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하면, 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게 정치를 개 좆 같이 하니 그런 것 아니가.

왜 열심히 일했는데, 지들처럼 떵떵거리고 살지는 못하더라도,
일한 만큼 대우받고, 최소한 사람답게는 살아야 할 것 아니가?
평생을 권력자들께 당하고, 기득권자들에 밀려 손해만 봤다.
그래서 가진 자들과 권력 쌘 놈들이 대를 이어 나쁜 짓하는 이런 나라가 싫은 것이다.
돈 없으니 나가 살 수도 없고, 죽으려니 가족이 밟혀, 악만 남았다.



나라를 끌고 가는 년은 얼굴에 철판을 깔았는지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
그래도 역사가 중요한 건 알았던지, 교과서를 국정화해야 된다네.
지 애비 나쁜 짓 한 거는 다 알아...




어제 민중봉기 날에는 끝장 낼 작정하고 나갔다.
페트병에 휘발유 두 병 넣어 가, 분신할 생각까지 했다.
영웅이 되고 싶냐는 마누라의 비아냥거림에 쪽팔려 포기했지만...


경찰들에 시비 붙어 실큰 두들겨 맞아 죽을 작정도 했으나,
헬맷 눌러 쓴 전경들의 눈을 보니 욕도 한 마디 못하겠더라.
다 자식 같은 놈들인데, 지가 무슨 죄가 있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내 할 일은 그 날 벌어진 일들을 샅샅이 찍는 일 뿐이더라.
그러나 연장이 신통찮아 걱정스러웠다.
지난번 인사동 시위 때 맞은 물대포로 카메라를 망쳤으나,
돈이 없어 아직까지 카메나도 없는 신세다.
마누라에게 똑딱이 하나 빌려 쓰고 있는데, 이게 내 밤일처럼 작동이 느려
순간 포착이 어렵고, 특히 어두운 밤중에는 맥을 못 춘다.



그렇지만 어쩌랴!  일찍부터 대학로에 나갔다.
여러 집회장이 있지만 역사쿠데타를 저지하는 ‘민주민생수호 범시민대회’부터 갔다.
민중들의 슬픈 마음을 알았는지, 그 날은 날씨까지 우중충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좀 달랐다. 젊은이들이 주축인 이전에 비해 연세 지긋한 분도 많았다.
이건 교과서국정화문제로 여지 것 눈감아주었던 보수층들이 돌아 서고 있다는 정황이다.
함세웅 신부를 비롯하여 김정헌, 장순향씨 등 반가운 분들도 더러 보였다.



조선, 동아일보는 수험생들을 힘들 게 하는 민중궐기라며 비난을 퍼부었으나 광화문으로

이동시간을 학생들의 입실이 끝나는 오후4시까지 기다리는 등, 질서정연하게 진행되었다.
마치 축제 행렬 같은 분위기였는데, 종로로 행진하는 길에서 판화가 김준권씨도 만났다.



종각 쯤 당도하니, 더 이상 행진을 못하도록 도심을 경찰버스로 성곽처럼 쌓아 놓았더라.
행렬을 벗어나 광화문으로 가는 통로를 찾았으나 쥐새끼 한 마리 못 들어가게 만들어 놓았다.

정말 대단한 경찰이더라. 북한에서 무장공비가 내려 와도 이렇게는 못 할 것이다.
한 업소를 통해 간신히 빠져 나가기는 했으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북한의 광장같이 텅 빈 광화문은 경찰버스만 줄지어 있을 뿐, 황량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합류하기 위해 얼마나 돌고 돌았던지, 벌써 어둠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조선일보사 앞에서 반가운 분들을 만났다.
백기완 선생과 이수호, 신학철, 장경호, 하태웅씨 등 여러 명이 식당으로 가던 중이라,
따라붙어 짜장면 한 그릇으로 허기를 메울 수 있었다. 


 


대치하고 있는 길거리는 캡사이신 물대포를 얼마나 쏘아댔는지 희뿌연 물이 흐르고 있었고,
저지 망을 치우기 위해 버스를 묶어 당기는 시위대 위로 연신 물대포를 쏘아댔다.

어느 놈이 지시하고 조준하는지 모르지만 무자비했다. 사람이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도 그 위에 퍼부어 댔다.
급기야는 사람이 다쳐 군중 틈을 뚫고 구급차가 들어왔으나, 더 이상 진입하지 못했다.
길 터라는 군중들의 외침에 누군가 실려 나갔지만, 정황을 파악할 겨를도 없었다.
미처 우의를 준비 못했던 터라 온 몸은 물대포를 맞아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다.




긴 시간동안 버스를 치우기 위해 밧줄에 엮어 당겨댔으나 허사였다.
경찰들이 미리 전신주나 단단한 지주에 묶어 둔데다, 건너편의 경찰들은 막대에 톱을 달아
묵인 밧줄을 잘라 버리기 때문이다. 온 힘을 쏟아 당기던 군중들이 나 자빠져 다치기도 했다.

화난 군중들은 경찰버스를 때려 부수기도 했으나 그들에게 빌미를 주는 일일 뿐이었다.
오후11시가 되니 연행한다는 선전포고가 시작되고 경찰들의 포위망이 좁혀지기 시작했다.
사진 찍으려 경찰버스 위를 오르다 곤두박질해 욕도 바가지로 얻어먹었다.
체력의 한계를 느껴, 끝까지 지켜보지도 못한 채, 마지막 지하철을 타야 했다.



옷을 벗어 세탁기에 집어넣으며, 걱정되어 기다리던 마누라께 말했다.
“아들 같은 경찰 놈이 나더러 더럽게 늙은 놈이라 카던데.”
슬프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내 신세가... 

더러운 세상이지만 끝까지 싸워, 다 잘사는 평등의 시대는 보고 죽어야 할 것 아니가?

사진,글 / 조문호














서양화가 신학철씨의 작품


























































원로 언론인 임재경 선생의 팔순을 기념하는 “펜으로 길을 찾다” 회고록 출판기념회가

지난 2일 오후6시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많은 축하객들이 참가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그 자리에는 백기완, 백낙청, 신경림, 채현국, 황명걸씨 등, 장 안에 내 노라 하는 문객들이 다 모였다.

임재경선생은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책벌레’라며 신경림시인과 백낙청선생이 입을 모았다.

함세웅 신부는 가족들의 말을 빌려 고집불통이라고도 하셨다. 절대 불의에 양보하지 않는다 했고,

이부영 전 의원은 "임 선배는 어느 자리에 가도 자기가 있다는 것을 내보이지 않는다"며

"많은 일들의 아교 같은 노릇을 한다"라고 말했다.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그리고 박재동화백은 선생의 선물로 초상화를 그려왔는데,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 혼쭐났다며,

왜 그리 개성 없이 못 생겼냐며 농담까지 하셨다.

많은 분들이 나와 축하의 말씀을 주셨지만, 중요한 것은 아직도 선생은 청춘의 피가 끓고 있다는 것이다.

단상에 올라 짱짱한 목소리로 “이 목 타는 세상, 회갑잔치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면서

지금의 남북 상태를 끝장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셨다.

사진,글 / 조문호




-창비-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