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주년 맞아 뉴미디어, 영상까지로 영역 확대
국내 최초 저온·냉장수장고 조성, 소장품 2만점 보존
한국 현대사진사 조망한 개관전 21일 개막

[서울 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

 

국내 최초의 사진 전문미술관인 한미사진미술관(관장 송영숙)이 20주년을 맞아 삼청로 시대를 연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서 한미사진미술관을 운영하던 가현문화재단은 종로구 삼청동에 '뮤지엄한미 삼청'을 신축하고 오는 12월 21일 개관한다.

 

[서울 뉴스핌] 임응식, '나목'. 1953. 젤라틴 실버 프린트. 33x24.8cm

한미사진미술관은 지난 20년간 국내외 주요 사진작품 수집, 전시 기획및 작가 지원, 출판및 교육사업을 펼치며 우리 사진예술계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또 세계 사진계에서도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 미술관으로 주목받아왔다. 그러나 한미약품 사옥 내에 미술관이 있어 단독 미술관 건립이 오랜 목표었고, 이번에 그 숙원을 마침내 이루게 됐다. '뮤지엄한미 삼청'을 위해 송영숙 관장(한미약품 회장)은 수백억 규모의 사재를 출연하며 수년간 건립을 진두지휘했는가 하면, 새 세대를 적극 끌어안기 위해 뮤지엄의 방향도 대폭 전환했다.      

서울 북촌에 새로 들어선 '뮤지엄한미'는 삼청동 문화거리에서 삼청공원 오르는 길 끝에 자리잡았다. 바로 옆에 목조석가여래좌상(보물)을 모신 칠보사가 있다. 뮤지엄한미 삼청의 건축은 기오헌건축사무소의 민현식 건축가가 설계했다.

 

[서울 뉴스핌] 정해창, 1923~1930's. 젤라틴 실버 프린트. 12.2x16.5cm.

민 소장은 미술관 중심에 '물의 정원'을 두고 3개의 건물이 수직 수평으로 연결되도록 디자인했다.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600평에 4개의 전시실과 멀티홀, 수장고, 라운지 등이 들어섰다. 

뮤지엄한미 삼청은 21세기 디지털 이미지의 등장으로 급변하는 사진매체 전반을 수용할 예정이다. '사진예술의 확장과 다가가는 미술관'을 목표로 보다 폭넓은 영역을 다루고, 사진애호가 뿐 아니라 각계각층 관람객을 끌어안는다는 비전을 수립했다.

이에따라 뮤지엄한미는 사진을 기반으로 한 랜드아트(land art)와 장소특정적 미술(site specific art), 개념미술, 그리고 뉴미디어아트와 영상까지로 전시 대상을 확장한다. 한미사진미술관에서 뮤지엄한미로 명칭을 바꾼 것도 이 때문이다. 미디어 아트를 수용하기 위해 7m 높이의 전시벽과 콘서트홀 수준의 음향설비를 갖춘 멀티홀을 지하 1층에 조성했다. 다만 최근의 미디어아트와 영상작업이 큰 스케일로 이뤄지는 추세여서 복도식 전시실 등은 다소 협소하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서울 뉴스핌] 서울 종로구 삼청로에 새로 건립된 '뮤지엄한미 삼청' 전경. 12월 21일 개관한다. [사진= 이영란 기자]

기존 방이동 한미약품 건물에 있던 한미사진미술관은 사진및 미술자료 도서관으로 전환되고, 삼청동의 뮤지엄한미 삼청이 본관으로 구심점이 된다. 또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해 2019년부터 'MoPS 삼청 별관'으로 전시가 활발히 열리고 있는 별관까지, 뮤지엄한미는 이제 총 3개관 체제로 운영된다. 앞으로 전시및 연구, 출판 등과 함께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이벤트, 아카데미 등을 개최할 예정이다. 

뮤지엄한미 삼청은 개관전으로 한국 현대사진사 안팎을 조망한 아카데믹한 전시를 마련했다. '한국사진사 인사이드 아웃,1929~1982'라는 타이틀로 1929년부터 1982년까지 한국사진이 어떠한 제도적 조건과 역사적 문맥 속에서 그 흐름을 이어갔는지 살펴보는 기획전이다.

1929년은 정해창(1907~1968)과 관련이 있다. 정해창이 일본, 중국 유학 후 돌아와 서울 광화문빌딩2층에서 개인전을 연 것이 1929년이다. 이를 기점으로, 임응식(1912~2001)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회고전을 연 1982년까지 우리 사진계 흐름을 촘촘하게 재구성했다.

 

임응식, 구직. 1953. 젤라틴 실버 프린트, 34x26.3cm. 전쟁 후 피폐한 한국의 사회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1929년 정해창이 한국 최초의 개인 사진전을 개최한 뒤 1930년대는 신문사들이 주최한 공모전을 통해 사진가들이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시기다. 공모전에서 수상한 작가들은 예술적, 사회적 승인을 받았다. 1950~60년대에는 해외 사진공모전에 도전하는 작가들이 등장했고, 이후 관전과 민전의 시대인 1970년대로 이어진다.

전시는 반세기 이상 한국사진계를 지배했던 공모전의 주요 당선작을 두루 살펴본다. 이후 독자적인 전시와 출판 등을 통해 사진가 개인의 이력을 키워나갔던 작가들의 작품도 조망하고 있다.

공모전의 영향력이 확연히 줄어들고, 1982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석조전에서 '임응식 회고전'이 열렸다. 이 회고전은 임응식 개인의 성취이자, 동시에 사진이 독자적 예술매체로 순수미술의 한 분야로 인정받는 전기가 됐다. 이를 기점으로 한국 사진은 현대미술의 장르로 도약했고, 본격적인 수집(컬렉션)의 대상으로 부상했다.

 

[서울 뉴스핌] 주명덕, '포토에세이-홀트씨 고아원 중에서'.1964. 젤라틴 실버 프린트. 16.8x25.4cm
[서울 뉴스핌] 전몽각, '윤미네 집' 중에서, 1968. 젤라틴 실버 프린트, 28.1x40.3cm

전시에는 총 42명 작가의 사진 207점과 관련자료 100여 점이 나왔다. 1929년에서 1982년에 이르는 50여년의 한국 사진사 안팎을 샅샅이 살핀다는 취지의 전시는 빈지티 프린트의 부재로 많은 난관을 겪었다. 한국사진사의 몇몇 사진가들은 자신들의 대표작을 전하지 못한채 작고했고, 소유권과 저작권 문제, 부실한 소장관리로 어려움이 컸던 것.

개관전 기획을 총괄한 최봉림 부관장은 "뮤지엄한미의 이번 전시는 한국사진사 정립을 위한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책임감으로 어려움을 헤쳐갔다. 당대의 사진적 조건과 사진가 고유의 성향을 담지하기 위해 최대한 원본 빈티지 사진으로 전시를 구성했다"고 했다. 또 필름만 남은 경우에는 당시 사진 인화기법과 사이즈대로 재제작했고, 디지털 파일만 남은 경우도 최대한 원본을 따랐다.

 

개방형 수장고를 통해 공개된 김규진 천연당 사진관의 전문대생들 기념사진, 젤라틴 실버 프린트 12.7x19.1cm,

한편 뮤지엄한미는 지난 20년간 수집한 2만 여점의 사진 소장품을 효과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저온 수장고와 냉장 수장고를 구축했다. 미술관 관계자는 "사진은 종이에 화학물질로 인화해 열화(劣化)가 올 수 밖에 없다. 연구에 따르면 온도가 5도 낮아지면 사진수명은 2배 늘어난다고 한다. 이에 저온수장고(15℃에 습도 35%)와 냉장수장고(5℃에 습도 35%)를 조성했다. 소장품 중에는 1860년대 사진도 있는데 항온항습시스템으로 수명을 500년이상 유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작품과 접촉하는 모든 재료는 중성 아카이벌 재료를 사용했고, 수장고 외장재도 보존성이 높은 스테인레스스틸을 사용하는 등 사진 보존에 관한 제반사항을 최대한 고려했다.

 

뮤지엄한미 삼청의 개관전 '한국사진사 인사이드 아웃,1929~1982'에 출품된 황규태의 '가이아(Gaia)',1969. 잉크젯 프린트, 29.5x45cm

개관전과는 별도로 '개방형 수장고'를 활용한 전시도 선보인다. 냉장 수장고의 한쪽 벽을 유리로 만들어 소장품을 공개하는 일종의 특별부스인데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사진을 도입한 황철이 촬영한 1880년대 사진부터, 고종의 초상사진, 흥선대원군의 초상사진 원본을 전시한다. 또 1907년 서울 소공동에 천연당 사진관을 차린 해강 김규진의 사진과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사진가로 알려진 경성사진관 이홍경이 촬영한 여인초상 등 총 12점의 사진을 공개한다. 개관전과 연계한 특별세미나도 두차례(2023년 1월3일, 2월11일) 개최한다. 뮤지엄한미 삼청의 개관전은 내년 4월 16일까지 열린다. 월요일 휴관 

 

'뮤지엄한미'에 조성된 섭씨 5도, 상대습도 35%의 냉장수장고 한켠에 자리잡은 줄리아 마가렛 카메론(1815~1879)의 1867년도 작품.

 

 

 
 

 

蓮.PADMA

주명덕展 / JOOMYUNGDUCK / 朱明德 / photography
2016_0423 ▶ 2016_0618 / 일요일 휴관



주명덕_2010 부여 ⓒ주명덕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21009k | 주명덕展으로 갑니다.


작가와의 대화 / 2016_0423_토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목요일_10:00am~09:00pm / 토,공휴일_11:00am~06:30pm / 일요일 휴관



한미사진미술관

The Museum of Photography, Seoul

서울 송파구 방이동 45번지 한미타워 19, 20층

Tel. +82.2.418.1315

www.photomuseum.or.kr



누구나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에 귀 기울인다. 사진가 주명덕 역시 괴팍스럽게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사진으로 보여준다. 통념상 말하는 아름다움, 기쁨, 그리고 슬픔도 그에게 감동을 주지 않는다면 사진에 담지 않는다. 그의 가슴을 움직이는 순간만을 사진에 담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상을 바라본다. 1980년대 말 그가 보여준 빽빽한 나무와 얼기설기 얽힌 넝쿨에 담긴 한줄기 빛은 어두웠지만 아름다웠다. 사진을 평생의 업으로 삼으면서 조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여준 검은빛의 풍경 《Lost Landscapes》는 굵은 선으로 움직이는 땅의 힘, 생동하는 그 기운이 먹먹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그렇게 그는 사진 속에 그가 밟고 살아온 땅을 담아내려고 노력하였다.


주명덕_2014 경산 ⓒ주명덕


주명덕_015 함양 ⓒ주명덕


주명덕_2014 부여 ⓒ주명덕


이번에는 연蓮을 사진에 담았다. 연은 탄생과 생명을 지닌 신성한 식물이자 문명의 뿌리로서 다양한 상징과 의미로 읽힌다. 주명덕은 오래전부터 찍고 쉬고, 다시 보기를 반복하였다. 통념을 넘고 스스로 새로워지려는 노력일 것이다. 그사이 계절은 바뀌고, 어느덧 꽃이 피고 지며 시간이 흘렀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생로병사를 경험하고 순간순간 스스로를 다져갔다. 연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었지만, 자연의 이치를 깨달아가면서 그에게 연은 또 다른 한국의 풍경이 되었다. 연은 심연深淵에 뿌리내리고 피는 꽃이다. 깊은 흙 속에 뿌리내리고 물 위에 넓은 잎을 피우고 향기로운 꽃을 피우며 수면으로 지고 결국은 다시 물로 돌아가 그 자리에 씨를 품는다. 자연의 순리대로 물속에서 이루어지는 생로병사를 담은 주명덕의 연은 화려한 꽃의 형태, 대상이 갖는 아름다움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연을 둘러싼 물의 기운에 주목하기에 풍경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주명덕_2010 불영사 ⓒ주명덕


주명덕_2010 불영사 ⓒ주명덕


주명덕_2011 불영사 ⓒ주명덕


물은 생명을 잉태하는 어머니의 모습과도 같다. 모든 더러운 것을 포용하고 정화하여 꽃을 피게 하고 그 열매를 키워내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것이다. 연의 꽃과 뿌리를 변함없이 지켜주는 심연의 강인함은 땅이 보여주는 생기처럼 힘찬 기운은 아니지만 드러내지 않는 조용함에 있다. 그리고 폭포처럼 격정적이지 않고 바다처럼 무관심하지 않으면서 연을 지키면서 만개한 꽃이 갖는 화려함도 섞이지 않는 고고함, 그리고 죽어가는 슬픔까지도 포용하게 되는 것이다. 사진가는 만개한 연꽃의 아름다움을 배제하고 여느 때와 같이 자신의 직관을 믿고 그만의 빛을 읽고 그가 보여주고 싶은 방식으로 연을 바라본다. 꽃이 피고 시들어 죽어가는 슬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시간, 연을 지탱하고 포용하는 물의 모습, 그리고 군집하는 잎의 얽힌 모습을 그의 간결한 화면에 담는다. ● 연은 물 한 방울도 꽃잎 속에 스며들지 않고 연 잎의 주변을 맴돌아 다시 수면으로 돌려보낸다. 잎은 본능적으로 해를 향해 뻗어가고, 여름의 생동감이 떨어지면 꽃은 지고 부스러져 황량하게 죽어간다. 그러나 꽃과 함께 수면 위를 비추는 빛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안도감과 편안함을 준다. 이른 아침 화려한 꽃으로 잠시 피어 스스로 자태를 추스르면서 겨울을 맞고 결국 태어난 물속으로 다시 돌아간다. 사진가 주명덕이 바라보는 연은 그가 여전히 애정을 갖고 있는 한국 풍경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주명덕_2010 불영사 ⓒ주명덕


주명덕_2016 부여 ⓒ주명덕


주명덕_2014 경산 ⓒ주명덕


이번 연작은 어둡게 보일 수 있지만 세월이 지나면 모든 것이 소멸하는 스러지는 것의 아름다움을 직시하는 사진가의 노련함을 고스란히 담아 보여준다. 스스로 생명을 품은 자연이면서 더 큰 자연으로써 물의 일부가 되는 연, 세월에 스러져 이윽고 자연으로 환원되는 평안함은 누구나 보는 상식적인 아름다움을 넘어 새로운 창조를 바라보는 이유가 된다. 반짝이는 수면 위에서 연을 비추는 밝은 빛은 세월을 안고 스러져가는 것의 덧없음 그러나 그 자리에 변함없이 있어온 이 땅에 대한 애련이며 주명덕의 연을 바라보게 하는 힘이다. 이제 그는 한국문화의 근간이자 모든 문명의 뿌리로서 연을 다룸으로,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큰 한걸음을 내딛는다. 마치 한곳에 뿌리박고 있지만 넓은 물 속에서 번식하며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는 가는 연처럼 말이다. ■ 손영주



Vol.20160423a | 주명덕展 / JOOMYUNGDUCK / 朱明德 / photography


그동안 이명동선생을 모시는 오찬회를 인사동에서 정기적으로 가져왔으나, 이번에는 이명동선생의 전시가 열리는 ‘한미사진미술관’이 있는 ‘어양’ 중식레스토랑에서 모임을 가졌다.

지난 7월 28일 정오에 가진 오찬회에는 이명동선생을 비롯하여 육명심, 한정식, 이완교, 전민조, 조문호, 구자호, 김영수, 유병용, 이기명, 고 김기찬씨 미망인 최경자씨등 모두 열 한 명이 참석하였다.

오랜 세월동안 한국사진사를 정리해 오신 육명심선생께서 우리나라 근대사진사에서 이명동선생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진다는 말씀을 하셨다.

“우리나라 초창기 사진은 대부분 사진관 인물사진이었지요. 그 때의 사진관은 상류층들이 주로 활용하는 곳으로 대개 연미복을 입고 찍었어요.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진가들도 대부분 일본에서 공부하고 온 엘리트로 국내작가로는 이해선, 서순삼, 현일영, 박필호씨 등이 주도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이명동선생께서 당시로는 아마추어 사진가에 불과한 임응식씨를 내 세워 ‘생활주의 리얼리즘’을 주창하며 사진계 흐름을 완전히 뒤집은 거지요. 그렇지만 그때 나는 이명동 선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사진협회 창설이나 '동아사진콘테스트'로 사진판을 좌지우지하는 모습이 싫었거든요. 그런데 이명동선생의 숙적이나 마찬가지였던 사진가 이종화선생이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 갔더니, 문상 오신 이명동선생께서 달구 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장례가 끝 날 동안 지키고 계셨어요. 결국 이명동선생의 인간적인 면모에 끌려 생각을 바꾸게 된거지요. 그동안 사진계에서 이명동선생의 도움을 받지않은 분이 별로 없지만, 그중에서 임응식선생과 임선생의 직계였던 홍순태교수가 도움을 가장 많이 받았어요. 그리고 한 번 도와주기 시작하면 끝까지 도와주는 그런 분이예요. 모든 공적과 실리를 임응식선생께 돌리고 뒤에만 계시던 이명동선생께서 임응식선생이 세상을 떠나시니, 그 아들 임범택씨를 위해 팔방으로 애쓰셨어요. 분명한 가치관과 인간적인 의리로 똘똘 뭉친 분이지요.”

올해로 이명동선생의 연세가 아흔다섯에 이르지만 건강상태는 물론 기억력까지 너무 좋아 팔순 정도의 연세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마 백수는 물론 아직도 십년 정도는 건강하게 사실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 사진계의 최고 원로이자 산증인이지만, 병석에 계신 사모님 간병으로 만년을 쓸쓸하게  보내고 계신다. 사진인들의 모임이 있을 때면 나오셔서 사진계 비사들을 들려주시는 것이 유일한 낙이라면 낙이다. 유병용교수가 인터뷰를 가져 많은 사료들을 기록해 놓았다니, 머지않아 한국사진사의 볼만한 책 한 권이 나올 것 같아 기대가 된다.

그리고 이번 모임에는 이명동선생 이야기 외에도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얼마전 사진가 전민조씨와 고 김기찬선생의 미망인 최경자씨가 독일 사진비엔날레에 초대되어 다녀 온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서울시가 일억 오천만원 상당의 전민조씨 작품을 구입했다고 한다. 그동안 순수사진에 밀려 뒷전에 머물던 기록사진의 가치가 늦게나마 인정받았다는 것은 다큐멘터리사진을 하는 입장에서 엄청 기분 좋은 소식이었다.

 

 

 

 

 

 

 

 

 

 

 

 

 

 

 

 

 

 

 

 

 

 

 

 

 

 

 

 

 

 

      좌로부터 사진가 육명심, 전민조, 이기명, 한정식씨, 한미수석큐레이트 손영주씨, 원로사진가 이명동선생, 고 김기찬

      미망인 최경자씨, 사진가 이완교, 김영수, 구자호, 유병용씨와 앞 줄은 필자 조문호




한국사진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분으로 이명동선생을 꼽을 수 있다.
보도사진은 물론 학술적인 이론과 평론, 출판을 위시하여 사진계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한 그의 업적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대 원로작가께서 아흔다섯이나 되는 연세에 처음으로 사진전을 열게 된 것이다.  전무후무한 이번 사진전은 ‘사진예술’ 발행인 김녕만씨의 노력으로 성사되었는데, 문제는 그 첫 전시에 내놓은 사진들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이다. 종군기자 때 찍은 한국전쟁의 가슴 아픈 사진들과 자유당시절의 민주화 운동 및 김 구, 신익희, 조병옥씨 등 우리나라 거목들의 마지막 초상사진에 이르기까지 작품성을 떠나 중요한 역사적 사료들을 망라했다는 것이다.

전선에서 찍은 어린 병사의 기념사진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이 미어지게 만들었다. 고향 부모에게 보내려고 찍어 달랬다는데, 그의 총구에는 예쁜 인형이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개막식에서는 이명동선생의 인사말씀과 사진가 윤주영, 송영숙(한미미술관장)씨의 축사, 장사익씨의 축가가 이어지는 가운데, 많은 참석자들의 뜨거운 축하박수를 받았다.

 

지난 7월5일 오후5시에 개막된 ‘먼 역사 또렷한 기억“ 이명동사진전은 서울 송파구 위례성대로14에 위치한 ”한미사진미술관“ 19층에서 오는 31일까지 열린다.

개막전에 참석한 사진가는 다음과 같다.
정범태, 김한용, 홍순태, 육명심, 한정식, 황규태, 강운구, 임범택, 김테레사, 차용부, 박영숙, 송영숙, 이완교, 윤주영, 박용윤, 전민조, 구자호, 최봉림, 김녕만, 윤세영, 이병용, 최광호, 김대수, 이주용, 이갑철, 이기명, 김영태, 박상훈, 곽명우, 손영자, 이종화, 김가중, 정태만, 유건식씨 등, 그 외에도 옛 현대칼라 대표였던 장남수씨를 비롯하여 동아일보 사우들과 이명동선생 가족 등 1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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