 있어서 출발점이다. 환경과 인간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탐구했던 ‘일렉트로닉 가든 - 모뉴멘탈 가든 - 시크릿 가든 - 매트릭스 가든 - 블리스플 가든’으로 이어진 작가 심영철의 작업이 이제 ‘댄싱 가든’이라는 이름으로 펼쳐진다.
꽃비 정원 1F-2
그녀의 모든 ‘가든’ 연작에서 미적 대상으로 탐구했던 ‘꽃’은 자연의 상징이자 생명성의 표상이다. 이번 개인전에서 그녀는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되면 어김없이 피어오르는 ‘벚꽃’을 주요 테마로 삼아 대규모 신작을 준비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롭게 제작된 설치 작품들은 복합 채널의 다차원적 조형 작업이자 인터렉티브 아트로서 오랫동안 듀얼 리얼리티(Dual Reality)를 추구해 온 작가의 예술관을 살펴보기에 족하다. 멀티미디어를 한 편의 교향곡처럼 펼쳐 보이면서 치유와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물의 정원 3F-2
1층 ‘꽃비 정원’에서는 천장에 매달린 벚꽃 모양의 조형 작품들과 함께 사방에서 벚꽃이 비처럼 흩날리는 영상을 볼 수 있다. 증강현실(AR) 장치를 통해 꽃으로 된 옷을 입고 벚꽃 관을 쓴 자기 모습을 들여다볼 수도 있다. 작가는 “현실과 꿈이 함께하는 우주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한 장치”라고 말했다. 전방위로 투사되는 거대한 인터렉티브 공간으로 천장에는 자개로 만든 벚꽃이 매달려 있고, 바닥에는 벚꽃 형상의 거대한 거울 방이 자리한 채 인피니티 이미지를 관객에게 선사한다. 춤추는 꽃비 정원은 모두에게 함께하자고 손짓하면서 희망을 전하지만, 누군가는 환희를 누군가는 처연한 슬픔을 읽는 중이다. 희망은 있다. 현대인에게 에덴동산이란 결코 실낙원이 아니라 지금, 이 땅에 구현할 ‘영원한 낙원’이기 때문이다.
흙의 정원 2F-3
2층 ‘흙의 정원’에서는 고려청자처럼 생긴 거대한 조각을, 3층에서는 커다란 수조 위에 설치한 3개의 연꽃 모양 금속 조형물을 만날 수 있다. 4층 ‘하늘정원’에서는 천장에서 내려온 스테인리스 스틸 조각들이 서로 입맞춤하는 형상을 연출한다. 이 모든 공간에서 작가가 작품 테마에 맞춰 제작한 음악이 흐른다. 거문고 뜯는 소리, 물방울 소리, 금속 소리 등이 어우러져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흙의 정원은 흙으로부터 발원한 공간이며 자연이 자리한 공간이다. 역사적 전통을 지금, 여기에서 새롭게 해석하는 공간이다. ‘멀티플 스테인리스 스틸 볼’이 드리운 그림자로 한국의 산하를 표현한 작품, '그림자 산수(Shadow Sansu)'가 벽면을 가득 채운다. 전시장 중앙에는 벚꽃이 새겨진 고려청자 형상의 조각 몸체로부터 신비로운 빛이 산란하는 작품, '빛의 도자기(Ceramics of Light)'가 자리한다. 가히 흙이 불을 만나 시간의 흔적을 남긴 역사의 공간이라고 하겠다. 전시장 한쪽에는 작가의 이전 작업들을 실감나는 'VR 아카이브(VR Archive)'로 살펴볼 수 있다.
흙의 정원 2F-2
3층은 물이 점유하는 공간이다. 여기서 물은 모든 것을 살리는 신성한 생명수라는 상징이다. 검은색 물이 채워진 커다란 수조 안에 스테인레스 스틸로 만들어진 3개의 꽃이 마치 연꽃처럼 자리한다. 검은 수면에 반영된 꽃 이미지로 인해 물의 정원은 실재와 허상을 서로 만나게 하면서 두 간극을 하나의 덩어리로 품어 안는다. 꽃의 몸체를 빠져나온 여러 색상의 빛이 전시장 주변을 환상적인 공간으로 물들이는 동안, 간헐적으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조용한 공간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물의 정원 3F-1
4층은 이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하늘 정원이다. 그곳에는 원형의 스테인리스 스틸 판들로 만들어진 한 쌍의 연인이 가느다란 와이어에 몸을 의지한 채 서로 입맞춤을 한다. 흙을 빚어 만들었다는 인류 최초의 사람인 아담과 이브일까? 아니면 1년마다 오작교로 서로 만난다는 견우와 직녀일까? 신화, 설화 혹은 현실 속 인간의 사랑은 욕망과 배신, 환희와 비애가 오가는 가슴 먹먹한 무엇이다. 성서의 전언처럼 ‘모든 것을 참고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면서도 모든 것을 견뎌야 하는 까닭’이다. 그런 면에서 하늘 정원은 인간이 떠났던 하나님과 화해하는 사랑의 공간이기도 하다.
하늘 정원 4F-1
설치미술가 심영철씨는 “관객이 참여하는 인터랙티브 작품을 지향한다”고 말했다. 1980년대 미디어를 활용한 '가든' 연작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는 40여년간 활발한 활동을 벌이며 끊임없이 작품세계를 확장해 왔다. 그는 지난 2월 수원대 미대 교수를 정년 퇴임한 후 작품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화가 안혜경은 지난 2020년부터 전남 신안의 섬과 섬을 다니며 작업하는 『화가의 여행가방』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신안 자은도 둔장마을미술관에서 시작된 『화가의 여행가방』은 안좌도 자라도 병풍도 선도 암태도 장산도 흑산도 등 섬과 섬을 잇는 다리를 건너거나 하루 한두 차례, 그마저 날씨에 따라 변동이 심한 배를 타고 섬으로 가는 것이 작업의 시작이다. 섬에 도착하면 어디엔가 숙소를 정하고,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섬에서 사는 사람을 만나 그 삶을 듣고 그림으로 기록한다. 그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전에 다른 섬에서 만났던 분과 언니 동생이거나 사돈이거나 하는 일들이 많아 섬과 섬의 가계도 혹은 인물 지도가 만들어진다. 『화가의 여행가방』프로젝트의 처음 시작은 섬마을 주민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얼굴을 그리는 작업이었다. 4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1004개의 섬 중 70여 유인도에 살아가는, 다리가 놓여도 여전히 그 섬에 살거나 오히려 바다를 건너 돌아온 섬사람 마지막 섬 토박이들을 삶과 생애를 예술로 기록하는 특별한 아카이브가 되어가고 있다. 『화가의 여행가방』프로젝트를 통해 작가는 수천의 섬사람을 만났고, 500명 이상의 섬사람을 그렸다. 그동안 작가가 만난 섬사람은 어린아이부터 100살이 넘은 어르신도 있다. 그중 몇 분은 그사이 유명을 달리하기도 했다. 『화가의 여행가방』은 앞으로도 당분간 진행될 예정이다.
작가는 섬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꾸린 여행가방에 본인이 그린 작품들을 넣고 섬으로 찾아가 여행가방을 풀고 섬 주민들을 위한 전시를 열고 주민들을 초대한다. 이방인을 좋아하지 않는 고립된 섬에서도 화가에게는 경계심을 풀기 쉽기 때문이기도 하고, 좀처럼 전시회를 만나기 어려운 섬 주민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안혜경 화가의 여행가방』 전시회를 열어두고 마을회관으로 면사무소로 노인정으로 밭으로 다니며 인사하고 사람들과 섞여 주는 밥도 먹고, 말린 홍어도 그리고, 바다와 돌과 나무를 그리다 보면 섬사람들의 눈으로 들어가 점차 마을 어른들의 마음으로 들어간다. 그러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어느새 작가는 마을 화가가 되어있다. 섬사람들은 화가가 밥은 잘 먹고 있는지 걱정하는 사람이 많아진다... 마을 사람 대부분을 알아갈 즈음이 되면 또다시 전시회를 열어 그동안 섬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화가의 작품이 되어 전시된다. “작업이 끝나 섬을 떠나기 전에는 섬에서 만난 사람들을 그린 그림을 전시하고 섬을 떠나온다. ”이러한 과정은 2022년 1월 KBS 다큐ON 『화가의 여행가방』으로 방영된 바 있다.
섬에서 한두 달 지내다 작업실로 돌아오면 섬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후속 작업을 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본인의 작업을 한다. 섬에서 만난 사람과 환경은 자연스럽게 작가의 작품으로 유입되곤 한다. 한 사람을 잃는 일은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일이라고 한다. 사람의 삶이란 단지 시간의 축적일 뿐 아니라 삶의 시간과 함께 하루하루를 살아 낸 사람의 경험이자 역사이기 때문이다. 500사람의 역사를 듣고 기록하는 동안 작가는 때로는 끝을 알 수 없는 깊고 푸른색과 같은 표정을 보인다. 작가의 작품은 작가의 표정과 같이 깊고 단단하나 간결하고 단순해졌다. 이번 전시는 안혜경작가가 『화가의 여행가방』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다닌 섬에서 본 풍경이며 섬이 준 시각적 경험과 영감으로 제작된 작품들이다. 그러나 화가가 만난 500명의 섬사람들의 삶이 함께한 작품들이다. 『화가의 여행가방』프로젝트에 포함되어 함께 여행하던 그림도 포함되어있다. ■이승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